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그 남자 곁을 지나갔다. 집을 나서면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인지 찌든 쉰내가 코를 스친다. 장시간 이발을 하지 않은 머리는 이리저리 엉켜 어깨 뒤로 늘어져 있다. 다행히 검은색 두툼한 패딩점퍼를 입고 신발도 방한화를 신고 있다. 빈 가게 앞 계단에 손을 가슴 위로 모으고 누워 있다. 겨울치고 날이 따스해서 해바라기라도 하나 보다.
그 남자가 움직이는 행동반경은 비교적 일정한 듯 했다. 자주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과 큰 사이즈의 콜라를 먹고 마셨다. 우리 집 근처 약국에서 시작해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재래시장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본 것만 3년이 넘었는데 노숙의 삶이 몸에 익었나 보다. 노숙에 익숙해지면 좀처럼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삶을 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붕괴된 기족 관계, 무너진 가정 경제, 실직 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요즘은 실직으로 젊은 노숙자의 수가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 동네에서 그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지 궁금했다.
문득 환상 방황, 윤형 방황으로 풀이되는 링반데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산에서 등반 중 본인은 어떤 목표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방향감각을 잃고 큰 원을 그리며 같은 지역을 맴도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간다고 믿고 움직이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다 보면 사고력이 둔해지고 이런 행동을 무리하게 하면 조난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눈보라나 안개가 많이 끼었을 때 일어나기 쉽고 해나 달 같은 방향을 알려주는 기준점이 없을 때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위기에 처하면 생각이 흐려지고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은 늘 평탄한 길만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안개나 눈보라, 폭풍 같은 것도 만날 수 있다. 그런 어려움이 닥치면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힘든 일이 반복되며 더 깊은 어려움 속으로 들어가면 방향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삶에서 이런 환상 방황을 크게나 작게나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있었다. 단순히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이 아니라 불까지 몽땅 나가서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놓여 있었다. 손을 얼마만큼 뻗어야 비상 호출을 누를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향도 거리도 측정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같이 탔던 고등학생과 나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잠잠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이 있어서 밖으로의 연락이 가능했겠지만 그 당시엔 휴대폰이 일상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어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진한 무력감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 누군가는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노숙의 삶을 살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존 폴 디조리아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두 번이나 노숙자 생활을 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스스로 믿었다고 한다. 두 바퀴 스케이트보드로 유명한 강신기 대표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사업을 하던 중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 후 식구들은 처가로 보내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었다. 그러나 인력시장을 나가면서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이 늘 마음에 남아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모나 주변의 격려도 일어서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오늘도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원을 그리는 삶을 사는 그 남자를 지나쳤다. 요즘은 몸이 많이 힘든지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는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 가운데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마음이 작은 불씨로 일어났으면 좋겠다. 자신의 환상 방황을 끝내고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돌아가기를 빌어본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웠으면 싶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말끔해진 그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