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맥락의 얘기를 사진 기초를 배울 때도 들었다. 한 수강생이 제출한 사진을 선생님은 화면에 띄웠다. 호수 풍경이었다. 드넓은 호수 가운데 오리 한 마리가 노닐고 언덕 주변으로는 화사한 붓꽃이 만개했다. 남은 오리 떼는 물풀에 가려 보일 듯 말듯 했고 그것을 정원 삼아 전원주택이 원경으로 잡힌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그 풍경 중 호수에 떠 있는 오리를 제외하곤 다 버리는 게 낫다고. 사람들은 핵심을 원하지 군더더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고.
무엇을 듣고 싶은가 또는 무엇을 보고 싶은가에 대한 중심점은 하나이다. 이것저것 말하고 이리저리 보여주고 싶은 건 당사자 입장일 뿐이다. 어떻게든지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풍경도 많은 게 내 입장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 다 알아 들을 마음도 없고, 다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지도 않는다. 타자화된 우리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건 언제나 단순한 핵심 그것이다.
글에서 군더더기를 버리는 것이나 사진에서 불필요한 풍경을 버리는 것만큼 삶에서 던적스러움을 버리는 건 어렵다. 단순한 핵심에 이르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훈련을 필요로 한다. 복잡하고 거창하고 요란한 것은 내 안에 깃든 욕망의 실체일 뿐, 타자에게 비치는 그것은 피로와 지루함의 허상일 뿐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쾌한 것 그 중심에 닿으려 하는 건, 그만큼 우리 삶이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