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서 열려야 한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시가 올해 역점을 둔 단 하나의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2025 APEC 정상회의’유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를 뜻하는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약 40%, 교역량은 50%, GDP는 62%에 달한다.사실상 이 경제협력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중·일·러 4강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개최 도시가 얻게 될 유무형의 사회경제적 유발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각국 정상을 비롯해 6천여 명이 넘는 정부각료, 기업인, 언론인이 참가하는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전 세계의 매스컴을 통해 개최도시가 집중 조명된다. 반드시 경주가 유치해야하는 이유다. 여러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정부에서 유치도시 선정을 위한 공식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겁다. 지금 경주와 경쟁하고 있는 도시는 부산, 제주, 인천이다.우리 경주만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이고 다른 경쟁도시는 모두 광역지자체다. 표면상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APEC 정상회의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개최하는 것이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APEC의 관례이기도 하다.정부의 국정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서라도 지방도시인 경주에서 유치해야할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이 있다.정상회의가 단순히 회의만 한다면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면 그 도시는 반드시 경주가 되어야 한다.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고 상상해 보자. 행사가 열리는 11월은 형형색색의 단풍이 최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세계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불국사, 동궁과 월지, 첨성대, 월정교 등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진다면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가 아닐까.이외에도 경주 유치의 당위는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의 보고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도시로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주다. 한마디로 가장 한국다운 도시인 것이다. 지난 수년간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물포럼, UN NGO컨퍼런스, 세계원자력국제대회 등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각국 정상과 배우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경호와 안전면에서도 어느 곳보다 최적이다. 정상회의가 열릴 화백컨벤션센터와 경주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이 밀접해 이동 동선이 매우 짧을 뿐 아니라 다른 경쟁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있지 않고 호리병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정상 경호와 안전에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다. 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됐을 때도 한미정상회담은 경주서 열렸는데 회담장소인 보문단지 일대가 경호에 최적지였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선보이기 위한 적지 또한 경주다. 경주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월성원자력발전소, SMR 연구개발의 전초기지가 될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양성자가속기센터, 경주 e-모빌리티 연구단지가 있다. 특히, 최근 SMR 국가산업단지 선정은 세계에 우리 원전산업을 세일즈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포항, 울산, 구미 등 산업도시와 인접한 경주는 다양한 산업시찰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혹자는 유치 경쟁에 있어 정치 논리나 힘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우리 경주는 20년 전에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고자 도전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태권도의 발상지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에 오는 것이 당연함에도 실패하고 말았다.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제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줄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경주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APEC 이야기만 하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야 한다.절박한 시민들의 뜻과 의지와 열정이 모인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반드시 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주시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모든 역량을 모아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023-05-21

바람은 어쩌다가 몰려다니는 것일까

외할머니는 바람을 몰고 다녔다. 사방 십 리에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생김새는 여장부 같고 목소리까지 짧아 강단이 있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집을 지날 때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몸을 담벼락 아래로 낮추고 깨금발로 걸었다.외삼촌도 가는 곳마다 바람을 일으켰다. 인물 좋고 언변이 좋았기에 늘 사람들의 중심에 섰다. 근거 없이 떠도는 풍문도 외삼촌의 입술을 스치면 솔깃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거짓도 진짜처럼 믿어 외삼촌의 말에 따라 이 마을 저 마을 땅문서가 들썩거리기까지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도모하던 외삼촌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야반도주였다. 외할머니집 앞에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장독 질자배기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술기운으로 내지르는 고함이 골목을 울렸다. 어떤 이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와 입에 거품을 물고 삿대질을 해댔다. 심지어 파출소 소장까지 찾아와 외삼촌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며 해가 질 때까지 안방에 드러누웠다. 사나워진 민심은 오래도록 대문 앞을 뒤흔들었다.이런저런 소문이 마을에 날아들었다. 외삼촌이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뱃일한다더라, 서울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더라, 헛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건너 사실처럼 담장을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도 낯선 사람이 다가와 넌지시 묻기도 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소문이 잠잠해지면 또 다른 소문이 바람을 타고 왔다.풍문도 뜸할 무렵이었다. 새벽 동살과 함께 소식 하나가 대문을 두드렸다. 외삼촌이 죽었다는, 꽤 구체적인 소식이었다. 울부짖을 법도 하련만, 외할머니는 사람들을 물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태연하게 이부자리를 갠 다음 앉은뱅이 경대를 끌어당겼다. 속내는 감출 수 없다는 듯 빗을 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외삼촌이 뿌린 씨앗은 곳곳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외할머니는 여장부답게 그것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사과하고, 물어주고, 때로는 자식 대신 잘못을 빌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강단 있는 오지랖이 통했는지, 엉키고 꼬였던 사태는 빨리 수습되었다.거울 앞에 꼿꼿하게 앉은 모습은 외할머니만의 시위였다. 바람 앞에 먼저 나서 잡다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에게 빗질은 마음을 흐트러트리는 바람을 변주하는 의식이었고 비녀는 마음을 단속하는 빗장이었다.“음” 이순혜 수필가 비녀를 지르는 소리는 숱한 언어를 함축하고 있었다. 대범한 여장부라고 해서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으랴. 외할머니도 자신을 단속하던 모든 것을 풀어헤친 채 목 놓아 울고 싶었으리라.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회한,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통한, 부유하는 감정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다가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칠 때 외할머니는 단음절로 묶어 내뱉었다.언제부턴가 외할머니는 경대 앞에 앉지 않았다. 마실이라도 나갈 때면 치맛자락을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렸다. 그 후 나는 경호원이 되어 나들이를 부축했다. 외할머니의 모습이 시나브로 헝클어지고 당신 스스로 빗질할 기력을 잃자, 마음의 빗장도 낡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비녀를 지르지 않은 날이 늘었다. 외할머니는 더는 허리를 세우지 못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문의 빗장이 열리려는지, 며칠 동안 가만히 누워 눈망울만 끔뻑거렸다. 자정이 넘어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외할머니는 눈을 감았다.할머니의 영정 앞에 향내가 피어오르고 대문에 조등이 내걸렸다. 외할머니의 오지랖이 얼마나 넓었는지 멀리서도 조문객이 찾아와 회자정리(會者定離)를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삶을 한데 모아 간단한 말로 비녀를 질렀다.“ 저 노인네, 이제는 쉴 때도 되었다.”바람 많은 삶답게 할머니가 떠나는 날에도 바람은 불었다.

2023-05-21

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김남국 의원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코인투자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그동안 절약과 가난의 삶을 “라면만 먹는다. 낡은 신발을 신는다” 등으로 유권자들의 동정심과 후원을 구했던 그가 수십억이 넘는 코인 가상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회기 기간 중 자주 자리를 비우면서 가상코인 투자를 했다는 게 보도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급격히 의원 직분 태만으로 이동하고 급기야는 그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법안에 참여했기에 로비가 있었던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자아내고 있다.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미국과 같은 준법이 잘 지켜지는 곳에서 기인한다.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자동차 정지선에 꼬박꼬박 서는 룰을 잘 지키는 미국에서 왜 쇼핑카트는 주자장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지 이해가 늘 안된다.결국 룰은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미국서는 정지선을 안지키다 적발되면 큰 벌금이 나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논리라면 쇼핑카트를 아무데다 놓으면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룰이 없으니까 쇼핑카트가 아무데나 어지럽게 놓여있다. 한국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넣어서 카트를 쓰고 다시 카트를 정리해야 100원 동전을 찾는 간단한 룰로 한국의 소핑카트는 잘 정리된다. 결국 어떤 국민이든 법을 잘지키는 국민이라는 선입견은 없다. 누구든 어떤 나라 국민이든 룰과 형식에 의해 질서가 지켜 지고 있는 것이다.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시험 부정)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학생 한 명이 시험종료 시간을 지나 30초 정도 더 답변을 작성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몇 개월에 걸쳐 학교에 소명하는 작업에서 고생했던 경우를 보았다. ‘어너코드’와 커닝에 대한 엄격한 스탠포드의 룰과 형식은 결국 스탠포드 학생들의 내용을 지배하게 되었다.“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정부가 교차로 꼬리물기 금지 캠페인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꼬리물기는 사실상 후진 한국운전문화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30여 년 전 미국서 귀국한 직후 포항에서 한번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전진하는데, 왼쪽 길에서 오는 차에 받쳤다. 그때서야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눈치껏 가야하고 꼬리물기가 일반화돼 있다는 걸 알았다. 반면 미국에선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모든 차는 정지해 사거리에 진입한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어기게 되면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사실 교차로 꼬리물기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의 꼬리물기다. 고속도로에서도 뒤에 오는 차가 더 빨리가라고 경적소리를 내기도 한다.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러한 적당주의는 룰과 형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체계를 좀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규칙을 룰과 형식의 관점에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김남국 의원의 문제도 룰과 형식의 강화로 막을 수 있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룰과 형식에서도 문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한 행동들 코인 가상제도 투자, 회기 기간 중 좌석 이탈, 재산목록에 가상재단 불포함 등등은 모두 불법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가상재산도 재산목록에 포함해야 한다는 룰 개정은 늦은감이 있지만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가상재산도 언제든지 현금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국회 개정 시간에는 특정한 이유없이 자리를 무단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룰을 ‘어너코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자리를 떠날 수 있다면 그건 나라일을 의논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다양한 방법으로 국회의원 윤리를 위반한 의원은 다음에는 공천될 수 없다는 룰도 필요한데 최근 민주당은 오히려 공천 룰을 약화 시켰다는 전언이다. 하자가 있는 후보가 공천되도록 룰을 약화시켰다는 룰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룰을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김남국 의원 사태를 계기로 룰과 형식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한 강화를 통해 내용이 향상되는 그런 사회, 그런 국가를 기대해 본다.

2023-05-21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대한민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8월 1일 몬트리올에서 나왔다. 그 당시 한국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만을 시험대에 올려 지켜보던 시대였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1개에서 시작해 88서울올림픽과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 최상의 경기력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특히나 아시아인은 인종학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겨졌던 올림픽 수영에서 금빛 물살을 가른 박태환과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상화, 그리고 고난이도 기술 개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체조의 양학선까지도 스포츠과학의 지원으로 철저히 분석되고 연구된 결과물이 적용된 성과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이렇듯 엘리트스포츠의 세계적인 도약을 위해서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과학은 엘리트선수의 경기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경기력은 체력뿐만 아니라 기술, 심리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은 이러한 경기력 결정요인을 실험 도구와 첨단장비를 이용해 측정, 분석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방법과 훈련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엘리트스포츠에서 체력은 경기력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인인데, 무엇보다 측정과 평가 방법이 중요하다. 과거 체력 측정은 100m 달리기나 오래달리기 또는 윗몸일으키기와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실시되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다양한 측정 도구와 방법이 이용되는데, 근관절기능검사는 선수의 관절 가동 범위 및 근력, 그리고 운동부하검사는 산소 운반체계 능력으로 나타내는 최대산소섭취량과 운동 수행을 예측하거나 훈련 강도를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젖산역치를 측정한다.이에 더해 스포츠과학은 운동 지속 시간과 에너지 소비 형태를 측정해서 각 종목별로 요구되는 에너지 시스템을 분석하여 효율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100m 달리기의 경우 약 98%의 인원질 시스템(ATP-PC)과 약 2%의 무산소성 해당과정과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 대사가 이루어지고, 마라톤의 경우 약 95%의 유산소 시스템과 5%의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같이 종목에 따라 쓰이는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은 개별 선수의 체력 상태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스포츠과학은 선수의 역학적 기술과 지각-동작 기술을 측정, 분석해 경기력 향상에 기여한다. 영상 장비를 이용한 빠른 신체 움직임의 순간 위치 변화와 힘의 작용에 대한 분석은 잘못된 동작을 교정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게다가 선수의 연속 동작과 움직임 분석을 위해 비디오 영상분석 장비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자세 교정 등으로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따는 데에 기여도는 상당했다.엘리트선수의 경우 경기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안구추적기는 안구 움직임을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가 부착된 장치를 머리에 착용하여 선수가 보는 장면과 눈동자 초점이 한 화면에 나타난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한 측정과 분석은 패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키커의 어깨와 공을 차는 다리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배드민턴에서 상대방의 라켓을 든 팔과 머리 사이의 공간에 시선을 집중하여 공이나 셔틀콕의 방향을 예측하는 훈련에 적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과학은 심리검사를 통해 엘리트선수의 심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심리기술훈련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시 말해 스포츠현장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심리의 역할은 시합이나 훈련 상황에서 선수 스스로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심리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환경과 실제 경기하는 환경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요소들은 선수들의 불안, 각성 혹은 집중력 등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전통적인 심상 훈련에다 과학을 접목해 실제 상황과 유사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을 적용한 심리기술훈련이 적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20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 금메달 3관왕인 안산 선수를 배출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과학은 엘리트스포츠 영역에서 체력과 기술, 심리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엘리트스포츠뿐 아니라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활 스포츠에도 응용되고 있다. 생활 스포츠 참가자의 건강 및 체력 상태를 측정, 분석해 다이어트, 부상 및 운동 상해 예방, 재활 등 운동치료에 맞는 운동 유형을 찾고 빈도, 시간, 강도를 정해 운동 효과를 드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2023-05-21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스승의 날이 되면 나의 휴대폰이 바빠진다. 옛 제자들의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톡이 나의 기억을 일깨워준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오는 제자들의 반가움을 듣노라면 교단에 섰던 40여 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행복한 마음으로, 나 또한 구순(九旬)이 되신 은사님에게 전화를 드린다. 사제지간, 그 가르침의 은혜와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빌어본다.코로나19 기간 동안 서먹했던 ‘스승의 날’ 행사가 밝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요즈음의 교육계를 생각해 본다. 스승의 날이면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던 제자들의 밝은 웃음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꽃바구니와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교직 사회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늘어났고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체벌 전면금지로 교사들의 수업권마저 침해당했다는 마음에 사기가 떨어졌다는 반응도 87%가 넘는다고 하니,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도 멀어지나 보다.교육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교(敎)는 아들에게 효도(孝)의 가르침으로 회초리(6535)를 드는 모습인데 요즈음은 체벌이라는 심한 비난을 듣고 있으니 육(育)의 뜻처럼 아기를 품에 안듯 안아주지 못한 탓일까? 따뜻한 가르침으로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주는 ‘참스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에 인생 경험의 가르침 책무를 다할 때 국가는 굳건하게 일어설 것이다.가르치는 사람을 스승, 선생, 교사라고 부른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만 있을 뿐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교사들의 자책성 발언인지 학생들의 비판적 외침인지…. 스승은 삶의 지혜까지 심어주는 큰 사람이고 선생 또한 함부로 대하지 못한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높임말로 가르친다는 교원 또는 교사의 직함일 뿐이다. 전교조라는 교원들 모임을 보면 ‘가르치는 노동자’라는 말일 텐데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찌 노동에 비할까? 그러니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건 아닌지…. 어쨌든 교육자들은 인간적 사랑과 지적인 열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며 국가의 동량(棟樑)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참된 스승으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교육의 방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그러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듯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미래의 국민을 가르쳐야했지만 그동안 정치적 사회적 틀 속에 묶여 근시안적 변화로 메꾸어왔다. 조국 근대화, 국민교육헌장 반포, 반공교육, 민주화운동 등으로 길을 헤맸다고 하지만 그래도 현재와 같은 번영된 나라를 만들어 온 것은 교육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는 최고 인기직종의 하나였으나 이제는 추락하고 있다. 교총의 조사에 의하면 22년도 교권침해 상담처리 건수가 520건으로 늘어났고 명예퇴직도 증가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교직 사회가 되어버렸다.교권 존중과 스승 존경의 사회 풍토 위에 국가 교육의 미래를 그려보며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 본다.‘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023-05-18

역사와 진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歷史)란 말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그것을 토대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를 포함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물론 후자이다. 역사가들은 문서나 기록, 증언 같은 사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추론하고 재구성하여 역사로 남기지만 그것에는 집필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정사(正史)로 인정된 역사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뒤집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혼란과 격동의 역사였다. 육백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과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쳐 4·19 혁명에다 5·16 군사정변, 5·18 광주사태 등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잇달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좌·우로 편을 갈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태라 어느 편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실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대립하고 있는 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만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의 왜곡이고 오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올해로 5·18 광주사태는 43주년이 된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조문에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정권은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5·18 광주사태를 일단락 지우려 했지만 불신과 반발의 여론도 적지가 않아서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섣불리 속단하고 규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어떤 언로도 강제로 봉쇄해서는 안 된다.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는 특별법은 폐지가 되어야 하고, 유공자들의 명단과 당시의 행적도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로부터 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증하는 길이다. 한편으로는 무기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의 폭력을 선동하고 주동한 자들을 색출하여 그 의도와 목적의 진의도 밝혀야 한다. 고정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민주화란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지역이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온 측면이 없지 않은 광주사태의 평가는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지역적, 정파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오로지 객관적이고 엄정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론을 분열하는 의혹을 불식하고 광주사태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되는 길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학자 E.H.카의 말도 새겨볼 만하다.

2023-05-18

두바이식 개발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가 지난달 신공항 특별법 통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대구경북 신공항 개발과 후적지 조성을 위한 해외시장 벤치마킹에 나섰다.홍준표 대구시장과 이만규 시의회의장 등 일행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등지를 둘러보고 두바이 개발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 등을 직접 만나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두바이의 성공 사례 등을 현장 확인할 예정이라 한다.홍 시장은 시장후보 시절 “군 공항이 이전한 후적지를 24시간 잠들지 않는 두바이식으로 개발해 대구의 성장을 이끌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어 그의 이번 두바이 방문에 각별한 관심이 쏠린다.두바이는 아랍계 자본과 서방 자본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대규모 투자가 일어난 곳이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호국 중 하나이자 최대 도시다. 초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이 두바이 방식을 모델로 앞다퉈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첨단 우량기업 유치와 각종 규제 철폐를 통해 글로벌 관광·상업시설을 조성한 두바이는 21세기 가장 빠른 성장을 한 도시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특히 두바이 공항내 경제특구인 DAFZ는 각종 면세 제도와 외국인의 100% 지분 허용으로 글로벌 기업 1천800개가 입주해 있다.2006년 두바이를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곳은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도 “두바이를 성공시킨 지도자의 상상력과 리더십에 감탄한다”고 말했다.홍 시장의 말대로 규제를 풀고 두바이처럼 대규모 쇼핑센터 등을 조성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단계이나 두바이식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5-18

입법독주와 사회적 갈등, 언제까지 봐야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의 일방적인 간호법 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예고됐던 의료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그저께(17일)부터 “불법진료에 대한 의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파업은 하지 않는 대신 수술실 진료보조(PA) 등 일부 간호사들이 관례적으로 해왔던 ‘업무 외 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PA 업무는 대리처방, 대리수술,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봉합 등 수술실에서 행해지는 주요처치행위다. 대부분 외과, 흉부외과 진료영역이어서 앞으로 상급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수술실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떼어내 처우개선을 하는 법률이어서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앞으로도 거대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간호법처럼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법률제정을 계속 밀어붙일 태세여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미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을 본회의에 직상정해 처리하기로 예고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배상 청구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고, 방송법은 KBS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것이다.최근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수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경제성장 엔진이 식어가면서 서민들은 일자리 부족으로 민생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치권은 해법은 뒤로한 채 섬뜩한 용어를 써가며 서로 싸우는데 혈안이 돼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식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법률일수록 사전에 여야가 충분히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이제 사회구성원끼리의 갈등을 유발하는 법률을 일방적으로 제정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민주당과의 소통방식을 바꿔야 한다. 야당 지도부와 수시로 만나면서 적극적으로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23-05-18

정치인보다 고수인 후흑(厚黑)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치인들의 후안무치에 머리에 쥐가 난다. 공정과 상식, 도덕성은 오간데 없다. 나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책임과 의무엔 오리발이다. 위선의 극치다.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곤욕을 치렀다.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며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구명작업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벌떼처럼 덤벼 들었다. 자성 발언을 하고 김 의원을 비판한 의원들을 맹폭했다.파렴치의 전형이다. 국민을 무시한 발언과 행동에 다름아니다. 민주당의 한계다. 그래도 선거철이 닥치면 표를 구걸할 터이다. 유권자들은 또 억지춘향격 피해자 코스프레와 애걸에 속아 넘어간다.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1년동안 방탄과 입법 폭주로 일관했다. 186석 의석을 무기로 입법 횡포를 일삼았다. 그러다가 돈 봉투와 코인에 발목 잡혔다. 정쟁만 있었다. 견제와 균형은 실종됐다. 국민 피로감만 높였고 분열만 부추겼다. 민생은 뒷전이었다. ‘탈당’ 꼬리자르기는 단골행사가 됐다. 이후 슬그머니 복당시켰다. 파렴치와 위선의 절정이다. 한데 민주당 정치인 보다 더 센 고수가 등장했다. ‘개딸’이다. 이들은 여론 동향은 안중에도 없다. 지탄받는 정치인의 역성을 드는데 열중한다.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차별 폭격한다. 정의와 공정, 도덕성엔 귀막고 눈감았다. 김남국을 감싸고도는 ‘개딸’들의 행태다.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박지은은 “팬덤의 목소리가 곧 당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그게 투영되지 않았을 때 문자폭탄, 폭력을 저지르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팬덤정치의 폐해를 지적했다. 개딸들이 우리 사회 지고의 가치인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후흑학(厚黑學)은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가 쓴 책으로 중국 3대 기서(奇書) 중 하나다. 순자의 패도사상을 발전시킨 학문이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친 말로 ‘뻔뻔함’과 ‘음흉함’을 뜻한다. 후흑학은 심오한 함의를 지녔다. 이종오는 조조와 유비, 손권, 제갈량, 사마의,한신, 항우, 장량, 범증 등 제왕과 호걸을 후흑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재조명했다.영웅호걸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까발렸다. 속마음이 뻔뻔하고 음흉한 인물들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조조는 속마음이 시커맸다. 친구와 황후, 황자까지 죽이며 “내가 남에게 버림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겠다”고 했다. 유비는 조조와 여포,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빌붙어 양쪽을 오간 ‘비굴한 이중인격자’로 깎아내렸다. 결국 뻔뻔하고 음흉한 사기꾼 같은 인간들의 성공기다.낯 두껍고 마음이 검은(후흑) 이들이 출세하는 세상이다. 사회의 비난과 질시는 그냥 무시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된다. 착한 사람은 ‘가붕게’일 뿐이다. 어떻게 정치계에 후흑의 인물들이 판 치고 있는가. 국회의원을 손안의 구슬로 아는 ‘개딸들’은 또 어떠한가. 부도덕과 부정과 불법이 일상화된 후흑이 횡행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2023-05-18

여름철 자연재해 만반의 준비로 피해 줄여야

작년 9월 경북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는 포항 등지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주택 침수, 도로·교량 파괴 등 1만3천여 건의 각종 재산피해와 더불어 15명의 인명사고도 불렀다. 피해 복구에 든 비용이 무려 7천800억원이라 한다.역대급 태풍으로 미처 손 쓸 수 없는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자연재해는 철저한 대비만 된다면 그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고, 산지와 넓은 해안가를 끼고 있어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잦다. 이런 점을 감안, 경북도는 지난해 2023년 재해예방 개선사업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확보했고 도내 상습재난지역의 주민 안전을 위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연재해를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다.지구촌은 지금 이상기온 현상으로 돌발 자연재해가 해마다 늘고 있다. 역대급 태풍과 가뭄 등으로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기상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올 여름은 작년보다 기온이 높을 확률이 50%라고 한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도 최고기온 기록 경신이 자주 나타나 이를 반증한다. 싱가포르가 40년 만에 폭염 기록을 세웠고, 베트남은 44.2도를 기록했다고 한다.올해는 엘리뇨 영향으로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잦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 예방에 각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경북도가 여름철 자연재해에 대비, 사전점검에 나섰다. 본격적인 우기가 오기 전에 공사 중인 현장의 안전점검과 예·경보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경북은 면적이 넓고 산지가 많아 사고발생 위험이 높다. 산불피해로 인한 산사태 우려지역, 관광지의 인명피해 우려지역, 저지대 침수지역, 배수펌프장의 안전성 등 살펴봐야 할 분야가 많다. 준비하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재해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고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도내 각 지자체는 도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여름철 자연재해 차단에 만반의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2023-05-18

손자의 말말말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자는 종종 재미있는 어휘를 제 맘대로 사용하여 날 웃게 한다. 작년 어느 날 아침 유치원 등원 중이었다. 챙겨야 할 것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할머니가 깜빡 잊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손자가 묻는다. 왜 깜빡깜빡해요?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또 묻는다. 67살이라고 말하며 리얼미러로 뒷자리의 손자를 살폈다. 손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나는 7살인데 할머니 많이 컸네.” 파안대소했다. 그래그래 할머니 많이 컸지? 웃고 또 웃었다. 손자는 나의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누가 더 크냐고 묻는다. 그들은 왜 키를 묻느냐고 의아해한다. 키를 묻는 게 아니고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를 묻는 표현이라고 하면 재밌다고 껄껄 웃는다. 그 후 친구들과 만나면 어디 많이 컸나 보자라며 농을 하곤 한다.2년전 설연휴였다. 코로나19 중이어서 설날은 쇠는 둥 마는 둥했다. 설 다음날 아들네랑 손주들을 데리고 자연휴양림으로 놀러갔다. 눈발이 날렸고, 눈 구경 힘든 대구 아이들인지라 그것만으로도 신나했다. 얇게 깔린 눈을 긁어모아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며 재미있어했다.이튿날 가까운 절에 올라갔다. 하얗게 눈 쌓인 작은 절은 참 예뻤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절문 앞에 멈추더니 손주들은 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동차 사게 해주세요, 난 커다란 인형 사게 해주세요. 애들의 소리를 들으신 것인지 주지스님께서 나오셔서 애들 손을 잡고 종무실로 이끄셨다. 스님께 세배하면 세뱃돈 줄게 그러면 자동차도 인형도 살 수 있지. 스님께는 세 번 절하는 거라고 하자 삼배를 공손하게도 했다. 스님은 빳빳한 세뱃돈을 많이도 주셨다. 절 안마당에는 눈이 꽤 쌓여있었다. 눈밭에 아예 누워 뒹굴며 정신없이 노느라 땀에 눈에 온몸이 푹 젖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였다. 손자가 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느닷없는 질문에 며느리는 너희 낳았을 적에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놀러갔을 때라며 다시 묻는다. 며느리는 제주도 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 손자에게 되물었다. 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손자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지금, 지금이 제일 행복해.”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버이날 풍습이 달라졌다. 유치원 때는 카드나 종이꽃을 만들어 주더니 이젠 우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수신인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보내는 주소는 학교에서 일괄 쓴 것 같고, 받는 주소는 제 엄마가 쓴 듯했다. 보내는 이의 이름과 받는 이의 이름은 손자가 직접 썼다. 빨간 새(닭인가 했더니 앵무새라고 했다)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종이에 쓴 사연은 짧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의집에서 일을 같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랑해요. 이건 올림. 우리 부부는 편지를 사진으로 찍고, 액자에 넣어야지 부산 떨며 감동해했다. 이튿날 아들네 집에 갔더니 제 부모에게 보낸 편지 사연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엄마 아빠 평생 사랑해요. 평생 잘 사세요.”

2023-05-17

발목을 삐끗했을 때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발목을 삐끗해서 즉 발목 염좌는 한의원을 찾는 분들의 주된 질환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발목을 삐끗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운 경우가 생기기도 하므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우선 발목을 삐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그냥 발목을 삔 것인지 골절이 동반된 것일지다. 내외측 발목의 압통이 심하지 않고 몸무게를 실어서 다섯 발자국 이상 걸을 수 있으면 골절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x-ray 등 영상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골절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아주 심한 골절이 아니면 영상검사에 앞서 초기 부종과 통증에 대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부종이 심하면 골절의 경우에도 캐스트를 바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골절의 유무를 막론하고 초기에 발목 염좌가 생기면 손상 부위 주위로 부종 및 압통이 생긴다. 부종이 있는 경우에는 온찜질을 하면 부종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다. 염좌가 발생하고 수 주일 뒤에 부종이 빠지고 난 뒤에는 온찜질을 해주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초기에 부종이 빠지고 난 뒤라도 많이 걷거나 서 있어서 부종이 다시 발생했을 때에는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다. 초기에 부종이 많이 있다가 냉찜질을 하여 부종이 가라앉으면서 피멍이 발쪽으로 깔아지게 되는데 환자들은 이것을 보고 몰랐던 출혈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부종이 빠지면서 생긴 것이니 놀라지 않아도 된다.염좌 초기에 냉찜질 외에 발목을 높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잠을 잘 때 다리 쪽으로 베개들을 받쳐서 심장보다 높게 해주면 부종이 빠지는데 도움이 된다. 같은 원리로 의자 등에 앉아있을 때도 조금 높여주는 것이 좋다.압박 붕대 등을 사용해서 압박을 해주는 것도 초기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 때 너무 강하게 붕대를 조이는 경우 오히려 순환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강한 압박보다는 고정에 의미를 두고 묶어주는 것이 좋고 수면 시에 불편감이 느껴질 정도로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잘 때는 테이핑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발목 염좌의 경우 손상 정도에 따라 생각보다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심하지 않은 손상의 경우에는 1∼2주에도 나아지지만 손상이 심한 경우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골절 환자의 경우에 캐스트를 풀고 난 뒤에도 주위 인대, 건 등의 손상이 남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염좌의 경우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다친 부위에 부담이 가는 일이나 운동 등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염좌로 인한 손상이 심해 회복 기간이 길어질 때 침이나 뜸, 약침 등을 시술하면 회복 기간을 줄일 수 있다.

2023-05-17

횡단보도 그늘막의 가치

홍석봉 대구지사장 그늘이 반갑게 느껴지는 계절이 됐다. 때 이른 무더위에 사람들은 쫓기듯 그늘을 찾아든다. 대구·경북에 벌써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16일 낮 최고 기온이 경북 울진 34.9도, 포항 33.9도, 대구 33.6도, 안동 32.8도를 기록하는 등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 시민들이 헉헉댔다. 보행자들은 그늘막 아래서 땀을 훔치며 한숨을 돌린다. 그늘막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든 소중한 존재가 됐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얼마전 최고의 정부혁신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최초 및 최고로 선정한 ‘드라이브스루’ 등 18개 중에서 최고로 뽑혔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서울 서초구가 2015년 국내 최초로 설치한 후 전국으로 확산했다. 그 이듬해부터 대구에도 설치되기 시작, 현재 전국 각지에서 활용하고 있다. 전국 확산 과정에서 그늘막도 진화했다. 기능을 특화한 그늘막이 등장했다. 부산시 북구는 인공 안개비를 뿌려주는 그늘막을 선보였다. 천안시는 학교나 노인시설 등 설치장소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그늘막을 내놓았다. 파라솔 형태의 고정식 그늘막은 2017년 8월 도로법에 따른 도로부속물로 인정받았다.최근에는 그늘막에 스마트 기능을 추가해 주변 온도와 일조량 등을 감지해 자동 개폐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횡단보도와 교통섬 인근에 설치된 그늘막은 보행자들에겐 도심 속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횡단보도 그늘막은 신호대기 동안 자외선과 열사병을 막아주고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한다. 온열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 네거리 등 도로변에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 됐다. 그늘막의 고마움을 알고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17

특화단지지정에 정치논리 개입돼선 안돼

다음 달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차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 지정을 앞두고 정부가 어제(17일)부터 공모신청서를 낸 지자체를 대상으로 발표회를 갖는 등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오늘까지 이틀간 열리는 발표회는 2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해당 지자체로부터 추진전략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화단지 평가지표 중 가장 핵심은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45점)다. 그리고 인프라와 인력 등 첨단전략산업 성장기반확보 가능성(25점), 첨단전략산업 및 지역산업 동반성장 가능성(30점)도 주요지표다. 포항시가 신청한 이차전지 특화단지 공모에는 울산시와 충북(오창), 전북(새만금)이 신청서를 냈다. 최근 암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 이강덕 포항시장은 발표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 시장은 지난 2014년 취임한 이후 포항을 이차전지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행정력을 집중시켜왔다. 이차전지산업 경쟁력이나 인프라·인력, 지역산업 동반성장 등 3가지 평가지표를 적용해 보면, 포항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구미시가 신청한 반도체 특화단지(개별형·단지형) 공모에는 14개 지자체가 도전장을 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첫 시작된 구미시에는 현재 SK실트론, LG이노텍을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 부품 기업 344개사가 몰려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집적지다. 인프라나 인력, 지역산업 동반성장 부분에서 수도권 지자체보다 훨씬 앞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구미산단과 불과 10㎞ 떨어져 있는 대구경북신공항이 건설되면 첨단산업 기업들의 물류비용 측면에서도 강점을 가진다. 정부가 이차전지와 반도체를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한 이유는 국제적인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당 대표가 특화단지 공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등의 잡음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 위주로 특화단지가 지정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만약 특화단지 지정이 수도권 위주로 되거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면 국가차원에서 타격을 받게 된다. 오직 경제논리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가 지정되길 바란다.

2023-05-17

안동대와 경북도립대 통합 추진을 주목한다

국립 안동대학과 경북도립대학이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선정을 목표로 두 대학의 통합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두 대학 관계자는 16일 모임을 갖고 대학통합시 운영 형태, 산학협력단 등 부설기관 운영 방안 등 통합과 관련한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향후 두 대학은 이와 관련한 논의를 지속 벌여 의견을 좁혀 갈 생각이라 한다.두 대학의 통합 논의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글로컬 대학 선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부는 올 초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 속에 앞으로 10∼15년이 대학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인식 아래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하는 글로컬 대학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10개 내외 대학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30개 대학을 글로컬 대학으로 지정하고 한 곳당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알다시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라는 난제 속에 학교 존립을 걱정해야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2023학년 정시모집에서 사실상 미달이 난 대학 중 87%가 지방소재 대학이다. 내년은 더 심각하다. 입시계는 올해 고3 학생 수가 사상 최저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 정원미달 인원이 5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의 국립대조차도 정원미달 쓰나미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의 97%가 지방에 있어 지방대학의 존폐는 시간문제다. 경북은 인구소멸 시군이 많은 대표적 도시다. 지역의 대학으로서는 특단의 결정이 필요한 시기며 정부가 제시한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는 것이 대학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된다.교육부의 글로컬 대학은 지방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역사회와 경제를 이끌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혁신의 당사자인 대학의 뼈 깎는 노력이 필수다. 전국의 많은 대학이 글로컬 대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어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대학은 각자의 이기심을 버리고 글로컬 대학 선정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두 대학의 통합이 성공할 수 있게 지역사회의 관심과 격려도 필요하다.

2023-05-17

유행은 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만 생각해도 신비로운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행복하기 위하여 산다’는 쉬운 답에도 개운치 않은 것은 인간에게 행복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누구에게도 그리 명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위험한 태도가 유행따라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고 하였다. 남들 따라 사는 일이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게 아닌가. 부러운 남들의 그 모습을 따라 사느라, 나를 찾으며 도전하고 새 것을 만들어내는 열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애플의 스티브잡스(Steve Jobs)는 고교 시절 어느 날, 세상에 보이는 저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누군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자각과 함께 남들을 흉내내며 살아오던 자세를 무엇인가 내 것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랬던 끝에 우리 손에 아이폰이 들려있는 게 아닐까.대한민국 청년들이 오늘 힘들다고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을 향한 기대나 열정이 식어있는 것은 혹 아닐까.어려운 가운데 돌파구를 열어내고 힘든 속에서 빛줄기를 찾아내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세상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각을 익히기 위하여 관찰해야 하지만 세상만 좇아가는 삶으로 마감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고 아깝다.유행과 모방 탓에 식어버린 감각은 무디어지고 나만의 세계를 드러낼 방법을 잃게 만든다. 소니(SONY)를 창업했던 이부카마사루(井深大)도 ‘비즈니스나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진짜 성공에 이르려면 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기업에도 브랜드 자산 외에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무엇이 있는가. 끊임없이 살피고 찾아내어 당신만의 무엇을 만들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지역에도 그곳에만 있는 그 무엇이 틀림없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지역문화와 예술이 지역마다 똑같은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다음 세대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미국 가수 리앤워맥(Lee Anne Womack)은 ‘세상을 정말로 놀랍게 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반드시 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곳에는 없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반복하면 절대로 안 된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이곳으로 사람을 끌어올 꿈을 가져야 한다.내게는 있으나 남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포항지역에는 이미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포항에만 있었던 포스코가 지역을 우뚝 일으켜 세웠고 오늘은 저 높은 곳에 스페이스워크가 상상과 가능의 지평을 일깨워 준다. 당신은 누구인가. 남들을 닮으려 애쓰기 보다 남들과 다른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유행은 가라, 나를 찾을 터이니.

2023-05-17

변기뚜껑

윤명희 수필가 이제 그의 흙 묻은 작업복이 어색하지 않다. 대충 쓸어 넘긴 흰 머리카락도 여유롭다. 이사 하는 소감을 말 하라고 재촉하자 소주 두어 잔을 연거푸 비운 그가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변기뚜껑?”뜬금없는 말에 우리는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도로 탁자에 놓았다.처음 그를 만난 건 5년 전 쯤이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우리는 시골 살이 해보겠다는 포부로, 늦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하는 일마다 서툴고, 연장 또한 호미 두어 자루가 전부였다.농업기술센터에서 사귄 새 친구에게 농기구를 빌리러 갔을 때였다. 친구 대신 그녀의 남편이 농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열쇠를 들고 서있는 그의 양복차림이 반듯하다. 나는 흙먼지가 묻은 남편의 낡은 운동화와 그의 까만 구두를 번갈아 보며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고 물었다. 집에서 오는 길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의아한 눈빛을 감추기 위해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대기업 간부였다는 그가 경주에 온건 사업을 위해서라 했다. 갑자기 이사해야 했던 탓도 있었지만, 아파트 생활에 신물이 난 마누라의 소망이 더해 낡은 한옥 마을에 집을 구했다. 사업기간이 끝나면 다시 도시에 두고 온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건 두 말 할 나위가 없었다.그가 마지막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주먹만 한 하얀 강아지를 안은 여자가 마당에 들어섰다.그녀는 채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훑어보며 구시렁거렸다. 집 주인인 것을 눈치 채고는 초면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강아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 뾰족 슬리퍼를 신은 그녀가 집을 둘러보는 일이 잦았다. 집의 여기 저기 둘러보며 던지는 소리에 그는 은근히 치솟는 부아를 꾹꾹 눌렀다. 침을 두어 번 넘긴 후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이 보쇼, 내 집이 없어서 이러고 있으면 서러워서 살겠나. 우리 집 변기뚜껑 하나만 팔아도 살 수 있는 이런 집을 가지고 무슨 유세를 그렇게 합니까, 하기를?”순간, 강아지 등을 만지던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몇 번이나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달싹거리더니 휑하니 돌아서 나갔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추진했던 그의 사업이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농촌 생활에 몸을 익히는 친구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양복쟁이 그의 구둣발은 도시를 향해 있었다. 친구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 혼자 가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그녀는 화물차에 과일상자를 싣고, 그녀의 남편인 그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게 까만 승용차를 닦았다.시골 살이 하러 온 연배가 비슷한 몇몇이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를 불러댔다. 낚시 하는 이가 물고기를 잡아오고 누군가 텃밭에서 상추를 뽑아오면 또 누구는 막걸리를 들고 왔다. 점차 서로 일을 거들어 주는 날이 많아졌고 해가 산 뒤로 내려앉으면 슬리퍼를 끌고 비닐하우스에 모이는 일이 잦았다.대문만 열면 예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갈 것만 같던 그가 우리 집 근처에 집을 계약했다.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집주인에게 이제 이사할 거라고 기별을 했다.술 한 잔 하자며 손을 끄는 집주인 남자를 따라나섰다. 축하 인사에 이어 남자가 변기뚜껑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그는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처음 이사 왔던 그날, 그는 구겨진 자존심을 변기 물과 함께 내려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모두들 그 집 똥통은 황금으로 만들었냐며 놀렸다. 왁자한 웃음소리에 비닐하우스가 들썩거린다. 우리는 자기만의 변기뚜껑은 과거 속에 묻고, 이제는 남은 시간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만남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은 바삐 달려가지만 우리는 숨고르기를 하며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2023-05-17

경자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일곱 번째는 경자(庚子)다. 천간(天干)의 경금(庚金)은 단단한 바위며 가공되지 않는 원석이다.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산속의 계곡물처럼 차고 깨끗하다. 동물로는 흰쥐다.경자일주는 큰 바위 밑의 쥐의 형상으로 혼자 은둔하며, 무슨 일을 하든 몰두하는 습성으로 고독수가 있다. 성격은 바위처럼 단단하며 주관이 있고 의리가 있다. 스스로 은둔하는 습성으로 남의 간섭이나 참견을 싫어하고 자존심은 세다. 타인과는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지만 믿음이 생기면 쉽게 배신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특히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는 수재형이다.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한 말을 굉장히 잘해 화술이 뛰어나다. 암반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그렇지만 성격은 차갑고 냉혹한 면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여리고 잔정이 많다. 결벽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경자일주 여자는 아름답고 총명하여 남자를 보는 눈이 높다. 부족한 배우자를 만나면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성향이 있다. 본능적으로 남편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여 소원해지는 경향이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남자는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자를 만나기 쉽고, 여자를 다정하게 대하지만 외도로 인해 악처로 만들 수 있으니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녀 모두 미남 미녀로 이성에 관심이 많다.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 ‘월야밀회’가 있다.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저녁에 골목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다. 세 남녀의 복잡한 심리묘사에서 드러나듯 삼각관계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던 사람들은 대개 각 영문의 군교나 무예청의 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이다. 불륜의 시작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마지막은 늘 추하게 끝이 난다.경자일주는 쥐 중에서도 힘이 강한 흰쥐를 상징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주변의 갈등으로 스스로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깊이 숨기는 사람이 많다. 마치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피할 때 ‘너 쥐새끼처럼 어딜 도망가’라는 말을 듣는 거나 같다. 많고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처럼 말이다. 해저 깊은 곳의 보물선을 찾기만 하면 대박인데.우리나라 1940~50년대는 여성 이름으로 경자, 영자, 순자, 말자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소설가 조선작(84)은 1973년에 ‘영자의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60~70년대 최하층민의 생활에 대한 애증과 관심 그리고 산업화에 다른 부작용을 작품화했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변두리로 떠도는 남녀의 사랑과 희망을 담아낸 작품이다.주인공 영식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철공소에서 일하다가 식모 영자를 만난다. 입영영장이 나와 헤어지고 월남전에도 참전한다. 제대 후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서 영자를 찾던 중 우연히 윤락촌에서 만났다. 영자는 버스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인해 외팔이가 되었다. 그것을 안 영식은 의수를 만들어 준다.원피스 속에 적당히 감추어진 의수를 달고 영자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창녀로서 영자에게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은 윤락촌에서 화재로 죽는다. 영화로 개봉되어 성공을 했고,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 걸로 끝이 난다.1970년대의 도시의 하층민 여성들은 구체적으로 식모, 여공, 버스차장, 호스티스, 창녀 등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들은 사회의 기강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들이었고, 사회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타자였다. 대체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윤락행위는 최하층민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제성장으로 향락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이 와중에‘호스티스’라는 신조어가 창출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표면적으로 퇴폐풍조의 일소나 풍기정화를 표방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부패한 성윤리가 고스란히 노출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또 다른 시대 상황으로 예부터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린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자년에 보리농사가 큰 흉년이 들어 어려운 시기였던 모양이다. 흉년은 이때 말고 여러 번 있었을 텐데 하필 경자년일까. 그 당시 경제 사정이 몹시 힘들었던 의미가 아닐까. 어떤 좋은 기운이 생겨도 마무리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세상 일을 도모하고 만들어주는 것은 하늘이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늘 탓 만 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경자일주는 하늘이 아무리 경을 친다고 해도 그것을 잘 피해가는 것이 바로 ‘쥐의 현명함’이다. 생활이 무탈하고 미래에 다가올 인연들을 특히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잘 성사되기를 힘써야한다. 자기 일에 충실하여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남편 아들로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살아가면서 고통만이 존재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 쾌락만 넘쳐흐른다면 어느 사이엔가 쾌락에 무감각해진다. 그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다. 거기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랑하는 것이다. 평원을 지나 험준한 산길을 수없이 넘어야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거치고 계곡물에 발을 적시고 차가운 별빛 아래를 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할 것이며, 많은 것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뿐이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2023-05-17

빅데이터 시대의 공학교육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최근 대한민국의 많은 공학과 연관된 기업들이 빅데이터(Big Data) 관련 다학제간(Multi-disciplinary) 융합 및 실제 문제(Real-world problem)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일부 국내의 대학교에서는 공학 및 빅데이터 관련 산업체에 속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산업체 설문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설문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학부 과정을 마치고 바로 회사로 합류하게 된 대부분 학생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대한민국의 기존 주입식 교육방식 혹은 정답만을 요구하는 교육방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문제에 접근하는 능력,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의 부족으로 나타난 결과라 생각한다. 미국 대학교의 경우, 이러한 잠재적인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프로젝트(Project-based) 기반 수업을 제공함에 따라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 및 이론들을 강의실 밖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회들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예를 들어, 미국 앤아버(Ann Arbor)에 있는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는 6학점으로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설계하고 있으며, 학기 초에 기업체를 통한 실제 프로젝트들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하도록 해당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또한, 미국 애틀랜타(Atlanta)에 있는 조지아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도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와 같은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산업체의 전문가들과 학생들을 연결하여 학생들에게 문제를 설계하는 방법,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 청중에게 발표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 그리고 산업체 전문가와 소통하는 방법 등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빅데이터의 출현과 함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국내의 대다수 기업 또한 새로운 인재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해당 기업들은 졸업 이후 회사의 추가적인 교육 없이 곧바로 실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을 희망할지도 모르겠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교육 방법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 보이며 더 나아가 주입식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을 강의실 안에서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안에서 배운 개념들을 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믿는다. 더 나아가 빅데이터 시대의 적절한 공학교육을 위해서는 학교가 현재 산업체가 요구하는 역량을 파악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존의 교과목 및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2023-05-16

서울 톺아보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신록이 싱그럽기만 하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 지더니 산과 들로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하다. 푸르디푸른 초목의 향연에 희끗희끗 꽃들이 꿈결처럼 피어나 푸른달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입하목(立夏木)이라고도 불리우는 이팝나무 잎새 위로 흰눈이 내려앉듯 이밥같은 꽃이 피고, 군데군데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며 상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렇게 차창 밖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을 접하며 길을 나선 곳은 서울이었다.일전에 어떤 문인과 나눈 대화 마냥 새삼 ‘촌스럽게(?) 무슨 서울 구경’하러 애써 상경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주마간산격으로 단순하게 훑어보고자 함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애환과 부침의 현장을 답사하며 격변의 시대상을 가늠해 보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국민 품으로 돌아온지 1년을 맞은 청와대를 탐방하는 것도 내심 기대되기도 했었다.조선왕조 500여 년의 역사가 점철된 경복궁(景福宮)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개국 4년째인 태조 4년(1395년)에 세운 으뜸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을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하면서 조선왕실의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켜 부분적인 변화를 가미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를 철거 후 흥례문과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회복 중에 있다. 또한 광화문 남쪽으로 나랏일을 맡아서 처리하던 중앙관청인 육조거리의 윤곽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과정에서 드러남에 따라 발굴된 관청 터 일부를 그대로 노출시켜 전시하고, 해치마당 조성과 미디어월을 설치하는 등 광화문 일대의 역사성과 광장 연계 활성화 측면에서의 의미있는 개선사업을 대대적으로 마치기도 했었다.그리고 74년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온전히 국민의 공간이 된 청와대는, 광화문에서부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에서 때로는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휴식하고 때로는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역사적인 청와대 개방을 기념하고 새시대를 여는 희망과 기쁨을 함께할 다양한 공연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테마별로 곁들여져 한결 흥미와 관심을 더해 준다. 역사 속에서 문화를 살리고 볼거리와 느낄 거리로 감흥을 줄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문화역사관광의 인프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한옥과 골목길, 문화와 예술이 만나고 삶이 어우러지는 세종마을과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조선시대 중인과 일반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근현대에는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한옥체험을 할 수 있고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등이 자리잡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그야말로 꿈결 같은 시간이리라.‘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색적인 명소가 많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모처럼만의 서울 톺아보기는 부담없이 유쾌한 행복여정이었다.

2023-05-16

‘노시니어 존’ 등장이 사회에 던지는 충격

심충택 논설위원 여자주인이 노인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붙였다고는 하지만, 제주도 한 카페에 ‘노 시니어 존’스티커가 등장했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60세 이상은 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오지 말라’는 스티커라고 한다. 마치 우리사회 전체의 노인을 대상으로 선언하는 ‘주홍글씨’ 같다. 요즘 노인들도 청장년층 못지않게 카페문화를 즐기기 때문에 노시니어존은 다른 ‘노000존’과는 달리 충격적이다.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미래는 2030세대의 무대다. 60대이상 70대는 투표안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떠오른다.정 의장은 당시 60대 이상 연령층을 향해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끔 대구시 중구 반월당역 지하쇼핑몰을 가보면 노인들이 지하공간 로비를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역 지하공간이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편리한데다 냉난방이 잘 되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노시니어존의 등장은 노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슬픈 노인들의 신세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나는 5월이 되면 옛날 대가족이 살았던 고향집이 그리워진다. 고향집은 ‘전원일기’ 드라마에 나오는 일용이네 집처럼 깊은 산골 초가삼간이었다. 이 작은 집에서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은 같이 살았다. 대가족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혈육의 소중함을 알았던 그때가 너무 행복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는 어른에게 효도하고 가족 간에는 포용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였다.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사정은 지극히 좋지 않다. 2021년 통계청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전 국민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율)은 37.6%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이 시대를 사는 노년층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한 세대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데다 대부분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 경우가 많다. 노년의 빈곤도 문제지만 외로움은 더 견디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노시니어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자영업자가 원하는 소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시장논리라는 것이다. 노시니어존이 많이 생겨날수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하는 카페도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지난 문재인 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이념적 편가르기 문화가 더 세분화된 분야로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노시니어존 카페의 등장은 SNS나 선거과정을 통해 노인증오를 선동하는 분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우리 국민의 유교정신은 외국학자들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가족제도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노인증오 풍조는 사회적갈등 심화 때문에 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합심해서 근절해야 한다.

2023-05-16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우정구 논설위원 파충류의 일종인 도마뱀은 현존하는 파충류 가운데 가장 많은 6천종이 넘는 종류를 가지고 있다. 산간 초원이나 사막 등지에 서식하며 천적을 만나면 꼬리를 자르고 미끼로 남기며 도망가는 동물이다.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천적을 만나는 절체절명 순간에 최후 수단으로 사용된다. 잘린 꼬리에 신경이 남아있어 일정시간 꿈틀대며 천적의 관심을 끄는 동안 본체는 멀리 달아난다.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를 생태학적으로 관찰하면 몇 가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다시 자라난 꼬리는 더이상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꼬리 자르기는 일생에 단 한번이다.또 자절 후 꼬리가 재생되더라도 처음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으로 재생된다는 점이다. 잘려나간 꼬리에는 뼈가 있지만 다시 생긴 꼬리에는 힘줄만 있고 뼈가 없다. 꼬리는 양분을 저장하는 곳이어서 재생된 꼬리로서는 힘을 제대로 쓰기가 힘들고, 또 몸의 균형이나 속도를 내는데도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도마뱀이 꼬리를 잘라 임기응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타고난 본래의 기능을 완전 회복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의 섭리라 한다.사람 사는 세상에도 꼬리 자르기가 있다. 진실을 숨기고 아랫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비열한 행위를 비유해 이렇게 부른다. 더불어민주당이 돈봉투 의혹이나 각종 비리에 연루된 소속 의원을 자진 탈당시키면서 탈당꼼수, 꼬리 자르기란 비난에 휩싸여 있다.특히 코인 투기의혹에 빠진 김남국 의원이 자진 탈당하면서 논란이 더 증폭되고 있다. 진실은 자른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도마뱀의 꼬리에서 알 수 있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3-05-16

세계적 항공사와 TK의 상생협력 환영한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들어서는 군위·의성지역 항공산업 기반구축과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의 활성화를 위한 의미깊은 행사가 그저께(15일) 포항시 남구 포항경주공항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에는 경북도가 포항경주공항에서 세계 최대 중소형 항공기 제작사인 엠브레어사와 항공산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마틴 홈즈 엠브레어 총괄부사장(CCO), 마시아 도너 주한 브라질 대사,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행사 참석자들은 MOU체결 후 엠브레어사가 제작한 소형 제트 항공기 E190-E2를 타고 공사가 30%정도 진행중인 울릉공항의 상공을 선회하는 시범비행도 했다. 시범비행은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E190-E2 항공기의 울릉공항 취항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오는 2026년 취항 목표로 공사중인 울릉공항은 국내 최초로 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공항인 만큼, 활주로 길이가 국내 다른 공항에 비해 짧다. 시범비행한 항공기는 울릉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을 정기운항하는 항공기와 같은 기종이다. 단거리 활주로(1천200m) 이착륙이 가능하고 우수한 항속거리(최대 6시간)를 유지할 수 있어 울릉공항 취항에는 최적의 항공기로 평가받고 있다.이철우 도지사는 이날 “엠브레어와의 협력을 계기로 글로벌 항공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새로운 항공산업을 육성해 대구경북신공항을 대한민국 항공물류의 허브로 성장시키고 포항경주공항, 울릉공항을 세계적인 관광공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 집중된 항공산업(여객·물류·항공정비·기반시설·서비스)을 대구·경북으로 분산해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경북도가 MOU를 체결한 엠브레어사는 브라질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으로 세계 3대 항공기 제작사로 성장했다. 항공기 제작사나 항공정비 업체가 전혀 없는 대구·경북으로서는 항공산업 기반구축을 위해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이다. 강력한 파트너십이 계속 유지되길 기대한다.

2023-05-16

전기·가스료 인상, 물가관리에 선제 대응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16일부터 5.3%씩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kwh당 8원, 가스요금은 MJ당 1.04원 올라 4인가구 기준 각 가정이 매월 추가 지출해야 할 에너지 요금은 7천400원 가량 될 거라 한다.이번 에너지 요금 인상은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적자보전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국민부담 추가와 물가불안이란 측면에서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다. 특히 자영업자와 산업계 등은 원자재값 상승에 더해 에너지 값까지 오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을 어떻게 꾸려갈지 벌써 걱정이다.정부의 에너지 가격 인상은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불가피하다. 원가보다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지속 공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상으로도 공기업의 경영난이 완전히 타개될 수가 없어 연내 전기·가스요금의 추가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물가 관리가 사실상 비상이다.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국내 소비자 물가는 지난달 3%대로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전기·가스료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선제적 대책이 따라야 한다. 전기료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서민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과 함께 우리사회에 만연된 에너지 과소비 풍토를 근절시키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사용량 OECD국가 평균보다 1.7배나 높다. 그러면서 효율성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겨울 가스료 인상으로 난방비 폭탄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 예상되면서 전기료 또한 난방비 못지않은 폭탄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정마다 에너지 절약의 지혜를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 정부가 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공기업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에너지 시장가격이 왜곡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 정치적 판단으로 에너지 가격이 왜곡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업소, 기업들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정부는 시장기능에 의한 합리적 요금관리로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05-16

체통을 지키시라

얼마 전 실천문학사에서 시행한 설문조사가 화제다.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와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가 그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 실천문학사측은 여론의 압력으로 인해 출판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세태 속에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다소 억울한 듯 들리는 이 이야기는 고은 시인의 작품이 최근 계간지 실천문학에 실린 것과 그의 신작 시집 ‘무의 노래’가 마찬가지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실천문학사는 ‘이전부터 성폭력을 비롯한 추문에 깊이 휩싸여 있었으며, 2017년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와 같은 추태가 폭로당한 고은 시인이 어떠한 인정이나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없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올해 초, 실천문학사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분들께 출판사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공식적인 사과문을 내놓고, 또 자숙의 의미로 계간지를 한 해 휴간하겠다고 밝혔던 실천문학사가 다시금 본인들을 향한 여론을 정면 반박하며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시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실천문학사의 공지사항에서는, 이러한 입장의 변화가 문학 전문 인터넷신문인 ‘뉴스페이퍼’와 이승하 교수의 왜곡 기사가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이들의 잘못된 기사가 자사의 이미지를 실추하였으며 이로 인해 여타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왜곡이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인 출판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자신들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그런데 이 설문조사에는 어딘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2차로 시행된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 조사’의 문항을 예로 들자면, 여기에서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을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로 비유하며, 그러한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아울러, 그 “농부가 수확한 벼”를 도정한 “정미소에 대해 범죄인을 도와준 사악한 정미소라며 판매중단을 압박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어지는 설문에서는 위의 이야기를 “시만 쓰던 모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을 자택감금 당하듯 살았고”라고 바꿔 물으며 그 본의를 전달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의 마지막에서는 지록위마의 고사를 인용하며, 일부 언론 기관과 그에 관련된 인사들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가 옳은 것이냐고 묻기까지 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궁금한 건, 과연 실천문학사가 ‘설문조사’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문인, 일반 독자, 언론인들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적극적인 의견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상 그 문항들은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해 작성하고, 그걸로 모자라 고은 시인과 관련된 사태를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이 설문조사를 대체 무엇이라 생각해야 되는지. 자신들이 이미 ‘범죄를 저지른 농부’에 비유하고 있듯이, 그는 분명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어떠한 법적 처벌도,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도, 당사자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은 그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단 말인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잠적을 하고, 가짜가 자신을 사칭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석연찮은 변명으로 일관해왔던 그가 치른 대가란 대체 무엇인가.과연 실천문학사의 이같은 설문조사를 정상적 행위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첫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이 존재한다. 고은 시인의 5년 만의 신간 시집 출간을 두고 언론사의 객관적이지 못한 보도 행태가 프레임을 조작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은이 저지른 어떠한 범죄 행위에 대한 시인도, 그의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지 않다. 과연 프레임을 조작하고, ‘지록위마’를 행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그들이 한국 문학에서 ‘실천문학’이라는 사명이 갖는 의미에 걸맞게 스스로의 권위를 더는 실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05-16

무림 고수가 되고 싶다면

어떤 세계든 ‘고수’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그리하여 그것에 통달해 버린 몸짓을 보여주는 이들을 보면 우리는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게 된다.고수는 멀리 있지 않다. 무거운 짐을 얹고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하체에서, 빛의 속도로 김밥을 말아내는 손에서, 눈을 감고도 라면의 종류를 척척 맞추는 미각에서, 우리는 고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무협 소설의 무림은 고수 중에서도 고수가 되고 싶은 자들로 넘쳐나는 세계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무릇 강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 주변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일이다.키오스크가 점원을 대신하고 AI 챗봇이 친구가 되어주는 21세기에 갑자기 무림은 또 무슨 말인가 싶지만, 꿈꾸는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인류의 눈부신 발전은 멈추지 않는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으니. 현실은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상상 속의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군자가 되고 싶은가? 천하를 호령하는 가문의 가주를 원하는가? 명망 높은 문주가 되어 세간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무림인들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구경꾼을 꿈꾸는 자는 없을 것이다. 무림 고수의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라고 못 할 것 있겠는가. 이곳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강자를 꿈꾸는 세계다.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한 훈련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둔 고수를 찾아갔더니 청소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부터 제대로 해내라고 다그칠 수도 있다. 다 뜻이 있겠거니 여기며 마루를 반짝반짝 닦아도 돌아오는 건 불호령뿐. 새벽같이 일어나 온갖 잡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의 근육이 골고루 발달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제야 스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당신에게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을 알릴 테다.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옆 문파의 누구는 벌써 무형검을 익혀 강호를 주름잡았다고 하고 어느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고 한다. 거기에 수많은 악의 조직은 뭘 먹고 그렇게 강한 것인지. 오직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거기에 성격까지 좋은 ‘엄마 친구 아들’은 21세기뿐만 아니라 무림에도 존재한다. 주변에 휘둘리면 끝이 없는 법. 자신만의 도(道)를 지키면서 정진, 또 정진해야 한다.자, 이제 그간의 노력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왔다. 훌륭한 정권 찌르기를 연마했더라도 방구석에서 홀로 고수가 될 순 없다. 그간 익힌 기술로 마교의 천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못된 아이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려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심판대 앞에 서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니까.세상에 힘차게 발을 디딘 당신, 반드시 실패하리라. 내가 왔노라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무관심뿐일 수 있다. 자신보다 곱절은 강한 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기도 하고 오만에 빠져 우스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끔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할 테다. 세상이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마음이 소란한 까닭이라고 생각하며 은둔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방구석에서 정권 찌르기를 연습했을 때는 느낄 수 없던 패배감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칼을 빼어들었으니 무라도 썰어보겠다며 기합을 넣는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거기에서 진정한 성장이 시작되는 것이다.이러한 상상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고수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작다고 여겨지는 일부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한 뼘 자라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수험생의 문제집 독파 일수도, 매일매일 해야 하는 가사 노동 일수도, 회사원의 출퇴근일 수도 있다.소설은 끝나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넘치는 무공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가 못 되어도 괜찮다. 고수들의 싸움을 구경하다 새우 등 터진 구경꾼의 하루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으리라. 툴툴 털고 일어나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것. 치킨에 맥주, 싸움 이야기까지 곁들이며 친구들과 낄낄대는 밤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무림의,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고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3-05-16

마약 없는 사회를 꿈꾸며

김규인 수필가 학생들에게 마약을 뿌리는 사회.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매스컴에서 계주하듯이 마약 관련 사건이 터진다. 그만큼 마약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파고든다. 시간과 장소를 묻지 않고 우리 사회로 퍼진다.2017년 한 해 마약류의 압수량이 154.6㎏이었다. 올해 들어 두 달 만에 마약류 압수량은 176.9㎏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급속하게 퍼져버렸다. 그 엄청난 수치 앞에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왜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그 대상도 일반 성인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와 어린 학생들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까지 마약으로 휘청거린다. 관리가 엄격해야 할 군대마저 이 지경이니 다른 곳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군대는 총과 수류탄 등 살상 무기를 다루는 곳이 아닌가. 마약에 취해 동료를 향해 총이라도 난사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미국의 마약 거리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좀비처럼 걷는다. 마약 복용으로 근육이 강직되고 우리 몸의 도파민의 분비체계가 교란되어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똑바로 설 수도 걷지도 못하며 마치 화상을 입어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을 없애려 다시 마약을 찾는다.마약 파는 사람들이 나쁜 줄을 알면서도 마약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가간다. 한 번 복용한 마약은 다시 마약을 부른다.이에 따라 일상의 행복은 찾기 힘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고통을 받는다. 죽을 결심으로 마약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남는 것은 늘어난 빚과 망가진 몸뚱어리뿐이다.학교에서는 학교대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친근한 김밥, 족발, 떡볶이 앞에 마약을 붙인다. 그렇게 마약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처럼 다가오는 분위기다. 사업체는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고, 언론은 마약의 위험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약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올해 초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에 검찰만 나서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나의 주위에서 마약을 퇴치할 때 우리는 누군가가 선의로 건네는 음료수를 기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다. 일상이 가능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는 날이 빨리 오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다.마약으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지만, 우리는 힘을 한곳에 모으는 놀라운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이, IMF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이,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응원의 함성이 그러하다.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 국민의 유전자가 힘을 발휘할 시기이다.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어려움이 곳곳에 널려 있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 반도체를 다시 꽃 피우고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마약 없는 건전한 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대한민국의 힘을 모으자.

2023-05-15

재테크와 인문학의 라이벌 관계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유튜브를 즐겨 본다. 구독한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에 몸과 마음을 맡길 때가 많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재테크 관련 영상들을 자주 추천한다. 아마도 내 검색어와 사이트 방문 기록 등을 종합하여 이 40대 남성은 재테크 관련 영상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재테크에 투자할 자금도 없지만, 소위 경제 유튜버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되어 한참을 보게 된다. 저축, 보험, 주식, 부동산, 펀드, 코인(가상화폐) 등 콘텐츠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필자야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하지만, 실제로 재테크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들을 보며 공부에 열중할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종자돈을 투자해야 하니 얼마나 불안하고 애가 탈까. 그 절박함은 대학 입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경제 유튜버들은 이런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용해 돈을 번다. 서점에도 재테크 서적이 수두룩하다. 재테크로 돈을 버는 것보다 재테크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노동가치가 추락한 사회의 자화상이다.서울 동작도서관은 5월부터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의 구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구입 희망도서 중 재테크 관련 서적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장서불균형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유행을 타서 한두 번 대출된 뒤에는 서가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를 모두 구입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은 구입할 수 없기도 하다. 특히 공공 도서관에서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독서, 교육, 조사, 연구 활동에 기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작도서관의 혁신적 시도에 박수를 보내며, 전국의 도서관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것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책 대신 영상을 즐겨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등산과 예배당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일요일에 등산을 가고 교회에 나가면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되지만, 다른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면 영화계 전체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탁월한 통찰이다. 사람들이 문화와 여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그 효과는 문화계 전반에 미치게 된다.반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재테크를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사회. 노동의 가치, 근로소득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 건물주가 ‘갓물주(GOD+물주)’가 되고, 불로소득이 찬양받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문학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문학의 라이벌은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아니다. 재테크를 강요하는 사회가 인문학의 적이다.

2023-05-15

기록 바깥에 존재했던 기억

20년이 지난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는가. 31살의 아빠와 11살의 딸이 함께했던 튀르키예 여행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는가. 그날의 온도와 날씨, 대화와 음식, 사건과 풍경들은 잊혀진 것인가 감춰진 것인가.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은 다시 회상하는 기억(추억)의 의미를 더듬는다.다시 회상하는 기억의 동기가 되며, 기억의 보조 장치로 등장하는 캠코더. 11살의 여름, 아빠와 함께했던 며칠 간의 여행은 딸의 시선과 아빠의 시선으로 파편적으로 캠코더에 담겨있다. 흐릿한 기억과 파편적으로 담겨 있는 기록. 기억과 기록의 행간을 오가며 20년전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그리고 되살아난 기억은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이해와 감정을 몰고 온다.캠코더에 기록된 사실은 캠코더 밖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기억의 이해를 돕는다. 영화는 아빠와 딸의 시선 속에 머물며 풍경의 모든 것은 그 둘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 이 이야기를 되살리고 있는 것은 누구의 기억이며 기록이냐가 모호하다. 물론 영화의 시작과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성장한 딸의 순간적인 모습 속에서 딸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아빠가 소환되고 있다는 것은 유추해 볼 수 있다.표현이 다소 복잡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빠와 함께 했던 여행의 며칠간이 특정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없이 이어진다. 기억과 기록이 뒤섞이고 재편집된다. 시간은 휴가지에서 보내는 날들과 같이 순차적으로 흘러가고, 몇 개의 선명했던 일상이 펼쳐질 뿐이다. 그 틈 사이로 불안한 기운들이 스며든다. 시간순으로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개의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은 던져지지만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않는다. ‘왜?’라는 의문은 끝까지 풀리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과 불확실한 기억, 분명하지만 단편적인 기록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기억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재해석되고 거대한 이미지의 덩어리로 남는다. 이제 거대한 덩어리가 해체되어 나열되고 이야기로 편집되어진다. 흐렸던 기억은 분명한 캠코더의 기록에 의해 그 당시를 감싸고 있었던 감정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캠코더의 기록보다 강력한 기록인 사진과 아빠의 엽서가 등장하고 아름다운 ‘노란색(영화의 중간중간 노란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노란색 카메라, 노란 잠수복, 노란 자유이용권, 노란색방)’으로 자리잡는다.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확인할 길이 없는(영화 속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는 딸을 떠나보내고 난 이후 혼자 남은 튀르키예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떤 감정과 추측을 어떻게 구현하여 영화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하겠다. 단순한 내용은 독창적인 형식으로 사실과 추측 사이를 오간다. 봤어야 할 것을 보지 못하거나 봤어도 무심코 넘겨버린 것들이 20년이 지난 딸에게 무겁게 다가온다.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영화는 플래시백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31살이 된 딸의 기억이며, 새롭게 깨닫게 되는 아빠와 나의 추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서도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불안함과 아득함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혹은 영화를 보고 난 그 이후 밀려오는 감정은 묵직하다.그 힘은 영화의 이야기보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것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던 감독의 영화적 형식에서 기인한다.무언가 아버지를 휘감고 있었던 고민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열거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20년 전의 기억에 기대어 추측만 해볼 뿐이다. 기억의 모호함과 기록의 정확함이 낳은 결과다. 기록이 있기까지, 혹은 기록이 되지 않은 기록 바깥에 대한 이해와 추측이 영화를 이끈다. 과거에 대한 영화지만 좀처럼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았던 영화, 사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플래시백이었던 기막힌 형식의 영화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05-15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한글편지 50통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나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이제 성년의 날을 지나 부부의 날까지 이르면 5월이 거의 끝날 것이다. 의식적이고 의례적일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 여기며 잊어버리고 살지도 모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기념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가족은 혈연과 혼인 그리고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중 혼인을 통해 맺어지는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데, 이때 각 배우자의 직계혈족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사이가 된다. 사랑하는 배우자의 부모님이기에 시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지내야하지만, 갑자기 형성된 가족인데다가 혈연도 아니기에 잘 지내기 위해서는 더욱 마음을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할 때 관계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불화와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것이다.내방가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는 ‘쌍벽가’는 작자가 분명하고 창작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는데, 바로 이 작품의 작자인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한글편지 50통을 받은 주인공이다.(최근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쌍벽가를 포함해 내방가사 347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목록으로 등재한 바 있다.) 연안이씨가 받은 이 편지들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류운(柳澐·1701~1786)이 1759년(영조35)부터 1767년(영조43)까지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지가 1759년 6월부터 이듬 해 5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1년 동안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가 무려 43통이나 된다. 거의 일주일마다 1통씩 보낸 격이다. 인편이 아니면 편지를 주고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시아버지 류운은 어떤 배경과 사연으로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류운은 이 당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어 서울 살이 중이었다. 그는 서애 류성룡의 6세손으로 안동 하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류운의 차남 류사춘(柳師春·1741~1814)이 서울 출신 연안이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들의 혼인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두 사람의 아들인 류이좌(柳台佐·1763~1837)의 출생 연도로 볼 때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다. 연안이씨는 성헌(醒軒) 이지억(李之億·1699~1770)의 차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지억은 1751년(영조27) 문과에 급제했고, 이때에는 정3품인 도승지(都承旨)와 양주목사(楊州牧使)로 활동했다. 연안이씨가 시아버지와 한창 편지를 주고받았던 1년, 그녀는 서울 친정에 기거하며 시아버지의 관직 생활을 뒷바라지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시아버지의 편지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 보내준 음식에 고맙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고, 혹시 어디 아프고 불편한 데는 없는지 늘 궁금해 했다. 행여나 며느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만저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류운은 1759년 6월 26일에 쓴 편지에서 “들으니 흉복통과 여름 감기로 날포 세게 앓는다고 하니 더위는 심하고 오죽 괴로우며, 사령(사돈 이지억을 가리킴)께서도 안 계신데 병이 그러하니 병중에 네 마음이 오죽하랴. 가 보지도 못하고 답답하며 염려가 일시도 가라앉지 않는다. 수일간 가감(加減)이 어떠한고. 사령이 내일 가신다 하니 약이나 먹고 쉬이 나으면 오죽 좋으랴.”라며 며느리의 병을 걱정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날의 편지에서 “네가 본디 흉복통이 있다고 하는데 얼음을 자주 먹더라고 하니 어이 병이 아니 나랴. 잠시 병이 나았으나 병이 없는 사람도 병나기 쉬운 것이니 지금부터는 부디 먹지 마라. 가 보지도 못하고 섭섭함이 끝이 없다.”라며 안도감과 걱정스런 당부를 동시에 전했다. 병이 나았다고 하니 안심이지만 얼음 때문에 병이 난 것으로 보이니 지금부터는 먹지 말라며 당부한 것이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류운은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서울 어느 곳 누군가의 집에 임시로 기거하며 빨래와 옷 수선 및 옷 짓기 등을 며느리에게 부탁했다. 1759년 11월 28일의 편지에서 “지난번 도포는 조금 긴 듯하고 버선은 작은 듯한데, (그냥) 입고 신겠다. 옷 빨 길이 없으니 어렵지 않으면 (빨래감을) 보내고 싶으니 기별하여라.”라고 한 것이나. 1760년 5월 어느 날에 쓴 편지에서 “네가 오래지 않아 갈 것을, 관아 일의 여가가 적어 자주 못 보니 섭섭함이 끝이 있으랴. 관대 따로 짓기 어려우면 마른 후 그 관대 두고 보면서 짓게 하여라. 다른 관대 보내고 싶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이라 본떠 따를 것이 아니다. 그 관대 깃이 검어졌으니 마르고 남는 것 있거든 떼고 고치면 좋겠으니 보아라. 당직을 마치고 나온 후 다시 가면 보겠다.”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어조가 참 부드럽다. 며느리가 지어준 도포의 길이와 버선의 크기가 딱 맞지는 않지만 그대로 입고 신겠단다. 빨래감도 바로 보내지 않고 혹 형편이 되는지 확인하고 기별하라고 한다. 관직의 업무가 바빠서 자주 못 보는 것도 섭섭하다고 한다.시아버지 류운이 며느리 연안이씨에게 보낸 이 편지들은 가족일수록 더욱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2023-05-15