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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등록일 2022-12-14 18:33 게재일 2022-12-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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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作 ‘밤의 정적’

육십갑자 중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해(丁亥)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이고,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 정화와 해수는 모두 음의 기운으로 정적(靜的)이다.

정해일주(丁亥日柱)는 정관(正官)의 바른 기운을 받아 기본적으로 착실하고 침착하다. 일처리도 정도로 잘하며,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타입이다. 단점으로는 추진력과 저돌성이 부족한 편이다. 간혹 변덕을 부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한다. 정관이 있어 남녀 모두 이성과 배우자 덕이 있다. 결혼운수가 적당하고 좋으며,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정화(丁火)는 물상으로 달, 촛불, 별이다. 해수(亥水)는 시간적으로 밤 9시30분에서 11시30분이다. 계절적으로 초겨울에 해당한다. 마치 달이 강가에 떠있고,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풍경을 연상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蘇軾·1036년~1101년)가 신종5년(1082년) 귀양을 가서 10월에 쓴 ‘후적벽부(後赤壁賦)’는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이다. “객이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이 있어도 안주 없네, 달은 밝고 바람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이 있겠소” 라고 했다. 그가 당한 파직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유배지에서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시인 박영희(1901~?)는 일제 치하에서 아무런 희망이나 기쁨의 일면도 찾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을 발표했다. 그 시의 한 구절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 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우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야/ 달빛으로, 쉬지 않고, 짜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비인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암울했던 당시 시인은 어둠을 밝혀 주고, 우리가 아름답게 보았던 ‘달’조차도 출구가 없는 방에 스며드는 달빛으로 병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물과 대상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시대 상황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표현된다.

정화(丁火)는 따뜻한 불에 해당하며, 은근하고 기분 좋은 명랑함을 전하며, 해수(亥水)는 물상으로 돼지를 의미하며, 온순하고 무엇이든 잘 모아둔다. 물의 총명함과 에로스 성향도 있으나, 평소에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 정해일주 여자는 자태가 아름답고 명예를 중시한다. 남자는 신사의 풍모에 매력 있는 얼굴을 지닌다.

정해일주(丁亥日柱)는 천을귀인(天乙貴人·하늘의 은덕을 받는 길신)이 있다. 그 영향으로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살아가는데 큰 고초를 겪지 않고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이룬다. 또한 매우 곧은 성품으로 선비와 같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사특함이 없어 관직에 어울리는 기운이다. 성품이 맑고 고결하게 태어난다고 해서 ‘일귀(日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천을귀인의 은덕을 받으면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어릴 때 의붓오빠의 성추행으로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영국 빅토리아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는 글을 썼다. 여성으로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기법을 개척하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모두 일 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표현했다. 이 같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꿈이 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성공 뒤에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을귀인 같은 레너드 울프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오빠 토비의 친구들 가운데 레너드 울프를 22살에 처음 만났다. 30살 때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레너드 울프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부부생활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나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그녀의 지성에 반한 바가 더 컸다. 마침내 그녀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부터 창작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가 전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의 간호를 맡은 후 25년간 이전과 같은 극심한 신경증의 발작은 없었다.

그 시절, 그들의 결혼은 남자가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직업적 기반을 포기한 흔치 않은 경우다. 레너드 울프가 아내의 신경쇠약에 기분전환을 위하여 인쇄기를 사서 호가스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었다. 1925년 5월에 ‘델러웨이 부인’ 초판본이 나왔으며, 책의 표지는 언니 바네사 벨이 디자인했다.

결국 정신질환이 악화되자 1941년 3월 28일 버지니아 울프는 우즈강으로 갔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남편에게 밝히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혼 후 30년 동안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홀로 남겨진 레너드 울프의 심정을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남편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에 가려져 잊혀간 인물이 되었다. 나머지 생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자식도 없이 홀아비가 된 그 후의 삶과 죽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람은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터럭만큼이나 가벼운 죽음이 있다. 그것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다’ 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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