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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7÷3

조현태​​​​​​​수필가 낙타 17마리를 전 재산으로 가진 노인이 있었다. 그는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유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부터 자신의 수한이 차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자녀들에게 재산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깔끔한 방법보다는 자식들이 우애를 잘 지키면서도 흡족하게 분배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드디어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노인은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맏아들에게 낙타 수의 1/2을, 차남은 1/3을, 그리고 딸은 1/9을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자식들이 함께 논의했다. 장남은 8마리를 가지자니 남는 1마리에 자신의 욕심이 드러날 것 같았고, 9마리를 가지려니 동생들의 욕심이 끼어들 것 같았다. 차남도 5마리를 가진다면 두 마리가 남는다. 형과 동생에게 한 마리씩 더 주어도 되겠으나 1/2과 1/9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6마리 가진다는 것도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딸도 마찬가지로 한 마리는 억울하고 두 마리는 오빠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계산법에 정직하게 따를 수가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평소에 친분이 두텁던 아버지 친구 분을 찾아가 상의해 보자고 했다. 여차저차 하니 아버지께서 원하신 대로 유산을 나눌 수 있도록 묘안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 친구 분이 이들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낙타 한 마리를 너희들에게 주겠다. 한 마리 더 늘어난 18마리라면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상속받을 수 있을게다.”그 말씀을 듣고 보니 세 명 모두 아버지의 계산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장남은 18/2니까 9마리, 차남은 18/3이니까 6마리, 그리고 딸은 18/9이므로 2마리씩 가지는 계산이다. 이렇게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된 것은 낙타 한 마리를 더 보탠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배분법대로 준행하고도 1마리가 남는다. 아버지 친구께서 보태준 낙타를 돌려주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출처:과목별학습백과 퀴즈초등)집으로 돌아온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서 그 방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노인이 자식들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이 세상사는 방법을 내 친구처럼 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자신의 것을 공짜로 내주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공평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연히 그 자녀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훌륭한 공무원이 되어 많은 칭송을 받으며 살았다.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면 좋겠다. 남의 것을 탐하기보다, 내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면 누구를 탓할 것도 없게 된다. 내가 먼저 더 유리한 조건의 재물에 욕심내는 것은 9:7:2를 주장하게 되고 서로 부당하다고 논쟁할 것이 뻔하다. 보태진 가상의 숫자 하나가 완벽한 배분을 하게 했고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한 여유감이 아닐까 한다.노인이 고민했던 내용을 친구와 상의하였고 친구가 노인의 자녀에게 가르쳐준 방법도 노인이 고안한 것이었다면 현 정치에 적용할 부분은 없을까 싶다.

2021-10-11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을 뜻하는 ‘green’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의 합성어로, 친환경정책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현상을 뜻한다.최근 정부가‘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40%로 대폭 상향하면서 ‘그린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국의 기준연도에서 한국의 연평균 감축률은 4.17%로, 영국과 미국의 2.81%나 유럽연합(EU)의 1.98%보다도 높다. 특히 배출 비중이 높은 전환(발전) 부문의 온실가스는 44.4% 줄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석탄 발전량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확대한다. 에너지원별 2030년 발전 비중을 보면 △원자력 23.9% △석탄 21.8% △액화천연가스(LNG) 19.5% △신재생 30.2% 등으로 제시됐다.이에 따른 막대한 비용 상승과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 설비 비용 등이 더해지며 발전 단가가 가파르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발전사들이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점도 전기료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정부는 전체 발전량 중 일정 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채우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비율을 2022년 12.5%로 설정했고,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해 법정상한인 25%에 이르도록 설계했다. RPS 비율과 비용이 증가할수록 한전의 부담도 커진다. 올해 4분기에 약 8년 만의 전기요금 인상에 이어 내년에도 추가 인상될 수 있다. 전기료 인상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그린플레이션을 불러온다.에너지 위기가 서민의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11

한글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내일은 훈민정음 반포 575주년이 되는 한글날이다. 일제치하인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11월 4일에‘가갸날’을 선포하고 2년 후에는 ‘한글날’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하례본’에 근거하여 1945년부터는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하고 훈민정음 반포 500돌이 되는 1946년에 국경일(공휴일)로 지정하였다. 1990년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기념일로만 유지하다가, 2005년에 다시 국경일로 격상되고 2013년부터는 공휴일도 회복 되었다.자국의 글자를 만들어 선포한 날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만든 이유와 사람과 연대를 아는 문자를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6천800여 종이지만, 문자로 표현이 가능한 언어를 가진 나라는 100개국 정도이다, 그중 자국어를 가진 나라는 28개국이고 고유한 문자는 한글, 한자, 로마자, 아라비아문자, 인도문자, 에티오피아문자 등 6개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유한 말과 문자를 가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소문자(音素文字)이자 자질문자다. 문자는 크게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로 나뉘고, 표음문자는 다시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로 나뉘는데, 한글이 음소문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은 자질문자(featural writing system)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소문자란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고, 자질문자는 자음이나 모음을 나타내는 각각의 글자들이 별개의 독립적인 기호가 아니라 일정하게 연결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질문자인 한글은 감정 표현을 더 세심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한글의 모음 10개와 자음 14개를 조합해서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무려 일만 천 개 이상이나 된다. 고작 300개인 일본어와 400개인 중국어(한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 또한 한글은 조합된 문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제자의 원리만 이해하면 누구나 쉽사리 익힐 수가 있고 쓰기도 쉽다. 유네스코에서도 말은 있되 글자가 없는 소수민족에게 그들의 말을 한글로 쓰도록 함으로써 소수언어의 사멸을 막자는 제안이 있고, 실제로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과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에서는 한글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한글(훈민정음)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이 되었고,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도 만들어 매년 시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 중에는 한글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요즘 인터넷 등에서 자행되는 한글 파괴현상은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비속어와 은어, 국적불명의 신조어 등으로 우리의 말과 글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유행과 변화를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교육현장이나 공영방송 등 책임 있는 기관만이라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려는 성의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10-07

오징어 게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가 어릴 적인 60년대에는 지금같이 오락 기구도 많지 않고 장난감도 많지 않던 가난하던 시절이라 몸으로 때우는 놀이를 많이 했다.골목길에서 친구들 등에 타는 말타기, 술래를 정해서 숨는 다방구, 다리를 들어올려 싸우는 닭싸움, 딱지 치기, 자치기, 팽이돌리기,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등을 즐겼다. 사실 거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는 놀이들이다. 학교 앞에는 해삼, 멍게를 엄마가 쓰는 핀으로 찍어먹는 장사꾼 옆에는 달고나 장사가 있어 입으로 별모양, 삼각형 모양 등을 잘 발라내면 한 개를 더주곤 하는 놀이도 있었다.최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오징어 게임, 이 두 개의 결정적인 게임을 모티브로 한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라는 영화 전문 채널에 소개 되면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2주 전 개봉되자 마자 전 세계를 폭풍의 도가니로 넣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TV 프로그램(쇼)’부문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쇼가 될 것이라고 넷플릭스는 단언하고 있다.필자는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너무 잔인한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다 보지 못했다. 미국 방송들도 ‘Ultra-violent(도를 넘는 잔인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방송에서는 못 보여 준다고 하면서도 ‘오징어 게임’을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과거에도 ‘헝거 게임’같은 유사한 영화가 있었지만 ‘오징어 게임’의 돌풍에는 미치지 못한다.도대체 ‘오징어 게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그건 코로나 사태 이후 겪고 있는 부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드라마 인물들은 모두 빚을 져서 내몰린 사람들이고 상금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놓아야만 하는 그런 설정이 부의 불균형에 대한 사람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들이 전 세계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오징어게임’ 체험관의 줄이 몇 백미터가 된다고 한다.디지털 시대에 온갖 온라인 게임이 난무하고 있는데 아날로그 시대의 게임들이 신선하게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중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 등은 아무런 준비물이 필요없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 게임이지만 디지털 게임과는 다른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재미있다.‘헝거게임’은 공포속에서 떨게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공포속에서 아날로그 게임이 보여주는 게임의 신선함과 재미를 배우들이 재미있게 선사한다.최근 한류문화의 세계화는 강남스타일, K-팝,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몰아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오징어 게임’까지 왔다. 인구 수나 국토면적이 작은 한국이 전 세계 문화를 흔들고 있는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도 와 닿는다. 한국 문화의 계속적인 질주를 기대해 본다.

2021-10-07

반려동물 전성시대

지난달 27일 통계청은 처음으로 국내 반려동물 사육가구를 조사해 발표했다. 전체 가구의 15%인 312만9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했다. 그 가운데 개를 키우는 가구가 77%로 가장 많았고, 고양이도 22%나 됐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연령대는 50∼59세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통계청이 반려동물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반려동물 사육가구가 늘어난 데 따른 사회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증가와 달라지는 사회인식도를 반영한 조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3년 전 통계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며 느낀 점을 조사한 내용이 있어 잠시 소개해 본다. 지금 다시 조사한 데도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반려동물을 키우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변화된 것에 대해 16세 미만 자녀들의 답변은 첫째가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음이 “외로움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반려동물을 둔 부부에게 물었더니 첫번째 답변이 부부간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했다. 다음으로 많은 대답은 부부간의 대화가 늘었다는 것이다. 또 65세 이상 노인들은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써 외로움을 덜 수 있었고 정서적으로 안정화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다.반려동물은 표현대로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하며 사람의 장난감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물질문명 발달 속에 세상의 민심은 달라져도 동물은 타고난 천성 그대로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동물과 더 친해지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이 각박할수록 반려동물은 전성기를 맞는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07

CPR(심폐소생술) 알고, 내 소중한 가족 지키자

심학수포항남부소방서장 겨울철(10월∼1월)에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고혈압성 질환 등과 같은 순환기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총 사망자 수는 30만4천947명으로 사망원인통계 작성(1983년) 이래 최대라고 한다.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해 사망원인 1위는 암, 그다음이 바로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지난해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만2천347명,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1천860명에 달하며 두 질환이 전체 사망률의 18%를 차지한다.심혈관 질환의 경우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식은땀·현기증·호흡곤란·통증확산 등의 증상을 보이고, 뇌혈관질환은 한쪽 마비·언어 장애·심한 두통·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증상을 안다고 해서 바로 처치할 수 있을까? 순환기계 질환 발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가정에서의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당황해 심폐소생술 처치를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심폐소생술은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피를 공급하는 응급처치로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반복하는 것이다. 인공호흡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가슴압박만 시행해도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경우,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2∼3배 증가시키기 때문에 최초 목격자의 초기대응이 중요하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의식확인, 도움요청(119신고 및 자동심장충격기 요청), 호흡확인, 가슴압박 순으로 구급대원 도착 전까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된다.심폐소생술을 배웠더라도 자신이 없거나 당황스럽다면, 119에 전화를 해서 의료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 ‘의료지도’란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 혹은 응급의료 전문 의료인이 하는 활동을 말하는데, 위급상황 신고 시 응급처치를 실시간으로 도와주는 제도다. 환자 발생 시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방법으로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니 참고하길 바란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지 말고,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응급처치 ‘심폐소생술’을 익혀 소중한 생명을 구하자.

2021-10-06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10개

해마다 한글날을 앞두고 이런저런 행사가 열린다. 한류가 세계의 문화를 주도하는 시대에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행사는 바람직하다. 언론도 우리말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사를 싣는다. 그러고는 우리말을 사랑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튿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래어가 넘치는 기사를 남발한다.“리어에는 센티멘탈하고 절제된 바디 위에 스포티한 느낌을 살린 투 라인 테일램프를 적용하였으며, 리어 펜더의 숄더 볼륨에 포인트를 준 낮고 와이드한 프로파일과 쿠페형 루프 끝단에 위치한 고정형 리어 윙 스포일러로 하이 퀄리티한 EV 이미지를 강조했다.”국산 승용차를 소개하는 기사인데, 번역체를 구사하고 영어를 많이 쓴 이유를 물어보니 고급스러움과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란다. 반대로 보면 한국어로 쓰면 저급스럽고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의식은 거리의 간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말의 우수성을 모르는 사람은 영어는 고급스럽고 세련되었다는 편견에 빠져있다.우리말은 동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동사가 발달했고 그에 따라 형용사도 발달했다. 예를 들어보자.- 달리다, 내닫다, 치닫다, 내달리다, 치달리다, 내리달리다- 돌다, 휘돌다, 맴돌다, 에돌다, 겉돌다, 공돌다, 나돌다, 감돌다, 떠돌다, 베돌다, 싸고돌다, 장돌다, 통돌다, 헛돌다, 계면돌다- 서다, 추서다, 벋서다, 못서다, 엇서다, 뒤서다, 갈서다, 나서다, 대서다, 다가서다, 돌아서다, 들어서다, 갈라서다, 가로서다, 곤두서다, 곧추서다, 내려서다, 넘어서다, 따로서다, 올라서다, 일어서다, 빕더서다, 비켜서다, 물러서다, 앞장서다, 물구나무서다달리다, 돌다, 서다, 하나에 그치지 않고 움직임의 상태에 따라 세분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증명으로, 우리말은 표현하지 못할 움직임이 없을 정도다.“우리말은 표음문자다. 대상의 움직임이나 상태 그리고 성질 등을 음성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도록 발달했다. 특히 형용사와 부사에서 도드라지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풍부한 감성과 관련이 있다. 한국어에서 형용사는 고유어 비중이 높다. 표현 또한 다양하여 우리말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 이러한 점에서 형용사는 ‘한국어다운’ 어휘로 꼽힌다. 풍부한 표현력, 아름다운 어휘, 묘사와 상징이 풍부한 ‘소릿말’이 적재적소에 활용되기 때문이다.”(김이랑 ‘문장의 문학적 메커니즘’부분 발췌)미쁘다, 예쁘다, 참하다, 어여쁘다. 탐스럽다, 살갑다, 밉살맞다, 푸르데데하다, 푸르뎅뎅하다, 푸르죽죽하다, 푸르스름하다, 누르스름하다, 가무스름하다, 불그스레하다, 동그스름하다, 가느스름하다, 야트막하다, 나지막하다, 자그마하다, 나직하다, 달콤하다, 달짝지근하다, 우락부락하다, 얼룩덜룩하다, 울긋불긋하다, 알쏭달쏭하다, 시시껄렁하다, 시금털털하다,동사가 풍성하면 이를 수식하는 형용사도 이처럼 발달한다. 상태를 나타내는 우리말은 풍성하다. 어감으로 실제를 연상할 수 있다. 감각적이면서 감성적인 표현은 형용사에도 넘치는데 특히 흉내말에서 도드라진다. 우리말은 흉내말을 무한대로 만들어낸다.찰랑찰랑, 자박자박, 넌출넌출, 알록달록, 어슬렁어슬렁, 어우렁더우렁, 붉으락푸르락, 퐁당퐁당, 방긋방긋, 두리번두리번, 바람만바람만, 왁자지껄, 헐레벌떡, 그냥저냥, 개발괴발, 곤드레만드레, 미주알고주알, 아옹다옹, 알콩달콩, 얼렁뚱땅, 오순도순, 허겁지겁, 흐슬부슬, 흐지부지, 흥청망청, 얼씨구절씨구….우리말 동사는 움직임이 살아있다. 형용사는 모양을 그대로 어감으로 살린다. 그래서 생동감이 넘치고 상태도 실감이 난다. 이는 표음문자의 특성이지만, 그 특성을 잘 살려 표현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언어 사용자인 우리이다. 이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만들고도 외국어를 고급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김수영(金洙暎·1921~1968)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낱말로 꼽았다. 시인이 살던 시대의 언어라서 지금 우리에게 약간 덜 친근하지만, 외래어 홍수에 휩쓸리는 오늘의 언어를 돌아보라는 성찰을 준다.한글날, 일 년에 한 번쯤이라도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말을 찾아보시라. 그러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10개를 꼽아 보시라./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0-06

정약전이 묻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질문이 곧 공부야 이놈아.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필자는 영화를 즐겨 보는 것도, 또 특별한 영화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회가 되면 대사에 좀 더 집중해서 영화를 본다. 글머리에 인용한 대사는 영화 ‘자산어보’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 속 대사 중에 필자의 마음에 오래 남은 말이 많지만, 이 말은 그중 유독 크게 남아 있는 말이다. 왜냐면 이 말만큼 우리 교육계의 아픔을 정확하게 분석한 말은 없기 때문이다.공부에 있어 암기(暗記)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암기하면서 얻어지는 긍정적인 기능도 많다. 물론 이때 말하는 암기는 이해를 바탕에 둔 제대로 된 암기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에 있어 암기는 너무 맹목적이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험을 위해 학생들은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교과 지식을 무조건 외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순간 모두 잊어버린다. 물론 모든 학생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학생이 시험을 위한 맹목적인 암기의 덫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나라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교육이 본연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학생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교육과정이며, 이미 여러 차례 새로운 교육과정이 나왔다. 다음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개정 배경 중 일부이다.“미래 사회에는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보다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 선택, 조정, 통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가 필요합니다.”늘 말하지만, 우리 교육이 이것을 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늘 이론과 거리가 멀다. 모든 혼돈은 그 거리 차이에서 온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혼돈도 크다. 지금 우리 교육계가 큰 어려움에 빠진 것도 교육 이론과 교육 현장 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분명 교육과정에서는 지식의 습득보다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 현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안타깝게도 또 많은 학교가 시험 기간이다. 독서실은 이미 만원이다. 학생들은 시험을 저주하며 또 시험용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암기에 이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시험 위에서 선 위태로운 학생들을 보면서 필자는 영화 속 정약전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질문이 곧 공부야 이놈아.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그리고 공자의 말을 생각한다.“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하고,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니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학생들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이끌 교육은 언제 가능할까!

2021-10-06

독일 정치를 벤치마킹할 수 없을까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우리나라에서는 독일 통일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은 30년 전 통일을 이룩하여 유럽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 있다. 라인강의 기적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경제력뿐 아니라 독일의 다원주의 정치 전통과 시민들의 통합 열망이 합쳐진 결과이다. 우리도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이 북한 경제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통일에 관한 국민적인 열망은 통합되지 않고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도 통일에 앞서 독일의 선진 정치를 배워야 할 시점이다.먼저 독일의 협치(協治) 전통을 배워야 한다. 다당제인 독일은 오늘날 연정을 통해 협치의 모델이 되고 있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은 야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이끌었다. 이번 하원선거에서도 사회당이 26%의 지지로 불안한 1당이 되었지만 기민당(24%) 등과 연립정권을 수립할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말로는 협치를 외치지만 실질적으로는 분열과 대립의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협력과 양보를 굴종과 패배로 보는 우리의 나쁜 정치 관습이 초래한 비극이다. 우리 정치는 결국 승자 독식의 정치가 되고 있다. 우리도 독일식 관용과 타협의 정치를 하루 빨리 정착해야 할 것이다.독일연립정부의 바탕에는 정치적 다원주의 전통이 뿌리 내리고 있다. 서독 본의 독일 의사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의사당 입구 벽면에는 7색의 무지개가 선명히 그려져 있다. 독일의 다양한 정치이념을 상징한다고 했다. 독일은 극좌의 공산당에서부터 극우 히틀러정당에 이르기까지 그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다. 보수 기민당(CD)과 진보 사민당(SPD) 사이에는 녹색당과 자유당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양당제가 극한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우리 정치를 성숙시키려면 ‘사이비’ 보수와 진보의 대결정치부터 탈피해야 한다.독일 정치에서 우리는 외교와 통일문제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을 배워야 한다. 전범국가 독일은 히틀러 시대의 잘못을 여야가 철저히 반성하고, 유럽 통합의 초당적인 외교를 꾸준히 추진하였다. 분단 시절 기민당 아데나워의 경제적 기적을 사민당 브란트가 동방정책의 토대로 활용하였다. 결국 기민당의 콜은 독일 통일을 이룩하였고, 동독 출신 기민당 마르켈은 통독 후 독일 통합을 훌륭히 이끌었다. 그러함에도 이번 하원 선거에서는 사민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아직도 틈만 나면 종북과 색깔 논쟁을 일삼는 우리 후진 정치가 배워야할 사항이다.20여 년 전 아데나워 재단의 초청으로 정치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독일 여러 곳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들의 정치교육원(Politishe Buildung)은 우리로 치면 정치연수원 격이지만 독일식 토론 문화를 성숙시키는 도장임을 알게 되었다. 칸트와 헤겔을 가진 독일인들의 토론문화는 우리가 배워야 할 민주 정치의 토대이다. 우리의 태극기 부대와 촛불 혁명은 아직도 정치적 갈등의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마저 갈등과 저주의 공간으로 전락한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 독일식 토론과 타협의 정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2021-10-06

매듭풀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얼마 전 조용기 목사가 작고하였다. 그는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켜 기네스북에 올랐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모든 일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의 기도문을 교리화 하여 영혼관리만 잘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육신도 건강해 진다는 삼박자 축복교리를 주창했다. 이는 매우 간단명료한 신앙방식으로 순식간에 교회를 급성장 시켰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매듭이 생기면 당사자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매듭을 풀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당사자를 만나 풀려고 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 매듭을 풀려고 한다. 모든 문제를 오직 하나님을 만나 해결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를 영화화 한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하여 죽인 범죄자가 자신에게 사죄의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은 이미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고 용서 받은 것으로 모든 문제는 끝났다고 하는 뻔뻔한 신앙을 보고 극노광분(極怒狂忿)한다. 하나님과의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삼박자축복신앙의 부작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삼박자축복교리의 근거가 된 요한의 메시지는 영지주의에 빠진 자들을 바로 잡기 위해 쓴 편지이다. 영지주의는 하늘과 영에 속한 것은 선하고, 땅과 육에 속한 것은 악하다고 보고 오직 하늘과 영에 관련된 영혼만 거룩하게 유지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는 신앙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 유입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준 요한의 메시지로 하나님과의 문제를 잘 해결하려는 것처럼 사람과의 일도 잘 해결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오히려 영지주의적 삼박자축복교리로 왜곡 변형되었다. 그 결과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어도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 가지면 된다는 신행(信行)불일치의 획일주의적 만사형통 신앙에 빠지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 것이다.예수는 “나를 예배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부터 하라”했고 “사람에게 한 일이 곧 하나님께 한 일이요 사람에게 하지 않은 일이 곧 하나님께 하지 않을 일이라”하였으며 율법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했을 때에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하나님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서 사람과의 매듭풀기 없이는 하나님과 매듭풀기도 없다고 했다. 그동안 기독교 신앙은 이웃과의 매듭풀기를 외면 해 왔다. 그렇게 된 것은 땅의 일을 외면하고 하늘의 일에만 몰두하는 영지주의적 삼박자축복 신앙의 영향이 적지 않다. 영지주의적 삼박자축복 신앙은 이제 고인의 떠남과 함께 같이 떠나보내고 왜곡된 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2021-10-06

토론 유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이 이제 다섯 달 앞이다. 정당들이 대선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경선에 힘을 쏟는다. 국민 앞에 주자들을 선보이고 평가받기 위해 토론을 여러 차례 벌인다. 방송사들과 시민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쓰면서 벌이는 말의 경연은 도무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당신에게 어떤 특별한 강점이 있어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당신의 제시하는 나라의 내일이 내가 꿈꾸는 비전과 함께 하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경선의 ‘흥행’이 목적인지는 몰라도, 후보들이 국민과 경선의 본질을 나누지는 못하고 있다. 토론은 국민의 선택을 도와야 한다. 토론은 국민으로 나라의 내일을 기대하게 해야 한다. 토론은 나라경영을 위한 후보의 자질을 보여주어야 한다.부동산에 관한 국민의 혼돈은 어찌 해야 하는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는 어떻게 줄일 터인가. 백년대계 교육은 어느 한 사람 언급조차 없다. 청년의 절망을 제대로 이해하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 간 갈등은 자신들의 출신지로 때울 뿐이 아닌가. 평화통일은 우리의 소원인가 아닌가. 만성적인 저성장의 굴레는 어찌 극복해야 하나. 사회에 만연하는 차별과 혐오정서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지. 고령화와 저출산은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가. 나라의 안전과 사회의 질서를 확보할 지름길은 무엇인가.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이끄는 4차산업혁명을 당신은 속속들이 이해하는가.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는 그 뿌리를 헤아리고나 있는지. 후보 당신은 이들 과제를 폭넓게 담아 대처할 인성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가.당신의 어깨에 실릴 내일의 무게와 기대의 총량을 이해하는가. 토론하는 자리에서 국민이 목격해야 할 내용과 태도는 오늘 당신이 보여주는 그것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역대급 네거티브 비방전은 그만 보았으면 한다. 당신이 품은 고약한 속내만 드러날 뿐이다. 화려한 말솜씨로 국민의 마음을 사겠다는 술수도 반갑지 않다. 국민은 언변보다 역량을 찾는 중이다. 흠집 내기와 말꼬리 잡기도 식상할 뿐이다. 당신들 덕에 코미디쇼들이 사라졌다는 비아냥이 들리지 않는가. 대선경선 토론에 정책은 사라지고 말싸움만 가득하다는 관찰은 치명적이다. 방송전파를 허비하고 국민관심을 배반하는 게 아닌가. 이제라도 돌이켜, 나라의 내일과 국민의 일상에 희망과 기대를 안기는 토론을 열어주었으면 한다.대선주자는 누구보다 정직해야 한다. 솔직해야 한다. 어느 인간이 완벽할 수 있나. 실수와 부족함이 드러날 참이면, 진솔하게 시인하고 다음 라운드에 새롭게 임하는 자세를 보여 주시라. 모르면서 아는 양 없으면서 있는 양 하는 태도, 국민이 금방 알아채서 당신의 신뢰도만 깎일 뿐이다. 청렴하고 일 잘하며 인간미도 넘치는 당신이 다음 오 년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이웃과 함께 호흡하면서 빈틈없이 국정을 살피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줄 리더를 기다린다. 토론에서 또 만날 당신에게 국민은 그래도 기대를 건다.

2021-10-06

개발이익환수제

개발이익환수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해 토지에 대한 투기를 방지하고 효율적인 토지 이용을 촉진하는 목적의 제도다.1989년 제정된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90년 1월부터 도입됐다. 처음에는 부담률이 개발이익의 50%였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 9월~1999년 12월 한시적으로 면제했고, 2000년 1월부터 1년동안은 부담률을 25%로 조정했다. 이후에도 경제활성화를 위해 2002~2005년 면제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현재는 계획입지 20%, 개별입지 25% 부담률을 적용하고 있다.전문가들은 부담률을 높여 민간이 가져가는 수익을 조정하는 개편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현재 부담률은 25%인데, 이를 45~50%로 높이고, 사전 협약과 관련된 기준, 절차, 수단 등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상당수 지자체 재량에 맡겨야 하다보니 각 지자체의 경험이나 판단력에 많이 좌우된다. 정상 토지가격 상승분을 초과하는 부분에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추후 아파트 등 건물 건축 뒤의 토지가치 상승분도 반영해 부담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발 전후 토지가격 차이가 큰 데도 이 부분이 고려되지 않다보니 개발이익 환수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무엇보다 대선과정에 불거져나온 성남시 대장동 개발특혜의혹은 개발이익환수 측면에서도 비상식적이다. 성남시가 개발이익을 5천여억원을 환수했다지만 사업설계 과정에서 자본금 5천만원 짜리 급조한 화천대유라는 법인에 나머지 개발이익 대부분이 돌아가도록 해 4천억원이 넘는 수익이 배당된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는 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06

기업 개선문화의 布石, 인재양성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활동에서는 생산의 본질(本質)이라는 한자를 자주 사용한다. ‘본질(本質)’의 어원은 농경시대에 많이 사용하던 도구인 ‘도끼(斤)를 이용하여 돈(貝, 조개)을 버는 근본(本)이 되는 것’에서 연유한다. 기업에서는 이를 ‘본원경쟁력’이라고도 하며 ‘좋은 제품을 남보다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장이 중요한데, 눈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여 잘 보이지 않는 인재양성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기업의 개선활동 측면에서 인재라 함은 ‘현장의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인재와 인재육성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신(Mind)이며 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행동으로 매일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방법적으로 어느 사업장에서도 통하는 보편적인 개선 도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제도적으로 개선활동을 경영진이 지원하고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필자가 지도하는 P사도 이러한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지만, 개선이 생산과 하나의 방식으로 잘 구축돼 있는 회사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내 자신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되듯이(他山之石), 벤치마킹으로 선도기업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사의 새로운 혁신모델을 지향하는 것은 본원경쟁력과 인재양성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요타자동차의 특장점을 공유,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인 무장이나 행동적인 자세에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를 테면 도요타의 직원들은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 생산’한다는 JIT(Just In Time)사상을 모두가 잘 공유하고 있다는 점, 가치 있는 움직임만을 위해 고객이 요구한 생산량으로 정한 표준시간과 순서로 작업을 하고, 제조공정이 정체없이 흐름화하여 제품의 준비교체시간을 줄이면서 앞 공정은 후공정인수 방식으로 생산하도록 하며, 직원의 역량을 5단계의 테크니션 레벨로 구분해 레벨이 올라갈수록 자동차 전체를 조립할 수 있는 장인으로 성장하는 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점 등이 주목된다. 이렇다 보니 도요타를 퇴직한 후에도 대다수의 임직원들은 각 대학, 정부기관에서 서로 추천 제의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으며, 실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인재양성은 기업의 개선활동이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시작 단계이며 정신(Mind), 행동, 방법, 제도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체계화돼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개선과 혁신은 전직원의 기본 업무이며 일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인간존중 사상이 기반이 돼야 회사와 개인 모두 지속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혁신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인재양성은 결국 기업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포석(布石)이며, 지속가능한 창의융합의 청사진이다. 일련의 기업경영이나 인재 창조의 안목과 비전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사람이 마무리하게 된다.

2021-10-05

선생의 책임감

얼마 전 한 대학의 비대면 수업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오픈 채팅을 통해 강의를 진행한 것, 교수 자신이 집필한 교재를 구입 후 인증하라고 요구한 것, 인증하지 못한 학생을 수업에서 강제로 배제한 것이 논란의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 사례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건, 결정적으로 그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재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을 향해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에 강의가 부실해지는 느낌”이라며 “강의를 망치려는 사람”, “강의를 부실하게 만드는 것을 도저히 넘어갈 수 없다”고 비난하며 그를 수업에서 배제했다.네티즌들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은 그의 태도였다. 정작 본인 또한 오픈 채팅을 통해 대학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로서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단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힐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이다.내가 느낀 분노의 초점은 그가 한 대학의 강의를 맡은 교수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는 교수로서, 한 강좌의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최상의 수업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학기 수백만 원을 학비로 내고 제공받는 수업에서 그와 같은 강의 방식을 채택하진 않았을 것이고, 학교 측 또한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정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은 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최상의 수업을 제공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행해야 하는 게 교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고 배웠던 교수들은 모두 그러했다. 어떤 사정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업을 제공하고자 하는 책임감.그리고 이 책임감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선생은 제자가 뛰어나기에 선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제자가 못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선생을 자처해야 하며, 혼을 내서라도 그를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제자를 힐난하고 비난했으며, 그를 타일러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보다는 수업에서 배제하는 방향을 택했다. 마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악덕 상인처럼…. 그 순간, 그는 선생이길 포기했다. 그는 스스로 학점을 사고파는 악덕상인이 되기를 선택했다.만약 그가 선생이고자 했다면, 그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그에게 교재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쳤을 것이다. 비록 혼을 내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보다 나은 수업을 위해 오픈 채팅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어른이란,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에 합당한 지혜를 베푸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우리에게 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것을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테지만, 우리가 질문을 하지 않는 건 질문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질문에는 권위로, 요청에는 묵살로 대응받은 경험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좋은 질문이 나오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시켜줘야만 한다. 권위 대신 해답을 제시하는 것, 혹은 해답을 찾기 위한 방법을 일러주는 것. 우리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일을 함께해줄 사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이 선생을 공경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겠지만, 공경 받을 만한 선생이 줄어드는 것 역시 문제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수업이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회생활을 위한 방식을 가르치고,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하여 삶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그렇다면 저 사례 속에서, 선생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도대체 그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까.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던 채현국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게도, 그의 학교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2021-10-05

눈을 감을까 뜰까, 그것이 문제로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만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그녀는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는 80여 편의 추리 소설을 발표했으며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 작가로 꼽히며 명실상부 영원한 ‘추리의 여왕’이자 캐릭터와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하는 작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재미있다. 영국의 시인 소피 한나는 아가사 크리스티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추리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다고 말했으니,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이토록 위대한 작가로 유명세를 날리던 아가사 크리스티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6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게 된다.이것은 당대의 독자들에게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사실이었다. 이렇게 발표한 작품들은 기존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소설에서 벗어나서, 인간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의 내밀한 지점을 파헤치며 벼랑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그중에서도 ‘봄에 나는 없었다’는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우연히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책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서 집어온 책이었는데, 다 읽을 때까지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 예상조차 못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와, 이 작가 정말 대단한데?’하고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고 굉장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소설의 주인공은 유능한 변호사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진,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주부, 조앤이다. 그녀는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사막의 기차역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사막을 걷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무시무시한 고요 속에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날카로운 과거의 조각들이 그녀를 아프게 찌르기 시작한다.조앤의 딸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되묻는다.‘나는 정녕 제대로 살아왔는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그녀에게는 괴롭기만 하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의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일까? 그게 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조앤은 생각과 고민을 멈춘다. 그리고 현실로, 거짓되지만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이러한 고민에 빠진 또 다른 문학적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햄릿’이다.햄릿은 그의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유명한 구절은 영문학사 전체에서 제일로 꼽히는 명대사이다. 진실을 파헤치고 복수의 칼날을 뽑을 것인지, 혹은 진실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한 채로 삶을 지속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 것이다. 혹자는 햄릿이 결단을 미루는 우유부단한 인간상이라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햄릿은 비극적 운명과 대면하기를 선택하고 숙부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로 인해 자신 역시 비참한 죽음에 내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조앤과 햄릿의 고민의 지점은 같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완전히 상반된다. 조앤은 삶에 자리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럴듯한 현실 속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햄릿은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고 끝까지 마주한 뒤에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간다. 과연 누가 옳은가.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 있고,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실을 분명히 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눈을 감을 것인가, 뜰 것인가.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섬뜩한 삶의 굴레 안에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어떤 인물에도 탄식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택하더라도 후회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러니가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다.

2021-10-05

여름 같은 가을

한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절기 중 가을 절기는 입추부터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까지를 말한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만 지나도 이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느낌을 갖는 게 보통이다.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바로 코앞(8일)에 닥쳤지만 올해 가을 날씨는 가을 같지 않아 요상하다.우리의 선조들은 한로가 지나면 기온이 더 내려간다 하여 이맘때쯤 농촌 들녘은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타작 소리로 분주하다. 한로 다음의 절기인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시기이므로 가을의 끝자락이다. 단풍이 절정기에 이르면서 농촌은 겨울나기 준비에 손길이 바쁘다.우리나라는 중위대의 온대지방으로 사계절의 날씨 변화가 뚜렷한 곳이다. 봄철은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로 변덕이 심하다. 여름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을은 양쯔강 기단의 영향으로 봄과 비슷한 날씨를 보이나 변덕없는 화창한 날씨 덕에 천고마비 계절이라 부른다. 기상청은 올가을 이상고온을 고온다습한 공기가 한반도로 유입된 탓이라 하나 여름같은 가을 날씨가 지속되자 시민들은 지구촌의 기상변화 일환으로 나타난 현상이라 여긴다.제주도에서는 밤사이 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10월 중 열대야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4일 낮 강원도 강릉이 낮 최고기온 32.3도를 기록했으며 대구도 같은 날 31.5도를 기록했다. 남부지방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낮 기온이 최고 3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 많다. 한여름에도 잠잠하던 모기떼가 가을철에 극성을 부리나 하면 뒤늦게 에어컨을 다시 가동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가을이 가을 같지 않으니 모두가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 부른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05

‘착한’ 드라마, ‘나쁜’ 드라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하늘이라는 무한(無限) 화면에는 / 구름의 드라마, /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 그는 수줍은지 /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네. /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 쉬임없이 /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세계의 문학’ 2003년 봄호에 실렸고, 그해 미당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최승호 시인의 시 ‘텔레비전’의 첫 6행과 마지막 7행이다. 시인은 하늘, 강물, 바위, 개울 등의 자연과 버려진 텔레비전을 대비시키면서 영상 문화의 비감을 ‘개울 한 구석에 처박힌 삐딱한 영정’으로 표현하였다. TV는 사회와 삶의 부도덕성을 그려냄으로써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영화에 비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TV의 선정성은 자주 심각한 문제가 되곤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456억원이라는 상금 앞에서 455명의 사회 부적응자 또는 실패자는 모두 탈락이 되고 제거된다. ‘탈락, 제거’라고 했지만, 실상은 무참한 살육(殺戮)이다. 이 지나친 선정성과 물신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나는 두 개의 드라마에 더 눈길이 간다.‘슬기로운 의사생활 2’(슬의생2)와 ‘펜트하우스 3’(펜하3), ‘슬의생2’는 올해 6월 17일부터 9월 16일까지 매주 목요일 tvN에서 방영되었고, ‘펜하3’은 6월 4일부터 9월 10일까지 방영된 지상파 방송사인 SBS 금요 드라마이다. 우연인 듯 올해 6월에 같이 시작하여 9월에 같이 종영된, 온탕과 냉탕을 하루 차이로 왔다갔다 한 기분이 들게 만든 ‘슬의생2’에 ‘착한’ 드라마, ‘펜하3’에 ‘나쁜’ 드라마라는 모자를 씌워주고 싶다.‘슬의생2’는 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으로 tvN 역대 드라마 중 최초로 첫 회 시청률이 10%를 기록한 드라마이다. 종편과 케이블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도 첫 회 시청률이 역대 1위이고 마지막 회 시청률도 14%를 넘겨 시청자들의 사랑을 제법 받았다. 이에 비해 ‘펜하3’의 시청률은 첫 회에 19.5%, 마지막 회에 19.1%이었다고 한다. 종편과 지상파라는 차이가 있지만, 첫 회에서는 거의 두 배의 시청률 차이가 나고 마지막 회에서도 5%의 차이를 보였다. 사람들은 ‘나쁜’ 드라마에 매력을 더 느끼나 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나쁜 드라마가 더 좋은 것일까?한국 사회의 모습은 TV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드라마가 사회를 그려내고 있기에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말이 ‘나쁜 펜하’에는 제법 들어맞는데, ‘착한 슬의생’에는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슬의생 드라마의 착하고 고운 의사들같은 의사 선생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겠지?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그 ‘착한’ 이들이 아니런가!

2021-10-05

신라불교의 정점 불국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토함산에 자리한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시작해 혜공왕 10년(774년) 완성한 사찰이다. 불국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대성(金大城)이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지은 사찰이다. 그러나 김대성은 사찰의 완성은 보지 못하고 그 뒤에 국가에서 이어받아 완성하였다.불국사에 대한 발굴조사는 복원을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불국사의 법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가탑과 다보탑, 조선후기에 지은 대웅전, 자하문, 범영루 등 다수의 건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루어진 발굴조사는 무설전(無說殿)과 대웅전(大雄殿) 영역 내 회랑, 익랑, 비로전(毘盧殿), 관음전(觀音殿)에 대해 이루어졌고 백운교 남쪽으로 연지(蓮池)의 흔적을 확인하는 성과가 있었다.불국사는 신라사람들이 염원한 불국의 세 가지를 구현했다고 한다. 첫째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여래의 사바세계, 둘째는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마지막으로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로 불국사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일대와 비교된다.불국사는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 다수의 불교문화재를 품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 대웅전, 무설전, 극락전과 안양문 등 건물지도 우수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계단이라 할 수 있다.극락전 앞에는 안양문, 대웅전 앞에는 자하문이 있고 문 앞으로는 2단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안양문과 연결되는 연화교(계단에 큰 연꽃잎이 새겨져 있음)와 칠보교는 합하여 18단이고, 자하문과 연결된 청운교(푸른 청년의 모습)·백운교(흰머리 노인의 모습)는 33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아래쪽에서 우러러보아야 하는 이 계단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높디높은 불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명칭을 살펴보면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로 즉 다리를 의미하는데 ‘다리는 물을 건너는 구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불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전에는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어 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운교·백운교 사이 하단에는 다리에나 있을법한 아치형의 홍예구조를 볼 수 있다.불국사에서 수려함을 자랑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또 어떤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알려져 있는 탑이다.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 충실히 구현된 석가탑은 비례와 균형미가 뛰어난 탑으로 인정받고 있고, 사방에 계단과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화려한 상륜부를 자랑하는 다보탑은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인들의 미적감각과 돌을 다루는 기술을 마음껏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두 탑은 후대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다보탑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해체되었고 탑 안에 봉안되어 있던 사리장엄구는 현재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석가탑은 1966년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석가탑은 해체·보수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신라인들의 불교예술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2층 탑신석 상면 중앙 사리공에서 금동제 방형 사리합, 소형의 은제 사리합, 초록색유리병, 곡옥, 수정 및 각종 구슬 등의 사리장엄구가 확인된 것이다. 정여선학예연구사 특히, 사리공에서는 세계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되어 깜짝 놀라하게 하였다. 다라니경은 길이 약 600㎝, 너비 8㎝의 두루마리 형태로 금동제 사리 외함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금동제 사리 외함의 바깥쪽에서는 묵서지편(墨書紙片)도 발견되었는데 고려시대에 필사된 ‘보협인경’의 잔편과 약 10×13~15㎝ 크기의 고려시대 중수문서 3종 등이 밝혀졌다. 특히, 중수문서에는 고려시대에 석가탑이 서석탑으로 불려졌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려주었다. 이렇듯 불국사는 신라사람들이 바라는 불국세계를 현세에 펼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예술과 기술을 동원하여 통일신라시대 불교예술의 정점을 이루었다.경주는 수학여행지, 답사지, 여행지로써 손색없는 곳이다. 경주를 여행하다가 간혹 오랫동안 운영된 식당 벽에 기와지붕이 올려진 오래된 건물과 그 아래 축대처럼 쌓인 돌 그리고 계단이 보이는 흑백사진을 보게 될 수 있다.‘저 사진이 왜 여기에 걸려있을까?’ 하고 처음에는 참 의아했는데 그 사진이 불국사의 옛 모습임을 알게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는 경주이고 경주의 대표적 유적은 불국사이니 저 사진이 걸려있는 건 당연하다는 공감의 끄덕임이다.

2021-10-04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렛미인’ 포스터. 북유럽의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뱀파이어 영화다. 낮보다 밤이 길고,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쌓이는 풍경 속에서 주변의 소음들이 소거된다. 소리없이 진행되는 영화다. 하얀 눈과 붉은 피, 강렬하게 대비되는 시각적 이미지로 남는다.내용에 있어서도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암시적인 표현으로 지나가고, 적막함 속에서 탄식과 안타까움이 단계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탄식과 안타까움은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동반한다. 그래서 애틋하면서 아프고, 시리도록 아름다우며, 단순하지만 선명함으로 남는 지독한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12살 8개월 9일’을 살았다고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소년 오스칼의 옆집에 ‘12살쯤’이라고 살아 온 시간을 얼버무리는 소녀 이엘리가 이사를 온다. 이엘리는 오래 전 어느 날 12살의 나이로 뱀파이어가 되었다. 12살을 지나고 있는 소년과 수 백년의 시간을 12살의 외모로 살아가는 소녀가 적막하고 어두운 놀이터에서 만난다.‘탄식’은 이엘리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온다. ‘애틋함’은 오스칼과 이엘리의 사랑이 진행되면서 예측될 수 있는 운명의 과정 속에서 나온다. 위의 감정들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과 무한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시간의 상대성’에서 기인한다.12살의 모습으로 수 백년을 살아 온 이엘리와 함께 했었을 수많은 유한한 존재들. 오스칼의 미래를 이엘리와 같이 사는 늙은 남자에게서 보게 된다. 영화 ‘렛미인’은 늙지 않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며, 보통 인간과 비교도 안될 괴력을 지닌 초월적 존재로서의 뱀파이어에 집중하지 않는다. 12살의 외로운 소년과 수 백년의 12살을 살아가고 있는 소녀의 외로운 성장기를 다룬다.뱀파이어 영화에서 연상할 수 있는 강렬함과 액션, 잔인함과 공포가 스웨덴의 시리고 적막한 겨울 속에 묻힌다. 영화는 어둠과 흰색이 지배하는 풍경에 뿌려지는 선혈 속에서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기존 뱀파이어 영화에 등장할 법한 것들을 빼고 감독에 의해 선택된 것들만이 남아 반짝이며 빛난다.‘왕자는 공주를 구출하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아름다운 궁전에서 행복하게 살았음’이 성립되지 않는다. 유한한 존재와 무한에 가까운 존재의 ‘시간의 상대성’으로 인해 다가올 미래는 어긋난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특수성으로 인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관계에 놓인다. 이렇게 기울어진 관계를 예측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동화’같은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은 소설 원작(스웨던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동명 소설)에서 다채로웠던 이야기들을 살뜰히 발라내고 펼쳐낸 영화의 리듬에 있다고 하겠다.사람의 피를 마셔야 살 수 있는 뱀파이어와 그 희생자인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는 전개는 더욱 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소년과 소녀는 금기를 깬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소년은 끝을 알면서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의 여정을 떠난다.뱀파이어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 들어갈 때 꼭 그 영역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몸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 나오고 고통에 빠진다. 영화 제목인 ‘렛미인(Let Me In)’은 너의 영역으로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허락의 의미다. 영화의 제목처럼 서로가 좁혀질 수 없는 물리적 간극이 존재하고 있지만 소년과 소녀에게 그것은 장벽이 되지 못한다.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라는 이엘리의 메모 속에서 뱀파이어를 호러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2008년 개봉 되었던 이 영화는 2010년 맷 리브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제목으로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 같은 원작으로 영화화 되었지만 스웨덴 버전보다 현실적이며 그들 간의 사랑은 직접적이다. 스웨덴 버전이 한편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동화의 분위기라면 미국판은 뱀파이어 영화의 스릴러와 액션 등의 장르에 충실하고자 했던 점이 보이며 슬픔의 감정을 끌어 올린다.다소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어느 것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취향이 갈릴듯하다. 굳이 추천하자면 스웨덴판 ‘렛미인’을 먼저 볼 것을 권한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1-10-04

일상을 축제처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창 가을날이 익어가는 시월은 밝달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라 해서 하늘연달이라 하기도 한다. 양떼구름, 새털구름을 띄우는 하늘은 점차 높푸르러 가고 들판엔 황금물결이 일렁이는가 하면, 산에는 조금씩 초록에 지쳐가는 잎새들이 슬며시 물들어가는 듯하다. 멀지 않아 천자만홍, 만산홍엽으로 결실과 단풍을 부를 계절은 저마다의 색과 빛과 몸짓으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라도 펼칠 참이다. 이 같은 자연의 변조에 어우러져 유난히 축제가 많은 10월은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미증유의 코로나19가 축제의 발목을 잡아온지 벌써 2년째, 그러나 언제까지 코로나만 탓하고 움츠리며 몸만 사릴 것인가? 궁하면 통한다(窮則通)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축하와 제전의 의미를 담아 문화, 예술, 체육 따위와 관련하여 성대히 열리는 사회적인 행사인 축제(祝祭)는, 사람 사는 세상의 중요하고 긴밀한 연결과 화합의 요소라 할 수 있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의 유대와 소통은 활발해지고 협력과 일체감은 강화된다. 또한 축제는 밝은 내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문화, 관광, 예술 전분야의 핵심적인 성장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의 축제가 명맥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고민과 착잡함이 빠져드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 분위기와 처한 여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대안과 유효적절한 아이템으로 축제의 다변화된 양식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대면, 비접촉 상황임을 전제한 온라인 축제나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이색 테마 등은 한결 축제의 다양성과 흥미로움을 유발할 것이다. 실제 문경찻사발축제 등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곳도 이미 있다.‘문화의 달’답게 포항에서는 지역과 전국 규모의 굵직한 축제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일월 정신문화 전승’ 차원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제14회 일월문화제와 ‘생활문화 백신(100 Scene)으로 만나는 새로운 일상’을 주제로 10월 4일부터 일주일 간 개최되는 ‘2021 전국생활문화축제’가 그것이다. 특히 전국생활문화축제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활문화축제로 전국 시군구 5천여명의 생활문화인들이 비대면으로 접속하여 각 지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다. 올해는 제8회째로 포항을 메인 스튜디오로 하는 메타 유니버스와 생활문화TV온오프라인 등으로 전국을 연결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축제를 통해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다양한 생활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일상을 살고 있는 지역민과 전국의 생활문화인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며, 아울러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누리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져 보길 기대해본다. 일상의 쉼표에서 문화를 느끼며 축제장의 만남을 통해 코로나19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기회로 여긴다면, 삶이 한결 여유롭고 향기롭지 않을까? 매일매일 숙제(?)하듯이 살지 말고 일상을 축제처럼 즐기며 살아보면 어떨까?

2021-10-04

나침반 이야기

조현태​​​​​​​수필가 나침반은 바늘이 항상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특성이 있다. 둥근 지구의 어느 곳에 있든지 극 지점의 자력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만 고정되어있는 물리적 특성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본 감정나침반 이야기가 있다.나침반 바늘 끝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미세하게 떨고 있단다. 나침반의 바늘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단다. 여윈 바늘 끝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서. 만일 그 바늘 끝이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이미 나침반 기능이 아니라고 한다.그러면서 사람의 현상에 비추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한다고 한다.‘나무야 나무야’의 저자 신용복은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자 내용’이라고 덧붙인다. 나아가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에 ‘편안함’도 경계해야 한단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이어서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흐르는 강은 추억의 물이며 뭔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이라고 한다.나침반의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특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임무와 사명감이 나침반만큼이나 우직하면 좋겠다. 이러쿵저러쿵 살면서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할 수 있는 삶이지만 그럴 때마다 갈등하며 불편하게만 여기면 멈춤으로 이어질까 두렵다.우리는 언제나 편함과 불편함을 함께 지니며 살고 있다. 그렇건만 불편함만 없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미세하게 떨고 있는 망설임이 곧 불편한 것일 수 있으나 종국에는 고유임무를 지켜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흔하게 사용하는 어휘에 ‘갈등’이 떨고 있는 바늘의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칡과 등나무가 생장하는 양상이 서로 반대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방향 때문에 성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참나무에 같이 감아 오르는 칡과 등나무가 있다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을 뿐 참나무를 오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이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감을 수도 있다.그러나 칡과 등나무가 서로 감으려고 한다면 상당한 실패와 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둘 다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어떤 형태로든 조금은 엮이면서 상대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들에게도 불편함과 편안함이 있겠지만 어느 쪽을 택하기보다는 처음 목표를 둔 것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칡은 칡의 방식으로, 등나무는 등나무의 방식으로 꼬아야 할 일이다. 어느 한 쪽이 자신의 방향에서 상대의 방향으로 따라하면 새끼처럼 잘 꼬일 수는 있어도 방향을 바꾼 쪽은 이미 자기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불편하게 떨다가 정지해버린 나침반처럼 말이다.

2021-10-04

카카오톡 피싱

카카오톡 피싱은 카카오톡을 이용해 메신저피싱을 하는 것을 말하며, 주로 자녀를 사칭해 평상시 대화처럼 접근하기 때문에 경계심이 느슨해져 피해를 입기가 쉽다.금융감독원의 ‘2021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에 따르면 전체 피해액은 전년 대비 46.4% 감소했지만 메신저피싱 피해액은 전년 대비 165.4% 증가한 466억 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55.1%를 차지했다.사기범은 대체로 “엄마 나 폰이 고장나서 AS를 맡겨 놓고 컴퓨터로 톡 접속 중~” 등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 후 돈이 필요하다며 신분증을 촬영해 보내달라거나 계좌·비밀번호 등 금융거래정보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원격 조종’, ‘전화가로채기’ 앱 등을 설치하게 하는 링크(URL)를 보내 휴대폰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훔치기도 한다.이렇게 탈취한 정보로 사기범은 금융거래를 한다. 피해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을 개통해 피해자 계좌의 잔액을 털어간다. 최근에는 오픈뱅킹을 악용해 다른 금융회사의 계좌를 터는 수법도 있다.모르는 전화번호 혹은 카카오톡 계정 등으로 메시지를 받는다면 문자·카카오톡으로 답을 하기 전에 반드시 직접 자녀에게 전화해 확인해야 한다. 자녀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 카카오톡의 프로필을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보이스톡(카카오톡의 무료 통화 기능)을 이용해 연락을 취해보는 것도 좋다. PC에서도 보이스톡은 가능하기 때문이다.만약 프로필 사진 아래 주황색 모양 지구본이 보인다면 해외 계정을 통한 사기범일 가능성이 높다. 신분증 촬영·계좌·비밀번호와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는 가족·지인이 요구하더라도 바로 알려줘서는 안 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금융피해를 입지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04

일그러진 우리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내게는 나름으로 내세울 만한 게 몇 있었다. 첫째로 공부, 나는 그 별난 서울의 일류학교에서도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또 나는 그림 솜씨는 서울시 규모의 대회에서 몇 번의 특선은 따낼 만했다. 내 아버지는 그 작은 읍으로 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직급 높은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담임과 급우들은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나 나는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이상한 힘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엄석대의 힘에 저항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에게 다가갔다. 엄석대는 내가 물어봐주기를 바랐던 서울 학교의 성적, 아버지의 직업 등을 물었다.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작 일부분을 조금 요약한 것이다. 1959년으로 추정되는 시기, 한병태는 5학년으로 올라가며 시골로 전학 와서 자기의 서울 성적과 집안에 대한 우월감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엄석대를 중심으로 학급의 분위기가 힘의 논리로 운영되는 데 대해서는 불합리와 폭력이라며 끔찍해하며 저항한다.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시골 학교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기에 엄석대의 권력에 더욱 저항했을 것이다.엄석대에게 무너지고 2인자의 자리가 확보되자 병태는 그 누구보다 엄석대에 기생하며 권력의 달콤함을 누린다. 그렇다고 1인자가 되려는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인자가 된 후에도 엄석대가 시험답안지를 바꿔치기해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담임에게 알리려고 한다. 이런 한병태는 분명히 반 아이들과 구별된다. 반 아이들은 석대에게 바로 복종하거나 석대 무리에 끼기 위해 애쓰는 반면, 한병태는 자유와 합리라는 이름으로 저항했다. 권력에 한없이 무기력한 반 아이들이 소시민이라면, 자유와 합리를 추구하며 저항했던 한병태는 시민에 가깝다. 그런데 한병태의 시민 정신의 뒤에는 자신이 1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2인자가 된 후에도 엄석대의 몰락을 꿈꾸기 때문이다.26년이 지나 사업 실패로 실업자가 되었을 때는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졌다고 세상을 탓하며 병태는 석대의 질서를 그리워한다. 6학년 담임이 엄석대의 비리를 캐물을 때 모른다고 회피하고 오히려 석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라며 탓하기까지 했던 병태였다. 당시로서는 최고급 승용차였던 그라나다를 엄석대가 타고 다니자 고향 아이들은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을 때도 병태는 석대가 그 이상의 영웅이 되어주기를 바란다.자기가 잘 나갈 때는 자유와 합리를 주장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지면 영웅을 기다리는 병태의 굴절된 의식은 엄석대 체포 후 극에 도달한다. 석대의 몰락은 영웅을 기대하던 병태에게 분명히 새로운 비관이었을 텐데도 세상에 대한 안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1987년에서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기저기에 ‘한병태들’이 있을 가능성이다. 조금이라도 자유와 합리를 추구한다면 ‘한병태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1-10-04

돈벼락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주역(周易)은 중국 주(周)나라의 역서(易書)다. ‘점술에 관한 것을 기록한 책’을 역서라 한다.주역을 역경(易經)이라고 경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 점복(占卜)의 원리가 천지자연 변이(變易)의 이치로 인간사의 변이를 풀어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에서 음(陰)과 양(陽)이 갈라지고, 음양이 사상(四象)으로, 사상이 팔괘(八卦)로, 팔괘를 다시 64괘로 나누어서 각 괘마다 괘사(卦辭)를 붙여 점술의 근거로 삼고 있다.경기도 성남시 개발사업에 참여한 회사명으로 유명해진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는 주역의 64괘 중 열세 번째와 열네 번째 괘의 이름이다.괘사의 풀이는 학자들마다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천화동인(天火同人)의 괘상(卦象)은 ‘널리 뜻 맞는 동지를 얻어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면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잘 통한다’는 의미로 풀기도 한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음기와 양기가 서로 통해 이슬과 비를 내리니, 만물이 생장하고 오곡이 잘 여물어 크게 부유하게 될 상’이란 풀이가 있어 둘 다 돈과 권력이 되는 거사를 도모하기에 좋은 괘라는 얘기가 된다. 하필 주역의 괘명을 회사 이름으로 정한 이유가 뭘까. 혹시 회사를 설립하려고 점을 쳐보니 대박 날 점괘가 나와서 그것으로 회사명을 삼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중천의 해도 저녁이면 지는 것처럼 길흉화복이란 바뀌게 마련인 것이 또한 주역의 원리다.돈벼락을 맞은 사람들 얘기가 요즘 뜨겁게 매스컴을 달구고 있다. 성남시 대잠동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 얘기다. 수천만 원의 자본으로 시작해서 몇 년 만에 수천억 원의 이득을 보았다니,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돈벼락이 아닐 수 없다. 천억 원이라면 십억 원짜리 복권을 한꺼번에 백 번이나 당첨이 된 것과 같은 액수인데,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경악과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자본금이 고작 수억 원인 조그만 회사에 고위급 전직 법조계 인사들이 관여 했다는 것만도 의혹의 소지가 다분하다.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검, 강찬우 전 검사장 등이 그들이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서 고위급 전관 법조인들을 대거 영입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야당 국회의원의 아들이 6년을 근무하고 퇴직하면서 50억 원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나 사태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인연으로 엮였던지 간에 썩은 고기에 파리들이 몰려든 것을 연상케 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마른하늘의 날벼락이 재앙이듯 대명천지의 돈벼락도 화근이기 쉽다.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일확천금의 대박이 해피엔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돈벼락 한번 맞아보고 싶다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한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인생의 소중한 것 중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많기에 하는 말이다.

2021-09-30

애플의 포항 입성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40여 년 전인 1978년 애플이란 회사는 애플2라는 인류 최초의 개인형 컴퓨터 PC를 만든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다.그전까지 컴퓨터는 대형컴퓨터로 주로 데이터 관리에 사용되었고 경영 하부층에서만 상부 보고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PC가 출현한 이후 의사결정에 컴퓨터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경영 상부층에서도 그들의 데스크에 놓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의사결정 시스템(DSS)이 출현한 것은 PC의 출현에 의해 가능했다.1981년 마이크로 소프트의 운용체제를 장착한 IBM PC에 밀려나긴 했어도 애플의 컴퓨터업계의 공헌은 엄청난 것이었다. 사실 IBM은 애플의 운용체제 개발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 MS-DOS라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운용체제가 장착 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그런 애플이 포항에 둥지를 튼다.최근 애플·경북도·포항시·포스텍은 ‘애플 제조업 R&D지원센터’ 및 ‘개발자 아카데미’ 설립·운영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애플은 포스텍 캠퍼스 내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공정과 친환경 제조기술을 지원하는 ‘제조업 R&D 지원센터’와 ‘개발자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수백억을 투자해 포스텍과 함께 운영한다고 한다.R&D 지원센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조업에 특화해 운영할 예정이며 SW 핵심인력들을 양성하는 개발자 아카데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다고 한다.센터는 중소기업의 스마트 제조업 역량 강화를 위해 스마트 공정과 관련된 최신장비를 구축하고 애플의 전문인력이 상주하면서 지원대상에 선정된 전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교육과 컨설팅 등을 진행하게 되고. 아카데미는 재능있는 개발자, 기업가,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교육을 진행한다고 한다.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 밸리는 그 발전에 있어서 궤를 같이한다. 스탠퍼드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여 실리콘 밸리를 만들었고 역으로 실리콘 밸리는 스탠퍼드를 지원하고 있다.애플의 포항 입성은 포항이 ‘한국판 실리콘 밸리’가 되는 서막일 수 있다.포스텍은 기업가 정신에 기초해 애플과 협력으로 과거 스탠퍼드가 시작하여 실리콘 밸리의 초석이 된 휴렛팩커드 같은 제2의 애플을 여기 포항에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몇 년간 각종 세계 랭킹에서 포스텍이 고전하고 있다. 포스텍은 순위 하락에도 그 입지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세계의 대학들은 순위에 의해 상대 대학을 판단한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대학들은 구미대학들이 랭킹에 의지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애플의 포항 입성과 포스텍과의 연계가 포스텍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 하길 기대해 본다.포스텍은 2010년 타임즈(THE TIMES)에 의해 세계 28위를 기록해 한국의 대학이 기록한 세계 최고 랭킹의 기록을 아직도 갖고 있다. 애플의 포항 입성이 포항, 포스텍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2021-09-30

도덕심의 根源

도덕심이 후천적이냐 혹은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냐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도덕과 윤리는 비슷한 개념이다. 덕(德)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ethos나 라틴어 mores는 모두 습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생활방식에 기초해 살아가는 사회적 습성에서 본다면 도덕은 후천적인 습관에 의한 규범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공동체 속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규범적 행동을 말한다.그러나 성격이나 지능, 가족력 등이 유전에 의해 나타나는 것처럼 도덕심도 유전적일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오래전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팀이 정의감과 도덕심이 유전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생후 12개월에서 24개월까지 유아 73명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불공평한 사례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도덕심 있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다. 유아들은 캐릭터가 서로 다른 두 종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뇌파검사로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검사 결과, 정의감이나 도덕심이 유전하는 것으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고 부모로부터 유전될 수 있음을 인지했다고 한다.도덕심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그러나 도덕심이나 청렴만 가지고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수도 없이 많다. 도덕심, 정의감, 청렴성, 용기, 결단, 애국심, 판단력 등등 열거하기조차 어려울만큼 많다. 그 중에 도덕심은 으뜸이다.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까지 이 사건에 연류 의혹을 받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울화통이 절로 터진다. 당사자가 무슨 변명을 해도 국민의 눈에는 ‘부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덕심의 근원 정말로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