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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물 같은 하루, 축제 같은 나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주 연휴 내내 휘몰아친 비바람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강풍으로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면서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쳤고, 축대가 무너져 집이 붕괴되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등 남부지역에 집중된 예기치 못한 풍수해로 시름이 깊어졌다. 입하의 문턱에 쏟아진 단비가 해갈에는 도움이 됐다지만, 순식간에 돌풍과 함께 들이닥친 폭우가 적잖은 상흔을 남긴 ‘눈물비’가 돼버린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듯 ‘밤새 안녕’이 무색하리만치 변덕스런 날씨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루를 무탈하고 온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이 조바심 태우며 보냈던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세계보건기구(WHO)가 3년 4개월만에 해제했다. 그에 맞춰 국내의 일상회복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국민들의 삶과 일상이 코로나 이전처럼 조금씩 꺼리낌없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의 집요한 발목잡기에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정말 얼마나 위태하고 소중한지 절실히 느낀 나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제약되고 억눌린 상황에서의 생활은 무엇 하나 아쉽고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랴만,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이 완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너나 없이 안도하며 반기는 모습들이다.그래서일까?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나들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많아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4년만에 열리는 축제나 체육대회 따위의 야외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렸거나 열리고 있어서 실로 전국 곳곳에는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고 생동감이 감돌고 있다. 경북만 하더라도 문경찻사발축제가 흥행 ‘대박’으로 마무리됐고, ‘신바람난 선비의 화려한 외출’을 테마로 한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나 안동민속축제를 봄축제로 확대 개편한 차전장군 노국공주축제 등이 성황리에 열렸는가 하면, 이 달 말경엔 전국 3대 불꽃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환상적인 불빛 판타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별 특색이나 역사적인 배경에 걸맞는 테마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하듯이 신명나는 축제나 행사로 이어지니,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러고 보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와 완상(玩賞)이던가. 당연할 것 같은 일상의 움직임이나 현상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대처가 어렵고 걸림돌이 생긴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하루를 평온하게 보낸다는 것이 무심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필자는 불의의 춘사(椿事)로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나니 새삼 선물 같은 하루가 그리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무덤덤하고 예사스러운 일상 같지만, 일단 무엇인가에 얽매이거나 불편이 뒤따르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이 그리 간절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황사 같은 코로나의 시름도 남풍 결에 사라져가는 봄날, 선물 같은 하루하루가 자신의 평안함 속에서 삶의 맛과 멋을 더하는 축제 같은 나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상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즐겨보자!

2023-05-09

모럴 헤저드

우정구 논설위원 모럴 헤저드는 19세기말 영국의 보험회사들이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르키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자동차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안전운전을 할 텐데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비용은 보험회사가 물어준다는 생각에 운전을 소홀히 한다는 뜻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지금은 법적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니 집단이기주의적 행위를 가르키는 행동 등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우리 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이나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도 모럴 헤저드의 범주에 든다.미국 등 서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의 힘’으로 표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르키는 용어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사회 지도층일수록 지위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예시로 프랑스 칼레시 지도층의 행동이 자주 인용된다. 영국과의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6명의 대표시민 목숨을 요구받은 칼레시는 당시 도시의 최고 부호와 고위층이 스스로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서면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건진다.사회지도층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책임은 이처럼 매우 엄중하고 엄숙하다. 특히 가진 자의 도덕심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할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진다.한국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덕목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궁핍 마케팅으로 유명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화폐 보유 논란을 보면서 한국 정치의 모럴 수준을 걱정해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09

당무감사 앞둔 與현역, ‘물갈이론’에 떤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야가 최근 내년 총선 공천준비작업에 들어감으로써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 국민의힘은 총선후보자들의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곧 당무감사에 착수하고, 민주당은 그저께(8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공천룰’을 확정했다.내년 총선에 패배할 경우, 정부 여당은 조기 레임덕으로 인해 식물상태가 되고, 야당은 수권정당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여야 모두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현재로선 다양한 변수가 잠복해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진영논리에 갇힌 양대정당의 극한 대립으로 무당층이 급증하는가 하면, ‘제3지대론’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현역의원 물갈이 공천’이 최대 관심사다. 경북매일신문이 지난주 발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중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끈 부분도 현역의원들에 대한 평가였다.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각각 52.5%와 55.1%의 지지를 받으며 여전히 민심을 얻고 있지만, TK 현역의원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대로 뚝 떨어졌다.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51.2%)을 넘어섰다. 총선 때마다 ‘공천 개혁’이란 타이틀로 가장 먼저 TK 현역의원을 칼질했던 보수정당의 관행이 내년 총선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TK 지역구 의원 25명 중 9명만 공천을 받아, 현역 교체율이 64%에 달했다.실제 대통령실이나 법조인 출신 인사들의 TK 낙하산설이 그럴듯하게 흘러나오고 있어 현역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공천만 받으면 손쉽게 당선되기 때문에, 대통령 주변 유력인사들이 출마욕심을 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국민의힘의 역대총선 공천과정을 보면, 내년 총선에서도 당무감사위원회가 현역교체 근거자료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TK지역에서 당무감사 형식을 빌어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했었다. 감사 결과를 등급(A∼E)으로 매겨 평균 등급(D,E) 이하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국민의힘은 지난달 신의진 위원장을 포함한 당무감사위원 7명을 선임했다. 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했다. 당무감사위원회는 여름휴가와 정기국회 일정 등을 고려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정치부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무감사를 앞두고 공천탈락을 염두에 둔 일부 의원들이 벌써 무소속 출마설을 흘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예를들어 ‘TK지역도 이제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지 말고, 일을 잘하면 공천을 받지 않더라도 당선시키는 케이스가 많아져야 한다’는 등의 논리다.공감이 가는 말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보수의 본산’이라는 이름에 비해 중견정치인들이 많지 않다. 공천 때마다 현역을 대거 날린 결과다. 집권당이 우선 역량 있는 인물을 공천해야겠지만, 유권자들도 ‘공천=당선’이라는 TK 선거풍토를 바꾸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2023-05-09

경북도 신도시, 인구 10만 도시는 희망사항?

경북 안동시와 예천군 일원에 들어선 경북도청을 중심으로 조성키로 한 경북도청 신도시 사업이 영 지지부진하다. 이 바람에 경북도의 장밋빛 계획을 믿고 땅과 상가 등을 매입한 수요자들이 은행이자 등 늘어나는 금융비용 부담에 등골이 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경북도가 당초 계획한 10만명 자족도시가 실현될지 불투명해 경북도를 믿고 부동산을 매입한 상당수 지주들의 파산도 우려된다고 한다.경북도는 2016년 안동과 예천 일원으로 도청을 이전하면서 경북도청을 중심으로 신도시 건설을 계획했다. 2027년까지 3단계에 걸쳐 1만966㎢에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인구 10만명의 자족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1단계로 2015년까지 인구 2만5천명이 거주하는 행정기능 중심도시를 먼저 조성하고, 2단계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인구 7만5천명을 수용하는 주거 기능과 함께 문화, 체육, 호텔, 공원, 학교 등 주민편의시설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그러나 신도시 조성계획은 당초 예상을 빗나가 올해로 도청이전 8년째이나 겨우 인구 2만2천여 명이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도청 신도시 개발이 부진하자 많은 지주와 상가주인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경북도의 개발 계획을 믿고 투자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빈상가와 은행 이자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으로 국내 은행의 금리까지 크게 올라 이들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신도시 조성이 단번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충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나 세종신도시 등에서 보듯이 신도시는 정주 여건의 부족으로 도시형성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경북도청 신도시는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당초 목표에 비해 크게 미달한다. 수도권 지향과 국내 인구감소 추이 등 국내적 여건도 신도시 조성에 유리하지 않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특히 최첨단 산업단지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외지 인구유입 효과를 찾는데 묘안을 짜내야 한다. 지금 상태로 둔다면 10만 자급도시 조성은 그저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2023-05-09

국제적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부상하는 포항

철강도시 이미지가 강한 포항이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빠르게 변신하는 모습이 놀랍다. 다른 도시에 비해 지난 2014년부터 일찌감치 관련산업 지원에 행정력을 집중해 온 결과다.포항시는 그저께(8일) “올 상반기에만 이차전지기업 투자유치 금액이 5조원에 이를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 4일에는 포항시청에서 중국 절강화유코발트사와 1조7천억원 대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절강화유코발트사는 중국 최대 코발트 생산기업이자 세계 3위의 전구체 생산기업이다. 포항에는 세계 전구체 생산 1위 기업인 중국 CNGR의 투자도 한창 이뤄지고 있다.포항에 뿌리를 내린 다국적 배터리 업체들도 현재 국내외적으로 공격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포스코케미칼)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5년까지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 4만6천t 규모의 하이니켈 NCMA 양극재(리튬·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을 원료로 제조)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올 하반기에 착공해 2025년 공장을 준공한다. 영일만산단에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조성해둔 에코프로도 국내 양극재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지난달 21일 헝가리 현지에 생산 공장을 구축해 2차전지 양극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포항시는 “이미 확정된 이차전지 기업의 투자유치 금액이 12조원에 달한다. 앞으로 이들 기업들이 입주할 부지(200만㎡)를 마련하는 등 인프라 조성에 총력을 쏟겠다”고 밝혔다.포항시는 정부에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원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기반시설과 인허가 신속처리, 각종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을 받아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정부의 특화단지 지정 기준대로라면, 포항은 단연 최적지다. 이차전지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포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정부는 포항이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될 경우, 대구·경북 뿐만 아니라 울산, 부산을 아우르는 동남권 전기자동차 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2023-05-09

이상한 평론가 김갑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박은빈씨. /연합뉴스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배우 박은빈의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저격했다. “울고불고 눈물 콧물 흘렸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자신만의 생각과 작품을 하면서 겪은 고뇌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스피치가 딸리니 ‘감사합니다’만 남발한다고 혹평했다. “18살도 아니고 30살이나 먹었으면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송혜교에게 배우라”는 훈수까지 빼먹지 않았다.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렸고 다 구리다. 첫째, ‘무절제한 감정의 격발’은 오히려 그 자신이 범하고 있다. “울고불고” 운운은 저열한 인상비평이다. 소감을 다 들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들었다면 박은빈이 ‘자기 생각과 작품에서의 고뇌’를 충실히 밝혔음을 모를 리 없다. 그냥 “울고불고” 하는 게 눈꼴 시렸던 것 같은데, 과잉된 자의식 격발이야말로 꼴 보기 싫다.“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우리 사회가) 각자의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했습니다. 제가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자폐인에 대한 생각들이 편견에서 기인한 건 아닌지 매 순간마다 검증해야 했습니다”라던 박은빈의 수상 소감과 김갑수의 발언을 두고 보면 누구 스피치가 더 딸리는지는 자명하다. 정신적 성숙도 딸린다. 다양성에의 존중,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말한 박은빈의 품격에 비하자면 평론가의 교조적 태도는 치기나 다름없다.둘째, “아끼는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오만한 위계의식이 틀려먹었다. 수직적 꼰대이즘은 무엇이든 구별 짓고 등급을 매겨 규격화, 영토화한다. “송혜교와 탕웨이 정도가 교과서”라니, 감정마저도 표준화하려는 그가 설마 들뢰즈도 안 읽은 걸까? 셋째, “세계가 지켜본다는 걸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는 해명은 전형적인 사대주의 열등감이자 스노비즘이다. 결국 “남 보기 부끄럽다”는 것 아닌가? 그가 추앙하는 아카데미였다면 박은빈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모든 이들이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 수상 소감은 오직 그녀의 시간이고,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근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내로남불’이다. 그는 2015년 한 방송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육성이 나오자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그 눈물은 맞고 이 눈물은 틀리다면 과한 자기확신이다. 다섯째, 사회 보편인식과 괴리되었다. 박은빈의 눈물은 비판하면서 학교 폭력으로 타인의 생을 망가뜨린 황영웅의 비열한 미소는 옹호했다. “애들끼리 때리면서 크는 거지”라는 건데, 그는 2015년, 작품 활동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들의 소설책 출간을 팔 걷고 도왔다. 아들과 함께 잡지사 인터뷰에 나가기도 했다. 자기 아들이 학폭의 피해자였더라도 가해자를 옹호했을까? 박은빈은 아역 배우 시절을 거쳐 부모 찬스 없이 혼자 힘으로 성장했다.여섯째, 자기경험을 절대화하고 있다. 그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영광을 경험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북받쳐 저절로 토해지는 환희를 알지 못한다. 일곱째, 시대 모드와 동떨어졌다. 이제는 감정을 절제하고 점잔 빼야 했던 유교적 옛날이 아니다. 그의 강퍅함에서는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도사가 보인다. 여덟째, 대중을 폄하하고 있다. 지식인 특유의 우월의식인데, 김수영 시인은 대중의 위대함을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그러하다. 아홉째, 귀걸이 코걸이다. 만약 박은빈이 제임스 카메론처럼 “I’m king of the world!”라고 외쳤다면? 오만방자하다고, 겸손을 알라고, 세계가 보고 있다고, 여자는 ‘킹’이 아니라 ‘퀸’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열째, ‘관심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이정진에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있어 보이냐?”고.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처음 들어가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이성복,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시가 떠오른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대사를 옮기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꼰대 지식인의 너절하고 애처로운 관심 끌기에도 아랑곳없이 박은빈의 광채는 더욱 찬란하기만 하다.

2023-05-09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며

봄에서 여름 사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폭식을 끝낸 것처럼 공허함이 자리한다. 소화시키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인데, 가슴팍을 두드려보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 몸을 움직여 보아도 목까지 차오른 더부룩함은 사라지지 않는다.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집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도 해치워야 할 집안일이 차례대로 떠올라 괴롭다. 이번 주말엔 겨울 내내 가장 많이 붙어 있었던 전기장판을 정리해야 하고, 겨울 이불도 빨래해서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야 한다. 7월 말엔 4년 간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그간 창고 속에 쌓아 둔 쓸모를 잃은 짐들은 버리거나 나누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와중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달력이 넘어가고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낮과 밤이 바뀌어 있다. 이 길이 출근하는 길인지 퇴근하는 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매일 꿈결 같은 몽롱한 삶을 살고 있다.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대체로 6시.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잠을 잔다. 다시금 눈을 뜨면 오후 9시. 식사를 하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빵 한 조각이나 요거트를 대충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엇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재미와 자극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함과 피로를 소화시키고 있는데 재채기가 나와 쉼을 방해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가 싶어 인터넷에 날씨 검색을 했더니, 5월 6일자로 입하에 들어섰다고 한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후다.봄과 여름 사이, 환절기는 꼭 미열을 앓고 있는 것만 같이 달뜨고 불편한 감정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여름의 냄새가 훅 퍼질 때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몇 가지가 있다.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수영장에 놀러 가곤했다. 내가 살던 지역의 커다란 야외 수영장이었다. 그곳은 얕은 물과 깊은 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키가 작아 깊은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늘 얕은 물속에서 깊은 물에서 놀고 있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튜브가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깊은 물가를 서성였는데, 하필 어떤 대학생 무리의 손에 잡혀 예고도 없이 깊은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 네 번 머리가 수면 바깥과 안을 드나들었을 때 쯤 그들은 단순히 장난이었다며 해명했지만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무리 중에 한 명이 겁에 질린 나를 알아채고선 물 밖으로 꺼냈고, 내팽겨치듯 홀로 물 밖에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맵고 뜨거운 목구멍 속 일렁이는 분노와 나약함으로 산산조각 부서지던 그때의 여름. 처음으로 크게 겁을 먹은 때였고, 이후로 겁을 먹을 때면 누군가 밀어 버리기 전에 스스로 깊은 물로 뛰어들어 버리곤 했다. 물론 본질적으로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여름이 깊게 남긴 쓸쓸함은 가라앉아 있다가도 계절이 찾아오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에게 여름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몸처럼 억눌린 통증이 시작되는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 실은 몇몇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여름은 정말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무더위는 걸어 다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에 맺히는 땀 때문에 애써 드라이한 앞머리는 볼품없어 진다. 자외선에 자극받아 올라오는 빨간 두드러기들은 얼마나 가렵고 신경 쓰이는지. 장마철 엄청난 비를 퍼부었다가도 다음날 뜨거운 태양빛을 쏟아 붓는, 시시때때로 날씨를 바꾸는 심술궂은 변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무력하게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여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름날 쓸쓸했던 여럿 기억들은,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까지 그 쨍하고 눈부신 빛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눈부심을 마주해야 한다는 듯이.상처는 아물 때 가렵다. 쓸쓸함을 긁다보면 애틋함으로 번진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툴고 쓸쓸한 기억들이 여름이 지나 가는 동안 다시금 내면 깊이 가라 앉아 나를 이룬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변화할 때마다 쓸쓸함을 간직하는 내면의 깊이가 미묘히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봄과 여름 사이에서 그저 유유히 흔들리는 수밖에.

2023-05-09

동물 없는 동물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어린이날을 맞아 동물원 나들이를 다녀온 가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 기린, 하마, 사자, 얼룩말 등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의 단골 코스다. 어린 시절의 필자 또한 동물원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철이 들어서,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이상행동의 원인은 너무 좁거나 관람객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간 때문에 발생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다. 만약 당신이 기후도 식생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납치되어 우리에 갇힌다면? 더구나 낯선 이들이 갇혀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웃고 떠든다면? 우리는 이를 ‘폭력’이라고 부를 것이다.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에서 포획한 ‘이국적인’ 동물들을 본국으로 보내 전시한 것이 동물원의 시초다. 희귀종의 보존이나 생태 학습 등의 기능은 한참 뒤에나 덧붙여진 것이고, 그나마도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동물들을 본연의 서식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이탈시켜 관람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동물원의 본질이다. 초기의 동물원에서는 ‘인간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이는 원시 부족민을 동물들과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처럼 동물원이라는 제도는 시초부터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지난 3월, 서울 광진구의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도심지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어야 할 얼룩말이 대도시 한복판을 활보하는 이색적인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비했다. 문제는 동물원과 인간의 도시 모두가 세로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닭발집과 중화요리점 앞을 지나가는 세로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세로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러한 동물원의 폭력적 속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주동물원에는 코끼리 같이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외래동물이 거의 없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동물은 사육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다. 외래동물이 차지하던 넓은 공간에서는 늑대, 수달, 오소리 같은 고유종들이 사육된다. 고유종의 종 보존과 번식, 생태 연구도 이루어진다. 다쳐서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본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전시는 청주동물원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동물원은 관람객들에게 동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물원일 것이다.에버랜드 동물원의 아기판다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이 화제다. 필자 또한 온라인으로 푸바오의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여러 번 지었다. 하지만 푸바오를 직접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1년 뒤면 중국으로 돌아갈 푸바오가 또 다른 동물원이 아닌 야생의 대나무숲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푸바오가 그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2023-05-08

다문화 정책, 이대로 좋은가

김규인 수필가 우리가 꺼리는 가장 힘들고 가장 위험한 일터를 지키는 이주민들. 그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멈추어 선다. 농업도 뿌리산업도 줄기 산업도 모두가 외국인들의 손을 빌린다. 외국 이주민들이 일시에 다 떠난다면 농사를 짓는 일도 중소기업도 문을 닫아야 한다. 다문화 이주민들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산업의 동력을 잃는다.다문화 이주민 200만 명의 시대다. 학생이 모자라는 학교도, 산업 인력이 모자라는 산업체도,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도, 신부가 모자라는 개인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그들이 자리한다. 우리의 선배와 아버지들이 독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듯이 그들도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찾는다.가정의 미래를 위하여 홀로 떨어져 악착같이 돈을 벌어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남긴 채 가족들에게 보내는 가장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움을 억누른 채 가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돈을 벌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도한다.코리안 드림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괜히 미안하고 기분마저 우울해진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 문제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겪는 정착단계에서 어려움이 가장 크다.범죄에 연루되거나 소통 부재에 따른 이해 부족으로 괜한 오해를 받거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화재로 금쪽같은 자녀를 잃어버린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 사회나 사소한 사건이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과 안내가 부족하여 일어난 측면도 있다.정부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19개 정부 중앙행정기관, 17개 지방자치단체, 6개 이민 관련 위원회에서 외국인과 다문화와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교육 지원과 같은 초보적인 단계의 지원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다문화사업 중 중복되거나 유사한 예산은 521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업을 총괄할 중앙부처가 필요함에도 각 부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예산 집행도 교육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의 답답함은 크게 줄지 않는다.이민과 다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부처를 설치하여 외국의 우수한 젊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을 추진함에는 대만 같은 외국의 기관처럼 출입국 정책 수립에서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하며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일이 원스톱 체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이주민들에게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다.고용허가제 시행 19년에 불법체류자 40만 명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026년 기준 이주민 유입 경제 효과는 100조를 넘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이민자가 없으면 경제 활력의 동력과 성장을 잃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이민자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설립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2023-05-08

국회의원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를 원한다.

심한식 경북부 제22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선거구 획정을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인구수 변동으로 내년 총선에서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가 30곳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경북에서도 군위가 대구시로 편입되며 선거구의 조정이 불가피하다.이 때문에 “어디가 어디와 합쳐져 2인 선거구가 된다”는 등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오르고 있다.특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했지만, KBS와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를 개최하고 나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이를 통해 선거구제 개편과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장단점을 살피고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책임성, 비례성을 강화한다 해도 국회의원을 위한 선거구가 도입되어서는 곤란하다.자치단체마다 정당과 관련된 현수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타 정당을 비방하고자 시정잡배나 사용하는 단어들이 고스란히 옮겨진 현수막을 비롯해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날이 새면 새롭게 게시되는 등 공익을 가장하며 내년 총선을 겨냥한 현수막들이 거리를 오염시키고 있다.지역민들은 현수막 정치가 아닌 소통과 가까운 거리를 원한다.끼리끼리 뭉친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을 원한다.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다급하게, 상냥함을 가장한 정치인이 아닌 평소에도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앙당에 예속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공천권이 지역민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일부 정치인들은 정당에서 차지한 위치를 자랑하며 지역민을 현혹한다. 국민의힘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경북권에서 당직으로 권력을 자랑하기도 한다.하지만, 지역과 선거구민이 아닌 자신의 권력과 배경을 위한 당직은 부메랑이 될 것이다.앞으로 어떻게든 결론이 날 선거구 획정이 국회의원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민을 위한 선거구로 결정되기를 바란다. 또 국회의원 배지보다는 지역민의 아픔과 발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치인이 선출되는 총선도 기대해 본다.shs1127@kbmaeil.com

2023-05-08

동맹, 도청 그리고 외교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동맹국을 도청한 나라의 ‘국빈 자격’ 방문외교라는 ‘이 웃픈 현상’은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동맹·도청·외교’의 공통점은 모두가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동맹’과 ‘외교’는 합법적이고 ‘도청’은 불법적이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외교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실효적 대응, 중국 및 러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한 한미공조, 반도체법과 인플레감축법(IRA)의 해결, 도청의 재발방지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 중대현안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국익이 충돌하고 힘의 우열이 존재하는 외교협상에서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오직 동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이다.물론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핵협의그룹(NCG)’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인 것은 평가할만하다.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반도체법과 IRA는 해결하지 못했고, 미국에 밀착됨으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전략적 문제점 및 협상결과에서 비롯되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그 대책을 면밀히 강구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도청을 ‘외교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NBC 앵커의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철통같은 신뢰를 흔들지 못한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도청에 항의하는 대신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도청으로 민감한 국가기밀이 노출되었고 한·러 관계도 악화됐다. 그럼에도 주권국가로서 재발방지는 요구하지 않고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했다.국익은 동맹국이 선의로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으로 내가 지키는 것이다.한편 신설되는 NCG의 실효성 확보 역시 중요한 외교과제다. NCG 설립 자체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NCG 출범으로 핵전력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의 차관보급 ‘확장억제협의체’보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핵사용 결정권은 전적으로 미국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발언권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향후 NCG의 구체적 운영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 제고에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마지막으로 ‘동맹의 강화 및 확장에 따른 양면성’ 인식이 절실하다. 한미동맹은 강화되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장됐다.미국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우리외교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중국·러시아와의 이해관계 충돌은 한국외교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고난도 외교환경’이 ‘고난도 외교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와 보혁을 초월한 국가적 차원의 외교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3-05-08

후쿠시마 오염수, ‘현미경 검증’ 반드시 필요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처리수의 안전성과 관련, 한일 양 정상이 지난 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는 별도로 한국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에서 우려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번 달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 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외교부·해양수산부·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국내 관련 기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현장 시찰단을 오는 23일쯤 후쿠시마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IAEA는 이미 지난 2021년 7월부터 한국을 포함한 11개국 전문가로 모니터링TF를 구성해 오염 처리수와 물고기·해조류·해저 퇴적물 등 시료를 분석해 왔으며, 최종 보고서는 다음 달 정리된다. 방사능 오염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니만큼, 오염수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작업은 한 점 의혹없이 진행돼야 한다.지난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2023년부터 약 30년 동안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우리 수산업계는 불안감에 떨었다. 당시 경북 동해안 최대 어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의 경우 소비자 발길이 뚝 끊어져 타격을 입었다. 막연한 공포분위기로 인해 소금사재기 특수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일본이 조만간 오염수를 방류할 경우, 과학적인 검증결과에 관계없이 수산업계와 어시장 상인들은 큰 피해를 당할 것이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리스크는 ‘객관적인 팩트’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양국이 IAEA와는 별도 트랙으로 공동검증 작업을 다시 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현미경 검증’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경북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국민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해 선동이나 괴담을 퍼뜨리는 행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

2023-05-08

‘안동 구시장’의 부활

홍석봉 대구지사장 ‘안동찜닭’은 안동 구시장의 대표 상품이다. 안동찜닭 골목은 2011년 경북 유일의 테마 골목으로 지정됐다. 안동을 찾는 관광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찜닭 골목을 찾는다. 안동찜닭은 한 번 맛보면 풍미에 매료된다. 당면과 어우러져 칼칼하면서도 단맛이 일품이다. 어느덧 안동찜닭을 빼고는 안동을 말할 수 없는 명물이 됐다.구시장엔 안동찜닭 골목만 있는 게 아니다. 인근의 갈비골목, 떡볶이골목 등 음식특화거리가 형성돼 있어 다양한 먹거리 체험을 할 수 있다. 거기에 별점을 하나 더했다. 안동 구시장 연합(안동구시장, 남서상가, 중앙문화의거리, 음식의거리)이 최근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K-관광 마켓’10선에 선정된 것이다.‘K-관광 마켓’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고 대한민국 전통시장의 매력을 키워 대한민국 대표 관광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안동은 먹거리 뿐만아니라 볼거리, 즐길거리도 푸짐하다.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5월), 썸머페스티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9월), 눈빛축제 등 사계절 축제가 펼쳐진다. 토요 풍물시장, 하회별신굿탈놀이 야간공연 등 다양한 체험과 문화공연 등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인근의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월영교 등 안동 대표 관광 명소를 오가는 식도락 여행에도 제격이다.이번 ‘K-관광 마켓’선정에 따라 안동시는 특화콘텐츠 발굴, 지역 관광지를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 등 국·내외 관광객 유치 마케팅에 주력할 예정이다. 원도심 쇠퇴로 찬바람이 불던 안동 구시장에 사람이 모일 전망이다. 안동 구시장의 맛과 멋을 널리 알려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시장의 재탄생이 기대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08

지방 최초 설립될 대구시 농수축산유통공사

대구시가 농수산물과 축산물, 한약재 등 3개 도매시장을 총괄 관리할 가칭 대구농수축산물 유통관리공사(이하 관리공사) 설립을 추진한다. 대구시는 이와 관련, 지난 2월 행정안전부와 1차 협의를 마쳤으며 관리공사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을 9월까지 지방공기업평가원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구 관리공사가 맡게 될 도매시장은 대구시 북구 매천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과 중구 남성로 한약재도매시장, 북구 검단동 축산물도매시장 등이다. 이 중 매천동 농산물도매시장은 전국 33개 공영시장 중 세 번째로 거래규모가 큰 도매시장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1조1천억원 상당의 물량이 거래됐다. 특히 매천동 도매시장은 시설노후 등으로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키로 지난 3월 공식 발표된 바 있다. 2031년까지 하빈면에 4천억원을 투자해 경매와 가공, 선별 등 첨단도매 유통시설을 갖춘 도매시장으로 변모시킬 예정이다.대구시는 유통관리공사 설립의 배경으로 규모의 대형화로 전문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고, 상가와 주차장 관리 등이 따로 돼 있어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소비자의 소비 성향의 변화와 정보기술 발달에 따른 유통환경 변화에 신속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가락동도매시장과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등을 총괄 관리하는 유통공사를 둔 것에 견줘볼 때 전문화된 관리공사를 두는 것이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그동안 대구시가 지도와 단속 위주로 관리해 왔던 것과 비교해 볼 때 효율성 제고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특히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하빈면 이전에 맞춰 관리공사가 설립된다면 전문적이고 체계적 관리로 영남권의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더욱 시너지를 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관리공사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농수축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가격 안정 유지로 시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관리공사 설립이 우리지역의 주요 도매기능을 맡고 있는 각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유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5-08

초여름의 책 읽기, 서늘한 납량의 맛

에이브럼 ‘브램’ 스토커(Abraham ‘Bram’ Stoker·1847~1912).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짤막했던 봄은 어디론가 길가에 수북히 떨어진 꽃들과 함께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잠깐씩 느껴지던 냉기조차 사라져 후덥지근한 땀이 느껴질 때쯤이 되었다. 계절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인간됨을 확인하는 의례인 것만 같아 가끔은 노력을 기울여 계절의 변화를 느끼려 애쓴다. 계절이 바뀌면 기후도 바뀌고 그속에서 숨쉬는 인간도 바뀌는 것이다.지금까지 인간이 발전시켜온 기술들은 계절을 거슬러 여전하고 항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당연히 에어컨디셔너나 냉장고가 없는 여름을 생각하기 어렵고, 또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이 실물 세계가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의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계절의 변화에는 점점 더 둔감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계절의 감각은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의 기술적 변화를 거스른다.낡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고, 겨울은 겨울이다. 여름이라면 티셔츠 안 쪽에 남는 후텁지근한 땀내가 좋고, 겨울이라면 꼭 닫은 문을 열었을 때 어는 듯한 추위와 함께 밀려 들어오는 겨울의 냄새가 좋다. 여름밤에는 차오르는 땀을 씻어주는 밤의 바람이 좋고, 겨울밤이라면 두터운 이불이 몸을 감싸 들어오는 느낌이 좋은 것이다. 더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절에 담긴 의미를 만들어내고 기억 속에 각인된다.그렇게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는 피서나 납량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하곤 한다.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가는 것도, 시원한 것이나 보양을 위한 것을 먹는 것도 그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낡은 신문이나 잡지의 납량 특집 역시 더위를 피하기 위한 노력에 해당한다.물론, 초여름 더위를 피해 무언가를 읽거나 보면서 더위를 피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공포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오싹함이란 대상에 대한 무서움으로 인해 긴장하는 것일 뿐, 실제로 추위를 느끼거나 더위를 가시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늘하고 차가운 생각이 더위로 달궈진 신체를 시원하게 만든다는 납량의 상상력은 순진한 착각이지만 낭만적이다. 한낮의 열기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면, 귀신이나 유령, 그밖의 불가사의한 존재에 의해 위협받는 공포가 잠시 멈춘 머릿속 관심을 딴 데로 돌려주기도 하지만 말이다.그런 까닭에, 살짝 더위가 찾아온 초여름에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공포소설을 골라서 읽곤 한다.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도 좋고, 스티븐 킹의 소설도 좋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위험이 일으키는 서스펜스는 독자의 마음을 죄어, 순간이나마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초여름에는 흡혈귀가 등장하는 브램 스토커의‘드라큘라’(1897)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이미 흡혈귀의 대명사처럼 자리매김한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조너선 하커라는 변호사가 드라큘라의 의뢰를 받아 그의 성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그의 성에 오자마자 자신이 그 성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성에 가둬둔 드라큘라 백작은 400년 전에 죽은 아내가 환생한 존재인 조너선의 약혼녀 미나를 찾아 런던으로 오게 되고 미나의 친구인 루시의 목을 물어 흡혈귀로 만든다. 이 소설은 조너선의 일기와 미나의 편지 등의 형식을 띠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고 공포의 순간까지 들어가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번 드라큘라의 존재가 각인되고 피를 향한 그의 욕망에 걸린 인간들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순간, 초여름의 밤은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여름밤은 지나갈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5-08

청도읍성, 공간을 넘나드는 어울림

청도군 화양읍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색하기 좋은 읍성이 하나 있다. 조선시대에 개축된 이 읍성은 나지막한 성곽을 기준으로 성안으로는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마을 주민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군데군데 옛 공간들이 함께 현존해 있다. 성밖으로는 태극 문양의 연못과 정자, 형옥·향교나 석빙고 등과 같은 옛 역사적 장소들이 포진해 있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복원된 청도읍성은 역사적 시공간과 현재의 생활 공간이 서로 잘 어우러져 독특한 마을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성이라 하면 들어가는 관문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높은 성벽으로 인해 공간과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며, 전시를 대비해서 행정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집약적인 전통 도시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성은 산성이든 읍성이든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대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성종은 삼포왜란(1510년) 이후에 왜인의 침투에 격강심을 가졌고,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13개의 읍에 축성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제 축조된 것은 80년이 지난 임진왜란 직전이 대부분이었다. 호남과 영남지역은 왜와의 전쟁을 대비해야 했으며 그 중 청도읍성도 이때 기존의 성곽을 바탕으로 개축된 것으로 보인다.청도읍성은 아마도 고려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의 성곽은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든 토담과 석담의 중간 형태였는데, 선조 23~25년(1590~1592년) 군수 김은휘가 이 성곽을 석축형으로 축조한다. 청도읍성은 완만한 구릉(대략 100~120m) 위에 세워졌으며, 남북보다 동서 간의 길이가 긴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남쪽이 주산이며, 정문은 서문이다. 성곽의 둘레가 약 1.6km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타 읍성에 비해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반면 성곽의 높이는 타 읍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 약 1.65m로 아담하다. 높지 않은 성곽은 전란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백성을 수용하는 것에만 신경 써서 노동력을 낭비한” 성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왜인들은 청도읍성에 무혈입성하여 자신들의 작은 성을 쌓고 본거지로 삼았다. 당시에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일부 성벽이 파괴되었으며, 화재로 소실된 부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17세기 중반에 부서진 문과 관아시설, 성벽, 문루 등을 여러 차례 재건하였다. 고종 7년(1870년)에는 남문을 건립하여 4대문을 처음으로 갖추기도 했다.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정책으로 폐성이 된 후 1916년 군청을 이전하고 민가가 건립되며, 1920년 신작로가 개설되고 1954년 화강지가 축조되면서 읍성의 기능은 거의 상실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토지의 사유화로 민가가 생기고, 마을길이 확장되고 경작지가 조성되면서 성벽 및 성내 시설의 파괴는 가속화되었다.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군기고 및 3개의 누각 등이 성 내부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객사, 동헌, 척화비, 석빙고, 성내지, 향교 등은 현재까지 남아있다.조선시대에는 시기별로 많이 활용되던 축성법이 있었다. 청도읍성은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탐색할 수 있는 장소로서, 조선 전기의 끝자락에 유행하던 축성법(내외협축식)과 명종 16년 이후에 사용된 축성법(외축내탁식) 그리고 조선 후기에 개축한 부분에 적용한 축성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적이 성문을 공격할 때 방어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옹성이라 하는데, 서문과 북문의 옹성은 반시계방향 반원형으로 생겨서 서문과 북문을 겉에서 드러나지 않게 보호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 축조된 서문의 옹성은 지대석이 없고 작은 돌을 위주로 만들어져서 시기적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행정과 군사 시설은 물론 민가까지 읍성 안에 어우러졌던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성안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다.현재 청도읍성은 역사적 공간과 현재의 마을 공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주차장이 있는 동문지에는 과거 선행을 한 선비들의 비석이 한 줄로 놓여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연못이, 왼쪽으로 길을 건너가면 석빙고를 볼 수 있다. 성안에 들어서면 골목길과 마을 주민들의 집, 성내지와 같은 복원된 공간과 벽화가 그려진 집들도 눈에 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위로 버스와 경운기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과거에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던 낮은 성곽은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다. 성곽 위를 따라 세워진 삼각 깃발들의 펄럭임과 어쩐지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의 구름마저도 길게 늘어선 성곽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5-08

만나는데 청탁을 가리지 마라

김진국 고문 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다. 그 시간에 비해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무엇이라고 꼭 짚지 않아도 그 이전과 그 이후가 매우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가 참 다르다. 그렇지만 여론 추이의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진영에 따라 이미 판단을 내려놓고, 고수하기 때문이다.한국갤럽의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조사를 보면 ‘잘하고 있다’가 취임 두 달 만에 30%로 내려온 이후 계속 그 주변에 머물러 있다. ‘잘못하고 있다’는 60% 전후에서 오르내린다. 정치적 사건들은 계속 벌어졌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뚜렷하게 평가가 갈라지는 부분은 외교·안보다. 조사 시점인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이 논쟁거리가 된 탓도 있다. 중요한 국가 과제인 외교·안보 문제에서 여야의 의견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외교·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국내 정치와 맞물려 증폭되면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 친북(親北), 혹은 반북(反北)으로 정책 방향이 유연성을 잃고, 어리석어진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또 방어하기 위해 논리를 단순화하면서 제풀에 넘어진다.지난 정부의 정책을 조정할 필요는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거의 마무리하고, 실전에 배치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신냉전이 큰 흐름을 형성하는 등 국제 환경이 크게 변했다. 싫든 좋든, 우리는 그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나라다. 다만 그 과정에 여야 협의, 대국민 설득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국내 갈등을 증폭했다. 이념 지향적인 정책들에 대한 조정도 불가피했다. 급격한 탈원전, 징벌적인 부동산 규제 정책 등이다.성역으로 여겨졌던 부분에 손을 대는 것도 꼭 해야 하는 문제다. ‘건폭’(건설 현장 폭력행위)을 비롯한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의 권력형 비리 수사도 필요한 부분이다. 정치 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정치 불신이다. 정치적 보복만 피할 수 있다면 정치인의 비리 축재는 엄벌해주기를 바라는 게 민심이다. 더군다나 공정과 정의가 시대적 화두다.과감한 결단력, 신속한 추진력도 윤 대통령이 평가받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처럼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취임 1년이 되도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건 문제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잘 알 수는 없다. 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가벼운 한마디가 참모나 공직자들에게는 엄청난 무게로 전해진다. 마구 쏟아내면 정책의 혼선과 설화(舌禍)를 피할 수 없다. 노동시간 혼선이나 ‘날리면…’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야당을 외면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도어스테핑 중단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하지만 연두 기자회견이나 수시로 국민 앞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야당과의 대화도 그렇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만나지 않고 있다. 새로 당선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부터 만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후보 시절 “범죄자와는 토론할 수 없다”고 말했던 기조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렇게 대화를 회피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옛날부터 정치인은 그리 깨끗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독재자조차 반대자들을 만나왔다.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범죄자든 아니든 그 개인이 아니라 한 정당의 대표다. 우리를 침략한 북한, 중국의 정상도 만난다. 야당 대표를 만난다고 범죄 혐의까지 사면하는 건 아니다. 수령 숭배에 철저한 북한조차 그 정책을 버렸다. 만나지 않는 건 범죄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해당 정당에 대한 무시다.국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생이다. 그 총체적 중간 평가가 내년 총선에서 드러난다. 총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남은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가슴을 열고, 소통에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07

어린이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

유영희 작가 바야흐로 5월이다. 기후 변화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4월에 내준 것 같지만, 기념일이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5월은 일 년 중 가장 활기찬 것 같다. 5월 기념일의 시작은 ‘근로자의 날’이지만,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첫 기념일은 아무래도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아동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활약하는 ‘칠칠단의 비밀’ 같은 소설을 쓰면서 어린이의 인격을 높였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지난 100년 동안 어린이의 인권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때와 양상은 다르지만 아직도 어린이를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 자기 아이를 때리거나 굶겨서 죽게 하는 사례는 너무 극단적이니 예외로 하더라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학대 아닌 학대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언젠가 동네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엄마와 아들이 앞에 올라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그 아들이 엄마에게 자기 희망을 이야기했더니, 그 엄마가 느닷없이 ‘너한테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 너 성적을 봐라, 네 주제에 무슨…’ 하면서 야단을 쳤다. 그 엄마 말에 하도 놀라서 그 아이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며칠 전 지하철에서 만난 아기 엄마도 생각난다. 그 엄마는 한 살도 안 되어 보이는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앉혀놓고 태블릿을 세워놓고 만화 영화를 보여주며 아이는 쳐다보지 않고 자기는 일행과 대화하며 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하는지 그 엄마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지난주 어린이날 방영된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145화에서도 오은영은 상담하는 6살 아이에게 엄마가 오랫동안 영상을 틀어준 것을 지적하면서 24개월 미만의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주면 ADHD 발병률이 높아지고 자폐 증상처럼 상호작용을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나무랐다. 실제로 그 아이는 사회성 발달에 문제를 보였고 알파벳에만 집착했다.자녀가 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정상적인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을 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어설픈 육아 지식으로, 부모의 고정관념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무리하거나 잘못된 자극을 주는 경우가 많다. 때리거나 굶겨야만 학대는 아니다. 존중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학대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무지 때문에 또는 탐욕 때문에 아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오은영은 잘못된 양육으로 가장 피해보는 사람은 아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 역시 고통받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그 아이가 커서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없다. 지난 주 방영된 아이의 부모 역시 고통 받다가 방송에 출연한 것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데 거창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국 고전 ‘시경’에 ‘아이를 키울 때 정성을 다하면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슴으로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2023-05-07

보이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경영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학문으로 정립하고 경영관리의 방법을 체계화 시켜 현대 경영학을 창시하고 체계적으로 수립했다고 평가받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경영의 관점으로 보면 측정된 성과의 유형에 따라 구체적이고 시간제한적이며 단계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고 목표 달성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측정하는 수단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라 해석할 수 있다.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그 목표를 향한 과정을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으며 목표 달성 여부는 측정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최근 나온 스탠퍼드 대학의 소셜임팩트 리뷰(SSIR) 2023년도 봄호를 보면 ‘측정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ESG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논문이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과 호주의 두 대학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기오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베이징 소재 미국 대사관은 2008년부터 베이징의 대기오염 수준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트위터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곱미터당 미세먼지 농도 수준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2~4㎎ 감소했다는 것이다.왜 측정만으로도 결과가 제어되고 성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일까? 물론 측정 수단을 개발하여 측정으로 얻어진 현상을 정량화하고 확보된 객관성으로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본질이겠지만 측정이 되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여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시각으로 모든 정보의 70~80%를 파악한다고 한다. 정수기의 파란색 밸브를 열면 냉수가 나온다는 사실이나 고속도로 나들목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나 교차로에서 신호등의 지시 컬러에 따라야 차량의 흐름이 엉키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것을 다양한 인식의 수단을 활용하여 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눈으로 보는 관리’는 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휴먼에러의 대부분은 인식을 하지 못하는데 기인하여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오감은 너무 빠르거나 느리거나 크거나 아주 작은 것, 그리고 가려져 있거나 너무 멀리 있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 생산현장의 특성에 따라 인간의 오감이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제조 현장의 관리 항목들을 시각화하여 인지하게 하고, 가려져 있어 식별이 어려운 부분은 투명화하거나 관리한계를 표시하여 언제든지 정상과 이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나 소개되는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 있다면 작업환경에 적합한 센서나 초고속 카메라가 대신하게 해야 한다.이제는 ‘보이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로 피트 드러커의 명언을 고쳐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23-05-07

‘에너지 전환’ 대응은 대한민국 혁신의 기회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연일 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은 2023년 4월 15일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완전히 멈췄다. EU에서는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22%였는데, 2030년 목표를 32%에서 42.5%로 대폭 높였다는 뉴스도 있다. 미국은 204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했다.우리나라는 2021년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이를 21.6%로 대폭 낮췄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지난 3월 21일 우리나라 탄소배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계의 2030년 탄소감축목표를 문 정부 때의 14.5%에서 11.4%로 후퇴시켰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탄소중립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현재 글로벌 아젠다의 첫 번째가 지속가능성 즉 탄소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기후 재앙을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지구 온도상승을 1850~1900년을 기준해서 1.5℃에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 1.09℃가 올라, 불가피하게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생태계를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생태계로 전환해야 하는 일이 전 인류적 과제로 부상해 있다.그럼 우리나라가 현 국가 위상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은 현재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문화적 지위 3위 이내에 드는 명실상부한 강대국 중 하나이다. 전 세계로부터도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변경했다.하지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중 하나다. 특히 관료와 정치인들의 의식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2015년 12월 파리 기구협약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정한 후, 각국이 목표달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조차도 탄소중립에 대한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 차원에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고 또, 달성 가능하다.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의 의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특히 집행기관인 중앙·지방 정부 역할과 자세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 국회는 당장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 입법을 해야하고, 지방 정부는 태양광 입지규제(도로에서 500m, 민가에서 500m)를 중앙정부의 이격거리 완화 방침에 맞춰 신속히 해제해야 한다.우리나라는 GDP 대비 세계 2위 수준의 제조업 강국이다. 에너지의 주류인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바탕의 에너지 10대 소비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성도 얻고 있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 100만 톤이 넘는 73개 기업이 국가탄소총배출량(6억 7천960만t)의 75%(5억 974만t)를 배출하는 나라다.이런 상황 속에서 산업계가 탄소배출 목표를 덜 줄이려고 아우성을 치고, 대정부 로비를 통해 관철시켜 2030년까지 산업계부문 탄소절감량을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다. 산업계는 11.4%가 아니라 오히려 2030년까지 평균 절감량인 ‘40%’까지는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오염자 부담원칙’에도 맞다. 그래야 에너지 전환시대에도 우리나라 산업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지속가능성 목표이행’은 위기로 인식될 수 있지만, 우리 경제에는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주변이나 공단 주변 농지에 태양광·소형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활성화할 경우, 버려지고 묵혀진 땅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소멸되어가는 농촌이 신선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것이다.우리나라의 논·밭은 수로와 농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수백 년 이상 영농현장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발전 사업을 하기에는 가장 잘 정리된 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수익을 따져 보면, 농지 300평당 100kWh의 전력생산이 가능해서 현재 쌀농사와 비교할 경우 20배 이상의 소득이 창출된다.일자리 또한 원자력과 비교할 때 같은 양의 전력생산(100만 kWh)에서 20배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농촌 소멸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후발국들에게 새로운 개발모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혁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조업 글로벌 10위, 탄소배출 글로벌 10위인 한국이 앞장서서 탄소배출에 책임이 큰 선진산업 국가들의 탄소중립달성 목표시한을 2050년이 아니라 2040년으로 앞당길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한국이 세계적인 변화와 혁신을 선도함으로써 글로벌 선도국가가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3-05-07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역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외교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들리지만 근년에는 언론뿐 아니라 학술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가치 외교는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자유주의적 가치의 결속으로 반자유주의적, 반인권적 가치를 견제 봉쇄한다는 개념이다. 가치 외교는 국가 간의 연합이나 동맹을 통해 자유주의적 가치의 공동 번영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가치 외교는 실리외교와는 다소 괴리가 있고 그 역설이 초래되기도 한다. 결국 가치 외교는 미소 냉전시대의 이념외교의 기본 틀을 크게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치 공유국가들의 결속을 통한 반자유주의적 국가를 배격하는 가치외교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개별국가의 외교적 손실이라는 역풍의 위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외교의 역설이며 부메랑이다.윤석열 정부는 취임사에서부터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그것을 가치외교의 토대로 삼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의 새 정부는 대체로 전임정권의 정책이나 폐습을 청산하려고 노력한다. 문재인 정권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 1년은 적폐청산과 사정정국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윤석열 정부의 지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외교 정책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나 북방외교의 기본 골격이었다. 그러나 그 화해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었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은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형해화 된 선언문으로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중간자적 화해 협력이라는 정책기조에서 탈피하여 한미 안보 동맹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가치 외교의 기조로 삼고 있다.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이념적 안보 동맹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의 대일 외교는 대통령의 소위 ‘통 큰 결단’을 통한 파격적 대일 관계개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굴욕외교라는 국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 징용문제에 대한 제3자 배상 원칙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의 무릎을 끊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일본의 책임 있는 사과보다는 일본정부의 선의에 기댄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 확장 억제 협의기구(NCG)를 설립하여 북핵 대응 공동대응 장치를 마련하였다. 당초 기대했던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선 감소 법(IRA)의 한국기업의 보호책은 마련치 못했지만 한미 안보동맹은 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서울의 한일 정상 회담은 한일 셔틀외교를 복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모두가 적극적인 가치외교의 결과물이다.현 시점에서 가치 외교가 초래한 손익계산을 명확히 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외교는 원래의 이상과는 달리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외교는 예상한대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중국은 한미일 안보 동맹 강화를 연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의 대만 해협 관련 발언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면서 ‘불장난을 좋아하면 불에 타죽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의 반대 입장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북한의 워싱턴 선언에 관한 노골적인 비난은 말할 필요도 없다.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역 삼각 동맹의 강화는 동북아의 신냉전시대를 예고하고 미국 주축의 한미일 결속외교는 또 다른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역 적자가 날로 심화되는 우리 현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보복 등 경제적 손실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흔히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들 말한다.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의 기본 틀은 미국과 일본에 편향 의존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2차 대전 후의 냉전시대로의 회귀처럼 신냉전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적 결속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실리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치나 이념을 앞세운 한미일 삼각 동맹이 초래하는 부메랑을 걷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 10위권의 국격에 걸 맞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과거의 강대국 의존의 저자세 외교, 종속외교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테프트 카츠라 조약의 비극적 역사를 결코 잊어서 안 된다. 당시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이 한반도의 지배를 인정한 야합의 조약문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한미일의 철저한 안보 동맹 뒤에 숨은 후폭풍을 막을 수 있을까. 가치외교의 역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2023-05-07

마늘밭에서 하루

마늘 고랑에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마늘잎 하나가 바람에 살랑대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여다본다. 벌써 알싸한 맛들이 아우성이다.마늘밭 고랑에 서니 손과 발이 빨라진다. 마늘잎 가운에 있는 줄기를 잡고 마늘 대를 뽑는다. 아랫부분을 잡아당기면 부드럽고 여린 줄기가 달려나오는데, 그 촉감이 매끄럽다. 땀이 눈에 닿아 따갑도록 한참을 솎아 바구니가 불룩하다.마늘종은 이맘때 솎아내야 한다. 제때 솎아내지 않으면 뿌리로 모아야 하는 영양을 줄기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때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 나처럼 어설픈 손도 보탠다. 막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마늘종을 하나씩 솎아 넓고 큰 바구니에 부려놓는다. 허리는 아프지만, 마늘밭이 일으킨 멀미는 오히려 즐겁다. 마늘종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 단단하게 여물어 갈 마늘 생각에 어지러운 멀미도 오히려 반갑다.마늘종장아찌는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에게 필수다. 간장과 설탕 식초를 일대일로 넣어 팔팔 끓인다. 이때 마늘종에 붓는다. 식히고 끓이고 붓기를 서너 번 한다. 그런 후에 냉장고에 넣어두면 일 년 내내 밥상에 올라 고기와 더불어 약방의 감초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우리가 먹는 음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도 마늘은 눈에 띄지 않게 버무려 김치가 맛깔스럽게 익도록 돕는다. 또한, 나물을 무칠 때도 나물의 성질에 맞게 마늘은 있는 듯 나붓이 엎드려 있다.마늘의 매운맛은 중독된다. 소개팅에 나가 퇴짜를 맞고 돌아와 씩씩대며 고추와 마늘을 생으로 먹고 터뜨리는 울음, 싱싱한 회 한 점을 깻잎 위에 놓고 마늘을 얹어 먹으면 입안에 화기가 가득 찬다. 거기에 초고추장의 매운맛까지 더해져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과일은 단맛을 내기 위해 여물지만, 마늘은 매운맛을 위해 여문다. 맵기로는 고추도 한몫을 하지만, 마늘은 마늘만의 매움이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맛을 내랴. 마늘은 호기를 품고 익어간다. 입안에서 톡 쏘듯이 알싸하게 한쪽한쪽 여물어간다.오월, 지금부터 마늘의 여물기는 시작된다. 땅의 것을 받아들여 마늘은 매운맛을 품는다. 쓴맛, 아린 맛, 시쿰한 모든 맛을 땅속에서 누르고 발효시켜 매운맛을 만든다. 불의 기운을 뭉치고 물의 기운으로 즙을 내어 조제된 육 쪽, 천연 향기는 중독성이 강해 울면서도 씹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순혜 수필가 인생에 매운맛은 재채기처럼 온다. 눈물과 콧물을 쏙 빼면서 다가온다. 너무 매워 혀끝이 얼얼하고 입안에 감각이 사라진다. 동시에 식은땀이 난다. 이어서 정수리에서 땀방울이 생겨 이마를 타고 흐른다. 짠물이 흘러 눈에 들어가면 눈물이 난다. 울고 싶을 때 마늘 핑계를 대서라도 울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시원해진다.흑마늘 만들기는 매운맛이 숙성하며 단맛을 낸다. 매운맛으로 똘똘 뭉친 마늘은 밥솥에서 수분을 빼고 찰지고 담백한 단맛으로 변한다. 보름 정도 익어가며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흑마늘 약이 된다. 강렬했던 단맛의 기억만 있다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불끈 두 주먹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한 일이 넘쳐흐르고, 앞선 이의 그림자만 좇아가며 맛보는 쓴맛도 있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고, 어쩌다 날린 한방이 또 허방일지라도. 단맛은 짧고 강하다 하지만 매운맛은 더 강력하고 오래 간다여물어 익어 제맛을 내는 것은 사람이나 마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마늘은 마늘답게,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대로 익어간다. 사람 향기를 내기까지는 솎아내 지기도 하고 이제 괜찮다 싶으면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솎기고 가지 처지면서 튼실한 나만의 향기를 낸다. 마늘은 마늘대로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맛을 보며 사람의 맛으로 익어간다.

2023-05-07

경북도 안전체험관 상주가 최적지

강영석 상주시장 상주시가 지역 회생을 위해 경북도 안전체험관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기후변화 현상과 급속한 산업사회 전환에 따른 자연재해, 산업재해 각종 재해로 인한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농어촌 지역은 안전인프라시설의 취약성과 지역민들의 재난 대응 역량 부족으로 피해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의 구심체가 될 안전체험관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다.정부는 안전체험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지난 2017년부터 광역단체별로 1개씩의 안전체험관을 건립하고 있다.현재 전국 17개 시도(창원 제외) 14개소(서울 2, 그외 1개씩)에서 소방안전체험관이 운영 중이다. 경북과 전남, 대전, 세종 등 4개 지역은 아직 ‘안전체험관’이 없다.경북도는 이에 따라 도민 안전욕구 증가에 따라 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난·안전사고 발생에 대비해 위험 상황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안전체험시설 건립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경북도 안전체험관 건립사업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간, 33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부지 5만㎡ 이상, 건축 연면적 7천㎡ 규모로 재난체험 등 5개 분야, 30개 체험시설로 조성된다.경북도는 23개 시군을 상대로 안전체험관 유치 공모를 했다. 공모 신청은 지난 4월 3일부터 5월 2일까지 1개월간 진행됐다. 공모를 마감한 결과 구미, 영주, 상주, 경산, 영천, 청송, 포항, 안동시 등 8개 시군이 유치 신청서를 냈다. 신청 부지는 3개 부지를 신청한 청송을 제외하고, 지역별로 1개 부지를 신청했다.부지 선정은 인근 체험관과 거리, 인구 수, 교육 수요,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검토해 선정위원회를 거쳐 부지를 결정할 예정이다.경북도는 당해 시군의 인구 현황, 주요 체험 수요 인원, 도시 인접 시군의 인구, 지역 관광 자원과 확장 및 연계성, 지역 발전 일자리 창출 효과, 고속도로, 철도 교통수단의 다양성, 체험관 이용객(영유아, 초중고, 취약계층 단체 등) 계획부지 중심지까지 접근성, 이용객을 위한 주변 시설 등 편의성, 시군의 재정 지원계획 유무 및 규모, 민원 발생 가능성 및 지역민 관심도와 참여도 등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선정 기준도 제시해 놓고 있다.상주시는 지난 1일 ‘경상북도 안전체험관 부지 공모’신청서를 경상북도 소방본부에 제출하는 등 활발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상주시는 공고 이후, 공모신청을 위해 제2회 의용소방대의 날 기념식에서 안전체험관 유치 퍼포먼스 진행, 안전체험관 건립 유치를 위한 입지 타당성 분석 기본계획 용역 수립, 시민의 유치 염원을 담은 서명 활동 등 공모사업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상주시가 대구 군사시설과 안전체험관 등의 유치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상주시는 1960년대 후반에 인구 26만을 넘어섰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이농현상 등으로 현재는 10만벽이 무너져 소멸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다 경북도청과 혁신도시 유치전에서 두 차례 모두 차점 탈락한 뼈아픈 경험이 있어 이제는 경북도가 답해야 할 차례라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작용하고 있다.상주시는 대한민국 국토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충지로 낙동강 권역의 풍부한 관광자원과 연계한 ‘경북도 안전체험관’유치를 중점과제로 선정했다.사업대상지와 인접한 상주국제승마장, 상주박물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등 주변 관광·체험시설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안전체험관 이용객 증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또한, 기존 교통안전공단에서 운영하는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와 함께 2025년 상주 청소년해양교육원이 준공되면 상주에 자리잡는경상북도안전체험관은 대한민국 안전테마관광 명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상주는 경북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하기 좋은 교통 요충지로서 안전체험관 부지가 확보된 준비된 도시이다. 상주로 경상북도 안전체험관이 올 수 있도록 시민의 염원과 뜻을 모아 유치에 총력을 다할 각오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2023-05-07

영남루와 위양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마른 가뭄 아니련만 강우량이 미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다. 7년 대한(大旱)에 비 아니 오는 날 없고, 7년 홍수에 해 아니 드는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노는 사람이야 흥겨울 터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풍족하게 비 내린다.지난달 중순에 큰아들과 약속한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우리 집에 모여서 일박(一泊)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 하루 전날에 나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문학자가 바라보는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대중강연을 한다. 광주와 전남대가 자랑하는 1980년대 대표 저항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강연하는 일은 가슴 벅찬 노릇이다.2019년 옹근 1년을 전남대 교환교수로 있던 때부터 ‘김남주 기념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2019년 5월 3일 오후 5시에 열린 개관행사에 나는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여러 상념에 젖어 들었다. 대학원 시절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시집을 읽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런 남주를 길러낸 전남대 인문대학에 들어선 추모공간!어린이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오시더니 오후에 접어들어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이다. 서울에서 9시 무렵 출발한 아들의 승용차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화양(華陽)에 도착한다. 장성한 남녀 4인을 태운 소형 승용차에 동승(同乘)하여 고깃집으로 간다. 은성(殷盛)한 불빛 아래 따사로운 정담(情談)이 오가고 환한 웃음과 대화가 꽃을 피운다.자리를 옮겨 ‘파안재(破顔齋)’에서 생선회로 함께하는 훈훈한 술자리는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다. 내일은 청춘들과 함께 우포늪에 가서 ‘따오기’ 비상하는 모습을 보리라 생각한다.하지만 이튿날 기상하여 채비를 마치고 나니 창녕 오가는 길이 너무 멀다. 행선지(行先地)를 밀양의 영남루와 위양지로 바꿔 우중(雨中)에 출발한다.밀양의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이라고 큰아들은 힘주어 말한다. 내리는 빗발 속에서 영남루 누각에는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펴볼 따름이다. 사명대사 동상과 무봉사(舞鳳寺)의 석조여래좌상을 뵙고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흉상과 생가를 구경하고 위양지로 옮아간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대구에서는 끝물인 이팝나무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달릴 것이라 기대한 나는 ‘어이쿠’ 한다. 몇몇 작은 나무에만 꽃이 흐드러졌을 뿐, 거목에는 이제야 대궁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터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대화를 잇다가 길이 물에 잠긴 곳에 이른다. 황토물이 거리를 막아서는 바람에 다수가 걸음을 돌린다.이런 작은 곳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는 밀양시청의 둔감함을 생각한다. 노자는 이것을 ‘견소왈명(見小曰明) 수유왈강(守柔曰强)’이라 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여행을 마감한다. 남산 자락에 구름이 자꾸만 올라간다.

2023-05-07

TK 민심은 여전히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국적으로는 30%대 지지율에 갇혀 있지만, 대구·경북(TK)에서는 여전히 견고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TK지역 현역의원들에 대한 민심은 싸늘했다. 본지가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에브리씨엔알에 의뢰)를 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52.5%를 기록했다.한국갤럽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조사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33%)보다 20% 가까이 높은 수치다. 윤 대통령에 대한 TK지역 민심이 타지역에 비해 여전히 우호적임을 반영한 조사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서는 역시 국민의힘이 55.1%를 차지해 압도적이었다. 민주당은 27.1%, 무소속은 3.2%로 집계됐다.22대총선 공천과 관련, 현역의원 교체여론도 주목을 받았다.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절반(51.2%)을 넘어섰지만, ‘재출마 해야 한다’는 응답률은 23.2%에 불과했다. 보수정당의 경우 과거에도 가장 안정적인 지지 기반인 TK지역에서 당무감사 형식을 빌어 현역 의원을 대폭 교체했었다.21대총선에서는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의원이 당무감사결과 50%이상의 교체여론이 나오자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라는 구실을 내세워 TK현역의원을 64% 교체했다.당시에도 ‘막장공천’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올 새해초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무기력한 동네 국회의원들은 모두 시의원, 구의원으로 보내자”며 재선이상 TK국회의원 전원 물갈이를 주장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본지 여론조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행보에 대한 민심의 척도였다. 조사결과, 박 전 대통령의 정치개입에 대한 부정적 응답자(47.9%)가 긍정적 응답자(30.5%)보다 훨씬 많았다. 혼탁한 정치에 다시 휘말리지 말고 존경받는 국가 원로로 지내길 바라는 민심을 박 전 대통령이 잘 파악하길 바란다.

2023-05-07

코로나 비상사태 해제, 未知의 변이 대비해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해제했다. WHO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 위중증 환자 감소와 높은 수준의 인구면역 보유 등으로 글로벌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더라도 예상치 못할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해제 배경을 설명했다. 2020년 1월 30일 국제 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선포한 지 3년 4개월만이다. 코로나 비상상황이 사실상 공식 종료된 셈이다. 미국은 오는 11일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할 예정이다. 국내 코로나 정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질병관리청은 지난 3월 “WHO와 해외 주요국의 비상사태 해제 등을 고려, 단계 하향 여부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내 코로나 위기단계는 ‘심각’이다. 한단계 낮은 ‘경계’로 가면 남아 있는 방역조치 대부분이 풀리게 된다. 코로나 확진자 격리기간이 7일에서 5일로 줄고 임시선별검사소 운영도 중단된다. 코로나 기간 중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도 근거가 없어 사라지게 된다. WHO는 공중보건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며 해제 이후에도 유효한 권고안을 제안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전염병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향후 2년동안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필적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2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국내서도 코로나19는 하루에도 1만5천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10명 안팎에 이르고 있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자의 치명률은 1.91%에 이른다.코로나19로 전세계적으로 7억4천여 만명의 사람이 숨졌다. 국내서도 3만4천여 명의 인명이 희생돼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다시 올 것을 예상한다. 지난 3년의 과정을 되돌아 보고 위협적인 미지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체제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2023-05-07

아! 천마도여

우정구 논설위원 경주 천마총 발굴은 박정희 전 대통령 특명에 의해 시작됐다. 천년고도 경주를 관광수도로 만들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이 발굴로 이어진 것인데, 경주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1973년 국민적 관심 속에 시작한 천마총 발굴은 우리 발굴 사상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될 만큼 귀중한 유물을 찾아낸다. 1만여 점의 유물 속에 발견된 신라금관은 당시 국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발굴 100여 일 만에 수습된 금관은 금관을 보고 싶어한다는 대통령의 말에 따라 다음날 청와대로 잠시 옮겨진 일화도 있다.천마총 금관은 지금껏 발견된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지증왕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고 한다.천마총 발굴의 하이라이트는 천마도(天馬圖)다. 보통 사람의 시선이 금관에 모두 쏠렸지만 천마도 발굴은 나라를 발칵 뒤집을 만한 큰 사건이다. 고구려나 백제처럼 신라에는 무덤벽화가 없어 천마도가 가지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천마도는 말의 안장 장식의 일종인 장니에 그려진 그림이다. 연약한 자작나무 껍질에 1천500년을 견디어 온 것 자체가 신비다.발굴 당시 김정기 단장은 그의 회고에서 천마도를 무사히 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심한 공포감에 빠졌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머리에 뿔 비슷한 게 달려 한때 천마가 아닌 기린이란 논쟁도 있었으나 천마로 결론이 났다.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나는 듯한 흰색 천마가 9년만에 실물 공개됐다. 빛에 약해 지금까지 단 세차례 밖에 공개되지 않았던 천마도를 7월 16일까지 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하니 가 보길 권한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신라 유일의 회화 천마도 감상의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나. /우정구(논설위원)

2023-05-07

문지방

윤명희 수필가 도마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아침밥을 준비하는 소리를 듣는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언니들의 말소리에 이불을 당긴다. 어젯밤에 불렀던, 기타와 어우러진 나직한 노랫가락이 꿈결인 듯하다.문지방(文知房). 글이 좋아 글을 제대로 알자고 모인 사람들이다. 이른 봄과 늦은 가을이면 한 이불 속에 발을 묻고 밤을 하얗게 보냈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이어져 23년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휴전선 아랫동네에 사는 나보다 한 살 적은 남동생은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온다. 수녀님과 생활하는 김포언니는 여전히 멋쟁이고, 오빠들을 휘어잡는 대전동생은 나이가 들어도 해맑다.직업병으로 조사(助辭) 하나 차이의 무서움에 글을 쓰지 못한다는 김해오라버니는 더 젊어지고, 바람이 되고픈 부산오라버니는 이제 군인에서 벗어나 시급제 알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대구오라버니는 오늘도 향긋한 커피 향을 내놓고, 공주꽃집 마산언니는 보라수국을 닮았다. 팔공 산자락에 사는 언니, 이젠 말하지 않아도 그냥 편하다.몇 년 만에 평창막둥이가 나타났다. 그동안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냐고 채근하자 폐지 줍는다는 말로 일축한다. 더 묻고 답하지 않아도 생의 신산함을 헤아린다. 이십대였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쾡 하니 눈만 보이던 얼굴에 나잇살이라도 있어 보는 마음이 편하다. 넉살도 따라붙어 나이 많은 형, 누나들에게 엉겨 붙기도 한다. 12남매 속에 자랐으면서 세대 차이 나는 우리를 찾아 먼 거리를 오는 이유가 다시 궁금해졌다. 23년 전에 왜 왔냐는 말을 던지자 그냥이라며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고 한다.보이는 얼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찾는다. 생업에 발이 묶여 마음만 와 있는 거제언니, 아들의 사고로 병원에 있는 대전동생이 가슴에 얹힌다. 별명이 네이버 검색대인 서울오라버니는 병마에 시력이 약해져 이제 길이 멀다. 경주오라버니까지 아프다는 소식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더 나이 들면 얼굴이나 보겠냐는 언니들의 푸념에 부산오라버니는 캠핑카에 태우고 한 바퀴 돌 테니 걱정마라고 했다.방문을 열자 거실 가운데 밥상이 차려졌다. 익숙한 풍경이다. 한 언니가 밥을, 또 한 언니가 쑥국을 뜬다. 숭늉 끓이는 냄새까지 곁들여진 상이 걸다. ‘명절 아침 같네.’ 한 오라버니의 말에 모두의 마음이 쑥국 향에 젖는다. 빙 둘러 앉아 누나들이, 언니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들이 뜨겁다.칠순을 눈앞에 둔 포항언니는 늘 그랬다. 23년 전 서울의 그날, 그녀의 양 손에는 대게 박스가 들려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 환승까지 하며 왔지만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고 했다. 벚꽃이 떨어지던 날,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 언니는 그날부터 마음을 우리에게 주었나 보다. 자식을 맞이하는 엄마처럼 만나는 날이 다가오면 밑반찬을 만들고 새벽에 죽도시장에 나가 해물을 준비했다.그 동안 앉아먹은 입이 미안해 사 먹으면 되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하지만, 만날 때마다 눈이 먼저 언니 손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23년 만나게 한 힘이라는 것을 안다. 피보다 진한 것이 진심이라는 것도 안다.문지방(文知房) 식구들은 전국을 돌아가며 매번 다른 문지방(門地枋)을 넘어 만난다. 글을 알자고 모인 우리는 마음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사는 이야기로 밤을 보낸다.친정에 다녀가는 것처럼 큰언니가 싸준 음식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집 앞에 주차할 즈음이면, 이 봄에 새겨진 시간들이 아련해 질 때 쯤 다시 만나자는 언니의 마음이 문자로 뜬다.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밤, 우리는 휴전선 아랫동네에 사는 동생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받고서야 잠이 든다.

2023-05-03

무술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다섯 번째는 무술(戊戌)이다. 천간(天干)의 무토(戊土)는 태산을 의미하고, 지지(地支)의 술토(戌土)는 계절로 늦가을의 기운이다. 천간과 지지가 모두 양(陽)기운이므로 활동력이 강하다. 동물로는 누렁이 개다.무술일주는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며, 검소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에게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반면 융통성이 없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신의와 명예를 중시하고, 순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많다. 직장상사나 윗사람에게 아부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독립적이다. 또한 일처리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대범하고 과감한 유형이다.무술일주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명예지향적인 자존심이다. 물상으로 보면 하늘을 치솟는 산 위의 산이기 때문에 명예와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지갑에 돈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낙심한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고난을 돌파 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 또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많다.무술일주는 12운성으로 묘(墓)다. 묘(墓)는 고독을 의미하고, 홀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고독하게 살아가는 일주다. 부모나 형제 덕이 부족하여 인생을 혼자서 헤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깊고 혁신적이며 세속과 떨어진 정신세계인 종교와 철학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많다.르네상스 시대 토마소 캄파넬라(1568∼1639)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성직자였다. 총명했으나 가난했기 때문에 공부하기 위해 열세 살 때 도미니크수도원에 들어갔다. 스페인 지배 하에서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에 참여했다.1599년 폭동 음모가 발각되어서 일곱 차례 고문을 받은 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자신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태양의 도시’(1602년)를 썼다. 이 작품에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층과 하층 지식인들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이 투영되어 있다.그의 책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므로 노동의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져 각자 하루 4시간씩만 일하면 된다. 게으름은 경멸의 대상이며, 고상한 척 무위도식하는 것은 무능력과 악덕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리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성직자로서 그의 유토피아 사상이 배척되어 이교도로 박해를 받았다. 그는 1629년 석방되어 수도원에서 조용한 만년을 보냈다. 사유재산제와 일부일처제가 철폐된 태양의 도시를 상상했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무술의 특징은 마음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넓어 설사 내가 조금 힘들어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친족이 힘들고 괴로울 때 괜히 같이 슬퍼하고 미안해지며, 말없이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인생의 굴곡이나 흥망성쇠에 마주쳐가면서 내면의 힘을 쌓아간다.무술일주는 이름하여 ‘보배의 산’이다. 무술은 천간에도, 지지에도 창 과(戈)의 기운이 있다. 기본적으로 사납다. 천간은 아주 무성한 나무처럼 하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한데, 지지의 담당자는 늑대인 개 술(戌)이다. 야생의 늑대가 인간과 친숙한 개로 바뀌었지만 주인을 잘 만나서 길들어지면 명견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똥개가 되어 돈과 먹을 것, 좋아하는 것을 보면 덤벼드는 황당한 늑대 같은 잡견이 될 수 있다.무술의 개는 장사수완이 좋아 영업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구분이 확실하다. 그러한 기질이 촉이 되어 실력이 없어도 각종 찍기나 복권 당첨 등에 재주가 있으며, 투자와 투기에 남다른 강세를 타고난 덕분에 재물도 많이 가지며 명예도 얻게 된다. 근본적으로 야생기질이 있어 인생살이가 큰 파도 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가며 살게 된다. 좋은 일주 중 하나다.무술은 늑대의 속성이 있어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의심도 많다. 보수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거칠고 직설적이며 화도 잘 내고, 말솜씨가 좋다. 그래서 스님, 신부, 목사 혹은 교사가 되면 본인의 영적 능력이 보석처럼 빛을 낼 수 있다.자신이 기르는 개가 집을 아주 잘 지켜준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개를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개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우물에다가 오줌을 싸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았다. 이웃 사람이 개 주인에게 항의하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집 문 앞을 버티고 있던 개는 으르렁거리며 이웃 사람을 물려고 쫓아 나왔다. 끝내 이웃 사람은 개가 자기를 물까봐 주인에게 개가 저지른 잘못을 알리지 못하고 말았다. 중국 ‘전국책’ 초책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인의 위엄을 빌려 힘을 자랑하는 개의 포악성에 물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초책 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가 어느 날 여우를 잡았다. 여우는 날 잡아먹으면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믿지 못하겠거든 너는 나의 뒤를 따라와 봐라. 짐승들이 나를 보고 달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는 여우의 말에 따라 함께 갔다. 정말로 짐승들은 이들이 보이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인지 모르고, 여우가 두려워 달아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서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가 나왔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인간사회에서도 호가호위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권력자를 이용하여 힘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일을 알고도 눈감고 있다거나 본래부터 알지 못했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배경만 믿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정화된다.우리는 언제 말해야 하는가? 더는 침묵이 용인되지 않는 바로 그때 말해야 한다. 사람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 자신이 이미 극복한 일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해야 한다. 거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2023-05-03

인공지능, 위기인가 기회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이 눈부시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여 새로운 예측자료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향후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 23%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 것도 사실이지만, 새롭게 만들어질 일거리도 무시할 수는 없다. 많은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 없어진다고만 하지 않았다. 관련 전문가들도 일자리의 변동률이 유례없이 높을 것이라고 한다. 가파른 변동률은 일자리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는 것일 뿐, 없어진다고만 하지는 않았다.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자리의 변화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시장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날 터이다. 일부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노동집적도의 수준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의 단위 갯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지만, 그런 류의 변화는 산업혁명 이래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전통적인 관리와 경비기능, 공장과 상업 부문에서 대폭적인 일자리의 감소가 예측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교육, 보건, 농업 등에서는 오히려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노동력이 더욱 필요해질 전망이다. 자동화와 전산화로 단순반복적인 업무기능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지만, 기술의 집적과 함께 인간의 응용 및 적응능력을 확장해야 하는 부문에는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터이다.인공지능의 도래와 관련하여 인류에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은 일자리의 갯수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초래할 직업윤리적인 영향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던 구글의 제프리 힌튼(Jeffrey Hinton)이나 히브리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멈출 수 없는 인공지능경쟁에 글로벌규제가 필요하다’든가 ‘강력한 기술도구의 안전을 점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개발을 중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보다 건강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인공지능의 도래와 함께 과학기술은 물론 인간사회에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모양이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존재하지만, 변화하는 일거리의 모습에 유연하게 준비하고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윤리적 위험성에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문명의 산물을 인류에게 이롭게 쓴다는 다짐이 있는 한 긍정적인 발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산업혁명 이래 인류에게 기술은 언제나 위기의식을 동반한 필요악이었다. 사라졌던 일자리는 새롭게 일어난 생산성으로 극복되었으며, 인류의 위기는 세상의 기회로 슬기롭게 바뀌어왔다. 인공지능이 던지는 그림자에도 인류는 지혜를 모아 참신한 빛줄기를 불러올 터이다. 사그라들 무엇을 아쉬워하기 보다 찾아올 약속에 집중해야 한다.

20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