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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퍼스의 노예들 <Ⅴ>

등록일 2022-06-13 18:55 게재일 2022-06-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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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건욱
/삽화 이건욱

-그래. 이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 같아. 귀에 대고 소리를 높여야 겨우 움직인다니까. 신제품이라면서 귀는 내 귀하고 비슷해. 들리는 대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사람 자식처럼 말이야.

가끔 있는 경우였다. 말의 패턴과 음성의 높낮이 등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센서나 프로그램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산 공장에서 처음 설정해놓은 조건을 사용자에 맞게 바꾸지 않아 발생한 일일 수도 있었다. 설정이나 반응조건만 살짝 손을 대면 되겠지만 노마는 먼저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일, 하실 일 있으시면 일 보십시오.

-그래도 집안에 누가 들어와 있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나는 저 뒤 소파에 앉아 있을 테니 자네야말로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게.

노마의 곁에 서 있던 노인은 거실 뒤 소파로 가 앉았다. 티브이를 켰다. 시사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티브이의 음량이 높았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해야 건물 하나, 살고 있는 집 한 채 밖에 없는데 재산세를 올리는 것이 말이 돼?

노인이 말했다. 노마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곧 노인의 혼잣말임을 알았다.

-결국 우리 같은 노인네들 돈 뺏어 가는 것밖에 더 돼? 우리가 젊어서 낸 세금이 얼만데. 차라리 소득세를 조금 더 올려야지. 그게 맞지.

세금 관련된 주제의 방송이었다.

-기사 양반은 어떻게 생각해?

노인이 물었다. 노마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로봇을 수리하느라 듣지 못한 척 로봇을 살폈다. 로봇은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었다. 이상 없습니다, 당장 말하고 일어서도 되는 일이었지만 노마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찍 마친다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무조건 노인들에게 혜택을 많이 주겠다는 당을 찍어야 해. 기사 양반도 언젠가는 늙을 것 아니야.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잘 판단해야지. 길게 보고 표를 줘야 해. 노인들 표에다가 기사 양반 같은 젊은 표까지 합치면 안 될 일이 없지. 그렇지 않아? 하긴 젊은 사람들 표까지 필요하겠어? 노인들 표만 제대로 모여도 충분하지. 아무렴.

노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든 말든 노인은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노마도 노인이 말을 하든 말든 자신의 일을 했다. 노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인도 흥이 나지 않는 듯했다. 한동안 티브이의 패널들 목소리만 울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전화기를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노마는 노인의 통화가 끝나면 로봇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방문 관리를 마칠 참이었다.

이번 달까지 벌써 세 달째야. 곧 다음 달로 넘어가. 그러면 네 달째고. 이러면 안 되지. 월세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오 년째 그대로인데. 날짜라도 지켜줘야지. 내가 참다 참다 전화하는 거야. 그래그래, 알아. 어렵지. 다 어렵지. 어렵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지. 젊은 사람이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안 돼.

노인의 전화가 끝나고 노마는 노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다는 이야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로봇이 노인의 말투와 음성의 크기, 발음의 특성 등을 학습해서 명령을 정확하게 수행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을 했다. 혹시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노인에게 맞게 약간 수정해 드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무슨 말이야? 조금 쉽게 설명을 해 봐.

-한 달 정도 이 로봇과 꾸준히 대화를 하시면 로봇이 저절로 어르신 말을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이 녀석을 가르치는 거잖아. 로봇 회사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거네.

-잘 배우는 로봇을 만들어 드린 거지요.

노마는 신발을 신은 뒤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노인이 노마에게 물었다.

-내가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제주도에 가 있을 건데 저 로봇 그냥 두어도 되는 거지? 지난번 로봇은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하던데. 이번 것도 그렇겠지?

 

노마는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다 문득 아비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집에서, 바깥에서 대화의 소재가 떨어지면 아비가 습관처럼 꺼내는 이야기였다. 복지회관에서 만난 노인들과 공원이든 찻집이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빠지지 않고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이런 세상은 없었단 말이지. 다 같이 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자 이제 쉬어도 된다는 거지. 그 녀석들 말대로 전 국민 기본 소득으로 했어 봐.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놀자 판이 되었을 거잖아.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지. 그래야 노년을 즐길 자격이 생기는 거야.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 젊어서 고생했다고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준 때가 있었나? 고생한다고 돈이 벌어지나? 지금은 젊었을 때 돈을 벌어 놓지 못해도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좋아.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 놓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그런 자식들 있지? 웃긴 짬뽕들이지.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가 돈이 좀 있다 해서 그게 자기들 것이 될 것 같아. 내가, 자네가 언제 죽을 줄 알아서. 다 내 것이지.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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