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소나기라도 퍼부어준다면 바깥 풍광에 시선을 저당 잡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휴식이 된다. 이 집 저 집 떠돌며 과외를 하던 젊은 시절부터 혼자 점심 먹고 혼자 시간 때우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혼자 노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게 쓰려는데, 우연히 내리 연속 지인들의 점심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고 글 길을 틀고야 마는구나. 혼자 먹는 점심도 나쁘지 않지만,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를 찾아준 친구들이 구세주 같았다고.
쏜살같이 달려온 지인들과 카페에 앉아 와플 세트 곁들인 천국표(?) 김밥을 먹는다. 그 와중에도 지인은 작은 유리병 하나를 내놓는 걸 잊지 않는다. 콩잎절임이란다. 도회지로 나온 이후, 처음 먹어본 콩잎절임의 오묘하고 경이로운 맛에 매료된 적이 있었는데 그 추억담을 기억한 지인이 부러 챙겨온 것이다. 섬세한 맘 씀에 괜히 울컥해지는 것이었다.
그 잠깐 동안 `틈` 이란 말을 생각했다. 적당한 거리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우정이다. 계단에 앉은 커플 사이에 놓인 물병,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한 잔, 발 담근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계곡물 소리만큼의 틈을 인정해야 사람 관계는 건강하고 오래 간다.
저 물병만큼의 여유, 저 찻잔만큼의 배려, 저 물소리만큼의 타자화 등이 서로의 것이 될 수 있을 때 모든 관계는 빛난다. 틈을 유보한 채 성급히 내달리거나, 적정 거리를 놓친 채 보채는 모든 만남은 구라거나 신의 영역 둘 중의 하나다. 구라도 신도 원치 않는다. 다만 한 호흡이란 `틈`을 새기고 새길 뿐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