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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우절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은 만우절이다.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속아주고 서로 웃는 날인만큼 지나치지 않은 거짓말이어야 서로가 즐거울 수 있다.이날은 영어로 4월 바보 날(April Foolday)로 부른다. 이날 속은 사람을 바보라고도 한다. 중세시대 프랑스 지방에서 유래한 날이라 한다. 지금까지 전해진 에피소드도 무수히 많다.1957년 영국 BBC방송은 “스위스에서 이상기온으로 나무에 스파게티가 주렁주렁 열렸다”며 스파게티면을 수확하는 사진까지 내보냈다. 만우절 기획기사로 밝혀졌지만 거짓말 정도가 심했다는 뒷날 평가다.1985년 미국 한 스포츠 잡지는 미국 프로야구단에 입단 예정인 시드핀치라는 신인선수가 시속 270km의 강속구를 던진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 선수가 티베트 라마승 밑에서 신비한 수련을 했다고도 소개했다. 그러나 이 선수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네덜란드 공영방송이 만우절을 맞아 이탈리아 피사의 탑이 무너졌다는 거짓 보도를 해 시청자들이 방송사로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건들바위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어로 떠 확인소동이 벌어진 경우가 있다. 만우절이 되면서 불이 났다는 거짓 전화가 소방서나 방송국 등으로 종종 걸려와 실제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당국의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거짓말은 상대를 속이거나 공격수단으로 삼는 정의롭지 못한 심리행위에서 나온다. 법률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만우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각박하지 않는 세상 민심을 바라서일 것이다. 선의의 작은 거짓말로 서로가 웃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만우절도 괜찮은 날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31

홍준표, 대구시장 출마에 부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막상막하의 공천경쟁을 벌었던 홍준표 의원이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그의 대구시장 선거출마는 보기드문 해프닝을 불러일으켰다.대표적인 게 바로 국민의힘 공천감정규정 파동이다. 지난 21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현역 의원이 지방선거 공천 신청을 할 경우 심사 과정에서 10%, 5년 이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우 15%를 감점하는 조항을 신설했다.홍준표 의원을 겨냥한 듯한 이 감점조항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총 25% 감점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홍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결국 경기에 뛸 선수가 심판의 역할까지 했다는 날선 비판에 못이긴 최고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는 최고 10% 감산으로 후퇴했다. 여느 의원이었다면 최고위가 결정한 공천규정을 재검토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돌려놓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홍 의원이 5선 국회의원이자 2차례 대선주자로 나섰던 정치경륜 내지 정치력을 여실히 발휘한 셈이다.홍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에 대한 비판여론도 있다. 가장 도드라진 주장이 대구시장 선거를 다음 대통령 선거를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대구시는 오랫동안 1인당 지역총생산이 꼴찌를 기록하고, 산업은 쇠퇴해 인구가 줄고있는 상황이다. 설령 홍 의원이 대권도전을 위해 대구시장으로서 재기를 하려한다고 치자.그렇다고 그게 대구시민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리 없다. 그가 침체된 대구시정을 맡아 획기적인 변화나 발전을 보이지 못한다면 대권도전은 물 건너갈 것이 뻔하다.그러니 못다 이룬 큰 꿈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대구시의 발전을 위해 뛸 것이기 때문이다.현역 국회의원이 광역단체장에 출마했다는 이유로 지역구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도 있다.역시 적절치 않다. 6·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는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현역 중진의원들의 이름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유독 대구시장 선거만 문제될 일은 아니다. 아울러 대구가 TK의 본산이면서도 역차별받은 것은 대구시장의 정치적 역량이 낮았기 때문이란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민선 대구시장으로 문희갑 시장 이래 조해녕, 김범일 시장은 정치권보다는 행정고시 합격 행정관료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큰 비중을 가지지 못했고, 권영진 시장은 정치권 인사이지만 비경북고 출신으로 중앙정치무대에서 비중이 그리 높지 못했다.이러니 대구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변화나 개혁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홍 의원은 대구시장 후보로서 자격이 차고 넘친다. 다만 정치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인데,‘독고다이’ 정치스타일은 문제다. 지역 국회의원들과의 원활한 소통도 숙제다.천하경영의 포부를 대구 시정에서 먼저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홍준표 의원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구시장 선거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2022-03-31

잔인한 달, 4월

윤영대수필가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 왔다. 살살 부는 봄바람에도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길을 걷노라면 꽃내음 짙어가는 화창한 계절의 시작이 가슴을 뛰게 한다. 생명의 계절, 환희의 봄날, 사랑의 4월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봄의 시작, 4월이 왜 ‘잔인한 달’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을까? 100년 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발표한 433행이나 되는 긴 시 ‘황무지’ 첫 줄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라고 쓴 글귀가 사람들의 입으로 회자(膾炙)되면서 우리의 뇌리에 박혀버린 탓일까.4월 달력을 넘겨 보니 4·3 제주항쟁,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등 큼지막한 정치적 사건과 와우아파트 붕괴, 대구 상인동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 사고 등 가슴 아픈 기록이 있다. 불행하고 잔인한 달이 맞는 건지….그런데 엘리엇은 이어서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따뜻했다’고 오히려 겨울이 좋았다는데, 이는 1차 대전 후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는 서구 문명의 상실감을 표현한 듯하지만, 그 모더니즘의 시구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따뜻해져 오는 대지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데 봄비로 흔들어 깨워 힘들게 새싹을 키우는 것은 라일락에게는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줄기 뻗어 잎과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의 임무이자 즐거움이 아닐까.‘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쓴 것이 다하면 달콤함이 온다(苦盡甘來)’는 말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이다. 이번 4월에는 고통을 이겨내어 즐거움을 얻어야겠다.올해도 어느새 1/4이 지나갔고 따뜻한 4월이 되었다. 춘곤에 겨우면 몸이 나른하고 정신도 몽롱해지고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래서 성폭력과 음주 운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이기도 하다. 마음을 맑게 먹고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할 때는 자칫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다. 아직도 코로나19는 각종 변형을 만들어 내며 우리 삶에 고통을 주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2개월째 접어들어 처참하게 파괴되고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인류의 염원이니 잔인한 달의 누명을 벗었으면 좋겠다.4월엔 많은 기념일이 있다. 1일 향토예비군의 날, 5일 식목일, 7일 보건의 날, 15일 민방위의 날, 20일 장애인의 날, 21일 과학의 날, 22일 새마을의 날, 25일 법의 날 등 봄의 기운이 넘치는 이달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희망의 꽃을 피우자. 또 4월 17일은 부활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되살아나심을 찬양하는 날, 그 부활을 예찬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갖자. 잠든 마음의 뿌리에도 봄비를 내려 혹시 각자의 상실감이 있었다면 다시 깨치고 일어나 잔인한 날들을 이겨나갔으면 한다.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 승리와 고귀함,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니 마음속에 조그마한 보석 하나씩을 간직하는 4월이 되자.

2022-03-31

할리우드가 던진 두 가닥 생각거리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애인인권, 특별히 교통이동권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교통약자들이 겪는 불편함을 참다못한 인권단체들이 행동에 나섰다. 시위방식에 대하여 논란이 뜨겁다.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태는 공익에 반할 뿐 아니라 사회 일반에 불편을 끼치므로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편, 해묵은 인권문제에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교통인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므로 정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일방의 의견에 편을 드는 표현이 있어 갈등은 증폭되었다. 집회와 시위가 합법적인 테두리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생각거리를 던지기도 하였다. 선진국 문턱에 섰다면서도 기본적인 장애인 교통인권에 사회적 배려와 구체적 설비가 부족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가.올해도 할리우드의 아카데미시상식은 여러 가닥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영화 ‘CODA(Child of Deaf Adults·듣지 못하는 어른들의 아이)’가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단 한 사람 ‘듣고 말할 수 있는’ 소녀는 사랑하는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처지와 음악적 재능을 키워가고 싶은 꿈 사이에서 일상을 이어가며 갈등을 겪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겪는 어려움과 평범함이 자연스럽게 영상을 채운다. 무엇보다 그런 모습을 담은 영화가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장애인들을 보통사람으로 이해하고 ‘우리들’ 가운데 품고자 하는 사회적 배려와 공감, 태도와 노력이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열린 마음을 허용하는 사회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들의 불편을 공감하면서, 함께 이겨내고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할 터이다.폭력은 가라. 유명배우 윌 스미스가 사고를 쳤다. 시상후보자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사회자의 표현에 격분한 그가 단상으로 올라가 주먹질을 하였다. 전세계의 눈길을 모으며 TV중계 중에 그가 날린 귀싸대기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시상식의 뒷부분에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화려한 무대에 연이어 등장하였다. 사회자가 던진 농담이 아내의 심기를 힘들게 하였음도 이해하였다. 그래도 그의 폭력은 도를 넘었다. 입은 상처를 오로지 폭력으로만 갚아야 한다면 일상의 주변은 모조리 정글로 변하지 않을까. 정신적 아픔을 물리적 힘으로만 이겨내야 한다면 윤리와 도덕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말로 입은 상흔을 주먹으로 지우려 했던 그는 관객의 신뢰를 잃었을 것이며 사회는 폭력의 위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날린 폭력은 시청자들의 건강한 판단에 따른 심판에 직면할 것이고 공적인 결정에 따라 적절한 징계에 이르러야 한다.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나와 다른 조건들을 가지고 날마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이 보다 따뜻해 져야 한다. 갈등과 분열, 상처와 혼돈을 극복하는 방법들이 많지만, 폭력은 그 가운데 설 자리가 없다. 미움과 차별, 혐오와 폭력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오늘도 할리우드는 세상을 향하여 무엇인가 던진다.

2022-03-30

임대사업자 등록제의 부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제는 지난 2017년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통해 민간 임대인이 주택 임대사업자로서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면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취득세 등의 부담을 줄여 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 대신 임대인은 임대료 증액 제도(5%) 등의 의무를 지켜야 했다.정부는 지난 2017년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다주택자에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독려했지만 과도한 혜택이라는 비판이 일자 2020년 7월 시행 2년 만에 사실상 폐지했다. 이 제도로 인해 다주택자가 집을 팔 유인이 적어져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났고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이유였다. 매물잠김 현상이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데 대해서 반론도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이 나온 2017년 10월 전국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87.6에서 2020년 6월 88.9로 1.5% 올랐다. 2020년 7월에는 89.7에서 2022년 2월 106.3으로 18%나 올라 상승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3법 시행 2년 차인 오는 8월 이후 전·월세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주택시장 안정 방안으로 등록제 부활 카드를 꺼냈다. 임대차시장 안정과 임차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인식이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4년 또는 8년간 주택을 매도할 수 없다. 대신 세제 혜택을 받는다.시장에 임대 물건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 임차인의 주거 안정도 꾀할 수 있다. 민간임대사업자 등록제의 부활은 적정 임대수익률 보장이나 세제 인센티브 확대로 이어져 장기 임대가 늘어나고, 결국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30

대형산불 속에서도 불평등은 있었다

오낙률시인·국악인 삼월이 꽃망울이라면 사월은 만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계절은 그렇게 기후의 변화를 통해 형형의 색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만물의 생사를 관장한다. 해마다 사월이면 수많은 종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흐드러져 핀다. 많은 종의 식물이 한 톨의 씨앗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꽃들의 전쟁, 그 현장이 봄이 아닌가 싶다.봄이라는 계절은 조금의 편협함도 없어 마치 무슨 종목별 경기를 진행하듯 유사 종의 꽃들끼리 같은 시기에 피게 하여 수정을 경쟁하게 한다. 벌 나비의 도움으로 수정이 이루어지는 꽃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봄바람에 의해 수정이 이뤄지는 꽃도 있고 그 수정의 방법 또한 다양하다. 수정이 잘 이뤄진 꽃은 예쁜 열매를 얻고, 그렇지 못한 꽃은 떨어져서 그냥 꽃이었던 기억으로 소멸하고, 그 사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예년 같으면 벌도, 나비도, 산새도, 우리네 인간도, 한창 꽃 잔치에 어울려 분주히 행복을 만끽할 시기이다. 그러나 봄꽃은커녕 생명의 새싹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있다. 대형산불로 폐허가 되어버린 동해안의 봄은, 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검어,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에 충분하다.동해안 대형산불에서도 민초의 설움이 있었다.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느라 소방헬기와 진화 인력이 한곳으로 집중되었고, 덕분에 금강송 군락 주변의 잡목림은 버려진 잡목이 되어 서러운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순차적 진화에 희망을 걸었다가 귀족림 보호라는 명분에 진화 인력과 장비를 빼앗기고, 절망하며 사라진 잡목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은 생각과 함께 가슴 한쪽이 먹먹하다. 인간의 이용 가치라는 잣대로 보면, 일부에 해당하는 금강송 군락지가 삼림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목 군락지보다 귀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수의 귀족림을 먼저 구하느라 차등의 순위로 밀려서 희생된, 그보다 몇 배나 더 넓은 서민림을 생각할 때,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땔감이 귀하던 시절/많은 종의 나무들이 잡목으로 낙인찍혀/땔감으로 사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오직 소나무만이/산야에서 보호받으며 살던/그런 시절이 있었다…. 계절이 넘나드는 길목/성법령에 올라/발아래 산경(山景)을 보니/아서라/이제는 산천에도 봄이 들었다.//잡목이라 이름 지어져 핍박받던/오리나무, 물박달나무, 상수리나무, 층층나무,/자작나무, 때죽나무, 왕 버드나무. /수많은 종의 나무들이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밀림을 이루고 있다//이제는 그들이/우리네 강산을 지키고 있다.” -오낙률 시 ‘이제는 산천에도 봄이 들었다’ 전문아름드리 금강송이 자라는데도 수십 년, 아름드리 참나무나 버드나무가 자라는 데도 수십 년, 금강송이거나 잡목이거나, 아무 탈 없이 삼림 그 자체로 존재할 때는 그 군락의 경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산불이 나고 보니 확연히 그 신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아마 인간의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2022-03-30

능력주의

최병구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했으며 강사 생활도 충청도 이남으로 내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018년 포항에서 1년 정도 생활했지만,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지역을 배회했을 뿐이다. 그러다 현재 재직 중인 학교에 2019년 하반기에 부임했다.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던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코로나 19’로 비대면 동영상 수업을 진행하던 2020년 1학기에 벌어졌다. 부임 첫 학기에 내가 지도교수를 맡은 동아리에서 성실히 활동하며 서울 답사까지 함께 다녀온 남학생이 있었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세미나 발제를 단 한 번도 대충한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1주일이 넘게 동영상 시청을 하지 않고 스마트 폰도 꺼져 있자 실망과 걱정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2주일 정도 되었을까, 내가 보낸 메일에 그 학생이 보내온 답장은 이랬다. 그동안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 강의를 시청했는데, 마침 스마트 폰이 망가져서 강의를 듣지 못했으며 수리비를 마련하느라 시간이 좀 걸려서 2주간이나 강의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하지 못하고, 학생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두 번째 사건은 2021년 2학기에 벌어졌다. 앞의 남학생과 마찬가지로 부임 첫 학기 동아리부터 인연을 맺어 온 비평을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오랜만의 대면 수업에서 날카로운 질문과 수준 높은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어 한 학기 동안 내심 흐뭇해하던 학생이었다. 기말과제를 앞두고 발표했던 소설에 대한 비평을 발전시켜서 완성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소설집을 도서관에 반납해서 그 글을 완성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소설집은 2만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소장해도 좋은 소설이니 한 권 구매해도 괜찮다는 나의 조언에, 그 학생은 조그만 목소리로 죄송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다.능력주의를 공정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할당제도 지역 할당제도 불공정한 제도이고 오로지 그 사람의 ‘능력’만 시험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다. 이럴 때 능력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그 능력은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만들어진 것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처음부터 얻기 어려운 대상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수와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다수가 모여서 능력주의를 만든다.내가 만난 두 명의 학생이 지역에만 있는 특수한 경우인지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일반적인 사례인지는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 두 명의 학생에게는 노트북 한 대, 소설책 한 권을 살 여유만 있다면, 펼칠 수 있는 능력이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학생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능력을 빼앗는 사회야말로 불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어쩌면 능력주의란 공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엘리트를 위한 이념일 수 있다. 그 논리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022-03-30

섬마을, 정주 공간을 벗어나다

캐나다 밴쿠버 인근의 스탠리 파크(Stanley Park). 밴쿠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이는 공원이다.산책로가 섬마을의 둘레길과 비슷해 인라인 스케이트 등 취미활동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필자 역시 그 중 하나로 바닷가 풍광을 즐기곤 했다. 다만 오롯이 즐기는 데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광활한 바다는 시선을 압도했고, 공원 내부의 조경 역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절경이었다. 더욱이 당시엔 그곳을 섬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공원은 잉글리시 만(English Bay)와 벤쿠버 항(Vancouver Harbour) 사이의 지역으로 엄밀히 말하면 섬이 아니었다. 항구와 만이 워낙 커 태평양 인근 섬이라고 착각한 것이다.생애 첫 둘레길을 캐나다에서 엿본지라 ‘섬 관광 활성화’라는 문구는 매번 스탠리 파크를 연상시켰다. 지형과 생태가 완전히 다른 곳을 막연히 한국의 섬도 저렇게 변하겠구나라고 상상했다. 무지의 소산이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엔 세계화(Globalization)가 대세였다. 국제적인 기준을 갖춘 ‘모방’이 최우선인 시대였고, 글로벌 산업 트렌드는 몇 년 후 한국에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표어는 세계화와 현지화(Localization)가 만나 이뤄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현지화에 근간에 둔 세계화 전략) 이후의 변화이다. 산업의 경영전략이 현지 문화를 흡수하자 우리나라 섬 관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섬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며 지역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이 이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외국의 관광 생태계를 그대로 가져와 이식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해 섬 정책 연구기관인 ‘한국섬진흥원’을 출범시켰다. 섬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총괄·관리한다고 한다. 한국 섬 특성에 맞춰 관광·레저와 해양·수산, 생태·문화까지 섬 전반에 걸친 연구·개발에 나설 예정이다.정부가 국가주도의 ‘한국섬진흥원’을 개원하며 섬 개발에 나서는 이면에는 소멸해가는 섬마을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있다. 우리나라 3천383개의 점 중에 유인섬은 465개로 전체 섬의 13%를 차지한다. 그 중에 인구 25명 미만으로, 무인섬으로 바뀔 곳도 100여 개에 이른다. 전체 섬의 90% 가량이 무인섬이 되는 셈이다. 무인섬의 증가는 섬관광 뿐만 아니라 섬자원 개발 등 섬을 둘러싼 활동에 유·무형의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어가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섬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21년 우리나라 어가인구 수는 9만7천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43%가 줄었다. 귀어·귀촌을 활성화하고 어촌마을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인구 감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노령화도 심각하다. 인구의 절반 가량이 만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다.섬마을 소멸은 지방 소도시 소멸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그 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다. 어촌·어항을 갖춘 지역이 바다 축제에 필사적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26 세계 섬 박람회 유치에 성공한 여수도 시작은 여느 도시와 같았다. 다만 여수는 섬을 한국의 이야기로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섬을 알고자 하는,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 세계인들의 염원을 담아 박람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각국의 섬 문화와 생태, 연육교 등의 주제를 모아 지구촌과 공유하고자 했고, 결국 국제행사 유치란 성과로 이어졌다.위기를 타개하려는 주체도 다변화 중이다. 제주 가파도에서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가 대표적이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열리는 축제와 달리 이곳은 여객선사가 청보리밭을 가꾼다. 선사가 육지와 섬을 잇고 섬 관광 사업까지 나서면서 가파도는 매년 상춘객들로 붐비는 관광명소가 됐다. 정현미작가 섬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도 계속된다. 조만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1시간 비행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위그선 도입 덕분이다. 울릉도는 사실 관광 산업의 의미를 넘어서는 섬이다. 해양영토의 가치가 높아 자국민의 방문이 잦기 때문이다. 다만 악천후와 열악한 접안시설로 입도가 쉽지 않다. 수면 위를 비행하는 위그선이 본격적으로 출항하게 되면 울릉도와 독도를 찾는 방문객들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2022-03-30

이번 대구시장도 ‘작대기’를 뽑을 건가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서울에 사는 지인을 만났더니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거론되는 예비후보들을 보면 ‘보수꼴통’이라는 도시 이미지를 오히려 더 짙게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기업과 인재가 몰려들려면 대구시장이 젊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출마 예상자 대부분이 낡고 폐쇄적인 인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인물들의 정치·사회·행정 분야 업적을 보면 대구 이미지를 확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드는 인물이 없다. 여기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까지 이번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니, 대구에서는 철지난 친박 타령까지 재현될 판이다.지금 대구는 소득꼴찌의 지방도시로 쇠락했다. 청년들은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고 있다. 한강 이남 최대의 물적·인적 자산을 보유했다는 소리를 듣던 대구가 지금은 해방 이후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외부인이 대구를 보는 시각은 꼰대의 도시, 변화를 거부하는 도시, 세상과 담쌓은 도시, 독불장군의 도시, 고담의 도시 등등이다. 취직자리를 찾아 서울로 간 대구 청년들이 직장 동료들에게 고향의 정치성향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 때는 대구가 조롱받는 도시로까지 추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 탓이 아니고 대구시민들이 자초한 것이다.도시의 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은 ‘도시미래’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국내외를 보면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잘 뽑은 도시가 국제적인 위상을 자랑하면서 변모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대구의 경우 시민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후보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대구시장 여론조사를 보면 작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뻔한 선거결과’가 예측된다.대구시민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 정당으로서의 존재가치가 거의 없던 국민의힘이 6·11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를 선출함으로서 당의 역사를 바꾼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젊고 국제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준석을 대표로 선택함으로서, 지금은 대통령을 배출한 수권정당으로 180° 변했다. 이준석 대표는 당시 수락 연설에서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해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 달라. 그러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설내용을 지금 대구시민들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역사적으로 대구경북 지역은 불가능할 것 같던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새길을 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화랑정신으로 삼국을 통일했고, 국채보상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자유당 정권에서는 대구학생들이 가장 먼저 부패에 맞섰다. 이것이 바로 근대화의 산실인 이 지역의 정체성이다. 대구는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개방적인 국제도시로 변해야 먹고 살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리더십과 실력을 겸비한 인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일본 이즈모시 시민들은 미국 최고의 증권회사에 근무하던 이와구니 데쓴도를 시장 단일후보로 추대해 도시경영을 맡긴 사례가 있다.

2022-03-29

롱코비드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19에 따른 후유증을 롱코비드라 부른다. 코로나19를 앓고난 뒤 원인모를 여러 증상이 한동안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확진됐거나 확진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적어도 2∼3개월 동안 다른 진단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겪는 것을 롱코비드로 정의하고 있다.최근 코미디언 박명수는 라디오에 출연해 격리해제 후에도 후유증을 겪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코로나 완치 후 3주가 지났으나 아직도 기침을 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고도 했다.세계보건기구가 예시하는 롱코비드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심한 피로, 흉통, 심근염, 두통, 건망증, 우울증, 후각상실, 발열, 설사, 귀울림 등으로 사람에 따라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포스트 코비드컨디션, 영국은 포스트 코비드증후군 등 나라마다 이름을 조금씩 다르게 부르나 코로나19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다.우리나라 보건당국이 코로나를 감기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을 두고 일부 전문의들은 지코위독이라 비판한다.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 부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빗대서 하는 표현이다. 독감에는 롱인플루엔자나 만성독감 같은 게 없다며 코로나를 독감으로 볼 수 없는 이유라 말한다.국내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이제 1천만명을 넘어서면서 롱코비드를 호소할 사람이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20년 경북대 의대 감염내과팀이 코로나 확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감염자의 91%가 후유증을 겪는다는 응답을 했다.폭증하는 확진자를 감안하면 5∼7월쯤에는 롱코비드 환자는 확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당국의 대책 마련이 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29

무사고라구요?

군대에서 보았을 평범한 풍경 하나. 대대급 단위의 건물 입구에는 어김없이 붙어있는 ‘무사고 XX일 달성’이라는 현판. 자신들의 주 업무가 수십, 수백일 째 무사히 수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그 현판은 해당 대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현판은 매번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여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그러니 너도 문제를 일으키지 마.”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복무가 익숙해짐에 따라 알게 모르게 옆 소대나 타 대대의 사정 따위를 전해 듣곤 하였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었다. 노후된 장비나 민간인과의 마찰 등 여러 종류의 문제들이 있곤 했지만, 대개의 경우는 병사나 장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많은 사건들. 그 속에는 경미한 사례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한 사람의 인격이 말살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심각한 사례들도 들려오곤 하였다.하지만 그 수많은 사건들이 모두 공론화가 되고, 무사원만하게 해결되진 않았다. 대개의 경우는 공론화도 되지 못했으며, 간혹 피해자의 전출로, 그보다 더 간혹 가벼운 수준의 징계로 끝이 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군대의 풍경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무사고’ 현판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그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무사고 ‘XX일’이라는 말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부대의 능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 긴 기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제대로 문제화되거나 해결된 사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잔인한 사실에 대한 과시다. 비단 군대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조직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문제를 감추기 위해 피해자를 향해 합의와 화해를 종용한다. 충분한 제도가 없기에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도를 갖추고서도 그에 맞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그와 같은 사례들에서 우리는 자주 ‘가장’이라는 단어를 마주한다. ‘그래도 OO가 가장이잖아. 걔가 이 일로 직업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니가 한 가족 다 굶어 죽이는 거야. 그래놓고 감당할 수 있겠어?’ 단어나 표현에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그 말들. 명백한 2차 가해임에도 그게 옳은 거라고 믿고 행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들을 향해 묻고 싶다. 그럴 거면 왜 그런 문제를 일으켰느냐고. 책임감과 책임에 대한 공감이 왜 사고가 터진 후에야 작동하는 것이냐고.인터넷에서 ‘무사고’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 가운데 ‘무사고 6000일’ 달성을 기념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있다. 그 사진의 아래에는 빨간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사고 나도 무사고’. 아마 많은 군필자들이 군대에서 하인리히의 법칙을 들어보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사고가 아니게 된 사고들과 문제가 아니게 된 문제들이 하인리히의 법칙이 말하는 사소한 징후와 작은 사고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군복무를 하면서 무수히 들었던, ‘작은 사고나 경미한 징후들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그 말이,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던 무수히 많은 ‘가장’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직장을 떠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수많은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그 ‘가장’ 속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성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인지적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와 같은 인지적 감수성이 없을 때, 우리는 그 ‘가장’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그건 그렇게 문제될 일이 아니다’라고 손쉽게 판단해버린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위치에서. 적어도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 나는 그 ‘가장’의 편이었지 피해자의 편에 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군생활이 꼬이는 게 싫다는 이유로 말이다.군을 비롯한 많은 문제들과 부조리에 있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눈을 감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도 우리는 이미 문제들에 연루되어 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또한 사태를 방조한 가해자의 위치에 서있는 것이다. 당신과 나 또한 하인리히의 329번의 무수한 징조로부터 눈을 돌린, 비겁한 가해자였을 따름이다. 우리가 무죄일 수 있는 방법은 옳은 일을 행하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몰랐던 일이라며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의 죄를 인정하는 일일 뿐이다. 공군 중사 이예람 님의 명복을 빈다.

2022-03-29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그 무엇보다 자신의 딸이 어렵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골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딸을 이렇게 표현한다. “딸은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주인공의 딸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한다. 레즈비언이고 사회적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인물이다. 그녀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애인과 함께 주인공의 집으로 들어온다. 주인공은 딸과 애인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 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자신의 배로 낳았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인 것처럼만 느껴지는 딸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을 지나보내야만 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어느 지점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통상적으로 묘사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모습이 아님에도 우리는 이들의 상황과 태도에 공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의 방식으로 그려졌던 어머니가 아니며 딸은 부모에게 연민을 내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충돌하는 영역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를 통하여 자신의 시선으로서는 가닿기 힘든 영역을 마주치게 되는 것을 그린다.돌아보면 나와 엄마의 사이도 그랬다. 우리에게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특히 내가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불화는 절정에 달했다. 엄마는 항상 내 행동에 제약을 거는 존재였으며 마치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자주 언성을 높이고 싸우곤 했었는데 그 내용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엄마는 내게 ‘왜 하교를 했는데도 교복을 있느냐’는 잔소리를 했고 그러면 나는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든 엄마가 무슨 상관이냐’고 응수하곤 했다. 혹은 엄마는 내게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놓지 말라’고 했고 나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꼬투리를 잡는다’고 반박했다. 엄마는 내게 기본적인 생활 태도를 가르치려 했던 것이고 나는 엄마가 나를 통제하려 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대화는 본질로 향하지 못하고 언저리만을 뱅뱅 돌았다. 서로의 생각을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로 불만을 토로했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했다.특히 내 쪽이 그랬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는 계속해서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기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엄마와 딸의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한 명의 인간이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였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설을 쓰다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소설을 쓰는 입장으로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선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으로까지 향하게 되는데 그건 무척이나 고단하면서도 유의미한 일이다.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을 내 손으로 그리면서도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러나 끝끝내 그러한 인물마저도 끌어안게 되고 어쩔 수 없음의 영역을 경험하게 된다.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무차별적으로 다가오는 삶의 폭풍 속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헤쳐 나가는 중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이해의 방식에는 나와 엄마도 대입할 수 있다. 엄마와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존재다. 우리는 한 집에서 살았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했다. 매일매일 다른 체험을 하고 상반된 감정을 겪었다. 이토록 이상하고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몇 번이나 실패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엄마와 나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될 것이다. 어렵지만 기대되는 일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2022-03-29

어린이라는 신앙-소파 방정환을 읽다

1929년 5월 어린이날 특집 기념호로 발간된 잡지 ‘어린이’의 표지. 방정환이 1923년 창간하고 개벽사에서 펴냈던 잡지 ‘어린이’는 1935년까지 이어졌다. 이 잡지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어린이 전문잡지였다. 무언가를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언어의 힘이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힘을 갖는다. 시에서 메타포, 즉 은유가 갖는 힘이 그토록 대단한 것은 그것이 단지 시라는 문학 장르의 수사적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전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언어를 현실적 대상으로 연결하는 시인의 통찰력과 언어적 창조력은 그 언어를 둘러싼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 버린 “내 마음은 호수”라는 은유조차, 호수를 지날 때 문득 떠오르지 않는가. 그 언어가 존재의 집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이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언어적 담론의 힘에 더욱 둔감해진 지금 시대에 어떤 것을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은유의 힘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비록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그 언어에 담긴 함의를 새롭게 더욱 귀하게 규정했던 소파 방정환의 자리는 여러 번 긍정되어도 모자랄 만하다. 그는 어른의 부속품처럼 다뤄졌던 어린이의 자리를 새롭게 규정하면서,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고, 낡고 묵은 것으로 새것을 누르지 말라고 주장했다. 어린이가 미숙하고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귀하고 중요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된 것은 1920년대 초부터 방정환이 행했던 강연이나 언론, 출판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방정환은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의 세 번째 사위로, 일본에 유학하면서 1923년 색동회를 창립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어린이날을 만들면서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천도교의 언론출판 활동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던 개벽사에서 시사종합잡지인 ‘개벽’, 어린이 전문잡지 ‘어린이’, 여성 전문잡지 ‘부인’, ‘신여성’ 등을 편집하면서 바로 전 시대 최남선이 신문관을 중심으로 열었던 잡지출판의 시대를 이어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조선의 잡지왕국으로 군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언론인이기도 했다. 1931년 잡지 ‘동광’ 8월호에 ‘김만(金萬)’이라는 필자는 방정환을 평하며, “조선서는 잡지왕국이라 할 개벽사 2층에는 편집실에 북극의 북극곰(白熊)모양으로 혼자 들어앉아서 연이어 연방 담배를 피워 물고 ‘혜성’, ‘신여성’, ‘어린이’의 매호 편집 목차에 하루 같이 땀을 흘리는 방정환씨는 개벽의 잡지왕국의 총리라는 관(觀)도 없지 아니하거니와 그보다는 몸뚱이가 뚱뚱하고 부지런한 것이 ‘노력하는 곰’이라는 감을 금할 수 없는 것은 필자만의 특수감은 아닐 것”이라고 쓰고 있기도 했다.물론 앞 시대의 최남선 역시 아이들을 위한 잡지에 관심이 많아 ‘소년’, ‘붉은저고리’, ‘새별’, ‘아이들보이’ 등의 소년 잡지를 발간했지만, 그에 비해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가 특별했던 것은 그가 ‘어린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당시의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개벽사에서 잡지를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어린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있어서 ‘어린이’는 신앙 그 자체였고,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 사회를 광복으로 이끌 가장 중요한 힘이었다.매년 5월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린이라는 단어는 더욱 애틋해진다. 미래를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시대에 어린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자라난 나무에서 사회의 변화를 기대했던 방정환의 삶을 생각한다. 그가 썼던 글은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사소한 읽을거리였지만, 결코 사소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그 글이 어린이라는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홍익대 교수

2022-03-28

노송(老松)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Ⅵ)

가벼웠다. 우리 아버지가 왜 이리 가벼워, 왜 이리 가벼운 거야? 눈물을 흘리며 관을 붙잡아야 했지만 필립은 그러지 않았다. 그 무거운 것들을 속에 넣고 계셨어. 내 가슴과 등을 묵직하게 누르던 아버지의 무게는 그것들의 무게였어. 그것들이 사라지니 이렇게 가볍지 않아? 만식의 시신은 속을 파낸 통나무 같았다. 속을 다 파낸 통나무로 배를 만든다 했지. 그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겠어. 필립을 태운 만식의 영구차는 넓은 강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넜다.사옥 정문 앞 노송 아래에 절반을 묻었다. 직원들이 나와 그 광경을 보았다. 일부는 울기도 했고 일부는 소름끼친다며 겉옷을 고쳐 입었다.임원 중 한 명이 물었다.-회사는 어떻게 할지?-회장님 안 계신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닙니다. 회장님이 회사를 그렇게 만드시지도 않았고. 회장님이 돌아가셨어도 회사는 그대로입니다.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필립이 덧붙여 말했다.-그리고 당분간은 후계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부회장님이 있으시니 부회장님 중심으로 운영하시면 됩니다. 제가 어찌할지는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누구도 후계에 대해 묻지 않았지만 필립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집 정원의 회화나무 아래에 나머지 반을 묻은 후 필립은 작은아버지 부부와 친지들을 배웅했다. 형도, 어머니도, 이제 아버지까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쓸쓸함, 서러움. 하루 정도는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할 것 같았다. 회화나무 아래를 보며 ‘아버지’ 하고 나지막하게 불렀다. 눈물이 따라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입꼬리가 양쪽으로 당겨졌다. 콧구멍 안 깊은 곳 목 안으로부터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필립의 머리는 양쪽으로 흔들거렸고 오른발은 박자를 맞췄다. 필립은 만식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떠오른 것은 회사의 조직체계와 운영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된 고민이었다.-저.안나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반대쪽에는 아내가 안나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안나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호칭을 어떻게 할지. 사모님이라 부를게요. 사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린 적 없지요. 장례식장에서는 인사를 드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제 이름은 안나예요, 안나. 사흘 동안 많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을 가져다주신 것, 다리를 주물러주신 것 모두 감사해요. 여자로서, 아이를 가져본 여자로서 저를 살펴봐 주셨어요. 그리고 회장님, 저와 저의 아이는 어찌할지 말씀을 기다릴게요.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필립은 안나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곧 자기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손수건을 건넨 것은 필립의 아내였다.-그러니까 허 형사, 현장에 남겨진 것 중에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단 말이지?박 팀장이 허 형사의 책상으로 다가왔다.-피해자의 것을 제외하고 남겨진 지문도 없습니다. 혈흔이 있기는 합니다만 모두 피해자의 것입니다. 많지도 않고요. 사실 그것도 이상합니다.허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박 팀장이 허 형사에게 커피를 건넸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앉아,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커피 한 잔 하면서.박 팀장은 옆자리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피해자가 병원에서 타고 나간 본인의 차량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이 됐는데 혈흔이 얼마 없다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 살해된 후 시신이 발견된 장소, 차로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장기를 꺼내는 작업을 차 안에서 하기는 힘드니까 어딘가 다른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볼 수 있지요. 문제는 어디서 했느냐 인데요. 차량이 고속도로 진입 톨게이트를 통과한 것과 차량 발견지의 도착 톨게이트를 통과한 것까지 확인을 했는데 그 시간이 빠듯합니다. 다른 뭔가를, 이를테면 장기를 꺼내거나 할 그런 시간이 안 되거든요. 장기가 한두 개도 아니고. 하이고, 완전 인조인간이더군요. 간, 폐, 콩팥, 관절, 심장까지. 다 인공 장기예요.-조금만 더 살았으면 머리만 빼고 다 바꿨겠네. 역시 돈이 좋기는 좋네. 결과는 좋지 않지만 말이야. 하여튼, 그러면 이쪽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에 다른 차량이나 장소로 옮겨졌거나 저쪽 톨게이트를 지나서 옮겨졌거나. 그럴 수 있는 거네.박 팀장이 허 형사를 보며 말했다.-가능하죠. 그런데 그게 잡히는 게 없습니다. 병원에서부터 톨게이트까지의 차량 동선에 있는 CCTV를 다 살펴봤는데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쪽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무슨 비밀이 그리 많았는지 썬팅을 심하게 해놓아서 차량 안을 볼 수가 없습니다.

2022-03-28

샤이 오미크론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샤이 오미크론은 코로나19 증상이 있거나 자가진단키트를 통해 양성 진단을 받았음에도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나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환자군을 일컫는다.정치권에서 자신이 보수성향이지만 보수임을 인정하지 않는 유권자를 가리켜 ‘샤이 보수’라고 부르던 데서 비롯된 신조어다.우리나라에서 최근 25일간 잇따라 20만명 이상 코로나 확진환자가 발생한 것도 샤이 오미크론 때문이란 분석이다. 샤이 오미크론 현상이 만연하게 된 데는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르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속사정이 얽혀 있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판정이 나올 경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몸살, 기침,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어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아야하지만 PCR 검사를 외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게된다. 대체근무자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7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교육 과정 없이 능숙하게 매장을 운영할 사람을 구하는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또한 인력을 구한다 해도 인건비 등 소요비용이 자영업자에게 적잖은 부담이다. 일 평균 1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자영업자가 대체 인력을 사용해 7일간 매장을 운영하면 최저임금·8시간 기준 51만여원의 인건비를 줘야 한다. 한 주 동안 벌어들인 매출의 대부분을 인건비로 지출해야 한다. 이러니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어도 PCR 검사를 꺼리게 된다.샤이 오미크론은 정부가 코로나에 걸린 국민의 삶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부가 국민 개개인에게 ‘내가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되어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구나’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샤이 오미크론이 사라져야 코로나 확산도 막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28

대통령과 당선인이 국민 통합 중심돼야

김진국 고문 정부 이양이 소란하다. 어떤 자리도 전·후임자 사이가 좋기는 쉽지 않다. 비교당하고, 궂은일의 책임과 좋은 일의 공덕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제왕적’이라는 말을 듣는 대통령 자리는 오죽할까. 같은 정당 내에서 정권을 넘겨도 전·후임자 사이에 앙금이 남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정권 교체에서는 어느 정도 잡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좀 지나치다.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일도 대통령과 당선인이 대립할 문제는 아니다. 집무실은 쓸 사람이 결정할 몫이다. 여론을 물어보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일 수는 있지만 방을 비워줄 전임 대통령이 왈가왈부하는 건 남의 집 제사상 간섭하는 꼴이다.물론 그 일이 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참견한다면 거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하려면 후임 대통령이 입주할 때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일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다.최근 여론조사마다 과반수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반대한다. 이런 탓인지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55%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87%, 박근혜 전 대통령은 78%, 이명박 전 대통령은 84%였다.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에게 기대가 모이는 게 정상이다. 저조한 기대치는 선거전이 격렬했던 탓도 있지만, 그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윤 당선인이 ‘국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행이 더디다는 말이다.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던지는 말들이 너무 날카롭다. 반대 진영에서 승복하지 않는 언행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 통합의 책임은 결국 국정을 이끌어갈 윤 당선인에게 있다. 전임자, 경쟁 정당을 끌어안아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오래 못 간다.임기 초 지지율은 국정의 틀을 잡아나가는 동력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특히 악재다. ‘밀월 기간’도 날려버렸다. 선거가 끝났는데도 정치권이 전투 모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찬성 61.4%, 반대 34.3%)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많다. 서울은 반대 55.8%, 찬성 39.3%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호남과 세종·인천·경기·제주에서 이겼다. 그런데 민주당에 호재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 선거의 여파가 남아 있어 판세를 뒤집기 어려웠는데, 대선 득표 차가 크지 않은 서울·충청에서 의욕이 생겼다.문 대통령은 18일 참모진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라”고 입 단속했다. 그런데 21일 “촉박한 시일에 국방부·합참·대통령비서실 등 이전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반대했다. 급반전의 배경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라고 의심받을 만하다.대통령 선거 때도 문 대통령은 투표 하루 전인 8일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의도했건 아니건, 여성 표가 이재명 후보로 모이게 도왔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에는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를 차치해도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선거 때문에 협력하지 못한다면 비극이다.윤석열 당선인은 당선되는 순간 국민의힘이나 지지자들의 당선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당선인이다. 집무실을 하루 일찍 옮기는 것보다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 현 대통령과 경쟁 정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가 그 손을 잡지 않더라도, 포용하는 노력을 보이고, 국민이 거기서 진심을 느껴야 통합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취임하면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분열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대 대통령은 불행했다. 이제라도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전·후임자가 손을 잡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본사 고문

2022-03-27

영양군수의 최고 덕목은 청렴성

임시권 영양문화원장 영양군민은 군민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지도자를 원한다.6.1 지방선거가 2개월 앞으로 다가 왔다.지방선거는 앞으로의 4년 동안 지역의 대소사를 이끌어나갈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이다.그렇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멋진 지도자 지역을 위해 희생하는 참된 일꾼을 원한다.인구 1만 7천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영양군도 예외는 아니다.언제나 군민들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잘 사는 지방자치단체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지도자를 군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사사로운 이득에 눈이 어두워 편 가르기로 영양군의 화합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영양의 미래를 위해 깊고 넓게 보면서 영양군이 발전해 나갈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군민들과 소통하고 군민들의 삶속에 녹아 들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말이다.차기 영양군을 이끌어 갈 지도자는 영양군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면 한다.군민들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활함에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할지 항상 고민하고 실천해 옮기며 현재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가 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제는 군민생활과 가까운 정책으로 행정의 체질개선을 통해 군민 모두가 행복한 영양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영양군은 지난 시간 동안 다양한 공모사업 신청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례가 많다.이에 안주하지 말고 차기 어떤 지도자가 영양군을 이끌어 갈지 간에 군민들의 편의와 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직접 발품을 팔아 예산을 확보하는 군정 활동이 필요 할 것이다.한 두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중앙부처와 상급기관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정책을 호소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요즘 군수들은 군수가 될 인물의 자질중 청렴함을 최고의 덕목이라 여기기 때문에 행정 업무처리 절차와 재정운영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어떠한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부 집단과 단체에 흔들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군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좋은 안건들을 정책에 반영시켜 군민들이 원허는 정책을 펼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지도자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는 물론 권한까지 가지는 자리다.영양군수라는 자리는 1만 7천여명 영양군민의 눈높이를 맞추고 군민 모두가 염원하는 사업추진을 추진해 풍요로운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항상 군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군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모든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가 된다’는 프랑스 계몽 사상가인 루소의 말이 있다.이번에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후보들이 선거 때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군수후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돈과 권력을 좇아 기회주의적으로 산 인물인지 주민을 섬기고 정의와 유능함을 갖춘 참사람인지 당사자들의‘역사’를 봐야 한다.다른 후보를 비방하면서 자신을 드높이려는 후보보다, 다른후보의 장단점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얼마나 ‘실적’과 ‘실력’을 갖고 있는지를 다정하게 논증하는 후보를 주목해야 한다.한고을의 지도자는 일편단심 군민을 편하고 잘 살게 하려는 생각으로 불철주야 노력할 정직한 사람, 당장의 인기를 위해 초상집이나 행사장만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닌, 사사로운 이익에 마음을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아닌, 영양군의 미래를 길게 보고 넓게 보고 깊이 보면서 묵묵히 한길로 매진할 품성과 자질을 가진 사람, 영양이 발전해 나갈 방향에 대해 군민과 시민단체와 토론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실천해 나갈 방도를 의회와 숙의할 줄 아는 사람, 공무원으로서 참된 봉직관을 가진 공무원을 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군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나는 그런 참 좋은 후보를 만나서 동행하고 싶다.

2022-03-27

목련이 목련했다

목련 투어를 나섰다. 지난해는 보문단지와 동리목월문학관 지나 서출지까지 발도장을 찍었었다. 올해는 다른 곳으로 골랐다.첫 코스로 화천리 산수유 보러 갔다가 발견한 목련 한 그루다. 어느 문중의 선산인지 햇살 가득한 언덕에 봉분이 나란히 몇 기 엎드린 곳에 꽃나무가 병풍처럼 들러져 있었다. 그 나무 중 우뚝 키가 큰 목련이 봉오리를 가득 달고 있었다. 며칠이면 꽃문을 열 것으로 보여 오늘 찾았다.산비탈에 주춤주춤 차를 세우는데, 아직 만개하지 않은 목련이 노란 산수유 군락지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반긴다. 가지에 산새들이 다닥다닥 앉은 모양새다. 가까이 가려니 꽃그늘에 평상이 하나 놓였고 그 아래 잔디밭에 손님 셋이 소풍 온 듯 무언가 나누며 소담스럽게 웃는 소리가 번졌다. 산소에 다니러 온 주인장인가 싶어 목련 사진만 찍고 갈게요 하니, 자신들도 객이니 걱정하지 말고 찍으라 했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컷, 산수유와 더불어 한 컷, 활짝 핀 가지를 줌으로 당겨 한 컷 찍었다. 마지막으로 목련을 보러 온 그들을 넣어서 원경으로 한 컷 더 찍었다.찍으며 보니 찻상이 참 곱다.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은 꽃이 피는 곳을 찾아다니며 꽃자리를 깔고 즐긴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만났다. 아기자기한 상꾸밈을 보고 감탄하자 차 한 잔 맛보라며 자리를 내준다. 민폐 같아 사양하니, 세 사람 중에 큰 카메라를 옆에 둔 분이 자신도 목련 찍으러 와서 처음 만난 사이니 그냥 껴 앉으라고 부추겼다. 못 이기는 척 꼽사리를 꼈다. 앉자마자 우리가 올 것을 알고 기다렸단 듯 붉은색의 천으로 된 찻상을 깔아주며 찻잔에 받침까지 받쳐서 삼색 과일까지 담아 꾸미는 것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벌이 내는 날갯짓 선율을 들으며 오래된 보이차와 눈 속에서 딴 국화차와 초록빛 고운 말차까지 대접받았다.차를 마시는 사이에 꽃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주위를 서성댔다. 나만 아는 곳인가 했더니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잘도 좋은 곳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꽃 향에 차향에 사람 향에 취해 생각보다 오래 머무른 듯해서 서둘러 감사 인사를 나누고 다음 장소로 발길을 재촉했다.두 번째 찾아간 곳은 오릉이다. 넓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기와 담장 위로 솟아오른 목련이 햇살에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눈부셨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참을 넋 놓고 꽃 감상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 소나무 숲을 따라 돌다 보면 능이 넷이다가 셋으로 줄었다 다시 다섯으로 돌아온다. 오릉은 4명의 신라초기 박씨 왕들과 박혁거세왕의 왕비인 알영부인의 능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신라의 초기 묘들은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닌 널무덤 또는 덧널무덤으로 조사돼 이 오릉이 신라초기의 왕릉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넓은 능을 다 돌아보려면 하루해도 모자란다. 오늘의 우리 목표는 숭덕전 앞의 목련이다. 멀리서 보니 벌써 웨딩 사진 찍는 일행들과 바주카포 같은 렌즈를 달고 온 동호회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가며 목련의 자태에 홀려있었다. 많은 이들 중에 빨간 외투를 입고 찍기도 하고 찍히기도 하는 여인이 눈에 뜨인다. 산수유 그늘에서도 열심히 서성대던 일행이었다. 내가 들고 간 빨간 하트 우산을 빌려 사진을 찍더니 어디서 산 것이냐 묻는다. 가격까지 알려드리니 주변의 다른 분까지 받아적는다. 히힛, 역시 사진에 진심인 분이다. 담장에 붙어서 나란히 심은 탓에 기와지붕이 꽃그늘에 가려진다. 목련의 키가 거기에 서 있던 시간을 말해주려고 건물의 높이를 뛰어넘었다. 파란 하늘, 까만 기와 하얀 목련의 삼박자가 카메라 셔터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친구가 새로 집을 지었다. 목련 투어를 다니는 내 생각이 나서 한 그루 심어야겠다고 집 어느 즈음에 심으면 좋은지 나에게 물었다. 아파트에만 살아온 내가 어찌 알겠나 했더니 이곳에서 답을 얻었다. 담장 따라 심어놓으니 어느새 담을 훌쩍 뛰어넘어 밖을 지나는 사람도 즐기고 담 안의 주인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담을 수 있으니 좋다. 목련이 하루를 가득 채웠다. /김순희(수필가)

2022-03-27

기후위기, 누가 대신 막아주지 않는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인류는 20세기에 전 지구적인 산업화를 통해 기념비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대재앙 수준의 위협에 처해있다.재앙은 2020년대가 시작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지구 온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호주와 미국, 브라질에 발생한 엄청난 산불로 주변 도시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대규모 메뚜기 떼가 덮친 아프리카에서는 작물과 초원이 초토화됐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전염병도 전 세계로 확산됐다.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근본적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파멸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기후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정부는 지난해 10월 8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대해 2018년 배출량 대비 4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주요국가 NDC 수준을 보면 미국 45.8%, 영국 45.2%, EU 39.8%, 일본 38.6%로 우리나라가 특별히 높은 감축목표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불쑥 계획을 내놓았기 때문에 반발과 우려를 자초한 것이다.정부가 발표한 2018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계획을 보면, 전체적으로 7억2천760만t에서 4억3천660만t으로 40% 절감하는 것이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2억6천960만t에서 1억4천990만t으로 44.4%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2020년 6.6%에서 2030년 30.2%까지 늘려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미다. 산업 분야에서는 2억6천50만t을 2억2천260만t으로 14.5% 줄이고, 건물에서 32.8%, 수송에서 37.8%, 농축수산에서 25.9%, 폐기물에서 46.8%를 줄인다는 계획이다.지금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다가올 미래 세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지구가 파국으로 치달을 확률이 낮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주장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손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치명적 과오는 국민을 구경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민이 보기에 탈원전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폐기될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이끌었다. 중요한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자기편 사람들이 태양광을 통해 한탕 해 먹는 판’으로 비추어지도록 했다.기후대응에 대한 해결책은 이제 국민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도 문제해결의 당사자다.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떠넘길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심각한 문제다.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책을 잠시 유예할 따름이다. 국민 모두 지구재앙을 막는 것을 나의 일로 여기고 나서야 한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느긋한 자세를 가져선 안 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내 집 지붕이나 베란다, 공장 지붕, 회사 공터에 당장 작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일에서부터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일, 사용안하는 가전제품의 전원을 끄는 일, 휴대폰과 차량을 1년 더 쓰는 일 등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이런 실천이 단순한 윤리·도덕적인 행동이라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정부나 대기업, 국제기구가 지구의 대재앙을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왕과 조정이 의주까지 도망치고 난 후에도 결국은 백성이 의병을 조직해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낸 민족의 후손이다. 정부의 무능과 금융기관의 일탈로 IMF사태까지 맞았지만,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도 있지 않은가.글로벌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경제연구소(Deloitte Economics Institute)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거나 부적절하게 대처할 경우 앞으로 반세기 동안 경제적 누적 손실은 현재가치 기준으로 약 93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보고서는 한국이 205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로 제한한다는 목표에 발맞춰 과감한 ‘기후행동’에 나선다면 2070년까지 약 2천300조 원의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온실가스를 제대로 줄이면 2천300조 원의 이익을 얻고, 안 줄이면 935조원의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앞으로 9년이 기후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개인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정부는 재앙에 대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202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