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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다

등록일 2022-10-16 18:01 게재일 2022-10-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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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길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그 길이 새로운 길이든, 이미 익숙한 길이든 길은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2019년 한 해 동안 광주 전남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나는 광주와 대구, 청도와 광주를 뻔질나게 오고 갔다. 하지만 길을 나설 때마다 가슴을 채우는 설렘과 기대는 매번 다른 색깔과 향기로 다가온다. 타고난 역마살 덕택일지도 모를 일이다.

신천대로를 지나 남대구 톨게이트를 거쳐 갈림길에 이른다. 예전의 구마고속도로와 지금의 달빛 고속도로가 갈려 나가는 길이다. 잠시 후 고령과 합천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500년 넘도록 번성했던 대가야의 본거지 고령.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의 합천. 길은 다시 이어진다.

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세와 지세, 수세(水勢)를 자랑하는 거창이 지척이다. 북으로 남덕유산과 수도산, 동으로 두리봉과 비계산, 서로는 기백산과 금원산처럼 1천m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황강과 남강, 위천이 들을 가로지른다. 크고 작은 분지에서 풍겨 나오는 여유로움이 서슬 퍼런 산들의 기백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거창을 지나 만나는 함양은 지리산 초입이다. 함양의 지명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따왔기로 다소 우울하다. 함양 안의면에 있는 물레방아를 떠올리며 위안(慰安) 삼는다. 1780년 동지사의 일원으로 열하(熱河)를 다녀온 연암 선생이 청나라에서 본 물레방아를 처음 조선에 세운 곳이 함양 안의 고을이었다. 그것이 1792년이라 하니 못내 원망스러운 세월이다.

함양과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있는 도시가 전북 남원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얽힌 광한루가 널찍하게 자리한 예향이자 묵향 남원.

언젠가 경북대 학생들을 인솔하여 졸업여행 마지막 기착지로 삼았던 광한루의 추억이 엊그제처럼 다가온다. 88고속도로로 서대구와 남원을 2시간 반에 주파했던 그 길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너희가 언제 다시 남원에 오겠느냐. 같이 가보자!’ 하고 다독였던 36살 청춘의 나!

남원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야 나타나는 순창. ‘남부군’의 지은이 이태가 1950년 9월 30일 얼떨결에 입산한 곳이 순창 엽운산(여분산)이다. 17개월 동안 남부군 빨치산으로 있다가 1952년 3월 지리산에서 군경에 체포되는 이태. 그가 남긴 시대의 기록 ‘남부군’을 소설가 이병주가 장편소설 ‘지리산’에서 표절한다. 차마 해서는 안 되는 글 도둑질을 감행한 ‘조선일보’의 작가 이병주!

이제 광주도 지척이다. 대나무와 소쇄원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담양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 옆에 자리한 경산이나 청도처럼 담양은 광주의 배후도시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 그리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

그리하여 길손은 마침내 광주에 이른다. 이런 길을 떠돌면서 우리의 풍요로운 산하와 역사와 이야기를 되새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 달빛(광대) 고속도로 여행을 독자 제현께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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