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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배우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9-05 00:08 게재일 2013-09-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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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가 한 말이다. 무언가를 처음 완성했다는 건 스스로에겐 자부심이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허섭스레기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그 `걸레`가 전혀 쓸모 없는 건 아니다. 퇴고를 거듭하면 고급 비단으로 다시 태어난다. 문제는 걸레조차 만들지 않거나 만든 걸레를 방치하는 거다. 걸레를 낳아 비단으로 변모시키는 에너지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박수를 받을 만한 일도 없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걸레 초고를 썼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절박한 궁핍, 절절한 외로움이 그녀의 초고를 천문학적인 재산으로 바꿔놓았다. 이혼과 육아, 설상가상으로 실업까지 겹쳐왔지만 끝내 초고의 끈을 버리지 않았기에 성공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다. 그들 중엔 헤밍웨이가 말한 걸레를 걸레로만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진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기력과 피곤의 줄타기를 오르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기계적,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생활리듬에 지칠 때 세상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 덕에 큰힘을 얻는다.

하반기 각종 강좌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기소개 시간마다 진진하게 쏟아지던, 사람 냄새 나는 얘기들을 듣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 가을 소식 전하는 바람보다 빨리 서늘한 감동이 가슴팍을 훑고 지나갔다. 늦깎이라 더딘 깨침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 자녀와 자아 계발을 위해 독서 기법을 연구하는 이들, 몸과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 네일 아트에서 심리 상담까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등등 도처에 스승이 포진해 있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편해지고 싶다는 욕구로 스스로를 방치하려던 마음 끝에 다짐이란 줄을 세워본다. `어제를 배우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어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인사말로 시작하던 강좌 센터장님의 말을 살짝 패러디해야겠다. `타인을 배우고 오늘에 적용하면 내일의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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