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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짜가 발붙일 수 없는 세상

조영민고령군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주무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나오는 소설이야기가 있다. 바로 진짜와 가짜이야기다.흔히 아는 예로 동양의 옹고집전, 서양의 왕자와 거지, 최근의 사례로는 영화인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다.그중 옹고집전의 줄거리를 앞부분만 얘기하자면 옹정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마을에 옹고집이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이 자는 심보가 고약하고 인색하기로 마을에서 유명했다. 마을 사람들과 머슴을 못살게 굴고 심지어 팔십이 넘은 노모를 굶게 하거나 냉방에 넣고 돌보지 않았다. 이에 월출봉 비치암의 도승이 학대사라는 중을 시켜 옹고집을 꾸짖고 오라고 보내지만 학대사는 오히려 수모만 겪고 돌아온다.도승은 이 말을 듣고 허수아비로 허옹(가짜옹고집)을 만들어 실옹(진짜옹고집)에게 보낸다.허옹이 실옹과 똑같이 행동하자 가족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고 관청에 재판을 받으러간다.사또가 족보를 가져오라고 해서 물어보니 허옹이 더 잘 안다. 결국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집에서 쫓겨나고 가짜 옹고집이 집으로 들어가서 가족들과 산다. 이처럼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특히 선거철 진짜로 둔갑한 가짜뉴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미국의 ‘팩트체크 사이트(factcheck.org)’에서 제안한 가짜뉴스 구별방법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첫째 실제 언론사에서 작성한 것이 맞는지 뉴스의 출처를 파악하라. 둘째 제목만 읽지 말고 끝까지 읽어봐라. 셋째 누가 쓴 글인지, 글쓴이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작성자를 확인하라. 넷째 기사작성 날짜를 확인하라. 마지막으로 글이 충분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지 확인하라.2022년에는 제20대 대통령선거뿐만 아니라 제8대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치러지는 해이다.벌써부터 대선후보적합도가 발표되는 등 선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고 앞으로도 많은 정보들이 쏟아질 전망이다. 이 정보는 가짜와 진짜가 섞여있을 것이고 유권자들은 이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유권자들이 먼저 가짜가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든다면 진짜들의 선의의 경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05-31

화음을 쌓는 일

요즘 나는 ‘MSG 워너비’에 푹 빠져있다. ‘MSG 워너비’는 MBC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남성 발라드 프로젝트 그룹이다. 현재는 별루지, 김정수, 강창모, 정기석, 이동휘, 이상이, 원슈타인, 박재정 등 8명의 출연진이 등장하고 있으며, 서바이벌 경쟁을 통해 최종 4명의 가수가 데뷔한다.기존 가수인 SG워너비의 이름을 본 따 만들어진 MSG워너비는 2000년대의 향수를 겨냥한 컨셉으로 과거 유행한 여성 발라드곡인 ‘빅마마의 체념’, ‘태연의 만약에’를 재해석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 화제 되었다.한편 원조 SG 워너비가 방송에 등장하여 히트곡들을 차례대로 부르자 아리랑, 살다가, 라라라 등 수많은 곡들이 역주행하여 각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나는 평소 좋아하는 가수도, 즐겨 듣는 노래도, 나아가 취미나 취향도 딱히 없는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MSG 선발전 무대를 보고난 뒤부턴 어찌나 상기되어 있는지 모른다.8명의 출연진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감정에 충실히 임한다. 정해진 가사를 부족함이나 과함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대단한데 오롯이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장악한다.8명 출연진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넋을 놓고 반하게 된 데에는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에 나오는 화음이었다. 화음은 음악에서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생기는 합성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음역대가 만나 소리를 쌓고 합쳐 나아가는 것인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부르거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묻어 버릴 정도로 너무 크게 부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깔려 있어 근사한데다 그들의 개성과 열정, 각기 다른 표정과 분위기가 어우러져 흥미롭고도 신비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마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마주한 듯한 경이로움이라 해야 할까. 서로 다른 것이 만나 공통된 지점에서 발화하는 아름다움은 충분히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그렇지만 화음은 극히 드물다. 언제나 끊이지 않는 학교와 직장, 병원에서 만연히 이루어지는 집단 따돌림은 불협과 불협이 만나는 끔찍한 노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목소리에는 수많은 욕설과 소음과 고함으로 엇나간다. 듣는 사람도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인데, 부르는 이들은 얼마나 지옥 같은 마음으로 내지르는 걸까.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는 착각, 개인을 소외시키고 배제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오만으로는 한평생 하모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뛰어난 음악작품 속의 멜로디는 화성진행에서 쓰는 화음의 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화음에 포함되지 않는 음을 비화성음이라 부르는데, 멜로디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비화성음이 반드시 들어간다. 화음 밖의 음들은 기능적으로 안정감을 더하고 다채로운 화성 진행을 통해 더욱 훌륭한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다양함으로 창조된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풍부한 흥미로움을, 굵직한 메시지를, 깊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실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안팎을 포용하여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 하모니를 이룰 때에 더욱 고귀한 감정의 결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독백으로 이룬 무대는 늘 머쓱하고도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간 조그맣게 벌린 일 몇 가지를 정리했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쫓는지 모를 지경에 처해 자꾸만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2년 간 근무했던 곳을 벗어나 현재는 새로운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매일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가치관 충돌로 의아하기도, 처음 들어보는 취미나 취향을 발견해서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대화 속에서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복잡하고 힘겨울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데다 그들과 나의 공통된 부분을 발견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또한 왠지 끌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여러 시행착오가 따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1-05-31

백석의 참치회와 낚시금지법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백석은 낚시인들에게도 사랑 받아 마땅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시기의 바다’)는 시에서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야말로 낚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아닌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의 대목에선 선상낚시를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꽝조사’의 안타까운 심정이 엿보인다.물론 1930년대 백석이 왕돌초나 관탈도에 가 참다랑어 낚시를 즐겼을 리는 만무하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청년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보지 못했거나 평북 서남부와 인접한 황해를 본 게 전부였을 것이다. 1929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서야 처음 대양을 보게 된 백석이 일본 혼슈 지방 어촌의 풍경을 그린 것이 위 시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하숙집에 머무는 시인에게 ‘참치회’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못 먹어 눈물겨울 정도로 백석은 생선회를 좋아한 모양이다.1935년 백석은 박경련이라는 여인을 짝사랑하게 되고, 이듬해 그녀의 고향인 통영에 세 번이나 찾아가는데, 그때 본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통영’ 연작이다.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이라고 노래했는데, 전복, 해삼, 파래, 아개미(명태 아가미젓)는 통영을 대표하는 해산물이다. 도미(참돔, 감성돔, 벵에돔, 돌돔), 가재미(도다리), 호루기(호래기), 대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낚시의 훌륭한 대상어가 아니었을까?생선은 확실히 특별한 식재료다. 손질된 것을 시장에서 사다가 조리하는 경우엔 다른 음식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직접 낚은 물고기의 눈을 바라보며 그 숨을 거두어야 하는 ‘낚시 요리’는 각별하고 애틋한 행위다. 한 그릇 음식이 사람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고 숭고한 생멸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여름, 나는 외판 영업사원처럼 분주해질 예정이다. 백조기 같은 반찬용 물고기들부터 귀한 별미인 한치, 문어를 경유해 고급어종인 붉바리까지 잡으려면 매주 서해, 동해, 남해, 제주도로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먹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둬야겠다. 최근 환경부는 3만5천평 이상 전국 495개소의 주요 저수지를 ‘중점관리저수지’로 지정하여 낚시금지구역으로 봉쇄하겠다고 했고, 전국 지자체들은 서로 경쟁하듯 하천에서의 낚시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 정부로부터 수질 관리 예산을 지원 받기 위해 일종의 ‘전시 행정’을 펴는 것이다. 낚시가 수질 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며, 생활하수가 주원인이라는 게 연구결과로 이미 입증됐는데도 낚시만을 탄압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낚시인들이 낚시금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청원을 제기했고,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현재 국토교통위원회 심사에 회부된 상태다. 외국에서 낚시는 관광자원이자 중요한 여가다. 여행에서 본 유럽과 북미, 일본의 낚시 행정, 낚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러웠다. 우리도 외국 못지않은 천혜의 황금어장을 갖고 있으며, 낚시인들의 의식도 많이 발전해 환경보호, 어자원 보호에 앞장서는데 낚시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근거 없는 풍문들만 여전하다. 낚시인들도 우리 이웃이고 친구다. 그런데 왜 국가는 ‘금지’라는 족쇄를 걸어 예비 범법자 취급을 하는가? 낚시금지법이 바다로 확대되면, 바다낚시 메카인 경북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뿐더러 도민들의 생활 만족도도 저하될 것이다. 낚시금지법은 악법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낚시를 해왔고, 하천 오염은 물고기를 얻기 위한 낚시 때문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축산업과 도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공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자원 남획의 주범은 불법어업이고, 오히려 낚시는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얻어오는 ‘소확행’을 추구한다. 나는 내가 낚시인임이 자랑스럽다. 백석과 동시대에 활동한 윤동주의 시를 패러디하자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별 하나에 농어와 별 하나에 광어와 별 하나에 한치와 별 하나에 무늬오징어와 별 하나에 백조기와 별 하나에 붉바리… 나는 별 하나에 맛있는 이름 하나씩 불러본”다.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이 계절, 낚시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생선을 못 먹고 눈물겨울 일은 없을 것이다.

2021-05-31

꼰대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공화국에서 ‘왕 꼰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참가 자격은 ‘꼰대력 테스트’에서 최고 수준인 5등급을 통과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 보수 꼰대와 진보 꼰대, 남성 꼰대와 여성 꼰대 등 각양각색이다. ‘꼴통꼰대’들의 치열한 경연이다 보니 영국 BBC가 보도할 정도다. 한국의 꼰대가 세계로 수출(?)되었으니 참 가관이다.꼰대란 어떤 사람인가? 국립국어원은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라고 했지만, 이제는 ‘젊은 꼰대’의 등장으로 “권위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고루한 사람”을 통칭하고 있다. BBC에서는 ‘꼰대(Kkondae)’를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연장자”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꼰대는 ‘구태의연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타인에게 강요, 즉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다.꼰대공화국은 ‘말로만 민주주의체제’다. 유교문화·군사정권·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서열을 중시하는 집단주의가 견고해졌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주의 의식은 ‘나’의 존재를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확장과 함께 성장한 개인주의 세대는 그 울타리를 탈출함으로써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주의와 ‘나’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다.토크빌(A. Tocqueville)이 “개인주의는 민주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정신의 바탕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다.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도 개인이 진다는 것이다. ‘꼰대질’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다. 꼰대공화국에서는 대화와 토론은 없고 지시와 강요만 있을 뿐이다. 꼰대는 흑백논리에 입각해서 아군과 적군, 우파와 좌파로 양분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은 ‘선’이고 그 외는 ‘악’으로 간주한다. 꼰대들의 상투적 표현인 “나 때는 말이야….”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심과 우월의식이 상대방의 의견·능력·존재를 모두 부정한다. 개인주의는 타자(他者)를 수용하지만, 이기주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격화시킨다.꼰대는 시대에 뒤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의 작은 경험을 일반화해서 그것만이 옳다는 ‘병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오만과 독선, 내로남불이 꼰대의 특성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시대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당은 ‘꼰대정당’이 된다. 대통령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꼰대야당’은 선거에서 4전 4패했고, 권력에 취해 민심을 읽지 못하고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한 ‘꼰대여당’은 4·7보선에서 참패했다.꼰대공화국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 각자가 ‘꼰대성’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꼰대가 되면 독재를 하게 되고, 국민들이 꼰대가 되면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입은 다물고 귀를 열어라.

2021-05-31

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은 보통 새벽 4~6시에 기상해 독서, 명상, 운동, 영어공부, 재테크 등 ‘루틴(반복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미라클 모닝이란 말은 할 엘로드가 쓴 ‘미라클모닝’이란 책에서 처음 소개됐다. 대체로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운동이나 독서, 영어공부 등 자기계발 등을 하는 모습을 ‘인증샷’ 형태로 기록한다. ‘미라클모닝 챌린지 00일차’라고 기록하고, 일어난 시간이 표시된 휴대폰 화면 캡처, 운동 등 인증샷을 공유하는 식이다.이 게시물들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는 인증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독려하는 메시지로 작용한다. 2030세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미라클모닝’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만 29만건에 달할 정도다.코로나19가 몰고 온 우울감이 2030 세대에 번지면서 일상 속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을 찾으려는 심리가 반영됐다. 현재의 불안감을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이겨내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되면 매일 아침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루틴대로 아침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생활은 불확실성을 줄여 불안감을 낮춘다.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자기계발 바람이 코로나19 우울과 관련 있다고 한다. 일상 속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으려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것. 작은 성과를 계속 이뤄나가는 것은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서로 독려하며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을 찾아가는 미라클 모닝 챌린지 열풍에 힘입어 ‘미라클모닝’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려면 우리를 변화의 길로 인도하는 ‘미라클 모닝’, 기적의 6분을 따라가보자./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31

상주시가 스마트 그린 도시 구축에 나선 까닭은?

강영석상주시장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 등으로 이제 우리 일상생활의 안전과 생존까지 위협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때 이른 폭염, 긴 장마, 겨울철 이상고온 등으로 다양한 기상재해가 나타나고 있다.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출발점으로 환경부가 지난해 실시한 ‘도시 녹색생태계 회복’을 위한 ‘스마트 그린도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스마트 그린 도시 사업은 2020년 7월 14일 정부에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 가운데 그린뉴딜에 포함된 사업이다. 기후 및 환경문제에 대한 진단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환경 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기후·물·대기·자원순환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들을 융합하여 해결책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사업이다.환경부는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모를 통해 종합선도형 5개 도시, 문제 해결형 20개 도시를 선정하였고, 상주시는 그중에서 종합선도형 5개 도시에 선정되어 국비 100억 원을 포함한 총사업비 167억 원으로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추진한다.상주시가 이 사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상주시는 사방이 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로 초미세먼지 수치가 높고 폭염도 잦은 편이다.상주시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그동안 도심 하천인 북천을 생태계를 살리는 북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북천 명품화 사업 등을 추진해 왔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친환경 도시재생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스마트 그린 도시 사업에 선정된 배경에는 우리 시의 이러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스마트 그린 도시 구축에는 다양한 세부사업이 있다.수변 생물이 서식하는 실개천인 생태계류 설치와 빗물 속의 오염 물질을 걸러 하천으로 보내는 식생 체류지도 조성이 포함돼 있다.미래 친환경 차 시대를 맞아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할 인공 안개(쿨링포그) 분무 시설 설치,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로 자동 살수 시스템’ 구축도 하는 등 시민체감형 종합 휴식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활용하여 ‘스마트 환경교육 시스템’을 마련하고, 주변 공공건물에는 ‘옥상녹화’도 추진할 계획이다.상주시에서는 이 사업과 별개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상주형 뉴딜 추진단’을 구성하고 디지털 뉴딜, 그린뉴딜, 안전망 강화 사업 등 총 53개 사업을 상주형 뉴딜 사업으로 선정하여 쾌적한 도시 생활환경 조성에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특히, 그린뉴딜 부문 대표 사업인 스마트 그린 도시 사업을 포함하여 공공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친환경에너지타운 조성 등 20여 개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등 일회성이 아닌 중장기적 시책 추진을 통해 시가지 전역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이번 사업을 통해 연간 ‘자동차 2천500대 분량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둠으로써 2050년 탄소 중립 사회를 실현하는 토대를 구축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환경문제는 이제 지구촌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등장했다.그 어느 때보다도 기후변화와 환경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지금이 환경변화를 체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중앙정부와 상주시 의지가 충만한 만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다. 이처럼 지역별로 특색있게 추진하는 스마트 그린 도시 사업이 기후 및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자연과 인간 중심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모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다. 21세기 기후변화에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이 사업과 연계한 후속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상주를 스마트 그린 도시 선도 지역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2021-05-30

자갸~ 작약 보러 갈래?

꽃 한 송이를 선물 받았다. 환하게 피어난 함박꽃이다. 이슬이 송글송글 맺힌 꽃에서 봄 향기가 묻어났다. 결혼하던 해 봄, 시댁에서 잠을 깬 아침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새벽 밭일을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아침밥을 준비 중이었다. 아버님이 “아가~”하시며 뭔가를 들고 부엌에 들어오셨다. 함지박처럼 크게 웃으며 피어난 작약꽃이었다.시댁 마당에는 작약이 두 무더기로 핀다. 분홍 잎 속에 하얀 솜털 같은 잎이 보송한 꽃은 대문 옆에, 보라색 모란을 닮은 작약은 거실 앞마당에 심었다.이웃에서 한 뿌리씩 얻어와 꾸미신 정원이다. 그 몽우리 중에 먼저 핀 첫 송이를 꺾어 내게 건네신 것이다. 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나는 평생 한 번도 못 받은 걸, 니는 우에 받았노”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주소를 옮긴 지 사 년이 지났다. 네 번째 봄이 오고 분홍 작약이 먼저 꽃문을 열었다. 어린이날에 시댁에 가니 아버님은 몇 송이 꺾어 거실 화병에 두고 즐기셨다. 집에 돌아갈 때 가져가서 한껏 보라 하셨다. 꽃 몽우리를 만지니 손이 끈적하다. 그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개미들이 줄지어 송이를 오르내린다. 개미까지 데려갈까 봐 몇 송이 꺾어 함지박 가득 물을 받아서 가지 채로 담궈 뒀다.우리 집 거실에서도 작약은 자태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2주가 지나도록 마지막 몽우리까지 다 피워냈다. 먼저 핀 꽃들의 끝이 마르기 시작했다. 석가탄신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자갸, 작약 보러 갈래?” 어디를 가자는 거냐 했더니 묻지 말고 따라나서라 했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신녕이라고 입력했다. 포항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작약으로 가득한 동네가 있었다.신녕면 화남리 194-1번지 일대가 작약 농사를 하는 곳이었다. 3~4년 지난 뿌리가 한약 재료가 되니 특용작물로 키우고 있었다. 꽃은 향기가 좋아 차로 만들어 마시면 시원한 맛이 나서 가슴이 뻥 뚫리는 행복감을 준다고 했다. 축농증과 비염에도 효과가 있다 하여 싱싱한 꽃을 콧속에 넣고 잠을 자면 더 좋다고 한다. 뿌리를 달여먹으면 좋은 여러 병증 중에 생리통과 현기증, 두통에 좋다는 동의보감의 글귀가 귀에 박힌다. 나에게 맞는 약재였다. 쌍화탕의 주요 재료로 사용되는 작약의 뿌리는 한방에서 혈맥을 통하게 하며 속을 완화하고 나쁜 피를 풀어주는 약재로 이용한다.작약의 꽃은 크고 탐스러워 ‘함박꽃’이라고 불리며, 결혼식 꽃장식과 신부 꽃다발로 많이 쓴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길에 미경이네 작약밭이 있었다. 선생님 교탁 위 꽃병에 주번이 되는 날에 꽃을 가져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산에서 진달래나 조팝꽃을 꺾어주실 때도 있었다. 그날은 학교 가는 길에 내가 당번이라는 게 생각이 났고, 미경이네 작약밭에 몰래 들어가 한 송이를 훔쳤다. 함지박만 해서 한 송이만으로도 교실이 환했다. 나중에 미경이에게 고백하자 뿌리를 약재로 쓰려고 꽃은 따줘야 한다고 괜찮다고 했다. 사실 근처에 작약밭이 거기뿐이라 고백하지 않아도 뻔히 드러날 일이었다.경북 영천시 신녕면에서는 2018년부터 5월 15일부터 19일까지 작약꽃 한마당 행사를 개최하여 작약 품종 전시, 작약꽃 따기 체험, 꽃차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지난해는 행사가 취소됐고, 올해는 드라이브-스루로 꽃만 보고 가라고 했다. 꽃밭 사이를 거닐다 보니 향기가 은은하게 번졌다. 경주 서악동, 영양 서석지 근처 동네에는 오늘 낼이, 평창은 6월 첫 주에 핀다고 소식을 보내왔다.깊은 산속, 너덜지대에는 야생 백작약이 간혹 눈에 뜨인단다. ‘간혹’이란 말이 의미하듯 수가 줄어서 보호종이 되었다. 너덜은 너덜겅의 준말로 많은 돌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백작약이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피한 것 같아서 마음이 싸하다. 자기에게 약이 되는 꽃이라 작약인가, 농담을 건네자 함지박처럼 남편이 웃는다. 약이 되긴 되었네. /김순희(수필가)

2021-05-30

환경부의 모순된 탈플라스틱 정책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31일부터 제2차 생활 속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실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순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란다.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한가지’와 ‘하지 않을 일 한가지’를 약속하는 내용을 ‘~고 ~고’ 운율에 맞춰 SNS에 올리고 후속 주자를 지목해 이어나가는 방식이다.△텀블러(개인컵) 및 다회용컵 사용 생활화하기 △비닐봉지 아닌 장바구니(에코백) 사용하기 △음식 포장 시 다회용 용기에 담아가기 △음식 배달 주문시 안 쓰는 플라스틱 거절하기 △플라스틱 빨대·막대 사용 줄이기 △음료 구입 시 무라벨 제품 우선 구매하기 △온라인상품 주문은 모아서 한꺼번에 하기 △과도하게 포장된 제품 소비 줄이기 △포장안한 상품 구매하기 △세탁비닐 등 불필요한 비닐 사용 줄이기를 통해 생활 속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제, 바디워시, 향수, 식품 등을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매장을 ‘리필 스테이션’이라 부른다. 이곳을 찾은 소비자는 제품을 매장 전용 용기에 담거나 아예 직접 용기를 가져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다.‘리필 스테이션’이 활성화된 유럽국가에서는 화장품을 소분해 판매하는 것에 대해 별도의 자격을 요구하거나 규제하지 않는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세제, 섬유유연제 등 세탁제품만 리필을 허용할 뿐이다.샴푸와 바디워시 같은 세정용 제품은 리필이 불가능하다. 세정용 제품은 ‘화장품’에 해당함에 따라 개인 용기에 덜어서 판매하려면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라는 자격증 소지자가 매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에 대해 “세정용 제품을 개봉해 나눠 담는 과정에서 변질 또는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 전문적으로 관리할 인력을 두도록 한 것”이라며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조치”라고 설명했다.지난 1월 ‘제3회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시험’이 시행됐다. 응시자 4천353명 가운데 314명이 합격했다. 고작 7.2%의 합격률이다. 앞선 2회 시험 때도 합격률은 10.1%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웠다.탈플라스틱을 위해 소분해 팔고 싶은데 합격률 10% 안팎인 ‘국가고시’ 같은 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나? 샴푸, 바디워시를 단순히 덜어서 판매하는 것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인가?환경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표시제를 도입했다. 소비자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고 생산자가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생산자는 포장재 재질에 대한 평가결과에 따라 ‘재활용 최우수’, ‘재활용 우수’, ‘재활용 보통’, ‘재활용 어려움’ 등으로 구분해 표기해야 한다.하지만, 화장품 회사에 대해선 예외를 뒀다. 화장품 업계가 재활용 등급 표시에 따른 이미지 실추 및 수출 경쟁력 저하 등을 내세워 표시 예외를 요청하고, 포장재를 역회수하는 협약으로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화장품만큼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이 많은 제품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혜 소지가 다분하다. 화장품 회사는 이런 특혜성을 등에 업고 탈플라스틱에 노골적으로 역행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2018년 회수된 공병을 재생원료로 사용했지만, 출고량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즉 99%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자 정부가 화장품 회사의 ‘등급 표시 예외 적용’ 방침을 철회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재활용되지 않는 용기를 사용하면서 등급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요, 이를 가능하도록 예외를 적용한 환경부는 화장품 업계에 면죄부를 준 것이 때문이다.필자도 ‘탈플라스틱 챌린지’에 지목을 받았다. ‘일회용품 줄이Go!, 다회용품 사용하Go!’란 문구를 SNS에 올리고 첼린지에 동참했지만 마뜩지 않다. 국민들은 탈플라스틱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다회용 용기의 상용화나 일회용기의 재활용은 제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환경부가 이를 우선적으로 보완하고 해결책을 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들의 모범 사례과 국민 의견수렴으로도 도입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많을 것이다. 본연의 역할을 잊은 채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환경부를 보고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업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일상에서 실효성있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박수받는 환경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1-05-30

코로나19 팬데믹과 지속가능한 사회

유성찬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도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2019년에 발생한 왕관처럼 생긴 바이러스이기에 코로나19(COVID-19)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휩쓸 팬데믹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있고, 코로나19는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또 변종바이러스로 인해 어느 시점까지 진행될지 알 수도 없다.코로나19 발생의 원인에 대해 말이 많기도 했었지만, 이제 정설(定設)로 자리 잡은 것은 수산물을 판매하던 중국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의 야생동물들로부터 발생했다는 설이다. 중국정부는 우한이 코로나19의 발원지라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말이다.전염병의 세계사에서 6세기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움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1세 때의 전염병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5천만여명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전해진다. 14세기 유럽의 페스트는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사망하게 하였다. 또 천연두는 1796년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하였음에도 20세기에만 3억여명이 죽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경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지구상에서 약 1억명이 사망했다. 이 사망 숫자는 당시의 1차세계대전에서 사망한 군인의 수보다 휠씬 더 많다.전염병이 어디에서 오는지? 빅히스토리에서는 인간이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발전해가면서 짐승을 집에서 기르게 되었고, 이때 가축으로부터 건너온 인수공통감염병이 인간으로 전이 되어 왔다고 보고 있다.신대륙 발견의 사실(史實)을 보면, 인간에 의한 감염도 끔찍하다. 스페인 군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가 아즈텍문명을 무너지게 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군인들이 퍼트린 천연두이다. 전혀 새로운 세균, 바이러스를 만났을 때는 인간종(人間種)이 완전히 괴멸할 수도 있다는 역사적 증거인 셈이다.그리고 현대에서는 인간의 자연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해, 인간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브라질,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밀림을 개발하게 되고 밀림에 있던 야생동물인 박쥐로부터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온다는 것이다. 에볼라도, 사스(SARS)도, 코로나19도 인간의 자연 파괴에서 발생하였다. 여기에서 인류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철학과 목표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강한 놈만 살아남는 적자생존, 승자독식, 비양심, 비인간성, 무분별한 자연훼손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외경, 자연에 대한 존중, 생태적 자연관 등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공유하는 휴머니즘적 생태주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한다.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의 결과로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정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기본원칙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각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의제21’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방의제21은 리우데자네이루 회의의 결과물이다. 거버넌스(협치)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환경문제에 대해 협의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는 지역사회를 녹색환경사회를 목표로 변화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그리고 리우데자네이루 회의에서 합의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환경과 자원들을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의미를 말한다.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이 후세대까지 지속되도록 지향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산업혁명이후 인류는 탄소, 즉 석탄과 석유없이는 산업활동을 유지할 수 없었다. 농업생산력 증가로 인해 인구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지구의 일부분이었던 인류로 인해 지구가 무분별하게 파헤쳐졌다. 산업활동을 정지하거나 제어하지 않으면 인간은 지구를 막다른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코로나19의 발생원인이, 돈이 된다면 지구 끝까지 개발해나가는 황금만능주의적 자본주의, 열대우림의 남벌, 야생동물에 대한 침해, 툰드라 냉대지대의 해빙으로 나타난 신종바이러스에 기인한다면, 코로나19바이러스는 언제나 인간에게 노출되어 있고 일상적으로 팬데믹을 일으키게 된다. 지금의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가 없다. 이게 사람의 삶인가? 그 즐겁던 소풍도, 아이들의 웃음도, 노인들의 고즈넉한 산책도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이다.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라, 무한경쟁으로 인해 인류가 망해 가고 있는 내일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자.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로 인해 지구는 뜨거워져 가고, 그로 인한 기후변화가 우리의 아이들, 가족들의 아름다운 삶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경쟁보다는 공존공영, 나눌 줄 아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 삶인가?

2021-05-30

포항시립미술관 산책

윤영대수필가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포항시립미술관을 찾았다. 화창한 늦봄에 환호공원 둘레길 산책도 겸해서였다. 주차장에 내리니 미술관의 ‘poma’ 표지가 연오랑세오녀 일월 신화를 품은 영일만 일출의 태양처럼 안내를 한다. 입구에 올라서면 은빛 철사로 엮은 사슴 조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맞는다. 이팝나무 심고 있는 작업이 한창인 공원의 미술관 앞 인공연못에는 하얀 대리석 어머니상이 한쪽 젖가슴을 들어낸 채 고뇌에 찬 모습으로 삶의 어려움을 얘기하듯 처절한 모습이지만 뒷 유리창에 비친 환호공원의 아름답고 포근한 정경은 미술관을 더욱 곱게 감싸고 있다.포항시립미술관은 2009년 12월 22일 개관하여 철(steel)을 테마로 한 세계 유일의 스틸아트 미술관으로 포항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인 철을 통해 예술적 가치의 확산을 위한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신철기 시대(Neo-iron Age)’와 미술관이 있어 행복한 도시, 포항을 소망하고 있다.미술관 전면에는 새로 막을 연 전시회의 현수막 3개가 커다랗게 걸려있다. 세르비아 작가 스체파노비치의 ‘한 화가의 증언’과 2020년 장두건 미술상 수상 작가 김은솔의 ‘기억의 파동’ 그리고 최근의 소장품전 ‘20이일(異日)’을 알리고 있다. 토요일이라 가족 관람객이 눈에 띄고 아이들과 같이 온 젊은 부부들의 웃음이 환하다.미술관에 들어서면 제주산 검은 화산암으로 된 높다란 로비 벽면이 예술적이다. 1전시실에는 주한외국공관 협력 전시 프로그램의 첫 번째로 세르비아 작가의 그림인데 검은색, 붉은색 등으로 그려진 포스터 같은 작품들이다. 가상현실과 패권세력의 선동, 자본주의 광고 등 지금 세계의 광기를 보여 준다. 안쪽 4전시실에는 최근 수집한 조각 소장품 6점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스틸아트다. 상반신만을 왼팔로 버티고 있는 작품을 보니 괜히 팔에 힘이 들어간다.2층으로 올라가 초헌 장두건 화백의 드로잉 작품들을 둘러보고 2전시실로 들어가니 파동 치는 영상과 찢어질 듯한 잡음을 통해 포항 지진과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을 작가의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이 어려워 매주 토요일 있다는 도슨트 투어를 찾았지만 6월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아쉬웠다.미술 자료를 모아둔 도서실도 있어 기웃거려보고 입구 쪽의 카페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환호공원에 놀러 나온 소풍객들의 정겨운 모습들 속에 장난꾸러기 아기들의 손을 잡고 거니는 할머니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매월 마지막 목요일 오전에는 로비에서 ‘미술관 음악회’가 열려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해 온몸으로 예술의 전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1년 넘게 연주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커피 한잔 마시고 나와 20여 개의 스틸아트 작품이 있는 공원 잔디밭 길을 걸어 본다. 숲속 정자엔 젊은 남녀의 모습이 앙상블이고 공원 분수대 마당과 하얀 돛 닮은 천막 밑의 가족 모임은 코러스이다. 야외공연장도 있고 인공폭포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린다. 숲속 산책길을 천천히 올라 둘레길의 산마루 전망대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물결은 자연의 심포니이다.

2021-05-30

소소한 행복을 위해…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레이첼 켈리는 ‘내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연습’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남을 도울 때처럼 우리가 한 행동이나 생각의 간접적인 결과물에서 행복이 얻어진다고 하였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은 삶에서 큰 힘이 될 것이고, 차곡차곡 쌓여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의 반동 없이도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소소한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되듯이 누구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최근 직장에서의 일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일·삶 균형, 개인 및 가족 여가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일자리 선택에 있어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최우선적 조건으로 추구하고 있다.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의 조건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워라밸 보장(49.9%)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금전적 만족(48.9%), 복지(30.6%) 순으로 나타났다(2020. 8, 잡코리아). 때문에 일·생활균형제도 활용이 늘고 있으며, 제도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별 제한적 활용성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고, 중소기업 내 분위기와 인사상 불이익으로 남성 육아휴직 사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개인을 노동력·생산력의 관점에 기반한 전략에서 개인의 삶의 질 제고 전략으로 전환하여 생애주기별 일과 삶의 균형 실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첫째, 보편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육아휴직 권리를 임금근로자에 한정하지 않고 고용보험 가입, 예술인, 플랫폼노동종사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으로 확대,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 확산 및 육아휴직 사용 문화 정착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그리고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해 육아휴직에 따른 기업의 업무공백 및 비용부담을 완화해서 눈치 보지 않는 실질적 사용 여건 조성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성의 돌봄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남성 돌봄이 주변적 존재가 아닌 중심 주체가 되어 남성의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등 돌봄 참여를 편견 없이 남녀 모두 함께 돌보는 문화 조성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 독려를 위한 가족사랑 실천 캠페인을 회사, 가정, 지역에 전개하고, 아빠 놀이학교와 아빠 요리교실 등 맞돌봄 및 맞살림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남성을 위한 실질적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일터 문화를 혁신하는 방안으로 기존 업무방식을 재설계하여 디지털 기반으로 소통 및 협업하는 업무 환경 여건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코로나19에 대응한 디지털화를 가속화 하고, 업종 및 직무 특성, 사업장 맞춤형 유연근무제 적용할 수 있는 중장기적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일·생활 균형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확산은 사회적 협력이 중요하다. 일·생활 균형이 사회 전반적인 가치로 자리 잡도록 관련 기관 간 협력 네트워크 강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가족친화 인증기업 확대 및 활용도 높은 인센티브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2021-05-30

‘한계상황에 와 있다’는 자영업자들

심충택논설위원대부분 사람은 대도시 골목이나 농촌지역 장터에 있는 슈퍼마켓, 약국, 옷가게, 빵가게, 음식점, 문방구 등이 내일도 모레도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이들 동네 가게들이 우리 공동체에 주는 순기능(順機能)이 얼마나 큰지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도 아마 드물 것이다. 만약 동네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고 가정해 보면 그동안 간과했던 다양한 기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니까 모두가 그 중요성을 잊고 사는 것이다.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대구시내 중심가에서도 오래전부터 장사가 안돼 하나 둘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적자운영을 견뎌낼 자영업자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자영업자 525명을 대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얼마나 인상되면 폐업을 고려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재도 한계 상황’이라는 답변이 32.2%로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15∼20% 인상되면 폐업을 하겠다는 답변도 26.7%에 달했다. 특히 종업원이 없거나 가족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자영업자 중에서는 40.6%가 현재도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적어도 3명 정도는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조사결과다. 장사가 안되고 매출이 시원찮다 보니 빚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도 증가하고 있다.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대구·경북지역 자영업자 대출 변화 및 잠재리스크 점검’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신규대출한 대구·경북 자영업자는 전년 말보다 30.9% 증가한 24만2천700명(대구 12만6천900명, 경북 11만5천900명)에 달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평균 자영업자 신규대출 증가율(24.1%)을 크게 웃돌았다.우리나라는 특히 자영업자 수가 많다. 취업자 2천700만명 중 550만명이 자영업자다. 그러니 자영업이 경기나 고용,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히 취약 경제주체인 자영업자들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최근 가동됐는데 한계 상황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만이라도 현 수준에서 동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우리 민족은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콩 한쪽도 나눠먹고 살았다. 늦가을에 감을 따면서 까치밥으로 몇 개의 감을 남겨두는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계와 품앗이로 대표되는 공유의 삶을 살아온 민족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의 모델을 우리는 이미 자산(資産)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대형 유통업체들과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따뜻한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동네마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지역경제에 가장 좋지 않은 모양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지역경제의 실핏줄인 동네가게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1-05-30

정치와 서문시장

대구의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장의 하나로 손꼽혔다. 원래 대구 읍성 북문 밖에 있었으나 관찰사가 거주하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이후 서문 쪽으로 이전했다. 서문 바깥에 있다 해서 이름을 서문시장으로 불렀다.서문시장이 급성장하게 된 것은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되면서 이곳이 영남권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지리적으로 영남권의 중심지에 있고 대구를 감싸고 있는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 교통이 발달해서다. 서문시장은 1922년 일제 강점기에 장소가 비좁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됐으나 내막적으로는 일본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아보고자 했던 조치라 한다.실제로 서문시장은 대구 3.1운동의 주도적 거점지였다. 조선 중기이래 수백 년에 걸친 서민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우리 고장 사람들의 삶의 역사 현장이다.서문시장은 해방 이후 수차례 큰 화마를 입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지금도 전국적 명성을 유지한다. 5천개의 점포와 2만여명의 종사자, 주말이면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대구의 명소다.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재래시장이 쇠퇴의 길로 가고 있으나 서문시장은 재래시장의 대표답게 언제나 서민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특히 대통령 후보 등 정치인이 대구에 오면 반드시 찾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3.1운동을 주도한 대구시민 정신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지만 대구의 대표성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잇따라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이 지닌 대구민심의 훈기를 얼마나 얻어 갈지 두고 보아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30

장유유서 논쟁

장유유서(長幼有序)란 유교사상에서 말하는 인륜의 기본인 다섯 가지 덕목 중 하나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순위와 질서가 있어야 올바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인륜적 가치인 윤리 개념인 장유유서가 정치판에 소환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에서 두각을 보인 이준석 돌풍을 두고 장유유서 문화를 언급했다가 젊은 층으로부터 “꼰대 같다”는 비난을 들었다. “좋은 정치를 하는데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 등 비판이다.정 전 총리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당 대표 자리는 대선 관리도 해야 하는 등 경험과 경륜이 필요하다는 의미”라 설명하고 “국민의 힘 경선에서 나타난 젊은 층 돌풍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긍정적 현상”이라 덧붙였다.제1야당 대표 선거에서 0선의 30대 주자인 이 전 최고위원이 예상을 뒤엎고 다선의원 등을 제치고 돌풍을 이어가자 언론이 본격 조명하고 나섰다. 본지 조사에서 이 전 위원은 압도적 선두를 달렸고 다수의 여론조사기관에서도 지지율 30%를 넘겼다. 대세론도 등장했다. 비록 당심은 알 수 없다 하지만 30대 야당 대표 등장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원희룡 제주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이 변하느냐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에서 나타난 젊은 세대 돌풍은 당 내부 혁신을 바라는 당심을 넘어 정치권 전반에 대한 세대교체 물결로 파장을 넓혀가는 모양새다.“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지금 우리가 교훈 삼아야 할 것은 장유유서가 아닌 “후학이 두렵다”의 후생가외(後生可畏)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27

찔레꽃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찔레꽃 핀 길을 누나는 떠났네/ 동생들 남들처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떠나간 지 석 달 만에/ ‘좋은데 취직해서 몸성히 잘있단다’/ 적어 보낸 편지에도 소액환에도/ 찔레꽃 냄새가 묻어있었네// 달마다 부쳐 오는 우편환으로/ 중학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찔레꽃 냄새의 의미를 차츰 알 것 같았네/ 명절날 어쩌다 집을 찾은 누나의/ 어둡고 퀭한 표정에서 어렴풋이/ 그것이 슬픔의 냄새인 줄을 나는 알았네// 고등학교를 마치던 해 어느 봄날,/ 작은 보퉁이 하나로 돌아온 누나는/ 철지난 꽃잎처럼 시들어 갔네/ 기미와 황달로 누렇게 뜬 얼굴에/ 아침마다 하얗게 분화장을 하고는/ 나를 보고 쓸쓸히 웃어주던 누나// 누나가 묻혀있는 뒷산 언덕엔/ 해마다 오월이면 꿈결처럼 새하얗게/ 분화장한 얼굴로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지게 흐드러지게 분냄새를 날리고/ 저승의 기별인 양 적막하게/ 온종일 뻐꾸기가 울고 있었네” - 졸시‘찔레꽃’아까시나무 꽃에 이어 찔레꽃이 한창이다. 아까시나무는 미국 동남부가 원산지이지만 찔레꽃은 우리나라 토종이다.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들녘이나 산자락에 흔하게 피는 수수한 꽃이지만 향기는 어느 꽃 못지않다. 시골 소녀처럼 순박한 느낌을 주는 찔레라는 이름은 아마도 가시가 많아서 붙은 것 같다. 같은 장미과의 화려한 꽃들의 가시가 근접을 불허하는 도도한 느낌을 준다면 찔레의 가시는 초식동물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생존수단으로 보인다. 찔레꽃이 우리 정서에 깊이 와 닿는 것은 그것이 보릿고개의 막바지에 피기 때문이고, 그때쯤 적막하게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는 까닭일 것이다.보릿고개 언덕에 피던 찔레꽃은 우리네 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나 겨우 마치고 도시로 가서 ‘공순이’가 되어야 했던 누이들이다. 봉제공장 지하실에서 하루 열 몇 시간 재봉틀을 돌리거나, 제 또래들이 교복입고 통학하는 버스의 안내양이 되어 밤늦도록 졸음을 참아가며 번 돈으로 동생들 학비를 댄 누이들이다. 심지어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간 누이들도 적지 않았다. 소리꾼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고 노래하는데, 그에게도 무슨 애달픈 사연이 있었는가 모르겠다.너무 뻔한 소리가 되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데에는 그런 누이들의 땀과 눈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당 몇 백 원의 노동으로 기업을 키웠고, 동생들 공부시켜 인재를 길렀다. 그야말로 산업역군들이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였다는 운동권 대학생들은 오늘날 국가유공자 대접을 받으며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청와대의 요직에 앉기도 하지만,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공순이들은 이름 없는 민초로 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다.연암 박지원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통곡하기에 좋은 곳이라 했지만, 찔레꽃 피고 뻐꾸기 울면 나도 저 들녘에 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울고 싶어진다. 아프고 서럽게 보릿고개를 넘어온 이 땅의 모든 이름 없는 누이들을 생각하며.

2021-05-27

손정민 씨 아버지의 후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한강에서 숨진 대학생 한 명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강에서 친구와 놀다가 물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의 아버지는 슬프고 억울하고 후회가 되는 심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올리고 있다. 더구나 경찰 조사가 미진해 한 달 새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면서 손 씨 아버지의 억장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사망의 원인도 모르는 채 외동아들을 화장하여 한 줌의 재로 끌어안을 때 그 아버지의 심정을 과연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그는 자기 심정을 블로그에 올리며 이미 떠나간 아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 원인이라도 알아야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흐느끼고 있다. 최근에 올린 글이 특히 가슴을 두드린다.“왜? 라는 질문이 매시간 끊이질 않는다. 이사 오지 말 걸, 밤에 내보내지 말 걸, 원래 다니던 학교를 그냥 다니게 할 걸, 밤에 한 번만 더 연락해 볼 걸 하는 무한의 후회가 우리 부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라는 포스팅은 읽는 사람들에게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손 씨는 카이스트에 입학해 다니다 중앙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이스트-의대 라인의 똑똑한 아들을 잃은 그 아버지의 슬픔과 후회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그런데 손 씨 아버지의 기사 댓글을 보면 응원과 위로의 글도 있지만 이러한 후회에 대하여 질타하는 글들도 있다. 무슨 카이스트를 계속 다니지 않은 것까지 후회하느냐 그만 놓아주라 너무 집착한다는 댓글들이다.필자는 손 씨 아버지의 심정을 100% 함께 하고 있다. 손 씨 아버지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문득 18년 전 태풍 매미로 떠난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당시 일기장을 뒤져 보았다.“하늘을 보고 원망도 해보고 땅을 보고 통곡도 해보았지만 넌 곁에 없구나. 네가 하늘나라에 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리고 언젠가 널 곧 보리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다른 곳으로 보내 줄 걸.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바로 보내 줄 걸. 아빠가 출장 가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낼 걸. 그런 후회가 끝없이 흐르는구나. 아빠의 머릿속에는 “if….” 라는 가정이 매일같이 떠오르는구나. 어릴 때 항상 껴안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어야만 잠들었던 네가 이제 보듬어 줄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뼈를 녹이는 아픔과 살을 도려내는 고통으로 오늘도 지새운다. 딸아, 오늘도 잘 자고 내일 또 만나자.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빠가.”눈물의 일기장을 다시 보면서 손 씨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같은 경험의 모든 아버지의 심정은 같을 것이다. 손 씨 아버지의 후회는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떠나간 사랑에 대한 절절한 아픔이다. 그 후회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이고 고통의 표현이다. 그것이 승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손 씨 아버지의 후회가 무엇일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걸 들어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2021-05-27

보이면 먼저 섬겨라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필리핀의 유명한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풍카우라는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다.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등 너무 불결해서 불만을 품고 학장에게 갔다.“학장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좀 치워주십시오. 깨끗하게 해주세요.”“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조금 뒤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가 보았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씻는 소리, 닦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하고 있었다.“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시키면 될 텐데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십니까?”“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네. 교회나 신학교는 일을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걸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네.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 쓰레기를 보는 사람 하나하나가 청소할 때 우리 삶의 주변은 깨끗해질 수 있는 걸세. 자네가 부잣집 아들로 여기 와서 보니까 좀 불결하게 보이지 다른 사람은 별로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니 느끼는 사람이 일하면 이 학교는 깨끗해질 수 있는 거라네.”“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에제 18,31, 복음 환호송).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을 닮아야 할 우리에게 위의 복음 말씀은 매우 전형적이다. 즉,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라는 권고다.그 죄악의 실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행태를 들어 그 죄악의 실상을 고발하셨다. 이를테면 본래는 성냥갑 크기의 상자에 중요한 성경 구절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고안된 성구갑을 본 크기보다 더 넓게 만들어서는 이를 담는 옷자락 술까지 더 길게 늘여서 많은 성경 메모를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는 척 한다든지, 잔칫집에서나 회당에서 높은 사람들이나 앉는 윗자리를 좋아한다든지,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거나 사람들에게서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버릇 등이었다.이러한 위선의 죄악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새 마음과 새 영으로 겸손하게 서로 섬기는 태도를 주문하셨다.아름다운 섬김의 비밀을 깨닫고 섬기다 보면 여러분의 주위가 180도로 바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보는 사람이 그것을 고치고 바꾸고 줍고 쓸 때, 나 하나가 회개하고 나 한 사람이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나눌 때 우리의 삶, 우리의 주변, 이 나라 모두가 행복하고 밝은 날이 올 것이다.

2021-05-26

언제나 이곳

양태순수필가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바다는 신선한 놀이터였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여기가 좋았다. 친구들과 몰려와 파도에 발을 적시며 깔깔거렸던 시간이 셀 수도 없다. 바다란 이름으로 내주는 장소에서 실컷 걸으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물처럼 이어져 왔다.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친구가 살았던 단층 주택은 허물어져 새 건물이 솟았고, 자주 오르내렸던 야트막한 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쪽저쪽 모두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장소를 찾으려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것도 확실히 여기였다가 아닌 이 어디쯤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걷는 내내 과거를 더듬었다. 아련하게 그때의 바다가 그립기는 하지만 시끌벅적하게 바뀐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이곳에서 철의 정원이란 주제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축제가 열렸다. 관람객이 십만여 명이 넘었다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아직 전시되었던 작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의 덧붙인 설명을 읽었다. 예술가들의 고뇌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넘어 존경을 보냈다. 스틸은 딱딱하여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내 걸음을 오래 붙잡아둔 작품이 몇 있었다. 둥근 원 안에 꽃잎이 날아가는 듯,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표현한 ‘공(空)’이었다. 몸 안에 갇힌 욕심을 비운다는 의미였다.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푸른 숲의 거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투명한 거인의 몸을 통과하는 햇살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느껴졌다. 또 한자 나무목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담은 ‘식물적 사유’였다. 나는 ‘식물적 사유’ 앞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서성였다. 식물적이란 말이 마음을 툭 쳤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구부리기 어려운 소재로 유연한 사고를 말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식물적 사유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두루 듣고 마음을 열어 모나지 않는 생각, 나와 남을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키우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해서 찔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러 왔다. 말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앞뒤 돌아보며 각도를 달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저 멀리 해안선을 끼고 둥그런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달려온 파도가 해안에 입 맞추며 하얗게 부서진다. 좀 전에 본 ‘푸른 숲의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와 파란 바다를 몸 안에 들이는 듯하다. 담담한 몸짓에 햇살이 지나가며 투명한 꽃송이가 피었다 스러지는 찰나의 광경이 눈에 담긴다.나만의 신화적인 이야기 하나쯤 품고 싶은 날이다. 푸른 바다가 어둠으로 물드는 밤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맑은 트럼펫을 불어준다. 차르륵 차르륵 고운 모래 쓸려가는 반주에 맞춰 갈매기 감춰둔 춤 솜씨 너울너울 펼치다가 웃으며 잠이 든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바다를 찾는 부지런한 이들이 갈매기 낯선 모습을 보며 소소한 근심을 웃음으로 털어버리는 해변을 꿈꾼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깃털이 자라는 것 같다.바다는 바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어 더욱 좋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타래진 마음을 물결에 풀어내었다. 삼십 년 전에 철없던 소녀를 위로해주었던 그 바다, 오늘은 중년이 된 나를 나무란다. 책망을 들으면서도 포근한 이곳은 언제나 내가 달려올 곳이다.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2021-05-26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마음을 내고 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나무가 있다. 다름 아닌 때죽나무다. 헛걸음 한 번 한 뒤 다시 날을 잡아 포항시 흥해읍 도음산으로 향했다. 한참 오르고야 개울가 중턱에 자리 잡은 때죽나무꽃을 만날 수 있었다.때죽나무는 특이하게 꽃이 아래를 향해 핀다. 종처럼 생긴 하얀 꽃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섯 개의 꽃잎을 살포시 펼치면 그 가운데에 노란 수술 열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때죽나무꽃은 띄엄띄엄 감질나지 않게 한 무더기씩 모여 핀다. 마치 소곤소곤 재잘대는 오월의 해맑은 소녀들 같다. 열흘 남짓한 짧은 꽃이 피었다 지면 이어서 때죽나무는 열매를 맺는다.때죽나무 잎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갸름한 잎에 잎맥이 있고 잎자루가 적당한 길이로 달려 여느 나뭇잎과 비슷하다. 만약 나뭇잎을 공장처럼 똑같이 찍어낸다면 자연은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할까. 다행히 조물주는 아주 조금씩 차이를 두어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잎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마다 얼굴, 길이, 모양, 굵기, 방향 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다.꽃이 땅을 바라보고 있어 때죽나무 아래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된다. 이곳에 오래 서 있는 나무는 땅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무는 저기 흙 속에서 재잘대는 흙의 소리에 귀를 열어 둘까, 아니면 가지에 물줄기를 밀어 올리느라 애쓰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를 내려보낼까. 가끔은 다리가 아파 힘이 들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퍼질러 앉아 쉬고 싶기도 하겠다. 나도 땅을 향하여 몸을 낮춰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긴다.봄꽃이 있으면 가을꽃도 있다. 키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나무가 있고, 푸른 가지만으로 제 역할을 하는 나무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봄에도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꽃을 피우고 싶다. 남보다 내가 우뚝 솟길 원해서 기를 쓰며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러다 감당 못 하고 추락해 구겨지고 부서지는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때죽나무처럼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나만큼의 키로도 만족하며 살아가면 추락도 없는 것을.생장만 한다면 때죽나무는 아마도 몇십 미터까지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생장을 멈추기도 하며 겨우 7~8미터 높이에 머문다. 몸피는 한 뼘에서 두 뼘 정도의 굵기로 나무치고는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다.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쓰임이 많지 않지만, 나무 자체의 매력을 뒤늦게 인정받아 꽃이 아름다운 정원수와 도시의 가로수로도 인기가 있다.때죽나무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물고기를 떼로 죽인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물고기를 잡을 때, 때죽나무 열매와 잎을 돌에 찧어 흐르는 물에 풀어 놓으면 물에 닿은 물고기가 잠시 몸이 뻣뻣해진다. 아가미의 움직임도 멈춘다. 그러면 떼로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어독을 이용한 방법으로 조상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였다.어머니의 어머니도 때죽나무를 이용해 빨래했다. 논과 밭에서 일한 아버지들의 옷은 켜켜이 묵은 때가 쌓여 있다. 어머니들은 개울가에 모여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패도 찌든 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때 때죽나무의 잎을 따 툭툭 짓이겨 물에 풀어 놓으면 힘들게 빨랫방망이를 두드리지 않아도 때를 쉽게 뺄 수 있다. 농사일에 지친 어머니들의 노고를 덜어준 때죽나무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와 친근하다.이순혜수필가도음산에는 때죽나무 군락지가 있다. 개울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왼쪽에 나무 테크가 놓인 길이 있다. 그 길 따라 산 중턱쯤에 오르면 때죽나무 군락이 있다. 산 위에서 나는 꽃향기를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 또한 없다. 앵앵거리는 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내준다. 향기가 피워내는 오솔길 따라 걸으면, 숨이 막 차오를 때쯤 하얗게 핀 꽃 세상을 마주한다. 나뭇가지는 햇볕 따라 몸을 뒤트는지 양지바른 곳에 벌써 하얀 꽃들이 흐드러졌다. 아마도 오늘의 향기는 몇 날은 갈 것 같다.산에서는 한 발자국 걷고 두 발자국 쉬기를 되풀이하는 게 좋다. 나무와 나란히 서서 쉬면서 고개를 들어본다. 나무들 사이로 설핏 비치는 햇살이 꽃에 닿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지들이 살랑거리며 맞장구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위로 나비, 벌들이 드나드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오래도록 머물며 오월의 정취를 만끽했다.꽃들의 잔치는 산 아래에도 있었다. 떼로 모여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무더기 무더기로 핀 때죽나무에 살포시 가 닿는다.

2021-05-26

이재명과 윤석열의 운명적 대결 구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재명과 윤석열은 수차례의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흔히 여론은 급변하기 때문에 그 결과의 예측은 어렵다지만 대체로 대선 1년 전 여론이 적중했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여야의 후보로 확정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한 치 앞을 예견하기 힘든 대선 정국이지만 이들은 결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은 민주당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윤석열 역시 그의 입당과 관계없이 압도적 선두를 지키고 있다. 대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예비 점검해 본다.인생 역정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이재명은 불우한 청년 시절 노동현장 참여와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했다. 윤석열 역시 고시의 실패와 좌절 끝에 뒤늦게 합격해 검사가 됐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장을 거쳐 연이어 경기지사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석열 역시 검찰 인사에서 소외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공히 당직과 국회의원직을 거치지 않은 대선 후보이다. 이러한 단순한 경력 구조는 계파와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장점과 조직력의 한계라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다.두 사람이 표출하는 간결한 정치적 메시지도 공교롭게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두 사람의 국정 과제와 비전에 대한 표출 능력도 흡사하다. 이재명은 선거 캠프 격인 ‘성공 포럼’(성장과 공정)을 출범시켰다. 그의 국정 구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윤석열 역시 ‘정의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다 지난주에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민 연대를 창립시켰다. ‘공정’ 사회지향은 두 사람의 공통분모이다. 이재명은 ‘기본 소득’이라는 이슈를 선점했다면 윤석열은 엄격한 법치의 포청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여하튼 이재명과 윤석열의 메시지는 비교적 간결하고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는 것이 현실이다.대선 정국에서 두 사람이 극복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재명은 정치적 판단이 빠르고 신속한 대처 능력으로 시원한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비상한 순발력, 결기까지 갖추어 정치 쟁점을 선점하는 능력은 인정되지만 언행이 불안하다는 비판적 평가도 따른다. 윤석열의 과묵한 표정과 뚝심, 간결한 정치 메시지 전달력은 그의 소신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검찰 수장 경력만으로 대선 후보로 적합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재명은 자신에 대한 골치 아픈 송사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윤석열은 장모의 가족 소송이 완전히 해명될지는 의문이다.현재로서는 이재명이 여권의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윤석열은 후보 선호도는 높지만 정당의 지지 지반이 어디인지 분명치 않다. 그의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국민의 힘 입당, 제 3 지대 후보, 야권 후보의 단일화 어느 것 하나 평탄한 길은 아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여야의 공천을 받아 양자 대결로 갈 것인가 아니면 3당의 후보로 다자 구도에의 선거를 치를 것인가. 앞으로의 전개 양상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대선 정국에는 돌발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9월의 민주당과 12월 국민의 힘의 경선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자.

2021-05-26

따뜻한 경북교육 “대안학교 무상급식비 지원”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021년 5월이 끝나려 한다. 비록 코로나19로 많은 것에 제약이 있지만, 그래도 5월은 5월이다. 가정의 달, 감사의 달 등 5월을 수식하는 말들만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하다. 5월의 따뜻함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물로 전달되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를 희망한다.비록 지구가 사람들로 인해 파멸의 길로 가고 있지만 지구의 희망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의 희망일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감사, 배려, 이해 등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데에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되기를 소망한다.이 소망을 현실로 이루는 주체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꼭 이루고야 마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그 능력 또한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 인류를 고통에서 구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코로나19라는 절체절명의 암흑기를 탈출하는 데에 필요한 백신을 만들었다.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코로나19 백신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백신이 있다.그것은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 백신이다. 그 마음 백신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류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야 백신으로 막으면 되지만,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이나,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막을 백신은 아직 없다.긍정의 힘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그 힘을 대표하는 표현이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이다. 긍정을 포괄하는 말이 따뜻한 마음이다. 우리가 따뜻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긍정의 힘 그 이상의 힘을 얻을 것이다.사회 모든 곳에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특히 더 필요한 곳이 학교이다. 왜냐면 학교는 지구의 미래인 학생들의 마음을 키우는 곳이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떤 마음을 기르느냐는 지구 운명과 직결된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할까!민식이 놀이 등 5월에도 교육계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건 사고들로 가득하다. 이런 교육계에 백신만큼 반가운 따뜻한 희망 소식이 있다. 바로 대안학교 무상급식비 지원 소식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참 오래 걸렸다. 대안학교 학생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학생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학생의 범주 밖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경상북도교육청의 용단으로 드디어 대안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학생의 길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당연한 일을 함에 있어 반대도 참 많았다. 그래도 아직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듯 반대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설득시켜 찬성으로 만든 영웅들이 경상북도교육청에도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희망을 준 경상북도교육청의 따뜻한 희망 바람이 희망이 무너진 우리 교육계의 희망 재건에 선봉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 꼭 그렇게 될 것임을 필자는 믿는다.

2021-05-26

그렇게는 대학이 살아나지 않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대학은 죽었다. ‘벚꽃피는 순서대로’ 죽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 대학은 이미 죽었다. 막상 닥친 문제들을 놓고 보면 딱하기는 하다. 폐교위기에 봉착하여 교직원들에게 체불 임금이 쌓여간다니 어쩌나도 싶다. 청산과 파산 소리까지 들리니 큰일이 났구나도 싶다. ‘한계대학’이라는 새로운 단어에는 대학들이 만난 어려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견해 오던 ‘인구격감’ 사태가 실제로 학령인구 연령층에서 전개되면서 대학은 신입생충원에 벽이 생겼다. 대학신입생 모집정원이 고교졸업자수 보다 많아졌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므로, 대학정원을 채우기는 갈수록 힘에 부칠 터이다. 그럼에도 ‘입시지옥’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 현상이 신기하기는 하다.모든 게 돈 걱정이다. 대학의 위기라지만 결국은 ‘재정위기’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학생 수가 격감하여 대학 수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게 아닌가.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어 체불임금이 늘어가면 학교경영이 어려워지고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한계대학들로 내몰려 재산청산에 나서 학교재산을 처분하고 법인이사진 직무정지와 함께 폐교수순을 밟는다. 돈 때문에 생긴 문제를 돈으로 해결해 보려하지만 결국 돈이 모자라 학교는 사라진다는 게 벌어질 일의 전부가 아닌가. 대학을 걱정해야 하는데 결국 돈 걱정에 빠진다. 대학이 무엇이며 학생들이 무엇을 하러 대학에 가고 교수들이 무슨 까닭에 대학에 모이는지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대학이 ‘교육’기관이었다는 자각은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대학의 본질을 고민하지 않으므로, 대학은 이미 죽었다.대학의 문제는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구감소를 비롯한 사회구조적 문제, 대학입시제도를 포함한 시스템의 문제,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기반 정비문제, 대학교육의 필요를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인식의 문제 등 고민해야 할 가닥이 여러 겹이다. 학생수 감소와 대학수입 격감과 함께 닥친 재정위기에만 천착한 제도정비와 입법고민은 대학문제의 본질을 개선하지 못한다. ‘대학교육’을 초점삼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학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 첫 페이지부터 다시 고심해야 한다. 재정문제에 지혜를 모음과 동시에 대학의 본질에 관한 적극적인 고민이 없으면 대학이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본질을 외면한 돈문제 고민은 허망한 제자리뛰기만 반복하게 할 터이다.대학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강의방식이 바뀌고 연구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대학구성원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부터 교육과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일까지 모두 변화해 간다. 등록금의존도에 충격적일 만큼 대학의 수익구조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육부와 관련 기관들도 대학이 가진 문제들을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돈으로 대학교육을 건질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을 살려야 대학이 산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5-26

추억의 싸이월드

싸이월드는 지난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해 10년 만에 이용자 3천200만 명을 모아 전 국민 미니홈페이지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스타그램의 조상’ 격인 토종 SNS를 가리킨다.2000년대 초반 소셜미디어 시대를 연 싸이월드는 PC 기반에서 모바일 시대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부활을 노렸으나 실패했고, 2019년 10월에는 폐쇄됐다. 싸이월드가 경영난으로 서비스를 중단했을 당시 기준 회원 수는 약 1천100만명, 이 가운데 도토리를 1개 이상 보유한 회원 수만 276만여 명이었고, 이들이 남긴 도토리 잔액만 약 38억4천996만원이었다. ‘도토리’는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를 꾸밀 스킨 또는 아바타를 사거나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을 구입하기 위한 사이버 머니로 싸이월드 운영 당시 1개 100원에 판매됐다.그랬던 싸이월드가 오는 7월 서비스 재개를 앞두고 25일부터 도토리를 전액 현금으로 환불해주고 있다. 싸이월드 운영권을 갖고 있는 싸이월드제트는 25일 오후 6시부터 환불에 나섰다. 환불절차는 싸이월드 과거 이용자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자신이 가진 도토리 개수를 확인한 후,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자신이 가입한 개인계좌로 현금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당시 문화상품권이나 각종 마일리지로 충전한 도토리도 환불 대상으로 포함됐다. 또 ‘싸이월드 코인’으로 바꿔주는 ‘진화된 도토리’를 선택할 경우 기존 잔액의 2배를 코인으로 바꿀 수 있어 싸이월드 과거 이용자들이 묵혀둔 만큼의 이자를 챙길 수 있다.새롭게 부활하는 추억의 싸이월드가 과연 ‘싸이월드 감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 지 흥미롭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26

노마스크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두 정상의 마스크 벗은 모습이다. 이른바 노마스크 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171분 동안 마주한 노마스크 정상회담을 두고 매우 기분 좋은 일로 소회를 밝혔다.두 정상의 노마스크 회담은 백신을 맞으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인에게 백신접종의 중요성을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기도 했다. 또 코로나19에 대한 자신감을 은연중 드러낸 모습이라 하겠다.얼굴의 3분의 2를 가리는 마스크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자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멀게 했다는 지적도 자주 나왔다. 마스크 쓰고 두 눈만 드러낸 채 상대방을 바라보면 상대와 마음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얼굴의 표정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일종의 표현이다. 한미 두 정상의 노마스크 회담은 마스크를 벗은 모습 자체로 웃음과 여유를 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미국의 언론들은 최근 백신접종을 맞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면서 미국내 립스틱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립스틱 가운데 마스크를 써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제품과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제품들이 인기라 했다.마스크를 벗는 나라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아직 노마스크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우리의 처지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코로나로 아동들의 마스크 쓰기가 그들의 언어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마스크를 쓰다보면 소통 기회가 줄면서 성장기 어린이의 언어발달 능력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다. 노마스크에 대한 염원이 더 커지는 결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5-25

집을 수리하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중량 목구조로 신축한 지 어언 7년. 벽면이 들뜨고, 그 사이로 습기 들어오고, 유리창 없는 베란다에는 비바람으로 물이 고이기도 한다. 손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와중에 참새들이 극성하여 지붕 틈새마다 둥지 틀고 새끼 키운다고 야단이다. 수소문한 끝에 정직하고 성실한 시공자를 만나게 됐다.“전체적으로 최소 2천500에서 3천 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네?! 승용차 한 대 값이네요!”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애초 집을 지으면서 신중하게 숙고해야 할 것인데, 워낙 단과반이 체질이라 속도전으로 임한 것이 화근이다. “저는 야맵니다!” 그 말 한마디에 훅 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다. 시골에 목조주택을 신축하는 일은 적잖은 배포와 과단성이 필요하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밀고 갔다.짜장과 짬뽕 사이의 선택이 어려운 것처럼 건축업자 선택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단박에 던져버리고 “잘해봅시다!” 한 마디로 일사천리 밀어붙인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은 빼놓지 않고 향수(享受)한 까닭이다. 하지만 집도 사람처럼 늙는다.늙고 낡아가는 집을 방치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노자는 그것을 가리켜 “합포지목 생어호말(合抱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나무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이번에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손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여러 근심 물리치고 “해봅시다!” 하고 수리를 결정했다.꼼꼼하고 매사에 치밀한 성품의 박 대목은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을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마당의 초목 재배치까지 일러준다. 내가 가꿔온 마당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나로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사 와서 심은 여러 나무며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그것을 제때 손보지 않은 탓에 혼란하다는 것이다.집을 손보면서 집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누추해지기 전에 요모조모 뜯어보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도 누추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만큼 앞서서 질주하는데, 나만 낡은 것을 고집함도 희극적인 일이다. 수구와 보수가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시대착오적인 것을 전통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유연한 자세로 대상을 보고, 변해가는 세태를 주목하면서 나의 삶과 자세를 반추해보는 일은 늦게 늙는 기본이다. 나이 들어서도 천방지축 시대를 앞서가려는 것도 우습지만, 앞장선 사람들을 꽁무니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도 차마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21세기에 가마나 당나귀 타고 나들이하겠다는 것과 무에 다른가?!집수리가 말끔하게 끝나면 마당 정리는 스스로 감당하려 한다. 방아쇠 손가락만 아니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습하고 더운 주말 오후가 서서히 저문다. 창밖에 새 운다.

2021-05-25

서른 즈음에게

스물 한두 살 때 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술을 여덟 번(하루에 두 번 먹던 날 도 있었으니까)쯤 먹던 개망나니 시절, 학교 과방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 난 후, 이전 세상을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처럼 스스로도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시절 말이다.“형, 형은 정말 서른까지만 살 것처럼 사는 것 같아요.”“그래? 그럼 그러지 뭐.”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아주 많은 나이처럼 생각됐고, 서른 살 이후이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른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그토록 느리게 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건 몰랐다. 지독히 안 가던 하루가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흐르더니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서른이 넘어 있었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걸 어린 시절엔 몰랐다.커트 코베인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윤동주, 이상. 그들보다 좀 더 산 나는 별다른 업적 없이 팔리지도 않는 것들 몇 개 만들고 허송세월 하고 있었다. 공부는 했으나 당장 아는 게 없고, 사랑은 했으나 당장 아무도 없는 나의 서른. 그래서 그 해에 나온 내 앨범 제목이 ‘설은’이었다. 낯설고, 설익고, 서러운 나이인 것 같아서.시간은 조금 더 흘러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할 때 이십대 칸 옆의 삼십대 칸에 체크를 하는 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느 날 서른을 앞둔 가까운 동생 하나와 소주를 한 잔했다. 돌아보니 후배의 질문에 답하던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형, 내가 이제 곧 삼십대야.”“그러네. 좀 조급해지나?”“그런 건 아닌데. 어때? 삼십대는?”나는 갓 서른이 되었던 때었다면 하지 못했을 대답을 했다.“재밌어. 난 이십대보다 더 좋아.”진심이었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의외로 이십대보다 재미있다. 그때처럼 온갖 것들이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안목과 취향이라는 게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재밌는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알고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또 생각해보면 이십대 내내 나는 얼마나 궁핍했는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만 원 짜리 한 장을 술값 계산하는 친구에게 쥐어주고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넘어가다 붙잡혀 과태료 통지서를 끊어야 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처럼 나와 우리들의 이십대는 곤궁하고 서글펐다.지금이라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연애는 또 어땠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김광석 노랫말대로라면 나는 이십대 내내 사랑 한 번 못 해본 가련한 인간일 것이다. 안 아픈 사랑이 없었고 그 앞에 안 서툰 순간이 없었다. 삼십대의 그것은 그때처럼 좌충우돌하는 맛은 없지만 그보다는 평화롭고 때때로 못지않게 뜨겁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슬픈 일은 아닌 모양이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서른이 서러웠던 것은 단지 서른쯤에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스스로 무언가 이룰 수 있기나 한 나이인가. 십대까지의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인생이었다고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그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착실하게 십대를 마친 뒤에 맞이한 이십대는 비로소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일 뿐이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이룬 비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이 별난 것이지, 누구에게나 시작은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의 순간일 뿐이다.서른을 눈앞에 둔 그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십대보다 좋은 삼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에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두를 것 없다고. 지금부터라고.

2021-05-24

소설 쓰기의 즐거움

왜 소설을 쓰는가? 그 질문에 굳이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정말 그럴까?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쓴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가.’문학을 전공하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문학작품이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문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대학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안고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한 글쓰기를 가르친다. 마음 한구석에서 양심이 소리친다. 이게 옳은 것인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는 아이들의 문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기성의 틀에 욱여넣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일까? 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하다.나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배웠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고 위대한 작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독자는 진정 자의적으로 문학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가?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 책의 겉표지는 화려한 작가의 약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이 작가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모두가 알 만한 유명인이 이 작품을 얼마나 감명 깊게 읽었는지. 그것은 책을 비호하고 있는 굉장한 껍데기이며 선택을 종용하는 목소리다. 신춘문예 역시 그런 시스템이다. 심사에서 운 좋게 선택받은 사람이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수많은 문학상은 문단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세상에 쏟아지고 가지각색의 서사가 범람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글 자체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될까?등단을 하고 몇 년간은 그 사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 역시 그러한 시스템의 수혜자였으며 내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문예지에 글을 발표하고 나면 악몽을 꿨고 작은 지적에도 몸을 움츠렸다. 나는 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해. 적확하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써야 해. 독특한 소재를 찾아서 다층의 서사를 구축해야 해. 그래야만 인정받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어.그때의 나는 단조로운 삶과 미진한 재능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았다.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소설 쓰기만으로 잊을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예술이라는 가치보다는 내 삶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다니.그러다 한 가지,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고통의 과정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단순한 재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컴컴한 미로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 욕망이나 충동에 가깝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안에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나름의 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지난한 행위가 쓰기다. 글을 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것. 이후에 남는 건 일련의 발자국이다. 작업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박제된다. 시간은 흐르다가 끝나기 마련이지만 소설의 서사는 차원의 벽을 넘어선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과거의 망령에 조언을 듣고 미래의 인류와 소통하는 일, 상처를 입고 치유 받는 일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에 매료되었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흔쾌히 선택했다.이것은 비단 소설 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지점을 향해 간다. 가끔은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온 힘을 다해 당도한 끝이 허무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즐거움’이라고 이름 붙이자. 그 경쾌한 단어를 원동력 삼아서 어리석고 부당한 세계를 향해 기꺼이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1-05-24

자식의 부끄러운 사랑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정철 ‘훈민가’중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에 이어 ‘어버이 날’이다. 3·4대가 한 집에 모여 살던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에 모자가정, 나 홀로 가정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모두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효행이 쉽지 않다.큰아들은 포항에, 작은아들은 서울에, 큰딸은 부산에, 작은딸은 대전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님께 한 번 더 찾아뵙고 한 번 더 전화를 해야 한다. 자식들은 알아야 한다. 좋은 옷 사드리고, 용돈 많이 드리고, 맛있는 음식 사드리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면 ‘효도를 잘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효도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물론 많은 용돈,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의 행복과 편안함 그리고 안위를 더 궁금해 하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바로 전화 한 통을 하자. 퇴근해서 한다고 미루지 말고 바로 전화를 하자. 부모님은 자식 걱정에 오늘도 늙어 가신다.코로나19가 2년째 계속되면서 마스크 시대, 줌의 인터넷 비대면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모임 금지라는 희귀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어렵고 힘겨운 전쟁 상황 속에서 가족이 같은 지역, 같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다면, 수시로 만날 수 있다는 평범한 일상이 최고의 행복이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정상이 비정상으로 느끼는 요즘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종이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는 삶의 이치 앞에서 그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이 최고의 일이다.그러니 이번 가정의 달 5월에는 특별히 부모님께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글처럼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섬길 일 하는 효도하고 부모님 가신 후에 눈물을 흘리는 회한의 아픔은 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이 10년 만에 배 이상 늘어 점차 줄어드는 세계 추세와는 반대인 실정이다.부모님께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해야 한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제사상에 과일에, 고기에 평소 즐겨 드시던 것을 차려 놓고 효도라고 생각하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살아계신 부모님께 자식의 도리를 똑바로 해서 후회하는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부모님께 효보다 크고 값진 것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과 대화가 필요하고 자식과 손자의 얼굴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가장 큰 불효에 해당된다. 부모님께 설과 추석, 생신만 챙기는 현실이 부끄럽다.5월 가정의 달이 다 가기 전에 지금 바로 전화해서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바로 부끄러운 자식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1-05-24

듣는 책, 읽는 그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많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초록의 잎새가 일제히 손 흔들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오리가 몸짓하며 금계국 노란꽃의 반김이 환호처럼 보인다. 차르륵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와 두 바퀴가 굴러가는 윙윙거림,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정겹고 시원하기만 하다. 거기에 한 쪽 귀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되면 기분은 때에 따라 날아갈 듯 신나기도 한다.그렇게 자전거 타는 재미(?)에 빠져 즐겨 타면서 올해 들어서는 이어폰으로 음악 대신 책을 듣는 쏠쏠함을 누리고 있다.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책을 귀로 듣다니?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책 읽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아닌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정말 책을 읽듯이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유익할까?이른바 귀로 듣는 책, ‘오디오북’의 등장 덕분이다. 오디오북이란 책을 음성으로 낭독해 눈이 아닌 귀로 듣는 디지털 콘텐츠이다.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비단 책만이 아니라, 방송이나 뉴스, 학습강좌 등의 왠만한 내용도 거의 모두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보거나 들을 수 있다. 기술의 혁신과 문명의 진보가 갈수록 인간생활에 이로움을 더해주고 있다.바쁜 현대생활에 쫒겨 책을 가까이하기 힘들어지면서 독서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에 오디오북 같은 새로운 독서방법이 주목받고 있다.특히 독서시간이 부족한 바쁜 직장인들에게 최적의 독서방법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시대에 비대면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다른 일을 하면서도 책의 내용을 들을 수는 오디오북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없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며,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등을 적당히 넣어 극적인 효과까지 낼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출퇴근이나 청소, 빨래, 운동, 식사 등을 하면서 청각적인 독서를 하며 상상의 나래를 무한정 펼 수 있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필자는 주로 ‘책 읽는 다락방J’가 들려주는 음성을 즐겨 듣는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라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등의 에세이를 부담 없이 들으며 페달을 밟다 보면, 30여분의 출퇴근 시간이 짧게만 여겨진다. 그래서 간혹 퇴근길에는 연일이나 대송, 강동, 안계 등지로 돌아오곤 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담(詩談)을 들으며 들꽃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들판의 정경을 시처럼 읽기도 한다. 또한 102세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와 ‘선하고 아름다운 삶’ 등의 인생강연을 들으며 내 삶의 노른자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한다.요즘은 이처럼 보고 읽는 것과 듣고 그리는 감각의 영역이 서로 넘나들면서 융복합적인 콜라보로 다양한 콘텐츠를 연출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채로운 멀티미디어 문화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취향이나 목적에 맞는 아이템으로 두루 활용하고 접목하면 자신의 삶에 크고 긴요한 도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1-05-24

땅 속 유적의 씨앗으로 엿보는 신라인의 정신문화

안소현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우리는 반려식물을 가꾸고, 꽃다발을 선물한다. 봄꽃놀이를 즐기며, 숲에서 휴식과 위안을 얻는다.이렇듯 식물은 우리에게 정신적 풍요를 선사한다. 땅 속 유적에서 발견되는 씨앗과 열매를 통해 옛 사람들은 어떤 식물을 자원으로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선조들의 옛 생활상을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불에 탄 쌀이나 도토리를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적에서 발견되는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먹거리 혹은 도구로 만들어 쓰는 실용적인 쓰임 외에도 옛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성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신라의 왕이 대대로 기거했던 왕궁인 월성(月城·사적 제16호). 해자(垓字)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외부와의 경계로 삼기 위해 성벽 외곽에 땅을 파 만든 도랑이다.월성 해자 발굴조사에서 확인되는 과거의 씨앗 중에, 신라인의 머릿속, 마음속 식물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지금까지 월성 해자가 조사된 구역에서만 2만개가 넘는 가시연꽃의 씨와 다양한 종류의 수생식물 씨가 출토됐다. 약 1600년 전에 가시연꽃을 비롯한 수생식물 군락이 해자에 자랐음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해자의 수심과 주변 환경이 어떠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가시연꽃은 오래된 연못이나 저수지에 주로 자라는 한해살이 식물이고, 지름이 1m 이상으로 크게 자라는 가시투성이의 둥근 잎을 수면에 띄우고 생활한다. 식물체 전체가 가시로 덮여 있고, 여름에는 자주색의 꽃을 피우는 가시연꽃은 사진 촬영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다.가시연꽃의 씨는 검인(芡仁)이라 하여, 왕실 제사를 지낼 때의 제사 음식으로 올려졌다. 가시연꽃은 한 개의 열매 안에 100여개의 많은 씨가 영글어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고도 한다.또한 신령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징표로서 땅과 물에서 난 다채로운 식재료를 바치는 의미에서 못(澤)의 산물로서 진헌된 것이라 여겨진다. 옛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국가제사에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신라시대의 상황은 문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필자는 얼마 전 절기 상 춘분(春分)날, 신라의 김(金)씨 임금님께 제를 올리는 행사인 춘향대제를 취재하기 위해, 경주 숭혜전(崇惠殿·경북문화재자료 제256호)을 다녀왔다.전통을 계승하려는 참봉단의 정성과 노력으로 특별히 올해의 제사에는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검인(가시연꽃 씨), 능인(마름 열매), 진자(개암나무 열매)를 제사 음식으로 올리는 뜻 깊은 자리였다.월성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씨앗이 1600년 전의 옛날에도 신라 임금의 제사에 이용됐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해자에 남겨진 씨앗은 왕궁에서 심고 가꾸어 이용되었던 식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아마 신라인들도 가시연꽃의 씨를 정성껏 채집해 선대의 임금을 기리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을까.자(紫)색은 신라인에 있어 특별한 색이었다. 왕족과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이 자색의 관복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귀한 색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왕궁의 못에서 자주색의 꽃을 피우는 가시연꽃에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또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자료는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은 잣이다.보통 우리가 먹는 잣의 부분은 딱딱한 껍질 속의 종자에 해당한다. 먹고 난 후의 남겨진 흔적이라면, 딱딱한 씨껍질을 깨부순 파편의 형태로 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해자에서는 같은 위치에 정교하게 구멍을 뚫은 잣 껍질이 여러 개 확인됐고, 끈 같은 것에 꿰어서 이용한 무엇인가로 추정됐다. 장식용이었을까, 아니면 염주 알처럼 이용된 것일까.귀한 식재료를 먹지 않고, 가공하여 다른 어딘가에 이용했을 신라인의 의도가 궁금한데, 그것을 바로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지금도 필자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잣 껍질을 꿰어서 쓰는 풍습이 있을지, 또 옛 문헌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찾아보고 차차 밝혀나가야 할 부분이다. 잣은 하나의 솔방울에 수많은 씨를 맺는 식물로, 자손 번창의 의미가 있어 지금도 껍질을 깐 잣은 결혼식 폐백음식에 이용되기도 한다.땅 속 씨앗을 찾아내고 조사하는 일, 식물에 얽힌 전통 풍습에 대한 조사 연구를 통해 옛 사람의 마음 속 식물의 의미를 발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