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테면 내가 아들에게 하는 레퍼토리는 이런 거다. `어학이 기본이다. 딴 건 몰라도 어학 공부는 게을리하지 마라. 이 글로벌한 세상에서 어학이야말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또한 확실한 관심 분야를 개척하고,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았으면 좋겠다. 현대의 중산층 개념이 뭔지 아나? 아파트 평수도, 명품 가방 살 수 있는 능력도 아니다. 그런 건 경제적 측면에서 본 것이고, 요즘은 문화적 잣대로 중산층을 가늠한다. 그러니 정신적 중산층이 되고 싶으면 자기계발에 신경 써라.`
아들 기준에 의하면 엄마가 이런 말을 두 번, 어쩌면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 걱정을 한다. 그 걱정의 다양한 버전이 보통의 자식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린다. 그 시절 나 역시 그랬으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인가. 부모는 말하고 자식은 거부하고, 엄마는 한두 번밖에 말한 기억이 없는데 자식은 여러 번 들은 것 같은 게 잔소리의 속성이다.
가만 보면 훈육 또는 길잡이라는 형식의 모든 군소리는 부질없는 것 같다. 물이 자정작용 하면서 흐르듯 인간 성장에도 그 법칙이 적용된다. 부모의 잔소리와 무관하게 아이들은 크면서 스스로 깨닫는다. 시기의 늦고 빠름에 차이가 있을 뿐, 본인의 인생행로에서 어느 정도 자정능력을 발휘한다. 부모 스스로도 그리해왔다. 다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의 시간과 횟수를 자식에게만큼은 줄여주고픈 맘에 잔소리를 하게 된다. 부모의 모든 옳은 소리는 아이들에겐 잔소리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모자식 간 천형이자 선물인 잔소리!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