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밤바다 모래밭을 맨발로 걷으려고 나섰다. 작은 마트 앞을 지나는데 중3 학생인 듯한 남자애 3명이 그 옆 건물의 닫힌 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웃으며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반듯한 차림새에 책가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속으로 ‘참 별난 녀석들이네….’하며 힐끗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듯 ‘저 가게가 복잡해서요’한다. 길거리 식사, 학생 때는 그런 낭만도 있어야지 하며 웃어주었다. 그리고 해변을 한참 걷고 집에 오면서 그곳을 지나는데 계단 구석에 쓰레기가 보인다. 녀석들이 먹었던 라면 그릇과 휴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는데….
그러잖아도 조금 전 해변에 즐비한 유흥음식점 밖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젊은 남녀들과 그들의 발밑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광경을 보며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나!’ 하고 왔었는데…. 요즘 젊은 학생들의 행태에서 예의범절이 사라진 모습을 많이 보며 우리의 교육이 어딘가 잘못이 있음을 느낀다. 그냥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생각으로 공부, 그러니까 지식 충전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아쉽고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흔히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다. 노인들이 타면 으레 노인석에 앉게 되겠지만, 자리가 없어 일반석으로 가면 아무도 선뜻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더욱이 학생들은 휴대폰에 머리를 묻고 모른 체 한다. ‘노인들은 구석진 경로석으로 가쇼’라고 말하는 듯 어떨 때는 흘낏 올려다보고는 또 머리를 묻는다. 경로 정신이 많이 부족한 탓이다.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또한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그 바람직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덕체(智德體) 교육 목적은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기에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교육, 가정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참된 사회적 윤리는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25일은 ‘법의 날’이다. 준법정신을 앙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기 위해 60여 년 전 제정되었다. 옛날 기자조선 때는 ‘팔조금법(八條禁法)’이라 하여 8개의 조항만으로 사회질서가 유지됐겠지만 이후 불교와 유교 등의 가르침으로 도덕과 윤리가 나라의 근본 질서를 유지했었고 민주국가가 된 지금은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이 제안해 내는 많은 법이 우리의 일상을 보호 또는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라고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말했다. 우리들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즉, 방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끼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의 교육목표는 홍익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그 교육 방향 또한 ‘백년지계(百年之計)’라 했듯이 거시적이고 장기적 안목으로 수립해야 한다. 요즘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을 갈고닦아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난 후 집안을 일구고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