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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스마트병원 설립 ‘담대한 도전정신’이 신세계의 문을 연다

이대환 작가 담대한 도전이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힌다.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말이다. 포항에는 그 실증이 셋이다. 포항제철(포스코), 포항공대(포스텍), 그리고 에코프로.포스코와 포스텍은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세계관으로 무장한 무사욕(無私慾) 일류국가주의 박태준의 리더십과 창업세대의 헌신적 애국심이 창조한 위업이다. 이것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모범으로 우리 현대사를 빛내고 있다.포항사람 이동채가 일궈낸 에코프로는 우리나라에서 이차전지소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현재 뜻밖의 고초를 감내하는 가운데 걸어온 66년의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다듬고 있는 이동채. 나에겐 동갑내기 고향친구(그는 대송면 성좌, 나는 대송면 송정)와 다름없는, 고향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할 포항의 영웅.지난해 4월, 포항에서 그와 함께 물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일본에서 ‘손(孫)’이란 성(姓)까지 창시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역사 근처 철로변 판잣집의 한 귀퉁이에 돼지를 치고 돼지우리 구석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이동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손정의 회장네 집에는 돼지도 있고 밀주도 있었네. 그때 우리집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손정의는 이동채보다 한 살 위다. 같은 동네에서 컸으면 “정의야” “동채야” 부르고 있을 두 사나이의 공통점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출신이고 담대한 도전정신과 각고의 인내와 지혜의 힘으로 세계적 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전지보국, 바이오보국의 깃발을 들었다.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바탕으로 성취해야 하는 포항의 미래 비전이다.전지보국은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이 그 기반을 조성했고, 코스닥 대장 자리를 오르내리는 에코프로는 성장 대로로 당당히 전진하고 있다.‘바이오보국 포항’의 주요기반은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이다. 포항의 거사이며,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도약에 꼭 필요한 디딤돌이다.그런데 김성근 포스텍 총장 취임 뒤로 삐꺽대는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작가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라는 칼럼을 바로 이 지면에 발표했고, 오후에는 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장과 총장이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김 총장이 털어놓은 고충들에서 내가 좀 분개하며 가장 공감한 점은 “포스코의 지원금이 없었다”라는 것이고,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임기 3년 5개월 남은 관리 총장’이란 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천성이 그런지 몰라도 ‘담대한 도전정신을 읽어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에는 넉넉잡아 연차적으로 1조원 정도 소요된다. 재원 확보 방안은 필수적 선결 과제지만, 겁부터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신임 포스코 회장이 이사장을 맡는 게 급선무이다. 나는 이사회에 박태준 선생의 유족, 대기업의 오너와 경영자들이 초빙되기를 바란다.새 이사장과 이사들, 총장, 포항시, 경상북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약한 중앙정부와 국회, 의과학대와 스마트병원의 긴요성을 갈구하는 바이오제약 기업들, 지역 의료법인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을 들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의 방안은 마련될 것이다. 자신의 가족가업을 통해 ‘1000억원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그리고 김 총장이 ‘500병상 병원과 배후 인구 100만’을 소극적 견해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내게는 설득력이 크게 모자랐다. 그러한 일반 병원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포항의 기존 종합병원을 보강하겠다.포스텍 연구중심 의과학대의 스마트병원은 마치 포스텍이 세계적 강소 대학으로 성장한 것처럼 세계적 강소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 포스텍 생명과학의 독점적 기술력부터 최우선 특화하고 가장 뛰어난 특화 분야 중심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한 성형전문의원을 생각해보자. 규모는 동네의원이다. 그러나 국내 전역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제적 병원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성형전문의원의 커다란 확장 같은 병원이 특화 분야 중심의 포스텍 의과학대 부설 스마트병원으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물론, 의과학이나 스마트병원은 바이오제약과 임상실험에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전문가의 강의 같은 긴 설명이 있어야 한다.기필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반열에 안착해야 하는 포스텍은 지금 여기서 삼두마차를 완성해야만 한다. 김성근 총장이 오래 묵은 법인 소유 포스코 주식 등을 현금화하여 향후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제2 건학 프로젝트,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포항으로 오게 해서 포스텍과 결합해야 하는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 이들 셋이 그 삼두마차이다.다시 문제는 근원으로 회귀한다. 새 지평을 여는 제일의 동력은 역시 담대한 도전정신과 시대정신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거사에 도전하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지역사회의 리더십들이 손잡고 앞장서면 반드시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경북매일신문이 4월부터 마련한 ‘이슈 논단’의 첫 필자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문제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이대환 작가가 그날 오후 열렸던 김성근 포스텍 총장의 기자간담회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이슈 논단’에 올리는 칼럼이다.

2024-04-03

유채꽃 물결따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확연한 봄의 당도다. 시샘하던 비바람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길가의 벚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앙상하던 가지에 하얀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 꽃터널이 생기고, 연이은 등불마냥 송이송이 피어난 꽃송이가 밤조차 환하게 밝히며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듯하다. 다시 돌아온 새봄이 파릇한 풀빛과 함께 갖가지 꽃빛으로 어우러지니 정녕 봄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길가나 언덕배기에 벚꽃이 한창이라면 강가나 들판에는 유채꽃이 꽃물결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록의 잎과 줄기 위에 샛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은 황록(黃綠)의 어우러짐으로, 멀리서 보면 풀빛 위에 펼쳐진 노란색 양탄자마냥 싱싱함과 산뜻함을 자아내게 한다. 추위를 이기며 지내온 겨울초답게 유채밭의 노란색 꽃물결은, 싱그럽고 선명한 빛깔로 명랑의 안부를 전하며 따뜻한 감성의 노란 물결을 일으키는 듯하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꽃소식으로 유채꽃이 만개하자 전국 곳곳의 유채꽃 명소에는 유채를 느끼고 즐기는 유채꽃 축제로 분주해지고 있다. 벚꽃과 유채꽃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는 ‘서귀포 유채꽃 축제’를 비롯, 전국 최대규모인 창녕군 남지읍의 ‘창녕 낙동강 유채 축제’ 등이 열리면서 상춘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포항지역의 호미곶 바닷가 유채밭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파도가 환하게 일렁이는 이색적인 풍경 속에 풍덩 빠질 수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쉴 새 없이 다가오는/파도의 하얀 안부//드넓게 맞이하며/꽃물결로 화답하는//호미곶//유채밭에는/설렘이 넘실대네//동토의 시간을 쟁여/기대인 듯 희망인 듯//일제히 솟아올라/손짓하며 반기는//노란색//감성의 바다/가슴 속에 어리네’ -拙시조 ‘호미곶 일우-유채밭’ 전문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일원 15만평 규모의 유채밭은 포항농업을 먹거리 생산에서 축제·관광·경관농업으로 다변화시켜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조성됐다. 계절별 특색 있는 작물이나 화초를 심어 경관과 체험을 곁들인 축제형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는데, 봄에는 유채꽃과 여름의 유색보리·해바라기를 비롯 가을에는 메밀꽃과 해바라기 등의 경관이 두드러진 명소로 자리매김해서 철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또한 호미곶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과 대보등대박물관, 한흑구 문학관, 청포도 시비 등과 연계된 스토리 테마파크를 구성해 관광산업육성에도 크게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과연 휴일의 이른 아침에 둘러본 호미곶 유채꽃은 소리없는 외침으로 탐방객을 반기는 듯했다. 초록의 캔버스에 점점이 아롱지는 노란색의 현란한 유희 너머 짙푸른 바다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수평선의 절묘한 안배는, 한 폭의 그림 그 이상의 감동이 여울지는 듯했다. 유채꽃물결의 둘레마다 수 갈래 밭두렁이 감성의 오솔길로 열리고, 너른 들판의 주인인양 고고하게 서있는 노송의 자태에서는 한 편의 시가 그림처럼 어리고 있었다. 탐방로 군데군데 포항에서 걸출한 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흑구 한세광 선생의 수필과 시를 발췌해놓은 작은 명판도 한결 어울려 눈길을 끌고 있었다. 노란색의 안부가 물결치는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는 농촌과 탐방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2024-04-03

꽃대궐 아파트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봄꽃 개화달력이 올해는 안 맞았나보다. 지구온난화로 해마다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며 일찍이 정한 전국의 벚꽃축제가 꽃 없는 축제로 치러졌다는 소식이다. 봄 같잖게 추웠고 꽃샘추위와 잦은 봄비로 햇빛에 민감한 벚꽃이 더디 핀단다. 대구에서도 유명한 수성못의 벚꽃도 영 시원찮다. 지난 주말에야 핀 벚꽃이 듬성듬성 예쁘지 않은 모양새다. 한꺼번에 화르륵 펴서 찬란하고 눈부시다가 일주일도 안되어 난분분 훨훨 날아 떨어져야 벚꽃인데 피다 만 듯 보기에 안타깝다.수성못 남켠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내가 이사왔을 때 이미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였다. 여기서 봄을 지낸 지 30년도 넘었으니 50년을 훌쩍 지난 낡은 아파트였다. 그런데 이 낡은 아파트의 봄은 동요 ‘고향의 봄’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봄이다. 높은 성채의 담과도 같은 도로변 석벽엔 치렁치렁 노란 개나리로 뒤덮여 있고, 그 담 위로는 목련이 줄지어 있다. 아파트 들어서서 오르면 벚꽃 터널을 지난다. 봄이면 으레 피는 꽃들인데 무슨 대수랴 싶지만 나무들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50여 년 전에 비록 묘목이라도 최소 아파트의 나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아름드리 큰 목련나무와 벚꽃나무의 아우라는 정말 압도적이다.내 나이 30대에 이사 와서 또 그만큼의 세월을 살며 늙었다. 10대의 아이들이 자라 일가를 이루어 떠날 동안, 아파트도 나만큼이나 노쇠하고 녹슬고 삐걱거리며 낡아졌다. 그러나 나무들은 해마다 겉껍질을 벗으며 더 자랐고 더 커지고 더 단단하고 더 굵어졌다. 4층 높이의 아파트보다 훨씬 더 큰 목련이 매단 꽃송이는 밤에 보면 마치 서양 궁전 볼룸의 커다란 샹들리에를 연상시킨다. 어린 손자는 두 손을 마주 모아쥐고 손가락을 위로 펼친 모양으로 꽃 흉내를 낸다. 벚꽃은 몽글몽글하게 한데모여 탐스러운 여느 벚꽃과 다르다. 가지를 축축 길게 늘어뜨려 불빛 축제 때나 봄직한 루미나리에 터널을 연출한다. 벚꽃송이를 가까이에서 본 손자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여모아 꽃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어떤 멜로드라마의 CG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떨어진 꽃잎이 만들어준 핑크 꽃길을 밟기 아까워하면서 또 며칠을 더 즐기는 봄꽃풍경이다.30년만 지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는 요즘이다. 이 아파트도 당연히 그런 논의가 오고간 지 한참되었으나 지지부진한 모양새로 또 몇 번의 봄을 지내고 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정떼지 못하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나무가 오래 살면 영험이 깃든다 했으니 저 나무들은 잘 알리라. 시뻘건 녹물에 벌레가 제집인 줄 아는 집, 겨울엔 몹시 추운 이 아파트의 불편함을 저 나무들은 잘 알리라. 사람이 늙고 병들면 갈 준비를 해야하듯, 사람이 지어 깃들어 살던 집도 낡고 허물면 떠나야 할 때가 됨을 잘 알리라. 이 아파트가 마땅히 헐리더라도 찬란하게 꽃을 피워주는 저 거대하고 당당한 나무들은 그냥 그대로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 자연이 만들어 낸 나무의 기운은 오랠수록 장대하니 외경심마저 든다. 이사를 나왔어도 봄을 제대로 즐기려 꽃대궐을 찾았다.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인다.

2024-04-03

허경영 식 공약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가혁명당 허경영 대표는 다소 엉뚱하고 기발한 처신으로 이목을 끄는 인물이다.그는 기초의원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각종 선거에 8차례 출마했다. 비현실적인 공약 등을 제시, 주목받았다. 22대 총선에 국가혁명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한 그는 비례후보 253명 중 가장 많은 481억5천800만원을 신고, 뉴스의 초점이 됐다. 3년 만에 무려 400억원의 재산을 늘렸다. 축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국가혁명당은 5대 공약을 내걸었다. 국회의원 100명 축소, 결혼 시 수당 1억원 지급, 출산 시 5천만원 지급,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70만원씩 지급, 18세 이상 국민 1인당 150만원 지급 등이다. 선거공보에는 ‘허경영이 맞았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따라하는 저출산 정책 예언’이라고 제시했다.그의 뜬금없는 정책은 관심 대상이다. 출산 장려금 등은 처음엔 손가락질받았다. 지금은 여러 정당이 따라한다.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 1억원 대출’을 총선 정책으로 내놓았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토요 휴무제’, 2007년 17대 대선 때 ‘노인수당’ 공약을 제시했다. ‘허무맹랑하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토요 휴무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됐다. 노인수당은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실현됐다. 시대를 앞서 간다는 평가가 나왔다. 허경영이 맞았다.‘역시 허경영’‘허경영은 선지자인 듯싶다’는 등 반응이 쏟아졌다. 허경영은 이번에 정당제도와 수능 폐지, 유엔본부 판문점 이동 등 공약도 내놓았다.황당해 보이던 그의 정책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되레 예지력이 있다고 평가해야 할 판국이다. 허경영의 혁명이 어디까지 계속될 지 궁금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03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장규열 고문 영국 시인 엘리어트(T.S. Eliot)는 이렇게 적었다.‘사월은 잔인한 달, 죽었던 땅에 라일락이 싹을 틔우고, 기억과 소망이 뒤엉키며, 잠자던 뿌리가 봄비로 잠을 깨지만.’ 시인은 왜 그렇게 노래했을까. 모든 게 살아나는 멋진 사월을 그는 어째서 잔인하다고 노래했을까. 벚꽃이 피고 목련이 올라오는 사월은 아름답지 않은가. 따듯한 햇살 아래 서 있기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동면에서 벗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기적을 목격하는 사월은 신비롭지 않은가. 그럼에도 시인은 사월을 잔인하다고 못을 박는다.시의 제목이 ‘황무지(The Waste Land)’였다. 돌아온 새봄이 눈부시겠지만 황무지의 입장에선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모든 게 상대적이다. 봄이 온다고 한들 풀 한 포기 올라올 턱이 없는 황무지로서는 한겨울 찬바람이 차라리 공평했던 터이다. 사방이 모두 죽어버려 다시 살아날 기미조차 없는 곳에서는 겨울 눈밭이 오히려 포근했을지도 모른다. 봄이 되어 사방이 모두 기지개를 켜는데 아직도 황망하게 먼지만 날리는 땅에게는 잔인할 뿐이었던 모양이다. 황무지의 입장은 누구의 모습이었을까. 시인은 무엇을 빗대어 그렇게 이 시를 썼을까.시인의 눈에 봄이 잔인했을지언정 돌아온 사월은 여전히 아름답다. 포근하고 따사로운 햇볕이 고향의 들판을 생각나게 하고 꽃향기 봄기운은 마을어귀 시냇물 소리를 들리게 한다. 세상은 총선판. 누군가는 꿈을 안고 출사표를 던졌겠지만 세상살이는 아직도 고단하다. 확성기가 노랫가락을 길거리에 뿌려대지만 보통사람의 하루하루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사거리 후보자의 구십도 인사가 오늘만 굽신대는 헛수작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외치는 구호 가운데 일상을 실제로 나아지게 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홀리듯 내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시민들에게 사월은 어떤 달인가. 마지막 몇 날이라도 진정이 실린 선거판을 만나고 싶다. 찾아온 사월이 잔인하지 않으려면 후보들은 어떤 마음으로 선거전에 나서야 할지 헤아렸으면 싶다.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길거리에서 외쳐본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는 허물어진 교권과 쉽지 않은 학교폭력으로 무너져 가는데 선거가 좋은 대책을 찾아올 수 있을까. 세상은 빛처럼 달아나는데 선거판은 지난 세기 모습으로 저러고 있는지. 과거를 들추면서 악다구니를 하는 사이에 우리의 내일은 누가 살피고 헤아릴 것인지. 출사표를 던진 이들에게 생각이 없다면, 표를 쥔 유권자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터. 마지막 며칠이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무슨 생각으로 선거판에 나섰는지 가늠해야 한다.나라살림이 바로 서고 서민경제에 숨통이 트이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다음세대 교육과 보통사람 일상에 희망이 보이고 기대가 실리려면 누구를 세워야 하겠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생각없이 거수기처럼 던지는 한 표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우리의 사월이 그래도 잔인하지 않으려면, 총선의 민심이 어떻게 일해야 할 터인지 생각해야 한다.

2024-04-03

TK서도 조국혁신당 바람, 과연 정상적인가

조국혁신당이 TK(대구경북)에서도 약진하고 있다니 놀랍다. 경북매일신문이 최근 잇달아 실시한 4·10총선 선거구별(경산, 포항 남·울릉, 포항북구)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위성정당을 제치고 국민의미래에 이어 모두 2위를 차지했다. 총선이 정권심판론으로 흐르면서 ‘반윤(윤석열)비명(이재명) 결집’ 현상이 낳은 결과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정상적인 사고로는 ‘돌풍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국 대표 자신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조 대표 스스로 ‘감옥에 가면 책 읽고 운동하겠다’는 상황이다.그저께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인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의 아들을 포함한 세 자녀가 모두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같은 당 비례대표 후보인 이규원 전 부부장검사는 최근 검찰에 사직서를 내기 직전까지 23개월 동안 출근하지 않으면서 급여로 1억여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박은정 전 부장검사도 검찰에서 해임되기 직전인 최근 21개월 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1억여원을 급여로 받아 논란이 됐었다. 특히 박 후보는 남편이 변호사 개업 1년 만에 수임료로 약 40억원가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전관예우 비판이 일자 “전관예우를 따지면 160억원은 벌었어야 한다”고 해명해 국민적 반발을 샀다.제대로 된 후보 검증조차 없이 급조한 조국혁신당이 상승세를 타는 것은 여권이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극심한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의정갈등과 용산발 이종섭 주호주대사·황상무 대통령실 수석 논란이 윤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을 가속하면서 총선판세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이제 유권자의 선택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권자들은 일단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접고, 이성적인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누가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후보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사회적 지탄을 받는 인물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면 대한민국 미래는 희망이 없다.

2024-04-03

아시아 이주 허브 꿈꾸는 경북형 이민정책

경북도가 외국인 인재의 유입과 사회통합에 이르기까지 전주기를 지원하는 경북형 이민정책을 2일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민자 유치부터 사회통합에 이르는 과정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한 것은 경북도가 처음이다.경북도가 외국인 이민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에 대응할 좋은 방안인 데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경북으로선 단기간에 인구를 늘리는 방안으로 외국인 이민정책을 좋은 돌파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경북도내에는 2022년 기준 외국인 주민 수가 10만4천여 명으로 도내 전체인구의 약 4%다. 2011년 5만여 명과 비교하면 2배 가량이 늘었다. 외국인 유학생과 농업 및 산업인력의 수요 증가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경북도의 이민정책은 선제적이면서 앞선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전국 처음 시도하는 이민정책이란 점에서 가장 앞서고 모범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경북도가 말한 대로 아시아 이주 허브가 되기 위해선 뛰어난 정책이 필요하다.또 내친김에 이민청의 경북 유치도 노력해 볼 일이다. 이민청 설립은 중견기업계를 비롯 경제 전반에서 사회적 인력난 해소를 위해 강력히 요구해 온 과제다. 정부도 적극적 검토 단계에 있고, 4·10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경북도가 앞서 이민정책을 만듦으로써 이민청의 경북 유치의 당위성도 생긴다. 무엇보다 지방소멸이 심각하고 이주민 수요가 많은 경북에 이민청이 들어서야 하는 것은 합당하다. 지역균형발전에도 맞는 선택이다.경북도는 이민정책의 3대 전략으로 △인재유입에 의한 경제 활력 제고 △안정적 정착 시스템 구축 △개방사회 조성을 내세웠다. 특히 외국인의 도내 정착을 돕는 포용적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수 성향의 지역에 외국인을 수용할 정책적 배려는 외국인 유입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2024-04-03

나무의 시간

정미영 수필가 봄바람이 고즈넉한 숲을 흔들어 깨운다. 돋을볕의 줄기들이 나무 사이로 퍼져나가면 밤사이 내려앉았던 어둠이 서둘러 제 갈 길을 떠난다. 나뭇가지들은 따뜻한 바람의 손길이 닿자마자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뜨리느라 분주하다.나무들은 오래 전 각인된 유전자의 기억으로 봄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대대손손 수천 년을 지탱해 온 나무의 저력이 새삼 경이롭다. 무리지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오랜 세월의 흐름을 건너왔겠지.나는 봄맞이를 하려고 나무 앞에 선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환한 얼굴로 나무를 마주하고 있다. 나무는 해마다 세찬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매서운 추위에도 씩씩하게 견뎌낸다. 나는 그러한 나무들을 보면서 지난겨울에도 봄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봄바람이 불어와 얼었던 계곡물을 녹이고 나목의 수피를 봄기운으로 물들일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나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꽃 피는 봄의 따스함,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의 열정과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의 쓸쓸함, 무채색 겨울 숲속에서의 고요를 떠올린다. 잊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은 나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어느 한 계절 동안 내 삶에 모진 풍파가 찾아와 내가 침잠하고 바닥을 헤매다가도, 언젠가 다가올 앞날에는 희망이 두 팔 벌리고 안아주겠지, 나를 기대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소설을 쓰는 K작가가 이탈리아를 다녀오면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판타레이(panta rhei)’가 적힌 냉장고 마그넷이었다. 냉장고에 붙여 놓고 오며가며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요 며칠 생각했다. 나무처럼 판타레이(panta rhei)를 잘 증명하는 존재가 있을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했다. 매일 찾아오는 24시간의 하루도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 내일의 하루가 다르듯이, 나무가 일생을 견뎌내는 시간을 지켜보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나무의 시간은 계절에 따라 변곡점의 연속이다. 뿌리가 땅 속 깊이 뻗어 있고,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생명력을 과시하는 동안에는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내적 성장을 도모한다. 나무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면 알 수 없다. 나무의 하루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순간 생장점을 성장시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의 내적 성장도 때로는 나무를 닮아 천천히 이루어져야 되리라.북 트레일러 강좌에 등록했다. 몇 번의 수업을 들은 뒤, 복습하려고 휴대폰 앱에 들어갔다. 제작을 위해 알아야 되는 개념과 요소를 기억해 내며 고군분투했다. 19초 영상을 만드는데 5시간이 걸렸다.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1초 단위로 크롭, 키프레임, 페이드 등의 다양한 기법을 작동시켜야 했고 어떤 배경과 사진이 어울릴지, 글씨체와 음악은 무엇이 좋을지를 선택하는데 고민했다. 서툴고 어려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느 순간 배움의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무게가 비례해지며, 수시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북 트레일러 제작법을 능숙하게 배우고 싶었다. 강사님께서 나의 책 ‘사계’로 영상을 제작해 오셔서, 그것을 표본으로 매시간 수강생들과 수업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잘해 내고 싶은 마음이 늘었다. 또한 다른 작가의 책도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욕심이 생겼다. 배움의 속도가 느린 나를 배려와 인내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강사님과 다른 수강생들께 미안함이 커질수록 마음이 앞섰다.나무의 시간을 닮고 싶은, 햇살 고운 봄날 오후다. 나무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며 나의 시간을 투영해 본다. 나의 성장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배운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2024-04-03

스마트 세상의 이모저모: 버스 정류장

현대사회에서 대중교통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이 무엇인지 인공지능 코파일럿(Copilot)에게 물어보았다. “현대사회에서 대중교통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은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교통 복지와 편의를 제공하며 도시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소프트웨어 발전과 함께 꾸준한 발전 덕분입니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도 많은데 버스 정류장이 아니겠냐고 다시 물으니, 마지못해 수긍해 주는 듯한 답변이 나온다. “버스 정류장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이 더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지역 사회의 이동성을 지원하고, 지역 간 연결을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지역 특성과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대중교통이 더 대표적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버스 정류장 하면, 오래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초콜릿 박스를 들고 앉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거나, 남녀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등의 낭만적인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의 버스 정류장은 그렇게 긍정적인 감성의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얼마 전 수도권 도심의 버스 정류장에 노선별 대기판을 새로 도입했다가 오히려 퇴근길 대란을 겪은 사례가 소개되었다. 30~40미터 길이의 정류장에 1미터 간격으로 13개의 노선별 대기판을 설치하여 버스는 정해진 위치에만 서도록 변경했다. 그 결과 퇴근길 버스 정류장이 1천여 명의 탑승 대기자로 가득 찼고, 지정된 대기판 앞에 정차하기 위해 기다리는 버스들로 인해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져 결국 9일 만에 운영을 중지하게 되었다. 기차나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다른 차들과 도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 후 부근에 정류장을 추가 개설하여 버스 정차 위치를 전후방으로 분산하고 노선을 일부 변경하는 등의 일대 교통 혼잡 해소 대책을 실시했다. 다행히 얼마 전 버스 운행 시간이 최대 13분 줄고, 퇴근 시간대 정류소 밀집도가 약 56% 줄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해결책을 고안하고 시행하는 과정에 담당 부서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이 된다.버스 정류장에 스마트 기술이 더해지면서 단지 승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도심의 매연과 극한의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쉘터’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버스 정류장이 스스로 주변 공기 질을 측정하고 냉난방과 공기 청정을 실행한다. 큼직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버스 노선과 다음 도착 버스 정보를 대기자에게 알려주어 미리 탑승 준비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쉘터 안에 장애인이 대기 중이라는 것을 가까운 저상버스에 미리 알리기도 한다. 공항 라운지처럼 버스 대기자를 위한 별도의 라운지가 운영되는 곳도 있다. 추위나 무더위, 나쁜 공기 속에서 몇십 분씩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한편,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줄여 주는 노력도 있다. 일부 수도권 광역 노선에서는 앱을 이용한 좌석 예약제가 시행 중이고, 4월부터는 경기도 내 다른 지역으로 확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앱에서 원하는 버스, 내리는 곳, 타는 곳을 순서대로 선택하면 해당 노선의 기점 출발 60분 전까지 손쉽게 예약할 수 있다. 버스 이용자는 출퇴근 시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사전에 예약해 둔 버스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고, 버스 운영자 입장에서도 사전에 이용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으니, 이용자와 버스 기사 모두에게 편리함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곽지영 태재대학교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장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혹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버스 이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지, 예약자와 현장 탑승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기술의 적용 뒤에는 항상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앱을 통해서 뿐 아니라, 버스 정류장이나 별도의 대기 공간에서도 일종의 ‘현장 예약’이 가능해야 할 것 같다.예를 들어, 어르신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큼직한 글씨의 예쁜 번호판을 버튼으로 만들어 배치해 두고, 엘리베이터처럼 꾹 누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줄서기가 된다면 어떨까? 자신이 선택한 버스가 만석이라면 그 다음 버스를 몇 분 더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도 나올 것이다. 큼직한 디스플레이에 아이들도 알아보기 쉬운 그림으로 버스 운행 노선과 좌석 예약 상황을 보여주고, 몇 개의 탑승구 앞 디스플레이에 버스의 실시간 위치를 기반으로 다음 정차할 버스 번호가 표시된다면 탑승객들은 눈치보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버스 번호가 표시된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 기사들에게는 정류장 도착 전 자신이 정차해야 할 정류장의 위치와 대기 중인 탑승 인원이 표시되니 미리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버스 정류장이 인공지능 코파일럿은 물론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마트 세상에 걸맞은 모습으로 계속 변모해 나가야 할 것 같다. 특히, 실제 운영 상의 어려움을 미리 예측해보고 디테일 속에 숨은 악마가 없도록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2024-04-03

新지방시대를 주도할 포항의 ‘실천적’ 전략

이재훈 전 경북테크노파크원장 경북 제1의 도시이자 환동해 거점도시 포항은 경제적,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높고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도시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정부에서부터 포항을 거점으로 하는 여러 발전전략이 기획되기도 했다.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시절 포스코는 포항 지역을 광역신도시로 만들기 위해 인공섬 국제공항과 1천만평(3천300만㎡) 흥해 배후도시 건설 등을 포함하는 종합발전계획을 구상한 바 있으며, 김영삼 정부시절에도 포항을 한 축으로 하는 환동해 경제권에 대한 발전계획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는 않았다.이같은 여러 계획 중 하나라도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지금 포항의 모습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한다.얼마 전 지역방송사에서 방영한‘新지방시대 포항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특별대담 프로에서 역대 정부의 지방 발전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재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이 출연해 포항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 지방시대를 주도할 포항의 역할 등을 심도있게 진단하고 논의했다.이 자리에서 우동기 위원장은 포항의 강점을 기업도시, 대학도시, 항만도시로 정의하며 현재 많은 지자체가 인구감소 등으로 지방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포항은 오히려 인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고 평가했다.포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의 쌀인 철을 생산하면서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며 눈부신 국가 경제발전을 이끈 글로벌기업 포스코가 소재하고 있다.또한 최근에는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이차전지 관련 기업을 비롯한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 관련 기업들이 자리 잡으며 투자를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이는 포항시가 그간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철강산업의 침체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이차전지를 비롯한 신산업 육성 정책을 꾸준히 실천해 온 덕분으로 이제는 철강도시에서 배터리도시로, 나아가 바이오 신산업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에서 7조4천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기업의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인구 증가 요인으로 작용해 살기 좋은 도시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또 포항은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을 중심으로 주변 1시간 거리 내에 경북대를 비롯한 DGIST, UNIST 등 수도권에 버금가는 우수대학이 있고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첨단 RD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어 우수한 인력이 풍부하다.이 밖에도 환동해 거점항만인 영일만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TSR)가 연결될 경우 북방경제의 중심이 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포항은 분명 여느 지방도시와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포항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의 모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기업, 대학, 지역주민이 함께 협력하여 현 정부의 핵심지역정책인 기회발전특구와 교육특구 등을 유치하여 이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실천력(實踐力)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포스코는 인력이 없어 수도권에 대규모 미래기술연구원 분원을 설치한다는 수도권 중심의 논리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 우수인재를 포항 본원으로 유치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등 지역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포스텍은 철강, 이차전지에 이어 새로운 포항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요람이 될 의과학대학 설립으로 우수인재를 지역으로 유치하는 등 지역발전에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실천적 역할이 요구된다.이러한 기업과 대학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업가적 지방정부인 포항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조화를 이끌어내고 지역민들은 지역발전의 주체로서 포항이 가진 가치와 잠재력에 기반한 지역발전전략을 실천함으로써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포항이 신(新)지방시대를 주도해 나가길 희망한다.

2024-04-02

여권에서 ‘윤석열 못 지켜준다’는 말 나온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심이 등을 돌리자 여권 내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PK(부산경남) 지역 총선 최전방인 낙동강벨트에 출마한 조해진 후보(김해을)는 지난주 “총선에서 참패하면 보수 세력도 야당의 공격에서 윤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비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지지기반인 PK지역 3선 중진의원의 입에서 ‘지켜주지 않겠다’는 험한 말을 들은 윤 대통령으로선 섬뜩한 기분이 들 것이다.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 혁신당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것은 오래됐지만, 여권 내부에서 윤 대통령 신상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거론되는 상태다. 윤상현 후보(인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여당 중진들의 거친 발언은 총선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만약 현 판세대로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국회의석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장악하게 되고, 국가 미래는 예상할 수 없는 혼란 상태로 가게 된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자신의 사저를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윤 대통령과의 단합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당정분열을 예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파동’으로 당시 새누리당이 다 이긴 선거를 지고, 자신은 탄핵까지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말고 원팀이 돼 총선위기를 극복하라’는 마음속 얘기를 특히 윤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현재 당정 간 갈등을 더 악화시킬 첨예한 현안은 의료대란이다. 나는 그저께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2천명 증원’의 불가피성을 장시간 역설한 것은 오히려 의정갈등을 더 악화시켰다고 본다. 의료개혁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현안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환자들의 목숨이 걸린 사회혼란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은 민심이반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여권내에서는 최근 의대증원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태도변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정부 장관 출신인 권영세 후보(서울 용산)는 “2천명 증원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고,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2천명 증원을 성역으로 남기면서 대화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다들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여당후보 지원에 나선 유승민 전 의원도 “2천명 숫자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 눈에 오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여당 일각에서는 현 판세대로 선거일을 맞으면 100석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야권의 대통령 탄핵과 개헌 추진에 맞서기 위한 저지선이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독선적인 모습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본 선거일이 아직 일주일 남아있기 때문에 판세는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2024-04-02

TK총선에서 무소속·야당 당선자 나올까

4·10 총선을 눈앞에 둔 지난 1일 국민의힘 경북도내 주요후보들이 자신의 선거구를 벗어나 경산에 모여 자당(自黨)후보 유세를 지원하고 있는 모습은 TK(대구·경북)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당 공천이 곧 당선을 보장하는 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경산만 열세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경북선대위 보직을 맡은 송언석(김천)·임이자(상주 문경)·김정재(포항북)·정희용(고령 성주 칠곡) 후보 등이 한꺼번에 타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에 근무했던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와 무소속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합을 하는 경산 선거구는 TK지역 최대 격전지로 꼽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친박좌장인 최경환 후보가 아닌, 조지연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30대 정치신인인 조 후보와 박근혜 정부 실세이자 4선 출신 최 후보 간의 경쟁은 전국적으로도 시선을 모은다. 경북매일신문이 지난달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 최경환 후보가 42.4%의 지지율을 얻어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33.8%)보다 한발 앞서있는 상태다.‘5·18 폄훼 발언’ 논란으로 여당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변호사가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 중남구도 국민의힘에서 전략공천한 김기웅 후보와 민주당 허소 후보 간 3파전이 벌어져 누가 당선될지 예측이 힘들다. 이곳은 TK지역에서 드물게 민주당 후보의 지지세도 만만찮다. 보수진영 후보간의 표 분산으로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어제(2일)는 민주당 김부겸 선대위원장이 이곳을 찾아 허소 후보 지원유세를 하기도 했다. 공식 선거운동 이후 중량감 있는 민주당 인사가 대구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사전투표를 감안하면, 이제 선거판세가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TK지역 최대격전지로 꼽히는 경산, 대구 중남구 선거구에서 무소속 또는 야당 출신 당선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2024-04-02

조용한 TK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22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열기를 뿜어대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만이 역대급으로 조용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국민의힘 절대 우세지역이기 때문에 선거 분위기가 초반부터 맥이 빠진 꼴이다.보통 투표일 일주일 정도면 선거 열기가 한창 달아올라야 할 판인데 거리는 선거 현수막만 요란할뿐 선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다. 존재감 있는 여당 후보를 만나볼 수 없기는 이전 선거 때나 마찬가지다. 야당 후보는 인물난으로 애초부터 경쟁 구도가 안 생겼다.일각에서는 3무(無) 선거라 부른다. 후보가 내건 공약도 없고 ‘공천이 곧 당선’으로 생각하니 경쟁도 없다. 유권자 역시 선거에 관심이 없어 무공약, 무경쟁, 무관심의 3무라는 것이다.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직업,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주의에서 기득권을 응징할 수 있는 제도로 이보다 소중한 기회는 없다.중국이 홍콩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작년 12월 치러진 홍콩 자치구 구의원 선거는 최종 투표율이 27.5%로 선거 사상 가장 낮았다. 직전 구의원 선거가 71%의 투표율을 보인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친중국 인사들로 채워진 후보들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사라진 때문이다.당선을 ‘따 놓은 당상’처럼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는 TK지역 여당 후보들에게 조용한 선거가 과연 다행스러운 일일까. TK지역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올지 두렵다. 지금이라도 여당 후보들이 나서 선거판을 선거판답게 조용한 선거판을 뒤집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02

경북도 1조펀드, 벤처산업 육성 마중물 되길

경북도내에는 포항 벤처밸리와 경산 임당유니콘파크, 구미 스타필드 등 3곳의 벤처기업단지가 육성되고 있다. 2021년 준공한 포항 벤처밸리는 포스코그룹이 제2의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구축한 스타트업의 요람이다. 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방사광가속기 등 2조원 규모의 연구시설과 5천여 명의 연구인력이 갖춰진 국내 최대 연구단지 중 하나다. 작년 12월 착공한 경산 임당유니콘파크는 1천억원을 투자해 2026년까지 창업공간과 지식산업센터를 만든다. 영남권 최대규모 창업, 벤처생태계 허브로 조성될 예정이다. 구미의 스타필드는 현재 계획 단계에 있다.경북도가 벤처단지에 입주하는 참신한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해 1조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한다. 올해부터 2028년까지 5천억원, 2034년까지 1조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해 혁신기술이 있는 기업이면 누구나 창업과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벤처산업은 국가 첨단전략산업의 하나로 집중적이고 서둘러 육성돼야 할 분야다. 그러나 최근 벤처투자업계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으로 혹한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벤처투자 생태계 확대 조성 노력에도 기업이 늘지 않는다.전경련 조사에 의하면 최근 5년사이 한국의 유니콘기업 비중이 2.2%에서 1.2%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미래 먹거리산업인 벤처산업 육성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관심을 갖고 비중있게 육성해야 할 분야다.경북도의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투자펀드 조성은 이런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전체 펀드의 일부를 출자하면 그 공신력을 바탕으로 금융기관 등이 추가로 출자해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게 하는 방식이다.포항과 구미는 경북을 대표하는 산업도시며 경산은 대구와 인접해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경북도가 중소·벤처기업의 투자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준비한 지스타(G-Star) 펀드가 스타트업 기업들의 성장 마중물이 되도록 집중적이고 세심한 관리가 있어야겠다. 지역경제 활성뿐 아니라 인재의 지방 유입에도 도움이 된다.

2024-04-02

임신 전후 건강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대한민국 출산율이 0.7이하로 줄어들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주원인은 결혼하는 인구가 줄어서이고 결혼이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 같지 않고 자녀양육의 경제적, 정서적 부담, 자녀의 교육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결혼이 줄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놓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그 외에도 불임으로 인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임신 전 부부 건강 및 임신 중 건강 관리에 대해 소개한다. 임신 전 관리는 부부 서로가 아이를 잘 가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남녀의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지 수정이 잘되고 임신이 잘 된다. 그리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난다.서로의 일이 끝난 후 저녁 식전 혹은 식후 같이 운동을 해야 한다.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걷는 것이 좋으며 근력운동을 해도 좋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정신적 교감을 쌓는 것도 좋다. 꾸준한 운동은 각자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육체가 튼튼해지면 정신도 건강해진다. 걸으면서 하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정신적 교감을 든든하게 한다. 같이 사는 동안 한 몸이라 생각하고 같이 운동하고 대화를 많이 나눈다면 부부관계에서의 교감도도 높아지고 육체적 정신적 튼튼함은 건강한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엄마의 몸에 아이가 생기면 더욱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우선 음식을 많이 가려야 하고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중요하다. 매운 것은 절대 먹지 말고 자극적인 음식도 멀리해야 한다. 임신하면 특정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일반적인 음식은 먹어도 되나 매운 음식은 절대 금해야 한다. 먹고 싶으면 약간 입맛만 돌게 한 두 숟갈 정도만 먹어야지 너무 많이 먹으면 산모와 태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신을 하면 운동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가벼운 산책을 자주 하고 집안일은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임산부라고 어떤 일도 안하고 퍼질러 있으면 산모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일상적인 가정생활과 운동은 해야 한다.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 부인과 시간을 보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정신의 안정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봄이나 가을철엔 몸살이나 감기가 올 수 있으니 옷을 얇게 입고 다니지 말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아기는 엄마가 먹는 것을 먹고 엄마가 운동해서 건강해지는 만큼 건강해진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인 대상으로 엄마의 영양상태에 따른 아이의 건강을 조사한 자료가 있다. 이를 보면 산모가 잘 먹고 건강할수록 태어난 아이는 건강하고 나이가 들어서 성인병이 올 확률이 낮다. 자식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나에서 자식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를 위해 임신 전 임신 중 건강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나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고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다.

2024-04-02

3년 내 사장자리 넘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현명한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Y리더십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다. 21세기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말하고 지원하는 Y리더십이다. 상대를 진정 공감하게 하는 능력은 현대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조직의 경영자, 관리자, 리더들에게 You 관점의 Y리더십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낸다.MB정부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현대배관은 포스코와 관련이 없는 첫 혁신지원을 받는 기업이 되었다. 배전용 전기회로 개폐장치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배관은 원료 창고와 1차 가공, 2차 가공, 완제품 생산 공장이 있고 생산 물류 흐름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창업주 Y씨(당시 63세)는 영업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을 못 믿어 7년 더 사장하고 넘겨주겠다고 했다. 필자는 재무만 쥐고 3년 내 넘겨주라고 했다. 한 달 반쯤 지나 양주시내 조용한 자리에서 3년 내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아들을 생산 이사로 발령 내게 하고 3개 공장의 흐름을 잇는 ‘생산 물류 최적화’ 프로젝트를 맡겼다. 코흘리개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본 공장장들은 아들 말을 쉽게 들어주는 구조가 못 되었다. 생산 물류 최적화 활동 과정에 분석과 개선 기회를 창출하는 방법 등 전문지식을 심어주고 공장장들을 리딩 하게 했다. 처음에 진행이 잘 되지 않았지만 변화관리 교육을 병행하며 6개월쯤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났다. P-Q(Products-Quantity) 분석을 통해 Layout 설정과 창고 위치, 원료관리, 생산과정의 중간재 양을 적량화 하여 정체되는 상태를 개선해 나갔다. 작업장은 일을 쉽고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되었고 바쁨이 여유로 다가왔다. 원료 입고에서 제품 출하까지 강물이 흘러가듯 흐름화를 만들어 효율적인 생산체제로 변화되었다. 함께 참여한 공장장들은 젊은 30대 생산 이사를 인증하게 된다.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의 뇌에 넣는 일이라고 한다. 금수저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아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피하는 성격이었지만 잠재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업주의 기업 성공 지식과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주입시켜려다 보니 소통은 요원해 지는 것이다. 성공적인 생산 물류 최적화 결과를 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지속하게 했다. 이후 창업주는 회장이 되고 아들이 사장이 되었다.인도의 일곱 살 동자승은 야생 코끼리에게 책을 읽어주며 소통을 한다. 동자승은 코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했고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해주는 친구다. 현명한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상대가 주인공이 되어 선택하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질문에 답하며 성공의 결과를 만드는 동안 경영수업을 체득한 것이다. 일의 성공은 타이밍과 수용성에 있고 상대 관점에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2024-04-02

포항 기업혁신파크 유치, 새 도약의 기회

안병국 포항시의원 우리 포항시는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 및 인구 감소,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해왔고 노력하고 있다.특히, 기업혁신파크 유치는 포항시에서 급변하는 사회·경제환경에 맞춰 새로운 도시경쟁력 확보에 대한 기대와 공모 선정에 각별한 노력을 들였고 포항시의회와 함께 힘을 모은 도약의 결과이다.포항시는 지역대학과 산업단지를 거점으로 산업·연구기관·대학 등 글로벌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산학 연계·융합형으로 지난해 11월 기업혁신파크 공모사업을 국토부에 신청하여 올해 3월 27일 최종 결정 통보를 받았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산업·연구·관광·레저 분야 등에 걸쳐 계획적·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도시 개발·운영에 중점을 두고 국토의 계획적인 개발과 민간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목적이 있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이 스스로 입지 선정, 개발계획 수립, 투자, 개발, 사용 및 기업 유치 등 전 과정을 주도하고, 정부는 기반시설 조성 및 세제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는 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동대 일원에 54.7㎡(16.5만평) 규모로 들어서며, 부지조성 사업비는 2천565억원이다.사업기간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로 한동대학교, (주)에코프로, (주)포스코퓨처엠 등 7개 기관이 공동 제안하여 산학융합 캠퍼스와 기업육성을 위한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필자는 포항시에 기업혁신파크가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포항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며 에너지, 바이오헬스 산업도시로의 변모가 가시화됨에 따라 이는 작은 변화가 아닌 포항의 경제적, 사회적, 산학연의 지평을 확장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따라서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감소 예방에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수도권과의 격차 완화로 경제적 역외유출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그 결과,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악순환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앞으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간담회 개최 결과를 통해 4월부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현장실사 등을 통해 점검하고, 미진한 부분은 전문가 컨설팅 등으로 보완하는 등 기업 및 지자체와의 협력 유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이제 포항시는 거제, 당진, 춘천에 이어 기업혁신파크 선도사업지로 선정된 만큼, 지역균형발전의 초석이 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소통하며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성공을 위해 다음 몇 가지 고려 사항들을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양덕과 흥해 주민들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 대상지역 주민들과 소통은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것이 기업혁신파크 성공의 지름길이다.둘째, 기업혁신파크 성공은 입주할 실제기업들의 실제투자와 실입주를 이끌어내야 한다. 다른 지자체들이 내놓는 투자 유인책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앵커 기업인 (주)포스코퓨처엠, (주)에코프로와 한동대학교의 정책사업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셋째, 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유치 업종은 이차전지 에너지사업과 바이오헬스산업이다. 두 산업의 조화로운 융합과 균형있는 질서를 잘 활용해서 혁신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4-04-01

평북 방언으로 서정을 노래한 김소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평북 정주 출신인 김소월의 시에는 섬세한 향토 방언이 800여 개나 결 고운 무늬를 이루어 향토적인 전통 가락과 장단과 어울린다. 소월은 20년대의 문학 일상어와 평북 방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일상어로서, 모어로서 방언을 사용하였다. 소월은 시 작품에 평균 2개 이상의 방언 내지 방언 변이형을 사용하고 있을 만큼 방언을 풍족하게 시에 수용하였다. 방언을 표준어와 대립되는 관점에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어로 인지하였고, 자연스럽게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가장 전통에 근접한 서정시의 최고봉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소월이 사용한 북방의 언어는 개여울에 흐르는 서정적 울림의 샘처럼 마르지 않고 우리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김소월의 ‘진달래꽃’(매문사, 1925)에 실렸던 ‘기억’이라는 시 1연에서는 무려 5군데나 의미 해석이 어려운 방언 시어가 나온다.‘싀밋업시’, ‘실벗듯한’, ‘머리낄’, ‘슷고’, ‘잔물’, ‘해적이다’, ‘축업은’, ‘시메산골’, ‘하롯길’과 같은 시어는‘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고어이자 평안도 방언이다. 향토색 짙으며 이미 소멸의 길로 들어선 이런 시어는 해석하기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싀밋업시’는 ‘멋쩍게’라는 의미의 평안 방언인데 ‘평북방언사전’에도 보이지 않아 그 의미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싀멋업시’는 소월이‘팔베개 노래조’의 서사에서와 ‘시초’에서 사용한 시어이다. “무슨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망연히 있음”을 뜻한다고 이기문 교수의 설명을 듣자 겨우 시 문맥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실 벗듯한’은 ‘실’이 ‘뻐듯한’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벗듯한’으로 교열함으로써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머리낄’은 ‘머리카락’의 방언형이다. 그러나 시집‘진달래꽃’에서는 ‘머리길’로 교열함으로써 엄청난 오류를 범헀다. ‘슷고’는 “담벼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대어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을 의미하므로 ‘스치고’의 의미로 교열하면 좋을 듯하다. 가수 정미조가 가요로 불러서 80년대에 인기를 끈 노랫말이었던 소월의 시 ‘개여울’에도 많은 평북 방언이 보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에서 ‘잔물’이란 시어는 ‘작은 못’의 의미를 지닌 방언이다.‘해적이다’는 ‘풀따기’에도 보이는데 “무엇을 헤쳐서 들추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평안도 방언이다. 남부 방언에서도 ‘희적거리다, 해적거리다’라는 방언이 있으니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가 이젠 고어가 된 어휘다.김억(1939)편 ‘소월시초’‘님에게’라는 시에는 ‘축업은’(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님에게’)이라는 시어가 있다. ‘축업은(추겁은)’은 평북 방언으로 ‘추겁다, 추거워’로 변칙 활용을 하며 ‘축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미래사에서 출판한 ‘진달래꽃’(1991)에서는 ‘축업은’(‘님에게’), ‘추거운’(‘여자의 냄새‘)으로 달리 표기가 되어 있다. ‘추겁다’라는 방언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동일한 시어를 이처럼 서로 다르게 교열해 버린 것이다. ‘축축하다’보다 물기가 좀 더 빠진 상태를 ‘눅눅하다’라고 하는데 이 ‘눅눅하다’의 방언형인 ‘누겁다’ 역시 소월의 ‘오과의 읍’에 나타난다. ‘시 산’에서 보인 ‘시메산골’은 ‘두메산골’과 함께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이라는 의미로 오늘날까지 정주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의 길”이라는 뜻인 ‘하롯길’이라는 방언형도 이 작품의 외롭고 쓸쓸한 전경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모든 언어나 방언은 고도의 표현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세계의 언어와 방언이 많은 것은 경제적으로 낭비라는 주장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많은 경비가 지출된다는 근거에서다. 사실 세계에 언어와 방언이 다양하면 할수록 이에 대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언어의 다종성이 가져다주는 지적 축적이나 문화 창조의 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방언은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데 놀라우리만치 위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 방언이 사라지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 지식과 이해의 단위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우리가 향토 언어, 방언을 아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04-01

(비)일상의 공간 온천

지난 1월 29일 저희 일행이 향한 곳은 마쓰야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도고온천입니다. 도고온천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유바바 온천장의 실제 모델로도 널리 알려져있지요.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무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의 온천입니다. 이토록 유서 깊은 도고 온천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94년 서구식과 일본식을 절충한 양식의 도고온천본관이 건설된 이후인데요.이 건물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마쓰야마시 전체 가옥의 55%가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도고온천본관이 내부공사 중이어서 근처의 별관인 아스카오유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다리를 다친 백로가 도고온천에서 상처를 치유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두 건물의 꼭대기에는 모두 백로 조형물이 있었습니다.흥미로운 것은 도고 온천가에 일본의 문호인 나쓰메 소세키(1864~1916)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복원된 도고온천역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坊っちゃん, 봇짱)’(1906)에도 등장하는 봇짱 열차 실물이 전시돼 있었으며, 근처에는 8시부터 22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도련님’의 등장인물이 나와 움직이는 ‘봇짱가라쿠리시계탑’이 있었고, 도고온천 상점가에서는 ‘도련님’과 관련된 각종 미니어처와 봇짱 당고를 팔기도 했습니다.이것은 마쓰야마와 나쓰메 소세키가 맺은 인연의 결과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28세이던 1895년 마쓰야마의 보통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이곳에서 1년간 생활했는데요. 이때 고교 동창이자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와 교류를 나누었으며, 무엇보다도 소세키의 명작 ‘도련님’을 낳는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도련님’은 에돗코(江戸っ子,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 봇짱(도련님)이 마쓰야마의 학교에 부임해 장난이 심한 학생들과 도덕성이 결여된 선생님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쓰야마 지역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짓궂고 음험한 면도 있지만, 봇짱 역시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여기기에 마쓰야마 사람들이 더욱 부정적으로 보인 것인지도 모릅니다.이 작품의 첫 번째 문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親譲りの無鉄砲で子供の時から損ばかりしている.)”는 것인데요. 봇짱의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바로, 그 유명한 ‘무대포(無鉄砲, むてっぽう)’입니다. 결국 봇짱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교감에게 복수를 하고 도쿄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무대포인 봇짱이 살 수 있는 곳은 언제나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라고 칭찬만 해주며, 자신을 “끔찍이 귀여워해” 주는 기요가 사는 도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도련님’의 봇짱을 생각할 때면, 늘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 ‘나의 개인주의’(1914)가 떠오릅니다. 이 강연에서 소세키는 남의 흉내나 내는 ‘타인본위’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개인주의를 주장했는데요. 이때의 개인주의는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만 있는 주의”로서, 국가주의가 대세이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주목할 것은 소세키가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남들이 모르는 외로움을 낳는다고 경고한 점입니다. 실제로 ‘도련님’의 봇짱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마쓰야마를 떠나 도쿄로 돌아오지만, 곧 자신의 유일한 하인이자 친구이며 부모이기도 한 기요가 죽어 진정한 혼자가 되어 버립니다. 철저히 ‘자기본위’로만 생활했던 봇짱에게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도련님’에서도 도고 온천가는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봇짱은 “다른 곳은 뭘 보나 도쿄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온천만은 근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나 온천이 맘에 들었는지, 봇짱은 하루라도 온천에 가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토록 혐오하는 집과 학교와는 구분되는 비일상적인 장소가 아니었음이 곧 밝혀집니다. 사실 이곳에도 수많은 눈들이 있어, 봇짱이 경단이나 메밀국수를 먹거나, 욕탕에서 헤엄을 쳤다는 등의 사소한 사실까지도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도련님’에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일상의 괴로움과 모자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일상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일상의 자유로움과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하긴 일본에는 활화산만 70여 개에 이르며, 공식적으로 지정된 온천만 3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성상 일본인에게 목욕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련님’이 잘 보여주듯이, 일본인에게 온천은 극락과도 같은 별세계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숙한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04-01

대학이란 전쟁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3월이 끝났다. 대학의 3월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와 화사한 봄날이 어울려 빛이 나는 시기이지만, 올 3월 대학가에는 유독 피곤함과 우울함이 뒤엉켜 있었다. 주위의 동료들과 전화할 때마다 전쟁터 같은 대학에서 다치지 말고 살아남자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을 다시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시작은 개강과 함께 폭탄처럼 던져진 본부의 모집단위 광역화(안)이었다. 2025년부터 입학정원의 25%를 무학과 자율전공을 선발하겠다는 안에 대해 학내에서 수많은 문제 제기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본부는 어떤 이유인지 학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원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입학정원을 한 명만 내놓으면 모든 혼란에서 자유로운 학과에 선발되기 위한 이전투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전선은 함께 살아가는 동료와의 사이에 생긴다.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 대학에도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던져진 폭탄은 ‘글로컬 대학 30’사업이다. 작년에 이어 진행되는 이 사업에 전국의 모든 지역 대학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 우리 대학은 작년에 선정이 되어서 당장은 별 파도가 없지만 전국적으로 선정되기 위한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학교와 학교, 학교와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이 관건이 되는 사업이기에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작년에 선발된 대학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눈앞의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글로컬 대학’이란 간판이 갖는 위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 와중에 부산의 어느 사립대에서는 교수 근태 관리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근부를 작성하는 지침과 이를 어길 경우를 대비한 징계 규정을 만들었다. 명분은 연구와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지만, 교수 사회를 길들이려는 제도임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학교는 비판적 교수들의 재임용 거부 등으로 지역에서 제법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을 거울삼아 교수 길들이기가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대학이 대학(大學)이길 포기하고 취업 전문기관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한때 이 사실에 분노하는 교수들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이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교수가 취업률이란 지상과제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대학이 지켜야 할 학문의 자율성과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역할이 근본적인 한계에 처해있기 때문이다.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연구자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교육의 방식이나 보탬의 구체적 함의는 전공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를 부정하는 교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권력이 정한 연구와 교육만을 강제하는 꼴이다. 토론과 협의는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생활인으로서 교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2024-04-01

몸으로 쓴 리더의 조건

김규인 수필가 손흥민의 골에 이강인이 펄쩍 뛰어올라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 모습을 국민들은 얼마나 원했는지. 태국과 피파 순위만큼이나 큰 차이로 이겨서 기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대한민국 축구팀이 하나가 된 것이다. 조각난 팀이 한 팀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탁구 게이트 이후 런던으로 사과하러 온 이강인을 손흥민은 따스하게 맞아준다. “강인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는 인간적인 손흥민을 만난다. 이 한마디가 국가대표팀과 토트넘을 이끄는 주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더란 이런 거라고 조용히 몸으로 말한다.손흥민이 남모르게 지원한 무료 급식소가 40곳이라는 보도가 영국을 달군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고 시간이 나면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대학교에서 축구를 지도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온 그의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토트넘에서 슬럼프에 빠진 동료, 히샬리송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재기를 돕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밀려나 벤치에 앉아야 하는 냉엄한 프로의 세계에서 말이다. 어쩌면 서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주장이기에 앞서 따스한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그에겐 언제나 팀이 우선하는 것 같다.그런 가운데에도 매년 두 자릿수의 골과 도움을 기록한다. 이러한 바탕에는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실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돈으로 몸값을 결정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인간미 넘치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본다.2023년 수해가 발생했을 때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채수근 병사의 유가족에게도 그는 말없이 1억 원을 건넨다. 이러한 사실도 최근에서야 알려진다. 언제나 그의 선행은 남이 모르게 이루어지기에 뒤늦게야 다른 사람을 통해 알려진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도움만을 주려는 그의 마음이 요즈음 더 반짝인다.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고자 나온 사람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투표용지의 길이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는데, 그 길이만큼이나 출마자들의 비리도 끝없이 알려진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당선권에 다수를 차지하는 당도 보인다. 국민을 위해 남 앞에 나서는 사람들의 수신제가 후의 치국은 언제나 이루어지는지. 자신을 찍어달라고 내미는 손을 보며 리더의 조건을 생각한다.손흥민의 선행이나 남 앞에 나서는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그동안의 행동이 둘 다 남이 모르게 하는 데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손흥민으로 따스하게 데워진 가슴이 차갑게 식는다. 남을 배려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더 높은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닦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은 언제쯤 나올까. 국회의원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임을 잊은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쯤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리더가 나올까.

2024-04-01

대구국제안경전, 안경산업 재도약 발판 삼길

국내 유일의 국제 안경전시회인 2024년 대구국제안경전(DIOPS)이 3일부터 대구엑스코에서 열린다. 대구시가 지원하고 한국안광학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최근 수출 부진으로 흔들리는 대구 안경산업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올해 DIOPS는 350개 전시부스가 모두 매진됐다. 사전 등록한 국내외 바이어 수도 전년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8천여 명이 참관한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의 참관이 예상된다.특히 올해 전시회는 안경 브랜드 전문기업과 중국, 일본 등 국제적 명성의 유명 브랜드 기업도 대거 참여해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행사를 주관한 진흥원은 대구 안경산업의 기술 및 디자인 혁신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번 전시회부터 DIOPS 혁신상을 신설했다. 선정된 수상작은 국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 등 특전이 주어진다.대구는 안경산업의 태동지이자 우리나라 안경산업의 거점도시다. 북구 노원·침산동 일원은 일찍부터 안경특구로 지정됐다. 국내 안경업체의 80% 이상(500여 개 업체)이 이곳에서 기업을 영위한다. 2009년에는 노원동 네거리 1.1km 구간이 안경특화거리로 조성되고, 안경축제도 열린다. 또 진흥원을 통해 기업에 대한 디자인 및 브랜드개발, 마케팅 등도 지원된다.그러나 중국기업의 추격 등으로 최근 3년 사이 대구 안경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국내 수출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구 안경산업의 수출액이 품목에 따라 20∼30%가 줄었다.새로운 트렌드를 요구하는 안경산업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진흥원을 중심으로 지역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이번 전시회가 지역기업의 상품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신기술 개발에 대한 정보교류의 장이 되고 지역안경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 대구시도 “대구 안경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져 대구가 안경산업 중심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길 바란다.

2024-04-01

낯 뜨거운 박정희 비하 발언, 구미서만 분노?

국민의힘 구미지역 후보들이 지난주말 박정희 전 대통령 비하발언을 한 민주당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의 사퇴와 당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김 후보는 최근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자신의 막말 논란에 대해 “1940년대 관동군 장교로서 해외 파병을 다녔던 만큼, 확인된 바는 없지만 당시 점령지 위안부들과 성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역사학자로서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김 후보는 최근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 초등학생과 (관계를) 맺었을 수 있다”고 한 과거발언이 문제되자 다른 사람의 강의 내용을 재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한 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을 쏟아낸 사람이 제1야당 공천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김 후보는 이번 공천과정에서 비명계 박광온 전 원내대표를 꺾고 민주당 간판을 달았다. 국민의힘 강명구(구미시을) 후보는 지난주말 성명서를 통해 “김 후보의 해명은 박 전 대통령과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 모두를 비하하는 망언”이라고 했고, 같은 당 구자근(구미시갑) 후보는 “김 후보는 이재명 대표와 대학 동문으로 대표적 ‘찐명’이다. 유유상종이라더니 저열한 발언 수위도 함께하는 것인지…”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재명 대표를 조선시대 정조에 비유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는 몇년전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라는 책을 내면서 ‘정조가 이 대표의 대선 출마선언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썼다. 낯 뜨거운 아부성 글이다.구미지역 여당 후보들이 나서서 대구경북 지역민 상당수가 느꼈을 분노를 대변해 준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이 지역 여당 후보 중 민주당 공천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해 공론을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닫고 있다. 괜히 나설 필요없다는 생각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선거가 이런 분위기로 진행되면 이지역 투표율은 아마 역대급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2024-04-01

저마다 사는 길

방민호 서울대 교수 첫 방문인데, 뭘 사가야 할까?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다니, 옛날 같으면 크리넥스 티슈를 한 박스 가져가야겠지만 첫 만남에 영 어울리지 않는다.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결국 과일이다. 하필 과일 금이 엄청 올랐다는 때였다. 사과가 ‘금과’가 되었다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이날의 만남도 벌써 석 주는 지났다.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과일은 백화점 과일이 제일 맛있다는데, 들를 시간이 없다. 큰 슈퍼마켓에 들어가 사과, 딸기, 바나나, 천혜향 같은 것을 한 바구니씩 사니 값이 꽤 나간다. 무게도 제법이다.이제 들고, 선화동, 대전에서 가장 전통적인 동네, 하지만 시가지 중심이 둔산 지구로 옮아간 후 30년 동안 내리막길만 걸어온 동네로 간다. 거기에 그는 살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 그런 얘기를 듣고 자신만만했다. 선화동이라면, 광천식당이나 청양칼국수다 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나다니던 곳, 커서도 때만 되면 동창 친구와 만나는 약속을 정하는 곳이다.역사를 연구한다는 그는 나보다 대학 학번이 두 학번이 위로, 외교학과를 나왔고 법학박사였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모든 일과 멀어져서 역사를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내 옛날 동네 선화동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드디어, 나는 그가 사는 원룸 빌딩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밖으로 나온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어수선해서 맞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내게는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 잠깐 하고 자췻집, 하숙집을 이리저리 전전하며 스무 집 정도를 옮겨 다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전화 통화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나는 발 디딜 틈 없는 현관 바닥과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주방과 각종 원서들이 어지럽게 꽂혀 있는 거실의 책장을, 서서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이 원룸의 풍경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고 먹고 책을 꽂아두고 있었던 것이었다.어색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태연하게 자신의 거처로 맞아들인 그 사람. 무거운 과일 봉지는 베란다 쪽 바깥에 다른 짐 쌓인 곳에 팽개치듯 얹어 놓고 곧바로 그가 열중하고 있는 고구려, 발해, 몽골 이야기로 들어간다.나는 귀로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구사하는 러시아어, 몽골어, 만주어, 중국어, 아랍어는 몇 개도 알아들을 수 없다. 부지런히 듣고 있는 시늉을 하며 나는 속으로 나의 생각을 이어간다.참 희귀한 사람이군. 경륜을 감추고 책만 읽었더라는 허생이라기보다, 먼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역사를 밝히신 단재 신채호 같은 사람…. 이 사람의 공부 길을 계속해서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그런 것 같다. 세상을 사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돈을 따라가는 길, 지위를 구하는 길, 이름을 높이는 길….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른 길을 가는 분들이 있다. 없지 않다. 이들이야말로 사회의 빛이다. 소금이다. 이 글을 쓰는 때가 하필 선거 때다.

2024-04-01

박정희 능욕 파문

홍석봉 대구지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부정이 엇갈린다. 하지만 최근엔 군사쿠데타와 정치탄압 등 부정적인 측면 보다는 나라를 가난에서 구제한 업적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22대 총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능욕한 막말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김준혁 후보가 종군 위안부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능욕한 망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구미 시민과 정치권이 분노하고 있다. 김 후보가 2019년 2월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종군 위안부와 교사 시절 학생들과 성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을 언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에 국민의힘 구자근·강명구 구미시갑·을 후보는 성명서를 내고 “구미가 낳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하하는 망언이자,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며 김 후보의 사과와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김장호 구미시장도 SNS에 ‘더럽고 충격적인 망언을 들었습니다’라며 김 후보를 규탄했다. 대학교수라는 그의 직업과 양식이 의심받을 정도의 저급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박정희’ 논란은 그의 사후 수십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공정한 재평가가 아니라 질낮은 정치 공세의 단골 소재로 악용되고 있다. 박정희를 능욕하고 조롱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집단의 저열한 술수다. 정파의 이해득실을 위해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희화화로 폄훼되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름 없다.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엔 예술을 빙자한 능욕과 조롱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도 풍자를 넘어 능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저급한 막말은 현실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국민의 자긍심과 국격을 떨어뜨릴 뿐이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2024-04-01

민주당의 미래는 이재명인가, 조국인가

김진국 고문 22대 총선 최대 변수는 조국이다. 그의 출마로 전체 판세가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기울었다. 국민의힘이 상승할 때도 잘해서라기보다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진 탓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명계를 숙청하고, 친명계를 심으려 무리했다.민주당 주류였던 호남계와 친노, 친문들이 치명상을 입었다.이 대표는 민주당 주류가 아니었다. 꼬리가 몸통을 집어 먹으려니 소음이 났다. ‘비명횡사’와 함께 민주당 지지율도 추락했다. 충성도만 보고 자객들을 뽑았다. 검증에 소홀했다. 문제 후보가 속출했다. 서울 강북을에서 줄줄이 낙마한 정봉주·조수진 후보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계속 점수를 잃었지만,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과반은 최대 목표로나 삼을 만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압승할 것이라며 긴장을 늦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 호주대사로 보냈다. 굳이 선거를 앞두고 서두른 이유를 알 수 없다. 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 말이 발등을 찍었다. 평생 언론사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오만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이 무렵 조국혁신당이 출범했다. ‘비명횡사’로 등산이나 가려던 비명계 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실망해도, 투표할 이유를 찾았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냈다.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투표장에 나가면,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된다.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여론조사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국민의힘이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봐야 한다.야권 내부에도 새로운 긴장이 생겼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3월 셋째 주 33%이던 민주당 지지율이 넷째 주 29%로 떨어졌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8%에서 12%로 올랐다. ‘비례대표의원 투표 의향’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22%로 같았다. 조국혁신당이 앞서는 조사도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조국 대표는 창당 직후 민주당을 찾아가 이 대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 대표는 현재 20명으로 돼 있는 교섭단체 기준을 낮춰주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상승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역구, 비례, ‘몰빵’을 외친다. 박지원 후보가 조국혁신당 명예당원 하겠다고 덕담했다가 경고받았다. 소셜네트워크에는 조국 대표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가 조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경쟁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호남 지지가 절대조건이다. 광주 경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예상하는 사람이 적었다. 이인재 전 의원이 오랫동안 ‘황태자’로 행세했다. 그러나 광주의 선택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호남 유권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전략적이고, 집단적이다. 감정과 투표를 절제할 줄 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39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다. 이때 이인재 후보가 492만여 표를 가져갔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아 충청지역의 지원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정도이니, 다시 호남 출신 대통령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남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찾아냈다.비호남 출신 후보를 지원할 때 조건이 있다. 호남을 배려해달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마다 호남 인물과 기업이 호조를 보였다. 쉽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친노와 호남 세력이 주도권을 다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앙금으로 호남 표를 얻는데 고생했다. 안철수 의원에게 밀리기도 했다.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친명 일색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 호남 세력도 많이 밀어냈다. 이낙연·임종석·박용진…. 과거 야당 총재들도 비주류에 조금의 공간은 나눠줬다. 이번에는 주류를 바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조국 대표도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 대표가 당을 따로 만들어 돌아왔다. 특히 호남에서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높다. 선거 이후가 궁금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31

어제와 다른 오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하루가 다르게 태양이 일찍 떠올라 창천에서 오래 빛난다. 아침 여섯 시 무렵 동창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저녁 일곱 시가 지나야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생명의 환희와 약동(躍動)이 찬란하게 작동하는 눈부신 시절이다. 이런 날이 이어지면 누구나 들뜨고 조금은 흥분되기 마련이다. 접촉사고에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반면에 봄날은 아주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를테면 지난 목요일 내가 사는 고장 청도에는 온종일 비가 뿌렸다. 아침나절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한밤중까지 그칠 줄 모르는 것이다. 결국 그날 온종일 나는 잠과 벗하는 선택 말고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하되, 대체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상청도 민간 기상업체도 묵묵부답이다.그러다 금요일 아침나절에 피식, 하고 혼자 웃는다. 일일 누적 강수량 41.8mm라는 표기가 일기예보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차고 넘치는 때에 이토록 늦게 강수량 표기를 한다는 사실이 좀체 납득(納得)하기 어렵다. 나처럼 수량(數量)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인간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이기 때문이다.금요일 아침 경북대 교정에는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단체로 몰려들었다. 하얗고 발그스레한 벚꽃이 무더기로 하늘을 향해 몸을 연 것이다. 그것도 맹렬한 봄바람의 기세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무더기 개화를 시작한 게다. 매몰차게 불어닥치는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사하게 꽃잎을 열어젖힌 봄의 무수한 전령이 일제히 고함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다.온종일 비가 내려 두문불출(杜門不出)해야 했던 어제와 찬연(燦然)한 하늘과 드센 바람과 놀라운 개화가 공존하는 오늘의 차이를 현저하게 실감하는 실존의 봄날! 어쩌면 이런 까닭에 인간은 죽음을 경원하고, 생의 마지막 그날까지 살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삶을 향한 끈질긴 소망은 또 얼마나 처연한 것인가?!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변론’ 말미(末尾)에 독배를 마셔야 하는 소크라테스의 소회가 눈길을 잡는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죽으러 가야 하고, 여러분은 살러 가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나 가운데 누가 더 축복받은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입니다.” 이 대목은 대단한 무게로 우리를 덮쳐온다.누구나 삶이 죽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달리 생각한다. 그는 신의 가호를 받는 인간에게는 삶도 죽음도 차이가 없다고 확언한다. 죽음은 아주 깊은 잠을 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1601년의 햄릿의 독백을 그는 기원전 399년에 이미 선취(先取)하고 있다.어제를 어제로 보내고, 오늘은 오늘로 맞이하는, 삶은 어제로 보내고, 오늘은 삶이 아닌 죽음과 대면하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는 소크라테스. 그에게는 이토록 화려하고 눈물겨운 봄날이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하되, 어쩔 것인가, 이 찬란한 봄날을!

2024-03-31

만우절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이 모두가 바보가 된다는 만우절(萬愚節)이다.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재미있게 남을 속이면서 즐기는 날이다. 영어로 April Fool’s Day라 부른다.유래는 중세 프랑스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유력하다. 16세기 유럽에서는 1년의 시작을 부활절로 여겼다. 하지만 부활절 날짜가 3월 25일부터 4월 20일까지 들쭉날쭉한 바람에 프랑스왕 샤를 9세가 1564년 1월 1일을 새해로 선포했다.그러나 그런 사실이 백성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여전히 4월 1일을 새해로 알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들을 대상으로 놀리거나 조롱하던 것이 유래가 됐다는 것. 프랑스에서는 만우절 날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의 물고기’라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4월에 물고기가 유난히 잘 잡힌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 한다.유럽에서 시작한 만우절은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만우절 날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는 1957년 있었던 BBC 방송의 한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내보내 시민들의 전화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또 네덜란드 TV에서는 피사의 탑이 무너졌다는 보도를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국내서도 만우절을 핑계로 경찰서나 소방서 등에 거짓 신고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선거철 기간이라 혹시 거짓 신고가 있을까 걱정이 된다. 경찰은 만우절을 맞아 거짓 신고가 확인되면 엄격 대응하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 낭비로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우려해서다. 만우절을 생활의 활력소가 되게 재미있게 즐기는 것은 각자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3-31

대구와 경북서 안 팔린 주택이 2만가구 육박

국토교통부 주택통계 자료에 의하면 2월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6만4천874 가구다. 작년 12월 이후 석달 연속 증가세다. 그런 가운데 대구와 경북의 미분양 주택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는 2월 현재 미분양 주택이 9천927가구로 전국 1위며 그다음이 경북으로 9천158가구다. 대구와 경북을 합친 미분양 주택 수는 1만9천85가구로 2만가구에 육박한다. 전국 미분양 주택 수의 약 30%다.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대구와 경북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줄곧 내림세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의하면 지난주 대구는 19주 연속 하락세다. 하락폭은 -0.06%로 ·0.04%를 기록한 전국 평균보다 하락폭이 컸다. 특히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10주 연속 전국 최고다.경북은 미분양 물량이 많은 포항 북구가 -0.35%로 가장 하락폭이 컸고 구미(-0.09%), 경산(-0.08%)이 다음을 이었다.대구와 경북은 부동산 경기가 장기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 최근 대구에서는 P아파트가 완공 후 분양에 나섰지만 239가구 모집에 10%도 채우지 못했다. 대구에 미분양 주택 수가 워낙 많아 매수 심리가 살아나지 않은 탓이다. 집이 팔리지 않아 새 집을 구입하고도 이사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부동산 거래가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함에 따라 중개업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형편이다.정부가 최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미분양 물량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지방의 미분양은 CR리츠를 통해 매입해 안정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CR리츠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 후 우선 임대로 운영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분양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미분양 물량이 지방에 집중돼 있고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지방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침체 늪에 빠진 지방에 대한 부동산 대책은 시급하다.건설경기 부진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정부 대책이 피부로 느껴질 수 있게끔 실효성 있고 서둘러 시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2024-03-31

투표소관리 허술하니까 ‘부정선거’ 말 나온다

4·10총선 사전투표를 나흘 앞두고 전국 사전투표소에서 통신기기로 위장한 불법 카메라가 잇달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까지 대구를 비롯해 서울·부산·인천·울산·경남·경기 등 전국 사전투표소 40여 곳에서 발견됐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찰은 카메라를 설치한 피의자 중 한 명인 40대 유튜버를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남성은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사전투표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내부를 촬영한 정황이 확인됐다. 선관위의 사전투표소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이뤄져 민주당이 압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으로 부정선거 논란이 또 촉발돼 선거의 공정성 시비가 확산할까 우려된다. 선관위는 “무단으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투표하는 선거인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는 유권자의 투표 의사를 위축시켜 선거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선거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카메라 설치자가 정확히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지 간에 투표소에 몰래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선거관리를 방해하고 비밀투표의 보장을 어렵게 만드는 행위다.선관위와 경찰은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비밀선거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특히 정치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일부 유튜버들의 선넘은 행위를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 선관위가 오는 4일 사전투표소를 설치하는 날 다시 한번 시설 전반에 대해 최종 점검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사전투표소는 외부 장소에 설치되는 만큼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만약 불법 카메라가 사전에 발견되지 못한 채 이 유튜버가 과거처럼 투표장 출입 영상을 근거로 부정선거 주장을 할 경우, 선관위는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