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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짜는 없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어느 왕이 현인들을 모아놓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성공의 비결과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지어오라고 명령했다. 학자들은 열심히 연구해 성공의 비결을 총 12권의 책으로 만들었지만 왕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먹고 살아가는 데 바쁜 백성들이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어보겠는가?”그리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줄여오라고 다시 명령했고, 며칠 지나지않아 학자들은 12권의 책을 단 1권으로 줄였다. 하지만 왕은 “너무 길다”며 손사래 쳤고, 결국 학자들은 종이 한 장에 중요한 문장만 넣어서 가져왔다. 그래도 왕은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해했고, 결국 한 지혜로운 현인이 단 하나의 문장을 뽑아 왕에게 바쳤다. 이를 본 왕은 그제야 흡족해하며 백성들에게 공표했다.‘세상에 공짜는 없다.’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많고 많은 격언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모두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최근 국내에 개봉된 영화 ‘아수라’가 화제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으로 대변되는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검찰과 경찰, 정치권력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부패하기 시작하면 어떤 지옥도로 펼쳐지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줬다.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이권과 성공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돈 되는 건 뭐든지 하는 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한도경은 자신의 약점을 쥔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으로부터 협박을 받아 박성배의 비리와 범죄 혐의를 캐려 한다.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한도경의 목을 짓누르는 검찰과 박성배 사이에서 한도경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를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내며,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자신을 에워싼 올가미를 끝내 벗어던지지 못한 채 서로 물어뜯고 마는 지옥도를 연출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검찰과 경찰의 인권을 무시한 수사관행, 언터처블한 정치권력의 무서움 등을 실감나게 묘사했다.이 영화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오버랩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영화 무대가 ‘성남시’와 비슷한 가상의 ‘안남시’였으니 더욱 그랬다. 대장동 비리의혹 당사자인 이재명 후보는 “단1원이라도 돈을 먹은 게 있으면 사퇴하겠다”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작 특검은 반대하고 있다. 그 와중에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이 비리에 연루돼 도리어 ‘국민의힘 게이트’로 역공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후보 역시 대장동 개발의혹에 대한 범죄정보를 보고받지 못했는 지를 추궁받는 가 하면 부친이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씨 누나에게 집을 파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대선판이다. 어쨌든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개발 이익을 민간업자에게 돌아가게 만든 당사자나 부정한 돈을 함부로 먹은 사람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게 세상의 순리고, 공정·공평·평등한 처사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21-09-30

보물찾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제천에 가면 청풍호 주변에 금월봉이라는 곳이 있다. 아세아 시멘트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흙을 공급하기 위한 땅이었는데 흙은 없고 온통 바위 뿐이어서 헐값에 팔아버렸다. 이 땅을 산 사람이 평토 작업을 하려고 흙을 파내다 보니 그 바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물을 뿌려가며 흙만 걷어 내었더니 기암괴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모양이 마치 금강산에 달이 뜬 봉우리 같아서 이름을 ‘금월봉’이라 지었다. 이를 제천시가 수십억원에 사들여 관광지로 조성하여 지금의 국민 관광지가 되었다. 땅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처음 소유자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였다. 아무리 내 속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보물찾기와 같다.예수님 비유이야기에 보물찾기 이야기가 있다. 남의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그 밭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노력하는 자가 보물을 얻는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해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밭은 세상이요 심어놓은 보물(씨앗)은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하면서 “너희들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심어놓은 천국의 보물”이라고 했다. 내가 노력해서 찾아 가져갈 보물이 아니라 내 자신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오해하여서 사람들은 그 보물을 사유화하려는 일에 몰두해 왔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예수는 이렇게 당부한다. 그 보물은 네가 가져갈 보물이 아니라 곳간을 열어 나누어 주어야 할 보물이라고 했다. (마태 13장 52절)보물찾기가 보물 나누기로 이어지지 않으면 좋은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속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좋은 세상을 만들 보물이 내 안에 어디 숨겨져 있을까?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나무는 보이지 않게 심겨진 작은 씨앗에서, 빵의 재료가 되는 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 역시 보이지 않게 숨겨진 누룩에서, 많은 열매도 보이지 않게 심겨진 한 알의 밀알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대천바닷가는 진토라서 쓸모없는 땅이었지만 그 진토에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노폐물배설을 촉진 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피부를 곱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머드 축제를 통해 한 해에 600억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보물 해수욕장이 되었다. 보물은 없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었을 뿐이다. 예수의 보물찾기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하는 보물 곳간을 찾아서 그 보물을 꺼내어 나누어 줌으로 세상을 천국과 같은 좋은 세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보물찾기에 나서야 되지 않을까?

2021-09-29

추분에 능을 찾다

배문경수필가 낮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 추분(秋分)에 진평왕릉을 돌아본다. 여름의 흔적이 하나씩 지문처럼 지워진 자리로 단풍든다. 여름의 울울창창하던 시간이 버드나무의 짙은 그림자에 묻힌다. 주위는 논밭이 자리 잡고 있어 여름이면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풀벌레 소리에 가을을 실감한다.진지왕과 선덕여왕사이인 신라 26대 진평왕, 그의 능으로는 아직 뜨거운 햇살 한줌이 고요히 내린다. 능을 휘돌아보면 그 흔한 호석도 없고 무신상과 문인상 하나가 없다. 그저 모든 것에서 해탈한 듯 보이는 능이다. 왕릉은 그대로지만 온 사람 간 사람의 추억이 여기저기 머물다 흩어진다.푸른 고요가 홰치는 아침과 함께 사라지면 돗자리를 들고 소풍 온 사람들과 웨딩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능 주위가 소란하다. 혹여 밤새 긴 연회로 왕의 곁에 있던 무희들도 휘모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던 것은 아닐까. 빙그르르 돌던 놀이로 박제된 채 주름진 치마와 장구를 치는 모습으로 왕릉주위에 목석처럼 붙박이가 되어있다.오래전 문인들과 문화재 해설사가 왕릉주차장에서 만났다. 돗자리를 깔고 진평왕과 선덕여왕의 야사(野史)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열세 살에 왕위에 오른 진평왕의 첫 여인이 미실이었다. 화랑세기에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명랑함은 벽화를 닮았고,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았다’고 하였다. 세 명의 왕을 모신 대원신통의 여자로 역사서에도 다시없을 미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선덕여왕도 부친의 영향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한다. 맞은 편 해가 저무는 야산이 꼭 부처가 누워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듣고서야 동감하며 다시 보았다. 두 부녀가 평야와 산기슭에 능을 만든 이유는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똑같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진평왕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고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막았다. 왕릉에서 봄 벚꽃, 가을 코스모스가 피고 수로를 따라 걷는 길의 끝이 명활산성이다. 그때 산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천사백년 전 신라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신라에서 이어진 이 왕릉은 찾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큰 나무의 가지가 뻗은 곳 아래 벤치가 있다. 그를 ‘나의 의자’라 칭하고 삶의 고단함으로 지칠 때 그 곳에 앉아 왕의 무덤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과 거리의 어디쯤에 왕과 마주친 운명의 시간이 있었던가. 알 길은 없지만 그 시간만큼은 편안했다. 왕릉의 소박함과 서있는 나무들의 생김새는 그 아래 있는 누구라도 품어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있다. 설총이 태어난 남촌마을 곁의 햇빛이 소복이 모이는 명당이다. 삼년을 밤낮으로 찾던 시간이 지나자 기이하게 마음은 안정을 찾았다.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인지는 두고두고 나의 숙제다.가을태풍이 지나간 뒤 안개를 헤치고 들어서는 왕릉은 성처럼 넓으면서도 아늑하다. 왕의 신전에 도달한 내가 정원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한 걸음씩 떼면 어디선가 궁녀들의 웃음소리 낭창하게 들리는 듯하다. 지나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은 역사물을 많이 본 탓일까. 햇살이 안개를 가로지르면 신비한 상상과 공상은 지니의 램프처럼 사라진다. 어느 자리라도 좋다. 선 자리에서 나무와 왕릉을 바라보다 천천히 왕의 세계를 여행하면 된다. 아무도 금을 그어두지 않은 그곳이 안식처이며 평온의 세상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살이 눈부시면 눈부신 대로 비바람이 불면 우산 하나에 의지하거나 차 안에서 그냥 바라만 봐도 왕릉이 주는 신비한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넋을 잃는다.시간여행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아무카페’에 앉아 능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카페라떼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왕릉과 주위의 나무에 눈길을 준다. 스친 숱한 인연과 역사와 희로애락이 저 푸른 팽나무와 버드나무로 남았다. 많은 왕릉과 과거를 잇는 문화재들이 경주에는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추스르게 할 왕릉이 여기 있으니 잠시 찬가를 불러본다.소슬한 갈바람에 추분의 아침고요가 지금 능을 감싸고 있다.

2021-09-29

너도 나도 밤나무

갓길 한적한 곳에 무인계산대가 있다. 걸음을 멈추고 다가가 보았다. 거기에는 서너 봉지의 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봉지에 만원입니다.’라는 명찰을 달고. 밤이 든 봉지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하다 그냥 내려놓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현금이 없다. 무인계산대가 있는 뒷산에는 골짜기마다 밤나무가 있을 것이다.해마다 이맘때면, 작은 배낭에 얼음물 하나 챙기고 뒷산에 올랐다. 밤나무 아래는 입을 벌린 밤송이가 수북이 떨어져 있다. 나무에는 가시 달린 밤송이가 알밤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듯 입 벌렸고, 아직은 아니라고 가지에 매달려 바람 그네를 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밤나무 몸통을 세차게 발로 찬다. 후드득, 후드득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땅에 흩어진 밤송이를 모아놓고, 양쪽 신발 사이에 밤송이를 놓는다. 다음에는 나무꼬챙이로 살살 밤송이의 입을 벌린다. 몇 번을 쿡쿡 찌르면 반들반들한 알밤이 보인다. 알밤을 덥석 잡아, 매번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밤송이를 까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밤송이는 누구도 건드리지 말라고 안팎으로 두 번이나 싸매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뾰족한 가시를 최전방에 보초를 세워놓고 알밤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가시를 헤집다 손에 가시가 박혀도 알밤을 꺼내면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를 피해 골을 넣은 듯 신났다.이 골짜기가 분명하다. 무인계산대에서 산을 훑어보았다. 그래, 이번 추석 차례상에 내가 주운 밤을 올리자. 오래된 기억이지만, 이 골짜기에 밤나무가 많이 있었지 싶다. 어린 날 발자국을 찍은 골짜기가 분명하다. 두어 걸음 떼자, 갈색빛의 늙은 밤송이가 군데군데 보였다. 두 눈 크게 뜨면 숨어 있는 알밤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 여기서 한 주먹만 줍자. 밤나무를 뜻하는 한자는 栗(율)이다. 나무 위에 밤송이가 달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밤나무는 땅속에 밤톨이 씨밤 인 채로 썩지 않고 있다가 밤이 열리고 난 후에 썩는다. 밤나무는 자신이 태어난 삶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근본을 잊지 말라 한다. 근본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거나 이면에 잠재되어 있다. 근본을 둘러싼 꾸밈의 포장이나 가식을 걷어내면 볼 수 있다.그렇게 다 걷어내고 흠 없고 정결한 밤, 조상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을 담아 차례상에 올린다. 밤은 조상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제사상에 올리는 대표적인 과일인 ‘조율이시(棗栗梨67F9)’에도 ‘栗’은 두 번째 서열이다.너도밤나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한 스님이 지나가다 어린아이를 보고 호랑이로 인해 죽을 운명이라 말했다. 아이 아버지가 깜짝 놀라 대책을 묻자, 스님은 밤나무 백 그루를 심으면 괜찮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호랑이가 아이를 잡으러 왔다. 아버지는 밤나무 백 그루를 심었으니 당장 물러가라 했지만, 호랑이는 꿈쩍도 안 했다. 으르렁거리며 호랑이는 한 그루가 말라 죽었다며 당장 아이를 잡아가려 했다.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데,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밤나무다.”라고 말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또록또록했는지 호랑이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뒷걸음질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 나무에 “그래, 너도밤나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열매가 조금 다르다. 그런데도 나도밤나무라고 우기는 것이 재미있다.이이의 호 ‘율곡(栗谷)’도 밤나무에서 따온 것이다. 이이의 아버지인 이원수가 관직에 있을 때 앞으로 상서로운 일이 닥칠 것을 대비하여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덕분에 율곡은 실제로 어려운 일을 면하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밤나무가 심어졌던 동네 이름도 율곡리(栗谷理)라 지었다. 이순혜수필가 밤나무 그늘이 빽빽하고 넉넉해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큰 나무 아래서 두 눈 크게 떴는데 밤이 보이지 않다니. 몇 번을 둘러봐도 오래전에 떨어져 색이 바랜 밤송이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푸석한 가시를 달고 땅에 박힌 채로. 혹시 알밤이 떨어져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허탕이다.발길을 돌리는데, 도토리나무가 보인다. 도토리나무들이 나도밤나무라고 선창하면 뒤에서 나도밤나무라고 가지를 흔들고 합창하면 좋으련만.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는 서로 4촌이나 육촌쯤 되지 않을까. 조금은 비슷해 보이는 도토리가 반들반들한 얼굴을 내밀고 수풀에 떨어져 있다. 얼른 몸을 굽혀 밤 대신 도토리를 줍는다. 이쪽저쪽 주머니에 도토리가 불룩하다.아무렴 어떤가. 밤이든 도토리든 줍는 재미 아닌가. 너도, 나도.

2021-09-29

가상인간 ‘로지’ 열풍

가상인간 ‘로지’가 명품 브랜드 가방, 식품, 뷰티, 전기차, 골프 등 다양한 분야의 전속 모델로 발탁돼 인기를 끌고 있다.로지는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전문기업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지난해 8월 선보인 가상인간으로, MZ세대(18~34세)가 가장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3D 합성기술로 탄생시켰다.‘로지’는 모델 전속계약을 한 것만 올해 8건 이상이며, 협찬도 100건 이상 들어왔다. ‘신한라이프’의 TV 광고를 시작으로 얼굴을 알린 뒤 톱모델만이 할 수 있는 뷰티·화장품 광고까지 섭렵했다. 쉐보레가 최초로 선보이는 전기자동차 ‘볼트EUV’의 광고모델로 발탁됐고, 호텔 반얀트리에서 ‘호캉스(호텔 바캉스)’를 즐기는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며 호텔업계에도 진출했다. 골프의류 브랜드 마틴골프의 모델로도 발탁됐다.로지는 “라운딩은 처음인데 너무 재밌네! 시간 순삭(순간삭제)”이라는 글과 함께 골프장 인증샷을 올렸다.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에 단역 출연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단순 광고모델에서 벗어나 드라마 진출까지 모색하는 셈이다. 가상인간 로지가 이처럼 모델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실제 연예인, 모델들이 광고계약 후 음주운전, 폭행 등의 문제를 일으키거나 데뷔하기 전의 일로 다 찍어놓은 드라마를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스캔들 제로’라는 부분이 큰 장점이다. 과거 등장했던 사이버가수 아담과 달리, SNS를 통해 팬들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점도 강점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이 적중한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9-29

청년은 무엇을 어쩌란 말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 50억원. 돌려 말하지 않는다.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액수가 크고 충격이 크다. 20대와 30대가 대선을 향한 표심에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할 터에, 정치권도 사뭇 긴장하는 중이다. 한 시간 열심히 일해야 만 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그 충격은 치명적이다. 받은 돈이 퇴직금 또는 성공보수라고도 하고 산업재해 보상금이라고도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그 액수 자체가 너무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마음을 어지럽힌다. 소박하나마 고정적인 수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불철주야 달리는 오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뉴스는 못할 짓을 저지르고 있다. 취업 길은 꽉 막힌 듯 보이고 창업 전선도 쉬운 게 아니다.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충격의 강도는 세다. 소양을 기르고 실력을 닦아 자신과 사회를 위해 득이 되고 덕이 되라 선생들은 가르치고 있었다. 고작 여섯 해 남짓 일하고 저 큰 돈을 거머쥐었다니, 우리는 잘못 가르치고 있었던 것일까. 본인은 아직도 정당한 업무의 대가였다고 우긴다는데, 우리는 그 돈의 정체를 알아야겠다. ‘아빠찬스’였는지 우회뇌물이었는지 그 소위를 밝혀야 한다. 영문도 모르고 일격을 당한 채 물러설 국민은 없다. 자신이든 그 아비이든 솔직했으면 하지만 그럴 확률은 터럭만큼도 없다. 어안이 벙벙해진 대한민국 청년들을 위하여 분명한 해명과 납득이 없이는 한 치도 나아갈 수가 없다. 겨냥하는 정치적 목표에 가 닿으려면, 50억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청년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저울질당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가운데에서도 시간제, 한시직, 비정형직으로 구분되며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퇴직금은 상상 조차 못하며 생존의 가능성을 염려하였다. 그 틈에 저런 청년이 존재하였다니, 거의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당신들이 진심으로 20/30을 당겨 안고 싶었다면,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나락으로 추락한 젊은이들의 사기를 일으켜 세우려면, 우리의 관심은 저 돈의 소위를 밝히는 데 있어야 한다. 극도의 불공정과 비상식이 이처럼 붉어진 터에, 공정과 상식을 논하는 자는 오히려 의심을 사지 않을까. 혜택을 누리도록 시스템을 설계한 자를 탓하는 맹랑한 소리가 있다. 칼로 살인을 저질렀는데, 칼 만든 사람을 탓하며 용서해야 하나.옳지 않은 건 누구나 안다. 바르고 정의로운 나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험하다. 오늘 당장은 나라의 청년을 위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선생과 학교도 할 말을 잃었다. 충격과 혼돈이 가득하지만, 관련 당국은 가장 빠르게 이 일의 소위를 밝힐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물타기와 시간끌기로 막으려 하겠지만,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른쪽 왼쪽 겨루기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상식과 비상식이 드러나는 일이며 부패한 기득권과 성실한 시민들의 뚜렷한 차이가 아닌가.할 말을 잃은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돌려주어야 한다. 청년이 힘을 내야 미래가 있다. 그 미래가 닫힌 느낌이 아닌가. 50억을 밝혀야 한다.

2021-09-29

각자도생의 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생활비나 용돈이 노부모 부양의 전부다.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제대로 된 노인복지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부모를 직접 모시고 사는 것 아니면 이런 형태가 노인부양의 대표적 모습이다.지금은 한국에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 시각이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온 부모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지만 자식에게 한 푼도 받지 않고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은 돈이 모자라면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생활비를 줄이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 아직도 자식의 도움을 기대한다면 시대착오적 생각이다.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의 유래는 원래는 대기근이나 전쟁 등 나라가 어려울 때 백성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말이 9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임진왜란 등 국난 시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나라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코로나19가 1년 8개월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의 유행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 정부는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전국민 70%에 도달하는 시점에 코로나와 일상을 함께하는 위드 코로나를 검토한다고 한다.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 위중증 환자 증가가 둔화되고 치사율도 낮아져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체제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2019년 구직난에 봉착한 젊은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각자도생을 꼽았던 일이 생각난다. 코로나 위기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 또다시 각자도생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9-28

10월의 길목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우물쭈물하다 보니 10월이 코앞이다. 한 해의 4분의 3이 스러지고, 마지막 사분기가 얼굴을 내밀려는 참이다. 참 빠르구나, 하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판이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흘러가지만, 그 속성은 상대적이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은 무연하고 냉정하게 전진 운동한다. 시간은 불가역적이어서 역행하는 법이 없다.시간은 절대성을 가진 비정한 속성의 소유자이되, 그 본성 가운데 하나는 지극한 상대성을 본질로 한다. 똑같은 길이의 시간이라 해도 그것을 감촉하는 인간의 내면에 따라 시간의 길이가 다르게 측정된다. 원증회고(怨憎會苦)로 강제된 만남의 시간과 애별리고(愛別離苦)로 인한 이별의 짧은 시간은 길이가 사뭇 다르다.휴일 하오의 토평(土平) 너른 들에는 생명으로 가득하다. 벼가 머리를 숙이며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 내며 흔들린다. 생명을 다한 연밭의 큼지막한 연잎들이 누렇게 시들어간다. 빨간 우렁이알들은 다가올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을 알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다.철모르고 피어나는 사위질빵과 개망초, 여뀌가 바람에 살랑이고, 먹을 것을 찾는 백로 무리의 울음소리 허공에 들린다. 창공을 홀로 날아가는 가창오리의 귀소(歸巢)가 쓸쓸하고, 알맹이 없는 우렁이 껍데기 문득 망연하다. 이제 막 자라나는 호박의 여린 이파리와 제철 만난 갈대와 억새꽃이 얼려 춤춘다.잿빛 구름장으로 뒤덮인 창공에는 굉음을 내며 하늘길 질주하는 비행기 대열이 길손의 발길 붙든다. 아, 저 길은 서울 쪽이고, 저 길은 부산 쪽이네, 혼잣말하는 사이 굉음이 사라진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사이와 거리가 제법이다. 들리지 아니하면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듣지 못하는 것이 육근(六根)의 기본 원리라지만, 새삼스러운 시절이다.어떤 생명은 가을에서 봄으로 달리고, 어느 것은 겨울을 대비한다. 가을바람 속에서 혹자는 지나간 여름을 추억하고, 누군가는 다가올 겨울의 설한풍을 예감한다. 서로 다른 시공간 감각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과 인연을 만들고 살아간다. 거기서 옳고 그름을 나누고 분별함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그만 아닌가?!아주 젊은 날, 세상과 일대일로 정면 대결하려 했던 그 기막힌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아주 아름다웠던, 극히 무모해서 두렵기까지 했던 그 시절을 모두 보내고 백로와 추분에 어울리는 나이를 먹은 지금, 지난날들을 새삼 돌이켜보는 것이다. 하지와 소서 대서는 물론 삼복의 찌는 듯한 열기로 세상과 맞섰던 기막힌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생명에 내재한 생로병사의 이치를 너무도 늦게 체득한 자의 안타까움 같은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하되 어쩌랴?! 삶의 본성과 주어진 숙명이 그러할진대 무던히 수긍하고 받아들일 일이다. 10월은 또 10월대로 아름답고 풍요로울 터. 따사롭고 온유한 얼굴로 10월을 맞이하려 한다. 어서 오너라, 너 10월이여!

2021-09-28

어떤 시참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국어사전은 시참(詩讖)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연히 지은 시가 뒷일과 꼭 맞는 일”이라고. 백석은 1936년에 짝사랑하는 여인 박경련을 만나러 무작정 통영에 갔다가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는 슬퍼서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통영 2’)라고 썼는데, 이듬해인 1937년 봄 박경련은 백석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신현중과 백년가약을 맺는다.“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명구를 ‘자화상’에 새긴 서정주는 그 시의 다른 대목에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고 쓰고는 정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았다. 자기 평생이 친일, 독재 미화 등 오욕으로 얼룩지리란 걸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이미 알았을까?2005년 등단한 신기섭의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도마’에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이라는 어두운 문장이 있다. 그의 시에는 유난히 죽음에 대한 묘사가 많았는데, 그는 그해 12월 4일, 눈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는 섬뜩하다.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행.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다”는 독백이 시참이 된 것이다.“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지는 까닭은/ 나 때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 머물고 있는/ 광주여, 성급한 목소리로 너무 말해서/ 바짝 말라 찌들어지고/ 몇 달 만에 와보면 볼에 살이 찐,/ 부었는지 아름다워졌는지 혹은 깊이 병들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향, 만나면 쩔쩔매는/ 고향, 겁에 질린 마음을 가지고도/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는 노예, 넘치는 오기/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왼종일 기차를 타고 내려오게 하는 곳/ 기대와 무너짐, 용기와 패배,/ 잠, 무서운 잠만 살아 있는 곳, 오 광주여”라고 노래한 이성부의 시 ‘광주’는 1980년 5월 이후 쓰인 것이 아니다. 이 시는 1972년에 발표됐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어떤 시는 그것을 쓴 시인의 자기 운명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훗날 공동체가 겪을 사건의 예지몽이 되기도 한다.“신이여 아이들을 버리소서/ 세상이 이미 아이들을 버렸습니다/ 못 박힐 순결한 손이 필요 없나이다/ 집채만 한 파도가 아이들을 삼켰다 어둠이 하는 일을 어둠은 끝내 알지 못하므로/ 당분간 종려주일은 없을 것이므로”라고 쓴 이원의 시 ‘검은 모래’는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프고 무섭다. 시인의 직관은 미래의 비극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이 시는 2013년 여름에 발표됐다. 시인이란 존재는 샤먼과도 같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기형도는 1989년 초에 발표한 시 ‘빈집’에서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썼다. 그리고 얼마 뒤인 3월 7일,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만29세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기형도, ‘엄마 걱정’) 시인은 유년 시절에도, 어른이 돼서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걱정했는데, 이승에서의 생보다 더 길고 오랜 저세상에서도 내내 엄마 걱정을 했을 것이다. 지난 22일, 시인의 어머니인 장옥순 여사께서 소천했다. 아들과 남편이 잠든 안성천주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됐다.에디뜨 피아프가 부른 ‘사랑의 찬가’엔 “신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시겠지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서 찢긴 가슴으로 부른 노래다. 그 또한 아름다운 시참일 것이다. 이제 시인은 오래 기다리던 ‘엄마’를 하늘에서 만나게 됐다. “어둡고 무서웠”던 죽음의 세계에도 재회의 기쁨 있으리라.

2021-09-28

가치를 삽니다, 미닝아웃

최근 옷장 정리를 하면서 내가 가진 물건을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다. 한 때 유행이었지만 낡은 브랜드 후드티, 지하상가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검정 코트, 언제 산지 기억도 안 나는 화장품들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한 가득 산을 이루고 있으니, 나의 소비습관이 한참이나 잘못되었단 걸 깨닫고 말았다.그 뒤론 물건을 살 때 고려하는 부분이 까다로워졌는데, 첫 번째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턱없이 비싸거나 또 지나치게 저렴한 것은 의심부터 하고 본다. 과한 소비를 경계하되, 너무 저렴한 것은 겨우 한 계절 입고 버리게 되므로 적당한 가격에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는 바로 제품이 지닌 가치다. 단순히 상품성만 지닌 물건이 아닌, 지속 가능 소재로 만들어진 친환경적인 소재나 리사이클링 제품, 특정 스토리가 담겼거나 옳은 가치관을 품은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르게 됐다.이를 미닝아웃이라고 칭하는데, 미닝아웃이란 Meaning(신념)과 Coming out(정체를 드러내다)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된 단어로, 자기 가치관과 사회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제품이 지닌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구매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반대 문구가 쓰인 옷을 입는다거나, 일정 금액 이상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기부되는 제품들을 애용한다거나, 세월호 리본을 가방이나 의류에 달고 다니는 등, 개인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SNS에서도 미닝아웃의 흐름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공유하고 놀이처럼 즐기기도 한다.대부분의 업사이클링 제품은 다소 가격이 나가는 편이다. 버려진 물건이 재활용되기까지 까다로운 공정 과정을 거친다. 사용 가능한 부분을 선별하여 세척하고 가공하는 과정엔 많은 시간과 자본이 들어간다고 한다. 미닝아웃을 지향하는 이들은 물건을 고를 때의 주요 선택 기준은 가격이 아닌, 나의 소비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또한 업사이클링 제품은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기도 하다. 같은 제품일지라도 버려진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디테일적인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희소성과 특유의 감성, 그리고 특수한 가치 발견으로 더욱이 미닝아웃적을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또한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 등 환경 문제에 대해 더욱 많은 이들이 집중하고 있다. 개인 텀블러나 에코백 사용, 플라스틱 사용을 일절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비건 지향 등 과거 일부 층에서만 지향했던 흐름들이 점차 많은 사람들로 확대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이 흐름에 발맞추어 몇몇 기업에선 친환경적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물병을 두른 라벨지를 삭제한다거나, 폐지를 이용해 크라프트 보드를 사용하는 것,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중지하고 종이 빨대를 쓰는 등 가치소비 운동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실 난 소비 습관이 엉망인 편이다. 가장 저렴한 물건이나 의류를 하나 산 뒤에, 고장나거나 해진 경우엔 바로 버리고 새로 사곤 했으니까. 심지어 옷의 경우엔 취향도 없고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도 몰라서 주로 유행에 맞춰 구매하기도 했다.그래서 의미 있는 가치를 의식하고 나서부턴 전과는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눈에 띄는 옷을 빠르게 구입한다거나,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옷을 쉽게 사는 편리함이 없으니까. 친환경 브랜드인지 이것저것 따져가며 비교해야 하고, 전과는 다른 시간과 돈이 배로는 들기 때문이다.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그렇다. 가공육 사는 것을 줄이고, 방사사육 달걀을 선별하여 골라보는 등.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유난을 떨게 되는 것은 좋은 소비를 통한 만족감이 꽤나 컸기 때문이다. 나의 변화가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몫 안에선 조금씩 동참해보는 중이다.

2021-09-28

황복사, 신라 왕실의 염원을 담다

낭산의 북동쪽 산록에는 석탑 하나가 서 있다. 어딘가 모르게 이 탑이 익숙하고 친근하다면 아마도 불국사 대웅전 앞에서, 감은사지에서 혹은 경주 박물관의 정원에서 이와 닮은 탑을 이미 마주한 적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국사 석가탑처럼 완벽하지도, 감은사지 석탑처럼 웅장하지도 않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 탑은 놀랍게도 국보에 등록된 보물 중의 보물이다.1937년 이 탑이 위치한 낭산의 동쪽 기슭에서 ‘황복(皇福)’, ‘왕복(王福)’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이 기와편이 정식 조사를 통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는 막연히 기록으로만 전해왔던 ‘황복사’의 실체가 희미하게나마 세상에 드러난 것이며, 이로써 이 탑은 ‘황복사지 삼층 석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황복사와 관련한 문헌 기록은 매우 불친절하다. 이 절을 누가, 언제, 어디에,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으면서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이 29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절이라고만 ‘삼국유사’가 넌지시 알려줄 뿐이다.의상의 출생 시점은 ‘부석본비’와 ‘해동고승전’을 통해 625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의상이 출가한 나이 29세를 더하면 653년 즉, 진덕(여)왕 7년이 된다. 이는 황복사가 최초로 창건된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늦어도 7세기 중엽 진덕왕이 신라를 통치하던 시점에는 황복사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한편, ‘부석본비’에서 전하는 의상의 전기에 따르면 “‘관세’에 출가(4E31歲出家)하여 영휘 원년 경술년(650)에 ‘원효’와 함께 중국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고(구)려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여 돌아왔다.”고 전한다. 여기서 관세(4E31歲)는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나이 즉, 20세 미만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의상이 29세 이전에 이미 출가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의상의 출가 시점은 653년보다 더 빨라질 수 있으며, 의상이 출가한 황복사의 건립 시기 역시도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7세기 무렵에 건립되었으리라 막연히 추정할 뿐이다.황복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1933년 간행된 ‘동경통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황복사는 낭산의 동쪽에 있으며, ‘팔부중상’이 새겨진 삼층 석탑이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동경통지는 17세기 조선 현종 무렵 간행된 ‘동경잡기’를 수정, 보완한 것으로 동경잡기 역시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동경지’를 참고한 후대의 기록이다. 황복사지 삼층 석탑이라 전하는 이 탑이 낭산의 동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지는 않아서 이 기록 역시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1942년 6월 어느 날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2층 지붕돌 내부에 조성된 사리공이 확인된 것이다. 사리공에는 많은 양의 유리구슬과 사리함, 금동제, 은제 제기 등이 확인되었다. 사리함 뚜껑 내면에는 탑을 만든 시기와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마침내 탑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탑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천수 3년(692) 효소대왕이 어머니이신 신목태후와 함께 임진년(692) 7월 2일 승하하신 부왕 신문대왕과 종묘(宗廟)의 신성한 영령(聖靈)을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이어 “성력 3년(700)에 신목태후가 세상을 떠나시고, 대족 2년(702)에는 효소대왕도 승하하시어, 신룡 2년(706)에 지금의 대왕(성덕왕)이 부처 사리 4과와 6치 크기의 순금제 미타상 1구,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권을 석탑의 2층에 안치하였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신문대왕과 신목태후, 효소대왕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다.탑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라는 대목이다. ‘종묘’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또 ‘선원가람’이란 고요히 앉아서 참선(기도)을 주로 하는 사찰이다. 비록 이 탑이 전하는 기록에서 사찰의 이름이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성스러운 영령의 위패를 모신 종묘의 기능을 수행한 사찰임은 명확하게 확인된 것이다. 강승규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2016년 낭산 일원의 문화재를 정비하고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황복사지 삼층 석탑과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탑 앞에 펼쳐진 넓은 들에서 금당으로 추정되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건물지의 남쪽에는 탑으로 추정되는 방형의 건물지 2동이 대칭을 이루며 확인됐다. 두 개의 탑에 하나의 금당을 갖춘 감은사나, 불국사와 유사한 구조다. 이 외에도 12지신상을 기단으로 사용한 건물지, 회랑, 연못 등이 확인되었으며, 다수의 금동불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절터의 동편에는 완성되지 못한 왕릉급의 무덤이 확인되기도 했다.

2021-09-27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경쟁 도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Siena)는 지금도 중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시에나는 해발 320m 높이의 구릉에 위치해 있어 도시 전체가 마치 요새처럼 보인다.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시에나와 피렌체는 오랜 시간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고 두 도시간의 자존심 다툼은 지금까지도 읽을 수 있다. 상업, 무역업, 금융업이 번성했던 피렌체가 15세기 문예부흥 르네상스의 발생지였다면 시에나는 혁신보다는 중세의 전통 계승을 선택했다.유럽의 주요 도시들 중심에는 대성당이 세워져 있다. 중세 사람들에게 대성당은 지역의 종교적 구심점이기도 했지만 대외적으로 부와 권력은 물론 지역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대성당 건축은 지역 구성원 모두의 공동 과업이었다. 시에나와 피렌체의 중심에도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는데 두 교회는 전혀 다른 건축 양식을 보인다. 13세기 초에 완공된 시에나 대성당(1196∼1215)은 당시 유행하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작은 첨탑 모양을 띤 건축 장식의 날카로운 형태감이 여느 고딕성당과 마찬가지로 메인 파사드의 인상을 결정짓는다.다채로운 색상이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어 얼핏 보기에 시에나 대성당과 비슷해 보이지만 피렌체 대성당은 다른 시대 다른 양식의 건축물이다. ‘꽃의 성모’라는 이름의 피렌체 대성당 건축 공사(1296∼1436)는 시에나 보다 100여년 늦게 시작되었다. 아마도 경쟁도시 시에나가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을 완성한 것이 피렌체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피렌체 대성당 공사는 13세기 후반 시작되었지만, 그래서 고딕양식의 특징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건축이 완성된 것은 15세기 초반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후이다. 중세 전통에 충실했던 시에나 보다 좀 더 진취적이었던 피렌체는 고딕양식에 만족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건축을 갈망했다. 중세 고딕과 르네상스 미술은 전혀 다른 미학적 원리를 지향했다.‘신적인 세계의 상징’이 중세미술 전반을 지배했다면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의 조형요소를 발견하고 새롭게 적용했다. 특히 고대건축이 강조했던 형식적 특징은 비례와 균형, 조화와 통일성이었다. 하나의 세부요소는 형태와 크기에서 전체에 상응해야 했고, 전체는 세부요소들 간의 균형과 통일된 관계로 이루어져야 했다.피렌체 대성당 완공이 계획보다 늦어진 것은 혁신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로마식 십자가 형태를 지닌 평면도에서 교회의 가로통로(익랑)와 세로통로(신랑)가 만나는 교차랑(transept) 상단에 거대한 돔을 올려 피렌체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었다. 1418년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었지만 지름이 43미터나 되는 돔을 올릴 방법이 없었다. 1419년 양모상 길드인 아르테 델라 라나가 돔 설계를 위한 공모를 진행했고 조각가이자 건축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가 당선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팔각형의 이중벽 구조를 고안했고 상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400만장의 벽돌을 쌓아 올려 무게가 3만7천톤에 이르는 기념비적인 돔을 완성했다. 붉은 색의 찬란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르네상스의 정신을 상징한다.시에나와 피렌체 모두 선출된 시민대표가 도시를 통치하던 공화정을 택하고 있었다. 시민들에 의해 정부가 움직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 시청사는 광장(Piazza)에 자리하고 있다. 시청에서는 주요 정책들이 결정되었던 만큼 시청사 건물은 중요한 정치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도심에 세워진 두 도시의 시청사는 모두 요새처럼 폐쇄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높은 망루를 가지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2021-09-27

나다움을 찾는 길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바람의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있다. 간혹 때아닌 먹장구름이 몇 차례 소나기를 흩뿌리기도 하지만, 이내 뭉실뭉실 피어나는 구름이 한가로이 가없는 하늘을 유영하며 추분(秋分) 지난 가을날을 열어가고 있다. 모처럼 맞이한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가을의 본령에 접어드는 9월이 마무리돼 가는데, 코로나19의 급증세가 여전히 불안과 음울의 사슬을 시퍼렇게 하고 있으니 초조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초조와 불안에 직면에서는 차분함과 평온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급급한 현실에 동동거리며 날뛰는 경박함 보다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직시하며 새로운 묘안과 지향점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되는 ‘코로나 블루’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안정과 위무를 삼을 계기가 많다고 본다. 그에 이르는 길 중의 하나가 ‘나다움’을 찾는 길이다.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나다움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지만, 결코 하루 아침에 찾아지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과는 달리 힘들어도 견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일, 작지만 일상의 만족과 기쁨이 보람으로 연결되는 일, 남들이 외면해도 자신의 주관과 안목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스스로가 좋아지는 일 속에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나침반이 숨어 있다고 본다.그러한 마음 속의 나침반이 우리를 더욱 생각하고 탐험하게 이끌어 꾸준한 각도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나다움의 궤도에 진입시키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곧 부단한 도움닫기로 꿈의 현실화에 근접시키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나다움은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나 몸에 어울리는 옷처럼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다. 주변의 환경이나 숱한 경험 속에, 자신의 취향이나 스타일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나다움의 표상일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는 학습이든 업무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로 바꿔 나가는 인식의 전환과 간단없는 노력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은 남들이 뭐라하든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從吾所好) 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자는 자신만의 편안한 쾌적함을 넉넉하게 누린다(自適其適)고 했는지도 모른다.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스마트폰과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인지 모를 조급함과 고단함 속에 허우적거리며 안정과 균형을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더욱이 2년째 세상을 옥죄이는 괴질의 난맥상에 지칠 듯 무기력해지는 일상에서 그나마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망중한의 여유를 느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면 어떨까?인생은 참다움을 찾는 여행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방향으로 모험하고 인내하고 도전하는 여정이 행복에 이르는 나다움의 길이라고 본다. 참다운 나다움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꿔 주리라.

2021-09-27

그놈의 돈 때문에

조현태수필가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어도 우리 고유의 명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명절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다. 아무리 직계존속 관계라 하더라도 각자의 삶에 따라 생활공간이 다르니까 명절에 가족이 만나고 싶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 분명한데도 가족이 아닌 경우다. 예컨대 부부가 아이를 낳고 살다가 이혼하였다. 이혼할 때 친권을 포기한다면서 아이 양육권을 아버지에게 넘겼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를 키웠고 재혼은 하지 않았다.문제는 자식이 먼저 사망하게 되었는데 장성한 자식에게 제법 많은 재산이 있었다. 갑자기 죽었으므로 사망 후 재산의 처리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망자의 유산은 직계가족에 우선권이 주어지므로 어머니였던 사람이 재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즉 망자의 자식은 없어도 부모는 살아있으니 어머니인 자신의 몫을 찾아가겠다는 것이다.친권과 양육권도 포기하고 이혼하였으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으면 자식이 있을 수 없다는 천륜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우주의 이치를 인간이 만든 법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주장이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법도 중요하고 법을 초월하는 이치도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을 무시하지도 못하지만 개인의 양심이 올바르다면 법보다 이치에 더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양심적 이치를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 때문에 법이 생겼으니까.이런 경우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망자에게 물어봐야 안다. 누가 유산의 얼마를 갖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장하는 사람의 진정한 의도다. 그 의도가 가족 개념보다 재산에 치중해 있다면 법의 설명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답게 판단하고 인간적 양심을 지켜야 좋은 세상일 것이다. 욕심도 돈도 사람의 세상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집착하다보면 스스로 노예가 될 뿐이다. 누구인들 노예가 되려고 그리하겠는가마는 돈에서 자유로워지니 세상이 이만큼 편한 것이 있을까 싶다. 혹자는 나를 보고 ‘너는 가난하고 빚도 없으니 그런 맘을 먹지만 빚이 많다보면 가진 것이 늘 부족한데 어찌 돈을 피할 수 있나?’하면서 부정한다.어디에도 길은 없지만 어디에도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돈에 초연해지는 길이 따로 없다. 그래도 초연하면 초연해 지는 게 아닐까. 나만의 길도 길은 길이니까.가족보다 더 기막힌 사연 때문에 자식과 남편 같은 가족에게서 떠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족보다 돈을 택하여 다시 가족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면 먼저 가족의 승낙이 따라야 할 일이다. 그래야 재산 분배도 가능해 지겠지만 자식 잃은 아버지가 돈에 눈먼 사람을 아내로 인정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코로나19로 썰렁한 명절이지만 애틋하고 그리워 만나는 가족이기를. 도타운 정을 나누고 서로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 가족이기를.

2021-09-27

권력의 가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가을’은 ‘자연의 가을’을 닮았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 제왕적 권력도 힘을 잃는 시기다. 현직 대통령의 말보다 차기 대권주자의 말에 더 큰 힘이 실린다. ‘레임 덕(lame duck)’현상은 권력에 가을이 왔다는 증표다. ‘가을이 온 권력’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을 준비해야 한다.박근혜 정부에게 “이게 나라냐”고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건 또 나라냐”고 비판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마약 같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사요 당신은 악마’라는 오만과 독선이 실정(失政)을 자초했다. 죽은 권력을 적폐로 몰아 청산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더 심각한 신 적폐를 양산했다.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권력을 자신의 관점에서 심판했기 때문이다.권력에도 가을이 오면 곧 닥칠 겨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망명·피살·자살·수감 등은 권력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말해준다. 겨울을 대비해서 어떤 대통령은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강구했고, 또 다른 대통령은 측근을 여러 요직에 심어두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권력은 하산(下山)과 동시에 그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죽은 권력의 잘못을 묵인하는 것은 권력정치의 속성상 불가능하다.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하산 길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상에 오를 때 도와주던 측근들이 하산 길에는 이미 유력 주자의 대선캠프로 떠났다. 정권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었던 ‘문빠’와 ‘대깨문’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국민에게 약속한 수많은 공약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국론분열과 부동산 폭등 속에서 혼자 하산해야 한다. 임기제 권력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외롭고 힘든 하산 길이다.이제 권력에도 가을이 왔으니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소멸의 쓸쓸함을 깨달음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떨어진 낙엽이 후세를 위한 밑거름이 되듯이, 권력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 문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운동권정치의 진영논리와 내로남불, 갈라치기와 흑백논리를 버리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고 협치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권력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면 권좌에서 내려온 후에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권력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기 성찰에 기초해야 한다. 권력에 취하고 고루한 신념에 갇혀서 생각을 안 하면 성찰이 없고, 성찰이 없으면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른다. 대통령이 행사한 권력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권력을 위한 것이다. 지금 ‘권력의 봄’을 향해 끝없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 ‘철부지 대선주자들’에게 ‘권력의 가을’도 생각하면서 겸손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어야 한다.

2021-09-27

오징어게임

‘오징어게임’은 추석연휴에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영화로,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오징어게임은 과거 한국 어린이들이 맨땅에서 선을 긋고 한 놀이로, 선 모양이 오징어의 형태와 비슷했기 때문에 오징어게임으로 불렸다.게임은 커다란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양이 그려진 운동장에서 하게 된다. 위쪽 동그라미는 공격 진영의 집, 아래쪽 동그라미는 수비 진영의 집, 세모·네모 부분은 수비 진영이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한 발은 든 채로 한 발로만 이동할 수 있으며, 당연히 다리를 번갈아가며 바꾸는 건 반칙이다. 다만 집에서는 공격 진영이든 수비 진영이든 다 두 발로 서는 것이 허용되며, 이 때는 싸움이 금지된다.또한 수비 진영은 오징어 몸통 안에서는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고, 수비 진영의 집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반대로 공격 진영도 수비 진영의 집을 통해 오징어 몸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공통적으로 선을 밟거나 넘어가는 경우, 넘어져서 발 이외의 부분이 땅에 닿는 경우 아웃된다.세모 부분의 머리 부분 모서리는 공격 진영의 동그라미와 겹쳐지는데, 공격 진영이 오징어 몸통에 들어와서 이 곳을 밟으면, 즉 ‘만세’를 부르는 데 성공할 경우 승리한다. 반대로 수비 진영은 공격 진영을 모두 제거해야 하며 이 경우는 공수가 교대된다.수비 진영의 세모와 네모 부분 사이에는 좁은 통로(다리)가 있는데, 공격 진영이 이 통로를 통과하게 되면 이후로는 어디에서나 두 발로 플레이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가 크게 늘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9-27

추석 잘 쇠었습니까?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추석 연휴를 어지럽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강력한 태풍 14호 ‘찬투’가 남해와 제주에 호우를 뿌리고 방향을 틀어 일본 쪽으로 가버린 덕분에 한가위를 맑은 얼굴로 맞이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기쁜 마음을 안고 고향을 찾은 추석 발길에 묻어난 것인지 코로나바이러스는 신규확진자를 하루 3천200명 이상으로 폭증시켜 최악 상태를 기록하고 그 ‘후폭풍’이 염려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하며 오랜만에 가족 친지 형제자매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정다운 얘기 나누며 서로의 정을 느끼고, 마을에서는 풍성한 잔치를 벌였던 우리 민족의 연중 으뜸 명절인 한가위가 이렇듯 의미를 잃고 아름다운 전통풍속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비록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었지만 추석 연휴기간 동안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찾은 관광객이 7만 명을 넘었고 안동 문화단지도 약 5천 명이 찾았으며 제주는 25만 명이 북적였다고 한다. 호텔도 75%에 육박하는 숙박점유율을 보여 집안에서만 즐기던 추석 명절의 풍습이 관광으로 바뀌고 명절 대화에도 투자나 주식 얘기가 등장하고, 친척을 찾기보다는 재테크 기회로 활용하여 부동산 현장을 둘러보는 ‘임장(臨場)’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리의 추석 풍경도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추석 연휴 기간에 각 지자체의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많이 줄었고 교통사고도 대폭 감소하여 평온한 치안상태를 유지했다니 참으로 다행이다.예년 이맘때쯤이면 씨름 대회와 동네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로 흥청대었는데 올해는 충남 태안에서 열린 ‘추석 장사씨름대회’에서 여자장사 탄생 소식이 전해져올 뿐이다. 부녀자들이 함께 모여 벌이던 길쌈놀이도, 닭싸움도 소싸움도, 또 마을 공터와 학교 마당에서 즐기던 차전놀이와 흥겨운 강강술래도 기억 속에 아련하다. 이제는 거의 도심의 빌딩 숲속에서 살다 보니 이러한 옛 풍습이 사라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영화 ‘미나리’가 133만명의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니 이번 추석에도 가족끼리의 만남으로 만족했나 보다.올 추석은 또 ‘치매극복의 날’이었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는 집안에는 자식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드리고 외로우실 생활에 효도의 마음으로 찾아뵈었을 것이다. 다행히 요양병원·시설 등에 모셔두었을 경우 추석 기간 2주 동안은 거리 두기와는 무관하게 방문 면회를 허용하였고 예방접종 완료인 경우는 접촉 면회도 가능하도록 하였으니 웃는 얼굴에 따뜻한 마음으로 손도 잡아드리고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가족의 행복이며 진정한 추석 선물이다.‘추석날 비 오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어 전국의 비 소식에 걱정이 되었지만 낮에 잠시 빗줄기가 보였을 뿐…. 보름달 맞으러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더니 수평선 구름 아래로 황금빛을 뿌리던 둥근 달이 이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우리 국민 모두 한가위 명절을 잘 쇠기를 바라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풍요롭고 훈훈한 가족의 행복도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를 되뇌이며….

2021-09-26

애가 타는 국민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환경 분야 기술 자격 공부를 하며 ‘자정작용(自淨作用)’이란 단어와 개념을 처음 알았었다. 자연의 복원력 혹은 항상성에서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소식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다.그 무렵은 나라에서 공해 문제를 도입하는 초기여서, 주로 물에 대한 자정작용을 다루고 배웠다. 요약하자면, 물은 자연 생태계에서 오염되더라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자정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가 한정되어 있어, 오염량이 자정 능력을 넘게 되면 하천과 바다가 오염되고 만다.심하게 오염된 하천과 바다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 물의 오염은 결국 전 생명체와 사람의 생존에도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생활하수, 산업폐수 등의 오염수 배출을 법률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또 폐수처리기술의 연구, 개발도 박차를 가했다. 이후 대기·토양·지하수 오염, 폐기물 처리, 오존층 파괴 등 온 지구 생태계오염에 대한 규제와 개선의 연구, 개발로 확대되었다.개별 생명체의 대사(代謝)도 자정작용과 함께 이루어진다. 유해성 생체 이물을 효소가 해독하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 행성 자체도 거대한 자정작용 시스템이 아닐까. 하천이나 강물의 흐름, 파도, 해류, 바람, 태풍, 구름, 비, 햇빛 등 모든 자연현상이 직, 간접으로 자정작용을 한다.물의 자정작용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물리적 작용은 물이 모래나 흙 속으로 스며들며 여과되는 등 물리적으로 정화되는 것이다. 화학적 작용은 물이 공기와 닿을 때 오염물과 산소가 반응, 제거되는 현상 등이다. 하천, 호수의 오염물이 호기성 또는 혐기성 소화로 처리되는 것이 생물학적 작용이다.자정작용이 지구와 자연생태계뿐일까. 인간사회에도 유사 이래 자정작용이 함께해 왔다고 본다. 개인과 가정의 생사화복은 물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자정작용에 달려 있음을 많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자정작용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가장 우월한 국가체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유민주주의체제다. 선거로 임기가 정해진 공직자를 뽑기 때문이다. 공명선거를 하는 한, 재직 시 잘못한 공직자는 다음 선거에서 뽑힐 수 없기에 그렇다. 선거라는 강력한 자정작용이 일정 기간마다 국가사회를 맑게 한다.다음, 국가의 삼권분립체제도 자정작용을 위한 것이리라. 오염된 물이 물리·화학·생물학적 작용을 통해 깨끗해지듯, 나라의 입법·사법·행정부가 상호 견제와 작용을 하여 국가사회의 오염요소들을 줄이거나 제거하여 맑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그다음, 언론은 사회의 산소다. 물의 자정작용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기 중의 산소다. 오염물과 닿으면 바로 반응, 자정작용을 해내기 때문이다. 사회의 산소가 언론이므로 오염물을 만나면 즉각 반응, 자정작용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정작용의 선봉에 나서야 할 대형 언론들이, 나라 명운이 달린 커다란 사회오염물과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죽은 언론이다. 애가 타는 이는 바로, 주권자 다수 국민이다.국민이 대형 언론에 회초리를 들 때다.

2021-09-26

‘위드 코로나’ 국민적 합의 선행돼야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해 2월 말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제1·2 생활치료센터(대구시 동구 중앙교육연수원, 경북대 기숙사) 개소와 운영을 주도한 경북대 의대 이재태 교수와 이택후 교수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생활치료센터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신의 한 수였다.이 시설이 없었다면 예상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민들이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세계 어디에도 없던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확진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대구지역 의료계의 끈질긴 요청으로 개설됐다. 당시 정부에서는 “대구지역 확진자 80% 이상은 의료적 치료가 필요 없거나 진통·해열제만 필요한 가벼운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경증환자에 대한 격리치료 대책을 내놓지 않다가, 3월 들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활치료센터 개설을 허가했다.추석연휴를 전후해 방역당국이 10월말쯤 경증 코로나19 환자를 생활치료센터에 보내지 않고 재택치료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것을 들으면서 악몽과 같았던 지난해 2월의 대구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주 “다음 달 말쯤 접종 완료율 70%를 넘기면 ‘위드(with)코로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이미 위드코로나 준비에 들어갔다. 위드코로나는 확진자 수를 감소시키는 데 중점을 둔 현 방역 체계 대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확진 판정을 받더라도 병세가 위중하지 않으면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정부가 국민의 방역 피로감과 의료자원의 한계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추석 연휴 기간 인구 대이동으로 전국에서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까지 위드코로나 운운하며 국민의 긴장감을 풀어지게 하는 것은 정말 신중하지 못한 모습이다.확진자는 아무리 증상이 경미해도 약으로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 불안하다. 더 큰 문제는 집에 방치된 확진자로 인한 연쇄 집단감염이다. 부모가 확진이 되면 자녀가 감염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고, 자녀가 어린이집·유치원 원생이거나 초·중·고 학생이면 지역사회에 대규모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이를 누가 감당할 것이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주변에 확진자가 널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민들이 지금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위드코로나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포기하면 상식적으로 환자와 사망자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돼 있다.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피해와 방역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놓고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합의에 앞서 전제돼야 할 것은 코로나19 치명률이 독감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명백해야 하고, 환자가 집에 있어도 가족과 지역사회가 모두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드코로나는 정부가 전염병 방역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2021-09-26

인공지능 로봇시대

2016년 3월, 인간이 발명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과연 초월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둑대결이 열렸다.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바둑기사로 알려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 대결이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것이다. 알파고는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다. 이날 열린 세기의 대결은 알파고의 완승(4-1)으로 끝났다. 세계는 놀랐고 충격에 휩싸였다.AI는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활동을 모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고급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세기 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하자 바둑계는 알신(神)이 강림했다는 자조와 함께 바둑의 신비로움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AI 기능이 장착된 로봇이 실생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AI가 사람의 뇌라면 뇌에서 지시하는 내용을 수행하는 몸이 로봇이다.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어렵고 고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 산업현장에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는 소식이다.서울 한 비즈니스 빌딩에는 로봇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층으로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나눠주는가 하면 빌딩 방역도 도맡아 하는 곳이 생겼다. 대구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한다. 아직은 음식과 음료를 고객 테이블로 갖다주는 정도의 서빙만이지만 부족한 일손을 돕고, 홀 담당 직원의 노동강도를 줄여준다.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미래사회는 인공지능 로봇의 사용은 필수다. 머잖아 우리는 식당이나 사무실 곳곳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만나게 되는 일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하루가 바쁘게 달라지는 놀라운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9-26

울릉군 정주환경 개선·관광객 유치 순항

김병수 울릉군수 여행객이 여정 중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판단하려면 ‘목적지’와 ‘현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듯이, ‘현재 우리 고장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도 군정차원에서 답하려면 ‘우리 고장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군정을 수행하고 있었는가?’와 ‘그래서 현재 어느 정도로 목표를 달성했는가?’란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우선, 울릉군이 나아가야 할 군정 목표들은 ‘정주환경 개선과 관광객 유치’, ‘농축산업·수산업·임업의 활성화’, ‘관광 관련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종합적 복지 시스템 구축’, ‘미래 인재 양성 및 인구 증가 정책 지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울릉군이 가진 강점인 천혜의 관광 자원들을 더욱 개선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인식과, 정주환경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문제가 되는 인구 이탈 등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설정한 군정 목표들이다.울릉군에 가장 중요한 군정 목표가 있다면 ‘정주환경 개선과 관광객 유치’일 것이다. 이러한 목표하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가 ‘교통 인프라 구축’인데, 도서지역 특성상 내·외부적인 교통이 불편, 군민들의 정주환경과 관광객의 유치 두 부분 전부에서 걸림돌이 돼왔었기 때문이다.주요 사업들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대형여객선 유치’는 대형여객선 신조운항 실시협약이 올해 체결되면서 2023년 운행을 목표로 하고 있고, 2만t급 전천후 대형카페리 여객선이 운항에 들어갔고 ‘울릉(사동) 항 완공’과 ‘일주도로 미개통 구간 개통’은 완료된 상태다.또한, ‘울릉공항 건설사업’은 지난해 11월 착공, 현재 공사 중으로 2025년 개항 예정이다. 요컨대, 교통 인프라 구축에서 처음 목표한 수준의 성과를 이상으로 이뤄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 유치’와 관련해 최근 한국관광공사, 코오롱 글로텍과 ‘울릉관광활성화 및 관광객 유치 확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코로나19 이후 단체 패키지 관광보다 개인·가족 관광, 비대면 힐링관광을 선호하는 관광 수요의 변화에 맞추고 있다.울릉아일랜드 투어패스 등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과 성인봉 원시림 숲 관광자원화, 나리분지 신령수가는 길의 코로나19시대 비대면 안심관광 전국 25선정과 친환경 스토리텔링 공유 여행을 도입하는 등의 관광자원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다음으로, 많은 주민의 생업과 관련된 ‘농축산업·수산업·임업의 활성화’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중요성이 있는 군정 목표이다. 이 부분의 세부적인 방향은 ‘생산 기반 시설 지원’, ‘유통 및 판매 지원’, ‘산업별 특화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즉, 생산 기반 증대 및 개선하여 특화된 상품들을 원활히 유통·판매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생산 기반 시설 지원’을 위해서 농수산물 제조가공시설 육성, 농산물 종합 가공 기술 지원이 이뤄졌다.또 ‘유통 및 판매 지원’과 관련, 물류비 특별지원이 시행되고 있고. ‘기반산업별 특화’를 위해서 농촌 신활력 플러스사업, 우산고로쇠 산림자원화, 녹색 축산산업 육성 등을 진행 중이다.이러한 지원으로 생산되는 상품들의 소비 촉진을 위해 ‘울릉사랑상품권’을 발행, 수요견인을 꾀하고 있다. ‘관광 관련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는 관광 산업이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울릉군의 산업 구조상 군정 목표로서 가치를 지닌다.서비스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서비스업의 수요 차원에서는 ‘관광객 편의 증진’을 세부목표로 하고, 서비스 공급 차원에서는 ‘관광 자원 활용 및 개발’을 세부목표로 하고 있다.‘관광객 편의 증진’을 위해 관광시설 통합 티켓 발매, 스마트관광안내시스템 도입, 각종 관광지 편의시설 확충 등이 진행 중이다,‘관광 자원 활용 및 개발’차원에서는 앞서 관광객 유치와 관련, 언급한 관광상품 개발과 함께 울릉군의 유무형적 관광자원을 활용한 성인봉 원시림 숲 관광자원화, 친환경 스토리텔링 공유 여행 도입 등 지역 특색을 살린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코로나19 시대 청정지역 울릉도를 방문,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성인봉등반, 신령수길, 울릉도 옛길 걷기 등 비대면 힐링 여행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생활의 에너지를 충전해 가길 바란다.

2021-09-26

탱자 가라사대

동네 어귀에 살던 새순오빠네 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어릴적 기억이라 동네 오빠 이름은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울타리의 가시는 눈에 선하다. 남후초등학교까지 가려면 어린 내 걸음으로 삼십여 분이 걸렸다. 옆집 미정이를 우리 집 앞에서 먼저 만나고, 순연이 집 앞에 가서 학교 가자고 큰소리로 외치면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순연이는 책보를 가녀린 허리에 매고 달려 나왔다. 우리 셋은 서너 번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았기에 학교 가는 길도, 하교 후 ‘짜개놀이’와 ‘왼발은 뛰어도 관계없어요’, ‘숨바꼭질’도 함께 했다.순연이 집도 마을 어귀였다. 그 옆집 울타리엔 이맘때 즈음 노르스름해진 탱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시가 많은 담장이지만 개구멍 하나 정도는 꼭 있다. 그 집엔 아들만 셋인 것으로 기억한다. 개구진 사내아이들이 지나다닌 길이었을 게다. 막내 아들인 새순오빠가 나보다 몇 살 위라 그나마 초등학교를 잠깐 같이 공유했기에 희미한 기억이라도 있는 것이다.먹을게 흔치 않던 우리는 시고 쓰고 아주 쬐금은 단맛이 있는 탱자가 노오래지면 몰래 따 먹기도 했다. 먹기보단 공처럼 던지고 놀기도 하고 소꿉놀이에 반찬이 되기도 했다. 이제껏 내가 본 탱자나무는 낮은 키에 울타리로 선 것 뿐이었다. 얼마나 오래 우리 곁에서 울타리로 살아왔는지 몰랐다. 그러다 슬그머니 콘크리트 담장으로 바뀌어 버려 탱자가 귀해졌다.보경사 장독대 앞에 더 귀한 탱자나무가 400년 동안 앉아 있다. 앉아 있다고 한 건 법성리의 탱자나무처럼 줄기를 늘씬하게 뽑아 올리지 않았단 말이다. 400년을 견뎌온 것을 인정받아 경상북도 보호수가 됐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어르신답게 품도 팡팡하니 그늘에 고양이가 쉼터를 마련하고도 남을 만치다. 가지도 잎도 가시도 푸른색이라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아야 탱자나무 맞네싶다. 그래서 열매가 노랗게 색을 내는 지금 가면 귤이 익은 거랑 똑 닮아 귤을 추운 곳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사자성어가 왜 생긴 건지 알게 된다.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신인 ‘안자’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제나라 출신 범죄자를 그 앞에서 심문했다. 왕의 의도를 알아챈 안자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제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 중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에만 가면 도둑질을 하게 되니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라고 맞받아쳤다. 이 말에 초나라 왕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귤화위지’는 심는 지역에 따라 귤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장독대 옆에 서서 된장 간장이 익는 동안 날 좋을 때마다 뚜껑을 열어 놓으면 탱자나무가 자주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5월 하얀 꽃을 피운 날엔 꽃가루도 한소끔 뿌려주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장맛은 깊어지고 탱자는 노랗게 익었더랬지. 보경사 스님들은 향긋한 탱자 향이 밴 된장국을 드셔서 경내에 울리는 목탁 소리도 더 은은한듯하다.탱자나무는 역사 속에 유배를 보낸 죄인 처소 주변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치는 일로 등장하기도 한다. 뾰족한 가시가 돋친 탱자나무가 빼곡하게 숲을 이루면 아무리 향기 좋은 열매가 열려도 죄인에게는 험상궂기만 한 탱자나무였을 것이다. 비록 귤이나 유자만큼 사랑받지 못해 쓸모가 없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놀 때 ‘탱자탱자 놀다’라고 표현하고, ‘유자는 얼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 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탱자를 낮추어 보았다. 덜 익은 청열매로는 아토피 치료에 쓰고 가을에 잘 익은 것은 잘게 썰어 효소로 만들어 차로 마신다.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탱자를 한 바구니 따서 집안 곳곳에 담아두어 그 향긋함이 집안을 가득 채우게 했다. 우리 집에 더 놓겠다고 덤비면 장독대 옆에 선 탱자 어르신 엄하게 가시를 세우며 나무라신다. 이 가을엔 담장을 지나는 이를 위해 욕심을 내려놓거라. /김순희(수필가)

2021-09-26

화천대유 vs 고발사주 의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이번 추석 명절 동안 국민들의 밥상머리에 오른 정치얘기의 화두는 단연 화천대유와 고발사주 의혹이었다.공교롭게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야당의 선두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나란히 의혹의 최전선에 놓였다. 아마 두 사람은 이번 의혹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여야 대선후보가 결정될 것이 분명해보인다.우선 민주당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러 화천대유란 암초가 돌발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이 지사가 과반수 득표로 결승없이 여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민심이 대장동 개발의혹이 터지면서 2위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쪽으로 표심이 많이 쏠리는 바람에 결승까지 가야만 승부를 판가름할 수 있게될 듯 싶다.국민의힘도 여당 선두주자인 이 지사에게 연일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배현진 최고위원과 조수진 최고위원은 번갈아 “한가위 추석에 조롱 섞인 농담들이 참 많이 나돌았다”면서 “‘화천대유’하면, ‘천화동인하세요’로 화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소속인 김부겸 국무총리도, 주요 대권 주자인 이낙연 후보도 ‘일반적이지 않은 케이스’, ‘비상식적인 케이스’라고 규정해 이번 화천대유 사건 의혹이 눈덩이처럼 연일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남의 집에 불이 났으니 부채질해 불을 크게 키우고 싶은 심사를 이해못할 바 아니다. 결국 이 지사는 TV토론회에서 “단 1원이라도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면 후보직과 공직을 사퇴하고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부한다면 이 지사에게 숨겨야 할 커다란 비리 의혹이 있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며 특검 수사와 국정감사를 촉구했다. “100% 수사에 동의한다”던 이 지사 측은 특검과 국감에는 반대하고 있어 과연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지켜볼 일이다. 특히 주역의 궤에 따라 지었다는 ‘화천대유’, ‘천화동인’의 뜻이 하늘의 도움을 받아 뜻을 이룬다는 말이라니 왠지 대권을 겨냥한 작명이라는 심증이 드는 게 나만은 아닐 듯 싶다.야당인 국민의힘 경선은 아예 혼돈상태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2위를 달리던 홍준표 의원이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일부 여론조사 범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총장을 앞질렀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연령별 지지율 분석에서 20대 젊은층에서 홍준표 의원이 앞서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보수정당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가 경선 승부를 뒤집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도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미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대다수가 윤 전 캠프 쪽에 합류해 대세가 기울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상태에서 승부는 예측불허다.옛말에 ‘임금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현대판 임금님인 대통령 역시 하늘이 내린다고 할만큼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과연 하늘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점지할 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요즘이다.

2021-09-23

고향 까마귀

까마귀는 앵무새와 함께 새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지능을 가졌다. 훈련을 잘 받은 까마귀는 돌고래나 침팬지급 지능을 자랑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앞날을 예언하는 신령스런 새로 인식돼 왔다. 동서양의 속담과 설화 속에서도 까마귀는 신령한 새에 잘 비유된다.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은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잘 봉양할 때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그 유래가 까마귀에서 나왔다. 까마귀는 새끼가 나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 키우는데 그 새끼 까마귀가 자라면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주며 은혜를 갚는다하여 유래한 말이다.고향 까마귀는 반가운 고향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오랜 옛시절, 고향가기가 무척 어려웠던 때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고향 까마귀 보듯 반갑다는 뜻이다.고향 까마귀라는 표현 속에는 반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정겨움이 모두 섞여 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느끼게 하는 용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움과 추억이 있는 곳이다. 태어나 자라고 부모형제와의 온갖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고향은 공간이자 시간이며 마음이다. 어느 하나도 분리될 수 없는 복합적 생각이 얽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간직한 고향의 모습은 제각각이다.선거철이 되면 고향 까마귀를 찾는 정치인이 늘어난다.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서 활동을 하다 고향 까마귀를 핑계로 고향 사람들 앞으로 찾아온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올 추석에도 고향을 찾은 정치 지망생의 모습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고향을 위해 뛰겠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바야흐로 정치시즌이 왔음을 깨닫는다. 작금의 고향 민심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9-23

국민지원금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의 수령자 대상의 90%가 벌써 수령을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직 신청까지는 한 달 여가 남아있지만 빠른 수령 속도이다. 개인당 25만원씩 지급되는 국민지원금의 효과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도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한다라고 정당화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타이밍이 묘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표를 의식한 선심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랏돈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명제에는 진정한 애국심과 국민사랑, 나라사랑이 바탕이 돼야 한다. 정당이나 자신들의 표를 의식하여 선심 공세를 피하기 보다는 나랏돈 사용의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세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고 매표행위에 쓰이는 것은 옳지 못한데도 그러한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현재 대학 등록금은 13년째 동결되어 있고, 재정의 학생 일인당 지출이 대학의 경우 OECD 평균 대비 하위권이라고 한다. 대학평가 때문에 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하거나 자문을 해보면 모든 대학들이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학들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니컬한 교수와 대학들의 대학 등록금을 올리는 건 표를 깍아 먹는 일일 지도 모른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풀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예비 타당성 면제라는 소위 예타면제로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에 돈을 쓰는 것도 매표 행위이다.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예산을 반영했다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동네에 플래카드를 걸고 선전 홍보 하기에 바쁘다. 다음번에 또 찍어 달라는 매표 행위이다. 예타면제를 받은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든 그건 그 다음 문제이다. 아이러니컬하게 그러한 프로젝트는 길게 오랫동안 끌어서 두고 두고 써먹으면 더 좋을 지도 모른다.최근 입원해 본 환자들은 의료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겪은 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한숨짓는다. 의료시설 확충은 당장은 매표 행위에 효과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큰 효과가 있을 꺼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의료진의 파업을 막아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간호사 의료진들을 위한 지원확대와 의료시설의 확대는 나랏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중요한 한 개의 축일 것이다.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극단적 선택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소상공인들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근거 없는 정치 방역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역지침은 하루빨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국민들은 말한다. 사실상 진짜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방식으로 매표 행위에만 골몰하는 정책을 야당은 비판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랏돈 세금은 국민들의 혈세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올바르게 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매표행위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지원금! 그 목적은 순수해야 한다.

2021-09-23

조국수홍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지난해부터 ‘조국수호’란 말이 세간의 논란거리가 됐다. 나라가 침략을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도는지 의아한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조국’은 조국(祖國)이 아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장관이 된 지 36일 만에 물러난 조국(曺國)이란 사람을 수호(?)하자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기에 검찰청 앞에 수만 인파가 모여서 목이 터지게 ‘조국수호’를 외쳐댔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범법자로 몰린 조국이란 사람을 결사적으로 수호해야 할 이유는 바로 ‘검찰개혁’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검찰개혁이 그토록 절체절명의 사안이라면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우선으로 착수할 일이지, 검찰이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수백 명을 단죄할 때는 박수를 치다가 그 칼끝이 현 정권 실세들을 향하자 화들짝 놀라 검찰개혁을 들고 나오는 건 너무나 속 보이는 짓이었다. 게다가 최고 학벌에다 최상위 지도층에 오른 부모가 자식들 출세를 위해서 스무 가지가 넘는 위법과 편법을 저질렀음에도 그렇게 목숨 걸고 수호해야 할 명분이 되는가? 조금이라도 상식적인 사고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해괴한 현상에 어찌 아연하지 않겠는가.그들의 죄과는 비단 법적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라를 끌어갈 동량들을 길러내는 대학의 교수라는 것과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때문에 국가와 국민에 미치는 파장이 결코 적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명백한 죄과가 드러나 법원의 유죄판결이 났음에도 잘못을 시인하거나 반성하는 태도가 전혀 없는 데다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마저 일말의 회의도 없이 오로지 조국수호를 외친다는 것은 상당수 민심들까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준다. 단순히 입시부정의 비리를 넘어 민심을 분열하고 어지럽히는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최근에는 ‘조국수홍’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얼마 전 제일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윤석열 후보의 검찰총장시절 조국 일가의 수사가 지나쳤다고 몰아세운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는 ‘일가족 살육’이란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조국 일가의 비리를 수사하면서 정권의 온갖 핍박과 좌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검사의 길을 가고 있다”며 “그대는 진정 대한민국의 검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나는 해방 이후 이런 검사를 본 일이 없다”거나 “훗날 검사들의 표상이 되고 귀감이 될 것”이라고까지 했던 그가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조국수호 좌파들의 환심을 사서 역선택 지지로 대권후보경쟁에서 윤석열을 이겨보겠다는 속셈인 것을 비꼬는 말이 조국수홍이다. 정치판에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됨됨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예사다. 삿된 편견을 버리면 그들이 하려는 것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한 봉사인지 자신의 야욕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을 터인데, 그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을수록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