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과거 호출기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8282’를 표기하여 보내기도 했으니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오랜 기간 이어져 초고속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맞아 그 전파력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듯하다. 혹자들은 이런 문화가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는데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 놓기도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명목 GDP 규모가 477억원에 불과했는데 이십 년이 지난 1973년에 5조원을 돌파하고 2006년 1천조 돌파에 이어 2021년에는 2천조가 넘는 성장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기적적으로 부자 나라가 되는데 성공했지만 세계에 있는 200여 개의 나라 중 부자나라라 할 만한 곳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동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있는 20여 개국 외에는 거의 없으니 우리나라의 현재 위치는 기적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기엔 그 논리가 빈약하게 느껴진다.
빈국들은 전통적인 수출품인 커피, 바나나, 석유, 광물 등 1차 상품 생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이 주력인 선진국은 자연 자원을 직접 투입할 일이 없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제한받는 농토, 광산, 어장도 필요 없이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효과로 경쟁력을 키우면서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간다.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나 첨단 산업에서는 첫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그 뒤에 나오는 제품의 제작 단가는 대폭 낮아지게 되는 원리다.
이렇게 수세기 동안 ‘제조업’이라는 용어는 기술변화와 무한 경쟁 속에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공식이 되었으며, 이것이 헨리7세 때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과 미국을 거쳐 한국과 대만이 거둔 성공의 유형이다. 이러한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는 지식경제가 필연적이며 지식근로자 중심의 휴먼이 곧 캐피털이다. 자본과 노동력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라는 뜻이다. 이러한 성공의 뒤에는 조직에 지나치게 편중된 가치를 두게 되어 일과 개인을 동일시해 일에 올인하는 ‘워크홀릭’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에 지나치게 올인하다 보면 자신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내부 영혼에서 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화내고 지치고 능률은 오르지 않고 종국엔 개인에도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회사 내 동료, 선배, 상사에게 분노를 투사하거나 일 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자신을 영혼에서 분리 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일에 올인하지 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염치없고 뻔뻔하게 들리나, 아무 때나 아무 일에나 올인하지 말라는 뜻이다. 정작 올인해야 될 때가 되었을 때 열정도 체력도 탄성도 바닥난 상태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그 덜어낸 20%를 오로지 자기를 위해 쓰자. 올인할 시기에 절대적으로 올인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 열정의 20%는 덜어내어 늘 저축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