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정지용, ‘유리창 1’)
정지용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라든가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와 같은 감각적인 묘사와 언어운용은 요즘의 어떤 시와 비교해도 세련되게 느껴진다. 이미지나 리듬감도 뛰어나지만, ‘유리창 1’을 아름다운 시로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 요인은 이 시 전체에 배어 있는 슬픔과 연민의 정서다.
알려진 바 이 시는 지용이 폐렴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를 그리며 쓴 작품이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라는 문장은 지용의 마음을 절절하게 나타내준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산새처럼 날아”간 아이가 있는 밤하늘을 보기 위함이다. 이는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일으키는데,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외로울 수는 있어도 황홀하기는 쉽지 않다. 외로움이 보편적 감정이라면 황홀함은 보편성을 넘어선, 시인이라는 예민한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정서일 것이다.
죽은 아이가 날아간 밤하늘을 바라보니 슬프고 외로운데,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 풍경은 한없이 아름다워 황홀하다. 이 황홀함은 풍경에 의한 고취인 동시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몰고 온 일종의 환각적 상태다. 슬픔 속에 오래 침잠되어 있다 보면 세상이 비현실적 공간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이든 육체의 고통 또는 현실의 절망이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현실에서는 외로우나 아이를 만나는 상상에서는 황홀하다. 그 황홀함은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아이의 죽음을 오롯이 살아내야 하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외로운 황홀한 심사다. 자녀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를 칭하는 단어가 없는 것은, 누구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슬픔, 그 슬픔 속에서 아이를 만나는 상상….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어느 곳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외로운 황홀함일 것이다. “외로운 심사”라고만 했으면 이 시는 아름다움이 덜 했을 것이다. “외롭고 황홀한”도 안 된다. 그렇게 쓸 경우 외로움과 황홀함은 각각 독립적인 감정의 상태이거나 서로 다른 두 감정의 연쇄작용일 뿐이다. 밤하늘을 보며 정지용이 느낀 외로움과 황홀함은 한 덩어리다. 그래서 오직 “외로운 황홀한 심사”여야만 한다. 외롭고도 황홀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황홀함이야말로 화자가 느끼는 적확한 감정이므로.
몇 해 전, 청소년 시 낭송 UCC 경연대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한 학생이 이 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 사월 바다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가 팽목항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에 담긴 딸의 사진을 본다. 액정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화면 속 딸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 아버지는 밤에 홀로 액정을 닦는다. 그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
지난 9월,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수해로 소중한 목숨들이 스러졌다. 침수된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가는 엄마가 걱정돼 함께 나섰다가 숨진 중학생 김 군의 사연이 세상을 울렸다. 급박한 순간 엄마는 “너라도 살아야 한다”며 아들을 내보내려 했고, 아들은 “엄마,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야속한 하늘은 이 다정한 모자(母子)를 갈라놓고야 말았다. 살아남은 엄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별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갔을 거라고, 무엇이든 되어 다시 만날 거라고, 다음 세상에서도 엄마와 아들로 태어날 거라고….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외로움, 꿈속에서나마 아들을 만날 황홀함….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