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3일 부임한지 5개월 밖에 안 된 서울동부지검장이 갑자기 사표를 냈는데, 사의표명 이유는 검사 실무수습을 위해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된, K검사가 피의자인 40대 여성을 집무실로 불러 조사하던 중의 유사 성행위와 그 뒤에 인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 가진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사의를 표한 지검장은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서울동부지검에서 발생한 불미사태에 관해 청의 관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사건이 터지자 K검사 소속 형사부 관리·지도자에 해당하는 부장검사까지 책임론이 논의되었으나, 지검장에 대해선 직접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검장은 “K검사 사태로 조직의 위신이 바닥에 추락한 상태에서 다시 조직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이번 사태를 처음 접하는 순간 누군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을 비웠다”며 사의표명 배경을 설명했고, 지검장이 기꺼이 희생양을 자청한 덕택에 사건 소속 형사부 선임 검사들의 책임문제가 해소됐다 한다. 이태원 참사가 터진 뒤 관련자들이 책임의식이 전혀 없는 모습에 2012년 서울동부지검사건이 생각났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경찰과 정부의 보고체계는 엉망진창이었다.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보다 늦게 내부 알림문자로 사태를 알게 됐고, 치안 총책임자인 경찰청장은 캠핑장에서 잠자느라 대통령보다 73분이나 늦게 보고 받았다. 이쯤 되면 사고지역 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즉시 인사조치가 있어야 했으며 행안부 장관도 즉시 사퇴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어느 인터뷰의 책임 언급에서 ‘사표를 폼 나게 던진다’는 표현을 쓰는 등 장관은 임명권자에 대한 예의도 잊은 채 국민을 우롱하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책임지우는 문제는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권한에 맞춰 얼마만큼 책임 물어야 할지를 판단한 다음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는데, 책임질 인사가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께서도 범죄의 구성요건을 따져서 기소하던 검사 시절의 의식이나 사법시험 2차 날짜를 며칠 앞두고 친구의 함진아비로 대구까지 갔다는 일화에서처럼 개인적 의리 같은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사항들이 오늘날 민주국가 지도자에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깊이 새겨야 할 사항도 있을 것이다. 군주의 덕목으로 “혼란을 막지 못하는 부드러움 보다 가혹한 조치로 질서를 세우는 것이 낫다” 또는 “지도자의 자질은 그 부하를 보면 안다”라는 말들은 오늘날 민주국가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해당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태원 참사의 안전대책에 법적뿐만 아니라 정무적·도덕적 책임이 있는 사람은 즉시 문책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개인적 의리를 지키는 것보다 나라와 국민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 더 원칙적이고 상식적이다. 정부 각 부서의 장들이 책임의식이 없다면 대통령은 통치자로서 냉정하고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