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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

이대환 작가 봄비 내리는 저녁, 서울 광화문. 작가, 교수, 변호사, 사업가(후배) 등이 어우러졌다. 후배가 내게 김성근 포스텍 총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또래라는 것만 안다고 했더니, 화학계에 이름 높은 학자로서 받고 있던 연봉보다 적게 받으면서 총장으로 갔다는 자랑을 보탰다. 내가 ‘박태준 평전’을 쓴 작가니까 그랬겠는데,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칠십 고개를 바라보면서도 인생의 의미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면, 속물이거나 바보 아니겠나?”며칠 지났다. 나는 포항에 왔다. 또 봄비가 어둠을 적시는 저녁이었다. 몇이서 돼지국밥에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문득 심각해지는 화제가 올랐다.“포스텍 총장이 의과학대학 설립에 소극적이라는데.”변호사 선배의 무거운 우려였다.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설왕설래가 길어졌다. 내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이러한 경우에 ‘소극적’이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는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환경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그는 포항시민·포항시·포스텍 구성원을 속인 총장이다. 몇 년에 걸친 지역공동체의 중대 현안이고 포스텍과 포항시가 함께 추진해오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자기 생각과 안 맞는 거라면 총장으로 오지 말았어야 옳은 거 아닌가. 만약 둘째의 경우라면, 그는 최정우 이사장의 눈치나 살피는 용기가 부족한 총장이다. 올바른 용기가 부족한 리더십은 조직에 도움이 되기 어렵지 않는가.포스텍 이사장을 겸임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김성근 총장을 뽑았다. 회장 3연임에는 막혔으나 여전히 이사장을 유지하는 그가 포항시민·포항시와 대립해온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그날의 막걸리 술잔들은 “이사장이 의과학대학을 반대하니까 총장이 소극적이지 않겠나” 하는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포스텍의 의대(의과학대학) 신설, 스마트병원 설립에 열정을 바쳤던 김무환 전임 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지난해 8월의 어느 오후였다. 나는 동갑내기 총장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마침 후임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돌아온 그가 학교 동기라며 칭송했고, 그래서 나는 새 총장이 또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의과학대학, 스마트병원 설립에 대해 새 총장도 잘 아는가요?”“그럼요.”“현실적 문제는 어떤 게 있는지요?”물러나는 총장이 세 가지를 꼽았다. 의대 정원 증원과 신설 의과학과 배정받기, 이사회의 인준받기, 연차적 재원 확보 등이었다.“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교육부에 의과학대 설립과 정원 배당을 신청하자면 그보다 먼저 포스텍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재원 계획을 확립해야 하는 거군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안 들어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김무환 총장도 최정우 이사장이 뽑았다. 그는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총장 연임에서 멀어지는 길이었으나 꿋꿋하게 용기를 보여줬다.그의 전임 김도연 총장은 가치창출대학, 그러니까 연구 결과가 벤처창업으로 꽃피는 포스텍을 외치면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대학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다. 지식인의 소신과 용기를 보여준 그가 임기 종료를 세 학기 앞둔 2018년 봄날, 주총에서 임기 3년을 받으며 연임에 올랐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출범 2년차 문재인 정권에 겨우 한 달을 버텨서 사퇴하겠다고 표명하더니 그해 여름에 최정우 회장이 등장하고 12월부터는 포스텍 이사장도 맡았다. 마음 비운 김도연 총장에게 그가 연임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김 총장도 총장 후보에 등록했다. 그러나 그는 면접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업어다가 난장 때린 격이었다. 포스텍 이사회 관계자들이 청와대와 무관한 결과라고 강변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드물었다.두 전임 총장의 용기를 언급한 까닭은, 김성근 총장이 속이고 온 경우도 아니고 연임할 욕심도 아니라면, 그들의 용기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포스텍 총장으로 왔으니 기본예의 차원에서라도 ‘박태준 평전’을 일독한다면 뒤늦게 용기의 새로운 참뜻도 덤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다시 며칠이 지났다. 새하얀 새떼 같은 목련꽃 송이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카톡이 날아들었다. 신문기사였다. 이강덕 포항시장의 일갈이 제목으로 뽑혀 있었다.‘의대에 미온적인 포스텍 총장은 포항에 필요 없다.’내가 들었던 변호사의 ‘소극적’을 시장은 ‘미온적’이라 했다. 격정을 응축한 표현인데 나는 오히려 점잖게 느꼈다. 포항시에서 의과학대학 관련으로 포스텍에 전화를 걸면 안 받거나 뺑뺑이를 돌린다는 기자의 취재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포항시 도처에는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은 포항의 미래입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시민 30만 명이 연대서명에 동참했고….김성근 총장에게 ‘박태준 정신’에 비춰서 말해주고 싶다. 리더십은 비겁하지 말아야 하거늘, 소극적이든 미온적이든 그 이유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첫째의 경우라면 지역공동체를 속인 셈이니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고, 자기의 환경에 안 맞는 둘째의 경우라면 용기를 세워서 이사장을 설득하기 바란다. 더구나 최 이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난히 시끄럽게 회장을 마쳤음에도 현재 연임한 이사장의 임기를 2년 8개월이나 남겨뒀으니 포스텍을 위해 새 회장에게 이사장을 넘겨주고 그만 자진 사퇴해야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게 포항 민심이기도 하다. 한창 떠들썩한 총선 마이크가 꺼지고 나면 민심은 뭉쳐져 움직일 것이다.그리고 화학자 김성근이 아니라 포스텍 총장 김성근으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사유해야 할 일들이 따로 있을 듯하다. 작가의 눈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어른거린다.먼저, 포스텍의 미래이다. 이것은 총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의대 증원이 이뤄지면 젊은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더 심해지고, 이는 포스텍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악영향을 끼친다. 2021년 1월 최정우 이사장이 “포스텍 기부 체납”을 운운한 그때 이미 포스텍의 정체를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한파전선처럼 형성됐는데, 의대 증원은 설상가상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포스텍 리더십은 주저 없이 ‘의과학대학’ 신설을 결단해야 한다. 다행히 포스텍은 생명과학이 아주 강하며 인프라도 한국 최고 수준이고, 의과학은 의학·공학·기초과학을 융합하니, 그것이야말로 포스텍 전체에 재도약의 활력을 불어넣는 신의 한 수가 아니겠는가. 재원 문제? 사람들이 의기를 결집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도 더러는 폭발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물론 병원 경영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의대(의과학대) 부속병원의 특수성을 살려나가고 3D 바이오프린팅, 세포막 단백질 연구, 그린바이오, 마린바이오 등 포스텍 생명과학의 뛰어난 기술력을 임상에 적용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보면 겁부터 먹을 노릇이 아니다. 당연히 바이오제약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과 청암 박태준 선생, 일찍이 두 거장이 포항공대 곁에 암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논의했던 것과 같은 선각적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호암 선생의 건강한 삶이 더 길어졌더라면!또 하나는, 포스텍을 포스코의 미래기술연구원과 거의 한 몸으로 만드는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이차전지소재, 수소 등에 주력하겠다는 미래기술연구원을 반드시 포항에 오게 해서 포스텍과 거의 한 몸으로 묶어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포항시민이 앞장서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텍과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을 육성하려는 시대정신의 실천의지도 담고 있지만, 포스텍에게는 박태준 선생의 유지를 받들며 세계 일류로 나아갈 강력한 동력을 장착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과연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진정으로 포스텍의 희망찬 미래를 담보하려는 집단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기술연구원에 대해 시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다른 하나는, 총장 자신의 삶에 관한 문제이다. 임기가 4년 미만으로 남았는데 임기를 마치면 포항에 정주하겠는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포스텍 의과학대학과 스마트병원은 포스텍(포항공대)·포스코(포항제철)·포항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향후 40년을 위해 기필코 갖춰야 하는 필수적인 새 인프라이다. 너무 오래 지각한, 이 엄중한 운명적 도전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는 2024년의 포스텍 총장이든 이사장이든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경북매일신문은 4월부터 ‘이슈 논단’ 코너를 마련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에 제기된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수렴키 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주지하시다시피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실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안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고 견해차도 큽니다. 논단을 통해 다름을 살펴보고 고찰하면 당면하고 누적된 과제에 대한 미래적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너 참여는 ‘기고’ 형식으로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이나 비난, 민원 등은 불가하며, 분야는 제한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의 기고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 반박 투고도 열어뒀습니다. 시민 및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연락처 054-289-5040)를 기대합니다.

2024-03-31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유영희 작가 4월 10일, 22대 총선일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구호를 내걸고 표심을 얻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진작에 마음을 굳혔겠지만, 아직 표를 줄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도 많다. 처음부터 판세가 결정된 지역도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도 있다. 그러니 투표일까지 유권자는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자기 이익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도 캔자스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공화당에 표를 주는 현상에 주목했다.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 심리학 교수 존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사람들 대다수는 현 상태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도록 동기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화되는 이유는 많고도 복잡하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방식은 양가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집단과 자기 집단에 대해서 모두 양가감정이 높다는 가설이 검증되었다. 양가감정이 높다는 뜻은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존 포스트가 보여준 여러 실험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비난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빈부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흑인과 백인,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문화적인 고정 관념도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존 포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크래칫 가족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 약자인 당사자도 그것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대다수 사람이 양가감정을 비롯한 인지부조화에 휘둘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런 식의 양가감정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인터넷의 발달이 언제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양가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교차검증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정책과 비전에 입각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왔다. 돌아오는 4월 10일에 그 능력을 발휘해보자.

2024-03-31

건강한 소통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말에 ‘발품 팔다’라는 말이 있다. 발로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 일을 뜻한다. 힘들게 발품 팔아서 이룬 결과들은 오래오래 남아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이 된다.가만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구보를 마지막으로 발품 팔아먹는 행위는 끝났고 두 발은 오직 차 있는 곳까지 걸어가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짧은 이동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발품 파는 일을 그만두니 발아래서 일어났던 고달프고 힘들었던 순간과 가슴 저미도록 벅찬 감동의 순간들도 자연스레 희미해졌다.고달픔을 잃어버린 곳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자리잡을 수 없고 건강한 경쟁이 싹틀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던 힘들었던 시절의 경험을 자녀들에게 들려주며 현재에 감사함을 알고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도록 교훈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말을 통해 전해지는 교훈은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그 자리마저 피하게 된다. 자녀들과 효과적인 소통의 방법이 아니라는 뜻이다.사람은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많은 행복을 느끼게 되며 몸으로 함께 땀 흘린다면 그 행복감은 가파르게 상승한다고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말하고 있다.그래서인지 최근 마라톤 같은 달리기 대회에 연인이나 가족단위 참가가 확연하게 늘어나는 추세이며, 기업에서도 임직원이 단체로 참가하여 함께 달리면서 고통의 순간마다 서로를 응원하며 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완주 후 극도의 피곤함도 뒤로 한 채 얼싸안고 포옹하며 천상의 행복한 표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된다.그 환희의 순간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말로 전해지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교훈보다 말 한마디 없어도 얼싸안고 서로의 땀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몇 배나 더 효과적인 소통이 되는 것이다.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마라톤이 2030세대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막을 내린 서울 마라톤을 기준으로 2030세대 비율이 2019년 43% 수준에서 2024년 50.4%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제니퍼 헤이스가 쓴 ‘운동의 뇌과학’ 책을 보면 달리기는 모든 질병의 예방제라고 설파하고 있으며 노화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창의력의 원동력이라는 것으로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비타민제를 비롯하여 건강에 관심이 크다는 2030세대에게 달리기는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고 있으며 ‘러닝 크루’는 최고의 소통 공간인 것이다.매년 5월 하남시 ‘미사 경정공원’에서 열리는 ‘철강마라톤’에는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 관련 기업의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함께 땀 흘리며 세대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장이 되고 있다. 필자 역시 본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퇴근 후 직원들과 달리기를 통한 소통을 하고 있다. 건강한 몸에 축적되는 지식은 자신과 기업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빛을 발하여 성장의 무한한 자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달리기를 건강한 소통의 방법으로 모든 기업과 개인에게 제언하고자 한다. 달리고 있는 동안 자신에게는 체력이 기업에는 지속 성장의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2024-03-31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GRDP

우정구 논설위원 GRDP(지역내총생산)는 일정기간 동안 특정지역 안에서 새로이 창출된 최종 생산물가치의 합을 말한다. 각 시도가 경제활동으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발생하였는지를 나타내는 경제지표다.지역내총생산에서 지역의 범위를 국가 전체로 확장하면 국내총생산(GDP)이 된다.대구의 GRDP는 1992년 이후 31년째 전국 꼴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GRDP는 울산(7천751만원)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충남(5천894만원), 서울(5천161만원)이 뒤를 이었다. 대구(2천674만원)는 전국 평균(4천195만원)보다도 1천521만원이 낮다.대구는 대통령을 여러 번 배출한 도시였지만 GRDP 실적만 보면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곳이다. 대구의 GRDP가 낮은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그 중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서 탈피하지 못한 산업구조에 있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선거 때부터 전국 3대 도시인 대구의 명성 회복을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취임 후 신공항 사업을 서둘고 첨단미래업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구가 GRDP 전국 꼴찌에서 벗어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지역경제보고서에 의하면 주요 성장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비수도권의 성장잠재력은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GRDP에 대한 수도권의 기여율이 2015년 50%에서 2022년에는 70%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생산성이 높은 반도체, IT 등 신산업이 수도권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역대 정부마다 내세운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는 결과란 점에서 실망이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28

APEC개최 도시선정 시작, 경주가 답이다

외교부는 지난 21일 APEC 개최도시 선정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열고 개최 도시 선정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APEC 정상회의 유치목적과 기본계획의 우수성 △국제회의에 부합하는 도시여건 △정상회의 운영여건 △국가 및 지역발전 기여도 등 4가지를 개최도시 선정 기준으로 확정했다. 윤진식 위원장(한국무역협회 회장)은 “APEC 개최도시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경주를 비롯 부산, 제주, 인천 등 개최 희망 4개 도시들은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경주시는 27일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주낙영 경주시장, 김석기 국회의원 등이 외교부를 방문해 APEC개최 경주 유치의 의미와 당위성을 건의했다. 이 지사 등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경주가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과 지방시대 균형발전이라는 국정목표 실현에 부합하는 도시라고 설명했다.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인 APEC 회의는 21개국 정상과 각료 등 6천여 명이 찾는 국제행사다. 1989년 출범한 APEC은 세계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의 지역협의체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지만 지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2025년 APEC 개최를 희망하는 4개 도시 중 경주는 유일한 기초자치단체다. 하지만 국제회의 개최 경험과 호텔 등 국제회의에 필요한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역사도시로서 알려져 있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다. 천년고도로서 도시 자체가 노천박물관을 방불케 한다.또 APEC이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 철학에 부합하는 도시다. 균등한 경제활동 기회가 주어지고 성장 혜택이 골고루 배분되는 포용적 성장은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명제다. 작은 도시지만 가장 한국적이며 한국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경주가 APEC의 이념을 대변할 수 있는 장소다. 상반기 중에는 개최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경주의 많은 장점을 잘 부각해 좋은 성과를 내길 바란다.

2024-03-28

與82, 野110 ‘우세’… 이제 유권자판단이 변수

어제부터 4·10 선거운동 유세전이 시작되면서 주요 거리마다 선거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4월 5일부터 이틀간 치러지는 22대 총선 사전투표를 감안하면, 선거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총선은 진영싸움이 극대화돼 사전투표율이 역대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선거 승패를 좌우할 사전투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정권 심판론’이 그대로 선거에 반영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민주당에 유리하다.대구·경북의 경우 대구 중남구와 경산지역구에서 국민의힘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치열한 승부전을 펼치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은 선거열기가 크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선거전이 진영싸움으로 치달으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구가 많을 정도로 야권지지도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아마 투표율도 역대최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현재 전국적인 판세는 일단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26일 기준, 254개 지역구 가운데 승리 가능성이 큰 ‘우세지역’으로 국민의힘은 82곳을, 민주당은 110곳을 각각 꼽았다. 국민의힘은 “지난주에 거의 최저치를 찍었다고 생각하고 이번 주부터는 좀 반등할 것”이라고 했고, 민주당은 “심판 민심이 우세해지고 그에 따라 우리 당 후보들과 관련된 판세가 상승 추세에 있는 것 자체는 분명하다”고 했다.선거일이 며칠 남아있지 않지만, 현재의 판세는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수습 여부와 말실수, 사전투표율 등이 판세변화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여권으로선 이번 총선에 정권의 운명이 걸렸다. 현 판세대로 민주당이 압승하면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가고, 윤석열 정부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정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야의 공방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제 유권자의 판단시간이 다가왔다. 선거 이후의 우리나라 국정과 여의도 국회모습을 그려보면서, 오직 국익차원에서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2024-03-28

다시 나온 ‘이게 나라냐?’

홍석봉 대구지사장 2017년 최순실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국민은 자괴감을 느꼈다. 당시 집회에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 자조적인 심경을 대변하는 표현이었다. 한동안 유행했다.2022년 11월 이태원 핼러윈데이 참사가 터졌다. 많은 신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관계 당국을 향해 “이게 나라냐?”며 또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각종 시위에 단골 메뉴로 등장, 시국을 관통하는 단어가 됐다.‘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대형 사건 사고와 관련, 국가의 대처 미흡을 꼬집으며 질책하는 용어로 폭넓게 사용됐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4년 연거푸 등장한 위성정당을 두고 정치권과 국민이 ‘이게 나라냐?’라며 세태를 한탄하고 있다. 온전한 상식을 갖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에 범죄꾼과 반 대한민국 세력이 대거 입성할 위기에 놓이자 나온 말이다.야권의 비례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반미·좌파 성향의 진보당 추천 후보 3인을 당선권에 배치했다. 많은 국민이 종북·좌파가 국회에 대거 입성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가발전에 역행하는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을 보냈다.조국혁신당에는 실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 중인 인사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비례 2번인 조국은 자녀입시 비리 등으로 1·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상위 순번 10명 중 5명이 징역형을 받거나 피고인과 피의자다.국회가 온통 범죄꾼과 사기꾼, 거짓말쟁이의 소굴이 될 판이다. 마침내 ‘범죄자가 판치는 국회, 투표로 심판하자’는 정당까지 등장했다. 비례정당인 가락특권폐지당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함께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같은 자가 설치는 나라는 막자’고 주장한다.우리나라는 북, 중, 러의 위협과 자원빈곤이란 최악의 조건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세계가 인정하는 기적의 나라다. 최근엔 문화 및 방산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데 이런 한국이 추락하고 있다. 성장과 질서가 사라지고 선진국에 겨우 턱걸이하자마자 경제 침체와 무질서로 가라앉고 있다.진보와 보수가 서로 죽고 살기로 물어뜯고 있고, 최빈국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가슴 졸이는 한심한 나라가 됐다. 의료계 파업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환자들만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상식과 합리성이 배제된 나라, 도덕과 질서 등 기본을 잊은 나라의 전형이 됐다.거기에 경제를 견인하던 반도체와 조선 산업도 주춤하고 있다. 사과 한 개 1만원, 감자 한 알 2천500원 등 생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안 오르는 것은 봉급뿐이라는 근로자들의 탄식이 쏟아진다.세계의 지성들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나라가 됐지만 속은 곪고 있다. 정치부터 바뀌어야 하지만 썩어가고 있다. 지도층은 팔짱만 끼고 있다. 대한민국이 삼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2024-03-28

환절기 건강 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은 왔지만 아직 날씨는 겨울에 머물러 있다. 오늘 날이 풀린 것 같아 내일 같은 옷을 입고 나가면 감기 걸리기 좋다. 우리나라는 봄이 와도 봄 날씨가 아니다. 더운 날이 지속되면 인체는 더운 날에 맞춰 몸의 세팅을 서서히 바꾸고 추운 날이 지속되면 몸은 거기 맞춰서 몸을 세팅한다.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에 몸이 적응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인체는 면역이 떨어지고 감기에 걸리고 알러지가 발생하고 몸살이 난다.흔히들 기력이 딸린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봄에 유독 나른하고 힘이 없고 밥 먹으면 졸린 증상들이 많다. 겨울동안 추운 외기에 맞춰줘 있던 몸이 봄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응 하느라고 힘이 든다는 소리다. 몸이 나른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피로를 느끼기도 한다. 몸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알러지가 올라오고 비염이 심해지거나 피부가 가려울 수도 있다. 변화폭이 큰 기온 때문에 감기에 많이 걸리기도 한다.옷을 갑자기 얇은 옷을 입거나 짧은 옷으로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날씨를 매일 체크한 후 날씨에 맞춰서 옷의 두께를 조절하고 가벼운 외투를 추가로 준비하자. 특히 저녁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니 모임이 있는 경우는 좀 두꺼운 외투를 준비해서 나가는 것이 좋다.매일 혹은 격일로 간단한 운동을 하면 좋다. 그동안 추워서 운동을 안했던 사람들은 간단하게 30분 정도 걷기나 자전거 타기 또는 10~20분 정도의 간단한 조깅을 해주는 것도 좋다. 땀이 적당하게 스며 나올 정도로 하면 충분하다. 날이 찰 때 땀이 나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이 날 수 있으니 안에 얇은 옷을 입고 운동복을 입은 후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봄을 맞아 음식관리도 하자. 식사의 순서만 바꾸면 된다. 먼저 고기나 생선 두부 등의 단백질을 섭취 하고 다음은 채소를 섭취하자. 그리고 마지막에 밥이나 국수 등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된다. 탄수화물의 양은 반 혹은 4분의 1까지 줄이면 더욱 좋다. 하루에 두끼 혹은 세끼만 먹고 간식은 먹지 않는다. 과일은 기호에 따라 한 두 조각 정도로만 먹는 것이 좋다. 간단한 것이지만 쉽지 않다. 이것도 운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좋다.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는 자동으로 된다. 맵지만 않으면 음식의 종류는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된다. 찜닭을 시켰으면 닭고기 위주로 먹고 밥은 반 공기 혹은 그 이하로 먹으면 된다. 귀찮다고 라면만 먹거나 국과 밥 찌개만 먹는 것은 금해야 한다. 내 몸으로 들어오는 균형 잡힌 영양소가 내 몸을 만든다. 질 낮은 음식 조합은 내 몸의 건강을 해치고 질 높은 음식 조합은 내 몸을 건강하게 한다. 그리고 음식은 적게 먹는 것이 좋다.만물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봄이다. 사람도 그에 맞춰 몸이 동작한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몸 곳곳에 활력을 불어 넣고 기름칠을 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날씨에 맞춰 옷을 입고 활동을 하자. 나가서 걷고 뛰자. 좋은 음식 조합을 먹자. 올 한해는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24-03-27

화전놀이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3월 들어서도 겨울과 봄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 겨울은 3월의 폭설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으나 결국 꽃피우는 봄이 이겼다.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차례를 지킬 겨를 없다는 듯 앞다투어 피워댄다. 꽃구경을 유혹하는 상춘(賞春)의 계절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눈으로만 하는 봄구경에 만족하지 못했다. 온몸으로 뱃속까지 봄을 느끼고 싶어 입맛으로 즐기는 상춘(嘗春)을 감행했다. 그 절정이 바로 화전놀이였다. 화전놀이는 꽃피는 봄날 마을 부근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을 보며 놀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 먹고 노는 여성놀이이다.한국향토문화대전에서 화전놀이를 찾으면 저 북의 강원도 강릉에서부터 경기도 양주, 서울 도봉, 대구, 전북 남원, 전남 광주, 부산, 제주 서귀포까지 전국적으로 즐긴 전통적인 봄놀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화전놀이의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했다.‘삼국유사’에는 “해마다 봄철이면 김유신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재매곡의 남쪽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에는 온갖 꽃이 피고, 특히 송화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만화방창 가운데서 벌인 잔치엔 온갖 꽃지짐 또한 질펀했으리라 짐작된다.‘교남지’에는 신라의 궁인들이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데서 비롯하였다는 경주 화절현(花折峴)이라는 고개를 소개하기도 했다.이렇듯 이미 신라시대에 모습을 갖춘 화전놀이의 전통은 조선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이 이어졌다. 집안의 여성들, 특히 시집온 며느리들이 함께 모여 장막을 세우고 참꽃으로 지짐을 지져 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많다.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부정기적인 봄맞이 풍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에게는 가벼운 여가 활동이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공식적인 집단나들이였다는 점에서도 문화적 의미에 차이가 있다.역사도 깊고 전국적으로 보편적이었던 화전놀이지만 경북의 경우는 특별하다. 조선 후기부터 화전놀이와 내방가사가 만나 화전가가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현재까지도 경북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화전가를 짓고 즐겼다. 화전가의 창작과 낭송이 화전놀이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경북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화전놀이,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 음주가무로 풍물을 즐기는 다른 지역의 화전놀이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경북 여성들은 놀이날이 되면 미리 준비한 음식과 조리도구 외에 반드시 지필묵(紙筆墨)을 챙긴다. 현장에서 화전가를 지을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2009년 청도 비슬산에서 류복혜 선생님이 이끄는 영남화전놀이보존회에서 전통에 가까운 화전놀이를 펼쳤다. 안동의 내방가사보존회원인 안어르신들을 모셨더니 우아하고 품격있게 화전가를 읊으셨다. 2018년, 경주 양동마을에서 벌인 화전놀이에서도 그들은 내방가사를 거침없이 낭송하셨다. 오는 3월 30일, 대구 가창 한천서원에서 화전대회를 한다고 한다. 팀을 나누어 화전을 예쁘게 지진 팀의 우열을 가리는 모양인데, 화전놀이의 현대적 변용이요, 전통놀이를 잇는 새로운 형태인 셈이다.

2024-03-27

선거, 집단지성의 발현

장규열 고문 역사 속 민중은 어리석기도 하였다. ‘우민(愚民)’은 위정자에게 늘 속기만 하고 살았던 백성의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교육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치고 민주의식의 전개는 국민들의 인식 수준을 바꾸어 놓았다.한두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기만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집단지성센터(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연결되어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사고(思考)를 이어갈 때 개인이 생각하여 결정할 때보다 뛰어난 이성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어놓고 있다.총선이 코 앞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에 있어 국민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할 기회이다. 집단지성의 두 가지 기본조건인 ‘여러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지성을 발휘하여 국정의 흐름을 놓고 지역의 대표를 결정하면서 나라 살림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정치학자 렉스 폴슨(Lex Paulson)은 동물들 가운데 그리 강하지 못한 인간이 가장 탁월하게 발달한 데에는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집단행동적 두뇌’가 열쇠였다고 밝혔다.인간은 집단적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학습할뿐 아니라, 습득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습성으로 대자연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꼭대기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이다.인간사회의 규모가 커갈수록 중앙집권적인 권력은 부패하게 되어있음을 알게 되어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하여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나타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의 규모가 팽창하고 기능이 복잡해질수록 집단지성은 더 나은 의사결정의 기본요소가 되어간다고 하였다.개인으로서 국민이 집단지성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방법은 선거와 투표가 아닌가. 선거에 임하여 선거의 구도와 표방하는 정책, 후보의 면면을 살피고 사회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시대정신을 참고하고 전달되는 메시지를 헤아려 투표 의사를 결정하는 개인적인 과정을 물론 거친다. 개인이 던진 표들이 집적되어 선거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지향하는 방향을 걸정하게 된다. 선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결과를 받아들여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므로 복잡하지만 국민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로서는 매우 훌륭하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도 상당히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시스템이다.개인의 투표의사가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의 최종 의사를 확인하면서 모두가 수긍하는 결과물을 낳는다는 의미에서도 탁월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문제는 국민의 참여의식이다. 참여 여부도 물론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인 과제에 함께하는 의미가 적지 않음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은 사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만 공적인 책임으로서 사회적 지향성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했으면 한다. 총선이 공정하고 유익한 결과를 빚어내기를 기대한다.

2024-03-27

박근혜의 ‘윤·한 단합’메시지, 여권위기 경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자신의 사저를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의 단합을 강조했다. 이제 열흘 정도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 국민의힘 판세와 관련한 위기감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유영하 변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서해수호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두 분이 만난 것을 언론을 통해 봤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에서 뜻을 모아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념식 장면을 TV를 통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느꼈겠지만,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 어깨를 치며 격려 인사는 건넸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감추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날 단합을 특히 강조한 것은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파동’으로 당시 새누리당이 다 이긴 선거를 지고, 자신은 탄핵까지 당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박 전 대통령과 한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중점 거론된 이슈가 ‘의대증원 문제’라는 점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아마 선거막판 총선정국이 정권심판론 쪽으로 흐르는 주된 이유가 의료대란으로 인한 사회혼란 때문이고, 이에 대한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는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27일 현재 총선 판세는 민주당의 우세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이 양대 정당을 앞선다는 조사도 나온다. ‘범야권 200석’이라는 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163석)와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모두 180석을 얻어 입법권을 그들의 입맛대로 행사했다. 만약 예상대로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석 3분의 2인 200석 이상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장악하게 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 추진도 가능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질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만나 윤 대통령과의 단합을 강조한 것은 만약 의료대란 해법 등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또다시 부딪히면 총선 승리는 물 건너간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판단된다.

2024-03-27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 입장 달라졌나

연구중심 의대 신설 및 스마트병원 설립에 포항시 등 지역사회와 함께 적극 나섰던 포스텍(포항공대)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연구중심 의대 신설은 포스텍이 설립의 주체인데 포스텍이 발을 뺀다면 설립 추진의 동력이 상실돼 사실상 추진의 의미가 없게 된다. 특히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 움직임은 범시민 궐기대회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지역사회 핫 이슈로 등장해 포스텍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시민들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본지 취재팀에 따르면 이에 대한 포스텍의 공식 입장은 들을 수 없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미온적 태도만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대외협력팀은 책임교수에게 연락해 보라고 하고, 책임교수는 대학 기획처에 알아보라고 한다. 포항시도 이 문제와 관련해 포스텍과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답변을 했다.이러다 보니 포스텍이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원하기나 하는지 아니면 원치도 않는데 포항시 등이 혼자 나서 이제껏 춤판을 벌인 건 아닌지라는 지적도 나온다.사정이 이러자 이강덕 포항시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포스텍을 작심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포스텍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간 김성근 총장이 보여준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학교 안에서 아카데미만 챙기는 총장은 필요없다”고도 했다.시민단체도 “포스텍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을 한다. “총장이 바뀌었다고 의대 설립이라는 중대한 목표가 달라지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은 포스텍이 우리나라 최초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출발한 학교로 단기간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목표다. 또 포항이 추진하는 바이오산업 특화단지와 잘 어울리는 학문이고 국가적으로도 가야 할 분야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당위성이 많다. 이 문제로 논란이 커져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포스텍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2024-03-27

저수지의 재탄생, 김천 연화지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수성못은 일제시대 관개용 저수지로 조성됐다. 대구시가 넓어지고 저수지 기능을 잃자 대구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수성못은 면적 21만8천㎡, 못 둘레 2천20m로 1965년 유원지가 됐다. 수변 데크 로드와 왕벚나무, 버드나무 가로수길이 상징이다. 2026년 수상공연장과 수성 브리지가 완공되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날 전망이다.경산 남산면 반곡지도 1903년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다. 이곳엔 수백 년 된 왕버들 20여 그루가 늘어선 150m 가량의 흙길이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인기다. ‘사진 명소’로 선정돼 사진 동호인들이 많이 찾는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이름났다.김제 벽골제와 상주 공검지, 제천 의림지 등 삼한시대 조성된 곳도 저수지 기능을 잃고 현재는 문화재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다.김천 연화지는 조선시대 농업용 관개지로 조성됐다. 연화지(鳶5629池)라는 이름은 1707년 김천 군수 윤택이 지었다. 솔개가 못에서 날아오르다가 봉황으로 바뀌는 꿈을 꾼 후 좋은 징조라 여겨 연화지라 했다. 연화지 가운데 봉황대 정자는 경관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곳이다.1993년 주변 조경과 편의 시설을 갖춰 시민 휴식 공간이 됐다. 연화지는 사진작가들의 벚꽃 작품과 입소문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엔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 선정됐다. ‘연화지’에 벚꽃이 만발, 상춘객 발길이 줄을 잇는다. 김천시가 올해는 교통, 편의시설 등을 개선하고 ‘차없는 거리’를 운영, 손님맞이에 정성을 쏟고 있다. 농업용 저수지들이 국민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벚꽃이 만발한 연화지의 아경에 푹 빠져들고 싶은 요즘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27

빼어나고 고운, 성주 회연서원과 무흘구곡

‘무이산이 기이하고 빼어나며 맑고 고와 진실로 천하에 제일이다. 또 우리 주 선생이 도학을 공부하던 장소가 되어 만대의 아래가 수사와 태산처럼 우러르게 하니 진실로 우주 사이에 다시 있을 수 없는 땅이 된다. 내가 외진 곳과 늦게 태어나서 이미 선생의 문하에서 배울 수 없고 또 구곡의 하류에서 갓끈을 씻을 수 없으니 어찌 심히 불행이 아니겠는가’(‘무이지발’, 정구)성주 가야로를 타고 가다 수륜면에 도달하면 새하얀 백매화가 팝콘처럼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한 서원을 찾아볼 수 있다.이곳은 조선의 대학자 한강 정구(鄭逑·1543~1620)의 회연초당이 있었던 장소이자 그를 기리고자 후예들이 세운 회연서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회연초당은 한강 정구가 41세가 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와 대가천의 귀퉁이에 초당을 재건하고 학문을 강학하던 장소이다. 그는 회연초당의 동쪽 부모님 묘소가 보이는 곳에 망운암을 짓고, 앞뜰에 다수의 매화나무를 심어 백매원을 만들었다.겸재 정선(鄭6B5A·1676~1759)이 그린 ‘회연서원도’에도 대가천 인근의 봉비암, 경회당, 사당, 나무들과 백매원 등이 그려져 있다. 겸재 정선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상상을 가미하여 그림을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인데, 아마도 청하현감으로 있던 시절 이곳을 다녀갔을 것으로 짐작된다.주자의 삶을 흠모하던 정구는 직접 무흘구곡을 경영하지는 않았지만,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후학들과 거닐며, 그 아홉 굽이마다 이름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가’는 주자의 ‘무이구곡가’에서 차운해서 지은 것으로, 제1곡 봉비암·제2곡 한강대·제3곡 무학정·제4곡 입암·제5곡 사인암·제6곡 옥류동·제7곡 만월담·제8곡 와룡암·제9곡 용추를 노래한 한시이다. 서시까지 포함하여 모두 10수이며, ‘한강집’ 권1에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제4곡까지는 성주, 나머지는 김천에 속해 있다. ‘무흘구곡가’는 마냥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기보다는 그를 통해 학문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지금은 회연서원의 입구에서 ‘영남제일승지 무흘계곡’이라는 표석과 두루마리 형태의 돌에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향현사 뒤로 조성된 데크 산책로를 따라가면 제1곡 봉비암까지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데, 중간쯤 완연대를 지날 때 세월에 바랜 돌에 새겨진 한시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회연서원은 문루인 현도루를 통해 들어간다. 곧 마당이 드러나며, 왼편에 400년이 넘은 노거수 느티나무가 방문객을 반가이 맞이한다. 서원의 작은 출입구를 들어서면 ㄷ자모양의 세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본당인 경회당과 고학년의 기숙사인 동재 명의재와 저학년의 기숙사인 서재 지경재가 그것이다. 명의재와 지경재는 한강 정구의 학문적 스승인 남명선생의 사상에서 ‘의’를, 퇴계선생의 사상에서 ‘경’을 가져와 그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경회당은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맞배지붕에 기품있는 모양새를 지녔다. 한석봉이 썼다는 해서체 현판과 경회당이라 적힌 편액 양쪽으로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의 글씨 옥설헌·망운암이라 적힌 전서체 편액이 보인다. 왼쪽 측실 퇴보 위에는 자칫 놓치기 쉽게 숨어있는, 허목의 다른 편액 불괴침도 걸려 있다. 경회당은 대양처럼 큰 주자의 학문을 본받는다, 망운암은 기상을 높게 가져라, 옥설헌은 깨끗한 마음을 가져라, 불괴침은 부끄러움이 없는 잠자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글쓴이만 알아본다는 그림 같은 전서체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적힌 한자가 한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당시 주자의 유유자적한 삶과 선비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하던 한강 정구와 그를 따르는 미수 허목의 학문에 대한 진심이 편액들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회연서원의 오른쪽이 강학을 위한 공간이라면 왼편은 사당을 위한 공간이다. 대개의 서원에서 사당은 강학 공간의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회연서원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 안에는 새 사당을 지어 한강 정구와 석담 이윤우를 모셨고, 향현사에는 한강과 더불어 존경받던 지역의 인물이 모셔져 있다. 향현사 뒤쪽 산책로를 따라 봉비암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작은 구사당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유물전시관인 승모각에는 한강 정구의 학문들과 초상화, 문집이나 교지 등이 보관되어 있다.3월에 찾은 회연서원은 이른 봄날 거닐기에 제법 운치가 있는 장소다. 대가천에서는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봉비암과 완연대를 오르며 볼 수 있는 절경도 가슴을 트이게 한다. 서원 주위로 가지마다 팝콘처럼 열린 백매화가 봄소식을 완연히 전하고, 서원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 느티나무 가지들도 새싹들로 봄맞이에 한창이다. 담장 너머 회연서원의 기와가 매화 향기와 더불어 아지랑이를 따라 아른거린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3-27

무관심과 호기심 사이

피귀자수필가 나긋하게 얹힌 봄이 꽃샘추위 속에서 시간의 길을 잃어버린 날, 무엇에 이끌렸을까. 지하철에 들어선 풍뎅이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눈 안에 갇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부딪다가 뒤집어져 팽그르르, 축을 잃은 팽이의 동작에 놀란 몇몇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마치 찬바람 속에서 버둥거리는 새싹을 닮았다.진화를 꿈꾸던 곳은 어디였을까 여긴 분명 아닐 텐데. 낯선 환경을 뒤늦게 감지한 걸까. 날갯짓의 속도에 점점 불안함의 무게가 더해진다. 먼 섬을 찾아 들썩여도 좋았을 저 튼튼한 견골. 잘못 접어든 골목길에서 한참을 헤매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던 난감함이 저럴까. 미로를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다보면 당황하기 일쑤 아니던가. 조급한 마음에 애를 쓰면 쓸수록 침착함과는 멀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던가.호기심 가득한 구둣발과 운동화 사이로 앞발 뒷발 바싹 들고 하늘을 이고 살던 등으로 돌리는 풍뎅이의 연자방아. 낯선 말의 길에서 한동안 잃었던 나를 여기서 다시 보듯 풍뎅이의 비보이 공연이 아찔했다. 그때 새로 들어찬 사람들에 가려 대각선 입구 쪽에 있던 풍뎅이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안개처럼 일어났던 관심도 차츰 바람처럼 사라져갔다.또각또각 뾰족 하이힐이 걸어와 맞은편 빈자리에 앉자 의자까지 환하다. 매끈한 종아리 위의 짧은치마 끝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들려지고 아뿔싸 훔쳐보던 눈동자들, 들키고 말았다. 여자의 눈도 저절로 드러난 다리를 더듬는데 남자들이야 오죽할까. 옆자리 검은 운동화의 하얀 끈과 날씬한 종아리도 눈부시다. 파릇한 청춘의 다리는 곧다. 맞은 편 사람의 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창 모자 밑으로 보이는 세상은 색다르다. 모자를 쓰고 지하철에 앉아 고갤 살짝 숙이면 사람들의 무릎아래만 보인다. 마주보는 것이 어색했는데 창 모자 하나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까만 납작 망사구두가 부푼 발을 감싸느라 터질 듯 하고 연세 많은 할머니의 통통한 다리는 아직 세상을 딛고 설 기운이 넘침을 말해 준다. 끌어올린 두꺼운 양말 속 종아리가 나이를 과시하고 있지만. 발만 바라봐도 나이가 보이고 비슷하거나 아예 같은 신발의 남녀는 다정한 커플임을 과시한다. 아마 고개를 조금 더 들면 겉옷이나 윗도리 등도 커플룩이 보일지도 모른다.어느 역에서인가 맞은편 의자의 손님들이 교체되었다. 여섯 자리 모두. 평소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중요치 않던 자리 수를 세다보니 지하철은 종점을 향해 달린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외로. 팔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운동화 한 쪽 앞이 비어있는 듯 앞쪽이 쭈글쭈글 하다. 발 뿐 아니라 한쪽 손까지 불편한지 손바닥이 위쪽을 향해 의자에 힘없이 놓여 있고, 또 다른 발이 되었을 지팡이 끝 고무판도 비뚤게 닳아 있었다.레이스가 있는 하얀 바짓단 아래 분홍 색깔의 구두는 더 선명하다. 그 옆자리 까무잡잡한 슬리퍼의 아주머니와 대조적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할 것도 같으나 신발로만 본 나이는 차이가 확연하다. 다리 사이에 삼진 어묵 종이봉투를 끼우고 앉은 아주머니는 구겨진 봉투처럼 안절부절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색 바탕에 연두색 끈이 달린 볼 넓은 운동화에 온통 흙이 묻은 아저씨가 올라왔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텃밭이라도 가꾸느라 묻힌 흙일까?아뿔싸! 굼뜨게 지하철을 내리려던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와 그 흙발아저씨가 부딪히고 말았다. 기우뚱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과 발이 불편해 보이더니 풍뎅이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주저앉듯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그때까지 파르르 떨다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던 풍뎅이처럼.목소리가 없어 말을 못하는 풍뎅이. 온몸으로 안간힘을 쓰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던 당신의 슬픈 등은, 마스크와 모자로 변장하고 자신의 일 외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암시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라는, 이청득심(以廳得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2024-03-27

끝없는 醫政갈등, 대화의 끈은 놓지 말길

심충택 논설위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갈수록 악화돼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26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잠정 보류하면서 의료계에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의대교수들은 ‘2천명 증원’ 철회 없이는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가 공보의 등을 투입해 의료 공백에 대처하고 있지만, 전공의에 이은 교수 사직으로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지난 일요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만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 방침과 관련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을 때만 해도, 의정갈등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그러나 하루 만에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협상테이블 마련이 어려워지게 됐다. 의대교수협의회는 25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못박았다. 정부가 ‘의대 증원만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간의 갈등은 지난주 정부가 향후 두 달 동안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더 악화됐다. 정부가 갑자기 의사들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사례를 꺼내들면서, 신고하면 최대 3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의료계를 향해 “모든 이슈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겁박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윤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파업과 관련해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앞으로 의료 공백이 더 심화되면 ‘정부 책임론’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도 의료공백 사태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들어 정부의 강경한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민심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지금 의정갈등은 중요한 고비에 있다. 정부가 일단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보류했지만 무기한 연기한 것은 아니다. 현재 전공의 90% 이상인 1만여 명이 면허정지 대상이다. 의대교수들도 사직서 제출과 함께 사실상의 준법투쟁에 들어가 외래진료와 수술·입원 병상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정부와 의료계는 끝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양측이 서로 2천명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의료공백을 장기화하는 것에 대해 환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기고야 말겠다’는 양측의 치킨게임식 감정싸움은 부정적인 결말을 낳게 마련이다. 당장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울지라도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일단은 양측이 한 테이블에 앉아 협의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대화를 하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2024-03-26

원전으로의 회귀

우정구 논설위원 국내 언론에서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으나 지난 21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는 유럽 등 세계 30여 개국의 국가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원자력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한국에서는 이종호 과기부장관이 대표로 참석했다.이날 회의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발전 촉진을 위한 원전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유럽에서 원자력에 초점을 둔 정상급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유럽은 원전과 관련한 산업이 사양길을 걸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에너지 독립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원전산업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특히 지구 온도상승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사용량을 1990년 대비 55%를 줄여야 하는 EU의 목표달성을 위해 청정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는 분위기다. 프랑스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AP통신은 “과거 부정적이었던 원자력에 대한 유럽국가의 인식이 최근 몇 년 사이 역전됐다”며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꼬집었다.유럽 국가들의 원전 부활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로 원전만 한 것이 없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원전은 필수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날 정상회의에는 그린피스 소속 환경운동가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대세는 원전의 부활이다.30년 안에 화석연료 사용을 100%로 줄이지 못하면 2050년 세계는 지구적 재앙에 직면할 거란 경고에 대한 대안이 없는 한 원전으로의 회귀는 불가피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26

정치권은 ‘경북도의 저출생정책’을 공부하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그저께(25일) 열린 ‘저출생 대책·점검 회의’에서 “저출생 극복 분야에 과감하게 재정을 선제 투입하고 출산, 돌봄, 결혼 분야의 도민 불편사항을 빠짐없이 파악해서 정책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경북도는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개최해 왔던 저출생 대책·점검 회의를 매주 월요일로 정례화했다. 이 지사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목마른 자가 샘 판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저출생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우리나라에서 노령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출생률 추락 속도가 가장 빠른 지역에 속한다.우리나라 저출생 문제의 핵심은 수도권 집중화다. 모든 자원이 몰려 있는 수도권이 가장 살기가 좋으면 청년들이 거기서 결혼하고 아이도 많이 가져야 하는데, 통계적으로 수도권 출생률이 가장 낮다. 주거와 양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청년들이 수도권에 취직을 하더라도 외곽지에 집을 구해 출·퇴근을 하니까 모두가 지쳐서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이 지사는 우선 “단시간에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은 어려우니만큼,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과 완전돌봄 정책부터 펴야한다”고 했다. 경북도의 경우, 아파트 1층을 지자체에서 구입해서 0세부터 초등학생까지 완전돌봄을 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에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1층에 내려와서 마음껏 놀고 공부하도록 하자는 생각이다. 돌봄은 0세부터 2세까지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이후는 공동체(전업주부나 봉사단체 등) 구성원에게 수당을 주고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가 시범실시하고 있는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의 완전돌봄’ 정책은 오히려 아이들을 학대하는 정책이라는 소리가 교육계에서 나오고 있다.이번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의석이 몰려있는 수도권 위주로 정책공약을 남발하면서 비수도권은 푸대접하고 있다. 정치권부터 ‘수도권 일극주의’가 대한민국 소멸 위기의 주범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24-03-26

다시 글로컬대학 선정에 도전한 지역대학들

교육부가 시행하는 글로컬 대학30 프로젝트의 2년차 공모 접수가 지난주 마감됐다. 교육부는 전국에서 총 103개교에서 65건의 신청서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지역에서는 대구가 6건 7개교, 경북은 7건 12개교로 밝혀졌다. 지난해 신청에서는 경북의 포스텍과 안동대·경북도립대가 선정됐으나 대구권에서는 지역거점대학인 경북대를 비롯 한군데도 선정된 곳이 없어 아쉬웠다.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는 비수도권 대학의 혁신 역량을 평가해 선정된 대학에 대해서는 5년간 1천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 속에 앞으로 10∼15년이 비수도권 대학 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인식 아래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비수도권 대학의 구조조정 사업이라는 평가도 한다. 지난해는 지역거점대학인 부산대와 전남대, 강원대, 충북대 등 전국 거점국립대 대부분이 글로컬대학에 선정됐으나 경북대는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지역의 중심대학으로서 지역의 위상을 대변하는 경북대의 탈락은 지역민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올해 경북대는 기획서를 제출하면서 ‘글로벌 명문 연구중심대학 KNU·청년연구자가 넘쳐나는 파워풀 대구’를 비전으로 담았다. 연구중심 대전환 등 5대 키워드를 제시했지만 결과는 두고봐야 한다.지난해 글로컬대학에 선정된 국공립대학 가운데 4군데는 통합을 전제로 했다. 경북대는 대구교대와의 통합 논의가 올해도 무산되고 금오공대와는 통합을 논의하려다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돼 단독 신청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총장의 비례대표 파동까지 벌어져 불안한 부분도 없지 않다. 대구교대는 단독으로 신청했다. 또 영남대와 금오공대, 경일대와 대구가톨릭대는 연합으로 신청서를 냈고, 계명대와 계명문화대가 통합으로 신청을 했다. 대학마다 획기적 혁신안으로 글로컬 대학 선정에 도전하고 있다.대학은 지역을 대표하는 학문의 장소다. 지역대학 발전은 곧 지역사회의 성장을 의미한다. 지역의 많은 대학이 글로컬대학에 선정되는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

2024-03-26

경영자의 시각이 미래를 결정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이 정도로는 안 된다. 더 깊이, 더 넓게, 더 멀리, 더 완벽하게 가야한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말이다. ‘완벽할 수 없다’라는 생각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퍼펙트 경영은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상태’를 지향한다. 퍼펙트 워크는 자신의 일을 대하는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점검하는 과정이고, 사소한 부분도 소홀히 넘기지 않고 ‘제대로’ 해내고자 하는 일 처리 방식이며, 결점없이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이다. 인식의 오류가 판단 오류가 된다.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스코는 포스코의 압연 롤하우징(Roll Housing)을 공급하는 회사로 혁신활동을 지원했다. 첫 인터뷰에서 “회사 비전과 경영철학은 없다. 창업주 부친 덕에 사장이 되었다” 직원 110명 중 부장 이상 임원은 없었고 현장 반장은 생산과장이 겸임하고 있었다. 창업주 시절 축구, 등산 등 동아리와 자녀 장학금 지원 등 회사 복지는 사라졌고, 생산 현장은 열악했다. 두 번째 방문 때 진단 결과와 혁신 조직구성, 인재양성, 직원 교육 등 제의에 관심이 없었다. 컨설팅을 중단하는 첫 케이스가 되었다.두 달이 지날 즈음 ‘혁신 하겠다. 전 직원 제주도 보내겠다’며 연락이 왔다. 보내온 계획서를 보니 사실이었고 사장의 경영 방향과 결단이 있었다. 전 직원 9차례 제주도 2박 3일 여행이 시작되었고 컨설팅은 재개되었다. 첫 날 성산일출봉 오를 때 가방에 돌 하나씩 들고 올라가 차수 별 돌 탑을 쌓고 사진 콘테스트를 통해 포상을 하게 했다. 둘째 날은 ‘회사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회사 건의사항 등 정리해서 제출하게 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건의사항은 답을 하게 했다. 이후 사장은 필자가 무슨 제의를 해도 동의했다.공장 대대적 드러내기 활동과 기름 먹은 바닥 30cm 콘크리팅을 하고 생산 흐름을 잡는 공장 레이아웃 설정과 작업장을 그려나갔다. 큰 돈이 들어갔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장의 사용하지 않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유틸리티, 다양한 작업 도구를 일하기 쉽게 정돈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 열정 맨이 나타났다. 공장 작업장의 일반 책상은 필요 기능만큼의 크기로 제작 설치하고 의자는 정리했다. 공장 자재 창고는 부품, 도구 등 복잡하고 많아 대대적 버리는 작업을 하고 보관할 물건을 정했다. 선입 선출의 레이아웃 설정, 물건의 모양, 크기에 맞는 보관 다이 설계, 제작, 정돈을 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창고지기의 아이디어로 전국 시도별 시목(市木), 시화(市花), 시조(市鳥) 등으로 보관 다이에 VM(Visual Management)을 하여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했다. 무인 자율관리체계화로 창고지기는 공장 사무실 중요 업무로 직무를 변경하였다. 사진 VM과 음악이 흐르는 자재 창고가 되었고 공장 생산 물류 흐름과 편리한 작업장 등 전국 벤치마킹 대상으로 줄을 이었다.기업은 한 차원 높은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적당히 개선하는 문화는 오래 못 가고 무너진다. 전 직원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일은 경영자의 인식과 시각에 따라 변하며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2024-03-26

생동하는 봄날처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색채로 다가오던 봄날이 비의 리듬까지 더해져 생동감을 부추기고 있다. 남도의 매화꽃을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꽃의 샛노란 반김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희끗희끗 조금씩 피어나는 목련과 벚꽃의 망울을 일제히 일깨우듯 봄비가 내리니, 멀지 않아 촉촉해진 대지에서는 한바탕 자연만물의 춤판이나 소리판이 어지간하게 열릴 것만 같은 모양새다. 흐르는 꽃향기 따라 벌, 나비가 날아들고 수시로 지즐대는 새소리에 산골의 여울물 소리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뭔가 심상찮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지 않을까 싶다.그렇게 오는 봄날은 왈츠풍의 리듬으로 만물을 깨우면서 서서히 생동의 향연을 펼치게 될 것이다. 생동하는 리듬감은 음악의 악보처럼 매끄럽고 활기차며 탄력과 윤기가 흐르는 듯하다. 흐르는 물은 개울의 얕고 깊음이나 좁고 넓음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다가 마치 연주하거나 노래하듯이 엷거나 또렷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게 된다. 그러한 흐름과 작용을 자연에서 터득하거나 모방하고 변용하여 새로운 선율과 리듬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일종의 예술이나 창작의 행위도 그러한 관점의 배경이나 응축의 과정을 거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닐까?‘먹과 벼루의 부대낌/음률처럼 들리더니//이윽고 신명나게 붓의 춤판 거침없다/크고 작다가 강하면서 약하고 느린 듯 빠르고 성글다가 빽빽하게/길거나 짧고 가벼운 듯 무겁고 얇다가 깊고 살찌거나 앙상하게/…./휘어질 듯 곧추서고 날아갈 듯 멈칫하며 끊어질 듯 이어져/석간수로 노래하다 폭포수로 쏟아지고 장류수(長流水)로 흐르는데….//먹빛이 가락을 타고/지축을 뒤흔드네’ - 拙사설시조 ‘붓의 춤’ 전문봄은 어쩌면 춤을 닮았기에 용수철처럼 톡톡 튀어 오르는 탄성이 있어서 스프링(Spring)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새싹들이 메마른 대지 여기저기서 음표마냥 쏙쏙 솟아오르고, 새 움이며 봄꽃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며 봄의 생동을 축복하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생기발랄하게 움직이는 봄의 춤사위 같기도 하고, 기운생동하는 서예작품의 거침없는 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리저리 활개치며 신명나게 춤판을 벌이는 몸동작 마냥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筆歌墨舞) 듯한 현란하고 활달한 붓질로 일필휘지 자연의 명작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그렇듯이 자연과 교감하는 예술은 상호작용으로 일맥상통하기에 공감과 울림의 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적인 교집합을 인식, 조명하여 상생의 아이템으로 확장, 융합시켜 나간다면 예술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예컨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예가가 빗자루붓을 들고 특유의 춤동작을 곁들이며 진중한 휘호 퍼포먼스를 펼친다거나, 춤꾼이 몸짓 언어로 외치는 이색적인 춤사위에 어울리는 시낭송이나 기타의 요소를 가미하게 되면 스토리와 운치가 한결 품격 있고 유장해지지 않을까 싶다.희망의 색과 환희의 빛으로 세상이 생동하는 때, 저마다의 습성과 기대로 새봄을 맞이하자. 움직이고 활동하며 봄을 즐기는 만큼 선물 같은 하루가 열리고, 애써 노력하고 추구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생동감 있는 리듬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2024-03-26

여당은 중도층이 돌아서는 이유를 알고 있나

오는 28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4·10총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됐다. 지난주 마감된 후보등록 결과, 대구는 2.83대 1, 경북은 3.07: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과거 총선과 비교하면 전국적으로 경쟁률이 대폭 낮아졌다. 극단적인 양대 정당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TK(대구·경북)지역은 대부분 지역구가 여당우세로 평가되지만, 대구 중·남구와 경산, 영천·청도 3곳 정도가 격전지로 분류된다. 모두 친여 성향의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한 곳이다. 총선을 불과 보름 정도 앞두고 국민의힘 내에선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다. 선거 막판 몰아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바람’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수도권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 및 출국 논란,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테러’ 발언 등이 중도층 민심을 뒤흔들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PK(부산·경남) ‘낙동강벨트’에서도 여당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부산 북구·강서구·사하구·사상구, 경남 김해시·양산시 등 낙동강 하구 지역을 포함하는 낙동강 벨트는 10석이 걸린 PK 최대승부처다.어제(25일)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 또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리얼미터가 지난 18∼22일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6.5%를 기록했다.일주일 전 조사보다 2.1%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국민의힘이 37.1%, 민주당이 42.8%를 기록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남은 선거기간 중에도 윤 대통령이 의료대란 등과 관련해 선거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의힘은 정권심판론 벽을 넘지 못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주력해야 할 이슈는 의료공백 해소와 민생 정책이다. 정부는 그동안 장바구니 물가와 주택가격 안정, 서민 생계대책 등 책임 있는 민생 대안은 내놓지 못한 채, 의사나 언론 등과의 싸움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였으니 외연 확장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2024-03-25

오컬트 영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오컬트(Occult)는 신비주의 학문을 가리킨다. 서양에서 주술이나 유령 등 설화와 문헌으로 전승되는 영적 현상을 탐구하고, 그 원리나 규칙을 연구, 이용하려 한 학문이다.현재에도 오컬트적인 상징을 추종하거나 연구하고 종교적 신앙으로 삼는 인물과 단체가 있다고 한다. 동양의 오컬트는 중국의 도교, 인도의 아유르베다, 티베트의 탄트리즘 등에서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유대교의 카발라, 초기 기독교의 영지주의 등에서 그 원리를 찾을 수 있다. 판타지 및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는 책과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자주 다룬다.악령과 구마, 빙의 등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는 그동안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컬트 물은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다. 70, 80년대 온 가족을 TV앞으로 끌어모았다.영화 ‘파묘’가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오컬트’ 장르로는 처음이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에 이어 ‘파묘’의 성공으로 한국의 오컬트 장르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등극했다. 한국적인 오컬트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 영화가 2016년 나온 ‘곡성’이다. 당시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해 화제를 뿌렸다. ‘파묘’는 ‘곡성’을 뛰어넘어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는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렸다.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이 얽힌 이야기가 요즘 세대에게도 통한다고 하니 다소 의외다. ‘파묘’는 지난달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도 공식 초청됐다. 오스카상에 빛나는 ‘기생충’의 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25

‘민주 없는 민주당’이 가는 길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민주’를 자랑해온 민주당이 길을 잃었다. 정당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김대중·노무현의 관용과 통합정신은 보이지 않고 이재명의 ‘독선과 배제의 정치’가 요란하다. 75년 역사와 전통의 민주당이 처음 가는 길이다.‘민주 없는 민주당’의 현실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조어가 웅변으로 말해준다. ‘시스템공천’이라고 자랑하더니 알고 보니 ‘고무줄공천’이었다. 이낙연 전 총리는 민주당이 “1인 정당, 방탄정당으로 변질됐다”고 성토했고, 홍영표 의원은 “민주가 사라진 가짜 민주당”이라고 하면서 탈당했다. 오죽하면 권노갑·정대철 등 당의 원로들까지 나서서 “공천이 당 대표의 사적 목적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겠는가.이재명의 사당화(私黨化)에 분노한 의원들은 탈당하여 신당 창당, 무소속 출마, 심지어 여당에 입당하여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민심을 외면하고 ‘공천 자해극’을 벌였으니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지속 여부를 당대표 1인에게 위임한 것은 정당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친북·반미세력들과 함께 비례연합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이념적 좌편향이 심화되었다. 그 결과 민주당의 정체성은 크게 훼손된 반면, ‘이재명 당’의 색깔은 더욱 분명해졌다.정치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고 배신한 벌이다. 민주당에 민주가 없으니 검찰독재론이 작동하기 어렵고, 우세하던 총선 판세도 결코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 여당의 잘못을 비판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는 힐난만 돌아온다. 당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탄과 차기대권 도전을 위해 공천을 무기로 ‘공당을 사당화’했다. 사익(私益)을 위해 대의(大義)를 버린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희생과 헌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이 아니다.‘민주 없는 민주당’은 여야관계와 정치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정치발전은 정당발전을 전제로 하는데, 이재명의 민주당은 정당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개딸’과 ‘팬덤’에 의존하는 극단의 정치, 친명체제 강화와 이념적 좌편향은 여야의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킬 뿐이다. 대화와 타협이 없는 증오와 혐오의 정치에서는 민주정치의 반동화, 즉 ‘독재정치의 싹’이 태동한다.민주화 역사에 빛나는 정통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당으로 전락한 것은 민주당의 불행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독선과 아집의 정치는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성공의 길은 탐욕의 정치가 아니라 희생과 헌신의 정치, 즉 ‘사즉생(死卽生)’에 있다. 나를 비우는 것이 당을 살리는 길이다. 민주당이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의 횡포를 막아주는 건강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길을 물어 ‘민주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민주가 바로 민심’이며, ‘민심이 곧 천심’이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2024-03-25

의대 증원 취지 맞게 지역인재 비중도 높여야

지역 의과대학에 정원이 크게 늘었다고 그 지역에 더 많은 의사가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2013년 정부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른바 지역인재전형제도의 도입이다. 비수도권 의과대학의 경우 소재지에 거주하는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는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도 40% 이상으로 의무화했다.서울 등지로 빠져나가는 지역 의대 출신 의사들을 막아보자는 의도였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지역의사들이 예우 등을 이유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로 보면 서울이 3.1명으로 단연 전국 1위다. 경북은 1.4명으로 전국 꼴찌며 대도시인 대구는 2.4명이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와 관련해 대구와 경북 5개 의과대학에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정원의 80%로 늘려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현재 정부가 2천명을 증원하면서 비수도권 의대는 60% 이상 지역인재를 선발토록 한 것보다 20% 더 늘려달라는 의견이다.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더 높여야 지역에 머무는 의사도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정부가 의대 정원을 2천명 더 늘리기로 한 것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확보 그리고 지역의료간 격차 해소 등에 목적이 있다.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까지 상향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일본의 경우는 의사면허 취득 후 일정기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로 지역의과대학 졸업생의 90% 이상이 지역에 머무는 등 지역의료 인력 인프라 확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지역의사제가 없는 우리는 의대 증원으로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대학별 의대 정원도 비수도권 중심으로 증원배분한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부터는 대학과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 지역의료 인력확충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경북은 의사 수와 의대 정원 면에서 전국 하위권이다. 지자체와 대학 등 지역사회의 관심과 대응이 중요할 때다.

2024-03-25

죽인 양심 시대

강길수 수필가 다음 달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날이다. 재외투표 3월 27~4월 1일, 선상투표 4월 2~5일, 사전투표 4월 5~6일이다.코앞의 총선을 생각하니 웬일인지 ‘양심(良心)’이란 말이 떠오른다. 선거와 양심이 무슨 관계가 있기에 내 마음은 이 말을 소환했을까. 나라가 신생자유민주주의 체제였던 때 나고 자란 연유일까. 아니면, 인간 본성 탓일까.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선거는 양심과 상관이 있기 때문이리라.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헌법전문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두말할 것 없이 선거로 일꾼들을 뽑아 출발했다. 한국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여서 정상 국가는 아니었다. 해방 후, 1948년 5·10 총선으로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어 정부를 수립하고 세계에 공포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결국, 선거를 통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나라의 선거가 공명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거 공명성은 유권자와 선거사무원들이 양심적으로 투표와 선거사무를 해내야만 확보될 수 있다. 만일 누가 비양심적인 투표나 선거사무를 했다면, 그 투표나 선거는 당연히 무효다.양심이란 무엇일까. 한 백과사전은 양심을,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이라고 풀이한다. 즉, 양심은 부정선거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주체라는 뜻이 된다. 하면 선거에서 선, 악은 무엇일까. 당연히 선은 공명한 선거고, 악은 부정한 선거다.지난 4·15 총선 후, 일군의 양심적 애국자들이 선거 데이터 통계분석, 부정투표지 등 수많은 부정선거 사실과 증거들을 밝혀내고, 지난 4년간 부정선거 퇴치를 외쳤다. 그러나 대다수 주류언론과 정치권, 사법당국, 정부까지 별 관심이 없었다. 제기된 선거소송도 대법원은 법정기일 180일을 대부분 어기며 질질 끌다가 의원 임기가 끝나갈 무렵 모두 기각했다. 스스로 양심을 죽인, 곡조 슬픈 시대다.집권 여당은 이번 국회의원 후보공천에서 오랫동안 줄기차게 부정선거 없애기 운동을 했던 두 후보를 경선 배제 또는, 공천취소 하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결국, 한 분은 ‘가가호호공명선거대한당’을 창당해 ‘비례대표 출마’를 결정했고, 다른 한 분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죽인 양심 시대의 가슴 아픈 초상(肖像)이다.이제 국민은 어찌해야 하나. 각자가 나부터 양심을 되살려야 한다. 침묵했던 국민이 되살아난 양심의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할 때다. 사전투표지에 관리관 개인 도장을 찍으라는 공직선거법을 무시하고 인쇄로 갈음하는 ‘불법적 사전투표는 하지 말고, 본투표 하기’부터 실천하는 일이다. 이것이 국민이 내는 큰 양심의 목소리가 될 테니까.

2024-03-25

‘햇빛발전협동조합’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었는데, 이날은 물처럼 소중한 자원인 햇빛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소를 건립하여 전지구적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대구시민의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사업조직인 ‘대구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2018년 2월 5호기 이후 정체된 ‘시민햇빛발전소’ 건립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 중심의 햇빛발전소 건립에 많은 사람이 효과적으로 연대하고 건립 자금을 조합원 출자금과 펀드의 형태로 효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햇빛발전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협동조합은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상호협력을 기반으로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협동조합의 국내 우수사례를 보면 광주시 서구에 위치한 ‘광주서구음악협동조합’이 있는데, 이 협동조합은 지역 음악인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으로, 음악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회원들 간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지역의 음악 문화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소비자 협동조합(COOP)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소비자 협동조합 중 하나로 소비자들이 자원을 결합하여 제품을 구매하고 생산하며,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촉진하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이 직접 조직을 운영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주도적으로 경영할 수 있고, 회원들 간의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나 집단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으며, 리스크를 분산시켜 개별 회원의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그리고 조합원이 직접 참여한 노력에 따라 생성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으며, 환경 보호, 사회적 공정 등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으로 활동할 수 있다.그러나 다수의 회원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므로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고, 기업과 달리 개인 또는 투자자의 자본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의사결정의 민주적 과정으로 인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으며, 회원들 간의 의견 충돌이나 관리와 운영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조직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이러한 협동조합의 특성을 가지고 ‘대구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조합원수가 2018년 설립 당시 15명에서 2023년말 현재 142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2022년 (사)대구시민재단으로부터 기부금 형태로 1천만원을 출자받는 등 자본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2021년부터 4기(6~9호기), 약 400㎾ 규모의 ‘시민햇빛발전소’에서 꾸준히 전력판매가 이루어지면서 불과 3년이 지난 올해 (사)대구시민재단에 역으로 500만원을 사회공원사업비로 기부하기에 이르렀다.이러한 성공은 올해 ‘시민햇빛발전소’ 10~13호기(약 400㎾)를 설립한 ‘달구벌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게도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2024-03-25

인류의 기록문화유산, 제주어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데이비드 크리스탈이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언어의 죽음’은 스티븐 웜이 분류한 언어의 위기 5단계가 있다. 그 가운데 제주어는 이미 5단계로 소멸된 언어로 분류된 바가 있다. 제주어의 소멸을 안타까워했던 필자는 국립국어원장 시절부터 이 제주어를 인류의 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 실천에 앞장서왔다. 제주방언의 보존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제주방언연구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제주어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고유한 제주 문화와 역사까지 온전히 남겨져야 할 것이라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제주 토착인들은 과연 제주어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제주어를 교육하고 문학작품에도 제주어 사용을 하고 있는가?현길언의 소설 ‘용마의 꿈’에 나오는 ‘안가름’은 마을 이름이다. ‘안가름’(강남(江南) 천자국(天子國) 안가름 김정승 댁에서 솟아나신 총맹스런 세 부인입니다. )은 마을 이름이다. ‘-가름’ 또는 ‘-카름’은 ‘가르다(分)’의 의미를 가진 동사의 명사형이다.제주에서는 동쪽에 위치하면 ‘동카름’, 서쪽이면 ‘서카름’, 중앙이면 ‘안가름’ 또는 ‘안카름’이라 하고, 방위와 관계없이 바다 쪽이면 ‘알카름’, 한라산 쪽이면 ‘웃카름’이라 부른다. 또 ‘그신새’(나는 어머니 등 뒤에 달라붙어 누운 채 그 도깨비를 생각한다. 저건 틀림없이 그신새 귀신일 거야.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낱말의 뜻은 무엇일까? ‘그신+새’로 분석되며, ‘새’는 한자어 ‘사(邪)’에 해당한다. 사악함을 쫓는 것을 ‘새쾓리다’라고 하는데, ‘새쾓리다’의 ‘새’가 바로 이것으로 이것은 허약한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있다.현기영의 소설에서는 ‘곤밥’(어린 시절에도 파제 후 ‘곤밥’을 몇 숟갈 얻어먹어 보려고 길수 형과 나는 어른들 등 뒤에서 이렇게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곤 했다. -‘순이 삼촌’, 곤밥(흰쌀밥)으로 손님 대접해여마씸. -‘변방에 우짖는 새’)이 자주 등장한다. ‘곤밥’은 ‘고운 밥’의 제주어인데, ‘곤(麗)+밥(飯)’으로 구성된 낱말로 잡곡을 섞지 않고 흰쌀로만 지은 밥을 말한다. 가난한 제주사람들이 평소에는 잡곡밥을 먹다가 제삿밥으로만 흰쌀밥을 먹었기에 ‘곤밥’이라 하였을 것이다. 쌀밥이 잡곡밥보다 빛깔이 곱다고 생각한 언중들의 생각이 담겨진 어휘다.제주도는 삼다의 섬이라고 한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섬인데, 특히 바람과 관련한 어휘가 많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대양의 바람을 문충성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동마바람/ 서마바람/ 갈하늬/ 높새/ 높바람/ 높하늬/ 건들마/ 도껭이/ 도지/ 강쳉이/ 양도새/ 바람주제/ 놀/ 모든 제주 바람들 한데 모여 사는 곳”-(‘허공’). 여러 종류의 바람 이름이다. 이 가운데 특히 ‘도껭이’는 어떤 바람의 이름일까? ‘도껭이’는 ‘도(回)+ㅅ+개(疥)이’로 분석되는데 ‘회오리바람’으로 짐작할 수 있다. 동풍을 ‘샛킞름’, 서풍을 ‘놋킞름’, 남풍을 ‘마킞름’, 북풍을 ‘하늬킞름’이라 하고, ‘하늬킞름’도 다시 세분하여 ‘서하늬·놉하늬’로 나누기도 한다.제주의 명물 음식 중에 몸국이라는 게 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가 뭍으로 올라와 한기를 가세며 몸국 한 사발을 먹으면 저절로 온몸에는 화사한 봄이 깃든다. 몸국에서 ‘몸’은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이다. 돼지 뼈를 고아 끓인 국물에 모자반을 넣은 제주 음식이다. 제주도 시인 허영선은 ‘몸국 한 사발’이라는 시에서 몸국을 요리하고 먹는 제주사람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창밖에 폴폴 눈 내리는 날/그리운 바다가 화악 달려들었다/단 한 숟갈에도 몸을 살려주던 그것/돼지뼈 접쩍뼈/한번 질펀하게 우려내 국물을 내고/그 말갛게 싱싱한 바다의 몸 살짝 밀어 넣어주면/순식간에 덮쳐오던 미친 허기/그 위로 접착제처럼 끌어당기던/배설까지 베지근 보오얀 홀림/아무것도 걸칠 것 없는 바다의 식탁/몸이 ㅁ·ㅁ을 먹다보면/저절로 몸꽃 피어나던/성스러운/그 한 사발/몸국”-허영선의 ‘해녀들’. ‘접짝뼈’, ‘배설’, ‘벶근’, ‘ㅁ·ㅁ’과 같은 제주어로 감싸 안은 ‘몸국 한 사발’을 바다의 식탁에 올려놓고 허기진 배를 채울 몸국 한 숟갈을 떠먹어도 확 바다가 달려든다. 온 몸에 퍼지는 몸국은 제주인들의 성스러운 몸(身)이다. 바닷바람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혼이다. 방언의 힘, 몇몇 제주 단어가 살아 퍼덕이는 시에서 제주 사람들의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2024-03-25

마라톤 전투 - 서세동점의 기원

기원전 550년경 지금의 이란 땅에 아케메네스왕조가 번성한다. 이후 기원전 529년이 되면서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에 의해 통일제국이 탄생하였다. 페르시아는 나일강 유역의 3천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 자연재해 한번 없이 풍요를 누리던 이집트를 평정하고, 오리엔트를 하나로 묶는다.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는 막강 군사력으로 기원전 513년 본격적인 정복 전쟁에 나선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수중에 넣으면서, 해상무역에 사활이 건 그리스와 한판 세기의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다리우스 1세는 이오니아를 진압한 후 아테네 원정에 나섰다. 현대 서양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사에서 처음 동서양 전투가 개시된다.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은 신들의 나라 편이었다. 바다에서 폭풍과 파도가 몰아치는 바람에 300여 척의 배가 침몰하면서 다리우스 1세는 분을 삭이며 회군해야 했다.다리우스는 절치부심,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는 제2차 정벌에 돌입한다. 당시 페르시아는 군함 600여 척의 막강 해군을 중심으로 보병 2만 5천 명과 기병 1천 명을 비롯해 군사들 사기마저 높아 거칠 것이 없었다.그리스 낙소스를 점령한 페르시아는 아테네의 굳건한 동맹 에레트리아 공격에 나섰다. 페르시아는 자신들의 성역 사르디스를 불태운 데 대한 복수로 시민 모두 페르시아로 데려가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창끝을 아테네로 향했다. 이때 아테네는 수성전을 펼쳐 스파르타군이 오기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나가서 맞서 싸울 것인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때 아테네에는 밀티아데스(Miltiades)라는 출중한 장군이 있었다. 그가 지휘하는 아테네 군사는 그리스 동북부 마라톤 평원에서 막 상륙한 페르시아 주력부대를 맞았다. 그리스는 시민군 1만 명이 전부였지만,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자신들이 승리 하리라는 신탁을 듣자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 1만 5천 명만이 해안에 진을 쳤고, 나머지 1만 명은 아테네를 공격하기 위해 항해를 이어갔다. 이를 확인한 밀티아데스는 급박해졌다. 아테네에 페르시아 공격을 막을 군사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했다.이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마치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처럼 양익포위 전술이었다. 적은 수의 아테네 군사를 페르시아 군과 대등하게 맞서게 한 후 중앙을 얇게 양쪽은 두텁게 포진했다. 페르시아군은 종대로 대열을 맞춰 포진했다. 앞을 향해 나아가던 아테네 군사는 페르시아 군과 거리가 좁혀지자, 진군 속도를 높였다. 상대적으로 중앙군은 속도를 늦춘다.페르시아 군은 궁수도, 기병도 없는 그리스 군을 오합지졸로 얕보았다. 화살 사정거리에 들자, 페르시아 궁수들이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댔다. 아테네 군사들은 진격 속도를 높여 사정권을 벗어나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양측의 뛰어난 군인들이 페르시아 옆구리를 쳤다. 적진 뒤를 돌아 포위에 성공하면서 전열이 흐트러진 페르시아 군을 부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군대는 양측을 뚫고 들어오는 아테네군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불과 15분여 만에 거둔 아테네 승리였다.아테네군 피해는 192명으로 미미한 반면에 페르시아는 6천400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서양 역사가들 주장처럼 동서양 간 최초로 벌어진 전투에서 그리스 승리로 끝났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승리라며 동양 지배, 즉 서세동점의 당위성에 무게를 실었다.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마라톤 전투는 유럽이라는 아기가 탄생하면서 낸 첫 외침이라고 감동한다. 고대에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동서양 대립이라는 시각 자체도 웃기는 일이다. 더구나 당시 그리스 문명이 유럽이 아니라 지중해, 즉 오늘날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아우르는 곳에서 일어났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문명 역시 아테네보다 페르시아가 더 발달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군국주의적인 스파르타보다는 훨씬 민주적이었다. 스파르타는 노예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함께 훈련에 동참했으며, 기형이 태어나면 죽였고, 여자는 원로원 출입도 할 수 없었다. 이 예를 든 것은 문명의 반대가 야만이기 때문이다.마라톤 전투 승리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전령이 전력 질주해 아테네에 도착한 후 “승리했노라!” 외치고는 쓰러져 죽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 해군이 아테네를 침략하는 것을 서둘러 돌아가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마라톤이 되고 올림픽 공식 종목에 채택되었다. 이때 진군 거리가 42㎞다. 뒤에 195m가 추가된 것은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에서 영국 여왕이 있는 윈저궁까지 거리가 추가되면서 공식화된다. 여왕이 골인 지점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는 게 정설이다./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3-25

“내가 이렇게 공천한다는데 뭐 어쩔래”

김진국 고문 민주당 박용진 의원 공천 탈락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오래도록 남을 사건이다. 지역구민의 뜻과 다르게, 국민 여론을 거슬러, 당권을 쥔 권력자 한 사람이 국회의원을 만들 수도 제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독자 출마할 수도, 주민이 그 사람에게 표를 던질 수도 없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나.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왜 박 의원을 쫓아냈을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또 당 대표 경선에서 박 의원은 이 대표의 눈엣가시였다. 박 의원은 이 대표의 약점을 아프게 공격했다. 그는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부패세력 발본색원, 온갖 비리 일망타진’으로 밀고 가야지, 정치적으로 여당한테 유리할지 야당한테 유리할지 이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대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여행하도록 1천만원씩 주자고 즉석 공약했다. TV 토론에서 박 의원이 이 공약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 대표는 “그건 공약이 아니고요…”라고 발을 뺐다. 그러자 박 의원은 “그럼 뭐가 공약이냐”며 비웃어 망신을 줬다.다른 사람은 잊어도 이 대표는 모두 치부책에 적어둔 모양이다.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할 때, 민주당 내에서 최소 39표의 이탈표가 생겼다. 이후 명단이 여의도에 떠돌았다. 그 명단에 오른 의원은 이번에 모두 제거됐다.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무줄이었다. 특히 박 의원 제거는 끈질겼다. 4달 전 의정활동을 잘못한 하위 10%에게 감점을 20%에서 30%로 올렸다. 거기에 박 의원을 집어넣었다. 재심 요청은 기각했다. 해마다 우수의원으로 뽑혔던 박 의원이 왜 하위 10%인지 설명이 없었다.1차 경선에서 이긴 정봉주 전 의원이 사퇴했지만, 차점자인 박 의원을 공천하지 않았다. 전남 순천과 다르게 적용했다. 2차 경선에서는 규칙을 다시 바꿨다. 강북을 권리당원 50%, 주민 여론 50%에서 전국 권리당원 70%, 지역 권리당원 30%로 조정했다. 지역 연고 없는 조수진 변호사를 위한 규칙이다.2차 경선에서 이긴 조수진 변호사마저 사퇴했다. 그러자 한민수 대변인을 ‘전략공천’했다. 한 후보는 박 의원·조 변호사와 2차 경선을 신청했지만 컷오프됐다. 예비심사에서 박 의원·조 변호사보다 못하다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박 의원을 배제하고, 한 대변인을 선택했다.‘자객’들의 자질도 기가 막힌다. 먼저 박 의원을 누르기 위해 입이 거칠기로 소문난 정봉주 전 의원을 투입했다. 정 전 의원은 이혼한 전 부인을 폭행한 전과가 있다. 그는 팟케스트에서 ‘발목지뢰 경품’ 망언을 했다. 그는 피해 군인들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 팟케스트에서 조국 사태에 바른말을 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신문에 적을 수 없는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조수진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미성년자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자들을 여러 차례 변호했다. 변호 과정에 2차 가해를 한 과거도 드러났다. 성범죄자가 감형받는 요령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관련 범죄자들이 자신에게 의뢰하도록 홍보한 것이다. 일종의 전문변호사다.이 대표는 당 대표 경선 때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정반대다. 그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며 조롱한 일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을까.이재명 대표는 “이번 정권은 아예 대놓고 ‘내가 한다는데 뭐 어쩔래’ 이런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공천이야말로 ‘어쩔래 공천’ 아닌가.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파괴되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정치 경쟁자를 부정하는 행동을 전체주의의 위험신호라고 지적했다. 정치인에 대한 맹신적인 지지, 가치 규범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게임으로 환원해 생각하는 정치적 몰가치성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상식이 있는 시민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