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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도 화이트도 블루도 아닌

등록일 2022-12-25 18:25 게재일 2022-12-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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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지인이 그동안 자신의 성격 유형이 7번인 줄 알았다가 전문가 상담 결과 2번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지난 몇 년간 자신을 잘못 알았다는 자괴감이 크게 밀려왔다고 전해왔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 유형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이 활용되는 성격 검사 방법이다.

애니어그램 강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성격 유형 번호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라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나는 몇 번, 너는 몇 번 하면서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판단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가끔 어떤 유형이 열등하거나 우월한 유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론에서 가장 성숙한 인격은 이 아홉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자아’를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자아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굳이 불교의 ‘무아’를 들먹이지 않아도, 질문 몇 개만으로도 자아라는 나의 본질은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 우리가 ‘자아’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차라리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다면적이고, 그 다면성 하나하나도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논픽션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두 권짜리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일본인인 저자가 영국 사람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살면서 아들을 낳아 키우는 이야기이다. 제목은 혼혈인 중학생 아들이 백인이 주류 사회인 영국에서 자기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인종 차별 사건을 통해 겪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양인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백인이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동양인이기도 하고 백인이기도 한 자신의 상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약간 블루’라고 했다가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린’으로 바꾸는 모습 또한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아들의 변신을 응원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아들의 유연한 사고가 작가의 지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나희덕의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처음에는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가, 조금 후에는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라고 한다. 처음에 시인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복숭아꽃들이 부담스러워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부실 만큼 다양한 복숭아나무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자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하나의 색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고, 다양한 인종, 취향, 삶의 방식 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다시 보면, 내 안에도 무수한 색이 있고, 세상 역시 그렇다. 그 다양성은 삶을 눈부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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