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절이나 궁궐 같은 곳을 다니다 보면 지붕 위에 동물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본다. 내 전공도 아니라 잘 모른다. 하지만 절 설명만 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간혹 절에도 보이기도 해 갑자기 질문할까 싶어 책을 통해 대충 외워두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해 생기면 신망을 잃기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을 보니 낯이 익지 않은 것을 보아 새로 온 보살이다. 대부분 절에 다니는 노보살은 바로 잊어버리는 터라 칠정례 같은 것은 수십 번 설명해도 “그게 뭔데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아침 예불 때 일곱 번 절하는 것을 칠정례라고 한다. 송광사같이 여덟 번 절하면 팔정례이고, 동화사같이 아홉 번 절하면 구정례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 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불자 한 분 왔다 싶어 기분이 좋았다.
“범종은 새벽에 33번 저녁에 28번 칩니다.”
“아닌데요. 아침저녁 전부 33번 칩니다. 바뀌었습니다.”
새로 온 보살이 치고 들어온다. 갑자기 당황스럽다. 내가 나이를 먹어 세상 바뀌는 것도 몰라 가장 기초적인 것도 몰랐다 싶어 바로 사과했다. 내가 몰랐다고. 집에 와서 왜 바뀌었는지 뒤졌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조계사에 스님에게 전화했다. 스님조차 뜬금없는 나의 말에 당황한다. 알아보고 전화해 주겠다고 하곤 전화를 끊는다. 이내 전화 와서는 그런 일 없단다. 확실하냐고 몇 번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다음 순례 때 바뀌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려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 후, 볼 수 없었다.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을 절에 가면 많이 본다. 이걸 전문용어로 서수상(瑞獸像)이라고 한다. 서수상을 설명하면서 지붕 위에 있는 토우상에 대한 설명을 같이해 주었다. 저것을 잡상(雜像)이라고도 하고 ‘어처구니’라고도 한다고 설을 풀었다. 그러자 설명을 듣던 보살 한분이 어처구니가 아니란다.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도 하고 이것도 어처구니라고 한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런데 맷돌 손잡이조차 어처구니가 아니란다.
어처구니는 뜻밖이거나 기가 막힐 때 하는 말인데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못 돌리지 않느냐 그래서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당 태종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귀신을 쫓기 위해 병사 모양의 어처구니 조각물을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기와장이들이 궁궐을 지을 때 어처구니를 깜박 잊고 올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명도 했다. 난 분명 확신이 있었다. 집에 와서 나의 확신을 재점검해 볼 요량으로 뒤졌다.
“‘어처구니’를 ‘추녀 끝에 올라가는 잡상’이나 ‘맷돌의 손잡이’로 볼 수 있는지는 문헌으로 검증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 점에서 옳다거나 그르다는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점 양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말을 내놓았다. 그럼, 우리가 여태 알고 있던 ‘어처구니’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가 막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민망할 정도로 퍼부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녀를 보면 정중히 사과할 요량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 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