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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냐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8-29 00:18 게재일 2013-08-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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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때 그녀는 집을 나갔다. 없는 살림에다 마마보이인 그녀의 아버지는 피해의식에 절어 있었다. 괜한 자격지심으로, 이웃한 큰집 식구들 앞에서 그녀와 그녀의 엄마를 벌레 취급했다. 생활비를 받지 못한 모녀는 나란히 도벽이 생겼고, 사랑 받지 못한 외로움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중2 소풍날이었다. 보란 듯 그녀의 아버지는 또래의 사촌에게는 소풍 용돈을 쥐어주면서 그녀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집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아니 아버지를 버릴 때가 되었다고.

신작로를 벗어나 보리밭에 퍼질러 앉아 엄마가 싸준 소풍 도시락인 멸치 주먹밥을 눈물로 삼켰다. 학대와 모욕을 덩이 째 주던 아버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푸르게 일렁이는 보리밭이 희망의 날갯짓처럼 다가왔다. 몇 십 년이 흘렀다. 자신과의 설운 약속대로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상처와 맞바꾼 그녀의 승리였다. 전언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진 않지만 여전히 자책 중이라고 했다. 상처의 수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며,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네 잘못이 아냐.`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다. 믿고 의지해야 할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쓰리고 아픈 건 없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상처투성이 천재 윌에게 숀 교수가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한 사람의 특별한 행동 그 이면을 가슴으로 이해한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심연의 말이다. 눈빛을 맞추고 목소리 톤을 조절해가며 열 번 이상 진심을 다해 말한다.

가족은 환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다. 어떻게 천륜인 아버지를 배반할 수 있냐는 꼰대 같은 발언보다 그녀가 매도당할 만큼 잘못한 게 없다고 변호하는 쪽에 손을 들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족이 주는 상처 때문에 힘겨워 하는 모든 이에게 오늘 저녁 건네고픈 치유의 말은`네 잘못이 아냐.`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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