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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과 친구하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8-19 00:20 게재일 2013-08-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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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인간관계의 원활한 소통과 한 대상의 전략적 홍보 수단 등에서도 스토리텔링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적 성과, 특히 소설을 이루는 장치이자 재료로서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되지 않는 소설은 고전적 의미에서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수하거나 의도적으로 스토리텔링을 무시하는 작가가 있어왔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한 때 나는 글쓰기에서 플롯을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았더랬다. 글은 플롯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에 의해서만 글의 흥미나 질이 판가름 난다고 믿었다. 근거 없는 편협의 우물에 갇혀 있었다. 하기야 스토리텔링 자체도 부질없고 소용없다고 여겼다. 오직 쓰는 자의 손가락 의지에 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등장인물의 외적 내적 묘사의 장악력만 있으면 플롯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플롯에 대한 신뢰감이 되살아난다. 단단한 플롯만이 독자를 만든다. 이야기의 뼈대나 구조를 플롯이라 하는데 플롯은 단순한 이야기의 개념을 넘어선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그저 늘어놓는 것이 이야기라면 플롯은 그것에 더해 당위인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힘이나 과정이 녹아 나야 제대로 된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너무 등장인물의 내적 또는 외적 패턴에 의해서만 글을 쓰려고 했다. 이제 자세를 좀 바꿔보고 싶다. 플롯의 대가라 해도 좋을, 작가 딘 쿤츠가 말했다. `플롯이 없는 소설처럼 이 세상에 우스운 것은 없다. 누가 뭐래도 플롯은 소설의 으뜸 조건이다.` 태생적으로 광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라면 플롯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실험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하지만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구태의연하게 보일지라도 기본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쓰라는 내면의 요청이 들린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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