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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와 2.0

등록일 2022-06-19 18:06 게재일 2022-06-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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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모 프로젝트 연구제안서 공모의 심사 위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많은 글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글 하나가 있었다. 단박에 공모자가 꽤 오랫동안 고심해서 쓴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아이디어도 남들이 생각지 못한 매우 참신한 것인데다 아이디어의 실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자료들도 정확해 읽는 내내 감탄을 마지않던 글이었다. 참으로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반가운 글이어서 나는 당연히 그게 선정 리스트에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은 떨어졌다. 까닭은, 유명한 심사위원장이 그 글은 제쳐놓고 다른 글들을 중심으로 먼저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인데, 그 글을 제쳐놓은 이유는 또, 글이 너무 독창적인데다 별 이름 없는 지방의 소위 삼류 대학 출신의 것이라 제시한 이론의 실효성도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하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에 한 획을 긋곤 하는 이들의 삶이, 늘 꽃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것이 ‘인(仁)’이라 했던 공자의 사상도 당시에는 ‘현실감 떨어지는 이론’이라 배척받았고, 당시 대세이던 천동설에 반해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을 여러 각도로 지지한 갈릴레이도, 종교재판에 회부되며 혹독한 수난을 겪었으며, ‘갈루아의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의 방정식론도, 당시 프랑스 학사원에서 등한시되었고 사후에야 그 이론의 위대함이 세상에 알려졌다.

눈이 두 개라고 사물을 더 잘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0.2의 시력을 지닌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2.0의 시력을 지닌 한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어느 것이 더 선명히 잘 보일까. 장자의 ‘소요유’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변해서 된 새, 대붕(大鵬)이 큰 날개짓을 하고자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메추라기가 숲 풀 사이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게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인데 대붕이 어딜 가려는가 하고 비웃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장자는 “작은 뜻은 큰 뜻에 미칠 수 없고, 이끼와 버섯은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모르고, 매미는 봄, 가을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덧셈·뺄셈만 아는 이는 곱셈·나누기를 하는 사람을 이해못하고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은 덧셈·뺄셈만 아는, 매미같이 여름 한 철만 아는, 두 개의 눈이나 0.2의 흐릿한 시력을 지닌 그런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곱셈·나누기를 아는, 사시사철을 아는, 애꾸눈일지언정 2.0의 시력을 지닌, 그러한 이들에 의해 달라지는 법이다. 좋은 글을 쓰고도 여러 선입견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한 공모자의 글도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

바야흐로 6월 하순, 한창 뜨거웠던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도 모두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변혁을 꿈꾸는 바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모쪼록 0.2의 흐릿한 시력이 아닌, 2.0의 선명한 시력으로, 다들 지난 정부의 공과를 잘 살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앙·지방 정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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