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이 타인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를 조심하라고 가르친 건 제 안에 더한 그 왈가왈부가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리라. 말하지 않는 약자는 타인의 약점을 몰라서가 아니다.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예의 상 알 뿐이다. 자중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선인들은 가르쳐왔다.
하지만 예의 또는 예절이라는 게 동양적 사고의 틀 안에서는 약자가 강자에게 취하는 복종의 기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공자가 말했다. `다른 이를 존중하면 모욕당할 일이 없다`고. 애초에 그 말은 지위상하와 관계없이 태어난 말일 게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예계에서 선배에게 깍듯이 인사하지 않는 것은 큰일날일이지만 먼저 상대를 발견하고도 선배가 후배에게 곁눈질조차 주지 않는다고 해서 예의에 어긋난다고 흥분하는 사람은 없다. 구석구석 살피면 예절은 언제나 약자 또는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권력 가진 자가 예의 부족 구설에 오른 예는 단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예절은 마음의 진정성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갑의 위치라 해서 진정성과 형식을 표현하지 말란 법은 없다. 옛말에 `인사에 선후 없다`라고 했다. 예절에도 선후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우리의 예절은 언제나 강자 앞에서 표하는 약자의 리액션에 머물고 만다. 그러다 보니 잘 안다는 이유로, 뒤끝 없다는 핑계로 갑은 을에게 폭력적 언사를 일삼는다. 예절에서 인간 동격 개념을 적용하기엔 무리인 세상을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