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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

등록일 2023-05-31 18:09 게재일 2023-06-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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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作 ‘will’

2023년은 육십갑자 중 마흔 번째에 해당하는 계묘(癸卯)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로, 비 또는 시냇물이다. 지지(地支) 묘목(卯木)은 어린 나무이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로는 검은 토끼다.

계묘일주(癸卯日柱)는 천간과 지지가 음(陰)이다. 연약한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남성적인 면모가 부족하여 자신감, 독립심, 투쟁심이 약하며 소심하고 겁이 많다. 자신의 신념에 애착이 강하여 특정 부분에 고집이나 자부심이 강하다. 무시나 간섭을 받으면 잘 삐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계묘일주의 계수(癸水)는 봄비를 말하고, 묘목(卯木)은 봄의 계절에 어린나무다.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작은 나무나 화초의 모습이다. 계묘(癸卯) 글자 모양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며, 화초의 모습처럼 날씬하여 미남과 미녀가 많고 살찐 사람은 드물다. 물속에서 핀 연꽃같이 기품이 있고, 도도한 외모와 말솜씨가 뛰어나다.

일지(日支) 묘목은 도화(桃花)와 천을귀인이 있어 자기 자신을 잘 가꾸고 뽐내며, 나르시시즘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문창귀인(文昌貴人)도 있어 학문적인 습득이 좋으며, 지식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술분야와도 잘 맞아 전문성이 있는 창작과 기획에 재능이 있다. 계묘는 배우자 자리에 천을귀인이 있어 배우자 복이 많다. 비를 맞고 있는 어린 화초의 물상으로 남녀 모두 예쁘고 잘생겼다. 이성에게 인기가 좋아 이성문제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그와 같은 사례로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로맨스가 있다.

사마상여(기원전 179∼117)는 중국 한나라 때 문장가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 그는 고을의 부자 탁왕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17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는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그의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 야반도주를 한다.

어이없는 애정의 도피행각에 화가 난 탁왕손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딸을 멀리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네 벽밖에 없던’ 가난한 처지의 사마상여인지라 탁문군은 말과 수레 따위를 처분해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뒤 탁왕손은 집안사람들의 설득으로 딸에게 재산을 주었고, 두 사람은 고생을 멀리하고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자허부’에 매료된 한 무제가 사마상여를 불러들여 마침내 자신의 문장으로 벼슬을 얻게 되었다.

무제의 발탁으로 형편이 나아지자 사마상여가 첩을 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탁문군은 ‘백두음’을 지어 보내 남편의 마음을 되돌렸다. 누군가 사마상여가 뇌물을 받았다고 밀고하자 그는 벼슬에서 과감히 물러났다. 병을 핑계로 나라 일에는 관여치 않고 한가롭게 지냈다. 벼슬에 목매지 않았고, 아내가 과부라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술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도 나르고 술잔도 기꺼이 닦았다. 아내 탁문군은 글재주가 뛰어났기도 했지만, 격식이나 제도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자립정신을 가졌다. 이천년 전의 여성으로서는 대단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이었다. 가도벽립(家徒壁立·집안에 세간은 하나도 없고, 사면에 벽만 둘러 있어 매우 가난하다는 말)은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이야기에 나온 고사성어다.

계묘일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성격이 밝고 순수하나 적극성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빈곤하지는 않지만 큰돈을 벌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고 남을 돕거나 베푸는 심성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다. 고흐와 테오 형제는 목사인 아버지를 둔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고흐는 원래 신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병약하며 가난하고 고생하는 자를 위해 사역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실상이 보여주기식 신앙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리자 고흐는 큰 공허함과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형에게 동생 테오는 대신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테오는 언제나 형이 미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는 동생에게 보답하고자 늘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미술중개상 일을 하던 테오는 형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었고, 고흐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충고를 해주었다.

평범한 인간들보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고흐에게는 항상 우울증, 공황장애, 정서불안, 신경증 등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정신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세상과 고립되었다. 결국 형이 37세에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형의 작품으로 회고전을 준비하는 데 열중했던 테오는 형의 뒤를 따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33살 테오가 죽자. 29살의 나이에 과부가 된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게는 한 살이 된 아들만이 남았다. 예술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던 요한나에게 형제가 나눈 편지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온갖 그림까지 그려진 편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며 편지를 수습하며 세상에 알리려고 애썼다.

남편과 고흐가 나눈 668편의 편지를 공개해 형제의 남달랐던 우애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고흐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요한나는 남편 테오의 무덤을 이장해 형 옆에 영원히 함께 있도록 묻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가 없다. 항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빚을 지고 살아간다. 고흐 형제 뒤에는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보이지 않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 덕분에 고흐의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천을귀인 같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고결하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훌륭한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알고, 가까운 것을 통해 먼 곳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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