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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적자늪에 빠진 영일신항만, 活路를 찾아라

지난 2009년 8월, 20여 년간의 공사 끝에 개항한 (주)포항영일신항만(PICT)이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어 걱정이다. 신항만 측은 올들어 대형선사와 물류전문기업을 대상으로 매각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채가 걸림돌이 돼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PICT의 최대주주는 대림건설(29%)이며, 포스코건설과 코오롱건설 등 국내 6개 건설사, 그리고 경북도와 포항시(각 10%씩 지분보유)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신항만 측 내부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매출액은 51억6천여만원이다. 국내 항만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부산 항만사들과 비교하면 매출액 규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신항만(주)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3천357억원, 2천904억원이다.PICT의 지난해 영업 순이익률도 ·146%로 뚝 떨어지면서, 2022년말 기준 부채(1천655억3천여만원)가 자산(1천95억6천여만원)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물동량 확보를 위해 연간 35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신항만측은 매년 45~85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조달하기에도 급급한 상태다. 재무능력이 한계상황까지 온 것이다.PICT가 ‘돈 먹는 하마 신세’로 전락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대구·경북지역 컨테이너 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일신항만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5만8천443TEU를 기록했다. 감가상각비를 충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20만TEU)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항만 물동량의 30%를 차지했던 쌍용 완성차의 분해 수출이 루블화 폭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탓도 크다.PICT가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지자체와 협력해 선박 물동량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2009년 창업정신으로 돌아가 컨테이너 물동량이 비교적 많은 구미지역 기업을 비롯해 대형화주들을 대상으로 맨투맨식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해외시장의 경우 지금처럼 러시아나 중국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미주지역 원양항로 개척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2023-12-17

은둔형 외톨이 청년

우정구 논설위원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8050문제가 핫이슈가 됐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의 8050은 이제 일본선 9060문제로 넘어가는 시대 상황을 맞고 있다.일본말의 히키코모루는 ‘틀어 박히다’는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루를 명사형으로 바꾼 신조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자녀가 취직을 못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고립형 청년을 두고 일본서는 이렇게 부른다.며칠전 우리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고립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이 일부 시행되고 있으나 정부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도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실제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립·은둔 위기의 청년이 약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39세 연령층 인구의 5% 수준이다. 이들 청년은 취업할 생각도 않고 집에 박혀 동영상 시청 등 온라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5%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자다. 고립 은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등 직업관련 어려움이 24.1%, 대인관계 어려움을 꼽는 사람이 23.5%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신체건강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고, 7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고립·은둔형 자녀가 늘면서 관련 부모단체가 만들어지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 엄마입니다”라는 책도 출간됐다.만시지탄이나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7

대구지검 “김태오 피고인, 대구은행 신뢰 실추”

대구지검이 지난 13일 대구은행 해외 자회사인 DGB SB의 상업은행 인가를 위해 캄보디아 현지 공무원에게 전달할 로비자금을 브로커에게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태오 DGB 금융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82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벌금은 로비자금의 2배다. 범죄행위로 얻은 이익이 5억원을 초과할 때에는 그 이익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선고공판은 내년 1월 10일 열린다.김 회장 등 피고인(당시 대구은행 글로벌 본부장과 사업본부장, 캄보디아 현지 특수은행 부행장) 4명은 지난 2020년 DGB SB의 상업은행 인가 취득을 위해 캄보디아 금융당국 공무원 등에 대한 로비자금 350만 달러를 캄보디아 현지 브로커에게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DGB 특수은행은 여신업무만 취급하지만, 상업은행은 수신, 외환, 카드 등 종합금융업무가 가능하다.김 회장에 대한 검찰의 중형구형으로 대구은행은 투명성과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직무윤리를 망각하고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대구은행과 대한민국의 신뢰도를 실추시켰다. 김태오 피고인이 최종책임자로서 가장 중대한 죄책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김 회장은 “내가 불법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변론했지만,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게 되면 DGB금융은 ‘연속적인 CEO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김 회장 직전 CEO였던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됐다. 현재 시중은행 전환을 서두르는 대구은행은 그룹CEO의 사법리스크로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DGB금융은 최근 고객 동의 없이 예금연계 증권계좌를 무더기 개설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집중조사를 받았었다. 금융기관의 생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투명성과 고객신뢰성이다. 현재 차기 CEO 임명 절차를 밟는 DGB금융이 어떻게 고객신뢰를 회복할지 주목된다.

2023-12-14

붕어빵

우정구 논설위원 동네 버스정류장 부근 모퉁이 등에 등장하는 붕어빵 노점을 보노라면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붕어빵은 한국인에게 겨울을 알리는 대표 간식거리다.원래 일본 도쿄 어느 가게에서 시작된 타이야끼(도미) 빵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도미는 비싸고 귀한 생선이어서 도미 모양으로 된 빵이라도 만들어 먹자고 생겨난 것이 시초가 됐다고 한다. 도미빵이 붕어빵 모양으로 변경된 것이 지금 우리 동네서 파는 붕어빵이다.193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져 벌써 90년 세월이 흘렀다.미국에서 밀가루가 많이 지원되던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에서 많이 유행했다. 저렴한 가격 탓에 서민들의 점심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붕어빵 노점은 쇠퇴하는 듯했으나 IMF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붕어빵은 쇠틀에 밀가루로 만든 반죽과 단팥소를 넣어 간단히 구워먹는 풀빵이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 불황기에 잘 등장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붕어빵 장사가 없어지고 경기가 나빠 실업자가 양산되면 길거리에 붕어빵 노점이 늘어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일종의 불황을 알리는 지표로 보기도 했다.올겨울 사라졌던 붕어빵 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중심으로 붕어빵 장사에 나서는 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노점도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의 숍인숍 형식의 점포도 늘고 있다. 대구에서 붕어빵 1개 가격은 700원이 주류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10년 전 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옛 추억을 느껴 볼 붕어빵이지만 서민경제가 나빠져 불쑥 등장한 것 같아 썩 반갑지만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4

‘공천 물갈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홍석봉 대구지사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여당의 위기가 내 책임”이라며 13일 사퇴했다. 친윤석열계 핵심인 3선의 장제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여당의 공천 물갈이 물꼬가 왕창 터졌다. 정치권의 ‘물갈이’ 신호탄이 됐다. ‘물갈이’는 정당 공천의 핵심이다. 현역 의원 대신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한다. 거물급의 불출마 및 공천 탈락과 명망 있는 정치신인의 등장은 그만큼 극적이면서도 유권자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공천 물갈이’는 어느덧 총선 승리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물갈이는 유권자의 요구다. 일부 직업이 된 묵은 정치인에 대한 경고다. 각 당 지도부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수준을 고심한다. 국민이 이해할만한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 및 대통령선거 경선구도 선점과도 관계가 있다.최근 4차례 총선에서 정당의 인적 쇄신 효과는 컸다. 대부분 승리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러진 21대 총선을 제외한 3차례 총선에서 확인됐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현역 의원 물갈이율 33.3%였던 민주당이 32.8%의 새누리당에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교체율 41.7%의 새누리당이 37.1%의 민주당을 이겼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현역 교체율 38.5%의 한나라당이 19.1%의 민주당을 이겼다. 현역 물갈이 폭이 승리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물갈이는 텃밭인 TK(대구·경북)가 주 대상이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TK에는 누가 공천돼도 당선된다. 당 지도부가 초선과 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했다. 21대 총선 때 TK의원 교체율은 64%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TK의원 물갈이 비율이 52%였다.22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5월 경북매일 여론조사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줄기차게 지역 의원 절반 이상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역대 물갈이의 가장 큰 희생양은 TK다. 최근 당 지도부에 진출, 활약하는 지역 의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존재감은 떨어진다.각종 지역 현안사업을 챙기고 새로운 사업을 끌어오기엔 힘이 부친다.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매번 정치 신인으로 교체하다 보니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한다.참신한 인물로 교체하는 인적 쇄신은 국민에겐 신선감을 주고 정당엔 개혁과 변화 이미지를 준다. 선거전에 그만큼 유리하다.하지만,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물갈이 대세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의 명분만 앞세운 섣부른 물갈이는 자칫 ‘공천 학살’로 비칠 수 있다.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초선 의원은 국회에서 ‘거수기’ 취급을 받을 만큼 존재감이 떨어진다. 정치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원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국민의 요구와 정치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교한 세팅 작업이 필요하다. 물갈이 해법 찾기가 지난해 보인다.

2023-12-14

포항을 양극재 생산 글로벌 기지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그저께(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차전지 전주기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강화 방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차전지산업 전분야에 걸쳐 앞으로 5년간 38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지원한다. 또 내년 중 사용후 배터리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지원법을 마련한다는 것과 이차전지 특허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등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 등이다.앞으로 정책금융을 통해 중소기업의 활로를 열어주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각종 규제 해제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초고속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2020년 461억 달러의 시장이 2030년에는 3천517억 달러 시장으로 10배 정도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내 이차전지산업의 육성과 인프라 확대는 시급한 과제다. 특히 정부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이차전지 공급망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관련산업에 대한 인프라를 보다 확대하겠다는 것이 이번 방안이 나온 배경이다.포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이차전지 선도도시다.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지정 후 전국 29개 특구 중 최고의 성과를 낸 곳이다.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글로벌 이차전지 기업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명실공히 전국 최고 배터리 전진기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정부의 이번 정책에는 포항을 국내 최대 양극재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이차전지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는 포항으로서는 기대되는 바가 크다. 특히 재활용기업의 국가산단 진입이 허용되고, 자원순환 클러스터 조성사업으로 이차전지 생태계를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차전지 글로벌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에게 큰 힘이 된다.지금부터 이차전지 도시로서 최적의 여건을 갖춘 포항에 더 많은 기업이 찾아오도록 하고, 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포항시와 관련단체가 적극적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23-12-14

하느님이 보우하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1일,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두 달 만이다. 다수의석의 야당이 이번에도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부결시키지 않을까, 가슴 졸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부결되어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가면 내년 초의 법관 인사는 물론 총선에도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천만다행으로 조희대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될 만한 흠결이 없어 야당도 차마 부결시키지를 못 했다.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을 보면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애국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금의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70년 세월은 애국가 가사처럼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역사였다. 미국의 일본 원폭으로 극적인 해방을 맞은 것에서부터, 비록 반쪽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것,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확립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대국을 이룬 것은 천지신명의 도움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삼권분립을 기본 체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를 위한 마지막 보루다. 사법부가 부패하거나 편중되어 제구실을 못하면 정의와 법치는 무너지고 혼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 정권 시절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법독립을 포기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편파적이고 관례를 무시한 코드인사와 고의적인 재판지연 등으로 공정과 정의를 무시하는 등 사법부와 법관의 위상을 바닥까지 실추시켰다. 이제 새로운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누적된 병폐들을 일소하고 법치 확립의 근간이 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세 기둥인 입법, 사법, 행정 중 어느 하나도 건실하지 못해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지금의 거대야당 행태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국회 다수의석의 야당이 어디까지 행패를 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결과가 뻔한 데도 묻지마 식으로 탄핵을 남발하고, 정부의 국회동의안을 온갖 구실로 부결하고, 터무니없는 구실로 정부 예산안에 비토를 놓는 등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패악질은 끝이 없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은 것처럼, 조희대 대법원장이 좌경화 법관들이 장악한 사법부를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은 입법부의 정상화다. 좌파 정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좌파 정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넘지 않기를 빈다. 그래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

2023-12-14

정치가, 정치인, 정치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계묘년을 보내며 교수신문에서는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 했는데 30% 정도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택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정치인의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라 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올바른 책무를 팽개치고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생각들을 대변한 것이리라. 다음으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골랐다. 자기 또는 자기편의 언행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 즉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 탓, 언론 탓을 해댄다는 것이다.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계는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 국민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뛰어든 모양새다. 정치를 하는 사람 즉, 정치인이란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의하는 사람으로 국가원수,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이익 도모를 실천하는 나라와 국민의 일꾼이다. 우리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정치가, 정치인 또 정치꾼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로 굳이 구별한다면 정치가는 Statesman, 정치인은 Politician이다. 정치가는 ‘국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언행이 공정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자신 또는 자기편의 이익만을 쫓는 모사꾼 즉 정치꾼’으로 폄훼되고 있는 느낌이다.프랑스 조르주 퐁피두는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많은 정치인은 정치꾼들로 보여진다. 자기 당 우선이고 국민권익은 나중이라는 태도로 공약을 쉽게 뒤집고 정당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의견을 짓밟고 있다.정치가의 자질은 도덕적이며 준법의식을 갖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국가 번영을 지향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좀 낮추어 정치인이라 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이 탄로가 나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우리나라는 정치인이라면 주로 국회의원을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정치에 대한 논리적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정치외교학, 법학, 행정학, 사회과학 등을 전공한 자가 얼마나 될까? 언론인과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정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좌관을 9명씩이나 데리고 있으니 전문성을 띤 사항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쌓아 특정 분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치엘리트가 많아야 국가백년지계를 설계하는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근대사에 정치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귀에 익은 정치인 거의 모두를 정치꾼이라 불러도 될 듯하니, 과연 정치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정치꾼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로 안보와 경제가 걱정스러우니 앞으로 참다운 정치개혁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정치가들을 뽑아야 할 것이다.

2023-12-14

제자 찬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할매카페는 성업중이었다. 이화회, 매월 두 번째 화요일의 만남은 결성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공감의 대화로 화기애애했다. 한 달에 한번 그리운 이 만나 듯 기쁘게 만나지만 단 4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은 항상 아쉬웠다. 하루 말미를 얻어 가까운 경주로 가서 문화산책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시간을 늘인 만남과 대화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한 번 더 도발을 해봐요? 의기투합했다. 여전히 손주들을 돕는 임무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리저리 잴 것이 많았지만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엔 해외로 뛰죠.” 9월 모임에서 뜻을 모았다. 12월로 멀찌감치 날짜를 잡고 스케줄 조정을 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을 끼워 날을 잡았다.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시간이 허락잖고, 가까운 곳은 거의 다 경험한 터였다. 간 곳이라도 또 가면 돼죠.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이 중요하다잖아요? 모두들 동의하고 내가 제안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크루즈여행 어때요? “제자찬스를 써 볼까요?”응웬휴비엔은 내게 가장 의미있는 제자다. 재학 내내 센스있고 영특해서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었고 탁월한 성적으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어능력시험 6급도 독학으로 취득했다. 졸업 후 베트남에서 꽤나 탄탄한 중견기업의 영업부장직을 수행 중인, 성공한 제자다. 비엔은 내게 베트남 사랑을 가르쳐주기도 해서 난 한 예닐곱 번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방문했다. 그럼 어떠랴? 이화회 멤버와의 여행은 또 특별할 것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넣었고 단번에 환영의 콜이 왔다. 그 자리에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필요경비를 모았다. 막힘없이 일사천리였다. 베트남의 일정은 바쁜 비엔에게 맡겼다. 옵션은 럭셔리하되 할머니들임을 감안해 너무 고단하지 않게, 센스만점 비엔은 야무진 일정표를 메시지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정옥 교수님 베트남 여행 일정”.제자 찬스는 성공적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특별대우는 여행 내내,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덕에 우린 정말 단 한 번도 경험 못한 호사를 누렸다. 최고의 레스토랑, 전망좋은 호텔, 하롱베이 크루즈의 반짝이는 야경, 섬에서 맡는 바람의 향기는 패키지 투어로는 절대 경험 못할 여행이었다. 비 오는 하노이의 격한 환영이라는 비엔의 센스있는 유머까지도 즐거웠다. 그저 우리는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거둘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면 되었다. 여유로운 수다로 웃고 또 웃었다. 웃음소리는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골치아픈 정치 얘기도 연예인의 선정적 가십도 우리의 대화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TV를 켠 적이 없었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우린 또 하나의 동질성을 발견했다. 그 흔한 면세점 쇼핑을 어느 누구도 않는 거였다. 손주들 줄 과자 몇 봉지 살 뿐임에도 더없이 풍성한 여행이었다. 이렇게 품격있는 우리의 여행은 모두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덕분이었다. 비엔 정말 고마웠어.

2023-12-13

인체 중심부와 사지말단의 온도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의 체온은 36.5℃ 정도이고 중심 체온은 37℃ 전후로 유지된다. 피부쪽은 34℃ 가량으로 유지되고 사지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떨어진다. 심장에서 멀수록 피가 먼 곳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지 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낮아진다. 정상적인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므로 사지말단의 온도도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선천적으로 마르거나 약한 사람, 나이가 들거나 허리가 안 좋거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사지말단의 온도가 정상인에 비해서 더 낮다. 실제 적외선 촬영을 하면 온도가 더 낮을 뿐만 아니라 심한 사람은 차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시리다고 표현한다.특히 다리로 혈액순환이 안 되어 종아리나 발이 차고 시린 사람들은 겨울을 싫어한다. 평소에도 하지 쪽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종아리나 발이 저리거나 쥐가 자주 난다. 겨울이 되면 피부가 차가워지고 몸의 근육들이 수축해 혈액순환이 나빠져 증상이 더 심해진다. 심한 경우는 실제로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하루종일 발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경우는 시리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데 이럴 때는 온몸을 칭칭 감아도 시려워서 바람을 쐬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 시리다는 감각은 난치질환이고 치료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치료를 해야 한다.차거나 시린 증상은 결론적으론 혈액순환이 안되어서다. 따뜻한 심부 쪽의 혈액의 흐름이 하지로 원활하게 오지 못해서 혹은 양이 부족해서 막혀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발쪽으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니 차가워지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각각의 사람마다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을 해줘야 한다. 약하고 마른 사람은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살이 찌게해줘야 하고 나이가 들어 하지로 혈액순환이 안 되는 사람은 보약을 써야 하며 산후로 시리거나 찬 증상이 있는 사람은 몸의 찬 기운을 날리는 약을 써 산후풍을 해결해줘야 한다.위에서 말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외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보통은 몸이 약하고 마른 사람들이 이런 증상이 많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첫 번째는 삼겹살처럼 지방이 있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한다. 살이 찔수록 몸의 부피에 비해 체표면적이 적어져 열의 손실이 줄어들고 마를수록 체표면적이 늘어나 열의 손실이 늘어난다. 덩치가 커져야지 열의 손실이 줄고 지방과 근육량이 늘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살과 지방이 두루 잘 섞인 고기를 밥이라 생각하고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근력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 또 수정과 같은 계피를 달인 차를 자주 복용하면 좋다. 계피와 대추 생강을 섞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심하지 않는 경우는 한의원에 방문해 피부 쪽에 피를 내는 자락관법을 여러 군데 해주고 태반 약침이나 그에 맞는 약침치료를 10회가량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노인들이나 오래된 경우 혹은 심한 경우는 약처방을 3~6개월가량 길게 복용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쉬운 소리지만 몸이 찬 사람은 쉽게 해결이 안되니 개인의 노력이든 치료든 아주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은 찾아온다.

2023-12-13

대한(大寒)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24번째가 대한(大寒)이다. 태양의 황경이 300도에 위치한다. 다가올 대한(大寒)은 2024년 1월 20일(음력 12월 10일)이다.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이다.대한은 한 해를 마감하고, 입춘(立春)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다. 사주명리에서도 입춘을 기점으로 띠가 바뀐다. 대한(大寒)의 한자 뜻을 보면 ‘큰 추위’지만, 실제로는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는 시기다. 오히려 소한보다 춥지 않은 편이다. 대한에서 15일이 지나면 입춘이기 때문이다.대한은 음력으로 본다면 연말에 해당한다. 옛날 사람들은 대한을 계절이 바뀌는 때라 여겼다. 이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에 콩을 뿌려 악귀를 쫓아내고,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는 ‘해넘이’ 풍습이 있었다. 또한 ‘대한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는 속담도 있다. 대한의 다음 절기가 입춘이므로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이를 극복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다.제주도에는 새해 풍습으로 신구간(新舊間)이 있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에는 지상에 내려와 있던 신들이 하늘로 잠시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금기로 생각하던 일을 해도 아무런 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수리, 나무 베기, 묘소 고치기, 이사 등 생활 주변을 정리했다.명리에서 음력 12월은 축월(丑月)이다. 소한과 대한이 축월에 해당된다. 주역으로는 지택림(地澤臨)괘다. 상괘 곤(坤)은 대지를, 하괘 택(澤)은 연못을 상징한다. 대지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으로, 군주가 백성을 대하는 모양이다. 소위 군림(君臨)하는 형태다. 대지와 연못의 물이 서로 의존하는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마치 끝없이 백성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모습이다.괘 위에는 음효(陰爻) 4개가 있고, 아래로는 양효(陽爻) 2개가 올라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임(臨)은 크게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이롭다고 해석한다. 아직도 강한 음(陰)이 남아있어 양(陽)이 정지한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쌓는 시기임을 말하고 있다.명리에서 축월(丑月)에 태어난 사람은 대개 몸의 기운이 찬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다는 것은 응축하는 성향이 있어 억울한 감정이나 우울한 기분을 배출할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는 태도가 가장 큰 장점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사주에 축(丑)이 있으면 이와 같은 성향이 있어 끈기와 지구력이 좋은 편이다. 늘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많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12월 말이 되면 태양은 12차(次)를 돌고, 달이 기(紀)를 다 돌며, 별자리가 하늘을 일주하면 1년의 운행을 마친다고 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황도 부근을 따라 12개의 성수(星宿)를 정해 놓고 이들 각각을 차(次)라고 했다. 기(紀)는 달과 태양이 만나는 시점을 뜻했다.그러므로 이 시기에 농민들을 조용히 지내게 하면서 부역 같은 데 동원하는 일이 없게 한다. 천자는 공경대부들과 국가의 제도나 법을 정비하고, 시령(時令)을 논의하면서 새해를 기다린다. 그 당시 법은 세상의 규범이자,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다. 법을 세우는 것은 법을 어기는 자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고, 상을 주는 것은 마땅히 상을 줄 자를 위한 것이었다.법이 정해진 이후에는 규정에 합당한 자는 상을 주고, 규정을 어기는 자는 벌을 준다. 이때 존귀하다고 벌을 가볍게 해서는 아니 되며, 비천한 자라고 해서 형벌을 무겁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적인 길이 열리고, 사적인 길은 막히게 된다.그래서 추운 12월에 가을의 정령(政令)을 시행하면 때에 맞지 않게 이슬이 내리고, 갑각류 동물에게도 재앙이 미친다고 생각한다. 자연계의 변화는 인간사회에 나타날 수 있고,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연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계절에 맞는 정령을 시행하는 것이 그 당시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음을 엿볼 수 있다.그러므로 통치자는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족한 사람을 채워주면 이름이 나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징벌하고, 포악한 자를 막으면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주로 국가의 재난이나 그해 농사의 풍년이나 흉년에 대비한 것이다.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그 시대에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2023-12-13

무대

정미영 수필가 푸른 하늘 아래 단풍비가 내리는 느긋한 오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붉은빛의 나뭇잎이 내 가슴에 날아와 침전된 감정선 위에 앉는다. 기분 전환 겸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형산강변이다.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에서는 12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반별로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대 위에서 즐길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동안, 추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사노라면, 크든 작든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를 문득 풀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이가 없어도 독백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자기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오늘일까?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록 발라드 곡인 ‘Holiday’나 ‘Still Loving You’ 그리고 ‘Wind Of Change’를 보컬이 부를 때면 음색이나 창법이 원곡자와 비슷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을 열창하면 그의 성량과 고음에 거듭 열광했다. 리드 싱어의 노래는 축제 때 더 빛이 났다.관객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의 움직임에 끌림과 설렘을 갖지 못한다면, 공연하는 이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보컬의 섬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과 전율을 느꼈으므로 밴드는 뿌듯했으리라.밴드의 열정과 관객의 환호가 최고조 접점에 다다르면 축제도 공연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99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20대 청춘, 마냥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학업이나 취업, 사랑 등 저마다 가슴 한 켠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하루의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막하고 우울한 일이 겹쳤던 친구일수록 목청껏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했다.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 즉 정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학 밴드의 음악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규했던 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보컬과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길고도 열렬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의 공연은 끝났다.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운동장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주점에 들렀고, 나와 친구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학과 선후배가 운영하는 ‘일일찻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교양 과목 교수님을 뵈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무대의 화려한 환상에 속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이유인즉, 밴드 여성 보컬이 같은 과 친구였다. 축제가 열리기 얼마 전에 밴드 동아리실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리드 싱어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단다.친구는 나에게 자기 체면을 봐서 다가오는 축제 때 그에게 꽃다발을 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친구의 간절함에 못 이겨 장미꽃 한 송이를 공연 때 건넸다. 그 장면을 교수님께서 보신 것이었다.그 시절 무대에 서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직업인이 아니라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던 시절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쭈뼛거리며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요즘 학생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일이 빈번하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금 형산강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는 저들이 앞으로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2023-12-13

이제는 문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60년대에 상업창부(商業創富)라 하였다. 장사로 얼른 돈을 벌어야 했다. 80년대가 되자 과기창신(科技創新)이라 외쳤다.과학기술로 새로운 걸 만들자고 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문화창의(文化創意)의 기치를 걸었다. 이제는 문화로 뜻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사회주의롤 기조로 하면서도 시대마다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국가를 경영해 오는 기조를 그렇게 바꾸어왔다. 지난 세기를 건너오면서 상업과 과학기술에 운명을 걸었고 이제는 문화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문화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지정하고 국민총생산(GDP)대비 5퍼센트 정도를 문화로 채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문화확장정책의 한 가닥으로 눈에 뜨이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에도 문화가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21세기는 문화가 이끄는 시대임을 선포한 것이며, 여러 방면에서 풍성한 문화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국방이 나라를 운용하는 기본수단이지만, 문화의 텃밭이 넉넉해야 새로운 시대를 자신있게 열어갈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문화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는 세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혼란했던 시절에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주석이 이렇게 적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그토록 어지러웠을 국가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문화를 떠올렸을까. 어떻게 문화를 ‘힘’이라 적었을까. 그는 사람이 푯대로 삼아야 할 여러 지향점들 가운데 문화가 가장 높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것이라 내세울 문화가 우리에게 있는가. 문화를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얼마가 생각을 기울이는가. 정치와 경제로만 사람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며, 국방과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 독특하고 분명한 문화적 품격을 길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살피고 발굴하며 다듬어야 한다.지역은 어떠한가. 지역에 고유한 문화원형(文化原形)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하여 지역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모두 옛날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루하다. 문화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언제든 새롭게 피어나고 저절로 변화해 간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문화자산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문화다. 문화로 승부하고 상상력으로 겨루어야 한다. 이전과 다르고 남들과 다른 나라가 되고 지역이 되어, 문화가 힘이 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어려웠을 때 문화를 떠올렸던 까닭을 새겨야 한다.

2023-12-13

‘개딸’과 작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개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바꿔달라고 언론 등에 주문했다. “상대 진영이 우리를 프레임해 선동했기 때문”이라는 게 개명 이유다. 나쁜 이미지가 덧칠됐다는 것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당초 작명 의도는 괜찮았다. 당 대표까지 ‘우리 개딸, 개이모, 개삼촌’이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권과 언론 등에 폭력성이 부각된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미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자 이미지로 굳어진 명칭을 이제 와서 본인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바꾼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지는 알 수 없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줄임말이 성행한다. ‘심쿵(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놀라거나 설렌다)’‘맛점(맛있는 점심)’‘극혐(아주 싫어하고 혐오하다)’ 등은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이다. 이젠 성인들까지 사용하는 등 생활 속 깊숙이 침투했다. ‘개딸’도 이런 유형의 신종 줄임말이다. 줄임말의 부작용이 적잖다.얼마 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의 신설 역사 이름이 ‘부호경일대호산대’역과 ‘하양대구가톨릭대’역으로 결정돼 논란을 빚었다. 지역과 대학 이름을 함께 넣으면 대학도시의 이미지 개선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름 붙였다. 이후 “역 이름 떠올리다가 지하철 놓치겠다”, “역 이름이 암호같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은 사람이나 물체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제 작명 때 줄임말까지 감안해야 할 상황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3

TK의원들의 ‘先黨後私 실천’ 절실하다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주류인사들의 희생결단이 시작되면서, TK(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의 거취표명에 관심이 쏠린다. 혁신위의 영남권 중진 헌신요구에 대해 PK(부산·경남·울산)지역에선 연쇄적으로 응답하고 있지만, TK지역은 침묵모드로 일관하고 있어서다.여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인적쇄신의 주 타깃은 영남권, 그 중에서도 TK지역 의원들이다. TK지역 3선 이상은 주호영(대구 수성갑), 윤재옥(대구 달서을), 김상훈(대구 서) 의원 등 3명이다. 그동안 혁신위 활동에 거부감을 표명해왔던 친윤계 초·재선 의원들도 불출마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다.여권내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TK현역에 대한 물갈이 폭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역대 총선 때마다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았다. 2020년 21대 총선 때는 교체율이 64%였다. 앞서 2016년 총선 때도 대구는 75%, 경북은 46.2%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압도적인 이 지역은 누가 나와도 당선되기 때문에 초선·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 대상이 됐다.올 들어 경북매일신문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TK지역 현역의원들의 물갈이론에 대해 대부분 절반이상이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윤석열 정부의 운명을 좌우하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수도권 열세를 극복하려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최대현안이다. 수도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총선이 현 판세대로 진행되면 야권은 수도권을 석권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민주당이 지금처럼 과반의석을 넘으면 입법·사법에 이어, 행정부까지 손아귀에 넣는다.특검과 해임, 탄핵이 이어질 것이고, 현 정부의 3부 기능은 거의 마비될 것이다. 그 책임은 현재의 여권 주류와 TK지역에 향하게 돼 있다. 이 지역 현역의원들의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3-12-13

세계적 불황 속 善戰한 대구경북 수출기업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기업이 주도하면서 대구와 경북은 올해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국내 수출이 1년가량 마이너스 성장해 왔음에도 지역의 기업이 역대급 실적을 올린 것은 지역산업의 역동성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는 반증으로 보여 뿌듯한 일이다.12일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대구경북 행사는 축제의 장이었다. 대구와 경북에서 134개 기업이 수출의 탑 수상을 하는 영광을 안은 데다 실적도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는 작년보다 수상 기업이 17곳(41%)이 늘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억 달러가 넘는 수출 실적을 올려 수출증가율 전국 2위를 기록했다.지역의 수출 업종이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등으로 옮겨진 것도 반길 일이다. 과거 섬유 등 제조업 중심에서 신산업 분야로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준 결과로 향후 전망도 밝게 한다.세계 최초로 니켈 함양이 90%인 이차전지 소재를 양산하는 대구의 엘엔에프는 4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대구경북 수출 1위 기업에 올랐다. 경북서는 이차전지 기업인 포항의 에코프로 그룹 계열사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에코프로이엠은 경북 최고인 20억불 탑을 받았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5억불 탑을 받았다. 또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퓨처엠은 10억불 탑을 수상했다.자동차 램프시장의 절대 강자인 대구의 에스엘은 2020년 8억불 탑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10억불 탑을 받았다. 경북의 아진산업은 2억불 탑을 받았다.우리나라 수출은 10월 들어 13개월만에 처음 반등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악재로 수출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올 한해는 우리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내년도 세계경제 사정도 아직은 제한적일 거란 전망이 많다. 그런 가운데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릴 지역기업의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내년에도 이들 기업들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지역의 수출환경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 수출기업에 대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3-12-13

온몸의 사랑

성현아 문학평론가가 경향신문 11월 22일자에 기고한 글 ‘무해함에 햇살 비추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비폭력적이고 잔잔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짚으면서 “무해함을 요구하는 독자 및 시청자에 맞춰 고통당하는 이들의 비명을 말끔히 도려낸 고요한 진공 공간만을 전시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점”을 우려하는 내용이다.성 평론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극적인 무해함보다 나의 유해함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무해함”의 예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언급했다. 정신병동 환자들을 편견 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던 간호사 ‘다은’이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호소하며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편견과 마주하는 장면에다 “편견이란 우리 몸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 소박한 내면의 촛불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다. 외부의 무엇과 부딪쳐 깨어질 때 비로소 번뜩이며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겹쳤다.“무해하기만 한 서사보다는 무해함의 허상에서 벗어나 다종다양한 해로움을 조명하되,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덜 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서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김초엽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떠올렸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배아디자인’이 상용화돼 부모들은 태어날 자녀의 신체, 성격 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성격의 결함이나 신체적 장애가 없이 탁월한 두뇌능력과 예술적 감성과 피지컬을 갖추고 태어난 이들은 ‘개조인’, 돈 없는 부모에게서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들은 ‘비개조인’이 된다. 개조인들은 지구 밖에 그들만의 완전무결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비개조인들은 가난과 질병과 전쟁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 지구에 남는다.무해한 유토피아에서 성년이 된 개조인들은 일종의 성년식으로 조상들의 행성인 지구에 순례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 견학을 간 개조인들 중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고, 주인공인 데이지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평화롭기만 한 유토피아엔 오히려 사랑이 없다는 것을,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은 사랑 없는 유토피아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사랑의 조건으로 ‘비대칭 관계’를 제시한다. 비대칭 관계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과 책임을 말하지만 상호 보완의 의미에 더 가깝다. 결핍이 없으면 채움도 없다. 나의 부족함을 당신이, 당신의 해로움을 내가 서로 감당하면서 끌어안는 것이다. 완벽하기만 한 사람들 사이에선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다. 연민과 사랑은 타인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순간에 불꽃이 튄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구정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땅에서 발을 뗀 채 마치 천사처럼 환하고 가볍고 평화롭기만 한 사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계신다. 이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는 원래 들리지 않았으며 걸을 수도 없어 침상과 한 몸으로 지낸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침대 위에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조명을 끈다. 그러면 방금 던진 스마트폰을 찾지 못해 어둠을 더듬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런 세계에 계속 갇혀 있구나’ 생각에 울컥한다. 감성이 풍부한 밤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꼬옥 안아드려야지. 그런데 면회를 가면 이상한 국면이 펼쳐진다.생각 속에서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던 할머니가 만져지는 눈앞의 현실에서는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고 냄새가 나고 끈적거리는 할머니인 것이다. 나는 할머니 몸에서 나는 악취와 분비물에 얼굴을 찡그리며 안는 것도 놓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그 냄새와 타액은 내게 유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냄새와 끈적거림을 참으면서 기어이, 끝까지 할머니를 끌어안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만 애틋하고 순정한 관념의 사랑이 아닌, 가까이 가 만지고 껴안고 견뎌대는 온몸의 사랑.

2023-12-12

나는 완벽하지 않아

최근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하다고 믿으며,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번번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지를 보며 이정도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가 다르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며 우울감으로 빠져 들기 쉽다며 짚어 주셨다.사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적 공허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실은 내 스스로 만든 완벽한 기준치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완벽주의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 때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는 그저 예의상 건네거나 또는 분위기상 듣기 좋은 말을 골라 건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의 정도까지 내 스스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고 늘 스스로 여겨왔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여도 남들 하는 만큼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최근에서야 점점 깨닫고 있는 건, 완벽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권하는 방법은 바로 완벽주의를 인정부터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이끌어 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기에 건강한 완벽주의의 장점을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리곤 건강이나 외모, 성공이나 행복에 관한 기준을 적어보고 지금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놔두고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지향하여 성공 확률을 높여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실수는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도 앞에서 실패는 반드시 따른다.두려움의 뿌리는 과연 내 깊은 곳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진다.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며 노력했을 뿐인데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늘 실패에 가닿을 때마다 나의 노력과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실패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다.요즘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었다. 그래서인지 늘 목표를 내 기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곤 했다. 높게 잡은 목표를 어떻게든 혼자서 잘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썼으나 일의 경험이 적은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점부턴 주위 타인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싶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하지만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실은 내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왜 그토록 일을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는지, 왜 해결할 수 없는 일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은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 기력이 빠져서 잠에 들기 바빴는지 이 모든 게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다.나는 완벽할 수 없다. 특히 혼자서는 더욱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실패할 수 있고 실패에 가까워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면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고 나 또한 그 도움을 받아 일을 잘 해결하면 된다.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우리 사이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일과 사람이지만 점차 조금씩 나와 타인을 믿으며 나아가다보면 점차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한 상태는 존재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온전한 상태는 존재할 것이다.

2023-12-12

‘장제원 희생’이 여권혁신의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그저께(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의 총선 험지출마 또는 불출마를 핵심으로 하는 6개 혁신안을 전달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당초 성탄절까지 활동시한으로 정했지만, 이날 조기 종료한 것은 여당 기득권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혁신위의 출발은 화려했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제 믿은 인요한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친윤핵심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3선)이 어제 국회에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지만,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40여 일간의 혁신위 활동은 여당 메인스트림의 구조화된 카르텔과 헌신정신 결여,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을 확인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당내 비주류 의원을 중심으로 ‘쇄신대상 1순위는 지도부’라며 공개저격하고 있음에도, 김기현 대표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혁신위를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로 인식하며 기득권을 붙잡는 모습을 TV중계처럼 지켜보는 유권자 마음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현 지도부체제가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 내년 총선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시즌2’로 갈게 뻔하다.최근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총선 판세분석 결과가 이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 지역은 강남과 서초, 송파 일부 등 6곳 정도라고 하니 충격적이다. 2020년 4·15총선 당시 서울 8석보다 당세(黨勢)가 더 쪼그라들었다. 당 기획조정국이 그동안 언론에서 발표한 각 정당 지지율과 지역별 지지율 등을 기준으로 판세를 분석한 데이터라고 한다.민주당은 지금 내년 총선에서 200석 확보를 거론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일을 주도한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번처럼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라고 했고, 정동영 상임고문도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했다.이들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로 판세분석을 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4년 전(민주당 180석 획득)과 비슷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민주당은 지금 내부에서조차 “도덕성은 평균이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됐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흐름에 밝은 당 상임고문들이 총선 석권을 자신할 정도로 민심을 얻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혁신위 조기종료 과정에서도 보듯, 여권은 강서구청장 참패 이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윤석열 대통령도 현 지도부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니, ‘여권 카르텔’은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내놓은 과제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여당이 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는 현 판세를 바꿀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이 여권의 고강도 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12-12

총선 시작됐지만, 선거구·룰은 아직 ‘깜깜이’

내년 4·10 총선 예비 후보자 등록이 어제(12일)부터 시작됐다. ‘예비후보’는 현역 정치인과 정치 신인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 총선부터는 일반 유권자도 ‘어깨띠’를 두르고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 벌써부터 대구·경북 주요 거리는 선거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이번 총선부터는 온라인 선거운동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경찰이 가짜뉴스 유포를 집중 단속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글, 영상 등의 조작 여부를 집중 확인하고 있으며, 허위사실로 판명되면 엄중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특정인의 낙선을 목표로 하는 가짜뉴스는 처벌 강도가 세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예비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뛰어야 할 운동장과 선거룰을 모른 채 후보등록부터 해야 했다. 국회는 지금 당리당략에 얽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고의적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현역의원은 정치신인에 비해 조직력이나 지명도가 월등하게 앞서 선거운동기간이 짧을수록 유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지난 5일 지역구 선거구 수를 현행대로(253개) 하는 내용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이 획정안에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힘 의견만 반영된 편파적인 안”이라며 거부의사를 밝혀 최종 선거구 획정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더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비례대표를 희망하는 정치신인들도 게임의 룰인 선거제 개편이 확정 안 돼 갈팡질팡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식과 위성정당 방지법 도입을 둘러싸고 여야가 아직 입장정리를 못해 협상이 공전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고수하고 있고, 민주당은 지도부의 병립형 회귀움직임에 소속의원들이 반발하며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선거구 획정과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둘러싼 거대 양당의 행태가 국민의 정치혐오와 불신을 더욱 깊게 하고, 유권자의 참정권도 방해하고 있다.

2023-12-12

경북대 통합논의 무산됐으나 혁신의 길은 가야

국립 경북대와 금오공대간 통합 논의가 경북대 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이달 초 경북대와 금오공대는 정부의 글로컬대학 추가 지정을 앞둔 가운데 두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구체적 실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경북대 학생들의 반발이 일면서 논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학생들은 학과 점퍼 수 백벌을 본관 앞에 벗어두기도 했고, 통합반대 온라인 운동도 벌였다.학생들은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는 통합은 반대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학 측은 “애초부터 구체적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통합 논의를 마무리 지었으나 뒤끝이 씁쓰레하다.두 대학의 통합 논의는 정부의 글로컬대학 지정과 함께 학령인구 급감으로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지방소재 국립대학의 생존문제와 연관돼 나온 발상이다. 현재와 같은 학령인구 감소 속에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가 이어진다면 20년 후에는 지방소재 대학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만으로 전국의 학령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글로컬대학 지정은 이런 지방의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일종의 지방대학 구조조정 정책으로 보아도 좋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육성해 지역사회와 함께 동반성장을 이뤄가자는 전략이다. 담대한 혁신을 한 대학은 매년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비지정대학은 각자도생의 길로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뻔한 현실에 대학이 선택할 길은 별로 없다. 경북대가 금오공대와의 통합이 무산됐더라도 대학 혁신의 길을 찾지 않으면 존립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국립 부산대 등 일부 국립대는 통합을 전제로 글로컬대학 지정을 받고 대학혁신의 길에 이미 나섰다. 지역 대표 국립대인 경북대의 변신 노력에 많은 지역민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지성의 대표인 대학의 발전이 곧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대의 담대한 혁신을 기대한다.

2023-12-12

남우충수(濫竽充數)

우정구 논설위원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매년 12월에 발표하는 사자성어는 우리 시대 사회상을 잘 반영한 표현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교수신문은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올바름을 잊어 버린다”는 뜻이다.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교수들이 추천한 올해의 사자성어 중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우리 정치인의 부족함을 빗댄 말로 ‘남우충수(濫竽充數)’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넘칠 남(濫), 피리 우(竽), 채울 충(充), 숫자 수(數)의 ‘남우충수’는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유래는 이렇다. 중국 제나라 선왕이 300명의 악사를 모아 피리 합주를 자주 들었는데, 이때 남곽이라는 자가 피리 연주를 할 줄도 모르면서 악사 틈에 섞여 매번 흉내만 내면서 높은 녹을 받았다. 그러나 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합주보다 독주를 좋아해 연주자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 연주케 했는데, 이를 안 남곽이 미리 도망쳐 버렸다는 고사다.실력이 없으면 언젠가는 탄로가 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도 폐지하자는 국민의 원성이 잦다. 임기 4년 내내 존재감 없이 이 눈치 저 눈치보며 지내는, 존재감 제로의 국회의원들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다.언젠가 홍준표 대구시장은 “하루를 해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좀 뽑자”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능력 없이 자리만 지키는 국회의원은 뽑지 말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2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할까?

강지우 SF평론가 우리나라 SF 영화 ‘더 문’은 왜 흥행에 실패했을까? 국내 최초 달 탐사 영화로 개봉 전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 관객은 50만 명에 그쳤다. 시각 효과는 손색없었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위기 상황이 극의 긴장과 감동을 반감시켰다는 평이 많았다. 지난해 개봉한 ‘외계+인 1부’에서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김태리 등 배우들의 명연기가 감탄을 자아냈지만, 산만한 구성과 어색한 대사가 영화의 완성도를 해쳤다. 내년 초 개봉할 2부에서는 흥행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이런 작품들을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줄곧 품었던 의문에 대해 지난달 18일 개최된 ‘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는 김초엽 작가, 김겨울 작가, 이다혜 기자가 연사로 초청되었다. 많은 청중의 열띤 참여가 행사를 알차게 완성했다. 1부 북토크에서는 예비 작가들의 질문이 이어져 그야말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펼쳐지기도 했다. 2부 시네마 토크에서는 이다혜 기자가 ‘SF 영화의 휴머니티’를 주제로 강연했다. 보통 한국 SF 영화의 실패 원인으로 꼽히는 ‘휴머니즘’이 알고 보면 ‘인터스텔라’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SF 블록버스터의 중심 주제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은연중에 왜 한국 SF 영화는 ‘신파’를 못 넣어 안달이지? 라고 불평했던 터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실제로 휴머니즘을 탐구하는 SF는 요즘 한국 SF 문학계의 주된 흐름으로, 국내외에서 평론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결국 과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휴머니즘만이 한국 SF 영화의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SF 영화에는 큰 자본이 투입되기에 새로운 시도 보다는 기존의 공식을 따르는 시나리오가 채택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수효과 등 시각적, 기술적 부분에 치중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분위기가 더해져 이야기에는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도 한다. 결국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진부하고 빈약한 뼈대의 SF 영화가 나오게 되는 환경인 것이다.그러나 모든 한국 SF 영화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고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다.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 SF 영화가 충분히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절대적인 작품 수가 부족한 것이다. 미국 SF 황금기를 이끈 작가였던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장르에나 뛰어난 작품보다는 모자란 작품이, 성공하는 작품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훨씬 많다. SF 또한 그렇다. 다종다양한 SF 영화가 만들어져야 경험이 축적되고, 더 과감하게 경계를 여는 작품도 시도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 또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관객들의 꾸준한 관심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용감한 한국 SF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3-12-12

사진과 기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송년모임도 많아지고 소소한 만남도 잦아들게 된다. 대설 지난 겨울날씨답잖게 며칠간 봄날같이 포근하다가 하룻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흔들어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분위기에 가뜩이나 뒤숭숭해지는 마음인데, 날씨마저 어설프고 변덕을 부리니 거리엔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이 다급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를 핑계삼아(?) 일찌감치 식당이나 주점에 눌러앉아 차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더 오래 송년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회인, 동창·동문 모임, 계모임, 친구 등과의 모임에는 으레 연말에 한 차례씩 송년회 또는 망년회의 명목으로 각종 만남을 가지게 된다. 지내온 한 해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으니 뒤도 옆도 보면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자주 연락이나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살아가는 얘기와 한 해를 돌아보며 애환을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괴로움과 불행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갖는 모임의 망년회(忘年會) 보다는, 세월의 저편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길목에서 아쉬움과 고마움을 나누기 위한 모임의 송년회(送年會)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과 정겨움을 나누는 오붓한 분위기를 사진은 고스란히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아련한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 실상을 비교하여 세월의 주름 같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사진이다. 시간의 지층 속에 촬영 당시의 단면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하고 잊혀져 가는 기억과 생각을 다시 소환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진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진 한 장에 아련한 추억과 얽혀진 스토리가 배여 있기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 걸까?사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의 원천이며 지식의 보고이다. 무엇이든지 쓰고 그리거나 기호로 나타냄으로써 보거나 알게 되고 소통하고 기억하게 된다. 사진이 영상이나 이미지로 추억을 소환한다면, 기록은 문자나 기호로 생각이나 기억을 일깨워준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을 글자로 기록하고, 글로 기록하기 어려운 요소를 이미지로 드러낸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모바일 매체가 일반화된 현대는 빡빡한 양식의 문서보다는 글과 그림, 도표, 도형 등으로 간략 명쾌하고 단순하게 표출하는 이미지 메이킹을 필수적으로 여길 정도다.하루하루 쏜살같이 지나가는 일상을 추출하여 뉘엿뉘엿 세모의 나이테에 기록으로 남기고 사진으로 담아둔다면, 생생하고 풍부한 삶의 일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하고 사진 속에서 좋은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을 때 연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3-12-12

‘무탄소연합’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조홍식 기후환경대사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12월 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엑스포 시티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국제사회에 한국이 주도하는 ‘무탄소연합(Carbon-Free Alliance)’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 배경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므로 진보된 기후 기술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외에도 각 국가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탄소가 없는 모든 청정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COP28이 시작되고 여섯째 날인 12월 5일은 ‘에너지와 산업, 정의로운 전환, 원주민’을 핵심주제로 한 날이었다. 이날 한국의 산업통산자원부와 한국이 주도하여 결성한 ‘무탄소연합’이 주최한 무탄소에너지 계획 원탁회의를 그린존 B6 구역에 마련한 한국관에서 개최했다. 한국의 ‘무탄소연합’의 대표이자 무탄소에너지 특임대사인 이회성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게 무탄소에너지 인증체계 등 글로벌 규범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이렇게 우리나라가 COP28에서 ‘무탄소연합’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동참을 호소하는 부분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반응은 아직 뚜렷하지는 않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RE100 (Renewable Energy 100)’ 즉,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간 협약 프로젝트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무탄소에너지의 국제적 확산과 선진국-개도국 간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오픈 플랫폼(개방형 작업 공간)으로 ‘무탄소연합’의 결성을 이미 제안하였고, 이번 COP28에서 또다시 강조하고 동참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지난 10월 19일 제30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는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 추진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더욱 구체화했다. 이 계획의 추진 배경으로 전세계적인 에너지 분야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활용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탄소중립을 추진해야하고 기업부담도 경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CF(무탄소) 인증체계 구축 및 국제표준화 추진, ‘무탄소연합’ 출범, 글로벌 확산과 국제공동연구, 개도국 무탄소에너지 전환지원 등 협력 강화를 통해 국제적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주도해나갈 계획이다.대구경북에서는 2030년 이전에 신공항을 조성하고, 배후산단과 에어시티를 조성할 계획인데,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 공급방안은 ‘2050탄소중립 로드맵’ 아래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원자력과 수소 등에 의존도가 특히 높은 대구경북에서는 정부의 ‘무탄소연합’ 추진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2023-12-11

연말 재계 최대 관심사된 ‘포스코 회장 선임’

오는 19일 열리는 포스코그룹 이사회를 앞두고 차기 회장 인선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재 ‘선진 지배구조 TF’를 가동하면서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이날 이사회에서 회장 선출을 위한 ‘룰 세팅’을 마무리한다. 최정우 현 회장은 이사회를 앞두고 추가 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이번 임기를 끝으로 퇴진할 것인지 거취 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 맞춰 임기가 끝나는 최 회장은 사규에 따라 임기 종료 3개월 전인 이달 중하순까지는 진퇴 의사를 밝혀야 한다. 지난 2018년 7월 그룹 회장에 오른 최 회장은 2021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5년 5개월째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룹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최 회장이 이례적으로 한 차례 더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최 회장이 포스코그룹 최초로 2연임 완주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3연임까지는 무리하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지난해 8월 포항제철소를 흙탕물로 뒤덮은 태풍 힌남노 사태 당시 ‘최 회장 책임론’을 거론하며 관치논란을 빚었던 정부는 일단 “차기 회장은 내부에서 결정해 선출할 일”이라며 관여 가능성을 일축했다. 과거 포스코그룹의 경우, 새 정권이 들어서면 핵심 권력들이 회장을 사실상 지명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로인해 회장직을 욕심내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정권 실세들에게 접근하는 부작용이 발생했었다.포스코홀딩스는 최대주주(국민연금공단)가 6.7%의 지분만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소액주주비율(75.5%)이 높다. 이 때문에 중요의사결정에 이사회가 갖는 권한이 절대적이다. 현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최 회장 외에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부회장, 정기섭 포스코홀딩스 사장 등이다. 외부에서 거론되는 인물도 여럿 있어 경쟁이 치열한 상태다. 철강사에서 미래종합소재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대한 시기에 누가 포스코 지휘봉을 잡을지 연말 재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23-12-11

비석 문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비(碑)는 특정 사실을 기록, 후세에 전하는 조형물이다. 주로 돌로 만들었다. 비는 주(周)나라 황후의 능을 조성하고 묘광(墓廣)에 시신을 하관할 때 밧줄을 도르래에 걸어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설치했던 장치의 기둥인 비목(碑木)이 기원이라 전한다. 비목이 비석으로 발달했다. 한대(漢代)에 문자를 새겨 각석(刻石)이란 말로 쓰였다. 우리나라의 비석은 장례와 관련한 분묘 건축에서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의 입구에는 죽은 이의 평생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많이 세웠다. 우리나라 비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다.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비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통일신라시대는 태종무열왕릉비 등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는 고승들의 탑비가 많다. 조선시대 왕릉에도 신도비를 세웠다. 비석은 원래 종교적, 제의적 의미가 강했다.비의 종류는 송덕비, 하마비, 공적비, 열녀비, 효자비 등 다양하다. 진흥왕 순수비와 대원군의 척화비도 유명하다. 포항 중성리와 울진 봉평리의 신라비,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산불조심 비석 등 특정 목적의 비석도 있다.대구근대역사관이 ‘의연공덕비’를 상설 전시 중이다. 2003년 대구의 한 민가에서 발견돼 대구 종로에 세워져 있었다. 비석의 가치와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대구근대역사관에 안치됐다. 대구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자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의연금 사용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1900년 세웠다. 지역사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 문화재 등록도 할 예정이다.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출발한 국채보상운동도 한푼 두푼 낸 성금으로 이웃을 돕는 대구시민 정신에서 출발했다. 의연공덕비가 지역 이웃사랑의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1

도심 속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대구 서·남구

대구지역 9개 기초단체인 시군구의 발전 전망이 인구 수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지역간 발전 편차가 기초자치단체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켜 일부 지역은 도심속 낙후지역으로 바뀔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구 서구와 남구는 작년말 기준 인구가 10년 전 보다 27.4%와 16.1%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동구 0.75%, 북구 3.9%, 수성구 10%, 달서구 11% 등의 감소세와 비교할 때 감소폭이 훨씬 높다.특히 출생아 수는 인구 감소폭을 훨씬 뛰어넘는 72%를 기록했다. 또 인구 1천명 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출생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2.5명으로 전국 평균 4.9명의 절반 수준이다.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노령화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21년 대구지역의 노령화지수(15세 미만 유소년 인구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는 147.2%이나 서구는 305.3%, 남구는 310.6%다. 공단조성 등으로 인구 유입이 많은 달성군의 경우는 76.0%로 노인보다 유소년이 더 많아 서·남구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서구와 남구의 노인인구 비중은 서구가 25.6%, 남구는 25.1%로 이미 두 지역 모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으며 독거노인 비율도 시군구 중 가장 높다. 또 재정자립도는 서구가 14.9%, 남구는 12.3%로 수성구 29.8%, 달성군 29.7%, 중구 27.6%와 비교할 때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지난 8월 대구시가 대구시민의 삶의 질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하는 대구의 사회지표(2022년) 조사 발표에서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한다는 의견을 보인 사람이 서구에서는 46.8%로 조사됐다. 수성구의 18.0%와 비교할 때 삶의 질을 인식하는 정도가 지역간 큰 격차를 보인 것으로 해석돼 주목을 받았다.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소멸 위험지역에는 대구의 서구, 남구와 새로 편입된 군위군도 포함돼 있다. 인구문제만으로 기초단체간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광역단체 차원의 다각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2023-12-11

짜가가 판친다

강길수 수필가 추위가 서너 번 지나갔음에도, 학교 담장의 장미꽃은 잘도 버틴다. 어떤 가지는 아예 새순을 뽑아 올리기도 한다. 환경변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12월 초에도 꽃을 피워야 하는 절박함으로 드러난 게 분명하다 싶다.지난 1일, 두 장 남았던 달력에서 한 장을 뜯어냈다. 올핸 유달리 달랑 남은 마지막 달력 한 장의 무게감이 크다. 11월 달력 한 장을 뜯어내며, 30년 전 히트했던 한 가수의 유행가 가사가 가슴에 여울졌기 때문이다. 가사 일부는 이렇다.“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야 야 야들아/내 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올해 12월을 맞으며, 1993년 대유행했던 노래의 가사가 왜 되살아 난 것일까. 내 마음에 비친 올 우리 사회의 모습이, 12월에 핀 장미꽃의 절박함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인터넷에서 당시 노래 동영상을 찾아 다시 시청해 본다. 노래하는 가수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 백치미를 연상케 하는 표정과 몸 율동이, 내내 풍자와 해학으로 넘쳐나 보인다.그 야릇한 모습이,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그해 우리 사회상보다는, 오히려 요사이 우리 사회의 초상(肖像)을 더 풍자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내 잠재의식은 이 가사를 소환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 일부의 짜가 곧, 가짜가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히며 때론 타인 삶을 불행하게도 해왔다.하지만, 그런 게 인간사회의 주현상은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말, 예전보다 ‘많은 짜가가 판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라의 헌법기관 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적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이다. 2017년 대선부터 선거마다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짜가 사전선거 데이터를 계속 발표해 놓고도, 많은 국민의 부정선거 제기에 대해 통계적 해명 한 번 못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올해 ‘도둑놈들’, ‘비밀지령 2-∞’ 등 대한민국 부정선거 연구서들이 연이어 나왔다. 또 ‘왜(歪) 더 카르텔’ 같은 다큐멘터리 영상물들도 나왔다. 이런 증거물들은 한결같이 ‘부정선거는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국난’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주류언론들이 ‘거악(巨惡) 청산의 혁명적 사회개혁’을 요구해야 정상 나라일 것이다. 한데, 그 주류언론들은 비겁한 침묵만 일삼고 있다. 대체, 왜일까.산업현장에서 일하며 정치에 무심히 살아왔던 나도, ‘부정선거’라는 말에 분기탱천했다. 나라 주인 국민이 선거주권을 빼앗기면, 국민 뜻이 아닌 가짜 체제가 서는 엄청난 반역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부정선거의 진실을 파악했다. 부정선거로 뽑힌 공직자는 짜가 곧, 가짜다. 가짜들이 국민을 수탈대상으로 삼는 온갖 악법을 만드는 광대놀음, ‘짜가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을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할까.12월의 장미꽃들이 내게 말한다. ‘국민이시여, 이제 짜가에 놀아나지 말고, 초겨울에도 꽃피는 우리 장미들의 민감한 반응을 따르세요. 그게 꽃길이랍니다. 무얼 근심합니까. 세상일은 시작이 반인데!’라고….

2023-12-11

대중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최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연예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다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출생율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논란이 되었다. 서 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 혼자 산다’, 불륜·사생아·가정 파괴 드라마가 너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개발해서 사회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처럼 대중문화를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미풍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무차별 살인이나 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자동차 도둑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인 ‘GTA(Grand Theft Auto)’나 ‘둠(Doom)’, ‘서든 어택’, ‘배틀그라운드’처럼 총기를 사용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들이 원인이자 원흉으로 지목된다. 범인이 이렇게 ‘폭력적인’ 게임에 심취하여 폭력성을 배양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게이머들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PC방의 전원을 강제로 내린 뒤, 비속어로 불만을 표시하는 게이머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지배 문화, 주류 문화의 시선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오락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기성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도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남성 동성애자 아이돌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신곡 ‘It’s OK to be me’가 ‘동성애’를 이유로 MBC에서 방송 금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저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 대중문화와 그 소비층을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필자가 어릴 때 어른들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니까 오래 보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이런 발상의 기저에는 대중을 한없이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대중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비판적 사고력도 없기에 대중매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문화연구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는 일상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문학이나 예술처럼 ‘고상한’ 것만을 문화라고 여기는 엘리트주의적 문화관을 비판하였다. 노동자 계급, 서민 계급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대중문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의미는 대중문화 작품 안에 완결된 채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 만나 ‘디코딩(decoding)’ 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정치가 고민해야 할 일은 대중문화에 대한 ‘저격’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각과 경험을 넓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202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