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라는 단어가 한참 인기를 끌던 90년대 모 여자대학 정보처리학과 초청으로 ‘정보화 사회: 도전과 대응’이라는 패널 토의에 참가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가 소속된 포항공대는 남학생이 많던 대학이어서 전부 여학생인 화사한 캠퍼스는 들뜬 이미지를 던져 주고 있었다. 그 대학 정보처리 학과 학생들의 의욕적이고 촐망촐망한 눈빛을 보면서 정보화 시대 한국 여성들의 역할에 크게 가슴 부푼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를 중심으로 EIS(중역정보시스템)의 연구회를 조직하여 회사 중역들의 의사결정을 보조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연구를 하였고, 이러한 정보시스템을 통해 남성위주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고조될 수 있다고 역설하던 생각이 난다.
의사결정을 위한 전략정보의 신속한 입수, 상황분석의 용이, 신속화, 선택의 폭 증가로 인하여 권위적 의사결정 방식을 개선할 수 있기에 의사 결정자로서의 여성의 역할 증대에 사실상 EIS는 크게 공헌하였다.
세월이 흘러 오늘 남녀평등은 어느 정도 구현 되었을까? 정보화 사회가 그런 역할에 많은 공헌을 했을까?
몇 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 직을 사퇴한 모 의원은 필자와 함께 1971년 서울공대에 입학한 3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공대에 여학생이 입학하는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신문에 기사화 되던 시절이다. 공대 캠퍼스에 여학생이 걸어가면 남학생들이 한참을 쳐다보곤 하였다.
30여 년 전 필자가 포스텍에 부임했을 때 여학생의 비율이 10% 가까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전체로도 공대 여학생의 비율은 계속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 10%를 넘어서고 최근 통계에 의하면 여자 공대생이 20%를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성이 공대를 다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취업률이 좋은 공대의 상황이 여성을 공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실 여학생 비율의 폭발적 증가는 법학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법시험 합격자나 법학전문대 여성 비율도 거의 50%에 육박할 정도이고 판검사에도 여성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70∼80년대까지는 법대에 다니는 여학생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시절이었다.
이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 이제 캠퍼스에 넘치는 공대 여학생은 선진화의 상징이고 여성의 사회진출의 상징이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여성 할당제라든가 여성고용에 대한 혜택도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도 고조된다.
교수 채용 사이트로 유명한 모 정보 사이트에는 최근 ‘여성 교수 채용’이 논란이 됐다. 지난달 한 국립대가 낸 교수 채용 공고에서 몇 개의 학과가 여성 지원자만 채용하겠다고 하여 논란을 불렀다. 국립대의 여성 교수 비율을 2030년까지 25%로 확대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었는데 남성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남성들은 20대 여성 취업률이 남성보다 높기 때문에 더이상 고용 현장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여성고용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
2021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5~29세 고용률은 여성이 70.9%로 남성의 66.4%보다 높다. 남성들은 군대를 다녀와 여성보다 취업 전선에 늦게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대 후반 이후 여성 고용률은 뚝 떨어져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고용률이 높다. 남성 고용률은 30~34세 85.7%, 35~39세 90.1%로 계속 증가하는 반면, 여성 고용률은 65.7%, 57.5%로 떨어진다. 결혼해 육아 등으로 일을 그만두는 ‘경력 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고용의 질도 남성보다 좋지 않다. 전 연령대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남성보다 높다. 월평균 임금도 여성이 남성보다 적다.
결국 20대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여성들은 남성보다 계약직 서비스업 등 월급이 적고 불안정한 질 낮은 일자리에 더 많이 진출하고, 결국 여성의 전생애주기 고용 실태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요즘은 EIS를 뛰어 넘어 인공지능 (AI)시대로 돌입하였다. 과거 EIS 정보시스템이 의사결정을 도와주던 시대에서 인공지능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남녀 차별은 더 좁혀 질수 있고 여성의 역할은 더 증대될 수 있다.
남성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의 취업의 질이나 대우에 있어서 아직 평등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평등화가 필요하지 않거나 남녀 역할론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아직도 남녀평등은 쉽게 해결 되지 않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오랜 숙제이다. 그것은 또한 정보화 사회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