육십갑자 중 20번째에 해당하는 계미(癸未)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고, 지지(地支)는 미토(未土)다. 천간 계수(癸水)는 음수(陰水)로서 생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물이다. 만물을 자양하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미토(未土)는 음토(陰土)이며, 동물은 양(羊)이다.계미일주는 음(陰)의 기운이다. 첫 인상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산길 옆 오솔길에 조용히 흘러내리는 시냇물 또는 옹달샘을 연상하게 한다. 자칫 소극적인 사람이 될 우려가 있고, 지혜롭지만 남자다움이 부족한 것이 흠이 될 수가 있다. 수동적이고 조용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평소에 자기표현을 많이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본적으로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인 면에서 타고난 능력도 남들보다는 훨씬 크다. 자기영역, 자기 울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사주에 양, 미(未)가 있으면 부모님께서 어디에 기도해서 낳은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 뱀, 사(巳) 기운 못지않게 4차원 세계와 아주 인연이 깊다. 그러므로 영적인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예술적이기도 하고 재능이 많은 편이다.계미일주는 겉은 부들부들하고 유연하지만, 내면은 기운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널리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된다. 희생정신은 숭고한 것이다. 희생이란 타고난 재능이며 능력이다. 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푼다면 무슨 원망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계수(癸水)는 깊은 산속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차고 깨끗하다. 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성분의 물이다. 물에도 급수에 따라 사는 물고기가 있다. 1급수에는 버들치, 열목어. 2급수에는 쉬리, 피라미, 은어. 3급수에는 붕어, 잉어, 메기. 4급수에는 거머리가 산다. 2급수까지는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안에는 ‘미치는 샘’이라는 곳이 있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 샘물을 마셨기 때문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임금만은 따로 샘을 파서 물을 마셨으므로 제 정신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볼 때 제 정신인 임금만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임금을 붙잡아 앉히고는 진찰을 하고, 쑥으로 뜸을 뜨고, 은침으로 침을 놓고, 억지로 약을 마시게 하였지만 어느 한 가지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임금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하다가 마침 그 샘에 이르게 되어서 그 물을 마셨다. 마침내 임금도 미치게 되었다.그 나라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똑같이 미쳐 버렸다. 그제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했다. 공동체를 위해 맹목적으로 모두 같아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전체주의로 갈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는 자유가 보장된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계미일주는 한여름의 뜨겁고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물상이다. 미(未)는 아닐 미(未), 아직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미토(未土)는 느리고, 막중한 임무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함을 가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느리다. 미토는 여름을 마무리해서 가을의 결실로 넘겨주는 역할 때문에 신중하고 느린 것이다. 그것이 흙토(土)의 역할이다. 진토(辰土), 축토(丑土). 술토(戌土)도 동일하다.체코의 작가 밀란 쿤테라는 1994년에 발표한 소설 ‘느림’에서 “느림과 기억,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은밀한 관계가 있다.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문득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방금 어떤 괴로운 경험을 한 자는 이를 잊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고 말했다.서두르지 않는 용기, 바쁘지 않은 아량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문장도 있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에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이 대목은 소설 속 주인공이 시골 성(城)으로 가는 도중에 그의 차를 추월하려고 조바심을 부리며 뒤따라오는 자동차 모습을 생각하는 부분이다.“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뛰면서 생기는 미묘한 신체적 변화와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여기에서는 질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뛰어가는 사람이 대조를 이루며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인간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의 차이점이며, 기술혁명이 변화시키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작가가 따뜻한 시선을 보이는 쪽은 인간의 속도다.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하는 속도, 그래서 그 신체적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계를 즐길 줄 아는 인간의 속도다.밀란 쿤테라는 1968년 소비에트 침공으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참여하였다. 1975년에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핵을 머리에 인 채 살아가고 있다. 자유와 행복한 삶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못살던 나라에서 명실공히 열강의 반열에 들어간 세계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 빠른 성장이 유독 한국에만 가능케 된 이유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때문이다. 빠름에 따른 풍요로움과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이제는 빠른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찾을 때이다.
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