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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눈으로 보는 믿음과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의 몸이 10할이면 눈이 9할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우리의 일상은 아침에 눈을 뜨면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저녁에 잠자리에서 잠자기 전까지는 거의 모두 보는 것들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본다는 것의 의미도 단순히 보다(見), 살피다(察), 황새 관(隹)+볼 견(見)자를 결합하여 높은 곳에서 먹이를 찾듯 자세히 보다(觀)와 같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그렇기에 시각정보는 우리 생활에서 필수에 가까운 요소이며 많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이를 잘 활용하여 안전 확보와 편리하고 효율적 생산활동은 물론 지속적인 개선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산업공학에서는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눈으로 보는 관리(VM·Visual management)’라고 부르고 있다.즉, VM은 현장의 생산목표와 과정, 설비, 제품, 작업, 환경, 안전 모든 것에 대하여 누구라도 이상과 정상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여 이상 발생 시 빠르게 조치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상적인 상태가 지속, 유지되도록 해나가는 예방적 관리수단인 동시에 현장의 자율신경을 갖추는 도구인 것이다.눈으로 보는 관리의 첫번째 단계는 생산현장의 깨끗하고 청결한 유지이다. 바닥이나 설비가 오염되어 있으면 이상을 발견하기 어렵고, 특히 조립라인에서는 부품이나 나사 등이 떨어져 있으면 안되는 것을 표준으로 정하여 이상을 바로 알 수 있게 할 수 있다.두번째는 생산에 사용되는 설비와 자재·재료에 대하여 이상과 비정상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설비의 경우 정상 가동을 위하여 점검하여야 할 개소에 대한 이상·정상 범위의 표시를 하도록 하며, 자재·재료에 대해서는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명확하게 표시하여 누구라도 쉽게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세번째는 생산 진행과 작업의 늦고 빠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일의 생산 목표와 진행이 보이고, 본인의 작업에 대하여 표준 순서와 시간이 있으면 늦고 빠름을 알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이를 ‘표준작업’이라 하여 본인의 작업에 대한 표준 순서와 시간을 생산 차량의 종류마다 정하여 작업의 시간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본인이 스스로 판단 로프를 당겨 도움을 청하도록 하고 있다.이렇듯 생산현장을 눈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상기 3가지 요소 외에 현장의 안전확보를 위한 각종 표시와 관리까지 확대할 수 있다.최근 개발, 발전되는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여 ‘눈으로 보는 관리’를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여 산업현장에 구현해 나간다면, 한층 더 편리한 작업으로 생산성 향상은 물론 작업 안전 확보로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임에 틀림없다.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듯이(百聞不如一見), 보는 것이 믿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2021-08-30

NFT 기술

NFT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이라는 뜻으로, 블록체인의 토큰을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가상자산을 말한다.이는 게임·예술품·부동산 등의 기존 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하는 수단이다. NFT는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의 관련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되며, 최초 발행자를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 위·변조 등이 불가능하다. NFT의 시초는 2017년 스타트업 대퍼랩스가 개발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에서 비롯됐다. 이는 유저가 NFT 속성의 고양이들을 교배해 자신만의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게임이다.NFT는 가상자산에 희소성과 유일성이란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진위(眞僞)와 소유권 입증이 중요한 그림, 음악, 영상 등의 콘텐츠 분야에 이 기술이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만든 10초짜리 비디오 클립은 2021년 2월 NFT 거래소에서 660만 달러(74억 원)에 판매됐다.우리나라에서는 고미술 전문 미술회사 조선앤틱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청자인 ‘청자상감연화학문매병’을 NFT로 제작해 NFT 마켓플레이스 메타파이에서 경매를 진행 중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간송미술관과 손잡고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속 장수를 상징하는 학 문양이나 신사임당 그림 ‘묵포도도(墨葡萄圖)’속 번창을 의미하는 포도, 고려 31대 왕이었던 공민왕의 ‘이양도(二洋圖)’ 속 복을 기원하는 양 등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38종의 NFT 그림 카드를 발행, 판매 중이다.간송미술관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을 NFT로 발행, 1개당 1억원으로 100개 한정 판매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가상화폐 시장과 함께 커지는 NFT시장도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변화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30

사과하지 마세요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릴 때 앞에 사람이 가로막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죄송하지만 길 좀 비켜 주시겠어요?’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다고 길을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히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 길을 막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부러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니 시비를 따질 일은 아니다. 그저 ‘나가겠습니다. 비켜 주세요.’ 하면 될 일이지 굳이 ‘죄송합니다’를 붙일 일은 없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죄송하다는 말은 그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말일 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찰리 아빠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 사과는 하지 말라고 한다.찰리 아빠는 ‘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라는 책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 책은 20여 년 전 독일의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본 모음집인데, 작가 우르줄라 하우케의 촌철살인 풍자가 사이다처럼 시원해서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게 된다. 여기에 찰리나 찰리 아빠가 직접 나오는 것은 아니다. 찰리 친구인 아들과 그 아빠 둘의 대화만 나온다. 찰리는 아들의 친구이다. 아들은 찰리 아빠의 이야기를 자기 아빠에게 전하는 방식이다. 추가하자면, 찰리 아빠는 노동자 계층이고, 제목에 나오는 아들의 아빠는 화이트칼라 중산층이다.찰리 아빠는 일부러 한 것이 아닌 일이나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갑자기 손님이 왔을 때 옷차림이 엉성하다고 사과할 필요도 없는데, 연락 없이 방문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묻는다든지 라이터를 빌리는 일처럼 별 일 아닌 일에도 너무 쉽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습관에도 반대한다. 찰리 아빠는 사람들이 쉽게 붙이는 ‘죄송합니다’에 들어있는 진정성 없음과 위선을 들춰낸다. 그러나 아들의 아빠는 그런 사과가 교양 있는 문화인의 태도라며 옹호하지만, 아들은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 준 일도 아닌 일에 습관적으로 죄송하다고 해왔다면서 찰리 아빠의 생각에 동의한다.이렇게 건성으로 하는 사과는 잘하면서 정작 사과해야 할 일에는 사과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아빠는 손님 접대할 음식이 적다고 손님에게는 미안해하고 음식 준비한 아내를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놀린 아이에게는 사과하라고 훈육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을 놀린 아이를 때린 아이에게만 사과하라고 하는 교장 선생님도 문제다.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사과하는 일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고의로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치인은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왕따 가해자 연예인은 피해자가 아니라 대중에게 사과한다. 부하 직원에게 갑질한 고위 관료도 피해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사과한다.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사과한다. 정말 사과해야 할 대상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의 책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 어렵다면, 건성으로 사과하는 습관부터 버리는 건 어떨까?

2021-08-30

누가 죄인인가

이바름 기획취재부 지난해 6월 6일 포항교도소 6수용동 하층 26실에서 50대 남성이 숨을 거뒀다. 그가 교도소 운동장에서 쓰러진 지 3일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폭행 흔적이 발견됐고,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20대 남성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국과수 부검 결과에 따라 살인 누명이 벗겨졌고, 법원의 판단에 의해 폭행 혐의도 벗었다. 그는 포항교도소 재소자 사망 사건의 범인이 아니었다.사실 이 남성에게는 살인과 폭행 전과가 있었다. 그날 26실에 있던 다른 재소자들보다 ‘위험한’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가 교도소 내에서 모범생활을 해 수형 등급을 올려 모범수가 됐다는 사실은 그가 살인자였다는 사실과 비교했을 때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깃털이나 먼지만큼이나 가볍고 하찮은 내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 증거나 증언이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도 교도관들도, 검사도 이를 무시하고 징벌처분을 내리거나 기소를 선택하지 않았을까.그들은 합리적 의심을 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의심과 의혹을 객관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했다. 중(重)범죄자인 그가 사실 50대 남성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수차례 옷을 갈아입혔고, 몸을 씻겼고, 비상벨을 눌러 교도관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알렸던 사실조차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에 사로잡혀 교정시설의 진정한 목적이자 의미인 ‘교화’의 현장에서 눈을 감아버린 채 유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운 셈이 아닌가.20대 남성은 법정에서 “제가 가진 2개의 전과가 말하듯, 폭행을 했다면 누가 보든 말리든 상관하지 않고 때리고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인과 폭행 전과가 있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교도소에서 속죄하면서 더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법정에 섰다고 했다.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은 오히려 배우고 가진 자들의 몫인가 보다.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교도소 측의 회유가 있었고, 재소자 방치 등 교도관들의 과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이 칼집에서 꺼내 휘두른 첫 번째 칼날은 엄한 곳을 베었다. 아직 이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포항교도소에서 50대 남성은 왜 갑자기 죽었나. /bareum90@kbmaeil.com

2021-08-29

충격적인 低出産 흐름, 해법 찾아라

심충택 논설위원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연간 출생아 100명 미만인 곳이 지난 2015년에는 경북 군위군·영양군·울릉군 3곳뿐이었으나, 2020년엔 청송군 등 10여곳이 추가됐다. 이들 지자체는 앞으로 몇 개 남지 않은 학교마저 텅텅 비어갈 것이다. 전국 지자체 모두가 정책과 재원을 총동원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출산율이 늘어나는 곳은 별로 없다.지난해 전남 영광군이 합계출산율 2.46이라는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의 전국 평균은 0.84다. 인구유지를 위해서는 최소한 2.1명의 출산율이 필요한데 유일하게 이를 넘어선 곳이 영광군이다.지난 2012년부터 쭉 전국 출산율 1위를 기록한 전남 해남군은 왜 지난해부터 영광군에 1위자리를 뺏겼을까. 감사원이 지난주 내놓은 ‘저출산 성과분석 감사보고서’를 보면,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감사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해남군에서 출산장려금을 지급받은 여성 10명 중 3명 정도가 출산 6개월 내에 전입했으며, 같은 해 출산장려금 지급 종료 이후 여성 831명 중 180명이 6개월 내에 다른 지자체로 전출했다. 해남군은 2012년부터 출산지원금을 기존 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늘렸고, 둘째 출산지원금도 12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늘렸다. 해남군은 지난해 발표된 2019년 합계 출산율에서 1.89명을 기록하며, 1위를 영광군에 내줬다.영광군은 2019년부터 파격적인 출산장려정책을 폈다. 출산지원금이 첫째는 500만원, 둘째는 1천200만원, 셋째이상은 3천만원이며, 이외에도 신생아 양육비, 신혼부부 건강검진, 임신부 교통카드, 출산용품도 별도 지원한다. 최근에는 셋째 아이를 낳으면 최대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지자체까지 나왔다. 창원시는 결혼하는 부부에게 1억원까지 ‘결혼드림론’을 지원하고, 10년 안에 셋째 아이를 낳으면 대출금 전액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감사원은 “지역의 출산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외에도 일자리, 주거, 교육여건 개선 등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모든 지자체가 이같은 여건을 갖추긴 어렵지만, 세종시를 보면 출산율 해법은 보인다. 세종시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1.28명으로 광역자치단체로서는 1위를 기록했다. 특별공급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은 젊은 공직자들이 몰려 있는데다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비율이 거의 100%에 달해 육아여건이 타 지자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다.우리나라와 같은 충격적인 저출산 흐름은 사회의 모든 현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육아 부담과 돈 때문에 결혼마저 기피하는 청년들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국가 모든 자원이 빨려 들어가면, 비수도권 지자체 소멸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정부는 출산율 문제를 국가 존폐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특히 여야 대선후보들은 저출산문제 해법을 주요공약에 반영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있다.

2021-08-29

우산 의전(儀典)

2018년 북미정상회담 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오른쪽에서 걸어 나왔고 북한의 김정원 위원장은 왼쪽에서 걸어 나와 무대 한복판에서 만나 악수를 나눴다. 무대의 중앙은 양국 원수가 동등하다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다. 그러나 국제 외교에서 오른쪽은 상석의 의미가 있다. 미국 대통령이 오른쪽에서 걸어 나온 것은 초강대국에 대한 국제적 예우라 보면 된다.국제간 외교의전은 1815년 비엔나회의에서 원칙이 정해졌고 이것이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정으로 이어져 오늘날 국제사회의 의전관행으로 확립됐다.조선시대 편찬한 경국대전에도 복식, 국가의 전례절차나 조정의 의식, 국빈대접 등에 관한 의전 사항이 규정돼 있으며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한다.지금은 행안부의 정부의전 편람과 관행 등에 따라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의전은 국가적 예법으로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특히 외교관계에서 의전은 각 나라의 문화와 고유예법이 서로 달라 자칫하면 국제적 무례를 범할 수 있다. 국제간 외교에 있어 지켜지는 다섯가지 원칙이 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문화의 반영, 상호주의, 서열, 오른쪽이 상석 등이다. 예컨데 여러나라 국기를 게양해야 할 때 주최국의 국기를 중앙에 놓고 나머지는 영어 알파벳 순으로 한다는 것 등이다.법무부 직원이 차관의 우중 브리핑에 무릎 꿇고 우산을 받쳐든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다. 온라인상에는 의전이 아니라 갑질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급기야 차관이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무원 사회의 나쁜 관행적 의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의전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통한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8-29

준비운동·마무리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 운동할 때 빼먹기 쉬운 게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 운동’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준비운동을 빠뜨리거나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본운동을 마친 뒤에는 피로하다는 이유로 마무리운동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은 대개 가벼운 달리기나 스트레칭이어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하지만 운동에도 순서가 있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은 운동 전후에 챙겨야 할 필수과정이다. 준비운동은 바로 몸이 본운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긴장 완화는 물론 운동 손상을 방지하며 운동기능 향상에도 효과가 크다. 또한 마무리운동은 본운동 후 신체 각 부위의 근육을 풀어주고 피로회복과 재활에도 도움이 된다.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 스트레칭이다. 준비운동으로 스트레칭은 유연성 증가로 운동 손상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무리한 동작이나 운동을 하면 근육이 놀라 근육통에 시달리거나, 심한 경우 근육이나 인대가 늘어나거나 끊어지기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고혈압 환자의 경우 준비운동 없이 갑작스럽게 본운동을 시작했을 때 겪는 부작용은 더욱 크다. 준비운동은 결합조직과 근육, 건을 포함한 체온을 증가시켜 협응력을 강화시켜준다. 반면 불충분한 준비운동은 근육과 건에 염좌를 일으키기 쉽다. 등척성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한 근육과 하지 않는 근육을 비교하면 준비운동을 한 근육이 더 큰 장력에 견디며, 근육의 탄력성도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준비운동이 본운동의 운동능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골프를 쳤을 때와 스트레칭을 5~30분간 하고 골프를 쳤을 때의 비거리를 비교한 실험에서 초보골퍼는 6~15야드, 프로골퍼는 5.8~10.1야드 가량 비거리가 늘었다고 나타났다. 이같이 준비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면 몸의 유연성과 근육의 수축력이 좋아지므로 경기결과도 좋아진다는 게 일반적이다.스트레칭 후 조깅을 준비운동으로 한 그룹과 스트레칭만 한 그룹을 대상으로 발목, 슬괵근, 몸통, 어깨의 유연성을 비교했을 때 스트레칭만 한 그룹보다 스트레칭 후 조깅을 한 그룹에서 발목의 가동범위가 유의한 증가를 나타냈다. 몸통에서는 스트레칭만 실시한 그룹이 비교 그룹보다 유연성의 증가를 보였다는 연구의 결과도 있다. 이처럼 신체 부위에 따라 다양한 연구결과가 보고되지만 두 방법 모두 유연성 증가에는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건강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녀를 대상으로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으로 15분간 스트레칭을 한 그룹과 똑같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그룹의 혈중 젖산 농도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을 하지 않은 그룹은 15분간 휴식을 취해도 젖산 농도가 운동하기 전의 2배 수준에 머물렀고, 반면 스트레칭을 실시한 그룹은 젖산농도가 운동하기 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같이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은 몸에 젖산이 적게 쌓여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비만하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들은 마무리운동이 특히 중요하다. 운동하면 안정할 때보다 심장 박동 수는 대개 2배, 수축기 혈압은 10~20㎜ Hg쯤 올라가므로 마무리운동으로 심장 박동 수와 혈압을 빨리 평소 수준으로 낮춰야 심혈관계에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스트레칭은 운동 손상 재활에도 효과가 크다. 일반적으로 운동 손상 후 5일 후부터는 염증이 가라앉고 회복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에 스트레칭은 재활에 도움이 된다. 손상 부위의 콜라겐 조직을 강하게 하고 신체 부위를 지지하기 위해 조직과 같은 방향으로 자극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근육을 긴장시키고 자극 폭을 넓히는 저항운동도 효과적이다. 근섬유가 서로 엉겨붙지 않고 떨어지게 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운동 상해 중 외상을 입은 직후에 실시하는 스트레칭은 적절치 못하다. 그 이유는 손상 부위가 매우 약하게 변해 있으므로 운동 시 쉽게 단열되기 때문이다. 만약 스트레칭을 하면 다친 조직을 쉽게 잡아 당겨 조직의 손상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상 발생부터 3~5일까지는 얼음이나 찬물로 대사율을 감소시키고 손상 부위의 산소공급량을 줄어들게 하여 세포가 죽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이처럼 운동 상해에 대한 치유과정으로 실시하는 스트레칭은 각 부위별 관절의 가동력 회복뿐만 아니라 근육의 탄성도를 회복하기 위한 기본적 운동이다. 따라서 관절이나 주변근의 치유과정으로 스트레칭을 활용하면 보다 빠르고 부상 재발이 적은 효과적인 회복방법이 될 수 있다.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은 잊어버리고 넘어가기 쉬운 과정이지만 습관화하면 운동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상을 방지하고 운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운동 후 피로회복과 재활에도 효과가 있다. 스포츠전문의나 스포츠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본운동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과 본운동이 끝난 뒤 마무리운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08-29

남편이 ‘남의 편’이 되지 않게 하려면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흔히들 아내들의 모임에서 남편을 ‘남의 편’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고 한다.‘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는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이다.오늘은 남편이 ‘남의 편’이 되는 위태로움을 막고 내 편이 되기 위한 ‘남편 사용 설명서’에 대해 말해 볼까 한다.“남편은 스트레스 대처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아내인 내가 알아야 한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주변 사람(특히 아내)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행동 양식’을 보인다. 즉, 남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면에 집중하고 혼자 있으려고 하기에 혼자만의 물리적 공간이나 심리적 공간인 동굴로 들어가 생각하는 로댕이 되려 한다.왜 이런 경향이 생겼을까? 남편은 태초에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은 사냥을 할 때 강인함을 보여야 한다. 자신의 무능함과 허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사냥꾼 출신인 남편은 아내에게 나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무능이고 허약함이라 생각한다. 조용히 동굴 속으로 들어가 오늘의 사냥 실패를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한다.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면 스스로 동굴에서 내려와 행복한 마음으로 먼저 입을 연다.그런데 아내는 동굴로 숨은 남편을 걱정 한다. 아내는 남편의 스트레스를 덜어 줄 목적으로 “자 그러지 말고 시원하게 털어놓아 보세요. 그러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에요”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최악이다. 오히려 남편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확률이 높다. 심지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남편은 벌컥 화를 낼 수도 있다.또 아내들이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편들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 남편의 실수나 잘못인데도 남편은 끝끝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사과하거나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왜 이런 경향이 생겼을까? 남편은 태초에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의 실수와 잘못은 곧 그가 사냥에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면 내 가족이 굶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가족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사냥꾼에게 있어 의미 없는 삶이 되어버린다.따라서, 남편은 “나는 실수할 수 없다. 잘못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나는 나의 실수나 잘못을 시인할 수 없다. 나는 미안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사냥꾼이다”라고 생각한다.그러다보니 남편은 분명히 자신이 실수나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는 인정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 까짓 것으로 사과할 필요가 있나?”하면서 얼버무린다. 남편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가족을 지키려는 어여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이제 그동안 아내들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남편들의 행동에 대해 아내들이 남편이 ‘남의 편’이 되는 위태로움을 막고 내 편이 되기 위한 ‘남편 사용 설명서’를 드리고자 한다. 많은 아내들이 동굴 속에 들어가는 남편들의 행동을 오판한다. 동굴 속의 남편을 바라보며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ㅁ는 것은 아닌지” 또는 “자기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닌지”를 걱정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내가 이해하는 것이 첫 출발이다. 남편에게 이야기 하는데 남편이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고 느끼면, 그가 아직 동굴 속에 있음을 의미하니, 대화를 중단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남편이 동굴 속에 완전히 빠졌을 때에는 그것에 반응하지 말고 아내는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한다든지 대화를 나눈다든지 쇼핑을 하자. 물론 지나친 쇼핑은 곤란하다. 남편을 가만히 두면 오히려 남편이 훨씬 빨리 동굴에서 나온다.많은 아내는 자신이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듯,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듯, 남편이 실수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란다.때로 아내가 남편에게 “실수나 잘못을 미안하다고 말을 하든지 사과를 해야지, 왜 그렇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그러나 그것이 최악이다. 가만히 두면, 남편은 마음으로 깊이 반성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다. 그러나 나의 남편이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함을 아내가 이해하기 바란다. 남편이 실수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가족을 지키려는 어여쁜 마음의 선의라는 점을 이해하자. 부부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아내는 남편이 동굴 속에 혼자 있는 것을 지켜 봐 주면 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 된다. 이 부분은 지난‘아내의 언어, 남편의 언어’ 칼럼에서 말한바 있다. 아내는 남편의 실수나 잘못을 다그치지 말고 그냥 두면 남편은 뼈저린 반성을 한다. 아내가 남편과, 남편이 아내와,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이해함으로써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이루기 바란다.

2021-08-29

맑은 공기 품은 영덕, 2천만 관광객 맞을 준비

이희진 영덕군수 대게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곳은 우리 영덕군이다. 겨울철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대게는 우리 지역의 대표 특산물이다. 다만 영덕이 대게로만 알려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아 있었다.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탁 트인 바다, 청량함을 가득 머금은 푸른 산, 그리고 맑은 공기를 알리고 싶었다.대게와 맑은 자연환경은 분명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7년간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등 다양한 사업 등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경상북도에서 실시한 2021년 2분기 대기오염 경보제 운영결과’에서 미세먼지농도가 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있다. 2019년 친환경도시 대상을 수상하면서 2020년 ‘맑은공기특별시’ 선포식을 하고 ‘영덕은 공기가 맑다’를 적극 홍보하기 시작하였다.그 결과 지난해 맑은 공기에 이끌려 영덕군을 찾은 관광객이 1천만명에 이르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영덕군 강구항으로 총 32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왜 강구항 이었을까?영덕대게와 맑은 공기를 품은 자연환경이 그 이유일 것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달리는 자동차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답답한 빌딩숲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맑은 공기’를 가진 영덕에 이끌리게 된 것이다.관광객유치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9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1인 평균 1년에 13일을 국내여행을 하며 1일 평균 7만5천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20만명이면 단순히 계산해도 2천400억원 가량을 지역에서 사용한 것으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맑은 공기를 앞세운 영덕군은 1천만을 넘어 2천만 관광객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덕~포항 간 고속도로 조기완공과, 의성~영덕간 철도 등 조기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광역 교통망이 확충되고 나면 접근성이 더욱 향상되어 영덕을 찾는 방문객이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앞으로 늘어나는 관광객에 대응하기 위해 과감하게 민자유치 활동등도 펼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영덕아이 대관람차, 해상 케이블카, 베스트웨스턴 영덕호텔, 삼사 호텔리조트 등 약 4천억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내며 관광 시설 인프라 조성을 위한 토대를 다져가고 있다. ‘하루 더 영덕에 머물고 하루 더 영덕에서 좋은 추억’을 쌓게 하기 위해 노력중인 것이다.코로나로 관광의 패러다임이 회복과 개별화로 변화되고 있으며 영덕도 발 맞춰 가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에 선정된 인문힐링센터 ‘여명’을 중심으로 웰니스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영해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전국 언택트 관광지 100선에 선정되어, 영덕이 새로운 힐링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영덕이 가지고 있는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발굴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의병항쟁의 상징인 신돌석장군, 고려말 고승인 나옹왕사등 다양한 역사 이야기들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영해 괴시마을은 전국 8번째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영덕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는 입증이 되었다.국민 누구나 지친 일상을 벗어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영덕, 역사와 문화를 꽃 피우고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영덕을 만들어 2천만 관광객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21-08-29

담백하고 간결하게

해가 뜨기 전 출발했다. 고요한 숲에 우리 발소리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일찍 잠을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7번 국도를 달리니 바다에 아침노을이 붉다. 동해에 잠겼던 해가 몸을 막 건져 올려서인지 바다와 주위의 구름까지 물들여 놓았다.가을 여행길에 어울리는 곡을 틀었다. 어제 음악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노래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우~돌아선 그 사람 우~생각나네~’ 정경호의 ‘회상’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떠나버린 여자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읊조리듯 부른다. 진짜 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부르는 열창이 아닌, 배우가 기교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백한 수필 같아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한 번 더 들었다.예배시간에 이런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순서에 맞춰 강대상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선 집사님, “예수님 우리 집에 멸치젓갈을 담갔는데 지금 딱 맛이 들었으니 한 번 오셔서 따뜻한 밥 한 숟갈에 얹어 맛보아 주세요. 그리고 베란다에 들여놓은 소국이 한창이니 향기도 함께 맡아 주세요.” 시를 써와서 낭독하듯 들려주는 기도가 생전 처음 듣는 기도라 가만히 고개를 들어 어떤 분이신가 하고 살폈다. 보통 장로님들은 나라 걱정으로 시작해서 태풍이 쓸어간 곳의 피해주민 안부를 챙기고, 목사님 말씀에 은혜가 넘쳐나길 염원하며 긴 기도의 끝을 맺는다. 그 많은 기도 중에 몇 해 전에 들은 그날의 기도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건 아마도 그 집사님의 기도가 예수님을 친구라 여기고 드리는 담백한 초대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글도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가 좋다. 한자 말을 주저리주저리 엮어 펼쳐 놓거나 미사여구를 주렁주렁 걸친 어려운 글보다 이야기하듯 쉽게 쓴 글이 좋다. 오늘 찾아가는 숲도 그런 곳이다.사진 찍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 가봐야지 하다 몇 년이 쓰윽 지나버렸다. 이번에는 꼭 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매일 비가 쏟아져 길동무인 남편의 발목을 잡았다. 일기예보를 수시로 찾아보다가 내일이 태풍의 눈인지 하루 맑다고 나왔다. 코로나 걱정도 되어서 사람들 뜸한 새벽에 가서 보고 오자고 부추겼다.7번 국도에서 영덕 상주 간 고속도로에 올랐다. 며칠 내린 비가 하늘로 오르며 구름을 만들었다. 우리가 갈 영양 수비면 방향의 산 중턱에 구름이 걸렸다. 구름 아래 동네 논에 벼가 벌써 알을 채웠고, 고추 고랑마다 반짝 맑은 날이니 식구들 모두 나와 고추 따느라 바빴다.영양 수비면 죽파리 주차장에 다달았다. 대여섯 대 정도 댈 수 있는 주차장이라는 이야기에 우리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 더 일찍 왔더니 다행히 세 번째였다. 차 한 대 정도 올라갈 수 있는 비포장 길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3.2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숲이 나타난다니 천천히 걷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길에 오롯이 남편과 나뿐이었다.며칠 내린 비가 골짜기에 쏟아져 내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시원하게 큰지 귀가 먹먹하다. 한시가 바쁜 매미의 한껏 몸을 떠는소리도 물소리를 뚫고 나왔다. 또 걷자니 구부러진 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코끝에 느껴졌다. 칡꽃 향기다. 세찬 비에 보랏빛 꽃잎을 한 자락 길에 뿌려놓았다. 그 옆에 개머루가 터키옥처럼 파란빛으로 익어간다. 그렇게 물멍을 한참 매미멍을 또 한참, 한 시간쯤 걸으니 어느 순간 어둡던 숲이 환했다. 여기서부터는 자작나무의 세계에요 한다.산 하나가 자작나무의 세계다. 드레스코드가 하얀색인 파티에 초대받았다. 모두가 흰색인 틈에 남편과 나만 색깔 옷이라 확 튀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자작나무가 자신의 순백의 삶을 들려준다. 자작자작, 숲의 목소리는 맑게 끓인 닭곰탕의 맛이다. 막냇동생 백일에 이웃에 돌린 백설기 떡이다. 담백하고 간결하게 하늘로 뻗어가는 문체다. 가을의 문턱에서 듣기 좋은 맞춤 곡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기도이다.산을 내려오며 뺨을 만지니 촉촉하다. 가을이 담뿍 묻어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8-29

이미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윤영대수필가 제16회 도쿄패럴림픽이 열렸다. 22개 종목 539경기에 162개국 4천403명이 참가했고 우리나라는 14개 종목에 15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무관중으로 조용한 가운데 열린 개막식의 주제는 ‘우리에겐 날개가 있다’이고 스타디움은 ‘파라 공항’으로 꾸며졌다. 패럴림픽 엠블럼 ‘아지토스’가 바람에 떠다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한 개막공연을 보면서 진정한 장애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3-3-3박수의 의미도 알았다. 마음-육체-영혼에 용기를 주어 장애인들이 가진 질병에 대한 회복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강인함, 그리고 평정심을 상징한다는 것을….바닥에 표시된 ‘WeThe15’의 의미는 전 세계 인구의 15%가 장애인인 현실에서 ‘장애 차별 종식선언 캠페인’이란다. 입장식에는 휠체어 탄 선수들이 앞장서고 목발 짚은 선수들도 씩씩하게 걸어들어왔으며 얼굴에는 밝은 표정이 가득했다. 우리 선수들도 훈색의 생활한복 차림으로 82번째 들어왔다.이어진 개막식 공연은 ‘한쪽 날개 꼬마 비행기’ 이야기다. 주인공 꼬마 비행기 소녀는 13살, 선천적 신체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어요’라며 오디션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섯 대의 비행기도 모두 장애가 있다. 한쪽 바퀴 없는 비행기는 축구선수였는데 사고로 중도절단 장애이고, 작은 날개 비행기는 선천적 소인증(小人症) 장애이며, 긴 날개 비행기는 지적장애 연극배우이고, 수다쟁이 비행기는 청각 언어장애이며 프로펠러 비행기는 뇌성마비 장애인데도 그 유연한 몸놀림이 놀랍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마음의 눈 비행기는 시각장애를 가진 시인 작가이며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는 비장애인에게는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개회선언 후 패럴림픽기 입장 때, 파라 앙상블 연주에서 왼손 장애인이 피아노 치듯 하는 기타 연주가 신기하고,오른팔 의수로 능숙하게 바이올린을 켜는 간호사와 ‘여우춤’을 추는 자폐증 무용수, 의족 모델, 시각장애 연주자, 하지장애 무용수 등 15명의 친구들이 보내준 응원의 힘으로 마침내 꼬마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오른다.탁구경기에서 두 팔 없는 선수가 나오기에 ‘어떻게 라켓을 잡지?’하였는데 입으로 라켓을 물고 발가락으로 공을 잡아 올려 서브를 넣었다. 스매싱도 힘찼다. 우리 선수도 하지 장애가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비장애인처럼 보였다.우리 선수가 경기를 치르는 14개 종목 중에 배드민턴과 태권도는 처음 도입되었고 육상,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농구는 휠체어를 타고 하는 종목이 있으며 유도는 시각장애인들의 경기다. 평소 자신을 이겨낸 영웅들이 좋은 성적으로 웃음 가득한 꽃길을 걸어오길 기대하며 우리 모두 응원을 보내자.“금4 은9 동21개의 20위를 꿈꾸겠지만 이기든 패하든 마음껏 즐기다 오세요. 패럴림픽 참가로 당신들은 이미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2021-08-29

취향과 공중

조현태​​​​​​​수필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제목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이다. 애완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은 ‘애완’대신 ‘반려’로 표현이 바뀌고 있다. 반려동물 하면 개나 고양이를 먼저 떠올리고는 하는데 워낙 반려동물이 다양해지다 보니 별별 동물이 다 등장한다. 심지어는 뱀이나 거미 또는 곤충도 사람과 함께 실내에서 산다고 한다.나는 개인적으로, 애완이든 반려이든 동물을 사람과 동일시하여 집안에서 동거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만 사람이 특정한 목적으로 길들여 기르는 동물을 가축으로 분류할 뿐 그것이 어떤 종류건 동물이기 때문에 동거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인간우월주위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특히 개의 경우, 한 집에 백여 마리나 기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돼지나 닭처럼 식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다. 설명을 들어보면 다쳤거나 유기견을 돌보는 중이라고 한다.유기견이 사회적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다쳤으면 동물병원으로 가야하고, 유기됐으면 올바르게 담당할 전문인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아무런 준비와 지식도 없이 많은 개를 취급하다보니 주변에 엄청난 불편을 주고 있다. 시끄럽고 악취가 너무 심하다. 악취는 파리를 들끓게 하여 이웃이 대단히 싫어한다. 그렇다고 날마다 싸울 수도 없다. 처음엔 항의도 하고 싸우기도 했으나 이제는 아예 배 째라는 투다. 관계기관에 불편신고를 해도 별 대책이 없다. 공무원이 개인의 물건에 관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어떻게 정보를 습득했는지 시끄럽게 짖지 못하도록 성대절제 시술을 하기도 한단다. 개가 짖는 것은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데 강제로 말 못하게 하는 시술이라니 기가 막힌다. 뿐만 아니라 새끼를 낳지 못하게 중성화 수술도 한다는 사실에 화까지 난다. 그러면서 반려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이런 사람일수록 개를 먹는 것에 극구 반대한다. 식용으로 키워서 필요한 사람에게만 공급하면 소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육우는 고기로 먹을 것이요 젖소는 우유를 먹으면 되듯 반려견은 한 이불 속에 껴안고 잘 것이요 먹고 싶은 사람은 전문 사육장에서 사 먹을 일이다. 기러기를 사육하여 먹어도 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그가 개를 사랑하므로 누구든지 개를 먹으면 야만인이라 낙인찍는다. 냄새 고약하고 시끄럽게 방치하다가 성대절제술이나 하는 사람은 고상한 문화인인가?바라건대,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개인의 취향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전문시설을 만들어 올바르게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이에 앞서 꼭 지켜야 할 것은 개나 고양이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 동물을 키워서 돈으로 바꿀 사람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돈에 상관없이 애완용으로 키우다 싫어지거나 감당 못하여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애완동물이 아니었을 터이다.너무 자기 취향에 빠져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도 잘 한다고 칭찬하며 사료까지 지원하는 모순을 말하고 싶다.

2021-08-29

제 얼굴에 침 뱉는 구미시의원들

김락현경북부 최근 구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A시의원의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동료 시의원 5명이 징계요구안을 제출했다가 반려된 사실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월 23일 신문식 시의원 등 5명은 구속된 A시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을 의회에 제출했다.하지만, 이 징계요구안은 구미시의회 회의규칙 제89조 2항 ‘징계요구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 징계대상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해야한다’는 조항에 의해 반려됐다.그러자 구미참여연대와 구미YMCA, 민주노총 구미지부 등 지역시민단체는 지난 24일 구미시청 현관 앞에서 김재상 의장이 징계요구안 반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기자회견까지 열었다.시민단체가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듯이 공무원 징계 시효는 2년인데 시의원 징계 시효는 5일 이라는 것은 비리를 저지른 동료 시의원을 감싸기 위한 잘못된 규칙이다. 시민단체가 잘못된 현안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땅 투기로 구속된 동료 시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안도 정당한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이러한 회의규칙을 만든 이들이 바로 구미시의원들이고, 그동안 그 혜택을 충분히 누려왔으며, 자신들이 만들고 누린 그 혜택에 대한 규칙도 모르고 징계요구안을 제출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1995년 1월 1일 제정된 구미시의회 회의규칙은 1998년 7월 7일 개정 된 이후 현재까지 11번이나 일부개정이 이뤄졌다. 제8대 구미시의회에서는 2번의 일부개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의 제89조 2항을 개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혜택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징계요구안을 제출한 5명의 시의원이 정녕 그 사실을 몰랐다면, 자신들의 무지를 탓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김재상 의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의장이 시의회의 수장으로서 책임이 막중하기는 하나 원칙과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시민단체는 의장에게 책임을 물을게 아니라 징계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된 5명의 시의원들에게 회의규칙부터 수정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물어야 하지 않을까.구미/kimrh@kbmaeil.com

2021-08-26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낙동강 녹조가 심각하다는 환경단체의 고발이 있었다. 독성물질 검출량이 미국 레저활동 허용기준의 수 백배를 넘는 수준이었다니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토록 심각하게 유해 녹조류로 오염된 물을 대구·경북 시도민이 먹고, 마시고 있다며, 분기탱천한 사람도 많았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환경단체 관계자는 낙동강유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농업용수로 쓰는 강물에 녹조가 너무 심하다 싶어 직접 강물 채수에 나섰다고 한다. 낙동강은 ‘녹조라떼’로 뒤덮였다고 할 만큼 심각했다는 게 그의 증언이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아직도 이 물을 사람이 먹는 음용수나 농업용수로 써도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환경부가 이처럼 주장하는 데는 채수방법 차이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강물의 중앙에서 표층과 중간층, 그리고 아래층 물을 떠서 혼합해 녹조류 수치를 잰다는 것이다. 강 가장자리 표층에는 녹조류가 라떼 거품처럼 뻑뻑한 젤 상태가 돼 있어도 강물이 흐르는 중간에서 채수를 해 검사하니 별 다른 이상이 없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수 지점도 문제다. 환경부의 채수 지점은 상수원 취수구와 상당히 떨어진 지점이라는 얘기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낙동강 녹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낙동강 보를 전면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낙동강 녹조가 보 때문에 유속이 느려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20조가 넘는 혈세를 들여 설치한 보를 녹조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전면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보수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정치적 의도가 일부 포함된 주장이기 때문이다.낙동강 보는 설치할 당시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여름 홍수피해를 막고, 수변공간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농업·공업용수로 쓰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4차례나 감사를 벌여 절차나 예산낭비 등 문제가 지적됐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실시한 감사원 감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보잘것 없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큰 비가 오지 않아 홍수방지 효과를 편익으로 측정할 수 없었기에 두고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더구나 녹조는 낙동강에만 생기는 게 아니다. 4대강 사업으로 정비한 전국의 저수지와 호수에서도 빈발하고 있다. 녹조 범벅이 된 우리 강과 저수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땅히 국력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과제다.이와 관련, 경북도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연구기관들과 함께 지난 2018년부터 86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낙동강 녹조제어 통합 플랫폼’ 개발에 나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효과적으로 녹조를 제거하거나 줄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경북도가 온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녹조 문제 해결에 대한 단초라도 제시하는 성과를 내주길 기대해본다.

2021-08-26

부채(負債)의 함정

코로나 사태로 금융대출 받기가 어려워진 일용직 근로자나 영세자영업자 등만 골라 돈을 빌려주고 이자 명목으로 최고 2천%의 돈을 뜯어낸 불법 고리대금업자가 얼마 전 경찰에 붙잡혔다.이들은 대부금의 상환일을 한 달로 정하고 한 번에 100만∼500만원을 빌려준 뒤 이를 갚지 못하면 한 달뒤부터는 이자 명목으로 하루 10만원의 돈을 받아왔다고 한다. 피해자 대다수가 돈 갚을 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였다고 하니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빈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2분기 기준으로 1조8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해 1년 사이 168조원이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생활고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 등이 겹쳤기 때문이라 한다.특히 국제금융협회는 우리나라 가계대출 비율이 GDP 대비 102.8%로 회원국 61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고 했다. 하반기부터 금융권이 가계대출 규제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대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 될 수는 있으나 가계부채를 줄일 방법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이런 상황에 국가부채도 내년에 1천조원을 돌파할 것이라 한다. 국가부채나 가계부채 등이 위험수위로 치달으면서 경제계 일각에서는 우려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뒷감당이 가능할 때나 하는 말이다. 과도한 빚은 국가나 개인이나 언제든 위험한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돈 빌릴 데가 없는 경제적 약자가 급전을 쓰다 고리대금업자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빚은 국가나 개인에게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8-26

학생 없는 캠퍼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캠퍼스에 학생이 사라진 지 2년째 되어온다.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기타 치며 카드놀이 하던 생각, 체육대회 때 농구경기에서 부상당하던 일, 기숙사 파티에서 노래 부르던 기억들이 아름답게 추억과 함께 인생의 즐거운 편린으로 남아 있다.이제 캠퍼스에는 그런 모습이 없다.대학의 가을학기 개강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강의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4단계 방역시책이 계속되고 있으니, 이번 학기에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기는 또 어려울 전망이다.필자도 2년째 비대면 강의를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얼굴으로 보긴 하지만 만나본 적은 없다. 물론, 온라인 강의의 장점도 적지 않다. 준비만 잘하면 교실의 대면 강의 못지않게 질 좋은 강의도 할 수 있고 토론 등도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또한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강의를 제공하는 교수나 듣는 학생들 모두 편리한 점도 많다.그러나 비대면 강의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 대학은 지식만을 얻는 장소는 아니다. 캠퍼스 생활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고 교수들과 대화를 직접 나누면서 그리고 각종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자기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캠퍼스 생활이다. 그리고 문화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온라인 강의로 지식 전달은 가능하지만 문화의 공유는 어렵다. 문화의 공유는 교과서 학습만으로 되는게 아니며 직접 체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캠퍼스가 비대면 강의에 지쳐가고 있다. 교수회의 교무회의 등도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강의는 물론 졸업식, 입학식도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학생들이 오가는 활기찬 모습이 캠퍼스의 모습이건만 지금 캠퍼스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캠퍼스로 변했다. 교수들도 비대면 강의의 여파로 연구실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든다.일부 교수들은 불필요한 회의나 출장이 크게 줄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교수와 학생, 교수와 교수 간의 대화도 사라지고 침묵이 감도는 것이 캠퍼스의 현실이다.이런 와중에 코로나 확진자 수는 연일 증가하고 있다. 싱가폴처럼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선언할 날은 언제 일까? 독감처럼 코로나와 동반하여 살아갈 수는 없을까?신규 감염자 제로의 시간이 언제 올 것인가? 꽃을 피우고 녹음이 푸르르고 싱그럽던 캠퍼스는 곧 낙엽이 쌓일 것이다.언제 학생들과 교수들이 캠퍼스로 돌아올지 기약은 없고 캠퍼스엔 적막이 감돈다.지쳐가는 캠퍼스는 언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학생없는 캠퍼스는 이제 막을 내리고 위드 코로나로 다시 캠퍼스의 문을 열 수는 없을까? 참으로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고 있다.

2021-08-26

반면교사(反面敎師)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1979년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자 이슬람조직을 중심으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10여 년간 반소항쟁을 벌였다. 그 결과 1989년 소련군이 철수하였으나, 군벌들이 내전을 벌이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갔다. 수도 카불의 무력한 기득권층과 북부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 아편매매 수입으로 횡포를 부리던 이른바 마약 군벌들과 경합하다가 1997년에 정권을 잡았다.집권 후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근본주의 정책은 세계인의 지탄을 받았다. 부정부패 청산을 명목으로 하는 숙청작업과 함께 대부분의 방송국을 폐쇄하는 등 언론을 탄압하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했다. 특히 국제사회를 경악케 한 것은 여성의 교육을 전면 금지하고 모든 여성들을 집안에 감금시킨 탈레반의 조치였다. 부르카(얼굴과 온몸을 가리는 검은 옷) 착용을 의무화한 것은 물론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금하고 외출하는 것도 막았다. 2001년 3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바미얀 석불을 폭파시켜 유네스코와 많은 국가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미국은 9·11 테러 사건의 배후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있는 것을 파악하고 탈레반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탈레반이 그 요구를 일축하자 미국을 위시한 국제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 작전을 단행했고, 그해 12월 탈레반 정권은 축출되었다. 9·11테러 20주기인 지난 4월, 조 바이던 대통령이 20년간 주둔하던 미군의 철수를 선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탈레반이 체결한 평화협정에 따른 거였다. 그러나 철수가 다 끝나기도 전에 탈레반은 다시 수도 카불을 점령해버렸다. 평화협정 따위는 걷어차버리고 곳곳에서 끔찍한 살육을 자행했다. 죽기로 싸우겠다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돈을 챙겨 국외로 달아나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하미드카르자이 국제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국경지역에선 자식만이라도 살리겠다고 철조망 위로 아이를 던지는 여자들도 있었다.미군이 철수하고 아프간이 탈레반에 함락되는 것을 보면서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뿐일까? 황장엽 선생의 폭로대로라면 남한에는 지금 수만 명의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고, 수십 년 전부터 탈레반을 방불케 하는 종북주사파들의 활동으로 이제는 반공·방첩을 주장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로 국민들 대다수가 좌경화되었다. 허구한 날 미군 철수를 외치고, 사드배치를 막고, 한미연합 군사훈련까지 못 하게 하는 등 핵무기를 가진 북한 앞에서 정신적으로는 이미 무장해제를 한 상태다. 군대조차 수뇌부부터 국가수호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이대로 좌파정권이 이어져서 그들의 바람대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하고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대한민국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볼 때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닌 것 같다. 표퓰리즘으로 망한 베네수엘라나 안보와 자유수호의 의지가 없어 탈레반에게 나라를 내준 아프간을 반면교사로 배우지 못한다면 결국 그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1-08-26

사랑의 외나무다리

백후자 수필가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좋소. 대답이 늦은 만큼 신중했길 바라오. 이제 무엇부터 하면 되오?”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두 주인공, 국경을 초월하고 신분을 넘어선 애틋함이 내면에서 고요히 흐른다. 다리 아래로는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개울물이 그들의 마음을 안 듯 모른 듯 무심히 흐른다. 묵계리에서 길안천에 놓인 하리교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연인의 속삭임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송암계곡을 거쳐 송암폭포에 다다르니 시원하게 내뿜는 물줄기가 가슴팍의 땀까지 식혀준다. 폭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자연 속에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만휴정이다. 만휴정 안으로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외나무다리는 개울 하나 건너는 길이에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폭이다. 나보다 일찍 온 연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연인의 모습에서 그 자리에 섰던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보인다. 애틋했던 그 모습과는 다르게 달달하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 장소가 연인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것 같다. 연인들도 이곳에선 드라마 속 주인공 못지않은 멋진 배우다. 얌전하게 또는 깜찍하게 그 순간을 연기하며 즐긴다. 풋풋하고 사랑스럽다.내가 건널 차례다. 여주인공처럼 조신하게 걷는다. 어깨가 좁고 가냘파서 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그녀, 그러나 건장한 사내 못지않게 당차고 용맹했던 그녀가 섰던 자리에서 멈춘다. 시대가 주는 아픔에 사랑마저 아파야 했던 그들의 삶이 찐한 연민으로 자리 잡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사랑타령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건너기엔 아쉬워 나도 여주인공 흉내 내며 추억 한 장 찍는다. 어느새 또 다른 연인 한 쌍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새로 이룰 사랑도 없는 내가 얼른 다리를 건너 만휴정 안으로 들어간다. 안동 만휴정은 조선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앞면 세 칸·옆면 두 칸이며, 앞면 쪽 세 칸은 마루 형태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양쪽 툇간에는 온돌방을 들였는데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번잡하지 않고 소박해 보이나 품위가 느껴진다. 옛 정취를 오롯이 담고 있는 그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가 맑다. 불어오는 바람에 내 안의 탐욕이 모두 실려 간 듯 마음이 편안하다.보백당 김계행은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만휴정에 걸린 편액에 그의 청렴한 마음이 한 구절 시로 반듯하게 깃들었다.‘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寶物有淸白(보물유청백)우리 집엔 보물이 없으니, 오직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니라.’청렴, 이 한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산들바람이 개울물을 타고 올라와 만휴정 우물마루에 앉는다. 보백당 선생이 산들바람과 벗하며 개울 건너 자연의 벗들도 부른다. 물 흐르듯 시 한 수 흘러나오고도 남을 듯하다.만휴정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외나무다리가 보인다. 여전히 사진 찍을 사람들이 띄엄띄엄 줄 서 있다. 다리 위, 마주 선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선 별이 총총히 쏟아진다.“통성명부터.”“아, 나는 고가 애신이오. 귀하의 이름은 아오.”두 주인공의 교차했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가만가만 누르며 다가섰던 그 감정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 감정, 백분의 일도 찾지 못했다. 어찌 감히 그 감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차고 넘쳐 개울물을 타고 흘러 폭포수가 되었는걸.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면 즐겨라. 외나무다리 위에 섰든, 폭포수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섰든 함께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들의 사랑이 그랬다. 사랑이냐, 조국이냐. 그녀는 조국을 택했다. 그는 그녀를 택했다. 그녀는 나라를 지키고 그는 그녀를 지켰다. 둘은 한 방향으로 걸었다. 사랑은 외나무다리를 걷듯 둘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2021-08-25

들꽃이 피는 자리

뒷산에 생강나무꽃이 노란 꽃을 터트리면,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산과 들에는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줄지어 들꽃이 피어난다. 만화방창 봄꽃이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나면 여름꽃이 듬성듬성 벙근다. 가을이면 늦을세라 이질풀, 쑥방망이, 구절초, 국화가 한 시절 만발한다. 겨울이면 산에는 눈꽃이 피고 우리집 유리창에는 성에꽃이 핀다.긴산꼬리풀, 두메고들빼기, 갈퀴현호색, 선괭이눈, 매발톱, 뱀톱, 모싯대, 노랑갈퀴, 층층이꽃, 큰까치수염, 큰뱀무, 노랑투구꽃, 고깔제비, 각시붓꽃, 가래수염, 가지꼭두서니, 개망초, 개별꽃, 검정말, 갯패랭이, 금낭화, 금불초, 기린초, 꼬리조팝나무, 꽃마리, 꽃무릇, 나도개감채, 꽃방망이, 꽃기린, 꽃다지, 꼬리풀, 꿩의바람꽃, 노랑어리연, 노랑물봉선, 노인장대, 노린재나무, 노루오줌, 둥근잎꿩의비름, 들바람꽃, 둥굴레, 돌쩌귀, 동의나물, 딱취, 만주바람꽃, 딱지꽃, 모데미풀, 모래지치, 메꽃,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바위솔….들꽃 이름을 음미해 보면 깜찍하고 재미있다. 어김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색깔, 모양새, 특징 등을 발음에 그대로 살렸다. 들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 같이 독특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앙증맞고 깜찍한 꽃다지, 샛노란 점박이 얼굴로 땅바닥에 착 달라붙은 쇠비름, 돌돌 말린 꽃대가 사르르 풀어지면서 방글대는 하얀꽃마리, 오동통한 잎 사이로 노랑별을 뿌려놓은 돌나물, 꽃잎이 노란 바람개비처럼 빙글대는 물레나물, 하늘 향해 좁쌀을 내뿜는 냉이, 대롱 끝에 하얀 별사탕을 피운 쇠별꽃, 올망졸망 방싯대는 금싸라기 은싸라기 웃음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애틋해진다.”(김이랑 수필 ‘함백산의 봄’ 중)제비꽃은 제비가 날아올 때 피는 꽃이다. 오랑캐꽃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데, 봄 춘궁기가 되면 북쪽 오랑캐가 내려와 백성을 괴롭혔다.그래서 제비꽃이 피면 오랑캐가 내려오고 제비꽃 뒷모양이 머리 테를 드리운 오랑캐 뒷머리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숱한 외침을 받은 수난의 역사가 꽃말에 들어있는 것이다.옛날옛날 강원도 산골짜기 암자, 스님이 부모를 잃은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겨울나기를 미처 못한 스님이 먹을 것을 구하러 어린 동자승을 암자에 홀로 남겨두고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려 암자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모른 동자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동자는 끝내 앉은 채 굶어 얼어 죽고 말았다.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하자 스님은 서둘러 암자로 갔지만, 동자는 죽은 채로 마당 끝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스님은 동자승을 바로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여름,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다. 한여름이 되니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해 동자의 얼굴처럼 붉은 꽃이 피어났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동자꽃’이라고 불렀다.옛날옛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밭을 매던 중, 시어머니가 볼일을 보러 풀숲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다 본 시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옆에 잡히는 호박잎을 손에 잡고 뒤처리를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손에는 호박잎이 아니라 며느리 밑씻개가 잡혔다. 가시 돋친 잎으로 뒤처리를 했으니 얼마나 따가웠을까. 시어머니는 “몹쓸 놈의 풀, 꼴 보기 싫은 며느리년 볼일 볼 때나 손에 잡힐 것이지”라고 원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들꽃이 보고 싶은 날, 들로 나가 들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직이 물어본다. 너는 왜 피느냐고, 그러면 꽃은 그냥 웃기만 한다. 되물으면 그냥 바람에 흔들리기만 한다.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보면 들꽃은 그냥 피지 않는다. 산에 피든 들에 피든 음지에서 피든 마음속에서 피든, 꽃은 다 피어야 하는 까닭이 있다.“별똥별 떨어진 자리에는 노란 민들레가 핀다. 노루가 오줌을 눈 자리에는 노루오줌꽃이 피고 제비가 똥을 눈 자리에는 제비꽃이 핀다. 장끼와 까투리가 사랑을 나눈 자리에는 꿩의바람꽃이 핀다. 사무친 그리움이 진 자리에는 상사화가 벙글고 애달픈 사연이 깃든 자리에는 찔레꽃이 핀다. 서러움 북받치는 자리에는 눈물꽃이 터지고 기쁨 넘치는 자리에는 웃음꽃이 핀다.”(김이랑 수필 ‘함백산의 봄’ 중)할머니 무덤에는 할미꽃이 핀다. 구절양장 한숨 쉬며 넘는 고갯마루에는 구절초가 핀다. 신선이 노닐다 떠난 자리에는 배롱나무꽃이 피고, 범이 낮잠 잔 자리에는 꽃범의꼬리가 핀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노루목 넘을 때 아버지의 등에는 소금꽃이 핀다.이 땅에 사는 민초는 마음을 들꽃에 담았다. 그리하여 들꽃이 피는 자리에는 사람의 마음이 피고 마음이 피는 자리에는 들꽃이 핀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8-25

유에프오와 국가 지배층의 무의식적 원형

강길수 수필가 일찍이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은 그가 쓴 ‘현대의 신화’에서 유에프오(UFO) 문제를 다루었다. 왜 융이 1958년 미확인 비행물체를 심리학의 주제로 다룬 책을 냈을까.전에 논술을 공부하면서 ‘현대의 신화’를 읽었다. ‘융’은 ‘유에프오’ 현상이 미확인 상태이므로 ‘풍문(風聞)’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심리학자로서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하는 심리적 현상’을 다루고 있다. 심층심리학의 분석적 방법이 보증하는 가능한 한 모든 결론을 ‘풍문으로서의 정신적 소산’에서 끌어내고 있다.하늘에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유에프오 현상은, 2차대전 이후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왔다. 1947년 미국 로즈웰 유에프오 추락 사건의 풍문은 그 대표적 사례다. 심층 심리 연구자 융이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에프오 신드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융에 따르면, 유에프오를 인간이 조종한다면 급속한 비행으로 죽을 수도 있다. 이 점이 ‘유에프오’의 풍문성을 증명하며, 정신적 원인을 갖게 된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해리(解離)되었을 때 즉, 의식과 반대되는 무의식의 내용이 생기면 거기에 정신적 원인이 있다. 이때 비정상적인 확신, 환상, 착각 같은 현상들이 나타난다. 냉철한 판단과 비판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무의식은 격렬한 작용을 하여 그 내용이 지각되도록 한다고 말한다.이어 그는, 유에프오 현상을 ‘꿈 해석의 원리’에 따라 해석한다. 사람들에게 지각된 원반 또는 구형의 둥근 대상은 심층 심리학적으로 ‘전체성의 상징’, 산스크리트어로 원(圓)을 뜻하는 만다라(Mandala)에 비유된다. 만다라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한계를 짓는 원, 보호하는 원, 또는 재난 피하기를 소원하는 원으로 나타난다. 곧, 플라톤의 ‘이데아’이래 ‘태양,’ ‘연금술’, 종교들의 ‘신 상징’으로 나타난 원형(原型)상징이다. 유에프오 풍문은 그 물리적인 실재 여부를 떠나, 신비적인 경향을 기피하고 합리적인 정신이 우세한 현대인의 ‘무의식적 원형’이 된다.지금 우리 사회는, 융이 제시한 유에프오 풍문과 다른 형태의 ‘무의식적 원형’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자칫 사회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586으로 대표되는 세대가 국가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나서부터, 국민은 유에프오 신드롬처럼 긴가민가하다. 불안하다. 그들이 어떤 무의식적 원형을 가졌기에….민주화 운동 주역을 자처하는 그들의 행태는, 가히 전체주의를 능가한다. 자신들이 학생 시절 군사독재 체재로부터 억압받았다면, 지배층이 된 지금은 같이해서는 안 된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기 때문이다. 5·18과 세월호가 무엇이기에 연구도 안 되고, 비판도 할 수 없도록 하는가. 도대체 그들의 민주주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라 명운이 걸린 4·15 부정선거 문제에는 왜 눈길도 주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인가.유에프오 풍문의 ‘무의식적 원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재미라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 지배층의 집단 ‘무의식적 원형’은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운다.깨어있는 국민이 일어나야 할 때다.

2021-08-25

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의 재평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광복 76주년 홍범도(1868∼1943) 장군이 먼 이국땅에서 귀환하였다. 그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라다를 떠나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이국땅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시고 사후 7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것이다. 만주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는 영웅적인 전투 승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그의 항일 투쟁을 높이 평가하는데 정작 고국은 그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최고 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서훈 받고 영면에 들었다.평양 출신 홍범도 장군은 머슴살이하는 부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산 후유증으로 모친은 사망하고 부친마저 그가 9살 때 돌아가셨다. 그도 머슴살이를 하다 190㎝의 장대한 기골로 조선군 나팔수로 선발되었다. 그 후 금강산 신계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 비구니스님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2007년 필자도 금강산 신계사를 다녀왔지만 그가 거쳐 간 사찰임은 전혀 몰랐다. 10년간 포수 생활로 그는 총 솜씨가 뛰어나고 산을 잘 타 ‘나르는 홍범도’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 후 그는 의병 전쟁에 참전하여 주재소 습격 등 많은 전공을 세운다. 일제가 그를 회유하기 위해 그의 부인에게 귀환 편지를 쓰라고 강요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순절하였다.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대한독립군이 최초로 일본군에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은 일제의 75사단의 월강 추월대와 교전하여 일본군 175명을 사살하게 된다. 물론 이 전투는 홍범도 장군 단독 전투가 아닌 합세한 독립군 연합의 승리이다. 독립신문은 이 전투에서 아군 장교 1명과 사병 3명만 희생되었다고 보도했지만 이 전과에 관해 일본은 인정치 않는다. 이 전투의 승리는 그해 10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승리로 직결되고 당시 독립 운동가들의 사기를 크게 북돋아 주었다.일제는 이 전투의 패배로 만주에서 대대적인 독립 운동가 색출 작전을 벌인다. 그는 인근 연해주로 긴급 피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집권한 레닌은 그의 항일 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권총 한 정과 군복을 선사했다. 러시아는 그에게 작은 국영농장 콜호즈 책임자로 임명한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고려인 약 18만만 명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한다. 항일 영웅 홍범도 역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디아스포라 신세가 된다. 그는 고려인의 도움으로 극장 수위 생활을 하다 해방 2년 전 세상을 떠났다.홍범도 장군이 고국에 안장되고 최고 훈장이 추서된 것은 늦으나마 무척 다행한 일이다. 북한이 뒤 늦게 홍범도 장군을 평양에 모시려 하였으나 카자흐스탄 당국과 현지 고려인들이 거부하였다. 북한 당국이 항일 혁명의 역사는 온통 김일성 항일 투쟁역사로만 국한했던 편협한 결과이다. 일부에서 홍범도의 공산당 입당 경력과 ‘자유시 사변’시의 행적을 비판하지만 그의 봉오동 전투 공적까지 폄하해선 안 된다. 이는 철 지난 이념 논쟁에 불과할 뿐이다.

2021-08-25

확인 없는 저널리즘은 누더기가 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뉴스가 넘치는 세상이다. 하루 중에도 새 뉴스가 다른 뉴스를 덮을만큼 뉴스거리가 쏟아진다. 미디어가 시민들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뉴스거리라고 간추려 정리하는 기능을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라 불렀다. 매체의 그 기능이 무색해질 정도로 새로운 소식거리가 많다.그럴수록 언론은 책임있는 기사발굴과 취재 그리고 보도에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과 뉴미디어가 범람하여 언론지평이 흔들릴수록 매체는 본연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에 더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언론이 본질적인 소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필자는 ‘사실 확인’이라 부르고 싶다.‘언론의 요소들(Elements of Journalism)을 저술한 코백(Bill Kovach)과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언론의 기본은 확인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하여 기사를 작성하지만, 사실에 근거하고 직간접 취재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보도행위가 있어야 한다. 사실을 벗어난 한 자락의 기사가 초래하는 위험은 상상을 넘는다. 미확인보도, 따옴표언론, 가짜뉴스는 모두 기자가 확인을 소홀히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확인없이 마구 게재된 기사가 만들어내는 피해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언론인이라면 확인하며 글쓰는 일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사실로 확인한 끝에야 진실이 드러날 수 있으며 진정한 알 권리가 확보될 터이다.언론중재법을 두고 걱정하는 소리가 있다. 이해는 하면서도, 국민과 국회가 언론을 무슨 연유로 걱정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일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언론환경이 온라인과 디지털을 수용하면서 기존 레거시미디어의 책임 바른 언론행위가 디지털미디어의 폐습을 오히려 닮아가면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이전에도 물론 부적절한 언론행태가 없지 않았지만, 디지털환경이 펼쳐지면서 그 폐습은 급속도로 자리잡았다. 속도경쟁과 특종문화가 변화하는 매체환경을 만나 ‘확인’은 아예 거추장스러운 일거리가 되고 말았다. 저널리즘의 본령인 ‘사실확인’이 무너진 자리에는 병든 언론이 만연하게 마련이다.언론중재법이 언론재갈법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은 물론, 언론계와 언론인은 이를 계기로 본질을 회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자유의 당당함을 유지함은 물론 충실한 사실확인을 토대로 한 책임있는 저널리즘을 회복해야 한다. 그 어떤 사실확인도 없이 의견과 주장을 게재한 후에 ‘아니면 말고’식의 언론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병폐가 얼마나 깊었으면 오늘같은 국민의 우려를 만났을까 돌아보아야 한다.민주주의를 구현함에 있어 언론의 자유는 기본이 아닌가. 돌아가는 사정을 시민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언론은 사실확인에 성실해야 한다. 언론행위가 구실이 되어 부당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확인을 최우선에 두는 언론행위가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사실확인이 분명한 언론을 기다린다. 언론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선다.

2021-08-25

아기 울음소리 없는 사회

우리 사회가 아기 울음소리 없는 사회로 추락하고 있다. 사람이 한 나라의 국력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인구가 지금의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아파트가 남아돌기 시작해 부동산 불패신화가 무너지고, 줄어든 인구 만큼 소비자 역시 줄어들어 자동차 판매량도, 스마트폰 판매량도 크게 감소하게 된다. 나라를 지킬 군인 충원도 어려워지고, 경찰과 소방관도 턱없이 부족해질 수 있다. 기업들은 인력확보에 비상이 걸릴 것이다.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20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84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의 0.92명보다 0.08명(-8.9%) 감소했다. 이는 1970년 통계작성이 시작된 후 역대 최저기록이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세계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정말 너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인 0.84명까지 떨어졌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만명대로 내려 앉았다.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합계 출산율은 1.61명(2019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들 중 합계출산율 0명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지난해 우리나라는 27만2천3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300명(10.0%) 줄어 역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1970년대만 해도 10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는 2002년에 40만명대, 2017년에 30만명대로 추락했고, 지난해 20만명대까지 떨어졌다.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의 경제성장이나 국력신장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아기 울음소리 넘치는 사회를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25

낄끼빠빠 합시다

‘낄끼빠빠’라는 말은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자”라는 뜻이다. ‘낄끼빠빠’만 잘 해도 어디 가서 욕먹을 일 없다. 사회생활, 특히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게 이 ‘낄끼빠빠’의 지혜다. 학생들 술 마시러 가는 데 꼭 껴서 같이 놀려는 교수님, 친구 커플들 여행가는 데 같이 놀러가겠다는 모태솔로, 결혼식장에 신부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 하객,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오버하는 조연 배우… ‘낄끼빠빠’는 곧 눈치가 있고 없음의 문제다. 염치의 척도이기도 하다.물론 나라고 ‘낄끼빠빠’ 잘 하며 산 건 아니다. 학부 시절 학과에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그 애는 나 아닌 다른 녀석에게 이미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마음을 얻으려고 설쳐댔다. 둘이 놀고 싶지만 학과에 소문 날까봐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로 “병철아 너도 같이 놀자” 한 건데, 나는 혹시나 싶어 정말 적극적으로 열심히 놀았다.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지금 돌아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시간강사가 돼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 수업했던 4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가겠다고 해 나도 마침 제주도에 낚시 가는 일정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숙소와 렌터카를 제공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학비 버느라 아르바이트하며 아끼고 모아 여행 경비를 마련했을 텐데, 졸업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역할은 딱 거기까지여야 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 운전기사를 자청해서는 학생들의 여행 일정 내내 동행했다. 자기들끼리 찍는 기념사진에도 등장하고, 저녁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셨다. 얼마나 불편했을까?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다.그렇다고 끼지 말아야 할 데 끼고, 빠져야 할 데 안 빠지기만 한 건 아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여러 군데 문예지와 문학 단체 등에서 편집위원이나 임원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내 경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형태든 ‘감투’라는 걸 쓰면 사람이 우스꽝스러워진다는 게 내가 가진 아름다운 편견이다. 그 편견이 나를 나로 살게 해준다. 나는 아직도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낄끼빠빠’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난 얼마간 시끄러웠다. 김연경 선수에게 무례한 질문과 감사 인사를 강요한 배구협회 유애자 홍보부위원장이 논란이 됐다. 여자 배구선수 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받는 선수에게 “포상금이 얼마인 줄 아느냐”를 계속 묻더니 배구연맹 총재, 배구협회 회장, 금융회사 회장 이름을 줄줄이 읊어댔다. 그러고는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하라고 강요했다. 그야말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다. 윗선에 잘 보여 출세의 동앗줄 잡으려는 이들의 과잉충성은 언제쯤 사라질까? 익명으로 돈만 보내고 생색은 내지 않는 성숙한 후원 의식은 언제쯤 자리 잡을까?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당내 계파 간 갈등으로 번져 후보 사퇴한 음식평론가 황교익씨 소동도 ‘낄끼빠빠’ 문제다. 후보로서 자격을 갖추고 절차를 준수했다 하더라도 유력 대권후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신의 지원서 제출이 임명권자에게 일종의 ‘청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관광공사 사장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고 했는데, 아무리 의욕이 있고, 또 잘 해낼 능력이 있더라도 더 의욕 있고 더 잘 할 사람에게 양보했어야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9년 강릉국제영화제 구경 갔을 때의 일이다. 개막식에 앞서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됐다. 맨 처음 안성기 배우가 등장해 환호성이 컸는데, 곧이어 국회의원이 레드카펫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고요속의 워킹이 시작되었다. 호텔 사장, 부구청장, 도의회 의원들이 줄줄이 오르자 정말이지 박수는커녕 야유가 쏟아졌다. 이건 뭐 레드카펫이 아니라 수치스런 조리돌림이 되어갈 무렵, 당시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인기 절정이던 김서형 배우가 등장해 죽어가던 레드카펫을 겨우 살렸다. 빛이 난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축제에 정치인, 기업가, 지역유지들이 왜 얼굴을 들이미는 지 모르겠다. 과잉의전은 언제쯤 사라질까? 레드카펫 행사 제안을 받더라도 내가 낄 데가 아니라며 거절할 줄 아는 눈치를 높으신 분들에게 기대해볼 수는 없는 걸까? 제발 ‘낄끼빠빠’ 좀 잘 합시다!

2021-08-24

말 많고 탈 많은 노튜브 존

출퇴근 길, 그리고 잠들기 전 꼭 빼놓을 수 없는 건 유튜브다. 언제부턴가 책 대신 유튜브로 빈 시간을 때우게 됐는데, 택스트를 읽는 것보다 피로감이 덜하고 손쉽게 유쾌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다수의 연예인이 유튜브에 뛰어 들었고, 먹는 방송은 ‘mukbang’이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인 유행을 이끌고 있다. 초등생의 직업 선호 1위도 유튜버라니. 유튜브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일상 가까이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다.며칠 전 유명한 식당 앞에서 유튜버는 받지 않겠다는 안내문을 봤다. 일명 노튜브 존(No-Youtuber zone)이라 부르는데, 말 그대로 유튜버는 식당 입장이 제한되며 이 안에선 어떤 영상 촬영물도 찍을 수 없단 뜻이다.한때 논란을 일으킨 노키즈존에 이어 최근엔 맛집 위주로 노튜브 존이 성행하고 있다. 사전에 합의 없이 대뜸 현장에서 촬영 가능 여부를 묻는다거나, 약속 없이 주방까지 촬영을 하는 무분별한 방송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단 이유에서다. 2019년 한 개인 방송인이 동의 없이 가게 주방에 들어가 점원과 손님에게 피해를 준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유명한 일례로 다수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또한 가게에 들어가 음식이 맛이 없단 평을 남겼고 결국 그 가게는 손님의 발길이 끊겨 폐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엄밀히 말하면 피해를 입히는 방송인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만 있는 게 아닌, 다양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극적인 영상물, 과감 없이 드러내는 콘텐츠로 이슈를 만들어 내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오래전부터 빈번했다. 개인방송에 대한 엄격한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일부 가게가 나서서 노튜브 존을 선언한 것으로 보여진다.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이야길 한다거나, 대뜸 춤을 추거나 과한 리액션으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몇몇 개인 방송인을 본 적 있다. 한때 한 플랫폼에선 길거리에서 예쁜 여성을 발견 하여 외모 평가를 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콘텐츠가 유행하기도 했다.몇몇 개인 방송인은 야외 촬영시 시청자가 후원하면 금액에 맞는 리액션을 장소나 상황 불문 보여준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태도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춤을 춘다거나 과도한 리액션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 개의치 않아 한다.문제는 이 뻔뻔한 행동을 유머로 승화시키고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며, 이를 단순 흥미로 받아들여 즐기는 구독자가 존재한단 거다. 10대와 20초반 사이에서 자주 쓰는 언어나 유행어도 대부분 이들의 영상 속에서 등장한 것인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는 유행어나 성적 조롱은 정말 가만히 듣기 힘들 정도다.그러니 노튜버 존을 내건 식당들의 입장도 이해 간다. 실시간 방송은 주위 손님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할 수 없으니 고스란히 얼굴이 공개 되는데, 이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손님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촬영을 한다고 해도 시청자와 꾸준히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고 식사를 즐기러 오는 사람에겐 충분히 방해 될 수 있다. 더한 문제는 무료 홍보를 약속하며 공짜 식사나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하는 방송인도 있다는 점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무례한 개인 방송인 때문에 양심적인 방송인 까지 모두 난처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엄연히 사업장은 업주가 노력을 들인 공간이고, 진상 고객을 거부하는 것 역시 가게 주인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 출입 금지라는 극단적 상황에 안타까우나, 법으로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니 어찌할 수 없이 택한 선택일 것이다.게다가 노튜브존만 성행하는 것이 아닌, 중고등학생의 출입을 막는 노 유스 존, 카페에서의 공부를 막는 노 스터디 존, 침을 뱉는 다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행위 때문에 등장한 노 래퍼 존 등등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입장을 막는 곳도 있다. 어떤 이유로 특정인의 출입을 막는 곳이 있다는 건 마냥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닌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최선은 나의 태도를 다시금 점검해보는 일일 것이다. 많은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건 어떤 이유든 정당화 될 수 없다.

2021-08-24

팔고(八苦)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윤동주의 ‘팔복(八福)’을 읽노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여덟 번 되풀이되다가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로 끝나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편 곳곳에서 드러나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이 ‘팔복’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도였던 시인이 ‘팔복’의 원천을 ‘마태복음’ 5장에서 찾았을 것은 자명하다.‘반야심경 마음공부’에서 알게 된 사실은 불교에서 여덟 가지 고통, ‘팔고’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에 다른 네 가지가 더 있다는 얘기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고통이 애별리고, 밉고 싫은데 자꾸만 만나야 하는 고통이 원증회고다. 인간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얻고자 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기에 괴로운 것이 구부득고다. 팔고의 마지막 괴로움은 오온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다. ‘색즉시공’이 가리키는 ‘색’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수), 그것이 불러오는 생각(상)과 거기서 발원하는 행동(행)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식) 다섯 가지를 가리킨다. 그 모든 것에 괴로움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인간계는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 죽어가는 기본적인 네 가지 고통 말고도 후자의 또 다른 괴로움 네 가지가 중층적으로 엮어져 있다. 만일 고타마 붓다가 ‘원증회고’를 설했다면, 정말로 놀랄 일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와 평등, 형제애를 몸소 실천한 분이 싫고도 미운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을 설하다니?! 애별리고만큼이나 원증회고는 우리를 괴롭힌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대상을 날마다 대면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구부득고는 21세기 한국인들을 좌절시키는 괴로움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아파트 공화국 시민으로 아파트 한 채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심란하겠는가! 남들 타고 다니는 화려한 외제 자동차는 또 어떤가! 명품 가방과 핸드백 혹은 고가의 보석류를 갈망하는 사람이 그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노자의 ‘도덕경’ 44장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而長久)”내가 생각기로, 가장 커다란 고통은 역시 오온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색’이 불러오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과정과 결과는 언제나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을 가리키는 가장 명료한 근거는 분명 즉자적인 욕망과 욕망을 달성하려는 구체적인 실현방식일 것이다.윤동주는 생에 내재한 이질적인 요소인 ‘슬픔’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아닐까! 욕망하는 자들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태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도로서 ‘슬픔’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영원히’ 슬픈 족속으로 인간을 규정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2021-08-24

둘 중 한 명이 노인인 나라

영국의 풍자작가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인 걸리버가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소인국과 거인국을 차례로 경험하는 이야기다.제1편은 주인공인 걸리버가 키가 6인치도 안되는 소인이 사는 나라로 들어가 경험한 내용으로 꾸몄고, 제2편은 키가 교회 철탑만큼 큰 거인국에 들어가 왕의 장난감 취급당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내용이다.한 나라의 인구 가운데 두 사람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면 과연 믿을 사람 있을까. 아무리 고령화 사회로 진행이 빨리 된다 하더라도 한 사람 건너 노인을 만나는 상황이라면 믿기가 어렵다.최근 감사원의 의뢰로 통계청이 추계한 100년 후의 한국의 인구실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인구절벽을 상상했던 우리의 인구문제가 이처럼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통계청은 2017년 기준으로 출산율과 국제이동, 기대수명이 중간 정도로 유지된다고 볼 때 100년 후인 2117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을 52.8%로 추정했다. 50년 후인 2067년은 49.5%다. 2017년 고령화 비율은 13.8%다.통계적 추정치에 불과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이런 결과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이번 조사에서 100년 후 한국의 총인구는 2017년(5천136만 명)의 절반도 안되는 2천81만 명으로 밝혀졌다.지역별로 보면 대구는 2017년 246만 명이던 인구가 100년 뒤 지금의 22%인 54만 명, 경북은 지금 268만 명이던 인구가 70만 명으로 추락한다. 부산은 342만 명이 100년 뒤 73만 명으로 떨어졌다. ‘걸리버 여행기’에서나 보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놀랍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8-24

장보고와 재당신라인

오늘날 해외여행이나 이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근대시대에는 한 국가 안에서 자신이 사는 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의 통제와 불편한 교통수단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오고가거나 심지어 정착하는 일까지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장보고와 재당신라인들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들이 다른 나라로 건너간 이유와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사람들의 이동 또는 이주는 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대 국가의 성립 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과 현지 토착 세력의 결합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동이나 이주는 보편적인 사건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국가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시작하면 많이 줄어든다. 즉 세금 징수나 노동력이나 병력 동원 등을 위해 인원을 파악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신라인들이 해외로 이주한 사례는 6세기 말부터 등장한다. 587년 귀족의 아들인 대세(大世)와 그의 친구인 구칠(仇柒)이 서쪽 나라로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은 뜻(西遊之志)을 품고 떠났다고 하며, 621년에는 설계두(薛7F7D頭)가 골품제도에 불만을 품고 당으로 건너가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에 참전하기도 했다.이에 신라인들의 이주는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개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816년에 기근이 들자 중국으로 가서 식량을 구한 자가 170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신라를 떠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신라를 떠난 사람들이 주로 정착한 곳은 당의 등주(登州), 초주(楚州), 양주(揚州)였는데, 이곳은 오늘날 산둥성(山東省)과 장쑤성(江蘇省) 일대로 비교적 한반도와 가까웠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신라방(新羅坊), 신라촌(新羅村)은 당에 건너간 신라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이었다. 비교하자면 오늘날 해외에 있는 코리아타운 정도가 될 것이다.당에 정착한 신라인들은 당의 지방통치자인 절도사의 관리가 되거나 신라 및 일본과의 무역 등에 종사했다. 특히 일본 스님인 엔닌(圓仁)이 838년~847년 사이 당에 유학왔던 일을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신라인들이 각종 편의를 베풀어 주고, 입·출국 관련 일을 대신 처리하거나 심지어 그가 귀국할 때 항로를 정하고 배를 운항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신라인들이 당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현지 사정에 밝았으며 바닷길에 익숙했기 때문이다.사실 이들이 당에 정착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670년대 이후 벌어진 당의 정치적 혼란과 755년에 발발한 안록산의 난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국경 밖의 이민족을 통제하던 절도사가 반란 진압 과정에서 획득한 지방 행정 및 군사에 대한 권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통치 구역인 번진(藩鎭)을 만들어 중앙정부와 대립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방 통치에 대한 재량권을 확보했다. 즉 절도사가 지방에 있었던 이민족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또한 부여받은 재량권을 통해 그들 가운데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이 있었던 소위 유력자(有力者) 또는 유지(有志)를 절도사가 등용하여 이민족에 대한 통제를 맡겼던 것이다. 즉 변형된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당 중앙정부의 의지보다 안록산의 난 이후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던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제도화되었다.장보고가 당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당이 이민족이나 그들의 문화를 잘 받아들였던 경향과 관계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당의 국력 약화와 함께 이민족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던 상황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신라는 당시 중앙의 진골귀족들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인해 혼란한 상황이었으며, 호족이라는 불리는 세력이 지방에서 점차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전경효 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이 무렵 서해는 주인이 없는 바다였다. 신라와 당 어느 나라도 서해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장보고는 바다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다. 그런데 해적들은 이 바다에서 무역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납치하여 노비를 삼는 일을 저질렀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들을 퇴치한 것은 바다를 둘러싸고 다투던 경쟁자를 제거한 것이 아닐까?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 백성이나 국민을 위한 다는 명분을 내건 자들이 많았다. 장보고도 해적에 시달리는 신라인들을 구원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신라와 당 어느 나라의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 서해를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한 것일지도 모른다.장보고는 당의 황제, 신라의 왕 그리고 서해의 주인공인 자신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장보고를 비롯해 재당신라인들이 서해를 배경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느 권력도 미치지 못한 9세기 바다라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1-08-23

문장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맛

유독 어떤 문장들은 읽고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어떤 뜻인지 알듯 말듯해 끝없이 미끄러지며 그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마치 내 청춘의 한 조각인 것만 같아 유독 가슴 아프게 나를 물어뜯기도 한다. 또,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에서 오가던 희부윰한 생각들을 그야말로 딱 맞는 문장으로 풀어낸 누군가의 글이 주는 그 시원함 때문에 잊지 못하고 어딘가에 갈무리해두었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꺼내보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문장이 나의 마음속에 던지는 것, 그리고 조금씩 살이 붙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또 다른 것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언어로 된 무언가를 읽는 이유일지도 모른다.우리를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반드시 건드리고 지나가는 문장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어떤 문장을 읽고 혼란에 빠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마음의 방심 상태를 그 문장이 습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개 격언이나 금언, 경구, 잠언 등을 의미하는 아포리즘(aphorism)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비틀어 혼란에 빠뜨리거나, 반대로 그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선언하면서, 그것을 읽는 우리를 새삼스럽게 만든다.오스카 와일드는 하나의 문장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허점을 찌르는 분야에 있어서는 가장 탁월하다고 해도 좋은 작가였다. “경험이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라든가 “유혹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같은 문장은 인생에서 번민에 빠진 인간에게는 찌릿거릴 정도의 혹독함을, 아직 번민을 경험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당연하고 만연한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생각의 자유를 허용한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도 충분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들에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답답한 삶의 국면들을 잠시 벗어나도록 하는 단호함과 새롭게 찌르는 시각이 있다.또, 어떤 문장은 우리를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이상(李箱) 소설 ‘날개’의 첫 문장은 그것을 읽는 순간 우리를 여기 현실이 아니라 그가 펼쳐놓은 상상적 기호놀음 속으로 끌어들여 그 속에 길을 잃게 만든다. 어떤 미로는 출구로 빠져나갈 때보다 그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더 의미 있는 것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는 문장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나 “역사에 걸쳐 여성은 익명의 존재였다”는 문장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어떠한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문장에 불과한 자리를 넘어, 독자로 하여금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보고 싶도록 만들지 않는가. 이 문장은 절대로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붙들어 더 깊숙한 곳까지 끌고 들어간다.그래서, 어떤 문장은 마치 익숙한 노래 가사처럼 사라지지 않고 맴돌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서 문득 떠올라 내가 그 문장을 통해 고민하고 있던 장면들을 소환한다. 하나의 문장에 압축된 기억, 그리고 하나의 문장의 여백에 남겨진 기억들이 그것을 읽었던 시절에 우리를 바로 그 때, 그 세계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그러니, 우리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그 책 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문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우리를 붙잡는 문장의 뒷맛은 우리를 오랫동안 그 책 속에 머물도록 만든다. 그러니,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소설의 명문장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다.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말이다. 마음을 붙드는 자기만의 문장을 갖는 것은 독서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웅숭깊어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홍익대 교수

2021-08-23

섬김으로 완성되는 혁신의 미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오늘날, 많은 기업체에서도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혁신과 변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룬 회사의 성공적인 혁신 스토리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면 변화와 발전에 한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2008년초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요청한 혁신컨설팅에 필자가 참여하게 된 회사는, 칼라강판과 도금강판을 생산하여 국내와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표면처리강판 전문 중소기업이다.방문 첫날부터 필자는 하루 종일 현장을 진단하면서 현장 곳곳에 산재돼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발굴했다. 그 결과에 대한 설명과 해결방안을 논의하고자 사장실에 들렀을 때 당시 CEO의 강한 이미지와 과묵함에 중압감이 들었었다. 현장진단 항목인 환경관리, 설비관리, 품질관리의 문제점은 물론 안전상의 위험점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내내 함께 참석한 공장장들은 사장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봐 불안한 눈빛으로 안절부절하는 듯했다. 발표가 끝나자 최사장은 몇 분간 침묵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내가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며 말문을 열었다. 필자는 사장이 보기와는 다르게 편안하게 대해 주며 고민 끝에 질문해준 것에 한가지 제안으로 답변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원이 참여할 때까지 사장의 솔선활동과 격려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로부터 1년동안 실제로 그 사장은 꾸준하게 솔선활동과 격려활동에 참여했다. 또한 개선활동에 여념 없는 현장을 찾아가 독려하고, 배려와 진심이 우러나는 섬김의 자세로 직원들을 챙기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몸소 실천했다. 그 결과 현장과 설비는 몰라보게 탈바꿈했고, 품질 불량률, 설비 고장률, 안전재해율 등의 성과지표는 최고의 실적으로 나타났으며, 모범적인 혁신활동으로 P사의 혁신페스티벌(IP)에서 최우수 혁신사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이와 같은 변혁과 결실의 요체는 CEO의 의지와 솔선, ‘서번트 리더십’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변화의 촉매가 컨설턴트라면 혁신의 화룡점정은 섬김의 리더십이다. 리더는 인간존중이 바탕이 되고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진실되게 섬기는 자세로 경영자 스스로 솔선하여 모범을 보일 때, 혁신의 발걸음은 성공을 향한 꾸준한 각도로 변모될 것이다.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해야 한다. 생존하고 성장하는 기업은 리더에게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고, 리더는 직원 스스로 혁신역량을 개발하도록 배려하며, 창의적 사고로 무장할 수 있도록 ‘서번트 리더십’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과거에는 전쟁에서 패하면 죽음이지만, 현대에는 변하지 않으면 도태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섬김으로 완성되는 혁신의 미학은, 변화와 진화의 성공기반은 물론 기업의 독창적인 혁신문화로 정착돼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 경쟁력의 특장점이 될 것이다.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