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학에 있어서 두 이론이 있다. 양적성장이론과 질적성장이론이다. 피터 와그너와 맥거브란과 같은 학자는 양에서 질이 나온다면서 양적성장이론을 내세웠고 반면 독일 신학자 이말테 교수와 같은 분은 양은 질의 저하를 가져온다면서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 초기 한국교회는 양적성장이 필요하였기에 양적성장에 매달렸다. 덩치가 크면 힘도 세다는 물리적 논리를 교회론에 적용하여 교회도 몸집이 크면 힘도 세어진다고 하여 양적성장에 전념했고 성공했다. 그런데 1990년을 정점으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하고 지금은 성장이 멈추거나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질적 성장학자들이 우려한 대로 양은 질적 저하를 가져와서 교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양적성장이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에서 질을 추출해내지 못하여 균형성장을 이루지 못함에 있다.
이런 문제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양적성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에 질이 따르지 못해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양적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몸은 성장했는데 머리가 따라가지 못함이고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먹는 것은 아직 젖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성숙이 따라야 하는데 성장만 있고 성숙이 없는 미성숙의 기형 사회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게 살라”고 했다. 뱀은 중동 신화에서 지혜의 신으로 자주 나타난다. 뱀의 지혜는 허물벗음에 있다. 뱀이 허물 벗는 이유는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나는데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은 자라나지 않아 그 커진 몸이 껍질에 갇혀 결국 죽게 된다. 뱀이 살려면 몸에 맞지 않은 껍질을 벗고 성장한 몸에 맞는 새로운 껍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허물벗기이다.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패러다임 쉬프트 즉 인식체계의 전환이다. 껍질은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껍질이 몸에 맞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몸을 조여 죽게 한다. 그래서 뱀은 성장 속도에 따라 몸에 맞지 않은 껍질을 벗겨내고 새로운 껍질을 입는다. 뱀의 지혜는 바로 허물벗기에 있다.
우리는 지난 세월 양적성장론이라는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몸을 키웠다. 하지만 커져 버린 몸이 양적성장이론의 껍질에 갇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은 허물벗음을 통해 커진 몸에 입힐 새로운 껍질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