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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는 걸까?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8-23 00:24 게재일 2013-08-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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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상대의 목소리나 문자를 기다린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다. 어쩌다 상대가 건네는 한 마디 말에 심장이 오그라든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다. 아니 사랑에 빠져있다.

사랑에도 구별이 있다. 덜 사랑하는 자와 더 사랑하는 자. 사랑에 덜 사랑과 더 사랑이 어디 있냐고? 천만에! 사랑만큼 저울추가 확실히 기울어지는 것도 없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당사자들에게 똑같이 할당되는 것이라면 애초에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입술이 부풀고, 이별 때문에 치통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대상을 객관적·보편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덜 사랑하는 쪽이고, 대상에 주관적·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사랑에 빠진 쪽이다. 덜 사랑하는 쪽은 그 순도가 탁하기 때문에 덜 다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버겁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쪽은 순도 백퍼센트이기 때문에 더 다치고 버겁기만 하다.

사랑의 단상에 관한 롤랑 바르트의 전언을 보자.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덜 사랑하는 사람은 철새이고 사라지는 자이다. 반면 사랑하는 자의 천직은 외곬이자 처분을 기다리는 자이다. 설거지하기 성가셔 싱크대 한쪽에 미뤄둔 프라이팬처럼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신세이다. 언제나 부재중이거나 안개처럼 존재하는 그 덜 사랑하는 존재가 사랑인줄 알고 창을 연 채 반쯤은 얼이 빠진 채 기다리는 것이다. 결코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지만 어쩌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갈망하고 집착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속성인 것을. 찔러대고, 나약했던 그 순간을 겪기 전까지는 투명한 물방울 같은 환상으로 남을 몹쓸 그 사랑!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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