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평산마을이 시위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증오와 쌍욕만을 배설하듯 외친다”라면서 “이게 과연 집회인가? 총구를 겨누고 쏴대지 않을 뿐 코너에 몰아서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라고 비난했다. 마을 주민들도 욕설과 소음으로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시위를 이어온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렇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허용 범위 안에서 집회를 진행해 경찰도 단속이 쉽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비난하고, 평산마을에서 시위를 못 하도록 막는 집시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말했었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미”라며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고양이·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했다. 평산마을 사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시설들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생활 공간만 따지면 그리 다르지 않다. 봉하마을이 커진 건 부엉이바위와 묘소 등 추모 시설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퇴임 생활에 성공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
대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수시로 시위대를 만난다. 청와대 앞쪽 광화문에서 용산에 이르는 거리는 상설시위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국회와 대기업 본사 앞에도 플래카드와 확성기 소리를 항상 보고 들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 이전 퇴임한 대통령들도 시위대를 피하지 못했다.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민주화 과정에 우리 사회는 시위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 시위는 힘없는 사람이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이고, 이것을 막는 것은 독재 정부나 하던 시민 탄압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화염병 같은 위험한 장비를 사용한 과격한 시위마저 정당한 시위로 감쌌다.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 시위대는 의인으로 보호되고, 경찰은 문책당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법을 어기지 않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요구사항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시선을 집중시키려 과격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집회와 시위는 법으로 보장되고, 시위가 아니라도 의견을 전달할 수단이 많아졌다. 소셜미디어는 넘쳐난다. 물론 대면 다중 집회로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들의 힘을 눈으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스피커 볼륨이 세력의 크기는 아니다. 법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경찰이 불법을 수수방관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집단의 힘으로 억지를 부려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용한 다수가 피해를 본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찰의 법 집행이 많이 위축됐다. 정당한 법 집행도 과잉 진압 시비를 피하지 못했다. 모르는 척 불법을 눈감아주는 게 습관이 됐다. 적극적으로 나서다 징계받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집회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혀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변질해왔다.
그동안 각종 시위를 무조건 감싸왔던 민주당이 시위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세 건이나 국회에 제출했다. 윤영찬 의원은 1인 방송이 원색적 욕설 방송으로 수익을 올리는 ‘1인 시위’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골프장까지 쫓아가 카메라를 들이댄 방송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비슷한 방송을 많이 봤다.
표현의 자유가 남을 괴롭히는 자유는 아니다.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이 기회에 집시법을 보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법을 손질도 하지 않고 ‘법대로’만 외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을 위한 법 개정이어서는 안 된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바로 보인다. /본사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