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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빌미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9-04 00:11 게재일 2013-09-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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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배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의 치유 프로그램이 어느 한 쪽만 일방적인 혜택을 보는 경우는 없다. 공감대라는 공통분모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끄는 쪽이나 따르는 쪽이나 서로 배우게 된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재소자들을 상대로 `마음상함`에 관한 주제로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상처의 근원지인 가족과의 마음 상함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상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알래스카에 사는 생면부지의 아저씨와는 상처라는 말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진솔하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 놓는다. 타인의 풍성한(?) 사례에 비해 비교적 다행한(!) 제 상처에 위안을 삼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

안에 있는 그들이나 밖에 있는 우리나 따귀 맞은 영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뜻하지 않게 우리는 유행가 가사의 총 맞은 것처럼 내 영혼에 흠집 나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그때 언제나 눈물짓는 피해자는 나이고, 몹쓸 가해자는 상대방이다.(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이라고, 자신의 잣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상대는 내 영혼을 교란시키고 내 심장을 후벼 판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욱하는 마음에 나도 상대의 뺨을 갈긴다. 순차적으로 쌍방의 영혼에 펑크를 내고 만다.

그 와중에 멋진 결론을 내 주는 한 분이 있다. 모든 상처의 빌미는 스스로에게 있단다. 오랜 수감 생활 동안 생각만 많아졌는데, 모든 것이 부질없고 `나` 아닌 원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단다. 옆 사람이 날 모욕하는 건 내 작은 교만의 턱짓 때문이다. 옆집 아줌마가 내 눈빛을 거절하는 건 오늘아침 그미 발자국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바쁘단 핑계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모든 것의 빌미가 된다는 걸 잊지 마라. 이 편한 통찰에 이르게 되면 마음 상함 때문에 타인을 단죄할 필요가 없다. 그분이 한 말을 받아 적는 이 순간이야말로 `힐링`이란 말이 가장 어울린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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