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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과 정치보복

등록일 2022-02-17 19:32 게재일 2022-02-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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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소위 ‘적폐청산’에 전력했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積弊)란, 이명박·박근혜 두 전임 대통령의 모든 정치행위와 그것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의 행적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과오는 적폐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적폐청산 부처별 TF(Task Force) 구성현황과 운용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하자 정부 각 부처들은 조직적으로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국정원, 검찰, 국방, 사법, 교육, 언론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감행했다. 그 결과 1천 여명을 수사해서 그 중 150여 명을 구속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 정부의 부처장은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좌편향 인사들로 물갈이를 했다. 국회의석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공수처법, 대북전단금지법, 5·18특별법개정안, 언론중재법개정안, 임대차3법 등을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분노’를 표명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해야죠”라고 대답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윤 후보는 ‘시스템에 의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할 것이고 대통령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은 ‘적폐가 있었으면 검찰총장 자리에 있을 땐 왜 하지 않았느냐. 없는 죄를 만들어 정치보복을 하려는 게 아니냐. 사과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 청와대와 여당에선 일제히 ‘정치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윤 후보를 공격했고, 국민의힘당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고 맞받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시절에 현 정권의 적폐를 알고도 모른 척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통해 조국 일가 비리수사나 울산시장선거조작,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등을 수사하는 수사팀을 해체하는가 하면 윤석열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총장 자리에서 몰아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터인데도, 시치미를 떼고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가 나열한 현 정권의 적폐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말고도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기, 태양광사업 비리, 탈북주민 강제북송 등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적폐라는 것이다.

노무현을 수사한 것은 정치보복이고, 이명박·박근혜를 감옥에 넣은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논리는 적어도 과반수의 국민들에겐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다시 야당대권후보에게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내가 하면 적폐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이 초지일관 견지해온 ‘내로남불’의 결정판으로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만의 일시적인 정신승리일 뿐, 남에게 휘둘렀던 적폐의 잣대가 결국엔 자신들에게도 돌아올 거라는 불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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