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하면서 10년지기 지인과 동행한 것을 두고 온 세상이 시끄럽다.
‘무속인 아니냐’는 얘기가 유포되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공적인 자리에 사적 지인이 동행한 것은 옳지 않다며 연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도 뒤질세라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비선 논란을 자초한다’고 신명이 난 듯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필자 생각으로는 참 해도 너무들 한 것 같다.‘내로 남불’도 이쯤이면 금메달감이다.
세상은 끈으로 서로 얽혀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흔히들 인연(因緣)이라 말한다. 선하게 얽혀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마는 만약 원한으로 서로 악하게 맺혀 있다면 삶이 고달파진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맺음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이 곧 인간관계다. 결(結)이란 끈으로 매는 것이고, 해(解)는 묶은 끈을 푼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사에 이리저리 맺고 얽히어(結者) 시작하지만,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풀고(解之)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사(事) 관계 속에서, 또 살아가는 사이에 너와 내가 얽히고 위와 아래가 얽히고,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다. 정치도 돌고 돌아서, 어제의 야당은 여당이 되었으며 여당은 야당이 되었다. 당연, 영원토록 살아 있을 권력도 없을 터다. 저물어 버린 권력에게 다시 신새벽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가족 관계도 집도 미시적으로는 사회다. 또, 친구들과의 만남도 사회이고, 이웃이나 마을, 교회나 사찰도, 정당 활동도, 우리에게는 사회이다. 다만, 사회에서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철저한 이들이 적잖음을 우린 종종 목격한다. 잘난 체 하고 뽐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가 하면 헛소문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마구니 짓이 일상인 이들 곁에는 훗날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자연인을 애써 비판과 혹평으로 몰아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더구나 대통령 부인의 친구라 하여서 험한 욕설과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난다. 일부 비호감 여론을 활용한 공격이라는 것 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말이 있다. 터럭을 불어서 작은 허물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짐승의 몸에 난 흠은 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불어서 털을 헤치고 흠을 찾아내는 것이니 남의 허물을 억지로 들추는 일을 말한다.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법의 중요성을 주장한 한비자의 ‘군자는 터럭을 불어서 남의 허물을 찾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왔다. 작은 허물도 없는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서기 어렵다. 어느 누구나 작은 결점은 지니고 있다. 남의 장점보다 결점이 먼저 보이는 것은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항상 불평을 품는 사람은 번뇌의 때가 점점 자라며 그의 번뇌는 계속 불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