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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를 막기 위한 안간힘, 화재막이 풍수

등록일 2025-04-08 20:00 게재일 2025-04-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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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의 포항 민속문화 이야기
해인사의 화재를 막기 위한 남산제일봉 소금단지 묻기(2017).

지난 달 21일부터 영남지방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여 열흘 가량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유래 없는 재난을 겪었다. 가히 단군 이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집과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타죽고, 국가문화유산을 간직한 천년 고찰이 속수무책으로 소실되는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공포에 떨었고, 대재앙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함에 탄식을 쏟아내야 했다.

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다루면 한 순간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이 되고 만다. 그래서 화마(火魔)라 했다. 그러기에 먼 옛날부터 조상들은 화재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왔다.

서울 광화문 앞에는 돌로 조각한 해태 한 쌍이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조선초 경복궁을 지을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만들어 세운 것이다. 경복궁의 정남향인 관악산이 불꽃 형상이어서 궁궐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므로 관악산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 두는 한편, 화기를 잡아먹는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해태를 관악산을 향해 세워 둔 것이다. 불은 물로 다스려야 한다. 관악산의 모양이 불꽃 형상이니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수신인 용을 만들어 넣는 한편, 대궐 앞에는 관악산을 향해 화기를 억누르는 해태상을 세움으로써 이중, 삼중의 방재 장치를 해 둔 것이다.

불꽃 형상을 한 관악산
불꽃 형상을 한 관악산

산꼭대기에 소금을 묻어 화기를 누르는 곳도 있다.

해인사가 내려다보이는 매화산 남산제일봉(1100m)에 소금단지 묻는 전통이 그러한 예이다. 불꽃 형상인 해인사 남쪽 남산제일봉의 화기가 사찰로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난다는 풍수설에 따라 해인사에서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단오에 맞춰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 따라 소금단지를 묻어오고 있다.

해인사에서는 1695년부터 일곱 번의 화재가 났다. 특히 여섯 번째인 1817년 화재 때에는 팔만대장경이 들어 있는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인사에서 화재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킨 후 남는 물질이다. 이는 곧 바닷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는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남쪽 산꼭대기에 간수를 묻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달이 뜰 무렵, 마을 앞산 정상에 묻혀 있는 간수병을 파내어 간수를 채워 넣는 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은 다음과 같은 유래 때문이다.

조선 철종 때 마을에 큰 불이 나 가옥들이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한 풍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남쪽 동산이 ‘불 화(火)’자 형상이어서 마을에 불이 자주 나며, 불이 나면 반드시 연이어 세 번 난 뒤에야 그친다”고 했다.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화재를 막을 수 있느냐고 묻자, 산 정상에 구덩이를 파고 간수를 묻어 화기(火氣)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날 저녁에 산으로 올라가 간수병에 간수를 채우고 달맞이를 하게 되었다 한다.

이 유래담에 의하면 마을에 자주 발생하는 화재의 원인을 마을 앞산에서 내뿜는 화기 때문으로 여기고, 그러한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간수를 묻는다는 것이다. 마을의 화재를 막기 위해 간수나 바닷물을 병이나 단지에 묻는 의식은 포항시 송라면 광천리, 영덕군 남정리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경복궁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세웠다는 광화문 해태상.
경복궁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세웠다는 광화문 해태상.

북송리에서는 지난해 대보름날 묻은 간수병을 이듬해 대보름날 파 보는데, 병 속의 간수가 많이 줄었을 경우 지난 해 많이 가물었다고 인식하며, 앞으로 시절이 좋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 해에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행동을 조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간수 묻기가 방화(防火)와 함께 한해(旱害)를 막기 위한 기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화재와 가뭄은 다 불의 기운이 강한 데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풍수상 화기가 강한 곳에다 바닷물을 묻어 화기를 눌러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모습이다.

박창원​​​​​​​수필가
박창원수필가

사람들은 바닷물이 화기를 누르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간수가 늘 차 있어야 한다고 보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간수를 보충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는 소금에서 추출한 물이지만 엄연히 바닷물이다. 그러나 간수병에 들어가는 간수는 평범한 바닷물이 아니다. 그 물은 용의 신비스런 생명력을 간직한 신격화된 물이다. 따라서 간수는 살아 있는 용으로서, 비를 내려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주고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신격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보면 간수병은 이 마을을 화재와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는 수호신 구실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도, 현대의 과학화된 장비도 이번의 산불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산불이 번지면 산림에 인접한 어떤 마을도, 그 어떤 사찰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또 50년 이상 땀흘려 가꾼 울창한 이 땅의 산림이 도리어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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