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연재소설 ‘Grasp reflex’
꼭 새로워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잘 해왔으니까 하는 말이지. 세상에 저런 효자가 어디 있나?
인호를 잘 아는 사람이 인호를 감쌌다.
국회의원 선거잖아. 효자 뽑기 대회가 아니고. 국회의원으로서 잘하는 것과 아들로서 잘하는 것은 다르지. 효자를 뽑는 선거라면 김인호를 당연히 뽑아주지. 하지만 이건 국회의원 선거야. 누가 뭐래도 국회의원은 중앙에서 정치력이 있어야지. 김 의원이 지역구에 잘 내려오지는 않지만 중앙에서 잘하잖아. 그만한 거물이 되는 게 어디 쉬워?
입바른 사람의 바른 말은 인호의 귀에도, 영권의 귀에도 들어갔다. 영권이 인호를 불렀다.
오랜만에 남해에 가서 공이나 한 번 치자.
라운딩을 마치고 둘은 해안가를 찾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네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이냐?
인호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영권이 물었다.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선거에는 제가 출마해야 합니다. 이제는 영산시를 제게 내려주십시오.
인호는 ‘양보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려다 말을 바꾸었다. 무례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지금 네가 네 입으로 내려달라 말했듯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본다. 누가 보아도 지역구 세습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세습에 대해 반감이 많다. 너의 좋은 의지가 좋게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무슨 말이냐. 선거에서는 지면 안 된다. 떨어지기 위해서 하는 선거는 없다. 선거와 정치는 오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 영권이 말했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손톱으로 두드리며 인호의 얼굴을 보았다. 인호는 다른 지역구에라도 출마할 수 있게 해 달라 말했지만, 영권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국회의원이 된 예도 없을뿐더러, 감당할 수 있는 돈도 없고, 그리고 인호가 다른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그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다른 국회의원에게 도리가 아니라 말했다. 인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인호가 말했다.
이번에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김영권이나 김인호나 똑같다 그럽니다. 여기에 갇히면 저의 정치는 시작도 못해 보고 끝나는 겁니다.
영권은 인호에게 일어서라 말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인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너의 정치라. 인호야. 너는 정치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인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정치란 사람들이 갈등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짧으면서도 단호했다. 인호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러나 영권의 대답은 달랐다.
틀렸다. 너는 아직 정치를 모르는구나.
그러면 무엇입니까?
인호가 물었다.
내가 답해주마. 정치는 권력을 가지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들이다.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의 구별은 의미 없다. 너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권력을 잡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면 너는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사람들? 스스로 목자 잃은 양이라 칭하는 것들은 권력의지를 확인하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울타리로 들어온다. 그들은 정치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영권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인호야. 너의 인생에 너의 정치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정치인 김영권의 아들로 태어난 순간부터 김영권의 아들 김인호만 있을 뿐이지. 정치인 김영권을 위해 네가 있는 것이다. 정치를 하라고 너에게 지역구 관리를 맡긴 게 아니다. 이십년 전 너를 지역구로 내려 보내면서 정치를 배우라 말하지 않았다. 너는 정치인 김영권이 거목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름이 되어야 하는 거다. 그게 너의 이번 생이다. 너의 정치? 너의 정치라는 것이 가능하려면 나와의 인연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겠지. 내가 내 입으로 이 말을 하게 하다니. 내 아들이지만 너도 참 딱하다.
영권은 말을 끝내고 인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선 인호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썰물이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바닷물이 빠져나갔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검고 거칠은 암초들이 덩어리지어 나타났다.
썰물이네요. 저 아래에 검은 바위들이 저렇게 많이 놓여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습니까?
이 년 전 그날. 남해였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인호와 필립이 만났다. 만식의 장례를 치른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
-연락이 왔다고? 먼저?
인호가 물었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자고 하더라.
-나보고 친해지라 해놓고 자기가 먼저 전화하는 건 뭔데?
/김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