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서른일곱 번째는 경자(庚子)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단단한 바위며 가공되지 않는 원석이다.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산속의 계곡물처럼 차고 깨끗하다. 동물로는 흰쥐다.
경자일주는 큰 바위 밑의 쥐의 형상으로 혼자 은둔하며, 무슨 일을 하든 몰두하는 습성으로 고독수가 있다. 성격은 바위처럼 단단하며 주관이 있고 의리가 있다. 스스로 은둔하는 습성으로 남의 간섭이나 참견을 싫어하고 자존심은 세다. 타인과는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지만 믿음이 생기면 쉽게 배신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특히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수재형이다.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한 말을 굉장히 잘해 화술이 뛰어나다. 암반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그렇지만 성격은 차갑고 냉혹한 면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여리고 잔정이 많다. 결벽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경자일주 여자는 아름답고 총명하여 남자를 보는 눈이 높다. 부족한 배우자를 만나면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성향이 있다. 본능적으로 남편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여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남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자를 만나기 쉽고, 여자를 다정하게 대하지만 외도로 인해 악처로 만들 수 있으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녀 모두 미남 미녀로 이성에 관심이 많다.
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 ‘월야밀회’가 있다.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저녁에 골목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다. 세 남녀의 복잡한 심리묘사에서 드러나듯 삼각관계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던 사람들은 대개 각 영문의 군교나 무예청의 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이다. 불륜의 시작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마지막은 늘 추하게 끝이 난다.
경자일주는 쥐 중에서도 힘이 강한 흰쥐를 상징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주변의 갈등으로 스스로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깊이 숨기는 사람이 많다. 마치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피할 때 ‘너 쥐새끼처럼 어딜 도망가’라는 말을 듣는 거나 같다. 많고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처럼 말이다. 해저 깊은 곳의 보물선을 찾기만 하면 대박인데.
우리나라 1940~50년대는 여성 이름으로 경자, 영자, 순자, 말자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소설가 조선작(84)은 1973년에 ‘영자의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60~70년대 최하층민의 생활에 대한 애증과 관심 그리고 산업화에 다른 부작용을 작품화했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변두리로 떠도는 남녀의 사랑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영식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식모 영자를 만난다. 입영영장이 나와 헤어지고 월남전에도 참전한다. 제대 후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서 영자를 찾던 중 우연히 윤락촌에서 만났다. 영자는 버스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인해 외팔이가 되었다. 그것을 안 영식은 의수를 만들어 준다.
원피스 속에 적당히 감추어진 의수를 달고 영자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창녀로서 영자에게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은 윤락촌에서 화재로 죽는다. 영화로 개봉되어 성공을 했고,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걸로 끝이 난다.
1970년대의 도시의 하층민 여성들은 구체적으로 식모, 여공, 버스차장, 호스티스, 창녀 등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들은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들이었고,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타자였다. 대체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윤락행위는 최하층민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제성장으로 향락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이 와중에‘호스티스’라는 신조어가 창출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표면적으로 퇴폐풍조의 일소나 풍기정화를 표방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부패한 성윤리가 고스란히 노출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시대 상황으로 예부터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린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자년에 보리농사가 큰 흉년이 들어 어려운 시기였던 모양이다. 흉년은 이때 말고 여러 번 있었을 텐데 하필 경자년일까. 그 당시 경제 사정이 몹시 힘들었던 의미가 아닐까. 어떤 좋은 기운이 생겨도 마무리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세상 일을 도모하고 만들어주는 것은 하늘이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늘 탓 만 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경자일주는 하늘이 아무리 경을 친다고 해도 그것을 잘 피해가는 것이 바로 ‘쥐의 현명함’이다. 생활이 무탈하고 미래에 다가올 인연들을 특히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잘 성사되기를 힘써야한다. 자기 일에 충실하여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남편 아들로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고통만이 존재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 쾌락만 넘쳐흐른다면 어느 사이엔가 쾌락에 무감각해진다. 그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랑하는 것이다. 평원을 지나 험준한 산길을 수없이 넘어야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거치고 계곡물에 발을 적시고 차가운 별빛 아래를 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할 것이며, 많은 것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뿐이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