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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국기 게양마저도

등록일 2022-10-18 18:35 게재일 2022-10-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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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지난 한글날, 아파트 같은 동(棟)의 총 90세대 중 필자 집을 포함 단 2세대가 국기를 달았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다른 국경일에는 국기게양 안내방송도 하는데 한글날엔 국기게양 방송조차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식 국기게양일은 국경일인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정부지정일인 현충일과 국군의 날이다.

국경일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며 그 정도를 본다면, 비록 신화이지만, 우리나라 뿌리가 시작된 단군왕검의 고조선건국을 새기는 개천절이 가장 중요할 것이며, 다음엔 일제치하에서 광복을 맞게 된 광복절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 생각으론 광복절보다 한글날이 더 의미 깊고 중요한 날이 아닐까한다. 광복을 맞은 덕분에 한글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좋은 우리 한글이 있었기에 진정한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경일들 중 한글날이 둘째 아니면 셋째로 중요한 날인데, 태극기 게양은 최하위에 가까우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인에게나 국가에 있어서나 언어의 기능과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뿐더러,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아무리 강조하고 찬사하여도 결코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한글교육뿐만 아니라 한글에 대한 인식마저도 너무 부족하며, 외래어나 외국어표기를 쓰지 않으면 무지하거나 시대와 유행에 뒤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필자는 정치보도가 싫어서 TV뉴스를 거의 시청하지 않지만 신문을 통해 잠깐씩 접하게 되는 정치기사를 보면 세계 최고언어를 가진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저질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치가 저질이 된 것은 정치인들의 말이 속악(俗惡)스럽고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근현대 정치사 속에서도 나라가 이 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한글과 한글정신 그리고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글을 잘 다듬고 바르게 사용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생각과 정신을 더욱 정화시키고 다져서 혼란스럽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최근 어느 도시에서는 시장과 교육감이 손잡고 영어 상용화 정책을 펴서 영어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로 만들기로 했다는데, 이는 얼이 한참 빠진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이 영어를 몰라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영어사용 외국인들의 불편함을 없애려고 영어상용 정책을 편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외국관광객이나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방안이라면 영어상용화 정책 대신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도우미 제도를 치밀하게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비용과 실용성에서 더 효율적일 것이며 영어구사능력자들의 고용창출에도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언어란 인간의 생각과 정신을 지배한다. 당장 급하게는 힘들겠지만 한글 전용화까지는 아니라도 한글장려, 한글강화 또는 한글순화운동을 펴야한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평생을 살아온 필자의 경험으로는 우리말을 잘 구사할 줄 알아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으며,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면 정확하고 세련된 외국어를 구사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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