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시신기증서를 썼다. 2000년 어느 봄날이었다. 죽으면 없어질 몸이다. 땅에 묻기 전, 불 속에서 타기 전, 의대생들의 공부에 도구로 쓰이는 것이 더 유용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내 몸이 공부용으로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되도록 온전히 그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되도록 내 몸의 병력도 제대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수술할 일 있을 땐, 가능한 한 시신기증한 병원에서 했다.
그때 아들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서명을 받으면서 동시에 유언 비슷한 얘기도 남겼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나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으니 제사를 지내지 마라. 만약 죽기 전에 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거나 스스로 판단을 못하게 된다면 지체없이 시설에 맡겨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픈 노부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은 더구나 상상도 하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24년 전에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노후나 사후의 문화를 예견했나 싶기도 하다.
당시 15살의 아들은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갈 수 있는 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명절이나 제사 때라도 가족이 모이면 좋지 않아요? 눈 깜빡하지 않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네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해라. 가족들이 모이면 그 때 어디 놀러라도 가렴. 그 곳이 외국이라면 그날 아침을 먹기 전에 잠시 생각해주면 되겠네. 아들은 볼멘소리를 툭 던진다. 난 제사음식이 맛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난 목소리의 톤을 더 높여 말했다. 그럼 네가 만들어 먹든가….
그 당시 실제로 내가 가장 우려한 것은 사후의 일들이 아니었다. 늙어 죽지 않은 채 스스로 판단력을 잃고 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치매라는 큰 병이 가장 무서웠고, 지금도 그렇다. 평소에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자라 치매가 될까 끔찍하고 두렵다. 50대 일찍 돌아가신 선친도 84세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초롱초롱한 기억력을 가지셨기에 가족력으로는 무결하지만, 내가 부모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면 어찌 장담하랴.
평소 치매예방에 좋다는 처방을 들으면 반드시 시도해 본다. 무엇보다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머리맡에 책과 신문을 두고 읽으셨다. TV 보기 대신 두뇌운동에 좋다는 놀잇감을 찾아본다.
예전에 주말신문에 꼭 있었던 십자말풀이를 즐겨했는데 최근 그와 유사한 모바일게임을 발견했다. 제목조차도 어쩌면 ‘치매야 잘가라’인 것이, 딱 내가 찾던 치매 예방게임이었다. 구독을 해두고 알림 설정까지 해 두고 ‘좋아요’도 누른 후 게임을 즐기고 있다. 무의미한 글자를 가로세로 24자 정도 나열해두고, 상하좌우 또는 대각선으로 세 글자 또는 네 글자의 유의미한 단어를 조합해 찾는 게임이다. 휴대폰을 많이 보는 것도 유해하다 싶으면 퍼즐을 다시 찾는다. 한 번 빠지면 밤을 새워 문제지만 취미로 즐길 만큼 자주 한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치매예방이 되기만 하면 더없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