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를 벗어나 보리밭에 퍼질러 앉아 엄마가 싸준 소풍 도시락인 멸치 주먹밥을 눈물로 삼켰다. 학대와 모욕을 덩이 째 주던 아버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푸르게 일렁이는 보리밭이 희망의 날갯짓처럼 다가왔다. 몇 십 년이 흘렀다. 자신과의 설운 약속대로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상처와 맞바꾼 그녀의 승리였다. 전언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진 않지만 여전히 자책 중이라고 했다. 상처의 수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며,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네 잘못이 아냐.`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다. 믿고 의지해야 할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쓰리고 아픈 건 없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상처투성이 천재 윌에게 숀 교수가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한 사람의 특별한 행동 그 이면을 가슴으로 이해한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심연의 말이다. 눈빛을 맞추고 목소리 톤을 조절해가며 열 번 이상 진심을 다해 말한다.
가족은 환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다. 어떻게 천륜인 아버지를 배반할 수 있냐는 꼰대 같은 발언보다 그녀가 매도당할 만큼 잘못한 게 없다고 변호하는 쪽에 손을 들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족이 주는 상처 때문에 힘겨워 하는 모든 이에게 오늘 저녁 건네고픈 치유의 말은`네 잘못이 아냐.`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