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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계묘(癸卯)

2023년은 육십갑자 중 마흔 번째에 해당하는 계묘(癸卯)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로, 비 또는 시냇물이다. 지지(地支) 묘목(卯木)은 어린 나무이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로는 검은 토끼다.계묘일주(癸卯日柱)는 천간과 지지가 음(陰)이다. 연약한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남성적인 면모가 부족하여 자신감, 독립심, 투쟁심이 약하며 소심하고 겁이 많다. 자신의 신념에 애착이 강하여 특정 부분에 고집이나 자부심이 강하다. 무시나 간섭을 받으면 잘 삐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계묘일주의 계수(癸水)는 봄비를 말하고, 묘목(卯木)은 봄의 계절에 어린나무다.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작은 나무나 화초의 모습이다. 계묘(癸卯) 글자 모양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며, 화초의 모습처럼 날씬하여 미남과 미녀가 많고 살찐 사람은 드물다. 물속에서 핀 연꽃같이 기품이 있고, 도도한 외모와 말솜씨가 뛰어나다.일지(日支) 묘목은 도화(桃花)와 천을귀인이 있어 자기 자신을 잘 가꾸고 뽐내며, 나르시시즘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문창귀인(文昌貴人)도 있어 학문적인 습득이 좋으며, 지식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술분야와도 잘 맞아 전문성이 있는 창작과 기획에 재능이 있다. 계묘는 배우자 자리에 천을귀인이 있어 배우자 복이 많다. 비를 맞고 있는 어린 화초의 물상으로 남녀 모두 예쁘고 잘생겼다. 이성에게 인기가 좋아 이성문제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그와 같은 사례로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로맨스가 있다.사마상여(기원전 179∼117)는 중국 한나라 때 문장가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 그는 고을의 부자 탁왕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17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는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그의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 야반도주를 한다.어이없는 애정의 도피행각에 화가 난 탁왕손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딸을 멀리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네 벽밖에 없던’ 가난한 처지의 사마상여인지라 탁문군은 말과 수레 따위를 처분해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뒤 탁왕손은 집안사람들의 설득으로 딸에게 재산을 주었고, 두 사람은 고생을 멀리하고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자허부’에 매료된 한 무제가 사마상여를 불러들여 마침내 자신의 문장으로 벼슬을 얻게 되었다.무제의 발탁으로 형편이 나아지자 사마상여가 첩을 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탁문군은 ‘백두음’을 지어 보내 남편의 마음을 되돌렸다. 누군가 사마상여가 뇌물을 받았다고 밀고하자 그는 벼슬에서 과감히 물러났다. 병을 핑계로 나라 일에는 관여치 않고 한가롭게 지냈다. 벼슬에 목매지 않았고, 아내가 과부라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술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도 나르고 술잔도 기꺼이 닦았다. 아내 탁문군은 글재주가 뛰어났기도 했지만, 격식이나 제도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자립정신을 가졌다. 이천년 전의 여성으로서는 대단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이었다. 가도벽립(家徒壁立·집안에 세간은 하나도 없고, 사면에 벽만 둘러 있어 매우 가난하다는 말)은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이야기에 나온 고사성어다.계묘일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성격이 밝고 순수하나 적극성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빈곤하지는 않지만 큰돈을 벌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고 남을 돕거나 베푸는 심성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다. 고흐와 테오 형제는 목사인 아버지를 둔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고흐는 원래 신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병약하며 가난하고 고생하는 자를 위해 사역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실상이 보여주기식 신앙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리자 고흐는 큰 공허함과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형에게 동생 테오는 대신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테오는 언제나 형이 미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는 동생에게 보답하고자 늘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미술중개상 일을 하던 테오는 형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었고, 고흐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충고를 해주었다.평범한 인간들보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고흐에게는 항상 우울증, 공황장애, 정서불안, 신경증 등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정신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세상과 고립되었다. 결국 형이 37세에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형의 작품으로 회고전을 준비하는 데 열중했던 테오는 형의 뒤를 따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33살 테오가 죽자. 29살의 나이에 과부가 된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게는 한 살이 된 아들만이 남았다. 예술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던 요한나에게 형제가 나눈 편지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온갖 그림까지 그려진 편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며 편지를 수습하며 세상에 알리려고 애썼다.남편과 고흐가 나눈 668편의 편지를 공개해 형제의 남달랐던 우애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고흐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요한나는 남편 테오의 무덤을 이장해 형 옆에 영원히 함께 있도록 묻어 주기도 했다.우리는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가 없다. 항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빚을 지고 살아간다. 고흐 형제 뒤에는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보이지 않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 덕분에 고흐의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천을귀인 같은 사람이다.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고결하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훌륭한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알고, 가까운 것을 통해 먼 곳을 알아야 한다.

2023-05-31

신축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여덟 번째는 신축(辛丑)이다. 천간(天干)의 신금(辛金)은 잘 다듬어진 칼같이 날카롭고, 보석처럼 아름답다.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계절로는 겨울이라 땅이 얼고 차갑다. 동물로는 흰 소다.신축일주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형상처럼 지혜롭고 머리가 뛰어나다. 기획력과 창의력은 탁월하다.눈치가 빠르며, 밤하늘의 별처럼 신비스러운 것이나 이상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영감이나 꿈으로 미래를 잘 예측하기도 한다.천간과 지지가 음의 기운으로 냉철하며,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세밀하여 일처리가 빈틈없이 깔끔하다.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미가 넘치며, 타인을 사로잡는 능력도 탁월하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 시야가 좁고 외골수이기 때문에 편협함이 있다. 매섭기가 그지없으니 내면에 공격성이 숨어 있어 자기 눈에 벗어나면 독설도 서슴지 않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신축일주 남자는 재주와 재치가 있다.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 신의도 잘 지킨다. 배우자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고, 고생시킬 수도 있다. 여자는 단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미인형의 얼굴이 많다. 또한 총명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자부심도 강해서 아량이 부족하게 보이기도 한다.중국 전한시대 유향이 지은 ‘전국책’ 진책2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강 언덕에 있는 어떤 마을에 처녀들 몇이 있었다.그 가운데 한 처녀의 집이 매우 가난해 밤이 되어도 등불을 켜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밤이 되면 가난한 처녀는 여러 처녀들이 모여 노는 집으로 찾아가서 바느질을 하곤 하였다. 어느 날 여러 처녀들은 가난한 처녀를 더 이상 오지 말라며 쫓아냈다.그러자 처녀는 여러 처녀들을 보고 “나는 우리 집에 등불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불빛을 빌려 써야 했지만, 그게 늘 고맙고 미안해서 언제나 제일 먼저 와서 방도 치우고 자리도 펴 놓았지. 그런데 너희들은 이 사방 벽에 비추어 남아도는 등불 빛 한 가닥이 아까워 나를 쫓아내는구나. 남는 불빛을 나에게 준다고 해서 너희에게 무슨 해가 되냐? 나는 스스로 너희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라고 말했다.여러 처녀들이 수군수군 의논하더니 가난한 처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는 순화되어야 할 감정이 많이 숨어있다. 남의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이다.신축일주는 하늘은 매섭고 찬바람이 휘날리는 신금(辛金)이지만, 땅은 소(축, 丑)다. 남들 보기에는 힘든 일도 소나 닭 쳐다보듯이 무심하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기운이다. 부지런하지만 결코 스마트하지 않는, 좀 늦고 떨떨한 신축! 재주도 메주도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신축! 거기다가 생각하는 것도 진취적이지 못하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고, 옆에서 보면 속이 답답한 경우이다.하늘이 살벌한 신(辛)의 기운으로 매서운 칼날을 들고 있지만, 땅인 소는 알고 있다. 그것이 보석을 나누어주기 위한 하늘의 이치라는 것을. 참으로 소의 커다란 눈망울 같이 순하고 순수하며 따뜻한 눈으로 보아주고 있다. 대체적으로 판단력이 좋고, 신속한 행동을 한다. 약간은 즉흥적이지만, 로맨틱하지는 않다. 남녀 모두가 소위 분위기 파악이 잘 되지 않는 성향이 있어 흠이 될 수 있다.소처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독하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빠지면 깊이 들어가는 기운이 있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습관이 많다.신축일주는 물상으로 언 땅 위에 박힌 보석처럼 침착하고 매사에 신중하기에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해도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겨울의 차가운 환경에서도 봄을 맞이하여 뜻을 펼치기 위한 노력이 남다르다. 늘 불안하고 걱정하는 성격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재물과는 인연이 깊지 못하여 타고난 재능으로 인내하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허나 시기 질투가 강하여 남과 비교하는 내향적인 성질이지만, 직감과 영감이 뛰어나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아 종교생활에 적합하다.신축일주에는 효신살(梟神殺)이 있다. 올빼미 효(梟)와 귀신 신(神)을 써서 올빼미 신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동방불인지조(東方不仁之鳥)라 하여 새끼가 성장한 이후 어미 새를 쪼아 먹는 폐륜적인 새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다시 말해 남자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고, 여자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야기하기에 좋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지나친 애정과 간섭으로 생긴 문제다. 자신의 잘못된 점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단점만 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유향이 지은 ‘설원’ 담총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비둘기가 올빼미를 보고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올빼미는 “나는 동쪽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라고 대답했다.비둘기가 왜 이사를 가려 하는지 물었다. 올빼미는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울음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비둘기는 올빼미에게 너의 울음소리를 고칠 수 있다면 이사를 가도 되겠지만, 울음소리를 고칠 수 없다면 동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거기 사람들은 여전히 너의 울음소리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효장동사(梟將東徙)라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올빼미는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탓하면서 단지 사는 곳을 옮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필연적인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애착, 대립, 관계, 이별, 상실, 성가신 뒤처리 등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물론 이런 문제에서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전력을 다해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면 그 모든 일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손대기 전에는 힘들었던 일이 생각보다는 가벼운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은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3-05-24

경자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일곱 번째는 경자(庚子)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단단한 바위며 가공되지 않는 원석이다.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산속의 계곡물처럼 차고 깨끗하다. 동물로는 흰쥐다.경자일주는 큰 바위 밑의 쥐의 형상으로 혼자 은둔하며, 무슨 일을 하든 몰두하는 습성으로 고독수가 있다. 성격은 바위처럼 단단하며 주관이 있고 의리가 있다. 스스로 은둔하는 습성으로 남의 간섭이나 참견을 싫어하고 자존심은 세다. 타인과는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지만 믿음이 생기면 쉽게 배신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특히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수재형이다.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한 말을 굉장히 잘해 화술이 뛰어나다. 암반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그렇지만 성격은 차갑고 냉혹한 면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여리고 잔정이 많다. 결벽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경자일주 여자는 아름답고 총명하여 남자를 보는 눈이 높다. 부족한 배우자를 만나면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성향이 있다. 본능적으로 남편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여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남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자를 만나기 쉽고, 여자를 다정하게 대하지만 외도로 인해 악처로 만들 수 있으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녀 모두 미남 미녀로 이성에 관심이 많다.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 ‘월야밀회’가 있다.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저녁에 골목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다. 세 남녀의 복잡한 심리묘사에서 드러나듯 삼각관계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던 사람들은 대개 각 영문의 군교나 무예청의 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이다. 불륜의 시작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마지막은 늘 추하게 끝이 난다.경자일주는 쥐 중에서도 힘이 강한 흰쥐를 상징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주변의 갈등으로 스스로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깊이 숨기는 사람이 많다. 마치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피할 때 ‘너 쥐새끼처럼 어딜 도망가’라는 말을 듣는 거나 같다. 많고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처럼 말이다. 해저 깊은 곳의 보물선을 찾기만 하면 대박인데.우리나라 1940~50년대는 여성 이름으로 경자, 영자, 순자, 말자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소설가 조선작(84)은 1973년에 ‘영자의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60~70년대 최하층민의 생활에 대한 애증과 관심 그리고 산업화에 다른 부작용을 작품화했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변두리로 떠도는 남녀의 사랑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다.주인공 영식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식모 영자를 만난다. 입영영장이 나와 헤어지고 월남전에도 참전한다. 제대 후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서 영자를 찾던 중 우연히 윤락촌에서 만났다. 영자는 버스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인해 외팔이가 되었다. 그것을 안 영식은 의수를 만들어 준다.원피스 속에 적당히 감추어진 의수를 달고 영자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창녀로서 영자에게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은 윤락촌에서 화재로 죽는다. 영화로 개봉되어 성공을 했고,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걸로 끝이 난다.1970년대의 도시의 하층민 여성들은 구체적으로 식모, 여공, 버스차장, 호스티스, 창녀 등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들은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들이었고,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타자였다. 대체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윤락행위는 최하층민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제성장으로 향락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이 와중에‘호스티스’라는 신조어가 창출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표면적으로 퇴폐풍조의 일소나 풍기정화를 표방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부패한 성윤리가 고스란히 노출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또 다른 시대 상황으로 예부터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린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자년에 보리농사가 큰 흉년이 들어 어려운 시기였던 모양이다. 흉년은 이때 말고 여러 번 있었을 텐데 하필 경자년일까. 그 당시 경제 사정이 몹시 힘들었던 의미가 아닐까. 어떤 좋은 기운이 생겨도 마무리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세상 일을 도모하고 만들어주는 것은 하늘이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늘 탓 만 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자일주는 하늘이 아무리 경을 친다고 해도 그것을 잘 피해가는 것이 바로 ‘쥐의 현명함’이다. 생활이 무탈하고 미래에 다가올 인연들을 특히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잘 성사되기를 힘써야한다. 자기 일에 충실하여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남편 아들로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살아가면서 고통만이 존재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 쾌락만 넘쳐흐른다면 어느 사이엔가 쾌락에 무감각해진다. 그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랑하는 것이다. 평원을 지나 험준한 산길을 수없이 넘어야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거치고 계곡물에 발을 적시고 차가운 별빛 아래를 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할 것이며, 많은 것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뿐이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2023-05-17

기해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여섯 번째는 기해(己亥)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화초나 묘목을 심은 작은 정원이나 논밭이며, 지지(地支)의 해수(亥水)는 큰 강이다. 그러니까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초원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황금돼지다.기해일주는 기토(己土)라는 작은 땅이 해수(亥水)라는 물을 만나 ‘물기 촉촉한 땅’을 이룬다. 사람이 반듯하고 깔끔하고 섬세하고 흐트러짐을 싫어한다. 작은 것, 세세한 것까지 챙기므로 주변사람에게 신뢰감과 믿음을 준다. 너무 실수하지 않고 규칙을 잘 따르는 성향으로 인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해서 단점이 되기도 한다.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다. 허나 모든 것을 뒤엎는 혁명의 기운도 품고 있어 삶의 불예측성이 높은 일주이기도 하다. 바다처럼 넓다가도 세숫대야처럼 좁기도 하다. 굉장한 처세술을 부리다가도 어느 날 만사 싫증을 느껴 뜬금없이 반전을 꾀하기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여기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주변 상황에 맞게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난 탓도 있다. 본인 스스로도 모순을 느껴 간혹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힘도 길러야 한다.또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보증을 서거나 사기당하기가 쉬워서 돈이 많이 모이다가도 한 번에 재물을 잃을 수 있다. 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좋으나 재물의 관리가 허술해 주의가 요망된다. 개인사업보다는 조직생활이 더 나으며 가족 간의 돈거래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부모 유산으로 인해 분쟁의 소지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물상으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같다. 사회와 떨어져 있어 소외된 생활로 외로움이 수반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 ‘펨페스트(폭풍)’가 있다. 밀라노 군주인 프로스페로는 마술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동생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나무 상자에 넣어져 바다에 버려진다. 기적적으로 외딴 섬에 당도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다만 섬에는 마녀가 죽으면서 나무에 가둔 많은 선량한 정령들이 있었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사용해 그들을 풀어준다. 우두머리 이름은 에어리얼이다. 그는 작은 요정 에어리얼을 하인처럼 부린다. 동생을 도와 자신을 추방한 나폴리 군주가 자신의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뱃길에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켜 배를 난파시킨다. 이들의 죄를 응징하기 위해서다.미란다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마법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딸에게 12년 전에 동생에게 추방당한 일을 이야기해준다. 요정 에어리얼은 나폴리 군주의 아들 페르디난드를 외진 곳으로 피신시키고, 미란다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처음으로 남자를 본 미란다는 잘생긴 청년 페르디난드와 사랑에 빠진다. 프로스페로는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사랑을 통해 보복 대신에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와 관용을 통해 새 삶을 누린다는 내용이다.그는 섬을 떠나면서 마법에 사용한 지팡이를 섬에 버리고, 요정 에어리얼도 자유롭게 풀어준다. 여기서 마술이 권선징악으로 이용된다. 마술과 마법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해(亥)는 동물로 돼지다. 돼지꿈을 꾸면 로또에 당첨된다는 속설이 있다. 또는 저금통을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좋은 이미지로 사용한다. 우리는 고사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사용한다. 여러 가지 이설이 있지만 돼지 돈(豚)과 돈의 발음이 비슷해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돼지를 뜻하는 다른 한자어로는 저(猪)가 있다.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猪八戒)의 원래 이름은 오능(悟能)이다. 오능의 뜻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부처요, 이미 깨달음의 상태가 부처라는 소리다. 문제는 돈이나 이성 또는 재물을 보면 그만 술 취한 무리가 되어 헤까닥 중생으로 변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여덟 가지 계율만 지키라는 뜻에서 이름이 팔계(八戒)로 불린다.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마지막 부분에 ‘어느 쪽이 돼지인지, 어느 쪽이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은 작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돼지처럼 지나친 욕심을 낸다면 경을 칠 일이 생기고 신랄하게 비판당할 일이 생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각인된 돼지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돼지’는 인간에게 효용성의 측면에서 유익한 동물이다.기해일주는 기본적으로 재물의 기운을 깔고 있어 꼼꼼하고 부지런하긴 하지만 스케일이 좁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마음속에 큰 산을 품고 있어 삶은 안정성이 있지만 나를 얽매는 규제를 깨버리고 싶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즉 특별한 재능을 숨기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기운으로 볼 수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충실하다. 남자는 현명한 아내를 만나 해로할 가능성이 높다. 노래를 잘하거나 목소리가 좋은 경우가 많다. 선견지명과 탁월한 감각, 유머 위트에도 뛰어나다. 다정다감한 면이 있고 순박하며 재주도 많아 팔방미인이다. 영감, 직감, 예감이 좋아 모든 감각이 살아있다고 하겠다.반면 부드러우며 여성적인 성향이 있어 말과 행동이 소극적이고 우울, 근심, 걱정, 애수가 있다. 귀가 얇아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의심과 이기심이 있어 이해타산적이고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이다. 역마성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여행이나 무역과 같이 해외에서의 생활이 유리하겠다.우리는 누군가가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다르게 느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사랑’이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다리다.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단점이나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면을 포용하고자 하는 힘이 자기애(自己愛)다. 이것이 ‘너’와 ‘나’를 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2023-05-10

무술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다섯 번째는 무술(戊戌)이다. 천간(天干)의 무토(戊土)는 태산을 의미하고, 지지(地支)의 술토(戌土)는 계절로 늦가을의 기운이다. 천간과 지지가 모두 양(陽)기운이므로 활동력이 강하다. 동물로는 누렁이 개다.무술일주는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며, 검소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에게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반면 융통성이 없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고, 순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많다. 직장상사나 윗사람에게 아부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독립적이다. 또한 일처리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대범하고 과감한 유형이다.무술일주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명예지향적인 자존심이다. 물상으로 보면 하늘을 치솟는 산 위의 산이기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지갑에 돈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낙심한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고난을 돌파 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 또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많다.무술일주는 12운성으로 묘(墓)다. 묘(墓)는 고독을 의미하고, 홀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고독하게 살아가는 일주다. 부모나 형제 덕이 부족하여 인생을 혼자서 헤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깊고 혁신적이며 세속과 떨어진 정신세계인 종교와 철학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많다.르네상스 시대 토마소 캄파넬라(1568∼1639)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였다. 총명했으나 가난했기 때문에 공부하기 위해 열세 살 때 도미니크수도원에 들어갔다. 스페인 지배 하에서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에 참여했다.1599년 폭동 음모가 발각되어서 일곱 차례 고문을 받은 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태양의 도시’(1602년)를 썼다. 이 작품에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층과 하층 지식인들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이 투영되어 있다.그의 책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므로 노동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져 각자 하루 4시간씩만 일하면 된다. 게으름은 경멸의 대상이며, 고상한 척 무위도식하는 것은 무능력과 악덕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성직자로서 그의 유토피아 사상이 배척되어 이교도로 박해를 받았다. 그는 1629년 석방되어 수도원에서 조용한 만년을 보냈다. 사유재산제와 일부일처제가 철폐된 태양의 도시를 상상했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무술의 특징은 마음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넓어 설사 내가 조금 힘들어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친족이 힘들고 괴로울 때 괜히 같이 슬퍼하고 미안해지며, 말없이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인생의 굴곡이나 흥망성쇠에 마주쳐가면서 내면의 힘을 쌓아간다.무술일주는 이름하여 ‘보배의 산’이다. 무술은 천간에도, 지지에도 창 과(戈)의 기운이 있다. 기본적으로 사납다. 천간은 아주 무성한 나무처럼 하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지지의 담당자는 늑대인 개 술(戌)이다. 야생의 늑대가 인간과 친숙한 개로 바뀌었지만 주인을 잘 만나서 길들어지면 명견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똥개가 되어 돈과 먹을 것, 좋아하는 것을 보면 덤벼드는 황당한 늑대 같은 잡견이 될 수 있다.무술의 개는 장사수완이 좋아 영업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구분이 확실하다. 그러한 기질이 촉이 되어 실력이 없어도 각종 찍기나 복권 당첨 등에 재주가 있으며, 투자와 투기에 남다른 강세를 타고난 덕분에 재물도 많이 가지며 명예도 얻게 된다. 근본적으로 야생기질이 있어 인생살이가 큰 파도 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가며 살게 된다. 좋은 일주 중 하나다.무술은 늑대의 속성이 있어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의심도 많다. 보수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거칠고 직설적이며 화도 잘 내고, 말솜씨가 좋다. 그래서 스님, 신부, 목사 혹은 교사가 되면 본인의 영적 능력이 보석처럼 빛을 낼 수 있다.자신이 기르는 개가 집을 아주 잘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개를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개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우물에다가 오줌을 싸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았다. 이웃 사람이 개 주인에게 항의하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집 문 앞을 버티고 있던 개는 으르렁거리며 이웃 사람을 물려고 쫓아 나왔다. 끝내 이웃 사람은 개가 자기를 물까봐 주인에게 개가 저지른 잘못을 알리지 못하고 말았다. 중국 ‘전국책’ 초책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인의 위엄을 빌려 힘을 자랑하는 개의 포악성에 물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초책 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가 어느 날 여우를 잡았다. 여우는 날 잡아먹으면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믿지 못하겠거든 너는 나의 뒤를 따라와 봐라. 짐승들이 나를 보고 달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는 여우의 말에 따라 함께 갔다. 정말로 짐승들은 이들이 보이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인지 모르고, 여우가 두려워 달아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가 나왔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인간사회에서도 호가호위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권력자를 이용하여 힘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일을 알고도 눈감고 있다거나 본래부터 알지 못했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배경만 믿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정화된다.우리는 언제 말해야 하는가? 더는 침묵이 용인되지 않는 바로 그때 말해야 한다. 사람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 자신이 이미 극복한 일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해야 한다. 거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2023-05-03

정유(丁酉)

육십갑자 중 서른네 번째는 정유(丁酉)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는 촛불이나 별에 비유되며, 지지(地支)의 유금(酉金)은 잘 제련된 금속에 해당된다. 동물로는 닭이다.정유일주는 천을귀인과 문창귀인을 깔고 있어 옛날부터 사랑을 많이 받던 일주다. 다정다감하며 인간미가 넘친다. 심성이 착하고 봉사심이 있어 주변을 밝게 만들기에 인기가 있다. 온순하고 섬세한데다 아름다운 용모도 가졌다. 예술적 재능과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멋쟁이들도 많다. 모방도 잘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편이다.단점으로는 분위기에 약하고 귀가 얇은 편이라 잘 속는다. 맑은 기운을 그릇되게 사용하면 오히려 극심하게 추해지는 경향이 있다. 순수하고 고귀한 힘은 고귀하게 쓸 때 그 빛이 제대로 발휘된다. 무엇보다 많은 복을 타고난 정유는 남에게 먼저 베풀 때 그 복이 배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적어도 정유에게는 헛말이 아닌 듯하다.남자의 경우는 잘생기고 키가 훤칠한 경우가 많고, 이목구비가 큼직하여 시원한 호남형이다. 배우자 복이 있지만,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여자는 분위기가 발랄하고 산뜻하여 소년을 연상케 하는 느낌으로 매력적이다. 시댁이 부자이거나, 남편이 사업 수완이 좋아 기본적으로 배우자 복이 많다.문창귀인이 있어 총명한 편이다. 지혜가 있고, 문장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귀인 타입으로 만인에게 호감을 준다. 재주만 믿고 남을 불신하는 단점이 있으니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모임에 참석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며 생기가 넘쳐난다. 미남 미녀에다 말도 잘하고, 호소력이 넘친다. 어디를 가도 이성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유는 다재다능하고 융통성도 있어서 재능과 수완을 겸비했다.1950년대 박인환(1926∼1956) 시인은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였다. 큰 키에 미남이었고, 재치와 시적 재능을 겸비했다. 여름에도 정장을 했으며, 많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책방 마리서사를 열어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의 발상지 역할을 했다.1956년 이른 봄 탤런트 최불암 모친이 운영하는 명동의 술집 은성에서 박인환은 즉석에서 시를 쓰고, 이진섭은 곡을 붙이고, 나애심은 노래를 불렀다. ‘세월이 가면’이다. 3월 17일 늘 좋아했던 이상 시인의 추모의 밤에 너무 과하게 마신 술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0세였다. ‘목마와 숙녀’란 시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 그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목마를 타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가 평생 심취한 스물일곱에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처럼 짧은 생을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미남 시인으로 백석, 임화, 박인환을 꼽았다.매끄러운 만남과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유머다. 그러므로 유머를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윤활유라고 말한다. 그만큼 요즘은 누구랄 것도 없이 유머 있고 재미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나타낸다. 재치 있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요즘 매력적인 사람이다.정유일주의 유금(酉金)은 해가 서산에 저물 때 정화(丁火)의 불빛이 유금 보석에 반사되어 어둠을 밝혀주니 등대 같은 천을귀인이 된다. 유(酉)는 동물로는 닭이다. 닭 중에서도 ‘기유(己酉)’가 덕이 있는 스타일이라면, ‘정유(丁酉)’는 용맹 스타일의 솔선수범형이다. 그래서 ‘거친 세상의 다리’라고도 하고, ‘일몰의 등대 또는 가로등’이라 한다.정유는 그렇게 대범하기에 희생정신이 높다. 자신만의 독특한 내공이 있기에 해가 저물 때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름 한가락 하는 기술이 있어 아랫사람과 주변사람을 잘 챙겨주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수준급 이상으로 돋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사마천 ‘사기’에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이란 고사가 있다. 춘추오패 중 한 사람이었던 초나라 장왕은 즉위하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에게 간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할 것이다!” 장왕은 3년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다.마침내 충신 오거는 죽을 각오를 하고 우회적으로 간언을 했다.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해 보시오.”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 이 새가 어떤 새입니까?” “3년이나 날지도 울지도 않았으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고, 한 번 울면 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그대의 뜻은 잘 알았으니 물러가시오.”그러나 장왕의 주색잡기와 방탕함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대부 소종이 나섰다. 장왕은 화를 내며 소종을 꾸짖었다. “그대는 내 말을 못 알아들은 모양이요?” “알고 있사옵니다. 국정에 전념하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류대창 명리연구자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과 향락을 멈추고 정무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간신과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충신과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였다. 목숨을 걸고 간언했던 오거와 소종은 높은 관직을 내리고 중책을 맡겼다. 3년간의 방탕한 생활은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술수였다. 나라는 안정되었고, 백성의 생활도 윤택해졌다. 백성들은 몹시 기뻐하며 장왕과 충신들을 칭송했다.두꺼비나 개구리나 온갖 벌레들이 밤낮없이 울어 입이 마르고 혀가 지칠 지경이 되어도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장닭은 새벽에 길게 한 번 울어 제쳐 온 세상을 잠에서 깨운다. 말을 많이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다.누구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충분히 살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한 가지 능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 능력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사람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고 과감하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한 가지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23-04-26

병신(丙申)

육십갑자 중 서른세 번째는 병신(丙申)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태양,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큰 바위 또는 바위산이다. 큰 바위에 햇볕이 내리쬐는 모습이다. 동물로는 영리한 붉은 원숭이다.병신일주는 화(火)가 오행 가운데 예(禮)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깍듯하게 예의를 잘 지킨다. 상대방의 허물을 잘 보며, 활력이 넘치고 열정적이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추진력이 있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분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함부로 반말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뒤 끝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양(陽) 기운이 넘쳐 사회활동과 결실의 힘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리더십이 있다. 남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외모도 훤칠하며, 솔직담백하므로 비밀이 없다. 남자나 여자나 잘 생겼다. 자칫 사치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며, 결과를 너무 과시하면서 생색내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병신(丙申)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을 녹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창조성이 뛰어나다.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잡기에도 능하다. 원칙과 소신 있게 행동하지만, 여연살(女戀殺)이 있어 남자의 경우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숨겨둘 여지가 있다.조선시대에는 병신일주를 풍수를 보는 지관의 사주라고 했다. 지관들이 풍수를 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역마) 머무는 마을마다 여자와 인연이 생겨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병신 육갑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장님이나 장애인들이 점보는 일을 많이 했다. 특히 병신일주 사람들이 역학에 소질이 많아 육십갑자를 더하여 ‘병신이 육갑한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이, ‘병신자식 효도한다’라는 속담도 있다.병신의 신금(申金)은 원숭이다. 옛날에는 ‘잔나비 띠’라고 불렀다. 재주가 많고 활동성도 강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든지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고 보면 되겠다. 병신일주는 재주 있고 똑똑하며 호탕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솔선수범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빼어난 말솜씨로 사회생활에 지극히 잘 어울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 공직생활에는 외교관, 회사생활에는 무역부서에서 일하면 재능을 발휘해 쉽게 인정받고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기운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단점으로는 지나친 활동성과 성과에 집착하는 공명심이 있다. 빨리 남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직원이나 주변사람을 닦달하는 성향이 있다. 뻐기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외부로 향한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부실함을 채우고, 결과 및 인정욕구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조선에서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 주로 불교국가에서 원숭이 이야기가 많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에 가면 네 귀퉁이의 처마 밑에 원숭이가 연화받침 위에 무릎을 세우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두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다. 세상에 떠도는 말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불경 ‘육도집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전생에 500마리 원숭이의 왕이 되어 원숭이 무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고, 자신은 국왕에게 잡혀 “벌레 같은 몸뚱이의 썩어질 살이니 가히 왕에게 바치면 하루아침의 반찬이 될까합니다”하여 국왕을 감동시킨 이야기다. 지붕을 받들고 있는 원숭이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원숭이들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공경을 나타내어 감동을 주며, 도편수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병신일주는 재물을 깔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문창귀인이 있어 문필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1866년 중편소설 ‘도박꾼’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그는 낭비벽과 도박으로 늘 빚에 시달린 생활을 이어갔고 죽은 형의 빚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때 출판업자가 혜성같이 나타나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새 소설의 원고를 1866년 11월 1일까지 넘겨주면 3천루블을 지불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작권을 포기하는 조건이다.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수락했다. 받은 돈 대부분은 형의 빚을 갚았고, 남은 돈은 유럽의 도박판에 가서 신나게 날려버렸다.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졸속으로 쓴다 해도 한 달 안에 원고지 1천500매를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기사를 추천해 주었다. 속기사는 건전하고 젊은 상식적인 여자였다. 10월 4일부터 그는 구술했고 속기사는 속기로 적은 뒤 집으로 돌아가서 정서해 가져왔다. 이런 식으로 10월 29일에 마쳤다. 26일 만에 소설이 완성되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소설 ‘도박꾼’은 도박판의 탐욕과 공포, 도박꾼들의 흥분과 좌절과 긴장을 완벽하리만큼 실감나게 써냈다. 도박꾼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게임의 흥분과 스릴 추구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도박을 했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계약 이행보다 더욱 값진 성과는 속기사와의 결혼이다. 두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가까워졌고, 25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사랑으로 남편이 도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책을 직접 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빚을 청산함으로써 비교적 안정된 만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이 1880년 11월 탄생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그는 이듬해인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다.타고난 재능을 믿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는 수긍할 만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소홀히 대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력을 쏟지 않고 얕은꾀를 부리는 것,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방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

2023-04-19

을미(乙未)

육십갑자 중 서른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미(乙未)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화초나 풀을 뜻하며, 지지(地支)의 미토(未土)는 메마르고 열기가 많은 땅이다. 동물로는 양순한 양이다.을미일주는 물상으로 ‘사막의 선인장’이다. 생명력 강한 화초가 건조한 땅에 놓인 형국이다. 내면에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발현이 쉽지가 않다. 삶에 고난이 많지만, 외유내강형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끈기와 예리한 촉이다.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예리한 촉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강한 끈기와 집념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안으로는 재물을 만드는 능력 또는 융통성, 지적 호기심과 남을 설득하는 능력, 자신의 뜻을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돌파력이 돋보이는 일주다. 대체로 자유롭고 씀씀이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의외로 돈을 잘 모으지만 지출이 크지 않은 편이다.을미(乙未)의 미토(未土) 양(羊)은 순(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양처럼 아주 살벌하다. 절벽에 살고 다리는 짧지만, 싸울 때는 목숨을 걸고 죽을때까지 싸운다. 마음이 급해서 성질이 나면 앞뒤도 보지 않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큰일을 앞두고 대사를 그르친 민비(1895년 을미사변)처럼 자신도 주변도 모두 망가진다. 결국 인화(人和)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중국 명나라 육작(陸灼)이 지은 애자후어(艾子後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애자(艾子)는 뜰 안에다 양을 기르고 있었다. 양은 들이받기를 좋아했다. 사람이 나타나면 쫓아가서 뿔로 받곤 하였다. 애자의 제자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애자를 찾아가서 “선생님의 양들은 모두 수놈이라서 거칠고 사납습니다. 저희들이 양들을 거세하고자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성질이 온순해질 것 같습니다”라고 청하였다. 그 말을 듣던 애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은 아직 잘 모르는군. 임금을 모시는 사람들을 보게. 모두 거세를 당하여 사나이의 성(性)을 갖지 않았지만, 사나이들보다 훨씬 더 거칠고 사납지 않는가?” 명대 환관들의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이다. 힘없는 양이지만 권력이 생기면 재물이 들어와서 본분을 망각하여 쉽게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을미의 특성은 인간관계에서도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마음이 잘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밀어내는 특성도 있다. 이런 기운에 사로잡힐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과 삶의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가 필요할 듯하다.을미일주에는 백호살이 있다. 백호살이란 과거 호랑이가 불시에 민가로 내려와 사람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기운을 뜻한다. 백호는 한 마디로 강한 것을 다루는 재능이 있어 험한 세상에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능력이 비범하여 자신의 능력을 배로 발휘할 수 있기에 부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살 중의 하나다.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지 않고 배우자 건강 또는 부모형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므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질병과 사고 등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단순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교통사고다. 한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숫자가 2백만 명에 이른다.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고통의 늪에 빠지게 한다.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가난 속에서 자랐다. 하층민에 속한 아이는 초등교육을 졸업 한 뒤 곧바로 노동자가 되는 것이 그 당시 정해진 진로였다.그렇지만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은 가난했지만 지적 탐구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 카뮈를 발탁해 중학교 장학생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었다. 카뮈는 당당하게 장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에서 그의 재능을 깨닫게 해 준 장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다. 그러한 주변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1957년 44세 젊은 나이에 소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했다. 그는 수상 연설을 루이 제르맹 선생에게 헌사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7세 때는 결핵으로 학업도 중단하고, 부조리라고 부르는 비극적인 감정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갈망하였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란 선한 일에는 선한 결과를 얻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를 얻는다는 합리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와 그 세계를 향해 합리적인 이해를 얻고자 애를 쓰는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과 세계 사이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부조리를 평생 탐구했다.1960년 1월 4일, 휴가를 마친 그는 기차로 파리로 갈 계획이었다. 때마침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 갈리마르가 자기 차로 가자고 제안했다. 동승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47세 나이에 죽은 것도 어떤 필연에 의한 것인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차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 그러니까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그는 생전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만큼 부조리한 것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노자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이 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자연은 스스로 정해진 법칙에 따라 운행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관심한 것이다.인간의 합리적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세계, 그러한 세계를 상대로 부조리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한마디로 부조리를 느끼는 인간인 것이지 인간이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카뮈는 부조리란 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23-04-12

갑오(甲午)

육십갑자 중 서른한 번째에 해당하는 갑오(甲午)다. 천간(天干)의 갑목(甲木)은 우뚝 선 나무처럼 강직하고 바르다. 지지(地支)의 오화(午火)는 6월의 태양이며, 동물로는 달리는 야생마다.갑오일주는 큰 나무가 햇빛에 빛나듯 당당하고 시원한 모습이다. 우뚝 선 나무처럼 강직하고 바르며 안전감이 있다. 갑목(甲木)이 오화(午火)를 생하여 주위를 밝혀준다. 총명하며 공부를 잘하지만, 열기가 쉽게 사그라지듯이 끈기가 부족하다. 이상이 높고 개성이 강하여 지도자로 실력을 발휘하려는 욕구가 많은 편이다.갑오의 말은 역마의 기운이 있어 자유롭고 분주하게 여러 장소를 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사도 자주하고, 여행도 자주하고, 많은 환경과 접할수록 강한 상승의 운이 있다. 젊어서 타향에 가면 일찍 성공하기도 한다. 창조적이고 개척정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갑오일주는 삶의 기복이 많은 일주다. 눈치가 빠르고 재치가 있는 반면, 성격이 급해 일처리는 속전속결이다. 오화(午火)의 열기가 과일을 성장시켜 열매를 맺게 하지만, 결과 위주이기에 이해타산적이다. 모든 면에서 득실을 따져보면 소탐대실이다. 모든 일이 늦게 이루어지니 기다림이 중요하다. 또한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끼어들어 구설수가 따르니 조심해야 한다.말솜씨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최적화된 일주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언변이 화려하고, 떠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남의 일에 간섭하여 미움을 받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잦아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해 자신만의 의견을 강요하다보니 꾸지람이 되기도 한다. 자존심이 세어 최고가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허풍 또한 심하여 내실을 다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맹자’ 등문공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매일 이웃의 닭을 훔쳤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러한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충고하였다. 그러자 닭을 훔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에 한 마리만 훔치다가 내년에 가서 그만두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만약 그러한 것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았으면 즉시 그만 두는 것이 옳지, 무엇 때문에 내년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가?아무리 능숙하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혀끝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투로, 표정으로, 완벽하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갑오일주는 남녀 상관없이 본인을 가꾸고 꾸미기를 좋아해서 이성에게 어필이 잘 된다. 주변에 이성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남녀 공통이다. 특히 여자의 경우 홍염살(紅艶殺)이 있어 미모가 뛰어나고, 눈웃음을 치기 때문에 주변에 항상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성향이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사회활동을 하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가 있지만, 가정에 소홀해서 부부가 화목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홍염살은 붉은 홍(紅)에 고울 염(艶)이다. 마치 6월부터 피는 붉은 칸나와 같다. 꽃말은 정열, 존경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며, 꽃은 참으로 예쁘고 매혹적이다. 미인초로도 부린다. 키가 크고 넓은 잎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서 풍만함이 느껴지며, 넘치도록 붉은 꽃은 야해 보인다.칸나에 대한 전설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인도에 ‘네와다드’라는 질투 많은 악마가 있었다. 어느 날 붓다가 유명해지자 질투가 났다. 질투에 사로잡힌 네와다드는 붓다를 해치려고 마음을 먹었다. 붓다가 지나갈 때 큰 바위를 굴러 붓다를 죽이려 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네와다드는 때마침 지나가는 붓다를 향해 큰 바위를 굴렸고, 굴러온 바위는 붓다 발 아래서 부서졌다. 깨진 바위의 파편이 붓다의 발등을 때려 피가 흘렀고, 피가 떨어진 땅에 붉은 색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칸나다.1894년 조선말 갑오년에 갑오개혁으로 백성을 위한 민권이 성문화되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도 갑오년에 완성되었다. 조선 성종5년(1474년)인 갑오년에 개정하여 시행된 경국대전을 갑오대전이라고 칭한다. 성종은 즉위한 1470년 경국대전을 수정하게 하였는데 이때 나온 것이 신묘대전(辛卯大典)이다. 여기에도 누락된 조문이 있어 이를 보완하여 개수한 것이 성종5년 2월 1일부터 시행된 갑오대전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쉽게 말하면, 고려와 조선의 차이는 법치주의의 구현 및 실현이었다. 갑오(甲午)의 특징이 서민적이고 타인을 위한 이타심이나 봉사심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에 이러한 파격적인 법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여자 관노비가 임신한 경우에는 출산 전 30일, 출산 후 50일 등 총 80일 휴가를 준다. 그래서 갑오(甲午)는 ‘한여름 땡볕의 나무 그늘’이라고도 한다.사람들을 쉬게 해주고, 괴로움을 덜게 하고, 남을 도와주고픈 마음은 본성이 발동해 영적인 힘이 최고조에 이른다. 갑오년도 갑오월도 갑오일도 갑오시도 그러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적인 욕심은 내려놓으면 된다. 우리가 숙고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목적이 아니라 방법이다. 어떤 방법에 의해 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지 숙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법을 제정해도 집행하는 사람의 도덕기준에 따라 파급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 피해가 민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그 어떤 목적도 없이 자신을 가진 것 이상으로 내세우는 사람은 멸시받아 마땅하다. 허풍을 떠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짓을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허풍쟁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떤 목적이 있어서 큰소리를 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세상의 호평이나 명예 때문에 큰소리치는 자는 허풍쟁이로서 그다지 크게 비난할 것이 못되지만, 재물이나 재물로 바꿀 수 있는 것들 때문에 큰 소리 치는 자는 허풍쟁이보다 더 추악한 인간이다.

2023-04-05

계사(癸巳)

육십갑자 중 서른 번째에 해당하는 계사(癸巳)다. 천간(天干)의 계수(癸水)는 약한 음수(陰水)다. 깨끗한 물, 비, 연못을 의미한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불꽃, 연기 등을 상징한다. 동물로는 검은 뱀이다.계사일주는 물과 불의 만남이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운이다. 12운성으로 ‘태(胎)’다. 태(胎)는 생명이 사라진 후 다시 시작하는 단계다.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시작의 단계이므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보이지 않는 꿈을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형이다.계사일주는 물속에 사는 뱀의 모습이다. 또한 수화상전(水火相戰·물과 불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니 성급한 성미와 함께 변덕스러운 성향을 보일 수가 있다. 음양이 극과 극을 오가니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정신적인 질환을 겪을 수가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뱀은 이빨에 독이 있어 독한 말을 하며, 혀가 둘로 갈라져 있어 두 말을 잘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을 잘 바꾸는 단점이 있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그리스신화에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가운데 두 번째는 레르나늪에 사는 머리 아홉 달린 거대한 물뱀 히드라를 죽이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물뱀을 처치할 방법을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상세히 설명한다. “히드라의 머리는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낫으로 히드라의 머리를 벨 터인즉 너는 불방망이로 그 벤 자국을 지져버려라. 불과 물뱀 히드라는 상극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히드라를 불로 잡아야 한다.”헤라클레스는 칼로 히드라의 대가리 하나를 잘랐다. 그때 이올라오스가 재빨리 불방망이로 잘린 곳을 지졌다. 불에 지져진 곳에서는 다시 대가리가 생겨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는 히드라의 대가리를 길가에 묻고 무거운 돌로 눌러 놓은 다음 뮈케나이로 돌아갔다. 제우스신이 히드라를 하늘로 불러 올려 별자리로 박아주었다. 우리가 ‘물뱀자리’라고 부르는 별자리이다.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미움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술에 취하여 아내와 자녀를 죽인다. 그는 죄책감에 스스로 벌을 받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12가지 과업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운명에 맞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고난 운명이라면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일지 사화(巳火)가 배우자궁으로 좋은 배필을 만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한다. 남자는 역마와 재물이 깔려 있어 좋은 집안의 여자를 맞이하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배우자를 얻게 된다. 여자는 현실적인 감각이 있어 조건이나 배경을 잘보고 결혼상대를 결정하여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부부 금슬도 역시 좋다.계사일주는 천을귀인으로 공직 등 명예로운 직업을 갖고,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일주다. 물이 필요한 여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처럼 두루 쓸모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으며, 역마 기운이 있어 일생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암시한다.또한 일귀(日貴)격이라 순수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성정이 자비롭고 용모도 준수하고 지혜로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원칙에 밝고 실리를 중시하니 개인사업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조직 내에서 대표나 고위직을 보좌하는 참모형이 제격이다.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말기에 인상여는 조나라의 내시였던 무현의 식객이었다. 무현이 우연히 시장에서 산 옥구슬은 보물 화씨의 벽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혜문왕은 무현에게 구슬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보여주면 화씨의 벽을 빼앗길 게 뻔해 무현은 화씨의 벽을 도난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무현이 출타한 사이 집을 뒤져 보물을 가져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무현은 연나라로 도망하려 했다.인상여가 말했다. “연나라는 조나라보다 약하므로 조나라가 공을 포박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차라리 공께서 어깨를 드러내고 형틀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 것이 나을 것인데, 그러면 요행으로 죄를 벗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무현이 크게 깨닫고 조왕에게 사죄하자 조왕은 다행히도 무현을 용서했고, 무현은 인상여의 용기와 지모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인간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괴로워한다. 이미 보물을 취한 조혜문왕은 성취감에 취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기 때문에 무현을 용서해준 것이다. 인상여는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탁월한 판단으로 주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우리가 자주 쓰는 ‘완벽하다’의 ‘완벽(完璧)’은 인상여가 천하의 보물인 화씨의 벽을 탐낸 진나라 왕으로부터 죽음을 무릅쓴 용기로 다시 가져온 데서 유래했다. 그 공으로 재상이 되었다. 그러한 용기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전략가 염파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식객에서 재상이 되자, 염파장군이 시기하는 것을 알고 맞대면하는 것을 피했다. 식솔이 그 이유를 묻자 “내가 염파장군을 일부로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조나라가 한때 최강국인 진나라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염파, 인상여와 같은 충성스런 장군과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죽거나 쫓겨나면서 조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뱀 같이 냉철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 적을 물리칠 능력이 양성될 때 외교력도 발휘되는 것이다.통 큰 사람은 남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기가 남에게 의지하고 호의를 받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의와 친절을 베풂은 우월감의 상징이며, 그 반대는 열등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2023-03-22

임진(壬辰)

육십갑자 중 스물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임진(壬辰)이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지혜를 상징하고 총명하고 속이 깊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은 음력 삼월이라 습기를 머금은 땅으로 초목을 잘 자라게 한다. 동물로는 변화가 다양한 흑룡이다.임진일주(壬辰日柱)는 이무기가 물을 만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지도자 기질이 있어 스케일도 크며, 성격에도 흔들림이 없다. 겉은 냉정해보여도 마음은 온정이 많고, 독창적 재능이 있다. 신체가 건장하며, 자유 분망하고, 언변도 좋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능력이 있다.임진일주의 임수(壬水)는 깊은 강물이기에 드러내기보다는 비밀스럽게 행동하여 속을 알 수 없는 성격이다. 진토(辰土)는 물에 잠긴 땅이니, 조용하고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활동적이고 전진하는 성격이다. 진토는 권력 지향적이으로 명예를 중시하여 상, 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에 잘 어울린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꽁하니 감추고 있으니 뒤끝이 있다.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있어 손해 보거나 방해 받으면 공격적인 기질이 드러난다. 복잡한 감정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사고치는 경우가 생기고 다된 일을 망치기도 한다. 물 만난 용처럼 자신감이 가득하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흠이다.중국 공자의 6세대 자손인 공천이 지은 ‘난언’ 유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노나라 사람 공자고가 한때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그는 조나라 임금인 평원군에 의지하여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던 추문과 계절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공자고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조나라에서 사귄 친구들이 송별을 하러 찾아왔다. 송별식을 마친 뒤에도 추문과 계절은 공자고와 사흘 동안이나 동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은 맞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추문과 계절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그러나 공자고는 단정하게 자기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헤어져서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자, 공자고의 제자가 “저 두 분들과 선생님은 너무나 친하셨습니다. 저분들이 깊은 정을 보이시는 것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눈물까지 흘리는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주 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고, 헤어질 때 그저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보이시고 마는군요. 혹시나 그렇게도 가깝고 서로 아끼시던 친구를 가볍게 보시는 것은 아닌지요?”공자고가 “처음에는 나도 저 두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나이들인 줄로 알았으나, 지금 와서 보니 아녀자 같은 사람들이로구나. 사나이는 마땅히 뜻을 사방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사슴이나 돼지들처럼 언제나 뭉쳐서 다녀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제자가 또 다시 “그렇다면 저 두 분이 우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고가 “저 두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본래 타고난 성품인 인자함이 잘 남아 있다. 그러나 맺고 끊는 면에서 그들을 판단한다면 아직 좀 모자라는 구나”라고 대답하였다.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 타인이 베푸는 호의를 자기 잣대로 판단한다면 스스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임진일주는 괴강살이 있다. 괴강(魁7F61)이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이다. 우두머리 즉, 대장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확고한 신념이 있어 타인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따라서 상대가 보기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을 수 있고, 약간 삐딱함까지 느낄 수 있다.과거에는 여성이 괴강살이 있으면 좋지 않게 보았다. 기본적으로 능력과 총명함을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경시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성향이 강했다. 괴강살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있기에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가 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남녀가 많고, 여자의 경우는 미인이 많고 일처리 능력도 탁월해 현대사회에서 경쟁력 있게 활동할 여지가 많다. 결벽증이 있는 것이 흠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2운성으로 묘(墓)에 해당된다. 묘(墓)는 생명이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운이다. 감정표출이 적어 겉으로 봐선 표정을 알 수 없고 좋고 싫어하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괴강살이 있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향이 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가 있다.임진년인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역사다. 천민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다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갑작스레 죽자 정국이 혼란한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시킨 뒤 조선과 명을 정벌한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후계자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두고 내분에 휩싸여 2년 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였다. 마침내 1603년에 에도막부시대가 시작되었다.명나라 황제 만력제(신종)는 조선에 원병을 보내 지원했다. 그 당시 명의 원군에 의한 조선의 피해도 심각했으나, 전쟁에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명나라 황제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로 인해 결국 24년 만에 후금에 의해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조선왕조는 그대로 존속되었다. 혹자는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라고 말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반드시 몰락한다. 인간의 삶에는 반복이 없지만, 역사는 반복한다.

2023-03-08

신묘(辛卯)

이지안作 ‘Again’ 육십갑자 중 스물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신묘(辛卯)다. 천간(天干)의 신금(辛金)은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차갑다. 지지(地支)의 묘목(卯木)은 어린 화초와 같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은 하얀 토끼다.신묘일주는 천간이 매울 신(辛)만큼이나 매서운 땅의 영등할매가 차디찬 바람을 세차게 날리며 뜻을 이루게 할 사람과 뜻을 꺾어버릴 사람을 선택하는 냉정한 기운이다. 보석이 박힌 암살용 칼이 연상된다. 묘(卯)는 음력 2월 바람달이다. 옛날부터 이 달에 결혼하는 것을 기피했다. 혹시나 신랑, 신부가 바람날까 우려해서다.신묘일주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불교 다라니 중에서 최고라는 ‘신묘장구대다라니’처럼 신묘일주는 매사 무엇이든지 최고 일류만을 좋아한다. 남보다 뒤에 놓이는 것을 못 참는 성질이다. 너무 나가면 추락할 수 있으니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일류가 되고, 상자 속의 보석이 되는 이유가 있다. 가족, 특히 배우자 간의 애정이 풍부하고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빚지고는 못사는 성질로 계산이 확실한 것도 이유가 된다.신묘일주는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많다. 신묘(神妙)한 사람이다. 웬만하면 자신이 불쾌한 일을 당해도 그것으로 인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 하늘에서 매섭고 매운 기운을 뿜어대도 고비를 잘 넘어간다. 또한 보석 같은 마음이 생겨 어려운 사람을 보면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어 한다.보석 같은 신(辛)의 마음과 그것을 잘 사용하는 토끼 묘(卯)의 마음을 잘 융합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더 좋은 멋을 내기 위해서다. 신묘일주, 신묘월주, 신묘년주, 신묘시주를 가진 분들은 끊임없이 일류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자기가 더 나은 삶을 살려다가 분에 넘치는 바람에 신묘 기운을 가지고도 아주 싸구려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마틸드는 뛰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유복하지 못했다. 가난한 하급관리와 결혼한 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무도회 초대장을 구해 온다. 돈 많은 여자들 틈에서 가난하게 보이는 것처럼 창피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아내는 입고 갈 옷이 없다고 짜증을 내자, 남편은 비상금을 털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사준다. 장신구가 없다고 불평하자 당신 잘 사는 친구 포레스트 부인에게 장신구를 빌리면 어떻겠냐고 말한다.아내는 친구 포레스트 부인한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참석한다. 마틸드는 소원대로 파티에서 주목받은 여인이 된다. 그녀는 취한 듯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새벽 4시에 파티는 끝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순간이다.부부는 많은 빚을 내어 비슷한 목걸이를 구해 돌려준다. 그 후 10년 동안 힘들게 생활하면서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마틸드는 간혹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창가에 걸터앉아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총애 받던 무도회의 밤을 회상하곤 한다.그러던 어느 일요일, 공원을 산책하다가 목걸이를 빌려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늙고 초라해진 마틸드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틸드는 친구에게 지나온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마틸드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어떡하면 좋아. 가엾은 마틸드! 내 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 프랑 밖에 나가지 않는….”교훈적, 비판적, 묘사적 성격의 자연주의 소설로 극적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주제로 쓴 작품이다. 한 젊은 여인이 사치스럽고 우아한 귀족생활을 동경하는 욕심 때문에 고달픈 삶을 살게 되었다.인생에 있어 무의미한 것은 없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는 다 오늘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마틸드가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10년을 고생했지만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세월 동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허영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정신이 빈곤하면 계속해서 주변을 시기하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한다.신묘일주의 신(辛)과 묘(卯)는 끝이 바늘처럼 날카로워 현침살이 있다. 현침살 기운으로 인해 예민하고 초조하거나 불안한 사람이 많다. 누구보다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여 대처 능력이 좋다. 성격이 급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실수가 잦으며, 마음의 변화가 심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현침살의 날카로운 기운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여 우유부단한 것을 싫어한다. 호불호가 강하여 한번 틀어지면 마음을 열지 않으며, 냉정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경향이 있어 사기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12운성으로는 절지(絶支)에 해당하므로 밀어붙이는 힘이 약해 희노애락의 굴곡이 심하고 애인 또는 배우자와 단절을 경험한다. 또한 큰 재물을 꿈꾸지만 용두사미 격이다.인간은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고귀하고 좋은 것인지 보는 눈도 다르다. 명예, 쾌락, 지성 등의 덕목을 선택할 때 우리는 그것이 특별한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자체를 원하기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궁극적인 미덕이 자족(自足)이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2023-02-08

경인(庚寅)

육십갑자 중 스물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경인(庚寅)이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큰 바위나 산을 뜻한다. 지지(地支)의 인목(寅木)은 생동적인 양(陽)이며, 계절로는 음력 일월이다. 큰 산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바위 위에 노니는 호랑이 형상이다.경인일주의 천간 경금은 가을이다. 수확과 결실의 기운이 있어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의리를 중요시하지만 혁명의 기운도 내포하고 있다.또한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어 엄격하고 강한 기운이다. 불의에 참지 못하는 용맹함과 의협심이 강해 지도자 기질이 있다. 단점으로는 성질이 다소 급하고 민감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벌해진다. 행동은 거칠고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에 외로운 신세가 된다.지지 인목(寅木)은 이른 봄기운이다. 차갑게 언 땅을 뚫고 치솟는 기상이 있어 추진력이 강하고 역동적이다.인(寅)은 동물로는 호랑이다. 사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지만, 호랑이는 홀로 다닌다. 고독하지만 영혼이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다. 용맹함과 권력을 쟁취하는 우두머리 기질이 있다. 명예욕이 많기 때문에 남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밝고 명랑한 모습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거칠고 사나운 성격이다.경인일주를 칼 맞은 호랑이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한번 날뛰면 살벌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친다. 활발하고 강직하나, 지기 싫어하는 성질로 변화가 많다. 집착하고 투쟁심이 있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한다. 12운성의 절(絶)궁에 있어 불행을 딛고 일어나는 힘이 강하다. 전화위복의 횡재수가 있는 일주다.‘세설신어’ 자신편에 나오는 글이다. 중국 전국시대 진(晋)나라 때 의홍마을에 주자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싸움을 좋아했다. 고을사람들이 그를 화근덩어리로 여겼다. 의홍마을 강 속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교룡이 살고, 산속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있어서 마을사람을 괴롭혔다.의홍사람들이 이 같은 세 가지 골칫거리를 ‘의홍의 삼대 화근’이라 불렀다. 그 중에서 주자은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어떤 사람이 주자은에게 호랑이와 교룡을 없애 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우선 두 가지만이라도 없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주자은은 이에 산에 가서 사나운 호랑이를 죽이고, 다시 강으로 가서 교룡을 올라타고서 칼로 찔렀다. 교룡은 물 위로 떠올랐다 물 밑으로 가라앉다 하면서 몇 십리를 떠내려갔다. 사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주자은도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속 시원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며칠 후 주자은이 교룡을 완전히 죽이고 물 위로 치솟아 올라왔다.오랜 싸움으로 기진맥진해진 주자은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잘 되었다고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 자기가 교룡이나 호랑이처럼 이웃사람들로부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난날의 허물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 뒤 육손의 손자이며 유명한 문학가인 육기와 육운 형제를 찾아갔다.육기는 집에 없었고, 육운을 만나 마을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려고 생각한다는 것과 이미 나이가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도 말했다.육운은 “옛사람은 아침에 도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저녁에 죽더라도 좋다고 생각했소.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오. 사람이 걱정해야 할 것은 아직도 나아갈 길을 정하지 못한 것이오. 일단 가야 할 길이 정해진다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든 말든 마음 쓸 필요가 뭐 있겠소”라고 말했다.그의 말을 듣고 난 뒤 주자은은 진심으로 지난 잘못을 고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후에 진나라에 어사중승이라는 벼슬을 맡았고, 임금의 명을 받아 전쟁터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는 충신이 되었다.인간은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에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기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완성을 향한 구체적 방향이나 내용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인일주는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체적으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아 고생하다가 결국 윗사람이나 귀인의 도움으로 성공을 거두는 운의 소유자다. 하지만 큰일을 추구하는 용기가 과하다 보면 실패를 자초할 수도 있다. 자칫 오만하기 쉬워 주위에 미움을 받기 때문에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인일주는 본디 그 외모가 화려하다. 피부색도 화려하며, 치장하는 모습이나 본 모습이 화려하다. 편인과 편관의 힘으로 남에게 돋보이기를 좋아하며 꾸미기를 좋아 한다. 남자는 단정하고 깔끔한 얼굴로 세련되게 꾸민다. 여자는 피부가 하얗고 매력적인 외모를 자랑한다.경인(庚寅)에는 편관(偏官)이 있어 무인처럼 엄격하고 칼을 쓰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 전쟁에서 적과 마주했을 때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下)’ ‘칼을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이다’는 글이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겨져 있다.1950년 경인년(庚寅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성 잃은 호랑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전쟁은 참혹하고 냉정하다. 풍요로운 생활과 습관으로 전쟁의 상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 혼란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들으면서 올 한 해도 냉정한 판단으로 어떤 재난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겠다.

2023-01-11

기축(己丑)

‘겨울육십갑자 중 스물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기축(己丑)이다. 천간(天干)의 기토(己土)는 밭을,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계절로 한겨울 일월이다. 얼고 차가운 땅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소다.기축일주의 축토(丑土)는 얼어붙은 동토이므로 소극적이고 활동성이 떨어진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시키는 것을 좋아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불우한 이웃에게 인정을 베풀기도 한다. 말주변이 없고 독설을 내뱉기도 한다. 내적인 면만 본다면 편안하고 신뢰를 주는 성격이니 오래 사귈수록 좋다.천간 기(己)와 지지 축(丑)이 같은 흙토이므로 간여지동이라 한다. 간여지동은 성실하고 꼼꼼한 면을 보여주며 자신의 실속을 챙기려는 욕심이 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일해도 그에 맞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는 굴곡이 많으나 늙어서는 편하게 산다.기축일주는 겨울 밭에 소처럼 고집스럽게 일해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지 못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고난을 이겨낸다. 특히 따뜻한 화(火)기운이 들어올 때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조급해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을 살펴보자. 1913년 주인공 ‘나’는 고산지대를 여행하는 중 나무 하나 없는 땅 위로 견디기 어려운 바람이 세차게 부는 황무지를 지나게 되었다. 몇 시간을 걸어도 물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나이는 55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오두막집에서 양들과 개와 더불어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척박한 환경을 바꾸어 보기로 결심하고 하느님께 30년 후까지 자신을 살게 해주신다면 나무를 심겠다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3년 전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와 헤어지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다. 부피에가 87세 되던 해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황무지였던 마을은 숲속에서 바람이 불고 물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했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샘 곁에 심겨진 보리수다. 이것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합쳐 만 명이 넘은 사람들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위대한 정신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러한 결과는 없을 것이다.기축일주는 곡각살(曲脚殺)이 있어 평소에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과격하고 위험한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엉덩이를 당겨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하고, 장시간 TV시청이나 컴퓨터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품행과 인격이 바르나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가끔 거친 언행도 하니 대인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 외모를 보면 남자는 평균 이상의 얼굴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고, 여자는 얼굴이 예쁘지만 피부가 어둡거나 약하다.축토(丑土)는 물상이 소이므로 남녀노소 모두 부지런하다. 천간과 지지가 음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극성은 부족하나 고집이 세다. 그래서 소는 한 고집한다고 얘기한다. 소는 어릴 적부터 코에 구멍을 내어 엮어둔다. 사실 사나운 면도 많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듯이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주 가관이다. 큰 덩치와 격한 성격 때문에 코뚜레 꿰이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한비자 ‘화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초(楚)나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산에서 한 덩이의 옥돌을 얻게 되자, 그것을 초나라 임금 여왕(53B2王)에게 갖다 바쳤다. 옥돌을 다듬는 기술자가 옥돌을 감별해 보고는 “이것은 보통 돌덩어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한 임금은 화가 나서 형 집행인에게 그의 왼쪽 발을 잘라버리게 하였다.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또 다시 옥돌을 임금께 가져다 바쳤다. 역시 옥돌을 다듬는 기술자를 불러 감별하게 하였다. 이번에도 “보통 돌덩어리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무왕도 역시 변화가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오른발마저 잘라버리게 했다.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임금 자리에 올랐다. 변화는 옥돌을 가슴에 앉은 채 형산 기슭에서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사흘 밤낮을 울고 나니 눈물이 마르고, 붉은 피가 방울방울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문왕은 사람을 보내서 그가 그렇게 슬피 우는 까닭을 물었다. “이 세상에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건만 유독 당신만 그렇게도 웁니까” 류대창 명리연구자 “저는 결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가슴이 아픈 것은 세상에 보기 드문 옥이 오히려 돌덩어리 취급을 당하고,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문왕은 기술자에게 옥돌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시켰다. 그랬더니 과연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옥으로 빛났다. 그 후 옥돌을 ‘화씨의 벽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변화는 자기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가치를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고집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소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옥돌을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사람을 알아보기는 더욱 어렵다.임인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신념과 목표는 훌륭한 결과로 나타난다. 쓸데없는 고집은 나를 상실케 하고, 주위를 힘들게 만든다. 이런 것은 모아 호랑이와 함께 보내버리자. 어떤 보상도 연연치 않고 세상에 풋풋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계묘년에는 토끼처럼 활기차게 달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2022-12-28

무자(戊子)

육십갑자 중 스물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무자(戊子)다. 천간(天干)은 무토(戊土)이고, 지지(地支)는 자수(子水)다. 무자일주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사막)에 물이 있는 오아시스다. 마르고 거친 산과 땅(무토)이 물(자수)을 만나 생명이 살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바뀐 모양이다. 무토는 둑, 제방, 댐 같은 물상으로 흙으로 물을 가둔 상태다. 돈과 재물이 많이 모인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신용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도량이 넓고 성실하며, 언행일치하는 결단력도 있다.우직하고 통이 커서 큰 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하며, 욕심과 욕망이 많아 가정보다는 사회나 직장 일을 중요시하며, 가정생활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의외로 허영심과 허식이 있어 복권이나 경마, 경륜, 도박을 좋아하기도 한다. 자신 이득을 우선하므로 나쁜 평가를 받는다. 타인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남을 의심하며 흥분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한 예로 어느 고을에 부자(富者)가 있었다. 어느 날 일찍이 보지 못했던 큰비가 내려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그러자 그 부자의 아들이 “담장을 다시 잘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웃에 살던 어떤 노인도 똑같은 말을 하였다.그날 밤, 공교롭게도 부자의 집에 도둑이 들어서 많은 재물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부잣집의 모든 사람들은 그 아들의 총명함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였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재물을 훔쳐간 사람이 혹시 이웃집 노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훔쳐간 사람보다는 잘 간수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떠넘겨 스스로 위안을 받으려는 생각이다. 무토(戊土)는 흙으로 다져 물을 가두어 놓는 제방이고, 자수(子水)는 동물로는 황색 쥐다. 쥐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象)이다. 여기서 물은 술일 수도 있어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술로 인해서 고집은 있으나 박력이 없어 큰일을 성취하가 어렵고, 또한 귀가 얇아 실수가 잦고 잘 속는다. 밤늦게 마시는 술을 조심해야 한다.천성이 내성적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잘 드러내놓지 않는다. 다재다능하고, 한 가지 일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업무 처리에 빈틈이 없으며, 임기웅변에도 능하다. 사색을 즐기며 신앙심이 깊기 때문에 종교나 철학 계통에도 관심이 있다. 남자는 배우자 몰래 다른 여자를 만들기 쉽고, 그로 인해 금전적 손해나 송사를 겪는다. 배우자에게 가권을 넘기고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 여자는 배우자의 건강이나 생이별로 인하여 가정을 꾸려야 하는 여성 가장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무자일주는 쥐의 성질로 밤에 주로 활동하고, 주위의 환경변화에 민감하며 다른 사람과 나의 사생활을 구분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하고 대인관계가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수적이고 빈틈없는 성격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성향이 강하다.우리는 3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가 생각난다. 해안도시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흑사병)’가 점차 도시를 공포로 마비시키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전염병이 번진 상황에서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무력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에서 피를 토하고 죽은 쥐들이 나타난다.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아파트 경비원 노인이 원인 모를 열병으로 사망하자 예전에 사라졌던 페스트임을 확신하고 시에 전염병 확산방지 조치를 강력히 요청한다.시는 상황을 인지 못한 채 허둥대다 도시 전체가 페스트로 퍼진다. 뒤늦게 페스트 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한다, 여행객 장 타루는 자원봉사대를 모집하여 보건대를 만든다. 임시직 공무원 그랑은 타루의 보건대에 참여하여 도운다. 이때 파리에서 취재 온 기자 랑베르는 도시에 갇히게 된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의사 리유가 아내를 요양소로 보내고 페스트에 맞서는 것을 보자 마음을 바꾼다.신문기자 랑베르도 개인적인 안위만을 추구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보건대에 합류한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파늘로 신부는 “페스트는 오랑시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고 설교한다. 기약 없는 도시봉쇄로 시민은 혼란과 공포를 느낀다. 나중에 신부도 전염병 때문에 죽는다. 평소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 와인과 양주를 파는 여행가 코타르는 자기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알고 이 와중에 담배와 술을 밀수하여 큰돈을 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죽음의 공포와 혼돈 속에서도 의사 리유와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받은바 소임을 다하는 성실성을 보여준다. 페스트가 종식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애도한다. 의사 리유는 아내의 죽음에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페스트는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다. 방, 지하실,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운다. 그리하여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내는 날이 분명 올 것이라는 사실을….이라며 소설은 끝난다.소설은 페스트의 확산으로 봉쇄된 도시 안에서 재앙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잔혹한 현실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공동체와 연대하여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일상화되는 가운데 자칫 방심하면 더 큰 재앙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위기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성이 필요한 시기다.

2022-12-21

정해(丁亥)

육십갑자 중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해(丁亥)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이고,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 정화와 해수는 모두 음의 기운으로 정적(靜的)이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정관(正官)의 바른 기운을 받아 기본적으로 착실하고 침착하다. 일처리도 정도로 잘하며,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타입이다. 단점으로는 추진력과 저돌성이 부족한 편이다. 간혹 변덕을 부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한다. 정관이 있어 남녀 모두 이성과 배우자 덕이 있다. 결혼운수가 적당하고 좋으며,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정화(丁火)는 물상으로 달, 촛불, 별이다. 해수(亥水)는 시간적으로 밤 9시30분에서 11시30분이다. 계절적으로 초겨울에 해당한다. 마치 달이 강가에 떠있고,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풍경을 연상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蘇軾·1036년~1101년)가 신종5년(1082년) 귀양을 가서 10월에 쓴 ‘후적벽부(後赤壁賦)’는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이다. “객이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이 있어도 안주 없네, 달은 밝고 바람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이 있겠소” 라고 했다. 그가 당한 파직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유배지에서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 시인 박영희(1901~?)는 일제 치하에서 아무런 희망이나 기쁨의 일면도 찾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을 발표했다. 그 시의 한 구절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 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우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야/ 달빛으로, 쉬지 않고, 짜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비인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암울했던 당시 시인은 어둠을 밝혀 주고, 우리가 아름답게 보았던 ‘달’조차도 출구가 없는 방에 스며드는 달빛으로 병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물과 대상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시대 상황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표현된다.정화(丁火)는 따뜻한 불에 해당하며, 은근하고 기분 좋은 명랑함을 전하며, 해수(亥水)는 물상으로 돼지를 의미하며, 온순하고 무엇이든 잘 모아둔다. 물의 총명함과 에로스 성향도 있으나, 평소에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 정해일주 여자는 자태가 아름답고 명예를 중시한다. 남자는 신사의 풍모에 매력 있는 얼굴을 지닌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천을귀인(天乙貴人·하늘의 은덕을 받는 길신)이 있다. 그 영향으로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살아가는데 큰 고초를 겪지 않고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이룬다. 또한 매우 곧은 성품으로 선비와 같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사특함이 없어 관직에 어울리는 기운이다. 성품이 맑고 고결하게 태어난다고 해서 ‘일귀(日貴)’라고도 부른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천을귀인의 은덕을 받으면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20세기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어릴 때 의붓오빠의 성추행으로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영국 빅토리아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는 글을 썼다. 여성으로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기법을 개척하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이 있다.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모두 일 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표현했다. 이 같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꿈이 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버지니아 울프의 성공 뒤에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을귀인 같은 레너드 울프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오빠 토비의 친구들 가운데 레너드 울프를 22살에 처음 만났다. 30살 때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레너드 울프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부부생활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나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그녀의 지성에 반한 바가 더 컸다. 마침내 그녀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부터 창작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가 전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의 간호를 맡은 후 25년간 이전과 같은 극심한 신경증의 발작은 없었다.그 시절, 그들의 결혼은 남자가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직업적 기반을 포기한 흔치 않은 경우다. 레너드 울프가 아내의 신경쇠약에 기분전환을 위하여 인쇄기를 사서 호가스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었다. 1925년 5월에 ‘델러웨이 부인’ 초판본이 나왔으며, 책의 표지는 언니 바네사 벨이 디자인했다.결국 정신질환이 악화되자 1941년 3월 28일 버지니아 울프는 우즈강으로 갔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남편에게 밝히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혼 후 30년 동안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홀로 남겨진 레너드 울프의 심정을 이해했을까 궁금하다.남편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에 가려져 잊혀간 인물이 되었다. 나머지 생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자식도 없이 홀아비가 된 그 후의 삶과 죽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람은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터럭만큼이나 가벼운 죽음이 있다. 그것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다’ 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2022-12-14

병술(丙戌)

육십갑자 중 스물세 번째에 해당하는 병술(丙戌)이다. 천간(天干)은 병화(丙火), 지지(地支)는 술토(戌土)다. 병화와 술토는 모두 양의 기운이다. 병화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정열적이다. 화생토(火生土)로 흙을 생해준다. 술토는 화기를 내장한 폭발성과 살기 성분을 지니고 있다. 동물로는 개다.병술일주(丙戌日柱)의 물상은 ‘화로(火爐)의 상(象)’ 또는 ‘태양 아래에서 집을 지키는 개의 상’이다. 책임감이 매우 강하며, 온화하고 부지런하며,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성격이다. 집념이 강하고 무슨 일이든 빨리 처리하는 타입이다.활달한 언변을 가지고 있으며, 의협심이 강해서 희생도 불사하는 성질도 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백호살을 가지고 있어 고집이 남다르다.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단점이 있다. 욱하는 성질과 살기를 가졌기 때문에 화를 잘 내는 습성이 있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감정 표출이 선명하여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가 돌아서면 풀어지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4년∼AD65년)는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저서 ‘화에 대하여’는 화를 잘 내는 그의 동생 노바투스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서간집이다. 세네카는 ‘화’를 다른 그 어떤 격정보다 특별히 비천하고 광포한 악덕이자 일시적인 광기라고 정의한다. ‘화’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대의 악덕이다. 화는 그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 바람처럼 공허하다. 화는 너무나 무모하고 성급해서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가 스스로 방해물이 된다. 그 결과 화는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화는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제 발로 그것을 찾아가는 때가 더 많다. 우리가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에서 화를 없애고 그것을 최대한 제어하고 그 맹습을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 세네카는 화가 났을 때 우리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화를 폭발시키는 순간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나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 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으며 화를 내며 시간을 보내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병술일주(丙戌日柱)는 재고귀인(財庫貴人)을 가진 사주다. 지지에 재성(財星)의 창고를 두어 재물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길신이다. 돈을 모으는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 부모 덕이 없고 자수성가해야 하는 기질이 강하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자신의 결점을 고쳐나가면 나이가 들수록 유복해지는 삶을 누릴 수 있다.여성의 경우는 재고귀인으로 돈은 많을 수 있지만, 남편의 덕이 없고 고독하고 속으로 우울한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다. 마치 서산에 해가 기운 형태다. 겉은 화려하고 명랑하지만 속은 외롭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으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이후 새로운 자본 형성과 더불어 혈통에 따른 기존의 가치는 무너지고 돈과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사회계급이 형성됐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1799∼1850)의 작품 ‘외제니 그랑데’는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의 전형인 그랑데 영감과 그의 딸 외제니에 관한 이야기다.그랑데 영감은 자신이 가진 현금과 아내의 지참금을 가지고 루아르 강변 포도주 생산지 중 하나인 소뮈르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한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자기의 상속녀가 될 딸 외제니를 이용해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작의 영지를 매입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시대를 잘 알고 투자도 잘하는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외제니는 파리에서 온 사촌오빠 샤를을 보고 첫눈에 마음속으로 영원한 사랑을 바친다. 샤를은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떠난다. 그때 외제니는 아버지가 준 금화를 모두 그에게 줬다. 7년 후 이재에 밝은 냉혈한으로 변모해 백작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외제니에게 이해를 얻으려는 기만적 편지를 보낸다. 왕정복고시대 사회지배층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그 시대 청년의 고백이기도 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즈음 그랑데 영감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앞에서 그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금화를 보며 ‘황금은 나를 따뜻하게 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외제니는 자신이 엄청난 재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렇다면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외제니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그녀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많은 연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랑데 영감이 살던 방식 그대로 살았다. 그렇지만 외제니는 아버지가 모은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면서 살아간다.발자크 소설에서 주된 주제는 돈이다. ‘돈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오고 가고 땀 흘리면서 스스로 생산한다’라고 말한다. 그 당시 러시아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발자크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였다. 발자크의 인기가 그에게 큰돈을 벌게 해주리라고 기대했지만 수입은 좋지 않았다.도스토예프스키는 23세가 되는 1844년 10월에 군에서 소위로 제대한다. 큰돈을 벌기 위해 전업작가로 나섰다. 다음 해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자 혜성처럼 문단의 총아가 된다. 그는 “돈은 주조된 자유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랑과 용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2022-12-07

을유(乙酉)

육십갑자 중 스물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유(乙酉)다. 천간(天干)은 을목(乙木)이고, 지지(地支)는 유금(酉金)이다. 을목과 유금은 음 기운이다. 을목은 연약한 나무나 담쟁이넝쿨, 꽃 등으로 여성적이다. 유금은 금(金)의 결정체로서 단단함을 가진다. 동물로는 닭이다.을유일주(乙酉日柱)는 겉모습이 화초다. 여린 나무라 부드럽지만, 속은 유금의 속성으로 날카로운 칼의 형상이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한 외유내강한 사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과는 타협을 싫어한다. 어떤 위기에서도 풍파를 이기고 나온 화초같이 노련한 지혜와 고집이 있다.을유일주는 단단한 바위 사이에 핀 화초, 담장을 타고 자라는 능소화로 비유된다. 남을 의식하여 좋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출세 지향적이며, 우아하고 단아하다.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흔들린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성실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문집 ‘유목편’에 나오는 시다.“꽃나무 능소화는 곱기도 하여도 고상하다고는 못하네/ 옆에선 나무를 타고, 넝쿨 넝쿨 백 자나 뻗어 나가며 발부리 돋아 내어 나무줄기에 붙이고, 나뭇가지 끝마다 꽃을 피우네/ 스스로 꿋꿋함을 뽐내며 태풍인들 나를 흔들까 으스대지만/ 어느 날 아침 의지하던 나무가 쓰러지고 나니/ 홀로 서있는 것이 어느새 깃발처럼 나부끼네/ 문득 동풍이 불어 닥치니 아침밥 먹기도 전에 부러지누나/ 해 뜰 때 구름 같던 꽃들이 해도 지기 전에 쓰러져 땔나무로 되는구나.”스스로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맥없이 쓰러지는 저 꽃나무를 배우지 말아야 한다. 남의 세력을 등에 업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결정된다.환경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날카롭고 끈질긴 성격으로 공과 사는 분명하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은 높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겨울에 꽃피는 인동초 같은 끈질김도 있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이 도화(桃花)를 뜻하는 글자이기에 감각적인 면이 뛰어나서 연예계나 예술계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동물로는 닭이다. 닭 벼슬처럼 남녀 모두 고고한 이미지나 유려한 모습이 있는 분들이 많다. 남자는 부드럽고 지적인 얼굴에 날카롭고 차가워 보인다. 여자는 화분에 심은 꽃처럼 아름답고 치장을 잘한다. 특히 평균 이상의 미인이 많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안에 경금(庚金)과 신금(辛金)이 차가운 칼을 가지고 있는 형상이기에 냉정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운 사람으로 변한다. 특히 원수가 되면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마는 기질이 있다. 가급적 원한을 살 일이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의 경우는 질곡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프랑스 작가 에밀졸라(1840~1902년)의 소설 ‘목로주점’은 성실하고 착했던 여성 제르베즈의 삶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숙명적으로 철저하게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절름발이이지만 착하고 예쁜 제르베즈는 가족과 함께 파리에 정착한다. 그러나 씀씀이가 헤프고 바람둥이인 남편 랑치에는 제르베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쳐 버린다. 그녀는 불행을 딛고 세탁소의 점원이 되어 열심히 살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다.이때 기와장이 쿠포의 거듭된 청혼에 그녀는 재혼을 하게 되고, 일시적이나마 안정과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쿠포가 작업 중 추락사고를 겪으면서 다시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사고 이후 불쑥 나타난 전남편 랑치에가 한집에서 기숙하게 되고, 그녀의 몰락은 가속된다. 제르베즈는 세탁소를 처분하고 남의 집 세탁부로 나선다. 이 와중에 딸 나나도 가출과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쿠포도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제르베즈도 역시 알코올 중독과 정신이상으로 죽고 만다.19세기 자연주의는 인간의 삶이란 개인의 노력과 구상과 결심에 의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과 유전적 소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서는 계용묵(1904∼1961)의 소설 ‘백치 아다다’가 좋은 예다. 아다다는 백치, 벙어리에다가 소박데기다. 노총각 수롱이는 사고무친에다 가난뱅이였다. 볼품없는 외모, 제 깜냥 갖고는 평생 장가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죽을 판에 아다다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녀가 비록 불구였지만 부지런하고 순진해서 수족처럼 움직여주니 더 바랄 데 없다. 거기에다 명색이 김초시의 딸 아닌가. 류대창 명리연구자 둘은 신미도라는 섬 마을로 도망쳐 살림을 차린다. 수롱이가 아다다에게 뭉칫돈을 꺼내면서 밭을 사서 둘이 열심히 농사지으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신이 났다. 하지만 아다다는 깊은 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첫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이 생각난 것이다. 싸들고 간 지참금 덕에 한 밑천 잡게 되자. 번듯한 여자를 들여놓고서는 아다다를 소박을 놓아버렸다.수롱이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뭉칫돈을 꺼내어 바다로 가서 흩뿌려 버린다. 그러자 수롱이는 아다다를 개 패듯이 팬 다음 바다에 던져버린다. 결국 돈 없이 가난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아다다의 희망은 파도에 묻혀 버렸다.유전과 환경이 삶의 고비와 곡절을 온통 지배한다는 생각은 그 시대의 편견인 듯 여겨진다. 사람은 물건처럼 단순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신체결함을 지닌 채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에도 충실함과 소박함, 수고로움이 녹아있다. 경제개발 과정을 통해 성취한 부와 안락한 생활을 위해 숱한 아다다를 바다에 던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새기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 본다.

2022-11-23

갑신(甲申)

육십갑자 중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갑신(甲申)이다. 천간(天干)은 갑목(甲木)이고, 지지(地支)는 신금(申金)이다. 갑목은 양기를 가진 큰 나무요, 신금은 동물로는 원숭이다. 물상으로는 커다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다.갑신일주(甲申日柱)는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망이 있으며, 자존심이 세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하여 자기를 소진하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다재다능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원숭이처럼 재능이 무궁무진하나 집안에만 있기는 어렵고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한다. 체면을 중요시하며, 품위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돈을 모으기는 힘이 든다.중국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임금인 장공이 사냥을 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떤 곤충 한 마리가 조그만 발을 쳐든 채 장공이 타고 가는 수레의 바퀴를 향하여 덤벼들고 있었다. 장공이 마부에게 “저것이 무슨 곤충이냐”라고 물었다. 마부는 “사마귀라고 부르는 곤충입니다. 저놈들은 앞으로만 나갈 줄 알지, 뒤로 물러날 줄 모릅니다. 저놈들은 자기 능력만 생각하고, 겁도 없이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는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장공은 “저놈이 사람이라면 아주 용감한 용사가 될 텐데….”라고 말하고는 말머리를 돌려서 그 사마귀를 피해갔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그 일을 듣고 자신들도 그와 같은 자세로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회남자 ‘인간훈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용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덕이다. 지나친 용기는 화를 자초하는 수가 있다. 일명 망신살이 끼었다고 한다.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사람은 과감하고 성급하며 노출이나 언행에 실수가 많다. 갑작스러운 일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일에 망신을 당한다. 특히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망신당할 일이 없다.갑신일주 특징은 꿋꿋하고 강직하여 굽힐 줄 모르며 모난 것 같으면서도 모나지 않는다. 단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기에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천성은 인정과 의리에 치중하다 보니 좋을 땐 한없이 좋으나, 자기의 체면이나 체통을 손상시키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는 급한 성격이기도 하여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갑신일주를 바위 위에 있는 소나무로 비유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만큼 인내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인생에 굴곡이 많은 편이 단점이다. 인생의 고난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그 고난을 이겨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가을 산행을 할 때 절벽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석선 선생의 시 ‘바위 위의 소나무’의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바위 위의 소나무야/ 외로운 한 그루 소나무야/ 너는 사철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 흙이 있어 먹겠느냐/ 물이 있어 마시겠느냐/ 흙도 물도 없으니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시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소나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무는 근심 걱정 없이 그냥 존재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존재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했다.그리고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의 존재요. 그 길 끝에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비극적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흔히 평균화된 익명의 존재로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이 삶의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라고 말한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근심의 신, 쿠라가 흙을 가지고 놀다가 이상한 형상 하나를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 쿠라는 그 모양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마침, 영혼의 신 제우스가 지나가고 있어서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숨결을 훅 불어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흙덩이 즉, 사람이 되었다.그러나 세 명의 신이 각각 그게 자기 것이라고 고집했다. 먼저, 흙의 신, 호무스가 내 몸으로 만들어냈으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쿠라는 자신이 만들어냈으니 내 것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제우스는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그 주인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우겨댔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심판의 신, 사튀른에게 가서 판결을 부탁하였다. 한참 숙고하던 심판의 신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때 가서 몸은 호무스에게서 온 것이므로 호무스가 가지고, 영혼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니 제우스가 가져라.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만들어낸 쿠라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근심의 신 쿠라에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과 염려 속에 허덕이게 되고, 그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인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임을 알 때 비로소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을 말한다. 곧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미래를 기획하는 존재가 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예기치 못한 재난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고 불안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쿠라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듯이 나 역시 타인에게는 타자가 되는 것이다. 타자란 사회 안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된다. 타자를 서로 돌보아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우리의 마음씀 즉, 배려와 사랑이다.

2022-11-09

계미(癸未)

육십갑자 중 20번째에 해당하는 계미(癸未)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고, 지지(地支)는 미토(未土)다. 천간 계수(癸水)는 음수(陰水)로서 생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물이다. 만물을 자양하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미토(未土)는 음토(陰土)이며, 동물은 양(羊)이다.계미일주는 음(陰)의 기운이다. 첫 인상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산길 옆 오솔길에 조용히 흘러내리는 시냇물 또는 옹달샘을 연상하게 한다. 자칫 소극적인 사람이 될 우려가 있고, 지혜롭지만 남자다움이 부족한 것이 흠이 될 수가 있다. 수동적이고 조용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평소에 자기표현을 많이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본적으로는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인 면에서 타고난 능력도 남들보다는 훨씬 크다. 자기영역, 자기 울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사주에 양, 미(未)가 있으면 부모님께서 어디에 기도해서 낳은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 뱀, 사(巳) 기운 못지않게 4차원 세계와 아주 인연이 깊다. 그러므로 영적인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예술적이기도 하고 재능이 많은 편이다.계미일주는 겉은 부들부들하고 유연하지만, 내면은 기운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널리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된다. 희생정신은 숭고한 것이다. 희생이란 타고난 재능이며 능력이다. 그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푼다면 무슨 원망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계수(癸水)는 깊은 산속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차고 깨끗하다. 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성분의 물이다. 물에도 급수에 따라 사는 물고기가 있다. 1급수에는 버들치, 열목어. 2급수에는 쉬리, 피라미, 은어. 3급수에는 붕어, 잉어, 메기. 4급수에는 거머리가 산다. 2급수까지는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안에는 ‘미치는 샘’이라는 곳이 있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 샘물을 마셨기 때문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임금만은 따로 샘을 파서 물을 마셨으므로 제 정신이었다. 미친 사람들이 볼 때 제 정신인 임금만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임금을 붙잡아 앉히고는 진찰을 하고, 쑥으로 뜸을 뜨고, 은침으로 침을 놓고, 억지로 약을 마시게 하였지만 어느 한 가지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임금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하다가 마침 그 샘에 이르게 되어서 그 물을 마셨다. 마침내 임금도 미치게 되었다.그 나라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똑같이 미쳐 버렸다. 그제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했다. 공동체를 위해 맹목적으로 모두 같아야 한다는 논리는 자칫 전체주의로 갈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는 자유가 보장된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계미일주는 한여름의 뜨겁고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물상이다. 미(未)는 아닐 미(未), 아직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미토(未土)는 느리고, 막중한 임무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함을 가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느리다. 미토는 여름을 마무리해서 가을의 결실로 넘겨주는 역할 때문에 신중하고 느린 것이다. 그것이 흙토(土)의 역할이다. 진토(辰土), 축토(丑土). 술토(戌土)도 동일하다.체코의 작가 밀란 쿤테라는 1994년에 발표한 소설 ‘느림’에서 “느림과 기억,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은밀한 관계가 있다.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문득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방금 어떤 괴로운 경험을 한 자는 이를 잊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고 말했다.서두르지 않는 용기, 바쁘지 않은 아량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문장도 있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에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이 대목은 소설 속 주인공이 시골 성(城)으로 가는 도중에 그의 차를 추월하려고 조바심을 부리며 뒤따라오는 자동차 모습을 생각하는 부분이다.“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뛰면서 생기는 미묘한 신체적 변화와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여기에서는 질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뛰어가는 사람이 대조를 이루며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인간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의 차이점이며, 기술혁명이 변화시키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작가가 따뜻한 시선을 보이는 쪽은 인간의 속도다.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하는 속도, 그래서 그 신체적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계를 즐길 줄 아는 인간의 속도다.밀란 쿤테라는 1968년 소비에트 침공으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참여하였다. 1975년에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핵을 머리에 인 채 살아가고 있다. 자유와 행복한 삶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못살던 나라에서 명실공히 열강의 반열에 들어간 세계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 빠른 성장이 유독 한국에만 가능케 된 이유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때문이다. 빠름에 따른 풍요로움과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이제는 빠른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찾을 때이다.

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