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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BTS와 노병(老兵)

정상호경북취재부장(국장대우) 방탄소년단(BTS)의 병역면제 여부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BTS는 월드 스타다. BTS가 공연 할 때는 전 세계 팬들이 열광한다. BTS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화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이로 인해 BTS에 대한 병역면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됐다.국위선양을 한 만큼 병역면제를 해주자는 이야기를 일부 정치인들이 제기했지만 성사단계 까진 가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BTS 관계자가 해외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 냈다. “병역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멤버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국회에서 어느 방향이든 조속히 결론을 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멤버 중 최연장자인 92년생 한 명이 병역법 개정이 불발되면 내년에 입대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다급해진 소속사가 이 문제를 들고 나선 것 같다.정치권은 즉각 화답하는 모양새다. 여야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들을 위한 병역특례법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찬성하는 의원은 “BTS가 군대에 가지 않고 계속 공연을 할 수 있게 놔두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찬성하는 쪽 만큼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2030세대들은 “국위선양 기준이 뭐냐” “명백한 특혜고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하는 분위기다.“아무리 월드스타라 해도 엄연히 대중가수인데, 돈은 돈대로 벌고 거기에 병역면제 혜택까지 주는 것은 공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참혹한 전쟁을 경험하고 남북으로 갈라져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병역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다.최근 경북매일신문에서는 6·25전쟁 당시 영덕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했던 생존 노병들을 찾아 그들의 잊혀진 전공을 재조명하고 있다.‘장사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밑거름이 된 작전이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다. 700여 명의 학도병들이 이 작전에 동원됐다. 이들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지만 상륙작전의 임무를 100% 완수해 냈다. 군번이 없기에 훈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을 내 손으로 지켰다는 가슴속 자부심은 훈장보다 더 값질 것이다. 꿈 많은 앳된 10대 학생이었던 이들 중 지금 남아있는 생존자는 거의 90대다. 어느 참전용사는 100살에 한 살 모자라는 고령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이가 어려 입대를 피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원입대했다는 점이다. 이영희 옹(91·전 옥천교육장)은 대구로 피난 온 아버지가 가문을 이어갈 금쪽같은 장남인 자신에게 입대를 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데, 내 아들만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고. 수면 위로 떠오른 BTS 병역면제 찬반논란의 와중에 ‘장사상륙작전’ 노병들의 애국심이 새삼 오버랩 된다.

2022-04-14

무소유와 에세이

배문경수필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마하트마 간디가 했던 말을 시작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수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은 법정스님이 향년 77세로 입적하신지 12년이 되었다. 넘치는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세상의 욕망에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다.밝은 성격의 단짝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두운 시절, 사회의 등불로 혜성처럼 나타난 법정 스님이었다. 그의 ‘무소유’와 ‘서 있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발간된 에세이집은 사회적인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는 시원한 사이다 느낌이었다. 많은 매스컴과 입소문은 큰 화제가 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새 책이 나올 때면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는 친구에게 법정 스님은 신적인 존재였다. 절친의 손에 들려있던 ‘무소유’를 나도 받아 읽었다. 나는 책을 읽고 친구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구는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하더니 2학년 여름방학에 승려가 되겠다며 승가대학엘 들어갔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야 말 것 같은 느낌에 친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준비해 주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절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간호사가 되어 다시 오라는 승가대학의 요구에 실망하여 집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비구니가 되기 위해 운문사 승가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달려가 상을 치른 후 친구 집 서재에서 ‘무소유’를 다시 읽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정말 친절하고 특별히 나를 잘 챙겨주신 분이었다. 책을 읽으며 삶의 집착과 소유하는 마음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급류처럼 흘러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바쁘게 살았다.법정 스님의 글에서는 맑은 바람과 은은한 난향이 느껴졌다. 난을 애지중지하다 결국 집착에 끌려 다닌다는 생각에 타인에게 주는 순간 이미 스님의 그 마음은 난 향기로 가득해졌을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난 것이다. 세속에 사는 나에게도 욕망에서 벗어나길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공감하도록 설득하는 글이었다. 매력적이었다.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놓여있는 문장과 문장이 돋보였다. 깊이 사유한 글이란 이런 것이란 느낌도 받았다. 뒷 문장이 앞 문장을 설명해주고 깔끔하니 담백하고 모든 글이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적절했다. 오랜만에 다시 펼친 법정 스님의 글은 세월 탓인지 문장이 옛 글의 느낌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아직 그대로 나의 가슴에 먹먹한 메시지를 던져준다.또 승려라는 신분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더욱 정확하게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는 점은 글에서도 읽혔다. 혼자 기거하는 불일암에 한여름 더위에 낮잠이라도 잘 수 있으련만 스님은 계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무를 뾰족하게 깎기도 했다. 남이 아니라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기 위한 노력은 놀라웠다. 그리고 스님은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세속과 절집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스님과 신도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고 계시는 듯했다. 33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무소유’가 세상에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마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할 만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 후 친구는 법진이란 이름으로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동국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면서도 법정 스님이란 화두를 안고 출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심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학 방정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녀를 승려의 길로 제시한 사람이 법정 스님이라면, 수필이란 글이 내게로 와 닿아 큰 숙제처럼 날마다 끙끙거리는 것 또한 법정 스님의 책 인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인생에 씨알 하나 던져 놓는 일,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법정 스님이 아니라 다른 누구였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제를 생각하며 만드는 연(聯)과 연(聯) 사이에서 넘실대는 푸른 보리처럼, 유난히 빛나는 벚꽃 잎처럼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점 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2022-04-13

잠수정과 해저도시

요즘 ‘젠더 갈라치기’ 이슈가 뜨겁다. 남녀 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화두라고 한다. 육아맘의 입장도 비슷하다. ‘여자’인 엄마 시각에서 아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생물체에 가깝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은 맞는데, 기질과 성향, 관심사 어느 하나 비슷한 데가 없다. 뼈가 부러져 병원 응급실을 찾거나, 매일 아침 다리 저는 걸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줄넘기 수백 번을 어찌 매일같이 할 수 있는지 이해 불가다. 아들이 이토록 이해가 안 되니 어쩌면 지금의 남녀 갈등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머릿속 끊임없는 상상이 일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그간 ‘여자’로 살아왔던 엄마의 인생 경험치를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우선은 받아들이자. 으레 어른들이 하는 ‘아들은 원래 다 저래’에 담긴 성별 차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타고난 기질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놀이터 그네 공중돌기(그네에 서서 두 줄을 잡고 공중 제비돌기)까지는 허용해주었다. 대신 극한의 묘기를 선보이는 ‘유튜브 시청’은 막았다. 국가 공식 통계가 말해주듯이 영유아기와 아동기를 포함한 생애주기 동안 남아의 안전사고 발생률은 여아에 비해 훨씬 높다. 무조건 “안 돼”를 외치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아이가 다치는 빈도만은 정말 줄이고 싶었다.초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들의 상상력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총칼과 전쟁놀이에 심취, 각종 무기의 성능과 미사일의 파괴력을 읊기 시작했다. 훗날 기억에 남는 작품집을 만들자며 시작한 스케치북엔 무시무시한 포탄과 미사일, 핵추진발사체 등이 채워졌다. 대공포와 발사체 중심이던 그림이 최근엔 핵잠수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00년 후 우리의 생활모습’을 그리는 사생대회를 준비하던 중 잠수함의 성능과 역할을 확인한 후 부터다.아이가 매료된 건 해저 공간에서 실제 상주가 가능한 사례가 ‘핵잠수함’이란 부분이었다.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원으로 오랫동안 심해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실제로도 해저도시를 구현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잠수함 기술에 담겨있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해저과학기지인 아쿠아리어스(Aquarius)를 운영 중인 미국이 핵잠수함 최강국이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잠수함에 이끌렸던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리를 위해 잠시 올라온 잠수정을 타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듯 들어가는 입구부터 좁은 내부와 천장 위 각종 설비들이 심상치 않았다. 바다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장병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학 기술의 정수를 잠수함 장비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기술력의 결정체인 ‘잠수함’ 확장 버전이 해저기지 또는 해저도시라고 한다. 아들과 함께 사생대회를 준비하면서 100년 후 해저도시로 나들이 가는 일상을 상상해봤다. 사실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여러 나라들이 몇 해 전부터 해저도시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걸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실현 단계는 아니지만 계획을 보는 것만으로도 원대하고 뭔가 설렜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도 해저도시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체는 울산시. 울산시는 지난 달 해양수산부의 ‘해저공간 창출활용 기술개발(RD)’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해저도시 건설을 확정지었다. 지난해부터 ‘미래 해저공간 건설 타당성 검토 연구’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해저도시 건설에 착수한 결실이라고 한다.울산시가 그리는 해저도시는 1단계와 2단계로 나뉜다. 먼저 수심 30~50m에 소규모(3~5명) 인원이 28일 간 체류하는 연구·관측 시설을 건설한다. 그 후 안정화 단계를 거쳐 수심 200m, 최대 30명의 사람들이 한 달 가량 머물 수 있는 기지가 구축된다. 해상풍력으로 얻은 에너지로 수소를 생성, 해저 저장시설에 보관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그린에너지의 완결체 버전이다. 정현미작가 해저도시 건설에는 수많은 최첨단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된다. ‘극한공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건설 후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심해환경 연구시설과 해저 데이터센터, 수중 다이버훈련시설 및 수중 쉼터 등이 먼저 거론된다.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를 줄이는 방안이 해저 데이터센터 건설이라고 한다. 또한 해저는 수압 외 모든 환경이 우주와 비슷해 우주인 훈련기지와 우주장비 실증기지로도 활용될 수 있다. 잠수함 기술개발이나 수중감시체계 구축 등 국가 안보시설 활용은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운용 중이다.100년 후 우리의 생활 모습은 어떤 형태로든 달라질 것이다. 울산의 해저도시 건설이 성공하고 극한공학이 더욱 진일보한다면 잠수함이 여객선을 대체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과 공학의 만남이 잦아지고, 세상 그 어디도 없던 공간이 만들어지면 우리의 인식 체계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 결과 남녀 간 이해도가 높아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포용력은 넓어지리라 본다. 다치고 부서지고 깨지며 터득하는 내 아이의 상상력이 미래 세상의 작은 변화에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아이의 무사 하교를 기대해본다.

2022-04-13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게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로또 당첨 번호를 외치는 것도 괜찮고 부동산 시장에 관해 귀띔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 그게 정말 최선일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막막한 시간 속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말. 무수한 조언들 사이에서 시간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말. 그렇다면 역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겠다.“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돌아보면 그랬다. 나는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었고 보다 더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언젠간 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둔 채로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자꾸자꾸 부풀어만 갔다. 십대에는 성인이 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수능특강을 풀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엔 서른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며 캠퍼스를 거닐었다.서른이 되면 세상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힘든 일은 언젠가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열정이 넘치지만 불안은 가득한 이십대를 지나면서 미래에 대한 갈망을 더욱 커져만 갔다. 무엇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여긴 완결된 페이지가 아니야. 더 멋진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삶의 어떤 부분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었다. “내 꿈은 서른이 되는 것”이라며 떠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내게 너무 쉬운 꿈을 가졌다며 놀려댔었다. 그때의 내게 서른이란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의 상징에 가까웠다. 내게도 그날이 찾아온다는 건 일말의 위안이었다.물론 미래를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몇몇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해? 이거 쉬운 일 아니야.”나는 그런 이야기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나를 좌절시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대부분이 평균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었다.서른이 된 지금, 선배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진짜 어른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얻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서른이 되면서 느끼는 이 흐릿한 패배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세상의 많은 부분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꾸자꾸 깨닫는 중이다.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말들을 늘여놓는 것은 아닐까.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조언에는 그 시간을 지나온 자의 쓰디쓴 경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일까. 이따금 소설을 쓰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언젠가 선배가 지었던 그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텐데, 하는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이야기는 결국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곳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모험의 세상도,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곳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명예 혹은 경제적인 부의 동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시간을 기꺼이 견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제 다시 나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건넬까? 현재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가끔은 나 자신이 민들레 홀씨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목적지에 정확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렇게나 부유하는 느낌이다. 무력하게 흘러갈지언정 끝끝내 어딘가에 내려앉겠지. 그리하여 꽃을 피우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만든 과거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캄캄한 내일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2022-04-12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

오은영과 강형욱의 공통점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보호자를 향해서는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행동이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그와 더불어 보호자가 대상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다.두 사람의 이와 같은 태도는 보호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나 반려동물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무책임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보호자는 대상을 어떤 위험이나 문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호자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주 이와 같은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을 헷갈려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예컨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에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나 반려동물을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하고, 반대로 통제하고 훈육해야 할 때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겨버리거나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비일관적인 보호자의 태도다.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나무라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만 한다면, 이와 같은 보호자의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오은영과 강형욱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보호자의 가장 큰 책임이란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통제하고 계도해야 하는 상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자신의 감정적인 혹은 공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피곤하더라도, 내가 힘들더라도, 내가 슬프고 괴롭더라도 ‘나’는 보호자로서 그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조금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혜를 나는 다른 관계들에 적용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단지 부모와 아이의 관계나 반려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연애라거나, 직장 동료라거나, 혹은 이웃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한 관계들이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방법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라고 해도,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훈육하려 한다고 느낀다면 그가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건 역시나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소 감정적인 상황이더라도, 혹은 피곤한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감이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도 힘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타자의 행동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까닭은 또 있다. 그건, 우리 또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의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은영과 강형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아주 확실한 정답을 제시해주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자주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 그건, 어떤 방법이나 방책도 사랑과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아이를 키우는 것,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완벽한 존재를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한 행동이다. 때문에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대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사실 ‘정답’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내면의 힘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다. 어떤 관계도 한 번에 정답에 이를 수는 없다. 모든 관계는 오답들을 거치며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깨달음처럼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2022-04-12

대통령의 안동 방문

우정구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대통령 당선 후 처음 맞는 추석연휴를 틈타 안동을 깜작 방문했다. 하회마을을 찾은 그는 서애 유성룡의 유물이 전시 보관된 영모각과 충효당, 유성룡의 형인 겸암 유운룡의 대종택인 양진당 등을 둘러봤다.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 이 곳 방문이다. 문 대통령보다 앞서 2007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역사와 품격에 감동을 받았다”며 방명록에 기록을 남겼다. 문 대통령도 “징비 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새기고 만들어가야 할 정신”이라고 기록을 했다. 징비(懲毖)는 내가 지닌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도 계승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식수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는 안동댐 호명비와 하회마을 영모각 등에 남아있다.유교의 고장 안동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른다. 도산서원을 비롯 유교문화와 관련한 각종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다. 아직도 양반 정신이 존중을 받는 세태가 남아 있고 역사적으로 애국지사가 가장 많이 배출된 고장이기도 하다.가장 한국적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평가 속에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이 곳을 찾아 한국의 정취를 감상했다. 뒷날 앤드루 왕자가 다시 안동을 찾기도 했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 부자도 안동을 방문했다. 안동은 유별나게 귀빈의 방문이 잦았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대구·경북 첫 방문지로 안동을 찾아 당선 인사를 했다. 특히 이 곳 유림 어르신과의 인사를 빼놓지 않아 눈길을 모았다. 안동의 전통문화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12

박근혜 사저정치, 대구를 과거로 돌린다

심충택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달성 사저정치’가 대구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대구의 시간이 다시 박근혜 탄핵 당시의 과거로 돌아가는 음울한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느닷없이 대구시장에 출마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박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동영상을 통해 유 변호사 지지 발언을 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 발을 담갔다. 유 변호사가 공개한 영상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제가 유영하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게 된 것은 그의 부탁도 있었지만 이심전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변호사가)저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저와의 만남을 차단한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고 질시를 받았음에도 단 한마디 변명도 없이 그 비난을 감내했다”며 유 변호사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사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을 했던 지난 5년간 생업을 뒤로한 채 그를 모시는데 전력을 쏟아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정은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그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격려하는 것도 인지상정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대구에서는 정치신인과 다름없는 유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한지 보름도 채 안돼 다크호스로 부상한 것은 ‘박심(朴心)’의 영향력이 아직도 대단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대구경북기자협회가 실시한 대구시장 지지율 조사에서는 유 변호사가 2위를 차지했으나 선관위가 조사방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며 공표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지난 9일 내외경제TV가 비전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홍준표 의원(30.2%),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25.4%)에 이어 유 변호사가 3위(14.6%)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유 변호사가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홍 의원이나 국회의원 3선을 지낸 김재원 전 최고위원을 상대로 선두권 판세를 유지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구지역 지방자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타 지역민들도 과거에 갇힌 대구시민들의 정치행위를 도마위에 올릴 것이다. 이것은 대구·경북이 탄생시킨 윤석열 정권의 앞날에도 유익하지 않다.대구는 최근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소멸위기 구(區)가 나올 정도로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2년 이후 계속 전국 꼴찌다. 이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대구시민들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차기 대구시장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이다.대구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차기 대구시장은 반드시 위기의 대구를 구할 수 있는 역량있는 후보가 공천돼야 한다. ‘친박’이라는 용어가 또다시 선거판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지금까지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도 정치를 멀리하고, 존경받는 국가원로로 평화스럽게 지냈으면 좋겠다.

2022-04-12

씁쓸한 친절

조현태수필가 온 산에 들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만남을 자제하다가 이 봄을 즐기자며 지인 몇이 소풍을 제안했다. 필자 또한 싫지 않아 대뜸 동의하고 시간 맞춰 집합장소에 갔다. 소풍을 제안한 사람이 장소를 소개했다. 한적한 산 속에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곳이란다. 다른 한 친구는 그의 닭장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장닭을 잡아 왔다. 일행 중 한 여인은 음식 조리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각종 한약재와 함께 닭백숙을 끓였다. 이런 사람들에 덩달아 봄바람 난 필자는 각종 술과 음료수에 약간의 과일을 사들고 갔다.작은 별장 같은 마당에 장작불로 끓이기 위한 아궁이와 솥도 준비되어 있었으니 도착하자마자 바로 불을 피웠다. 아궁이 옆에는 원탁과 의자도 있어서 각자 취향대로 마시도록 막걸리와 소주, 여인이 마실 백세주까지 내놓았다. 거기다가 잠깐 만에 산에서 두릅순과 산나물도 조금 뜯어 왔다. 그 기막힌 분위기와 기분으로는 멀뚱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련해 간 반찬과 산나물을 안주로 술잔이 오락가락했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만큼 봄소풍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드디어 잘 익은 닭고기를 뜯어가며 맛과 흥취에 빠졌다. 제법 농담도 섞어 웃어가며 서로 칭찬했다. 어느 순간 한방 닭백숙 삶는 방법도 전문가 수준이라며 극찬하던 친구가 고기를 조금 뜯어 여인 입으로 갖다 주었고, 여인은 남이 먹여주니 더 맛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 챙겨주는 시범’이라며 두어 차례 더 고기를 건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여인의 남편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의 아내에게 그따위 애정행각을 하느냐고 투덜거릴 수는 없었으리라. 남편 분이 꾹 눌러 참고 있는데 막판에 솥에 남은 닭죽이 눋겠다며 친구가 물을 더 부었다. 그 순간, 닭죽 맛 떨어지게 물 부었다고 화를 벌컥 냈다. 죽이 눌어붙을 정도여서 물 조금 부어도 괜찮은데 무슨 화까지 내느냐고 여인이 설명했다. 대뜸 남편 분의 입에서‘당신은 지금 누굴 두둔하고 나서느냐?’까지 말이 나오고 말았다. 전체 분위기가 머쓱해졌다. 단순히 술 취한 탓은 아닌 듯 했다.친구 입장에서는 음식솜씨 좋은 여인 잘 챙겨주려는 친절을 장난삼아 했고, 아까운 음식 남김없이 먹자는 행동이었다. 남편 분 입장은 고기 쌈 싸 주는 자나 날름 받아먹고 맛나다고 하는 자나 똑같다 생각했겠지. 여인 입장에서는 남편 몰래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아는 이웃끼리 뭘 그리 까탈스러울까 싶었을 터이다. 필자 입장에서 보면 솥에 물 부은 것에서 화낸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고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고기쌈 챙겨주므로 기분이 나빴다고 보았다.사회 곳곳에서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 때문에 벌어지는 난처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난처할 정도를 넘어서 치고받고 싸우거나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남은 결과는 쌍방피해밖에 없지 않은가.

2022-04-12

재현과 추상의 미술사적 문제

“우리들이 예술가들에게 정말 고마워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 너머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가 수만큼 많은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그렇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다. 미술가들은 무엇을 창작(創作)하는가? ‘창조(創造)’라는 말을 일부러 피했다.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인간은 창작할 뿐이고, 창작은 있는 것,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보는 행위이다.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미술가 파울 클레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미술은 보이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클레의 말 역시 프루스트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오랫동안 미술은 보이는 것을 모방해 왔다. 아니, ‘미술이 모방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확하다. 미술가들이 사물이나 대상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자각을 한 것은 대략 한 세기 반 남짓, 모방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룬 미술사적 성취가 ‘추상’이다. 회화든 조각이든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진 미술작품을 추상이라 한다. 다른 말로 비구상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비대상’으로 칭하는 것이 가장 명료하다.줄곧 보고 있는 대상의 외형을 작품에 옮기던 미술가들이 모방과 재현을 포기하고 난 후, 더욱이 기계적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는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위기에 빠진 미술가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과제를 새롭게 부여했을까? 모방하는 미술가의 눈은 외부를 향한다. 그렇다면 모방하지 않는 미술가의 눈은 무엇을 향할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다른 모습을, 대상의 이면을 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술사의 크나 큰 변혁이기 때문에 현대미술과 이전의 미술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대상의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난 미술가들은 현상을 그렸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시각현상을, 야수파 미술가들은 대상으로부터 분리된 색채의 고유한 미적현상을, 표현주의자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 내면의 심리현상을 화면에 담았다.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음악의 작동 원리를 미술에 적용했다. 각각의 소리는 저마다의 음색을 지니고 있다. 음과 음이 이어져 선율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음이 다른 음과 부딪히면 화음이나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속도와 리듬에 따라 음이 청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심상이 달라진다. 칸딘스키는 색을 음으로 보았다. 색의 배열에 따라 색의 화음이 달라지고, 형태의 배열에 따라 색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진다. 음악이 청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작용하는 것처럼 칸딘스키의 음악적 추상은 시각이 아니라 정신에 작용한다.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신지학에 심취해 있었던 몬드리안은 수직이나 수평 같은 단순한 형태와 무채색이나 삼원색 같은 기본색을 사용해 우주의 근원과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절대주의 미술운동을 이끌었던 러시아 미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보다 파격적인 추상을 끌어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사각형 하나가 그려진 1915년 작 ‘검은 사각형’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검은색은 모든 색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사각형은 모든 형태의 차이를 무효화 시켜버린다. 1919년 발표한 작품 ‘흰 바탕 위의 흰 정사각형’은 색을 완전히 배제시킨 가장 극단적인 추상으로 여겨진다.모방과 재현을 멈춘 미술가들은 창작의 자율성을 성취했다. 동시에 미술개념의 외연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술이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미술은 미술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 미술가들은 가장 큰 난제를 맞닥뜨렸고 이후 한 동안 현대미술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 문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이 제거된 대상을 대신할 것인가?’/미술사학자

2022-04-11

찰 영(盈)에 돌아볼 권(眷) 길 영(永)에 권세 권(權) <Ⅱ>

사무실로 들어가는 박 팀장의 뒤를 쫓아가며 허 형사가 말했다.-아들이 뭐?박 팀장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직계 유가족으로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위로 형과 어머니가 다 사고로 죽었답니다. 그런데 두 번 다 사고 현장에 그 아들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고. 형이 죽었을 때는 같이 차를 타고 있다가 혼자 살았고요.-그래? 이번에 외국 출장 나갔다는 그 아들?-네.-그러면 용의자는 아니네.-그게 아니고, 인생이 참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형이 죽는 현장에 있었지요, 잠깐 다른 일 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이번에는 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살해를 당했으니. 기구한 인생에 기구한 집안이지요.영권은 경찰서장과 통화를 끝낸 후 전화를 내려놓았다. 무조건 잡으라고. 그것도 빨리. 그게 당신이 할 일이잖아. 큰 소리를 내어서인지 목이 간지러웠다. 가래가 목 안쪽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으흐헉크. 억지로 한 기침에 가래가 튀어나와 명패에 붙었다. 노랬다. 허, 좋으면 나도 하려 했는데 말이야. 그는 만식이 이식받은 인공 폐의 성능과 만식의 경과를 본 후 인공 폐 이식을 받으려 했었다. 그의 심장은 이미 인공 심장이었다. 협심증 진단을 받고 관상동맥우회로수술과 나노 로봇 시술, 스텐트 시술 사이에서 고민하던 영권에게 만식이 인공 심장 이식을 권했다. 그는 만식의 조언을 따랐고 만족했다.영권은 티슈를 뽑아 가래를 훔쳤고 안경 닦이 천을 꺼내 명패를 닦았다. 은근한 초록의 옥에 금으로 새겨진 이름. 국. 회. 의. 원. 김. 영. 권. 만식이 선물해준 명패였다. 몇 대 국회의원인지 숫자는 쓰여 있지 않았다. 계속할 건데 번거롭게 숫자를 왜 쓰나? 할 때마다 새로 만들려면 아까워. 만식은 영권과 눈을 맞추며 영권의 손에 명패를 쥐어주었다. 삼십 년 전의 일이었다. 영권은 이후로 삼십 년간 명패를 바꾸지 않았다. 값이 만만치 않은 고급의 명패라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기도 했고, 삼십 년째 같은 명패를 사용하는 검소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식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정치인으로서 영권을 믿고 후원해준 만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당신이 만든 정치인이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뜻이기도 했다.영권의 원래 이름은 영달이었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이름이 영달이 뭐냐며 만식이 권한 이름이 영권이었다.-유권자들이 물어보면 ‘찰 영盈자에 돌아볼 권眷자라 말하시게. 항상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우라는 뜻입니다.’하고 대답하고. 스스로 다짐할 때는 ‘길 영永자에 권세 권權자, 영원한 권력이다.’하고 생각하시게. 권력은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네. 한 번 잡은 것은 절대로 내어놓지 마시게.영권이라 이름을 지어주며 만식이 말했었다.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일곱 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중 두 번의 선거를 제외하고 다섯 번의 선거에서 영권은 승리했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정치권의 물갈이 열풍을 피하기 위한 불출마였고, 나머지 한 번은 국민 기본 소득 개헌 정국에서 던진 정계은퇴라는 승부수였다. 물론 그는 정계를 떠나지 않았다.선거에서 패한 적 없는 그였다. 그의 득표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갔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이었다.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선거에서 질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노인들의 표, 노인이 될 유권자들의 지지만 굳게 쥐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영권의 소속 상임위가 삼십 년째 노인복지위원회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이제는 좀 더 큰 자리에 오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다섯 번째 국회의원 당선 후 후원인 모임에서 한 지지자가 말했다. 그렇지. 옳소. 이곳저곳에서 찬성의 말들이 쏟아졌다. 영권이 두 손을 들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영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좀 더 큰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십 년 이십 년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르고 나면 내려와야 합니다. 그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 다시 국회의원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이름이 뭡니까? 영권입니다. 영원한 권력. 지금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영원한 권력이 되지 못합니다. 나중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맨 마지막에, 이번에 하고 나면 더 이상 못하겠구나, 저세상으로 가겠구나 싶을 때, 그때 높은 자리에 오르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살아 있는 시간 중 일 분 일 초의 빠짐없이 여러분을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말씀해주신 그 말들, 마음들. 기억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변치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그가 말을 하는 중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쳤다. 후원회장인 만식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영권과 러브샷을 했었다. 그런데 만식이 죽다니. 영권은 아쉬웠다. 그리고 슬펐다. 잠깐, 아주 잠깐.만식은 갔지만 만식의 돈은 그대로 남았다. 장례식장에서 만식의 유일한 자식, 필립의 얼굴을 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목이 쉬지도 눈두덩이 부어 있지도 않았다. 만식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이 정도에 감정이 흔들릴 집안이 아니다. 필립은 조용한 장례를 원했겠지만 영권은 그럴 수 없었다. 필립 앞에서 강한 분노와 규탄의 말을 쏟아냈다. 후원자들에게 보이는 결기였다. 필립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소설가 김강

2022-04-11

수업 녹화

홍택정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공교육의 부실화로 학생과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기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과중한 사교육비가 서민 가계의 큰 부담이 되어 팍팍한 서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부유층의 고액과외와 스펙품앗이로 인해 교육기회는 불공정한 갈등양상으로 계층 간의 위화감이 만연하고 있다.자녀들의 과중한 교육비가 저출산이란 국가적 재앙이 되어 인구감소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인구절벽이란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치솟는 집값과 함께 공교육의 붕괴가 대한민국의 당면 1순위 과제로 떠올랐다. 집값은 적극적으로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공교육의 부실화는 단순한 정책적인 문제로는 완전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이에 대한 대안으로 학교수업의 녹화를 제안한다.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 80% 정도가 수업 녹화를 원하고 있다. 당일 수업한 내용 중에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수업녹화를 보면서 복습한다면 미진했던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미 학교 현장에는 코로나로 인해 비닥면 수업을 통해 수업을 녹화할 수 있는 기본 설비가 구축 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예산지원 없이도 가능하다.요는 교사들의 적극적인 수업 녹화에 대한 호응이 관건이다.그러나 이미 미국의 유수한 대학 강의는 인터넷으로 세계각지에 중계되고 있다.수업이 녹화된다면 교사들은 수업 내용에 대해 더욱 진지해질 것이고, 수업의 질은 한 단계 상승될 것이다.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 등을 통한 비효율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야말로 자신만의 맞춤식 복습을 하게 된다면 만족도가 배가 될 것이다.자연 맹목적인 불안감 때문에 가게 되는 학원 교육도 줄어들면 가계지출도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마이클 센덜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처럼 최소한 교육에서만큼은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서울 등 대도시의 학생들과 중소 농어촌 학생들의 사교육 기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이런 학생들을 위해서, 학습부진 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업녹화가 필요하다. 더구나 인헌고 사태에서 보드시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주입식 왜곡된 역사교육 방지와 차단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2022-04-11

코로나 타액진단키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타액(침)으로 할 수 있는 타액 검체 기반 자가검사키트는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항원 단백질 유무를 확인하는 항원 자가검사키트라는 점에서는 기존 제품과 동일하지만, 코에 면봉을 집어넣지 않고 침을 뱉어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 일반인이 콧구멍 앞쪽인 비강에서 채취한 검체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자가검사키트 도입으로 피검사자의 고통은 줄었지만, 유·초·중·고 개학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검사 편의성을 높인 타액 방식의 자가검사키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타액 검체를 기반으로 하는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1개 품목의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허가·심사 단계의 제품과 업체 이름은 정부 방침에 따라 비공개 방침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련 제품 개발에 성공한 바디텍메드와 에스디바이오센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디텍메드는 자가검사용 타액 코로나19 항원검사키트의 유럽 판매를 위한 인증과 수출허가를 이미 받았으며, 성능을 개선한 제품을 개발해 4월 말쯤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하려고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디바이오센서도 타액 코로나19 항원검사키트 개발을 마쳤고, 유럽 판매를 위한 CE인증을 마쳐 수출하고 있으나 국내 허가 신청 절차를 밟았는 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고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정식허가받은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총 89개로, 36개는 유전자증폭(PCR) 진단키트, 33개는 항원검사키트, 20개는 항체검사키트다. 타액 검체 기반 진단키트는 단 한 개도 허가 받은 제품이 없다. 피검사자의 고통이 없는 타액 진단키트의 허가여부가 진단키트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11

‘환경-기후-지구위기시계’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9월 8일 우리나라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아사히 글라스 재단(The Asahi Glass Foundation)이 공동으로 발표한 2021년 한국의 환경위기시각은 9시38분으로 2020년보다는 18분 앞당겨져 위험 수준으로 발표했다.환경위기시계는 0시~12시까지가 있는데 시계가 0시에 가까울수록 오염이 안 되어서 살기 좋고, 12시에 가까울수록 오염이 되어서 살기 나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매우 인식하기 좋게 만들어 준다.이들이 동시에 발표한 세계환경위기 시각을 보면 9시42분으로 우리나라 보다는 4분 정도 늦고 있으며, 환경위기 시각이 가장 빠른 지역은 아프리카로 8시33분이고 가장 늦은 지역은 10시 20분인 오세아니아인데, 전세계가 매우 심각하고 불안한 시간에 있음을 보여준다.지난해 4월 동대구역 3번 출구 앞에 2019년 독일 베를린, 2020년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했다.기후위기시계는 전세계 평균기온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로 1.5℃ 상승까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Carbon Budget)을 바탕으로 제작되며, 이것을 다 소모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한다.탄소예산이란 우리가 지금 수준으로 석유, 가스, 석탄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말한다.이날 보여준 기후위기시계의 시각은 6년 261일 6시간 정도로 적어도 2028년이 끝나기 이전에 지구온난화를 임계값 아래로 유지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금년 1월 20일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발행하는 원자 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지구종말시계의 분침(分針)이 자정(子正·밤 12시)까지 100초 남아있다고 발표했다. 지구종말시계는 일러스트 시계로 핵전쟁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시계로 알려져 있으며,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처음에 지구종말시계는 자정의 7분 전에서 출발했다가 1953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2분 전으로 자정에 가장 가까워졌다. 1991년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고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당시에는 17분 전까지 조정되어 가장 안전한 때였다.그러나 이후 시계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감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계속 자정에 가까워졌고 해결되지 않는 북한의 핵문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지속되는 기후위기로 인해 지구종말시계는 100초전으로 다시 조정된 것인데, 이는 1953년 이래로 지구종말에 가장 가까운 시간을 나타낸다.바쁜 현대생활에 환경위기, 기후위기 그리고 지구종말 시계 모두가 종말로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계들을 우리의 노력을 통해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2022-04-11

아, 그런가?!

김규종경북대 교수 세상이 작게 보이는 때가 있다! 그래, 뭐 그리 대단해서 괴로워하고 미워하며 끔찍하게 생각할 게 있냐는 생각에 너그럽고 관대해지는 때가 있다. 딱 이맘때 일이다. 지지 않았으면 하는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라일락 향기가 오가는 바람에 내년을 기약하는 이즈음 일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철모르고 둥지 만들어 뻐꾸기의 탁란(托卵)을 허하던 때다.거친 바람, 괘씸한 바람 불어, 가슴이 바싹 조여오면 하늘과 나무와 구름장 들여다본다. 저리 작은 목숨 지탱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밤 지나가는 때 있다. 사람 마음이야 언제나 항상 같지 않기에,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악착같음과 치졸함 하나로 얽히는 법. 지나면 비로소 우연함과 느닷없는 너그러움 대하(大河)와 대양(大洋)으로 이해되는 바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음은 지금도 안타깝기 그지없다.며칠 전 일이다. 멀쩡하게 달리던 뒤쪽 승용차가 한 자도 아니 되게 뒤꽁무니에 되우 붙더니 이리저리 몸 뒤척이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편도 1차로에서 어쩌자는 것인지, 뒷거울로 보이는 행각이 실로 가관이다. 마음 같아서는 없는 길 만들어 양보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하되, 좁아터진 길에서 속도 만들며 구부러진 행로 단축하면서 질주해보는 게 고작이다. 하되, 뒤차는 재촉에 재촉을 거듭한다.사정이 이럴진대 이쪽에서도 내장이 뒤틀림은 인지상정이리라. 이윽히 다가온 4차로에서 문득 참았던 분노 일시에 폭발하니 질주 본능과 과시 본능 한 데로 어울려 폭주한다. ‘그래, 따라올 수 있으면 해보라’ 하는 심사로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다. 뒷거울에서 홀연히 지워지는 염치없는 차량을 확인하며 쾌재를 부르는 것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진대, 잠시 돌이키며 ‘60 넘은 놈이 한심하군!’ 생각한다.같은 일이어도 너그러운 성정이 작동하지만, 어느 땐 악착(齷齪)같은 마음 일어남은 알 길 없는 모순이라. 깊고 너른 이성의 대양과 문득 마주하는 모순 어쩌지 못하는 일 다반사라! 그럴 즈음 확인하는 ‘아하,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로군!’ 하는 사실이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라면, 흔들리거나 말도 아니 되게 망령(妄靈) 되는 행동 하지는 않을 것이라. 그러하되, 항시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뒤뚱거리는 것이 이 마음 아닌가?!하여 다가오는 사유와 인식의 다발은 이것이다. ‘너의 마음은 어디 있는가?! 너의 육신은 그대의 것인가?!’ 젊은 날의 대답은 매양 그렇다, 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흉중(胸中)이 어디 있는지, 나의 몸뚱어리가 나의 자유의지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명징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터다.낮과 밤이 하나였던 한 주가 스러지고 바람마저 사라진 터에 사위도 고요한 시점이라. 개도 고양이도 그 주인들도 기세가 풀려버린 시절에 새삼 묻는다.그대들의 기특한 사념과 애틋한 연련(戀戀)함은 아직도 무상하며 건강한 것인지, 지나간 꽃잎 새삼 묻는다.

2022-04-10

중원에 내리다

남편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이었다.안성에 터를 잡은 아들을 데려다주고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충주휴게소에 들렀다. 졸음도 쫓을 겸 벤치를 찾아 잠시 쉬려고 고속도로에서 내렸는데 휴게소 벤치는 흡연석이 된 상태였다. 어디로 가나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톨게이트를 발견했다. 충주는 신기하게도 휴게소에서 바로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로 내려설 수 있게 쪽문을 내놓은 것이었다. 느림의 미학 충청도 사람들의 또 다른 배려인듯싶었다.남편은 한 곳만 들렀다 가자며 내비게이션에 중앙탑을 찍어보라고 했다. 사실 포항에서 경기도까지 다녀가며 길만 보는 것이 아쉬워 역사탐방이라도 하자고 조르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할 남편에게 미안해서 입을 떼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충주에 내려서길래 얼른 조수가 되어 검색에 나섰다. 중앙탑공원이 6분 거리에 있었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자마자 들이 보이는 시골풍경이 펼쳐졌다.역사교육학과를 나온 남편은 학창시절 매해 수학여행을 다니는 행운을 누렸다고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역사학자를 가이드로 모시고 대형버스를 맞춰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간다는 건 역사교육학과 학생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만리장성을 쌓는 것도 큰 재미였단다. 여행에서 돌아와 팀을 나눠 주제발표 했던 장소가 여기였다며 남편은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눈길 따라 저어기 탑 하나가 뾰족이 고개를 내밀었다.남한강을 옆에 둔 너른 공원이다. 그 한가운데 칠층탑이 홀로 섰다. 절 마당에 사리를 넣기 위해 세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은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6호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이 본명 같지만 별명이고,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본명이다. 지금은 이곳이 중앙탑면이라고 하니 탑이 유명해 동네 주소까지 바꾼 경우다.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 가운데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과 관련된 설화는 탑의 건립 시기와도 관련된다. 내용은 원성왕 때 신라 국토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남북 끝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보폭을 가진 잘 걷는 사람을 정하여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기에 이곳에 탑을 세우고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한다.탑 근처에 국사책에 나오는 더 유명한 비석이 있다. 정식 명칭은 충주 고구려비이지만 학창시절에 달달 외웠던 것은 중원 고구려비다. 장수왕의 남진 순수비(南進巡狩碑)로, 화강암으로 된 사면에 예서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국보로 넓은 들판의 중앙이라는 뜻의 ‘중원’을 썼으니 중요한 곳임이 분명하다. 찾아가니 멋진 박물관을 지어 비석이 더이상 비와 바람을 맞지 않게 방을 만들어 주었다. 한 방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이 있는데 워낙 높아서 반쯤은 뉘어놓았다. 6미터가 넘는 높이라니 상상만으로는 그 웅장함을 다 느끼지 못했다.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북한 땅에 있어서 아쉬운 마음뿐이지만 충주 고구려비도 이제야 알현하니 미안함에 한참을 비석 주위를 맴돌았다.박물관 마당에 비석을 발견한 곳을 표시해 놨다.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적에는 산밑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붙어있던 시골 동네였는데 지금은 산책로와 전망대까지 갖춘 공원으로 변했구나 한다. 30여 년을 지나며 멋진 집 한 채 마련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앞으로 학생들에게 낡은 사진이 아니라 현장감 넘치는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더 자세히 본다. 남편의 얼굴에 20대 청년의 미소가 스친다. /김순희(수필가)

2022-04-10

부인 문제부터 숨통을 틀 수는 없을까

김진국 고문 우크라이나에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잔혹상이 세계의 분노를 자아낸다. 죽음과 학대와 모욕….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비참하게 희생된다. 정치판도 비슷한 면이 있다. 폭력에 무방비한 약자고, 선전 효과도 크다.지난 대선에서도 최대 쟁점이 여성이었다. 후보보다 후보 부인의 과거가 더 큰 논란이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와 증오와 조롱과 흑색선전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정부 법인카드 유용 의혹,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거기에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의상과 액세서리 구매에 청와대 특활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는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최서원(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처럼 고졸자다.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이 본인의 잘못이 크다. 법의 심판을 피할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부모가 정쟁의 중심에 있어 더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나 부모가 사과 대신 정치 반격에 이용해 수습의 기회를 놓치고, 사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선거는 평화적인 전쟁이다. 선거 때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된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물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궐선거도 함께 치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후보도 아닌 가족을 진영 대결의 희생물로 삼을 순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첫 여야 정권 교체에 도움을 준 건 틀림없다. 후보의 잘잘못을 가려야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나쁜 관행은 바꿔야 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갑옷론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법카’ 수사를 앞두고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 재개를 서두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기 등판하는 명분을 검찰수사에서 찾은 것이다.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이 172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현재는 국민의힘 110명, 무소속 1명, 국민의당 3명을 제외한 186명이 반(反) 국민의힘이다. 개헌을 제외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표류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과 3분의 1씩 비슷하게 득표한 선거 결과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왜곡된 결과다. 대통령선거도 24만7천77표 차이로 승자가 모두 갖는다.이런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으로 푼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민심도 쪼개졌다. 선동세력은 선거 불복을 부추긴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승자의 시간을 주던 미덕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도 당선인의 지지율은 그대로다.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동화 ‘여우와 두루미’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둘이 함께 식사하려면 음식의 종류, 그릇을 의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배려해야 한다. 여우에게 호로병에 든 음식을 주는 건 먹지 말고 굶으라는 말이다. 국민의힘 정부에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정부 조직을 강요하면 국민의힘은 일을 못 한다. 발목을 잡는 꼴이다.민주당이 국민의힘 정책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면 적어도 임기 초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여유는 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꽁꽁 묶어놓고,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쪽에 칼을 겨눈다. 협치를 위해선 출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숨통부터 터야 한다. 가족 문제는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다.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은 대장동과 ‘법카’를 제외하고, 고소·고발 대부분을 취하했다. 여기에 더해 부인들 문제도 진정한 사과와 함께 빨리 털어낼 방법이 없는가.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김진국 본사 고문

202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