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경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강동 지나며 유강터널을 앞에 두고 갑자기 생각난 듯 좁은 옆길로 내려오니 조용한 정원이 있었다. ‘형산강 역사문화 관광공원’이라 적당한 장소에 주차하였다. 나무와 꽃, 벤치가 있는 풍경에 마음이 끌려 잔디밭 길과 나무다리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이곳을 지나던 옛 기억이 어렴풋하다.
천년고도 경주를 지나며 160리길 흘러온 형산강물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지 포항으로 얼굴을 내미는 이곳을 경주시 강동면의 ‘형산목(項)’ 또는 ‘형산미기’로 불렀다. 둘러보니 소나무 느티나무 주목이 서있고 개나리 영산홍 백철쭉은 봄엔 활짝 피었을 테고 구절초 금계국 등 많은 풀꽃도 있다.
팔각정이 아담한 ‘관이금이 마당’에는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가 잠자고 있는데 바로 유금(有琴)이다. 신라 때, 김부대왕이 죽어 큰 구렁이가 되어 들에 엎드려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때 유금이라는 영리한 아이가 “아! 용님 나오신다”라고 외치자 그 용은 형제산을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으로 갈라 물꼬를 트고 승천하였고 이를 기려 이 들판을 ‘유금이들’이라 했다는 전설을 되새기며 데크를 걸어가서 ‘이문대’에 오르니 황금빛 보부상 동상이 부조장터의 얘기를 들려준다.
공원을 나와 기억 속의 길을 가려는데 안내판에 동강서원(東江書院)이 있다고 해서 방향을 틀어 마을로 갔다.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숲속에 서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경북기념물 제114호인 동강서원은 숙종21년 우재 손중돈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세웠고 23년 전 복원된 탁청루가 시원스럽다. 사원 왼쪽에는 특이한 3층 구조의 오백나한전이 있는 마룡사(麻龍寺)가 있어 잘 꾸며진 뜰을 둘러보고 나오며 앞 벌판을 건너다보니 30년 전 태풍 글래디스가 퍼부은 폭우로 물에 잠겼던 도로를 자동차로 건너려다 포기하고 되돌아 왔던 기억도 있다.
제산의 발밑을 돌아 옛 7번 국도를 돌아드니 이 좁은 2차선 도로를 철강제품을 엄청나게 실은 대형 트럭들이 어떻게 달렸을까 신기하다. 이제는 넓게 뚫린 유강 터널길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한적한 강변도로가 되어 차들도 이따금 지나고, 나란히 가는 자전거길 16km는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뽑혔다.
포항 입구 거대한 육교와 대교가 엇갈리는 곳에 유강 건널목이 있고 흰 돛배 형상의 쉼터가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자명 열차사고’ 추모비가 있어서이다. 1973년 5월 16일 대구발 직행버스를 타고 오던 나는 봄비가 내리는 아침, 그 사고현장을 지났다. 학교 가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던 버스가 동대구행 비둘기호에 부딪혀 하천으로 추락하여 85명이 참변을 당했던 엄청난 교통사고…. 그 날 시내 병원으로 실려가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제는 이 형산강변에 철 따라 예쁜 꽃들이 피고 철새들의 날갯짓도 힘차다. 잊혀져가는 ‘형산미기’길을 참 오랜만에 지나보며 희미한 옛 기억을 되살려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