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조선을 유린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백성들은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어디가 안전하다는 속설이 유언비어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 중에도 특히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설이 힘을 얻었는데, 포항지역의 경우 기북면 송을곡(松乙谷)과 죽장면 송내동(松內洞)이 대표적이다.
송을곡은 지금의 기북면 덕동마을의 옛 지명으로,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가 이 속설에 따라 자기 식솔들을 이 마을에 피란시켰다고 전해진다.
송을곡은 우리말 지명 ‘솔골’의 이두식 표기이다. ‘솔’의 뜻을 나타내는 부분인 ‘松’과 받침 ‘ㄹ’음을 표시하는 ‘乙’을 써서 ‘송을(松乙)’로 하고, ‘골’은 ‘谷’으로 표시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정문부가 고향으로 이사할 때 손서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堈)에게 재산 일체를 양여하면서 오늘날 여강이씨 중심의 덕동이 된 것이다.
송내동은 지금의 죽장면 입암리에 위치한 자연마을로 임진왜란 때 동봉(東峰) 권극립(權克立),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 등이 피란차 들어와 살았던 곳이다. 권극립 선생이 영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은, 임진왜란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지명에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라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라 하며, 그런 곳을 찾다보니 영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송내(松內)’라는 데가 있음을 알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임진왜란 때 나돌았다는 속설인 “난리가 났을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란 말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솔 송’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꽤 많다.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松都)가 있는가 하면 청송(靑松) 같은 고을도 있고, 마을까지 거명하자면 부지기수다. 그 근거를 암시하는 말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임진록(壬辰錄)에 나온다.
“이 때 왜장 소서가 바로 군사를 몰아 강원도로 향하더니 왜국에서 소서의 매씨(妹氏) 편지가 왔거늘, 하였으되 ‘제번(除煩)하고, ‘소나무 송(松) 자’가 있는 곳을 가지 말라. ‘송 자’ 있는 곳을 가면 대패할 것이니, 부디 가지 말라.’ 하였거늘, 청송(靑松)과 송도(松都)를 가지 않고 강원도로 들어가 강원 감사 이래(李來)와 평안 감사 이공태(李公太)를 버히고, 그 골 기생 월천(月川)은 천하의 절색이라 죽이지 않고 첩을 삼아서 주야로 연관정에 놀아 풍류로 세월을 보내더라.”
임진록에 의하면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의 매씨(여동생)가 오빠에게 편지를 보내 “‘솔 송(松)’가 있는 곳 가지 말라, ‘송 자’ 있는 곳을 가면 대패할 것이다.” 라고 했고, 소서행장은 매씨의 충고에 따라 청송이나 송도 같은 ‘솔 송’ 자가 들어 있는 곳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그렇듯이 임진록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면, 당시에 ‘솔 송’자가 있는 곳을 피하라는 참언(讖言)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소문이 포항 지방까지 전해올 정도면 이 속설은 당시 조선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명에 ‘솔 송’자가 들어 있는 곳들이 과연 임지왜란을 피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그러한 지명들을 다 조사해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어쨌든 송을곡이나 송내동은 왜병이 지나갔다는 기록이 없으니 무사했던 것 같다.
1990년경 죽장 송내동, 속칭 솔안마을로 필자를 안내했던 죽장 지역의 향토사가 권태한 선생은 ‘솔 송’자를 피하라는 참언의 ‘솔 송’자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솔 송’자가 들어있는 사람은 바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라는 것이다. 이여송을 피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맞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왜군이 ‘솔 송’자가 들어 있는 지명만 피해 다니다가 ‘솔 송’자가 들어 있는 명나라 원군 이여송 장군을 만나 패했다는 것이다.
‘솔 송’을 지명이 아닌 인명에 연결시킨 경우에도 근거는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壬辰 島夷蠹國 可依松柏(임진년에 섬 오랑캐가 나라를 좀 먹으면 소나무와 잣나무에 의지할 것이요)”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松柏, 즉 소나무와 잣나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松柏은 나무가 아닌 사람, 즉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이여백(李如柏)을 상징한다. 이여백은 이여송의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와서 벽제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정감록 같은 도참서에서도 ‘솔 송’ 자를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임진란 당시 ‘솔 송’ 자와 관련된 유언비어는 널리 퍼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참설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표현을 즐겨 쓰는 법이니,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특정 글자가 들어 있는 곳을 우회하여 갈 수 있을지언정 싸우자고 덤벼오는 적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