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한 사진은 아니었다. 멀리서 찍었지만 무척 자연스럽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누군가는 창을 열고 무심코 놀이터를 내려다봤을 것이다. 그리곤 감동에 겨워 스마트폰으로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노부부이다. 놀이터엔 그들 외엔 사람 그림자조차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지금 동심(童心) 놀이 중이시다. 첫 장면은 나란히 그네에 앉는 장면, 두 번째 컷은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탄 그네가 허공에 더 가깝다. 할머니의 무릎 관절이 더 좋거나, 아니면 더 신났음에 틀림없다.다음 사진, 지구 모형처럼 생긴 뱅글이 기구에 바투 붙어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그네를 겨우 벗어난 할아버지는 시소와 뱅글이 사이에서 할머니를 주시한다. 등이 휜,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뒤처진 할아버지에게 어여 오라,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으리라. 마지막 네 번째 컷, 노부부 기어이 뱅글이 놀이기구에 올라 타셨다. 엉거주춤한 자세지만, 다리에 힘을 싣고, 팔에 기를 넣어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유쾌한 시간을 위해 기구를 힘껏 돌렸으리라. 뱅글뱅글 팔순의 동심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인터넷에 올라온 네 컷의 사진을 내 식으로 묘사해보았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해맑은 노부부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동심은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허리 아프고, 무릎 삐걱거려도 그 세계를 한 시도 떠난 적 없다. 산책에 나선 노부부가 서로를 보듬는 매개체로 놀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어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던가. 겸양을 통해 스스로 자제하고, 체면을 빌려 어른인체 해야 하며, 세월의 옷으로 주책을 피해야 했던 것들을 잠시나마 거부하는 그 스릴에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다.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은 언제나 동심이다. 그걸 들키는 게 부끄러운 것도 쑥스러울 일도 아닌데 우리는 감추고 산다. 늙어도 동심임을 제 몸이 기억하건만 사회는 그것에 너그럽지 못하다. 발동하는 동심은 구르고 돌려야 제 맛이거늘!/김살로메(소설가)
201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