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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검찰개혁 당정협의안 “10번이라도 수정 가능”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만든 검찰개혁안에 대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초선의원들과의 만찬회동 때 “본질과 무관한 다른 목적이면 안 되고, 선명성 경쟁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두고 여권에서 해석이 분분하자 본인의 견해를 분명하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17일 오전에 올린 엑스(X·옛 트위터)에서 “당정협의로 만든 당정협의안은 검찰수사배제에 필요한 범위내라면 당정협의를 통해 10번이라도 수정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초선 만찬 회동에서도 정부가 만든 안은 여당과 정부가 논의해 만든 ‘당정협의안’ 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당정협의안이니 수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참석자들과 언론에서 “선명성 위한 재수정 안 된다”는 대통령 언급이 있었다는 언급과 보도가 나오자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차원에서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며 정부안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당정 협의안 중 ‘특사경에 대한 지휘조항’이나 ‘수사진행중 검사의 관여 여지’가 있는 조항도 삭제하도록 정부에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특별히 특사경에 대한 검찰 수사 관여를 없애라고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에서 지시했는데도 정부 검찰개혁안에 이 부분이 반영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 수사배제는 분명한 국정과제로 확고히 추진한다”면서 “다만 어떤 이유든 개혁에 장애를 가져오는 불필요한 과잉은 안 된다”고 말해 과잉 대응 자제도 당부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검찰총장 명칭을 공소청장으로 바꾸자거나 검사 전원 면직 후 선별 재임용 주장 등에 대한 우려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6-03-17

트럼프, 미군 주둔 거론하며 韓日에 호르무즈 파병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미군이 수만명 단위로 주둔중인 한국과 일본 등을 재차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호위 작전 동참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미국이 그동안 동맹·파트너 국가들의 안보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파병을 요구해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압박 수준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은 원유 수입의 1% 미만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지만, 일본은 95%, 중국은 90%, 한국은 35% 정도를 들여온다”며 “이들 국가가 나서서 해협 문제를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우리는 일본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도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 독일에도 4만5000에서 5만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미군 주둔 규모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과 다르다. 주일미군은 5만명, 주한미군은 2만8500명, 주독미군은 3만5000명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은 채 “우리는 끔찍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줬지만, 그들은 그리 열의가 없었다“며 “그 열의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재차 미군 주둔 국가들의 파병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국가를 거론하며 파병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와 미군 주둔 국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대한 공개적인 압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2026-03-17

트럼프, 미중 정상회담 한달 연기 요청

큰 관심을 모았던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이란 전쟁으로 인해 결국 연기됐다. 이에 따라 중국의 중재를 기대했던 중동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로 더 빠져들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전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미중정상의 개최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달 정도 연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이란)전쟁 때문에 나는 여기(미국) 있고 싶고 여기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선박 안전운항에 군함을 파견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 연기를 고려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연기 요청에 따라 새로운 날짜가 논의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만큼 중국 측에서도 연기에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실무선에서 새로 일정을 잡기 위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이달 31일부터 내달 2일까지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계획이었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2026-03-17

대구시장 출마 주호영, 장동혁·이정현 향해 “속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6선의 주호영 의원이 장동혁 대표와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자기 편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정치,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고 직격했다. ‘혁신 공천’을 내세웠던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공관위 내부에서의 입장 차 및 장 지도부와 지방선거 공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전격 사퇴를 선언하자, 장 대표가 읍소 끝에 전권을 부여하기로 해 돌아온 뒤 위험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주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생각 없는 충성, 생각 없는 충실함으로, 국민의힘은 소멸로 가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이 위원장 복귀 후 국힘 공관위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중진들을 배척할 것을 감지한 듯 작심 비판했다. 주 의원은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정치에 필요한 사람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씩 밀어내는 정치 . 자기 편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정치, 혁신이니 하는 허황한 구실을 갖다붙이지만,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면서 “눈 꿈뻑꿈뻑 하면서, 자기 사람 우겨넣고, 다른 사람들 목을 잘라낸다”고 말했다. 주 의원의 이런 반응은 국힘 공관위가 이날 김영환 충북도지사를 충북지사 경선 전에 컷오프시킨 뒤 나와, 당 중진들이 공관위와 지도부에 느끼는 불안감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대두됐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 이후 (국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이럴 때 당이 해야 할 일은 당을 넓히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살리고 더 많은 사람을 품고 정당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면서 “그런데 지금 당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는 정반대”라고 통탄했다. 주 의원은 “이 정치가 계속되면 결과는 뻔하고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은 완전히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당이 망하는 길은 외부의 공격 때문만은 아니다”면서 “당 안에서 사람을 하나씩 쳐내는 정치가 반복될 때 정당은 스스로 무너진다”고 했다. 그는 “지금 국민의힘이 바로 그 길로 가고 있다”면서 “윤 전 대통령 계엄으로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정당이 그 위에서 또 다시 당을 더 좁게 만들고 사람을 밀어내는 정치를 계속한다면 그 끝은 지방선거 패배”라고 예언했다. 주 의원은 “그 다음은 정당의 붕괴다. 정당은 몇 사람의 정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고 국민의 신뢰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공관위와 당 지도부가 하는) 이 정치가 당을 살리는 정치인가, 당을 끝내는 정치인가에 대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답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16

주호영, “윤석열 이후 국민의힘은 스스로 무너졌다”⋯국힘 공천 정치 비판

6·3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내부 정치와 공천 과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생각 없는 충성, 생각 없는 충실함으로 국민의힘은 소멸로 가고 있다”며 “정치에서 ‘나는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라는 말은 때로 책임의 말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는 말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당내 인사들의 “나는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사퇴해야 하느냐”, “당이 의뢰한 일을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다” 등의 발언에 대해 “성실하게 들리지만 정치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 부의장은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전범 재판 사례를 들며 “아이히만 역시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며 “악은 종종 악마의 얼굴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성실함의 얼굴로 나타난다”고 말한 점을 인용했다. 다만 주 부의장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전범에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반복되는 논리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국민의힘 상황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이후 국민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며 “이럴 때 정당이 해야 할 일은 당을 넓히고 다양한 목소리를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당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는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정치에 필요한 사람만 남기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정치”라며 “자기 편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이 정치가 계속되면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정당이 망하는 길은 외부 공격 때문만이 아니라 당 안에서 사람을 하나씩 쳐내는 정치가 반복될 때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은 몇 사람의 정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존재한다”며 “생각 없는 충성은 조직을 살리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국민의힘이 이 길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윤석열 이후 국민의힘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기록이 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6-03-16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일부 영업정지 6개월’·과태료 368억원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16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우리나라 암호화폐 2위 거래소인 ‘빗썸’에 영업 일부정지와 함께 대표이사 문책경고, 보고책임자 정직 6월 등의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영업정지는 신규 가입자에 한해 6개월간 타거래소에 대한 가상자산의 이전(입·출고)이 부분적으로 제한되는 조치다. 또 책임소재, 위반 규모, 구체적인 법 위반 정도 등을 고려해 빗썸 대표이사에게는 문책경고, 보고책임자에게는 정직 6개월을 부과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주의적 경고-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 권고‘ 등으로 나뉘는데 3단계인 문책경고 이상부터 중징계로 분류된다. FIU는 작년 3∼4월 자금세탁방지 현장검사에서 빗썸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금지 의무, 고객확인의무 및 거래제한의무, 자료보존의무 등 665만 건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FIU는 빗썸의 법 위반 정도와 양태, 위반 동기 및 결과, 특금법 재위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과태료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과태료 368억원을 부과했다. 빗썸측은 이에 대해 “이 조치는 기존 가입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신규 가입자도 타거래소에 대한 가상자산 이전이 아닌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빗썸은 지난 2월 고객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당첨자에게 1인당 2000원을 지급하려다가 비트코인 2000개씩을 입금해 고객 1인당 2440억원 상당의 코인을 지급하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6

[르포] “성게·전복 씨가 말랐어요”···포항 호미곶 해녀들, ‘호미곶항 정비공사’ 피해 호소

지난 15일 포항시 남구 구만1리 마을회관에 모인 구만1리와 대보2·3리 나잠어업인 30여 명은 일제히 가슴을 내리쳤다. 40년 이상 물밑에서 생계를 이어온 70~80대 해녀들은 ‘호미곶항 정비공사’ 이후 성게와 전복 등 채취물이 급감해 생계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오래된 방파제 등을 제거하거나 새로 만드는 정비공사 과정에서 백화현상 등 바다 환경이 달라졌고, 성게·전복이 모이던 핵심 작업장 일부까지 매립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항 일대에서는 313억4200만원 규모의 호미곶항 정비공사가 2021년 4월 시작됐고, 올해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공사 현장은 해녀들의 터전과 불과 150~400m 거리에 있다. 구만1리 최고령 해녀 이해자씨(85)는 “보라성게와 말똥성게, 전복을 잡아 평생 먹고살았다”라며 “평소 1주일 하던 성게 작업을 작년에는 사흘밖에 못 했다”고 털어놨다. 김춘희씨(80)는 “5kg, 10kg씩 잡던 성게를 1kg도 못 잡는 날이 많다”며 “성게 작업 수입도 예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해녀들은 공사 이후 바닷속 환경이 확연하게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서정순씨(77)는 “공사하면서 시멘트 물이 돌고 바닥에 백화현상이 나타났다”며 “예전에는 성게와 전복이 많이 나던 바닥이었는데 지금은 환경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큰 성게 하나를 잡으면 주변에 손톱만 한 새끼 성게들이 깔려 있었는데 요즘은 작은 것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며 “잡아봐도 알이 시커멓게 변해 있고 예전처럼 노랗게 차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끼가 있어야 다음 해에도 잡을 수 있는데 지금은 번식 자체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미자씨(76)는 “구만1리 쪽 바다는 물살이 센 곳이라 성게와 전복이 물 흐름을 타고 내려오다 마지막으로 붙는 자리가 있는데 그 핵심 작업장이 공사 구간과 겹치면서 일부 매립됐다”고 밝혔다. 또 “공사를 하면서 모래나 자갈, 시멘트 같은 것들이 바닥에 쌓이면서 오염이 생겼다”며 “바다 바닥에 풀이 자라야 성게나 전복이 먹이를 먹고 살 수 있는데 지금은 마치 바닥에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처럼 돼 물건들이 서식을 못 한다”고 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어항건설과 조준우 계장은 “해녀들이 주장하는 바다 자원 감소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며 “공사 때문인지, 자원 고갈 등 다른 원인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는 “호미곶항은 어항구역으로 설정된 곳이라 법적으로 양식 행위를 할 수 없고, 채취 행위도 제한되는 구역”이라며 “지자체 요청으로 어민들이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만들어 주는 어항 정비사업은 어업 피해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2026-03-16

봄은 이제 오려나?

봄이 가까워 오건만 춥다. 옛날에 배운 것, 꽃샘추위. 북쪽 오츠크해에서 차갑고 습한 고기압이 발달, 남쪽으로 내려온다. 차가운 북동풍이다. 기온이 급강하, 봄에 꽃이 피기 시샘하는 추위가 닥친다. 청량리 발 평창으로, 아침 9시 37분 발. 손발 관절의 통증에 밀려 눈을 뜬다. 아직 새벽이다. 무슨 꿈을 꾸웠나. 분명 기억으로 남겨야 할 꿈이었건만, 이즈음엔 잠에서 깨면 채집이 어렵다. 작고 낮은 침대가 무슨 관짝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살아나는 중인가. 이효석은 불과 35년 1개월 20일만을 이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일찍 세상 떠난 작가들. 나도향, 24년 4개월 27일. 이상, 26년 6개월 25일. 김유정, 29년 1개월 17일. 백신애 31년 1개월 6일. 강경애, 38년 6일. 짧다. 인생은 짧고 예술가의 인생은 더 짧은가 보다. 더 오래 산 작가들도 얼마든지 있잖더냐고?(누가 아니랬나요?) 청량리역은 롯데백화점 뒤에 큰 성냥갑처럼 숨어 있다. 3인의 출발 예정자 가운데 1인은 그저께 밤 낙오했고, 1인은 너무 늦어 기차 ‘이음’ 출발 시각 전에 올지말지란다. 커피. 어딨을까. 이런 땐 옛날 경성역 그릴(Grill) 같은 곳에 앉아 멋진 커피를 앞에 놓았을 텐데. 없다. 현대의 역사는 사각진 모형 경기장처럼 칸막이로 나뉘어 테이크아웃 커피만 즐비하다. 습관성 두통으로 디카페인을 마신 지 몇 달째지만 효과가 없다. 부실해진 위를 걱정해서 카푸치노를 마신다. 흐린 날의 양평은 우울해 보인다. 횡성은 근심스러워 보인다. 생각보다 일찍 와 걱정을 덜어준 1인은 흰 마스크를 쓰고 눈을 감고 묵상 중. 나는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메고 지고 싶지 않다. 어깨 통증, 목디스크 악화가 무섭다. 기차는 산, 강, 들, 또, 들, 산, 산, 강을 반복한다. 메마르다. 산빛, 들빛이 아직 재색이다. 푸른빛이 아직 감돌지 않는다. 비가 한번 왔건만 다시 한번 와야 하나? 예년엔 어땠더라. 한 해 한 해를 더해 수십을 더해도 아직 순환주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몸. 회의까지 시간이 남았다. 몇 번 들러본 장평에, 오늘 마침 장날이라니 들러보자 한다. 장평은 옛 교통 요지였다고 한다. 여기서 춘천도 가고 원주도 가고 제천도 갔더란다. 강릉 가는 고속철도 평창역 생기기 전만 해도 장평은 제법 큰 곳이었다 한다. 평창 장날에 장평 장도 함께 열기로 했다는데, 잘 안된단다. 불과 몇 집 안 나온 장터는 아직 겨울만 같다. 강냉이 튀긴 것에 뻥튀기 사들고 효석 아드님 이우현 선생께 갖다 드리겠다고, 장평 터미널 바로 옆 카페에서 ‘어울리지’ 않게 멋진 차를 한잔씩 하고 택시를 잡아탄다. 재단 사무실로 다들 오셔서 의사 정족수가 채워진다. 가난한 살림이라면 이우현 선생께서 화를 내시려나? 재단은 과제가 많다. 의견을 나눌수록 이효석 문학관만이라도 운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뿐이다. 돌아오는 길은 시간을 앞당겨 입석이다. 서서 이것저것 급한 일들 떠올리고 창밖으로 또 산, 강, 들, 들, 강, 산을 바라보다가 어느덧 양평 지나 창량리다. 서울이다. 역사 바깥에 혼자 서서 광장 내려다본다. 한기가 훅 끼친다. 서울은 봉평보다 더 춥다. 곧 비가 다시 한번 내리려나? 그럼 정말 봄은 오려나? 꽃이 피려나?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3-16

홍성주 달서구청장 예비후보, 청룡·와룡산 녹색 힐링축 조성 공약

홍성주<사진> 대구 달서구청장 예비후보(국민의힘)가 청룡산과 와룡산을 연결하는 생태 네트워크 구축을 핵심으로 한 녹색도시 조성 공약을 발표했다. 홍 예비후보는 16일 ‘구민행복 7대 프로젝트’ 가운데 세 번째 과제로 ‘청룡·와룡산 녹색 힐링축 완성’ 계획을 공개했다. 회색 빌딩 중심의 도심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의 자연 자산인 산림을 연결해 구민들에게 쉼이 있는 도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약의 핵심은 와룡산과 궁산 일대에 에코브리지를 설치해 단절된 녹지를 연결하는 ‘그린링(Green ring)’ 프로젝트다. 청룡산에서 대구수목원, 달성습지, 와룡산, 두류공원, 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을 복원해 도심 어디서든 10분 안에 숲을 접할 수 있는 생활권 녹지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약 234억 원 규모의 대구수목원 확장 사업을 조기에 추진하고 숲 체험원과 산림치유센터를 조성해 산림 복지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동네별 생활정원을 조성하는 ‘생활정원 230 프로젝트’도 추진해 주민 참여형 녹지 공간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홍 예비후보는 “녹색 행정은 선택이 아니라 구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필수 정책”이라며 “달서구를 대구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생태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6

윤호중 장관, 안동 다누림협동조합 방문⋯ "청년·주민이 만든 수익, 마을 복지로 환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사회연대경제 우수 현장인 다누림협동조합을 방문해 청년들의 지역 정착 사례를 살펴보고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다누림협동조합은 2015년 청년과 마을 주민이 힘을 모아 설립한 청년 마을기업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조성된 신세동 벽화마을을 기반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한 공동체 활동을 이어오며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협동조합은 주민과 청년이 함께 사업을 운영하며 발생한 수익을 마을 일자리 창출과 복지, 전통문화 보전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0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우수 마을기업에 이름을 올렸으며, 2023년에는 ‘모두애(愛) 마을기업’으로 지정되며 사회연대경제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특히 다누림협동조합은 안동의 전통문화를 일상과 연결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지역경제와 공동체 활성화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마을 공방 운영과 ‘월영장터’ 개최, 문화 콘텐츠 기획 등을 통해 주민 소득 창출과 정주 여건 개선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이 새로운 청년들의 지역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날 윤 장관은 현장을 둘러본 뒤 청년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의 생생한 의견과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윤 장관은 “청년들이 마을에 깊이 뿌리내리고 지역 주민과 함께 마을을 발전시키는 모습이야말로 사회연대경제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역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정부도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연대경제 생태계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6-03-16

대구민심은 ‘현안해결 역량’ 가진 시장 원한다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하면서, 대구시장 공천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주목된다. 이 위원장이 지난주 돌연 사퇴한 배경 중에는 대구시장 경선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13일 열린 공관위 회의에서 이 위원장은 대구시장 경선에서 현역 중진의원들을 모두 컷오프(경선 배제)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6선 주호영, 4선 윤재옥, 3선 추경호 의원을 컷오프하고, 초선인 유영하·최은석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간 경선 구도를 거론했다고 한다. 이에 다른 공관위원들이 ‘특정 후보만 유리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 위원장이 복귀하면서 ‘공천 전권 행사’를 강조한 만큼, 앞으로 국민의힘은 대구시장 경선방식을 두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현역 중진의원들을 배제하고 대구시장 경선 구도를 확정하게 되면 본선에서 역풍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대구시장 후보로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고려하고 있고, 김 전 총리도 국민의힘 경선 구도에 따라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짐작된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될 정도로 대구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정치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후보로 누굴 공천하느냐에 따라, 민주당 후보의 파급력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 지금 대구시는 홍준표 전 시장의 중도 사퇴 이후 모든 굵직한 현안이 표류하고 있다. TK 행정통합은 사실상 물 건너 간데다 신공항 건설, 상수원 이전, 기업과 공공기관 유치 등이 올 스톱된 상태다. 대구 시민들은 지금 이재명 정부와 사사건건 싸움하는 시장이 아니라, 이러한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시장을 원하고 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TK 지역은 누굴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이기려면 지역발전과 민심을 토대로 한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

2026-03-16

속도 내는 대구취수원, 수질 등 종합 검증 필요

대구시가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30년 이상 끌어온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은 올 초 기후에너지부가 안동댐 활용 방식 대신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키로 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방식에 비해 경제성이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면서 생기는 지자체 간 갈등도 해소할 수 있어 여과수 활용이 새로운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대구시도 이를 현실적 대안으로 보고 4월 초 정부의 타당성 조사 용역이 시작되면 5월부터 파일럿테스트를 설치, 운영해 정부 단독이 아닌 지역전문가가 참여하는 대구시와 중앙정부 공동의 검증체계를 구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또 검증결과는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라 한다. 강변 여과수는 강바닥과 제방모래·자갈층을 통과해 자연적으로 여과된 물을 말한다. 또 복류수는 강바닥 아래 자갈층과 모래층을 따라 흐르는 물이다. 지하에 흐르는 이들 물은 강물을 직접 끌어 쓰는 표류수보다 강가 지하의 모래자갈층을 거쳐 걸러진 물이어서 부유물질이나 미생물 등이 상당 부분 제거되는 효과가 있다. 상류에서 예기치 못한 수질 오염이 발생해도 토양층이 완충작용을 하여 오염물질이 취수구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주거나 농도를 낮춰주는 효과도 있다. 강변여과수 활용은 해외서도 검증된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완벽한 해결책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구시민에게 공급되는 하루 60만t의 식수를 여과수만으로 개발할 수 있을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낙동강 상류지역의 원수 오염도 없어야 한다. 상류지역 산업단지의 폐수 관리를 강화하고 폐수 무방류시스템 도입 등 경북지역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 경남 창녕 일부 지역에서 강변여과수 개발로 지하수 고갈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던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구 취수원 이전사업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밀한 검사를 통해 수질과 수량이 안정적,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학적 근거를 시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2026-03-16

불행해질 권리

헉슬리는 자신의 저서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성이 거세된 몬드 총통에게 야만인 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神)을 원합니다, 시(詩)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善)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원합니다” 1932년에 헉슬리가 집필한 대표적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기술, 과학, 쾌락, 통제가 결합 된 미래 사회를 통한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본질을 질문한 책이다. 전쟁도, 빈곤도, 갈등도 없는 공동체는 모두가 똑같이 안정적이다. 모두가 모두를 위해 존재 하고,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행복 약 ’소마‘를 먹으면 된다. 우울도 권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필요하지 않다. 공포가 아닌 쾌락을 통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계. 결국은 통제까지도 사랑하게 만든다. 자유, 비판, 고통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가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하여 철학적 경고를 던진 책이다. 신세계의 미래는 어쩌면 현대판 기술주의의 세계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종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기술주의‘는, 사회 운영을 기존의 정치제도가 아닌 기술에 맡겨야 한다는 사상이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 엔지니어, 전문가가 사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를 정치의 영역이 아닌 기술적, 합리적 관리 대상으로 보는 정치철학이다. 사회문제는 기술의 문제이며, 전문가가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기술주의는 20세기 초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후 1930년대에는 경제를 화폐 대신 에너지 단위로 계산하자는 소위 기술주의운동까지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쇠퇴하였다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다시 등장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알고리즘 정책, 인공지능 의사결정, 중앙은행의 기술관료 통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주의 가버넌스의 등장이 그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념, 선동, 분열, 감정에 의하여 파괴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였다. 기술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러한 비합리적 요소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과학적 합리성의 바탕에서 소모적 정치 논쟁을 뛰어넘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최근 ’미국을 누가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 중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팔란티어의 피터 틸이 기술주의의 중심에 선 자들이다. 이들은 기술을 신봉한다. 특히 틸은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의심한다. 틸은 기술이 정치보다 중요하며, 현대 민주주의는 혁신을 느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권력으로, 데이터가 통치로,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기술주의로 전 세계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 권력의 집중과 알고리즘 통치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충돌하게 된다. 헉슬리의 신세계와 틸의 기술주의가 묘하게 겹치는 시대가 왔다. 기술주의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내면의 병든 곳을 치료하는 약은 소마가 아니라 고통이요, 슬픔은 기쁨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2026-03-16

라일락, 그리움 되다

3월 초순, 이웃 아파트의 정문 앞, 텅 빈 느낌이다. 아릿한 슬픔이 강물의 윤슬처럼 마음에 도진다. 지난해 이맘때 한 아침이었다. 볼일로 이곳을 지나는데,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쳐다보는 순간, “아뿔싸! 라일락이 사라졌네! 어, 겹벚꽃나무 두 그루도 없어지고···.” 절로 나온 탄식이다. 해마다 나의 봄은, 라일락 보랏빛 꽃봉오리로 찾아와 꽃피며 내뿜는 향기에 홀려 겹벚꽃 고운 자태로 마무리되었었다. 그런 봄이, 잔인한 톱날에 댕강 잘려버렸다. 슬픔의 파도가 가슴속을 헤집었다. 이웃 아파트도 우리처럼 두 동에 같은 이름을 붙여 가, 나동으로 부른다. 우리는 두 동 모두 현관이 마당으로 나 있는데, 이웃은 나동만 현관이 마당 쪽이고 가동은 반대편 길 쪽에 있다. 그러니, 이웃 가동은 마당이 있고도 없다. 베란다가 마당 쪽이니 마당이 있다고 할 수가 있고, 현관이 반대편 길 쪽이니 마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웃은 지난해 이맘때 마당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했다. 그때, 가동은 동쪽 벽 옆의 봄 전령사 라일락 나무 한 그루와 남쪽 화단의 두 그루 아름다운 겹벚꽃나무를 잘라냈다. 더해, 현관 좌우의 향나무들도 모조리 베었다. 또, 겹벚꽃 곱던 화단의 화초들도 모두 없애고 폐콘크리트 자갈로 메웠다. 황량했다. 법에 따라 만든 조경을 무참히 없앤 집단심리의 작동 현장이었다. 도대체 왜, 이웃 가동주민은 수십 년을 식구처럼 함께 살아온 라일락 나무와 그 친구들을 모조리 베내고 뽑아버렸을까. 의문과 원망이 몰아쳤다. 달려가 따져보고 싶었으나 닿지 못할 일이라 그만두었다. 나동은 조경이 온전한 걸 보면, 가동은 반장이 바뀌었거나, 말발 센 사람들의 주장이 이겼거나, 둬 봐야 나동만 좋기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작년 이맘때의 나라 꼴이 이웃 가동주민 심성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국민이 12.3 비상계엄 대통령탄핵 찬, 반으로 갈라져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타협보다는 막무가내 주장과 선동이 난무하여 국민 마음이 메말라가고 어두운 안개가 드리우게 했었다. 안개가 주민 분별심을 덮어 애꿎은 조경 식물에 화가 미쳤을 수도 있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으로 몰린 것을 국민이 다 아는데, 헌재는 탄핵을 인용했고 형사재판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웃 아파트와 닮았지 싶다. 70여 년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이 정당성을 의심하는 세력에 의해, ‘사법개혁 3법’에서 보듯 전체주의적 법제화의 길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실이 웬일인지 내겐,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라일락과 겹벚꽃나무와 조경 식물들을 매정하게 베어 버린 이웃의 심사와 맞닿아 보인다. 해방 이후, 걸출한 지도자들과 부지런한 국민이 함께 심고, 가꾸어, 꽃피운 위대한 선진 대한민국. 그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라일락 나무처럼 잘려 나가는 것만 같은 걱정이 파도치는 요즈음이다. 보랏빛 라일락꽃과 향기가 그립다. /강길수 수필가

2026-03-16

이 대통령 “누군가의 선명성 드러내는 검찰개혁 안 돼”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검찰개혁과 관련, 검찰총장 호칭·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본질과 괴리된, 과도한 선명성 경쟁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민주당내 검찰 개혁 강경파들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여서 당의 입장 정리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검찰개혁의 핵심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사의 수사권을 배제하는 것“이라며, “국민주권정부는 검찰개혁을 통해 검찰이 직접 수사하거나, 영장청구 등 헌법이 정한 권한 외에 수사기관의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다는 명확한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그런데 공소청 책임자 명칭을 헌법이 규정한 ‘검찰총장‘으로 할 것인지 공소청장으로 할 것인지, 검사 전원을 면직한 후 선별 재임용할 것인지는 수사·기소 분리(검사의 수사 배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다소 감정적으로 검찰 힘빼기를 거론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총장 명칭 문제나 검사 전원 면직 문제의 경우 검찰개혁의 핵심인 수사·기소 분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개혁은 실질적 성과가 중요하다“면서 “헌법은 검찰사무 주체를 검사로, 검찰사무 총책임자를 검찰총장으로 명시하고 있다. 검찰사무 담당 기관명은 검찰청으로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옳다. 그런데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꿨더니 인제 와서 검찰총장을 공소청장으로, 검사를 공소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공소청·중수청 법안에 대해서는 “정부안이 입법 예고된 뒤 당과 정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수정안 만들어 여당의 당론으로 채택했다“며 “정부안이 아닌 당정협의안“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 당정협의안 역시 만고불변의 확정안이 아니다. 필요하면 수정하면 된다“며 “다만 그 수정이 누군가의 선명성을 드러내거나 검찰개혁의 본질과 무관한 다른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여당 초선 의원과의 만찬 과정에서 나온 발언을 소개한 일부 기사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안 통과를 의원들에게 당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안은 사실 당정 합의 수정안이며, 법안은 심의 중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나쁜 검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이 발언한 것으로 보도한 기사들에 대해서도 “정치화된 일부 특수부 검사들도 있으나, 충직하게 본분을 다하는 검사들도 많으니 ‘전원 해임 및 재임용‘ 등으로 모욕감을 줄 필요가 없다는 언급이었다“고 발언 취지를 설명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6-03-16

비린 맛 없이 싱싱함 가득한 가자미 미역국

필라테스하러 가서 강사님이 오늘은 스쿼트를 시켰다. 30분 만에 어지러워 주저앉고 말았다. 체력이 훅 떨어진 상태라 한 시간을 못 채우고 돌아왔다. 해외여행을 열흘 다녀온 뒤라 더 힘들었다. 비위가 약하고 입이 짧아 강행군인 패키지여행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못 하고 돌아다녔다. 낮엔 과자로 저녁에 숙소에서 컵라면으로 버텼다. 점심 약속으로 샐러드를 먹기로 했는데, 급히 장소를 바꾸자고 톡을 남겼다. 몸보신으로 소화가 잘되는 미역국을 먹자고. 마침, 우리 집 가까이 맛집이 있었다. 약속한 12시 30분이 되자 고을국수방은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지막 남은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사장님, 미역국 두 개요! 국수방이라는 이름에 맞게 국수 종류는 참가자미 회국수, 백합조개칼국수, 계절 별미로 콩국수와 전복죽도 있다. 다 맛있지만, 이 집은 가자미찜과 가자미 미역국이 단연 압권이다. 새벽 시장에서 싱싱한 가자미를 사 와서 손질한 가자미를 사용하니 비린 맛 하나 없이 시원함만 가득하다. 큰 대접에 푸른 바다를 가득 담아 손님상에 내온다. 호록호록 떠먹다 보니 몸속 가득 뜨끈한 기운이 퍼졌다. 필라테스하다 핑 돌던 어지럼증이 싹 달아났다. 안동이 고향인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 넣는 생선은 한 가지뿐이다. 북어. 명태는 생선 중에 그나마 덜 비리지만 그 비린 맛조차 말리며 다 날려버리고 햇살과 협업한 감칠맛만 푸석한 몸속에 간직한 북어와 불린 미역을 달달 볶으면 뽀얀 국이 된다. 이런 초딩 입맛은 결혼 후 어머님이 끓여주신 가자미 미역국을 맛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신혼 초, 그때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했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 1박 2일의 짐을 미리 싸놓고 기다렸다가 시댁으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 어머님은 아들을 깨워 양포항으로 나갔다. 멸치가 싱싱한 날은 그걸로 젓갈을 담고, 홀띠기를 만나면 밥식해를 만드셨다. 그러다 가자미가 눈에 들어온 날에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어느 날엔 삶은 가자미를 소쿠리로 살살 흔들어가며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잔가시 없이 잘 걸렀는데 내가 하면 꼭 가시가 목에 걸렸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정육점에서 끊어 온 쇠고기는 이미 손질이 다 된 상태라 참기름에 볶기만 하면 되지만, 가자미는 살아서 펄떡거리니 까다로운 재료다. 일단 어떤 놈이 싱싱한 것인지조차 모르니 20년 넘게 옆에서 보기만 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가자미 미역국 만들기는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 몸이 허할 때나 어머님의 손맛이 그리울 때면 고을국수방을 찾는다. 이곳은 밑반찬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제철 재료로 만든 것들이 나온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위주의 찬이라 더 좋다. 들에서 나는 시금치, 마늘쫑, 콩나물무침과 바다에서 건진 미역, 다시마무침, 멸치볶음이 함께다. 특히 멸치볶음은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먹는다. 김치와 물김치, 그리고 봄동물김치가 이 집 시그니처 반찬이다. 봄동 한 장을 밥에 올려서 강된장이나 젓갈을 올려 먹으면 공기밥은 무조건 추가다. 물론 미역국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니 반찬은 덤이다. 실내에 6개의 테이블뿐이라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은 필수다. 테이블이 비자마자 다른 손님이 와서 앉는다. 미역국은 통에 담아 팔기도 하는데 전날 미리 전화하거나, 일찍 가야지 가능하다. 곧 날씨가 따뜻해지니 가자미회국수와 가자미찜을 먹으러 가자고 친구랑 약속했다. 주차장은 따로 없어서 가게 앞 골목길에 눈치껏 해야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16

봉화 천년고찰의 천년을 다져온 숲길에서 만나는 봄 내음

겨울이 꼬리를 사리지 못하고 미루적거려도 어느새 바람결의 매운맛은 풀이 죽어 한결 부드러워졌고, 양지쪽의 따사로움에 정겨운 봉화 천년고찰의 숲길의 솔 내음은 완연한 봄이다. 겨울에 묻혀 시간이 멈춘 고즈넉함 속에서 천년 세월의 역사와 함께한 산사의 숲길을 향긋한 봄 내음과 또랑또랑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걸어보자. 며칠 전 태백산은 눈이 내려 설산처럼, 봉우리에는 마지막 겨울 풍경을 선사하듯 시선을 끌고 있다. 한때 국내 3대 사찰이었던 각화사, 백두대간 능선으로 석양이 아름다운 문수산 축서사, 수려한 청량산이 품은 풍광이 아름다운 청량사, 계곡 물소리 은은한 불교계의 성지 비룡산의 홍제사 등 천년의 고요가 흐르는 고찰에는 고찰과 함께한 천년의 숲, 천년을 다져온 길이 있다. 축서사는 천년 역사의 심산 고찰로, 영주 부석사의 ‘모절’ 또는 ‘큰집’으로 불린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의상대사가 봉화 물야면 북지리의 지림사에서 빛을 보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백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축서사는 봉화 8경 중 제7경으로 꼽힐 만큼 황홀한 석양을 자랑한다.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공기,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집의 정취는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 같다. 탁 트인 전망과 고요한 숲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탑과 절집이 경관의 깊이를 더한다. 각화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로 800여 명의 스님이 수도한 한국 불교의 대표 수행 도량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686년 창건했으며, 태백산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울창한 산림 속에 위치한 각화사는 정교하게 쌓인 석축과 30계단 위에 세워진 월영루가 특징이다. 월영루를 지나면 삼층석탑이 있는 요사채 마당이 나타나며, 산새 소리와 함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향긋한 봄 내음과 유구한 역사가 어우러진 숲길은 방문객에게 평온함을 선사한다. 청량사 가는 길은 입석에서 청량사 선학정으로 이어지는 2.3km의 최단 코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가벼운 산책길이다. 숲속의 외진 길은 낭만을 더하고, 굽이도는 고갯마루에서는 먼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굴참나무와 노송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소나무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 아픔을 상기시킨다. 청량사 가는 길의 우측 오르막길에는 금탑봉 아래 응진전과 그 위쪽에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간 서예를 연마한 김생굴·폭포가 있다. 순탄한 산길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으며,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청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 이름은 연대사였으며 27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제사와 도솔암은 한국 불교계를 빛낸 선승들이 수도한 심산유곡의 고요함 속에 자리한다. 홍제사는 신라 진평왕 시기 자장율사 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공신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내린 ‘홍제존자’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박한 법당과 금강송 송림이 에워싼 고즈넉한 풍경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부속 암자 도솔암은 만공스님, 성철스님 등 대종사들이 수행한 장소로 유명하다. 낡은 모습이지만 깊은 역사를 간직한 채 고요한 정적을 품고 있다. 천년 고찰의 고요함부터 탁 트인 산봉우리의 웅장함, 그리고 단순해서 여유까지 생기는 선승들의 수도처 홍제사의 경내를 거닐면 절집을 감싸는 솔 내음과 바람의 소리가 어우러져 명상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사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며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수놓는다. 느긋한 여유로움이 가득한 호젓한 봉화 천년고찰 산사길에서 봄을 시작하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2026-03-16

영화와 만난 문화유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관람객 천이백만 명을 훌쩍 넘기고 거침없이 흥행 중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람객들은 단종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유산을 직접 찾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영월이 그렇다. 청령포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줄이 도로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오픈런까지 해야 하는 지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산이 평소와 달리 이렇게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나 싶어 놀랍고 반갑다. 시민기자도 지난 월요일, 천만을 넘겼다는 소식에 조금 늦은 관람을 했다. 관람평에 ‘관람객으로 들어갔다가 백성이 되어서 나온다’, ‘역사의 빈틈을 온기로 채웠다’ 의 글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영화의 뜨거운 분위기 탓인지 상영관 앞에서는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영월로 유배 온 단종과 마지막 그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의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처음엔 영화가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역사적인 사실에다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그 가운데 단종 역의 20대 배우와 엄홍도 역할의 배우가 연기한 마지막 장면이 울컥했다. 방 밖에서의 긴장감과 그 슬픔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영월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영월과 청령포, 장릉, 선돌. 이곳은 오롯이 단종의 슬픔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들이다. 그 장소가 주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영화가 만들어 준 힘이기도 했다. 영화의 인기에 영월군은 바빠졌다. 현장관리와 편의 시설을 정비하고 관람 동선을 안내해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있다.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다른 지자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성대군의 신단과 은행나무가 있는 영주, 조선 충신 엄홍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울산의 원강서원과 원강서원비가 그것이다. 그리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문종, 세조와 한명회, 계유정난, 사육신과 생육신의 관련된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국사책을 찢고 나온 살아있는 역사 공부의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높은 관심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일 뿐일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갈수록 증가해 부동의 1위인 루브르 박물관의 관람객 수를 넘보고 있다. 호랑이와 갓 등의 굿즈는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영화로 인해서 우리의 문화가 K-문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된 역사와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근대문화역사관이 있는 포항 구룡포에서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동백이와 용식이를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다. 또 ‘갯마을 차차차’가 청하를 배경으로 방영되고 나서 평일에도 시골 마을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야간자습을 마친 아이를 데려오면서 오늘 본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단종과 엄홍도, 지금 우리가 단종을 노산군이 아닌 단종으로 부를 수 있는 건 숙종의 힘이었다고 같이 이야기했다. 시험과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하던 역사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모든 세대가 알고 싶어하는 살아있는 역사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 한 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마중물이 되고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16

컷오프 칼 빼든 ‘이정현호’ 시작부터 암초···후폭풍 ‘일파만파’

국민의힘 6·3 지방선거 공천 작업을 이끄는 ‘이정현호’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 초기부터 거센 암초를 만났다. 세대교체를 앞세운 ‘혁신 공천’의 하나로 현역 광역단체장 컷오프(공천 배제) 칼을 빼 들었으나 당사자·중진들의 강력한 반발, 당 지도부와의 엇박자까지 겹치며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현역인 김영환 충북지사를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단수 공천이 확정된 다른 충청권 현역 단체장들과 달리 김 지사를 컷오프하고 추가 공천 신청을 받겠다는 것이다. 장동혁 대표로부터 ‘전권’을 약속받고 당무에 복귀한 이정현 위원장의 첫 쇄신 신호탄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반발은 거셌다. 공관위 출범 후 현역 1호 컷오프 대상이 된 김 지사는 즉각 자신의 SNS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파괴한 공관위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공천 갈등은 영남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특히 부산시장 공천 방식을 둘러싸고 공관위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며 회의가 파행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산시장에는 3선에 도전하는 현역 박형준 시장과 초선 주진우 의원이 맞붙은 상황이다. 이 위원장 측은 경선 대신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주 의원에게 단수 공천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인 두 후보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주 의원은 “경선을 원한다”고 요구했고, 박 시장 역시 “아무 기준 없는 현역 컷오프와 단수 공천은 혁신 공천이 아니라 당을 망하게 하는 망나니 칼춤”이라며 이 위원장을 직격했다. 공관위의 무차별적인 컷오프 기류에 당내 중진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역에서 뛴 성과와 상관없이 줄 세우기·보여주기식 교체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돌아갈 것”이라며 “부산과 같은 주요 격전지는 유력 후보들의 경선을 통해 시너지 만들어내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당 지도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진화에 나섰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관위원장 한 명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공관위원장이 밝힌 ‘전권’의 의미를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세리기자 ksr1@kbmaeil.com

2026-03-16

‘대구시장 중진 의원 컷오프설’ 주호영-윤재옥-추경호 향후 대응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대구시장 공천 과정에서 현역 중진 의원들을 겨냥한 ‘컷오프(공천 배제)’ 가능성을 시사하자 지역 정치권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컷오프 논란의 당사자인 6선의 주호영(대구 수성갑) 의원은 당 공관위가 실제 컷오프가 단행되면 즉각 재심을 신청할 방침이다. 주 의원은 16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내분이 일어나고 경쟁력 없는 후보를 내세우려 한다면 민주당에 대구시장을 상납하는 꼴”이라고 밝혔다. 주 의원실 관계자는 “컷오프가 현실화하면 이의신청은 물론 다른 의원들과 공동 대응도 검토할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거취를 숙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 의원은 컷오프 때 탈당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대구시장에 출마한 현역 중진인 윤재옥 의원과 추경호 의원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한 채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의원 측은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소화하고 있다”고 했고, 추 의원 측도 공천심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이날 대구 공천 방향에 대해 “심의를 거쳐 결과로 보여드리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박성훈 당 수석대변인은 “위원장 한 분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공관위의 독주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대구 정치권에서는 “일방적인 컷오프가 현실화할 경우 중진들의 집단 반발과 무소속 연대 등 후폭풍으로 당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16

“국가대표보다 국민이 먼저”… 대회 가던 군인 선수들, 교통사고 현장서 시민 구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향해 달리던 군인 선수들이 위기의 순간 시민 곁에 먼저 섰다. 경기보다 국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 이들의 선택은 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국군체육부대(부대장 진규상) 제1경기대 유도부는 지난 14일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열리는 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 출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대천IC 인근 도로에서 전복된 소형 다목적 차량(다마스)을 발견했다. 차량은 운전 부주의로 도로 위에 뒤집힌 상태였고, 자칫하면 뒤따르던 차량들과의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유도부 선수들과 지도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버스를 세운 뒤 전원이 즉시 하차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훈련지도부사관 하선우 중사는 곧바로 도로 위 차량을 통제하며 교통정리에 나섰고, 김재훈 유도지도관은 전복된 차량에 다가가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응급조치를 실시하고 구조대를 호출했다. 병장 조한균·이상준, 상병 김산·김명진·문규선·유민우·이하림·신은규 비롯한 선수들은 힘을 모아 전복된 차량을 도로 밖으로 이동시키고, 도로 위에 흩어진 유리 파편과 잔해를 수거하며 현장을 정리했다. 이들은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교통 흐름을 관리하고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덕분에 현장은 빠르게 안정됐고,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도 사전에 차단됐다. 이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군인 선수들의 침착하고 헌신적인 행동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도 이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이었다. 김재훈 유도지도관은 “선수이기 전에 우리는 군인”이라며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대표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지키는 군인의 사명을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를 향해 달리던 군인 선수들이 잠시 멈춰 세운 것은 버스가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군인의 본분’이었다. 그날 도로 위에서 보여준 국군체육부대 유도부의 행동은 군복을 입은 선수들이 왜 국민에게 든든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따뜻한 장면으로 남았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6-03-16

대구시장선거 판도 뒤흔드나…힘 실리는 김부겸 차출설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차출설’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추가 공모 가능성’을 언급하며 출마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김 전 총리도 화답하는 형식으로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중진 의원 컷오프’ 등에 대한 공천 반발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김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출마할 경우 선거 판도가 급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16일 험지로 꼽히는 대구지역에 추가 공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위원장 협의회 연석회의에서 “선거는 전략이기 때문에 1%의 예외가 있다면 정무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험지로 분류되는 대구를 거론하며 “‘저분을 영입하면 (대구에) 후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공천 신청 등이 다 끝났다’ 그런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후보 (신청을) 접수하고 공천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당의 승리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그런 판단을 (시도당에서) 하기 애매할 경우 지도부에 넘겨주면 판단해서 결정하겠다. 특별한 경우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조금 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정 대표가 대구를 염두에 두며 추가 공모를 언급한 이유는 김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출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가 이번 선거에서 김 전 총리를 부르지 않으면 김 전 총리도 못 나가는 상황”이라며 “당 대표가 ‘앞으로 TK정치에 신경을 쓰겠다’ 는 등 김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출마할 수 있는 명분을 당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 이재명 정부가 TK에 선물보따리를 준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 전 총리 주변에서도 출마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최근 김 전 총리와 가까운 분과 통화를 했는데 ‘김 전 총리가 최종 결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김어준씨 등 여권 내부에서 시끄러운 문제가 좀 가라앉으면 출마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면서 “당 지도부와 김 총리 사이에 소통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친명계 핵심인사들이 김 전 총리의 양평 자택을 찾아 대구시장 출마를 요청한 것을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당 지도부가 직접 출마를 요청하면 김 전 총리가 ‘삼고초려’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김 전 총리의 가족들도 출마 반대에서 찬성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허소 대구시당위원장은 “3월에 어쨌든 결정하실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16일 김영환 충북지사를 공천 배제했고, 다음 타깃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현역 중진 의원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도 주호영(대구 수성갑)·윤재옥(대구 달서을)·추경호(대구 달성) 등 현역 중진 출마자를 모두 컷오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관위 한 관계자는 “내부에선 무게감 있는 중진이 배제될 경우 김 전 총리에게 대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대구시장에 출마한 중진의원들이 컷오프에 반발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는 이들이 바로 기득권이다. 나는 이미 시작했고, 결과로 말하겠다”며 혁신공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6-03-16

AI 시대에 ‘석기시대 행정’

포항시 행정의 공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시청에 전화를 걸어본 시민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이 있다. 수차례 신호음만 울리다 끊기거나, 어렵게 연결되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담당자 출장 중”이라는 무성의한 안내뿐이다. 시청의 문턱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포항시청 출입은 담당 공무원과 전화로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민원을 해결하러 온 시민이 입구에서 발이 묶인 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기묘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직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입구에서부터 잠재적 문제 인물로 취급받는 듯한 불쾌감만 안겨준다.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폐쇄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전화 연결의 벽이 시청 입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항시 홈페이지 조직도 역시 시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조직도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행정전화 번호만 공개돼 있을 뿐, 실제로 시민들이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행정전화가 불통이 되면 민원인은 속수무책으로 답답함만 감내해야 한다. 담당자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정작 연결되기란 쉽지 않다. 공무원의 명함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명함에는 사무실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 정작 긴급한 상황에서 연락할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업무는 그대로 멈추고, 민원인은 연결될 기약도 없는 사무실 번호만 붙잡고 전화를 반복해야 한다. ‘공직자 보호’라는 방패 뒤에 숨어 ‘소통’이라는 기본 책무를 내려놓은 모습이다. 여기에 점심시간 일제 휴무제까지 더해지면서 시민 불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창구 민원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일제히 업무를 중단하면서, 점심시간을 쪼개 시청을 찾던 직장인들은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시민의 생활에 맞춰 제공돼야 할 행정 서비스가 오히려 시민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문제의 본질은 ‘소통의 단절’이다.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로 행정 혁신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민원 서비스 역시 온라인 플랫폼과 다양한 소통 창구를 통해 시민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 행정은 정작 시민과의 소통에서는 눈을 가린 채 벽을 쌓는 ‘블라인드 행정’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닫힌 출입문과 연결되지 않는 전화, 그리고 “출장 중”이라는 한마디 뒤에 숨은 행정이 계속되는 한 시민의 불만과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책임은 고스란히 행정을 향한 더 큰 심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16

산업단지 개발의 이면, 포항 영일만4산단의 해묵은 숙제와 갈등

포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영일만4 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사업 부지에 삶의 터전을 둔 주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드러난 주민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보상 민원을 넘어 법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환경권 침해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갈등의 핵심은 보상 체계의 현실성이다. 주민들은 십수 년간 개발 제한에 묶여 재산권 행사가 제약된 상황에서, 현행 공시지가 기준의 보상이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성토했다. 특히 무허가 건물을 소유한 원주민들이나 지진 피해 이후 건축비 상승을 겪은 신축 건물주들은 “현재의 감정가로는 이주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토지 소유자들은 실질적인 이용 현황과 사업 시행으로 인한 손실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인 보상 기준 마련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정주 여건에 대한 우려도 깊다. 주민들은 공장 용지 조성보다 이주 시설의 환경 개선과 초등학교 유치 등 교육 인프라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가 없으면 마을의 발전은 없다”는 한 주민의 절규는 산단 조성이 단순히 기업 유치에만 매몰돼 원주민의 삶의 질을 뒷순위로 밀어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주단지의 위치 선정과 수익 창출을 위한 상업 용지 배분 등에서도 주민들의 요구와 행정의 계획 사이에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환경 오염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화두다. 영일만항 인근 주민들은 이미 포스코와 에코프로 등 기존 공단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미세먼지로 15년 넘게 고통받아왔다. 특히 이번 사업의 건강영향평가 과정에서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오염 물질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70년을 살았을 때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는 행정기관의 설명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대해 행정 전문가들은 사후 대책보다는 선제적인 행정 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풍수해 보험 가입을 유도하거나 사후 환경영향평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사 중 지형 변화로 인한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물 재이용 시설’과 ‘빗물 이용 시설’의 용량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실질적인 저감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기존 소상공인들의 생업 환경을 저해하지 않도록 주민 소통 창구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포항시는 내년도 보상 예산 확보와 함께 협의체 구성을 통한 의견 수렴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20년 전부터 속아온 부분이 많다”며 백지화에 대한 대책까지 묻는 등 깊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지자체는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조례 개정 등 제도적 뒷받침을 고민해야 하며, 단순한 개발 논리를 넘어 주민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행정 업무 수행이 절실한 시점이다. 결국 영일만4산단 사업의 성공 여부는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라 주민과의 ‘진정성 있는 상생’에 달려 있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미래 산업의 기지가 들어설 자리를 온전히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포항시가 이번 설명회에서 쏟아진 주민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얼마나 정책에 녹여낼 수 있을지 지역 사회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