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여 년 전 필자는 쎄씨, 키키 같은 하이틴 패션 잡지를 즐겨 보던 여고생이었다. 어느 날 잡지에 서 하굣길에 길거리 캐스팅 된 매력적인 고등학생 모델을 보게 되었고,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과 그녀의 매력에 대한 동경을 담아 팬레터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장을 받았다. 귀여운 글씨체의 손편지엔 네가 먹어보고 싶다던 계란빵은 서울에서는 홍대에 놀러갔을 때 먹어보니 꽤 맛있었다는 이야기와 남자친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모델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바로 배우 김민희 씨다. 지금은 홍상수 감독과의 관계로 인해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그의 팬으로 남아 있다. 배우로서의 그녀의 재능뿐만 아니라, 한때나마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첫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화제가 됐지만 더 화제가 된 것은 홍 감독의 옆에 있던 임신한 김민희였다. 홍 감독의 아이를 임신한 김민희는 지금은 만삭으로 올봄 출산 예정이라고 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씨의 관계는 약 9년 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불륜으로 간주된다. 홍 감독에게는 배우자가 따로 있으며, 그는 2019년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실패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 이혼 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책주의는 배우자가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만 이혼 청구가 가능하며, 이러한 사유가 있더라도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거나 혼인 파탄의 유책성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홍 감독의 아내는 이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법원은 그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9년간 동거하며 아이까지 갖게 된 지금 사실혼 관계는 인정될 수 없을까? 혼인생활의 실체를 갖추었더라도 중혼적 사실혼은 사실혼이 아니다.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다면 부부 공동생활의 외관을 갖추었다 해도 사실혼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김민희 커플은 사실혼 부부도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둘 사이에서 곧 아이가 태어난다. 부모의 관계가 법적 보호 밖에 있는 것과 다르게 이 아이의 경우는 홍 감독의 친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데 아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혼외자로 태어나겠지만 생부와의 인지 절차를 밟으면 친자 관계로 전환된다. 아이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모는 김민희, 부는 홍상수로 나올 것이다. 자녀로서 홍 감독 재산 상속도 받는다. 우리 법은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 이상 그 밖에 있는 남녀 관계를 혼인제도라는 울타리로 보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륜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권리는 외면하지 않는다. 김민희는 홍상수의 아내가 아니지만 태어날 아이는 홍 감독을 아빠라고 부르며 살 수 있다. 어른들이 문제지 아이에겐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