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8-13 00:08 게재일 2013-08-13 19면
스크랩버튼
소설은 문장이고, 번역도 창작이다. 평소 소설에 대한 내 지론이다. 좋은 소설은 좋은 문장으로 이뤄져있다. 외국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외국 소설이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되려면 제대로 된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롤리타`를 만났을 때 국내 유수 출판사 두 곳의 것을 비교하면서 읽은 적이 있다. 두 작품 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발랄하고 좀 더 입체적이고 좀 더 비문을 덜 생산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섬세한 부분까지 독자를 배려하는 편집자와 번역자의 노력에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재미삼아 본문의 첫 문장만 두 출판사 것으로 비교해본다. 하나는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이고, 다른 하나는`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다. 내 취향으로는 전자 것이 훨씬 섬세하게 다가온다. 시적인 원문이 후자의 번역에서는 풀어지고 삐걱대는 데 비해, 전자의 것은 섬세한 대구 구조에까지 신경을 썼다. 설사 원문에서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짧은 문구 하나에서도 문체 미학까지 염두에 둔 번역을 높이 사고 싶었다. 번역 문장 하나가 무에 그리 중요하나 싶겠지만 조금 다른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서로 다른 한 권의 번역서가 된다. 각각 완성된 번역본은 번역자의 창작물이 되고 그 두 책은 독자들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

섬세한 묘사와 불편한 통찰, 시니컬한 풍자와 반짝이는 해학이 어우러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에서라면 그 괴리가 더할 수도 있다. 감동이나 교훈에서 멀어질수록 진짜 소설이다. 롤리타가 그렇다. 순정남의 외관을 하면서 속으로는 `넌 나에게 읽혔어.` 뭐 이런 여유와 포스를 풍기는, 애인으로서는 빵점이지만 소설가로서는 백점인 이 소설가의 작품을 읽을 때 취향에 맞는 번역본을 만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비교 번역 운운했지만 진실로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이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장은 내게 `넘사벽`!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