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영어유치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자녀교육에 열성적인 가정에서는 아이를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낸다하며 어떤 영어유치원은 입학 때부터 영재테스트를 거쳐 영어수준테스트도 한단다. 영어뿐 아니라 어떤 학습내용이든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시험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필자 생각으론, 정교한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으며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력 형성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언어의 주된 기능이 의사교환 수단의 역할이지만 인간은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사물이나 현상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추상적이며 개념화된 사고를 시작한다. 언어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알아야 논리적 사고력과 풍부한 창의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언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좋은 내용의 자기 생각을 영어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지 그저 발음 좋고 일상생활대화를 매끄럽게 하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
영어조기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은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촘스키 주장은 13세 이전엔 문법을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만, 이후로는 문법규칙을 인위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2018년에 발표된 MIT 인지과학 연구원의 조슈아 하트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외국어 문법실력이 원어민 수준이 되려면 10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18세까지는 언어문법 습득능력이 크게 쇠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느 쪽 주장을 따르든 원어민 수준의 문법습득은 영어권 사회에서 생활하려는 아이들이나 나중에 우리 풍습이나 정서를 담은 문학예술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할 것이나 영어를 외국어로 삼으며 생활할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학습이 아니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고등학교나 대학 때 공부하더라도 필요한 영어능력은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어릴 때 영어 학습에 쏟을 에너지를, 악기나 운동 등 다른 재능이나 기능들의 개발·연마에 쓰는 것이 아이의 미래행복을 위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잘할 수 있어야 사고도 정확하고 고상하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국어도 수준 높게 잘 구사할 수 있다. 영미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라는 사람이 우리말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개 영어실력도 별로였다.
집에선 우리말을 하는데 유치원·학원에선 영어를 써야한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5∼7세 사이에 모국어 습득이 체계화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이 형성되는데, 외국어 학습을 인지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수행하면 더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영어 장사하는 사람들의 광고와 마케팅에 좌우되지 않은 채 중심을 잡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엄마들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